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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산 사람과 배운 세대가 같은 광장에 섰다"
[경제일보] 46년 전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금남로에 올해는 오월을 직접 겪은 세대와 2000년대생 청년들이 함께 섰다. 한쪽은 “잊히지 않는 기억”을 말했고 다른 한쪽은 ‘배워야 할 역사’를 넘어 ‘지켜야 할 현재’를 이야기했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18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렸다. 국가보훈부가 주관한 정부 기념식에는 5·18민주유공자와 유족, 정부 인사, 각계 대표, 학생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기념식은 초청장 없이도 금남로 방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열린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월의 현장은 하루 전부터 달라진 분위기를 보였다. 지난 16일 금남로에서는 5·18 46주년 민주평화대행진이 열렸다. 1980년 5월 광주역과 전남대 등지에서 시민들이 도청으로 향했던 행진을 재현한 행사에는 학생과 시민 등 약 2000명이 참여했다. 행렬이 금남로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박수로 맞았고 학생들은 손수 만든 주먹밥을 참가자들에게 건넸다. 주먹밥은 오월을 설명하는 가장 짧은 언어였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이 서로에게 나눴던 밥은 올해 청년들의 손에서 다시 건네졌다. 총성과 공포의 기억은 더 이상 교과서 속 문장으로만 남지 않았다. “가자, 도청으로”라는 구호와 “오월 정신 헌법에”라는 외침이 금남로를 메웠고 광장은 추모를 넘어 민주주의를 배우는 공간이 됐다. 오월을 겪은 세대에게 광장은 여전히 상처의 장소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지난 17일 46주년 추모제가 엄수됐다. 유족과 오월어머니, 5·18단체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고 참석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유족들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무산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하며 오월 정신을 민주주의와 공동체 가치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세대에게 광장은 새롭게 해석되는 공간이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올해 슬로건 ‘오월의 꽃, 오늘의 빛’에 대해 “1980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간 영령들을 기리고 그날의 용기가 오늘의 광장 기억으로 다시 소환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위경종 상임행사위원장은 “어느새 50주년이 가까워지는 5·18이 미래 세대에게 이관되기 위한 중요한 전초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올해 행사는 청년과 청소년 참여에 무게를 실었다. 전남 지역 기념행사에서는 청춘 서포터즈를 중심으로 5·18 사적지 답사와 민주역사 교육이 추진됐고 K팝 댄스와 학교밴드 공연 등 청소년 참여 무대도 마련됐다. 원주 등 광주 밖 지역에서도 오월사진전과 주먹밥 나눔, 헌법 전문 수록 시민서명 캠페인이 열렸다. 오월은 광주 안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전국의 시민교육과 문화행사로 확장됐다. 세대 간 대화의 핵심은 “기억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에 있었다. 오월세대는 당시의 공포와 연대,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간을 증언한다. MZ세대는 그 증언을 듣고 묻는다. 왜 아직 발포 명령자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지 왜 헌법 전문 수록은 매번 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지, 왜 왜곡과 폄훼는 반복되는지다. 올해 기념식이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린 것도 상징적이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최후 항쟁지다. 기념식에서는 복원된 도청을 배경으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됐고 기념 공연과 특별공연을 통해 오월의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불러냈다. 청년 세대에게 5·18은 더 이상 ‘먼 과거’만은 아니다. 지난 비상계엄 정국 이후 광장의 민주주의가 다시 호출되면서 오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형 언어로 돌아왔다. 행사위원회가 올해 슬로건에 ‘오늘의 빛’이라는 표현을 담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80년 광주의 용기가 오늘의 시민들에게 다시 확인됐다는 의미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그러나 증언은 들을 사람이 있을 때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올해 광장에 선 오월세대와 MZ세대의 만남은 그 계승의 장면이었다. 한 세대는 “잊지 말라”고 말했고 다른 세대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었다. 46년의 시간은 두 세대를 갈라놓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광장에 세웠다. 5·18은 이제 추모의 날을 넘어 시민의 질문이 됐다. 오월을 겪은 세대의 기억이 청년 세대의 언어로 바뀌고 광장의 함성이 학교와 지역, 온라인과 문화행사로 옮겨갈 때 오월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된다. 올해 광주가 보여준 달라진 추모 분위기는 그래서 더 조용하지만 선명했다. 오월은 기억의 역사를 넘어 다시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2026-05-18 1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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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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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정신은 어떻게 인간과 생명의 종교적 울림으로 승화되었는가
[경제일보] 1980년 5월의 5·18 민주화운동 은 단지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 공동체와 양심이 국가 폭력 앞에서 어떻게 저항하고 서로를 지켜내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인간 드라마였으며, 더 깊이 들어가면 인류 정신사 속에 반복되어 온 ‘생명 존중의 영성(靈性)’이 광주라는 도시에서 다시 살아난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나 군사정권 저항 운동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광주는 점차 정치의 영역을 넘어 인간 존재 자체를 묻는 정신적 사건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것은 총칼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시민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탄 속에서도 서로를 버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었고, 학생들은 피 흘리는 시민을 위해 헌혈차 앞에 줄을 섰다. 택시 기사들은 서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차량으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어머니들은 이름 모를 젊은이들의 시신을 붙들고 울었다. 그곳에는 증오보다 더 강한 인간애가 존재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광주는 단순한 저항의 도시가 아니라 ‘생명 존중의 도시’로 기억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5·18은 인류의 오래된 경전들과 만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경전인 천부경 은 이렇게 시작한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하나는 시작이면서도 시작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뜻이다. 우주와 인간, 생명은 결국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광주의 정신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로를 남으로 보지 않았다. 공동의 생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타인을 지키려 했다. 인도의 베다 와 우파니샤드는 인간 안에 우주의 본질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아트만은 브라만이다”라는 구절은 인간의 영혼과 우주의 근원이 하나라는 뜻이다. 인간 생명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결국 우주의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장 크게 무너졌던 것은 단순한 정치 질서만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문명 자체의 질서가 흔들린 것이다. 그래서 광주의 비극은 단순 지역 사건이 아니라 인간 문명의 근본 질문으로 남게 되었다. 논어 에서 공자는 말한다.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 역시 인(仁)에 있다는 뜻이다. 백성을 두려움으로 지배하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조선 500년의 정치철학도 결국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는 민본(民本)의 정신 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80년 5월의 권력은 국민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국가는 스스로의 도덕적 정당성을 잃었다 . 금강경 은 인간 세상의 모든 권력과 집착이 덧없음을 가르친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에서 진정한 자비가 나온다는 뜻이다. 광주의 시민들은 거대한 이념이나 권력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거리로 나왔다. 그것은 정치 이전의 인간적 양심이었다. 또한 법구경 은 말한다. “원한은 원한으로 갚을 수 없고, 자비로써만 끝난다.” 오늘날 5·18이 진정으로 완성되기 위해 필요한 것도 바로 이 정신일지 모른다. 진실 없는 화해는 위선이지만, 용서 없는 역사 또한 미래로 나아가기 어렵다. 가해 책임 세력의 진정한 참회와 사과, 그리고 희생자 유족들의 대승적 용서가 함께할 때 광주의 정신은 더 높은 단계로 승화될 수 있다. 도덕경 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강한 것은 꺾이고, 부드러운 것이 오래간다.” 당시 군사 권력은 총과 탱크를 가졌지만, 결국 역사는 시민들의 편에 섰다. 힘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억누를 수는 있어도 인간 정신까지 영원히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18은 패배한 역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엄이 국가 폭력을 넘어선 역사다. 오늘날 광주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중요한 것은 5·18 정신이 이제 정치적 기억을 넘어 종교적·문명적 차원의 울림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특정 종교를 뜻하지 않는다. 인간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는 인류 공통의 정신세계와 만난다는 의미다. 오늘날 세계는 AI 혁명과 기술문명의 폭주 속에서 다시 인간의 의미를 묻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인간성은 오히려 메말라가고 있다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럴수록 광주의 정신은 더욱 중요해진다. 인간은 단순한 숫자나 통계가 아니라 존엄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의 목적은 권력이 아니다. 경제 성장만도 아니다. 인간 생명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데 있다. 그것이 무너질 때 문명은 흔들린다. 46년이 지난 지금, 광주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은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끝내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존재인가. 광주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민주주의를 넘어 인간과 생명의 경전으로 남아가고 있다.
2026-05-18 11: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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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광장, 달라진 추모…46년 만에 오월은 시민 곁으로 왔다
[경제일보]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18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렸다. 올해 기념식의 주제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였다. 1980년 5월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장에서 오월 정신을 다시 시민의 일상으로 확장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올해 기념식의 가장 큰 변화는 장소와 형식이었다. 행사는 5·18민주유공자와 유족, 정부 인사, 각계 대표, 학생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국민의례, 주제 영상, 현장 선언, 기념사, 기념 공연, 특별공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순으로 약 50분간 이어졌다. 초청장이 없는 시민들도 금남로 방면 LED 전광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도록 ‘열린 기념식’으로 마련됐다. 무대의 중심에는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이 있었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맞섰던 최후항쟁지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복원된 도청을 배경으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됐다. 1980년 당시 마지막 가두방송을 맡았던 박영순씨가 국기에 대한 경례문을 낭독하며 그날의 기억을 불러냈다. 기념 공연도 달라진 추모 분위기를 보여줬다. 5·18을 소재로 한 시와 소설, 일기 낭독이 무대에 올랐고, 5·18민주유공자인 고 박효선 열사가 주축이 돼 창단한 극단 ‘토박이’가 참여했다. 특별공연에서는 광주시립발레단의 퍼포먼스와 미디어아트가 결합돼 복원된 옛 전남도청과 광장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재현했다. 기념식 전날부터 광주의 추모 분위기는 고조됐다. 국립5·18민주묘지에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참배가 이어졌고, 금남로 5·18민주광장에서는 전야제가 열렸다. 추모제에서는 46년 전 국가폭력 앞에서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희생자들을 기리는 제문 낭독과 분향이 이어졌다. 묘역의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무거웠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이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과 최근 금남로 일대 극우 성향 집회에 대한 불편한 시선도 시민들의 표정에 남아 있었다. 대학생 참배객들은 고 윤상원 열사 묘소를 시작으로 항쟁 당시 희생자들의 사연을 들으며 묘역을 돌았다. 그러나 올해 오월의 추모는 침묵에만 머물지 않았다. 광장과 금남로 일대에서는 전시, 공연,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이달 말까지 학술대회, 전시, 공연, 시민난장 등 141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주먹밥 나눔, 민중미술 체험, 청년 오월굿즈 박람회 등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46주년 기념식의 메시지는 ‘기억의 장소’에서 ‘참여의 광장’으로 옮겨가는 데 있었다. 과거 5·18 기념식이 묘역 중심의 엄숙한 추모에 방점을 찍었다면, 올해는 옛 전남도청과 5·18민주광장을 중심으로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형식을 강화했다. 오월을 특정 세대와 지역의 기억에 가두지 않고, 민주주의와 인권, 공동체의 가치로 확장하려는 변화다. 정치권의 시선도 광주로 향했다. 여야 지도부와 정부 인사들이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5·18 정신 계승과 국민통합 메시지가 다시 부각됐다. 다만 헌법 전문 수록과 진상규명, 왜곡·폄훼 대응 등 미완의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올해 광주의 오월은 더 넓어진 광장으로 돌아왔다. 복원된 도청은 1980년의 마지막 밤을 증언했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46년 전의 희생을 오늘의 민주주의 언어로 다시 불렀다. 추모는 엄숙했지만 닫혀 있지 않았다. 5·18은 다시 광장을 품었고, 광장은 다시 시민을 불러 세웠다.
2026-05-18 11: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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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다시 품은 오월 정신, 이제는 '헌법 전문 수록'으로 응답하라
[경제일보] 1980년 5월, 신군부의 총칼에 맞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5·18민주광장이 다시 한번 뜨거운 연대의 열기로 가득 찼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초청장 없는 ‘열린 기념식’ 형태로 엄수된 것은 매우 뜻깊다. 옛 전남도청 원형 복원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식에서 과거의 오월 영령이 현재의 청년들에게 태극기를 이어주는 모습은, 오월 정신이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의 뿌리임을 다시금 일깨웠다. 그러나 광장의 감동 뒤편에 가려진 정치권의 모습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은 크다. 최근 국회에서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기 위한 개헌안 표결이 끝내 무산됐다. 여야가 선거철마다 한목소리로 약속했던 시대적 과제가 또다시 당리당략과 진영 논리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표결 불참 방침으로 개헌 논의를 무산시킨 야당의 행태는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다 해직된 언론인들의 외침처럼,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한 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 역시 거대 의석을 보유하고도 이를 관철하기 위한 정교한 전략과 정치적 설득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문구 삽입이나 특정 지역·세력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법 체계의 근간인 헌법 전문에 오월의 역사를 새기는 일은 국가폭력의 비극을 성찰하고, 다시는 이 땅에 ‘12·3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헌정 질서 훼손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민주공화국의 다짐이다. 동시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4·19 혁명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통성으로 인정하듯, 5·18 정신 역시 헌법적 가치로 확고히 자리 잡아야 비로소 소모적 역사 왜곡과 국론 분열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 이제 5·18 정신은 광주라는 지역적 담론을 넘어 부마민주항쟁과 6월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거대한 흐름으로 승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통렬한 반성과 함께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전국적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들이 정치적 부담 없이 헌법적 가치에 기반해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미래 세대가 이를 올바르게 배울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오월의 진실을 기억하는 유족들은 늙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피로써 지켜낸 정의와 공동체 정신만큼은 결코 퇴색돼서는 안 된다. 46년 전 광주 시민들이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주먹밥을 나누며 지켜낸 대동(大同)의 정신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글로벌 K-민주주의의 상징으로 평가받는 원동력이 됐다. 정치권은 더 이상 오월 정신을 정쟁의 도구로 소비하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멈춰야 한다. 여야는 후반기 국회 개원에 맞춰 헌법 전문 수록을 위한 초당적 논의를 즉각 재개해야 한다. 그것이 광주의 영령들 앞에 국가가 보여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며, 미래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물려주는 길이다.
2026-05-18 11: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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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 메가시티 부활'인가 '도정 연속성'인가
[경제일보]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 이래 경상남도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기의 대결’을 앞두고 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 국민의힘 박완수 현 경남도지사가 정면으로 격돌한다. 이번 선거는 단순한 여야의 대결을 넘어선다. 민선 7기의 거대한 설계도와 민선 8기의 실용적 실적표가 충돌하는 헌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전·현직 도지사 간의 자존심을 건 진검승부’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끌어온 경남의 유권자들은 이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경남의 민심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김 후보의 ‘우위’가 조심스레 점쳐졌지만, 5월에 접어들며 발표된 지표들은 판세가 ‘초접전’ 양상으로 급변했음을 시사한다. KBS창원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KBS창원방송총국 의뢰, 한국리서치 조사, 2026년 4월 14~16일, 경남 지역 만 18세 이상 성인 800명 대상, 휴대전화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 전화면접조사 방식, 응답률 20.6%,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5%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김 후보와 박 후보는 각각 37%, 27%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 당시만 해도 김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여유 있게 앞서 나가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선거전이 본격화된 이달 초, 기류는 미묘하게 요동쳤다. 경남신문이 모노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경남신문 의뢰, 모노리서치 조사, 2026년 5월 1~2일, 경남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무선전화 ARS 방식, 이동통신 3사 제공 가상번호 무작위 추출, 응답률 7.7%,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는 박 후보가 44.1%, 김 후보가 41.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두 후보의 격차는 불과 2.2%포인트로 오차범위 내 초박빙 양상이다. 이와 같은 상반된 흐름은 조사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한 면도 있지만, 선거가 임박할수록 현직 프리미엄과 함께 경남 특유의 보수층 결집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김경수 "부울경 30분 생활권으로 인구 유출 방어" 1호 공약 김 후보를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부울경 메가시티(동남권 특별지방자치단체)’의 복원이다. 그는 경남을 부산, 울산과 단절된 행정구역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활·경제권으로 묶어내야만 수도권 일극 체제의 폭력적 팽창에 맞설 수 있다고 역설한다. 김 후보는 1호 공약으로 ‘부울경 메가시티 30분 생활권’을 천명했다. 남부내륙철도의 조기 완공과 노선 연장, 동부경남 KTX 고속화, 남해안권 광역급행철도, 그리고 달빛철도 조기 착공 등이 핵심 얼개다. 도지사 취임 즉시 1호 행정명령으로 메가시티 추진단을 부활시키겠다는 선언은 그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청년 인구 유출로 신음하는 경남에 있어 공간의 압축을 통한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은 필수 불가결한 생존 전략이다. 이와 관련해 김 후보는 김해와 양산을 단순한 부산·창원의 배후도시가 아닌, 메가시티의 핵심 거점으로 재편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KTX 김해역 신설과 AI 전력반도체 특구 지정 구상은 동부권 표심을 강력하게 흔들고 있다. 하지만 ‘미완의 도정’이라는 꼬리표는 그가 극복해야 할 아킬레스건이다. 과거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정치적 피로감과 행정적 난맥상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은 묻고 있다. 또한 메가시티라는 거대 담론이 도민의 팍팍한 삶에 닿기 위해서는 재원 조달과 구체적인 실행 시간표라는 냉혹한 현실의 검증을 통과해야만 한다. ◆박완수 "행정은 실전, 도민연금 등 5대 복지로 일상 바꿀 것" 이에 맞서는 국민의힘 박 후보의 전략은 뚜렷하다. ‘도정의 안정적 연속성’과 ‘검증된 행정력’이다. 창원시장 3선과 경남도지사 4년이라는 묵직한 이력은 그 자체로 유권자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실제로 경남신문 여론조사에서 유권자들이 차기 도지사 선택 기준으로 ‘행정 경험과 능력(34.1%)’을 가장 높게 꼽았다는 점은 박 후보의 현직 프리미엄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다. 박 후보의 핵심 공략 지점은 거대 담론이 놓치기 쉬운 ‘도민의 일상’이다. ‘행복UP 5대 복지공약’이 대표적이다. 만 18세 이상 모든 도민에게 의료, 문화, 교통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경남도민 멤버십 카드’를 비롯해 4050 세대를 위한 복지포인트, 여성 건강케어 확대, 가입 대상을 획기적으로 넓힌 ‘경남도민연금 시즌2’ 등이 주요 내용이다. 상대 후보의 거시적 정책에 맞서 당장 내 지갑과 내 삶이 바뀌는 미시적이고 실용적인 생활 밀착형 공약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현직의 숙명’인 책임론은 가장 예리한 창이 돼 그를 겨냥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주력 산업을 육성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서부경남의 의료 공백과 멈추지 않는 청년 유출에 대해 김 후보측은 매서운 공세를 펴고 있다. ◆해양방산·조선업 체질 개선 등 경남 경제 생존 전략, 승패 가를 듯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내밀한 쟁점은 경남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의 체질 개선이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기후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 위기 속에서 친환경 선박과 차세대 무기체계를 생산하는 경남의 산업 지형은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거제와 창원을 중심으로 한 조선업과 해양 방위산업의 고도화는 차기 도정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대한민국 해양방산의 양대 산맥인 HD현대와 한화 간의 치열한 수주 경쟁과 산업 주도권 싸움이 전개되는 가운데 도 차원에서 이들 핵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어떻게 뒷받침하고 지역 경제의 낙수효과로 연결할 것인가가 숨겨진 핵심 의제다. 지리적·정치적 승부처는 크게 세 곳으로 압축된다. 우선 경남 정치·경제의 심장부인 창원은 박 후보의 견고한 안방이자 김 후보가 반드시 균열을 내야만 하는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창원국가산단의 미래 재편 방향이 표심을 가를 것이다. 동부권(김해·양산)의 경우 민주당의 지지세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부울경 메가시티의 직접적 수혜지인 이곳에서 김 후보가 얼마나 압도적인 득표율을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서부·남해안권에서는 우주항공청 개청의 후광 효과와 함께 심각한 의료·교통 소외를 겪고 있는 이 지역에서는 현실적인 인프라 확충 방안을 제시하는 후보가 승기를 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경남도지사 선거의 본질은 과거에 대한 심판도, 현재에 대한 막연한 방어도 아니다”라며 “청년들은 사랑하는 고향 경남에 계속 머물 수 있을 것인가, 아프면 불안에 떨지 않고 가까운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가, 창원과 거제의 육중한 크레인들은 미래 산업의 동력으로 무사히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후보자들에게 던지고 있다”고 했다.
2026-05-10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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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의 조급함이 시대의 순리를 앞지를 순 없다
[경제일보] 국회의장의 개헌 제안에 이어 여권 일각에서도 개헌의 군불을 지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산물로 현행 헌법이 뿌리 내린 지도 어느덧 마흔 해가 가까워졌다. 강산이 네 번 변하는 동안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고 사회 구조는 복잡다단해졌다. 옷이 몸에 맞지 않으면 새로 지어 입는 것이 마땅하듯, 낡은 헌법 체제를 현실에 맞게 수선하자는 논의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 헌법 개정은 결코 정치적 이해득실이나 특정 진영의 전략적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덕경(道德經) 제60장에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이 나온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물고기를 굽는 것과 같아서, 너무 자주 뒤집으면 살이 다 부서진다는 뜻이다. 헌법은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체를 지탱하는 뼈대다. 뼈대를 새로 맞추는 과정에서 정치권이 성급하게 이리저리 뒤집으려 든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삶과 국가의 안녕으로 돌아간다. 지금의 개헌 논의가 과연 시대적 소명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정국 돌파를 위한 정략적 도구인지를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개헌의 필요성은 간헐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권력 구조의 분점, 지방분권 강화, 기본권 확대 등 명분은 늘 그럴듯했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끝난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적 공감대라는 토양 없이 정치적 야심이라는 씨앗만 뿌렸기 때문이다. 공자(孔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의 어떤 정책도 바로 설 수 없다. 하물며 국가 최고의 규범인 헌법을 고치는 일에서 사회적 동의와 공조가 빠진다면, 그것은 '국민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정치꾼을 위한 잔치'로 전락할 뿐이다. 일부 진영에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그것을 민의(民意)의 전부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인 동시에 절차적 정당성의 산물이다. 특정 세력의 정치적 일정에 맞춰 개헌 시한을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것은 헌법 정신에 대한 모독이다. 진정한 개헌은 광장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국민의 요구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추진력을 얻는다. 지금 우리 국민이 절실히 원하는 것이 과연 통치 구조의 변경인가, 아니면 무너진 민생의 회복과 공정의 가치 바로 세우기인가를 정치권은 자문해야 한다. 개헌은 아무리 신중해도 과하지 않다. 서구의 명언에도 "천천히 서두르라(Festina Lente)"는 말이 있다. 40년 된 헌법이 낡았다고 비판하기 전에, 그 헌법이 보장한 민주적 가치를 우리 정치권이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부터 돌아보는 것이 순서다. 법이 문제가 아니라 법을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였던 적은 없었는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한다. 사회적 동의라는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헌은 갈등의 치유가 아닌 새로운 분열의 씨앗이 될 뿐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일에 조급함은 독(毒)이다. 여야는 정략적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국민의 마음부터 살펴야 한다. 개헌의 당위성이 차고 넘친다 해도, 국민의 실질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 옳다. 헌법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유행가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전해 내려갈 장엄한 교향곡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중함'이라는 미덕이 결여된 개헌 논의는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2026-03-24 09: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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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이 광화문을 넘어 세계로 흘렀다
[경제일보] 세종대왕 동상 너머로 봄밤 광화문이 붉게 물들었다. 21일 오후 8시, 방탄소년단(BTS) 7인이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2만2000명의 함성이 세종대로를 타고 도심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조선 왕조가 남긴 근정문(勤政門)을 나서 흥례문을 지나 광화문 월대를 밟고 무대로 걸어 들어온 일곱 청년의 발걸음 안에는, 3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압축돼 있었다. 전석 무료로 열린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발매 기념 컴백 공연 'BTS THE COMEBACK LIVE | ARIRANG'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동시 생중계됐다. 특정 가수가 광화문광장에서 단독 공연을 연 것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쇼가 시작된다"(The show is starting!)고 속보를 타전했고, BBC는 광화문 문루(門樓)를 파리 개선문에 빗댔다. 왕의 길을 따라 무대로 공연이 남다른 인상을 남긴 것은 단순한 음악 퍼포먼스를 넘어선 공간의 연출 때문이었다. BTS는 경복궁 내부 근정문에서 출발해 흥례문, 광화문, 월대를 거쳐 무대로 향했다. 조선시대 왕과 백성이 소통하던 '왕의 길'을 그대로 밟은 셈이다. 공연 전 빅히트 뮤직이 공개한 일문일답에서 RM은 "광화문과 무대가 서로 가리지 않도록 오픈형 구조로 설계해 한 화면에 담겼다"고 밝혔다. 공연은 신곡 '바디 투 바디'로 막을 올렸다. 한국 민요 '아리랑'을 샘플링한 이 곡의 첫 소절이 울려 퍼지자, 좌석 구역에 앉은 아미(ARMY)들이 한목소리로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전 세계에서 날아온 수만 명이 600년 역사의 궁궐을 배경으로 조선의 민요를 떼창하는 광경은 누가 기획해도 흉내 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연출을 맡은 해미시 해밀턴(Hamish Hamilton)은 런던 올림픽 개폐회식과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지휘한 인물이다. 이번 앨범 제목 '아리랑'은 130여 년 전 타국에서 고향을 그리며 이 노래를 불렀던 이름 모를 이들의 이야기와, 긴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BTS의 서사를 하나의 실로 엮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제작진은 설명했다. 앨범의 14곡 가운데 13곡에 RM이 작사에 참여했다. 리더인 그는 이날 다리 부상을 안고도 무대에 올랐다. 예측 빗나간 인파, 그리고 현장의 온도차 경찰과 서울시는 공연 전 최대 26만명의 인파를 예상하며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을 능가하는 경계 태세를 폈다. 광화문역·시청역·경복궁역은 오후 2시부터 무정차 통과로 전환됐고, 세종대로 1.2㎞ 구간은 사실상 야외 스타디움으로 봉쇄됐다. 안전요원과 경찰·소방 인력 1만5000여 명이 투입됐다. 그러나 실제 운집 인파는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경찰과 서울시 공식 추산으로는 광화문광장 일대에 모인 인원이 4만~4만2000명 수준, 주변 일대를 합산해도 약 10만 명에 그쳤다. 26만 명을 상정하고 꾸린 안전·통제 체계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였고, 현장에서도 "다소 아쉽다"는 말이 나왔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철통 같은 교통 통제가 접근성 자체를 떨어뜨렸고, 공연 시간이 1시간 남짓이라는 사전 정보가 알려지면서 굳이 현장까지 오기보다 넷플릭스로 보겠다는 팬들이 늘었다. 서울시교육청이 학생들의 광화문 방문 자제를 권고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공식 좌석 2만2000석은 티켓을 받은 팬들로 빈틈없이 채워졌지만, 무대 바로 앞 구역을 벗어나면 공연장 특유의 공간 구조 탓에 대형 스크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좁고 길게 뻗은 세종대로의 특성상 무대와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실상 현장에서 넷플릭스 중계를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었다. 공연 종료 후 팬들 사이에서 "정말 끝이야?"라는 말이 나돈 것은 이 공연이 나빴다는 뜻이 아니라 너무 짧게 느껴졌다는 아쉬움에 가까웠다. 인파 규모 자체보다 눈길을 끈 것은 국적의 다양함이었다. 현장 안전요원은 "체감 방문객의 60% 이상이 외국인이었다"고 전했다. 미국, 브라질, 프랑스, 일본은 물론 체코, 루마니아, 미얀마, 우크라이나까지 각국의 언어가 뒤섞였다.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한 팬은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전쟁 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줬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24세 여성은 "역사적인 장소에서 BTS를 보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장 운영을 두고는 적잖은 불만이 쏟아졌다. 입장 게이트 위치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찰에게 물어봐도 "앞으로 계속 걸으세요"라는 말만 들었다는 관람객이 여럿이었다. 필름 카메라를 들고 온 관람객이 반입 제지를 당하는 등 소지품 기준도 불명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외국인 팬들은 한국어로만 공지되는 안내 방송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현장을 헤맸다고 했다. 빛과 그림자, 엇갈린 반응 공연 뒤 광화문 인근 상권은 희비가 갈렸다. 공연장 주변 음식점들은 점심부터 이른 저녁까지 외국인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김밥집 사장은 "미국에서도 김밥 인기가 높아 아미들이 간편하게 들러 먹고 갔다"고 했고, 광화문 인근 식당 상당수는 아리랑 앨범 콘셉트에 맞춘 한식 메뉴를 내걸었다. 한 경제연구소는 이번 공연의 경제 파급 효과를 10억 달러(약 1조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했다. 반면 공연장 외곽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3월 16일부터 시작된 광화문광장 통제로 인근 상인들은 평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매출 손실을 봤다고 호소했다. 예상 인파에 대비해 물류를 대폭 늘렸던 편의점 업주들은 고스란히 재고 손해를 떠안았다. 공무원 차출, 직장인 강제 연차 등의 문제도 불거졌다. 광화문이라는 상징적 공간에서의 행사가 과연 공공 광장의 취지에 부합하는지를 두고 논쟁도 이어졌다. 주최 측인 하이브와 빅히트 뮤직이 국가 인프라를 사실상 전용(專用)한 셈이라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공연이 안전사고 없이 마무리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태원 참사 이후 대형 행사 인파 관리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게이트 31곳을 통한 분산 통제와 20분 단위 순차 퇴장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다. 공연이 끝난 뒤 일부 팬들은 자원봉사를 자처하며 현장 쓰레기를 주웠다. '아리랑'이라는 선택의 무게 이번 앨범과 공연이 남긴 가장 큰 질문은 음악적 성취보다 그 이름이 지닌 무게에서 비롯된다.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특정 누구의 소유도 아닌 채 수백 년을 이어온 노래다. BTS가 이 이름을 정규 앨범 타이틀로 전면에 내세우고 광화문이라는 역사적 공간과 결합했을 때, 그것은 음악적 선택을 넘어 문화 정치적 행위가 된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이 앨범을 "군 복무 이후 가장 민족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품"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결과적으로 이날 밤 광화문 무대가 세계에 전달한 것은 보편적 정서였다.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민요 가락에 맞춰 수십 개 나라 팬들이 한 목소리를 냈다. 조선의 개국과 일제 강점기,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광화문이 K팝의 역사적 무대가 됐다는 사실은, K팝이 수십 년간 걸어온 길이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앞으로 BTS는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고양·부산을 포함한 국내 투어와 유럽 브뤼셀·런던을 거치는 월드투어 'ARIRANG'을 예고했다. 오는 27일에는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BTS: The Return'이 공개된다. 완전체 복귀 이후의 BTS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그리고 이날 광화문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봄밤의 광화문이 남긴 잔향은 그 질문을 품은 채 아직 서울 도심에 맴돌고 있다.
2026-03-22 11: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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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의 큰 정치, 한국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다
[경제일보]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의 『권노갑 백인평전』 출판기념회는 단순한 출판 행사를 넘어 한국 정치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국회박물관에 모인 인사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권노갑이라는 인물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는 오랜 세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킨 정치인이자 민주화의 굴곡진 현장을 통과해 온 산증인이다. 그러나 그를 단지 ‘영원한 비서실장’으로만 부르는 것은 부족하다. 권노갑은 한국 정치가 잃지 말아야 할 기본과 원칙, 상식의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될 만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날 축사에서 회고한 2000년 청와대 만찬장의 장면은 그 상징성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당시 정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권 고문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매우 냉혹한 장면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구라도 격앙되거나 반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노갑은 달랐다. 그는 “내가 퇴진함으로써 대통령과 당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순명’이라는 두 글자를 남겼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었던 후배를 다시 품고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한 대목은 더욱 인상적이다. 이것은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오늘의 한국 정치가 특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정치는 과도한 진영 대립과 적대적 언어, 그리고 단기적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본래 공적 책임의 영역인데도 현실에서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나 지지층을 결집하는 선동의 언어로 축소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권노갑의 삶은 정치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정치는 사람을 소모하는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적 행위이며 권력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권노갑의 정치가 특별한 까닭은 오랜 세월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권력의 탐욕에 함몰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대의를 앞세웠고 직함보다 역할을 중시했으며 사적 이익보다 공적 질서를 소중히 여겼다. 실제로 많은 인사들이 그를 두고 ‘선당후사’의 표상, 사람과 신의를 중심에 둔 정치의 실천자라고 평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관찰의 결과일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런 평가를 여야를 넘어 함께 받는 인물은 결코 많지 않다. 그는 또한 정치의 가장 근본을 지킨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의 근본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사실을 직시하는 진리의 태도, 사적 이해보다 공적 기준을 앞세우는 정의의 감각, 서로 다른 의견과 세력이 공존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히는 자유의 정신이 정치의 근본이다. 권노갑의 삶에는 이러한 요소가 비교적 분명하게 배어 있다. 그가 한국 민주주의의 질곡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잃지 않았고 적지 않은 후배 정치인에게 울타리와 버팀목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출판기념회가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개인 찬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치가 권노갑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가다. 정치는 결국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 위에 서야 한다. 순간의 유불리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가 아니라 긴 호흡에서 공공성을 지켜내는 정치가 필요하다. 또한 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하더라도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권노갑이 보여 준 절제와 용서, 그리고 대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는 지금 정치권 전체가 되새겨야 할 덕목이다. 정치의 역할 역시 과거를 끝없이 응징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를 다시 묶는 데 있어야 한다. 갈등을 넘어 화해와 공존의 길을 찾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 그치기 쉽다. 권노갑의 삶을 지나치게 미화할 필요는 없다. 정치인은 누구나 시대의 한계와 논란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긴 정치 여정이 오늘의 한국 정치에 하나의 기준점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보다 권력을 내려놓는 순간 더 크게 보이는 정치인, 자신을 겨눈 후배마저 품어 더 큰 정치를 하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인, 직위보다 도리로 기억되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권노갑의 큰 정치는 과거의 미담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가 다시 세워야 할 이정표라 할 만하다. 한국 정치는 지금 새로운 기준을 필요로 한다. 거친 언어보다 절제된 판단이 진영의 흥분보다 공적 책임이 순간의 승리보다 오래 남는 품격이 절실하다. 권노갑이라는 이름이 다시 호명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백년 인생은 단순한 개인사의 기록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지탱되는가를 보여 주는 한 사례다. 정치가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권노갑이 남긴 기본과 원칙, 상식의 유산부터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무거운 출발점일 것이다.
2026-03-08 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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