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3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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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대립 부추기는 외교를 경계한다
[경제일보] 외교는 말의 전쟁이 아니다. 더구나 국가의 안보와 경제적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면 공개적인 설전보다 치밀한 계산과 물밑 협상이 우선이다. 그런데 최근 한·우크라이나 관계를 둘러싼 일련의 공방을 보면 대한민국 외교가 과연 이런 기본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상대국의 공개적인 불만에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양국 간 이견이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은 국익을 극대화해야 할 외교가 오히려 갈등을 키우는 양상으로 비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전략 부재다.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북·러 군사협력 강화는 대한민국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수다.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기술과 경험을 제공하고 북한이 러시아의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구도가 굳어진다면 한반도의 군사적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협력하고 국제사회와 공동 대응을 모색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이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냉정한 전략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원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전략이 없는 것이다. 정부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중시한다면 우리의 지원 범위와 조건, 한계선을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했어야 한다. 상대국의 요구에 끌려가는 모양새도, 공개적인 감정싸움으로 맞서는 모습도 피했어야 한다. 그런데 외교적 이견이 공개적인 신경전으로 번진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상대국과의 협상력은 떨어지고,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 공간도 좁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가치외교'라는 명분이 '무조건적인 동조'로 변질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국제법·주권 존중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대한민국이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될 원칙이다. 그러나 원칙을 지킨다는 것과 다른 나라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의 외교는 도덕적 선언문이 아니라 냉정한 손익계산서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글로벌 공급망, 방산시장, 식량안보, 미·러 갈등은 물론 북·러 군사협력까지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직결돼 있다. 여기에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기회도 걸려 있다. 한국이 외교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인도적 지원과 재건 협력을 확대하면서 우리의 산업과 기업이 참여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감정적인 외교로 관계를 불필요하게 틀어버리면 시장과 기업이 얻을 기회까지 잃을 수 있다. 러시아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러의 군사협력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관계를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러시아는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변수다. 에너지·자원·물류와 관련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국가다. 지금 당장 관계가 어렵다고 해서 외교적 출구까지 스스로 봉쇄한다면 훗날 한반도 안보와 경제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를 우리 손으로 버리는 꼴이 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외교의 무게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첫째, 정상적인 외교 채널을 복원하고 공개적인 설전을 최소화해야 한다. 외교적 이견은 언론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풀어야 한다. 둘째, 우크라이나 지원 원칙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국민에게 그 기준과 비용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셋째, 미국·유럽과의 공조를 유지하면서도 한·러 관계를 관리할 별도의 소통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 넷째, 우크라이나 재건과 방산·에너지·인프라 협력을 국익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외교를 국내 정치의 연장선에서 다루는 듯한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 외교적 강경 발언 한마디는 국내에서는 박수를 받을지 몰라도 국제사회에서는 협상 카드를 하나 없애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조용한 물밑 협상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국가의 실리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목소리 큰 외교가 아니라 계산된 외교다. 동맹은 굳건히 하되 국익은 스스로 챙겨야 하고, 국제적 원칙은 지키되 우리의 선택권까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비용은 국민과 기업이 떠안는다. 외교 실패는 외교부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과 수출시장, 기업의 해외사업, 안보 비용과 국가 재정으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정부는 한·우크라이나 관계의 최근 난맥상을 단순한 외교적 해프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한민국 외교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굴종도 강경 일변도도 답이 아니다. 원칙에는 단호하되 협상에서는 유연하고, 말은 절제하되 국익에는 집요해야 한다.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이 가져야 할 외교의 기본이다.
2026-10-08 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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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서버가 바다로 간다…K조선이 '데이터센터'를 띄우는 이유
[경제일보] 대형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만들던 국내 조선사들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를 바다 위에 띄우기 시작했다.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부지와 전력 공급, 냉각 문제가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르자 조선업계가 부유식 구조물 설계·건조 기술을 앞세워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나선 것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부유식 데이터센터(FDC)와 관련 전력 인프라 기술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FDC는 육상 건물 대신 바다나 강 위에 부유식 구조물을 띄우고 내부에 서버와 전력·냉각 설비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태국 방콕에서 열린 ‘가스텍 2026’에서 자체 개발한 60MW급 FDC 모델을 글로벌 시장에 처음 공개했다. 해상에서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고 바닷물을 냉각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미국선급협회(ABS)로부터 60MW급 설계에 대한 기본인증(AiP)도 확보했다. 특히 발전 방식과 서버 종류, 데이터센터 용량을 고객 요구와 설치 환경에 맞게 구성할 수 있도록 모듈화 설계를 적용했다. 다만 구체적인 상용화 시점은 정하지 않았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현재 협의가 진행 중인 사항에 대해서는 밝히기 어렵다”며 “FDC는 시장 수요와 고객사 요구에 맞춰 상용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중공업은 상용화 시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잡았다. 지난 4월 ABS와 영국 로이드선급(LR)으로부터 자체 개발한 50MW급 FDC에 대한 기본인증을 받았으며, 미국 현지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전력·자동화 기업 등과 사업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조선소에서 설계와 제작, 주요 장비 통합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을 활용해 기존 육상 데이터센터보다 구축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그리스 선사와 영국 로이드선급, 미국 AI 서버 전문기업 등으로 협력 범위를 넓혔다. 협력 분야에는 신규 프로젝트 발굴과 경제성 검토, 해상 환경에서의 AI 서버 운용 검증 등이 포함됐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50MW급 FDC의 상용화 목표는 2028년 2분기”라고 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해상 AI 서버 운용 검증의 구체적인 단계와 실제 기술 검증 과정에서 확인된 난제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HD한국조선해양도 지난 7월 글로벌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 슈나이더일렉트릭과 FDC 인프라 기술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데이터센터의 전력·냉각 인프라와 HD한국조선해양의 해상 플랫폼 기술을 결합해 FDC 통합 설계 역량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AI 시대가 되면서 데이터센터 확보 수요가 커지고 해상 데이터센터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며 “선박 건조 역량을 기반으로 FDC 개발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조선사가 FDC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배경에는 기존 사업과의 기술적 연관성이 있다. 해상 구조물을 안정적으로 띄우는 선체 설계부터 전력설비 통합, 복원성 확보와 안전관리까지 상당 부분이 조선·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이미 축적해온 기술과 맞닿아 있다. 반면 실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악천후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해상 전력망을 구축해야 하고, 파도와 진동, 염분과 습도로부터 고가의 IT 서버를 장기간 보호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해저 통신망 연결과 유지보수 비용, 국가별 해상 인허가 등도 넘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HD현대는 데이터센터 자체뿐 아니라 전력을 공급하는 ‘바다 위 발전소’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달 자체 힘센엔진을 활용한 100MW급 부유식 발전설비(BMPP)에 대해 ABS 기본인증을 확보했다. BMPP는 발전엔진을 해상 구조물에 설치해 전력을 생산한 뒤 대규모 데이터센터나 산업단지 등에 공급하는 설비다. FDC가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육상 데이터센터가 안고 있는 전력과 부지, 냉각 문제를 일부 보완할 수 있어서다. 대규모 육상 부지를 새로 확보하지 않아도 되고, 해수를 냉각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발전설비까지 함께 구축할 경우 육상 전력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거론된다. 다만 아직 국내 조선사들의 FDC 사업은 기본인증과 기술개발, 사업화 검토 단계에 있다. 한화오션은 시장 수요에 맞춰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인 반면 삼성중공업은 2028년 2분기를 상용화 목표 시점으로 제시하는 등 업체별 사업 추진 속도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실제 수주와 상업운전을 통해 구축비와 운영비, 유지보수 비용까지 포함한 경제성이 확인돼야 본격적인 시장 확대 여부도 판가름날 전망이다. 선박을 만들던 조선사의 사업 영역이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까지 넓어지는 가운데 ‘바다 위 데이터센터’가 실제 차세대 먹거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10-06 14: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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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이노베이트, AI 회의록 전문용어 오류 잡는다…EMNLP서 논문 채택
[경제일보] 롯데이노베이트가 기업 회의에서 음성인식 오류로 잘못 기록된 전문용어를 인공지능(AI) 요약 단계에서 복원하는 기술 연구를 공개했다. 음성인식 모델을 다시 학습하는 대신 회의 맥락에 맞는 용어집을 활용해 오류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기업별 업무 용어와 고유명사가 정확하게 기록돼야 하는 AI 회의록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롯데이노베이트는 자사의 AI 기술팀이 수행한 관련 연구 논문이 자연어처리 분야 국제학술대회인 'EMNLP 2026' 인더스트리 트랙에 채택됐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 제목은 '회의 요약 과정에서 사용자 맞춤형 용어집을 활용해 음성인식 오류 전문용어를 복원하는 조건과 요약 품질 평가 연구'로 김기환 담당자를 비롯해 임형준, 정윤서, 박희용, 정창현, 마승희, 박주혜, 김정환 등 롯데이노베이트 AI 기술팀 담당자들이 참여했다. EMNLP는 ACL, NAACL과 함께 자연어처리 분야의 주요 국제학술대회로 꼽히며, EMNLP의 인더스트리 트랙은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자연어처리·음성 기술의 개발과 적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방안 등을 평가한다. 이번 논문은 기업 회의에서 발생하는 음성인식 오류를 실제 업무 맥락에 맞춰 보완하는 방법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산업 현장 적용 가능성을 다뤘다. 기업 회의에는 산업·직무별 전문용어뿐 아니라 프로젝트명, 제품명, 조직명, 시스템명 등 고유명사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꼽힌다. 음성인식(STT) 과정에서 이들 용어가 잘못 기록되면 회의록과 요약문에서 핵심 정보가 왜곡되거나 누락될 수 있다. 특히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업무를 배분하거나 후속 조치를 진행하는 기업 환경에서는 용어 오류가 정보 전달의 정확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롯데이노베이트 연구진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TT 모델을 별도로 재학습하는 대신, 회의와 업무 맥락에 맞춘 용어집을 요약 프롬프트에 제공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음성인식 결과에 오류가 있더라도 요약 단계에서 관련 용어 정보를 참고해 전문용어를 복원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롯데이노베이트에 따르면 연구진이 회의별 전문용어 주석을 활용해 실험한 결과, 회의 맥락에 맞춘 용어집이 광범위한 도메인·통합 용어집보다 전문용어 복원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성이 낮은 용어를 많이 포함할수록 성능이 떨어지는 경향도 확인했다. 용어 정보를 무조건 많이 제공하기보다 해당 회의에서 실제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용어를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전문용어 복원과 요약 결과의 전반적인 품질을 구분해 평가했다는 점이다. 잘못 인식된 단어를 정확한 표기로 바꾸는 것과 회의의 핵심 내용을 유용하게 요약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가 복원되더라도 요약문 전체의 정확성이나 활용도가 반드시 함께 높아지는 것은 아닌 만큼, 두 요소를 나눠 평가하는 접근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이번 연구 결과가 롯데이노베이트의 AI 플랫폼 '아이멤버 워크'의 AI 회의록 기능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의 범위로 좁힌 용어집을 이용해 음성인식 과정에서 훼손된 전문용어를 요약문의 키워드 항목 등에 정확한 표기로 반영하면 기업 업무에 필요한 정보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전망이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이번 연구를 통해 기업 환경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AI 품질 문제를 분석하고, 기존 음성인식 모델을 유지하면서 요약 단계에서 오류를 보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향후 연구 결과가 실제 서비스에 적용돼 전문용어 오류를 얼마나 줄이고 요약 품질을 개선할 수 있을지가 기술의 실효성을 가늠할 기준이 될 전망이다. 논문 제1저자인 김기환 롯데이노베이트 AI 기술팀 담당자는 "기업 회의에서는 전문용어와 고유명사가 의사결정 및 업무 실행의 핵심 정보로 작용하는 만큼, 이를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는 회의별 맥락을 반영한 용어 정보가 음성인식 오류로 인한 전문용어 훼손을 보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본 것"이라고 말했다.
2026-09-29 17: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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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대신 여행가방…전통도 시대를 따라야 한다
[경제일보] 형식에 매달려 본질을 놓쳐선 안 돼…조상 공경과 가족애라는 가치는 지키되 시대착오적 관습은 과감히 바꿔야 명절의 풍경이 달라졌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추석 연휴가 시작되면 전국의 도로는 고향으로 향하는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집집마다 차례상을 준비하고 전을 부쳤으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명절의 당연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공항 출국장은 여행객으로 넘쳐나고 호텔과 리조트는 일찌감치 예약이 끝난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대신 여행가방을 챙겨 가족과 휴식을 떠나는 사람들이 낯설지 않다. ‘민족의 대이동’이 ‘가족의 휴식 여행’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통이 무너지고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효와 경로의식이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조상과 고향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40년 넘게 우리 사회의 변화를 지켜본 필자의 눈에는 이 현상을 단순한 ‘전통의 붕괴’로만 규정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물어야 한다. 전통은 지켜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전통은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생활문화다. 따라서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다면 전통의 모습도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농경사회와 대가족을 바탕으로 형성된 명절 풍습을 핵가족과 맞벌이, 1인 가구가 늘어난 오늘날에도 과거와 똑같이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명절은 오랜 기간 누군가의 희생 위에 유지돼 왔다.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주로 여성들의 몫이었다. 장거리 귀성에 따른 교통체증과 비용 부담도 컸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결혼, 출산, 취업, 재산 문제를 캐묻다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족을 만나 위로받아야 할 명절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되어버린 이유다. 여기서 형식과 본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이 중요한가, 아니면 차례상에 몇 가지 음식을 올렸느냐가 중요한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중요한가, 아니면 정해진 날에 반드시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형식이 중요한가. 답은 어렵지 않다. 형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일 뿐이다. 그릇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바꾸면 된다. 차례상을 간소화한다고 조상을 덜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차례를 생략한다고 효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가족이 함께 여행을 떠나 자연을 거닐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것 역시 가족애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부모와 자녀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절이 지켜야 할 본질에 가깝다. 물론 변화라는 이름으로 모든 전통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전통에는 한 세대의 경험과 기억이 축적돼 있다. 조상을 기억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가족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정신은 지켜야 한다. 다만 그 정신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과거와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차례를 간소화하고 가족 구성원이 번갈아 준비할 수도 있다.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가족사진을 펼쳐놓고 조상의 삶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고향을 찾기 어렵다면 전화나 영상통화로 부모와 친지의 안부를 묻는 것도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의식의 형태가 아니라 그 의식에 담긴 마음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역시 그렇게 변화해왔다. 한복은 시대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졌고 음식은 새로운 식재료와 조리법을 받아들이며 발전했다. 전통음악도 새로운 장르와 결합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유독 명절 문화만 수십 년 전의 틀에 묶어둘 이유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가 전통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전통은 강요한다고 계승되지 않는다. 의미를 느끼고 공감할 때 이어진다. 젊은 세대가 명절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면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을 모른다”고 탓하기에 앞서 왜 그렇게 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명절이 가족에게 의무와 스트레스로 기억된다면 전통은 다음 세대에서 끊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명절이 가족과 함께 웃고 쉬며 서로를 격려하는 시간으로 기억된다면 그것 자체가 새로운 전통이 된다. ‘차례상 대신 여행가방’은 그래서 전통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형식 중심의 전통에서 가치 중심의 전통으로 이동하는 사회 변화의 한 단면일 수 있다. 물론 고향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가족도 소중하다.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나름의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장소도, 음식도, 의식의 형식도 아니다. 가족이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존중하느냐가 핵심이다. 40년 전과 지금의 가족은 다르다. 사는 곳도, 일하는 방식도, 가족의 규모도 달라졌다. 그렇다면 문화 역시 변해야 한다.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이 전통을 지키는 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사람을 위해 전통이 존재해야지, 전통을 위해 사람이 희생돼서는 안 된다. 전통은 과거에 머물러 있을 때 박제가 된다. 시대와 함께 변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낡은 형식은 과감히 덜어내되 조상 공경과 가족애라는 소중한 가치는 더욱 단단하게 이어가야 한다. 이번 명절에도 누군가는 차례상 앞에 앉고, 누군가는 여행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어느 쪽도 전통의 배신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가족이 서로를 생각하고 존중하며 함께하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절의 본뜻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의 모습을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과거의 가치가 오늘의 삶에서도 살아 숨 쉬도록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2026-09-27 15: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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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 동력 잃은 여당, 당청의 수직적 관성에서 벗어나야
정권의 위기는 대개 야당의 공세 때문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는데도 이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고도 제때 고치지 못할 때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에 이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사의를 표명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낙마한 장관 후보자가 5명에 이르면서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재점검 필요성이 제기됐고, 강 실장은 인사위원장으로서 종합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사의를 밝혔다. 문제는 책임자의 사퇴 그 자체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됐는지, 그리고 집권 여당이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김민석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출범 때부터 ‘당청 원팀’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대통령실과의 관계 복원에 무게를 두면서 전임 지도부와는 다른 당정 관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당정 간 긴장을 낮추고 국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원팀’이 ‘무비판적 일체화’로 변질될 때다. 집권 여당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는 대통령실의 박수부대가 되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되 잘못된 판단에는 제동을 걸고, 국민이 느끼는 불만을 가감 없이 전달하며, 야당과의 협상에서 국정의 출구를 만드는 것이 여당의 본령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대통령실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건전한 긴장 관계를 제도화하는 일이다. 대통령실이 인사 후보자를 검토할 때 여당이 정무적 검증을 하고 청문회 이전에 민심의 반응을 냉정하게 점검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인사청문회가 시작된 뒤 새로운 의혹이 쏟아지고 후보자가 낙마한 뒤 책임자를 찾는 방식으로는 국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집권 중반기에는 여당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대통령의 지지와 국정 추진력이 당을 이끌지만 중반기에 접어들면 여당이 독자적인 정치력을 갖고 민심과 국정을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여당이 대통령실의 판단을 사후적으로 설명하거나 방어하는 데 머물면 당정 관계는 수직적으로 굳어진다. 대통령실이 정책을 만들고 여당이 국회에서 관철하는 구조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효율적인 당정 관계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견제 기능이 약화된 상태다. 최근 부동산과 증시 정책을 둘러싼 민심 이반과 인사 논란, 여권 내부의 갈등은 여당이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김 대표 취임 이후 당정 관계가 진전됐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핵심 지지층의 약화와 여권 내부 갈등, 중도층과의 거리 등도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신호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야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특히 인사와 사법, 경제정책처럼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사안에서는 야당과의 협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넓히는 정치가 필요하다. 협치는 약한 여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여당이 하는 것이다. 물론 야당 역시 무조건적인 반대와 정쟁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집권 여당이 먼저 협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여야가 서로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지 않는 순간 국회는 법안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정치적 진영 대결의 경기장이 되고 만다. 김민석 대표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과 가까운 당 대표가 되는 것과 대통령에게 필요한 말을 하는 당 대표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통령의 성공이 곧 여당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여당이 오히려 강한 여당이다. 이번 인사 파동을 몇몇 후보자의 개인적 흠결이나 비서실장의 책임 문제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 인사 추천·검증·정무 판단·당정 협의가 따로 움직이는 구조부터 손봐야 한다. 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에 상시적인 인사·정책 협의 채널을 만들고, 여당 지도부가 민심과 국회의 판단을 대통령실에 정례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당 내부에서도 계파와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는 토론 구조를 복원해야 한다. 여당이 국민 전체를 바라보지 않고 자기 진영의 박수에만 의존하기 시작하면 국정 운영은 현실과 멀어진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반대 의견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정권 중반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쇄신의 기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 몇 명을 바꾸는 인적 쇄신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고 여당이 국정의 공동 책임자이자 민심의 전달자, 야당과의 협상자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원팀’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조직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조직이다. 김민석 대표가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려면 대통령실의 방패가 아니라 국정의 균형추가 돼야 한다. 그것이 집권 중반기 여당이 쇄신의 동력을 되찾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2026-09-23 16: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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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컴, 2나노 모바일 AP '투톱'…스마트폰 AI 등급 나눈다
[경제일보] 퀄컴이 2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적용한 플래그십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2종을 공개했다. 하나의 최상위 칩으로 대응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성능과 가격대가 다른 두 제품을 공급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을 세분화하려는 전략이다. 퀄컴 테크날러지스는 22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에서 개막한 ‘스냅드래곤 서밋 2026’에서 ‘스냅드래곤 8 엘리트 익스트림 6세대’와 ‘스냅드래곤 8 엘리트 6세대’를 발표했다. 최상위 제품인 익스트림 모델은 퀄컴 자체 설계 오라이온 중앙처리장치(CPU)의 최고 동작 속도가 모바일 CPU 최초로 5㎓에 도달했다. 퀄컴은 전작보다 CPU 성능은 13%, 아드레노 그래픽처리장치(GPU) 성능은 44% 향상됐으며 GPU 전력 효율도 40%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AI 연산을 담당하는 헥사곤 신경망처리장치(NPU)는 성능이 35%, 전력당 성능은 최대 33% 높아졌다. 저전력 센싱 허브 성능도 최대 85% 개선해 사용자의 맥락과 이용 습관을 기기 안에서 학습하는 기능을 강화했다. 핵심 방향은 이용자의 명령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한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틱 AI’다. 데이터 일부를 기기 안에서 처리해 응답 속도와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다만 해당 기능은 일부 안드로이드 버전에서 지원되며 실제 구현 범위는 스마트폰 제조사의 운영체제와 AI 모델, 애플리케이션 연동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게임에는 AI 전용 GPU 코어인 아드레노 매트릭스 코어와 ‘아드레노 뉴럴 퓨전’을 적용했다. 초고해상도 변환과 프레임 생성, 이미지 복원 작업을 AI가 분담해 화질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카메라는 APV(고급 전문 비디오)와 인텔리전트 픽셀 컨트롤을 지원한다. 익스트림 모델은 8K·초당 60프레임과 4K·초당 240프레임 촬영, 6400만화소 카메라 3대 동시 처리를 지원한다. 일반형인 스냅드래곤 8 엘리트 6세대도 5㎓ 오라이온 CPU를 탑재한다. 퀄컴 기준 전작 대비 CPU 성능은 10%, GPU 성능은 35%, NPU 성능은 14% 향상됐다. CPU 전력 효율은 37%, GPU 효율은 40% 개선됐다고 회사는 밝혔다. 두 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은 아너·아이쿠·모토로라·원플러스·오포·레드미·레드매직·비보·샤오미 등을 통해 수주 안에 출시될 예정이다. 퀄컴이 제시한 성능 개선치는 자체 기준인 만큼 지속 성능과 발열, 배터리 사용시간은 실제 완제품에서 확인해야 한다.
2026-09-23 0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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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보고서 통과 이틀 만에 사퇴…인사검증은 어디서 멈췄나
[경제일보] 국회가 적격이라고 보고서를 채택한 후보자가 이틀 뒤 물러났다. 대통령은 그사이 인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자의 자질을 둘러싼 공방은 끝났지만, 그를 지명하고 검증했던 과정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커졌다. 청와대와 국회가 차례로 후보자를 살폈는데도 임명 직전까지 적격성을 둘러싼 판단이 달라졌다면 어느 단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자진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지명한 지 20일 만이다. 앞서 13일 물러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이번 개각에서 두 번째 낙마자다. 장관 후보자 6명 가운데 2명이 임명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특히 김 후보자의 사퇴에 이르는 과정은 인사검증 절차를 되짚어볼 중요한 사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5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고 이틀 뒤인 17일 적격 의견의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퇴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청문 과정에서 상당 부분 소명됐다며 보고서 채택을 주도했다. 18일 이 대통령은 임명 여부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후보자는 사퇴했다. 적격 보고서 채택과 후보자 사퇴가 이틀 간격으로 이어졌다. 보고서 채택이 대통령의 임명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판단과 인사권자의 최종 결정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이번처럼 짧은 시간에 결론이 달라진 경우에는 그 사이 새롭게 확인된 정보가 있었는지, 기존 자료를 다시 평가한 것인지 구분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 김 후보자의 전직 보좌진이 추가 의혹을 담은 탄원서를 17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탄원서 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 후보자는 사퇴가 새로운 의혹 때문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탄원서가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보의 인지 시점과 처리 경로다. 새로운 자료가 접수됐다면 언제 누구에게 전달됐고 어떤 추가 확인을 거쳤는가. 기존에 파악한 사안이었다면 최초의 적격성 판단과 최종 판단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경위를 알아야 이번 사례를 제도 개선의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용혜인 전 후보자 사례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용 전 후보자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을 겸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논란이 이어진 끝에 청문회 전에 물러났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허용된다. 쟁점은 법률상 가능 여부와 별개로, 후보자의 의원직 유지 의향과 그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지명 전에 충분히 확인했느냐는 것이었다. 앞서 청와대는 용 전 후보자의 겸직 의사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검증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 자체가 누락됐는지가 문제다. 의향을 파악하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판단의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후보자의 사퇴는 같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드러낸 과제는 다르다. 용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지명 전에 무엇을 물었는지가 중요하다. 김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그 정보를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한 정보 누락과 정보를 확보한 뒤의 판단 차이를 모두 '검증 부실'이라는 말로 묶어버리면 정작 고쳐야 할 절차를 찾기 어려워진다. 인사검증의 핵심은 흠결을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확인한 정보를 적격성 판단으로 연결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남기는 데 있다. 대통령의 인사는 추천에서 시작한다. 후보군을 발굴하고 경력과 전문성을 살피는 과정이다. 이어 검증 단계에서는 재산과 세금, 범죄경력 등 법정 제출사항을 포함해 해당 직책과 관련된 이해충돌 가능성과 과거 행적을 확인한다. 최종 지명에서는 전문성과 정책 방향, 검증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인사청문회는 그 결정에 대해 국회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별도의 절차다. 실제로 인사청문회법 제5조는 국회에 제출하는 임명동의안 등에 경력과 재산, 세금 납부 실적, 범죄경력 등에 관한 증빙서류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검증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임명권자 또는 지명권자가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각 단계의 기능은 분명하지만 실제 인선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추천 단계에서 우려가 제기됐는데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검증 조직이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적격성 판단 과정에서 중요도가 낮게 평가됐을 수도 있다. 지명 당시에는 없던 정보가 청문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이번 사례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대통령이 18일 인사 시스템 재점검을 언급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나름의 시스템과 노력이 있었지만 추가로 발견되는 문제도 있고, 정부의 판단과 다른 판단이 제기되기도 한다며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부족함을 인정했다. 재점검의 범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추천의 문제였다면 후보 발굴과 평판 확인 절차를 살펴봐야 한다. 검증에서 정보를 놓쳤다면 자료 수집과 교차확인 방식이 대상이다. 이미 알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적용한 적격성 기준과 최종 판단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청문회 이후 새로운 문제가 나왔다면 정보가 접수돼 인사권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경로가 쟁점이다. 책임을 따지기 전에 판단의 경위를 복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인사검증 조직이 모든 의혹을 사전에 찾아낼 수는 없다. 수사기관과 같은 조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의 경계도 지켜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이유로 후보자를 무조건 배제한다면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검증을 강화한다는 말이 모든 후보자에 대한 무제한 조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확인된 사실과 미확인 의혹, 법률상 결격 사유와 정치적·윤리적 판단을 구분하는 기준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국회 청문 절차의 역할도 돌아볼 대목이 있다. 여당은 정부의 인사를 뒷받침하려 하고 야당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려는 정치적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의혹이 소명됐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의힘은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의견 차이 자체가 청문 절차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청문보고서에 확인된 사실과 다투는 의혹,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구분해 남기면 대통령의 최종 판단에도 더 명확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정부가 선택한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이지, 청와대가 해야 할 사전 판단을 대신하는 자리는 아니다. 반대로 사전 검증을 마쳤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두 절차가 서로의 책임을 넘겨받는 관계가 아니라 판단을 보완하는 관계가 되려면, 무엇이 언제 확인됐고 어떤 결론을 거쳤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이루어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뜻이다. 인사에서도 준비란 서류를 빠짐없이 모으는 행정 절차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누가 판단하고 그 근거를 어디에 남길 것인지까지 정해두는 일이다. 후보자 두 명이 사퇴한 뒤 후임을 찾는 일과 이번 인선 과정을 되짚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다음 후보자를 지명한다고 앞선 인사에서 어떤 정보가 누락됐는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검증 담당자를 바꾸더라도 적격성 판단의 기준과 기록 방식이 그대로라면 같은 질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이번 개각이 남긴 물음은 김승원과 용혜인이라는 두 이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추천자는 무엇을 보고 후보자를 올렸는가. 검증 조직은 어떤 사실을 확인했는가. 인사권자는 무엇을 근거로 지명을 결정했는가. 청문회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면 새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 인사검증의 신뢰는 후보자가 물러난 뒤 누가 잘못했는지 다투는 것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추천부터 최종 판단까지 무엇을 알고 어떻게 결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개선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지 이틀 만에 후보자가 사퇴한 이번 사례는 그 기록과 설명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26-09-21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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