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6건
-
-
①16년째 결론 못 낸 '증도가자'…재검증도 '끝낼 날짜' 없다
[경제일보] 고려 금속활자 ‘증도가자(證道歌字)’를 둘러싼 국가유산 지정 논란이 16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처음 공개된 뒤 국가유산 지정 신청과 여러 차례 조사를 거쳐 2017년 보물 지정이 부결됐지만 당시 조사와 심의 과정은 이후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전국에 흩어진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한꺼번에 모아 다시 조사할 계획이다. 9일 본지가 확보한 국가유산청의 「‘증도가자’ 일괄공모를 통한 조사·지정 계획(안) 보고」에는 16년간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을 다시 검증하기 위한 전국 단위 조사 계획이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9월 일괄공모를 시작해 기초조사와 과학·인문조사, 종합평가를 거쳐 국가유산 지정 여부를 다시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조사를 언제까지 마치고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일정은 담기지 않았다. 증도가자가 공개된 지 16년, 국가유산 지정 절차가 시작된 지도 15년이 흘렀다. 2017년 한 차례 결론을 냈지만 그 판단 과정까지 다시 검증대에 올랐다. 국가유산청이 새로운 방식의 재조사를 택한 만큼 이번에는 조사 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결과에 따른 지정 판단까지 이어지는 시간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직지보다 최소 138년 앞선 시기 증도가자는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다. 현재 전하는 증도가는 고려 고종 때인 1239년 목판으로 찍은 책이다. 책에는 앞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을 바탕으로 목판을 다시 새겼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다. 문제의 활자가 당시 증도가를 찍는 데 사용된 금속활자로 확인되면 제작 시기는 1239년 이전으로 올라간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찍힌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선다.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으로 남아 있다면 증도가자는 당시 사용한 금속활자 실물을 놓고 진위와 제작 시기를 따지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증도가자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0년이다. 이듬해 다보성 측이 소장한 활자 101점에 대한 국가유산 지정 절차가 시작됐다. 첫 판단은 6년 뒤인 2017년에 나왔다. 문화재위원회는 당시 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을 부결했다. 글씨체와 활자의 제작 방식, 책을 찍을 수 있도록 활자를 배열하는 ‘조판’ 등을 검토했지만 해당 활자를 증도가 인쇄에 사용한 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출처와 소장 경위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고 관련성이 거론된 청동 수반과 초두를 함께 비교하지 못한 점도 부결 사유에 포함됐다. ◆ 부결 뒤에도 이어진 문제 제기…결국 다시 감사대로 2017년 부결 이후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다보성갤러리 김종춘 회장은 당시 조사와 심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관련 자료와 연구 결과를 모아 재검증을 요구했다. 2023년 감사원에 감사제보가 접수됐고 감사원은 지난해 이 사안을 국가유산청으로 넘겼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1월 자체감사를 실시해 2월 결과를 통보했다. 자체감사는 2017년 결론 자체보다 그 결론을 만드는 데 사용된 조사 방법과 심의자료를 다시 들여다봤다. 활자가 실제 책을 찍는 데 맞는 크기였는지를 판단한 방법, 비교자료의 수치가 보고서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문화재위원들이 추가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는지 등이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 관련 문서에는 당시 문화재위원회 보고자료를 놓고 ‘왜곡 설명(치수 차이 등)’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비교자료인 석보상절 활자본과 번각본 사이의 광곽 수축 수치가 분석보고서에서 빠졌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가유산청은 감사 과정에서 새로 적용된 통계 분석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다시 분석했다. 2017년 검증 방식에 대한 지적과 이를 다시 살피는 과정에서 사용된 분석 방법을 둘러싼 반론이 맞선 것이다. 이후 국가유산청은 특정 소장품만 따로 살피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국에 있는 증도가자 계열 활자를 한꺼번에 모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한 차례 내린 판단의 과정까지 다시 감사하고 조사 방식을 새로 짰다는 점은 이번 재검증의 성격을 보여준다. 과거 논쟁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16년 동안 이어진 진위와 지정 논란을 정리하는 절차로 이어져야 한다는 요구도 여기서 나온다. ◆ 김종춘 회장이 이어온 16년…다시 열린 국가 검증 증도가자가 다시 국가 차원의 검증 대상에 오르기까지 다보성 갤러리 김종춘 회장의 문제 제기도 계속됐다. 2011년 지정 절차가 시작된 뒤 첫 판단까지 6년을 기다렸고 2017년 부결 이후에는 당시 검증 방식과 심의자료를 다시 살펴달라고 요구했다. 관련 자료를 모으고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재검증 요구를 이어갔다. 한 차례 끝났던 증도가자 문제는 감사원 제보와 국정감사를 거쳐 국가유산청 자체감사로 이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이제 기존 소장품뿐 아니라 전국의 후보 활자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증도가자가 처음 공개된 지 16년 만에 조사 방식 자체를 바꾼 재검증이 추진되는 것이다. 김 회장 측은 이번 재검증만큼은 장기간 이어지지 않고 조사 결과에 따른 지정 판단까지 신속하게 마무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6년 동안 문제를 제기해 국가가 다시 검증에 나서는 단계까지 온 만큼 또다시 수년을 조사와 검토에 쓰는 방식으로는 논란을 끝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회장이 이어온 16년의 노력에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응답도 결국 시간과 맞닿아 있다. 원하는 결론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검증을 서둘러 마치고 역사적 가치가 확인되면 보물 지정 절차까지 지체 없이 이어가는 것이다. 또다시 긴 기다림을 요구한다면 재검증을 결정한 의미도 작아진다. ◆ ‘조사·지정 계획’ 세웠지만 종료 일정은 빠져 국가유산청의 계획안을 보면 새 조사 방식은 과거보다 구체적이다. 국내에 있는 증도가자 계열 금속활자를 공개 모집한 뒤 공모된 유물에 같은 조사 기준을 적용한다. 국가유산청은 개별 유물 단위 조사만으로 객관적인 검증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내용도 계획안에 담았다. 과학조사에서는 금속 성분과 미세조직, 주조와 가공 흔적 등을 살핀다. 서지·문헌 조사에서는 글씨체와 제작기법, 실제 인쇄된 책과 활자의 관계를 비교한다. 어느 한 분야의 분석 결과만으로 판단하지 않고 여러 조사 결과를 대조하는 방식이다. 진행 순서도 마련했다. 일괄공모를 거쳐 기초조사와 지정조사, 종합평가를 한 뒤 국가유산 지정 문제를 검토한다. 공모 시점은 올해 9월로 잡았다. 문서 제목도 단순한 조사 계획이 아니라 ‘조사·지정 계획’이다. 조사 결과를 국가유산 지정 검토까지 연결하겠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 이에 비해 공모 이후 일정은 비어 있다. 기초조사를 언제 시작하고 과학조사와 전문가 검토를 언제까지 마칠지, 종합평가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어느 시점에 진행할지는 계획안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최종 판단 목표 시점도 제시하지 않았다. 법정 절차를 지키면서도 전체 기간을 줄일 방법은 있다. 공모가 진행되는 동안 조사 기준과 전문가 구성을 확정하고 분석기관의 일정을 잡는 한편 기존 조사자료를 미리 정리할 수 있다. 과학조사와 서지·문헌 조사도 서로 선후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함께 진행하면 검증 기간을 줄일 수 있다. 현행 규정은 지정예고 뒤 6개월 안에 지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시한을 두고 있다. 법정 절차 자체보다 공모 이후 각 조사와 심의를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얼마나 병행하느냐가 전체 기간을 좌우하는 셈이다. 16년간 이어진 논란을 다시 수년간 끌지 않으려면 국가유산청의 조사 운영과 일정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 국가유산청은 조사할 대상과 방법을 정했고 9월 일괄공모라는 출발점도 잡았다. ‘조사·지정 계획’에 정작 빠진 것은 종료 시점이다. 16년째 이어진 증도가자 논란을 이번 절차에서 마무리하려면 조사 시작뿐 아니라 조사 완료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최종 판단의 목표 시점까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 16년 만의 전면 재조사…관건은 속도와 결론 증도가자는 이제 막 검증을 시작하는 유물이 아니다. 2010년 공개됐고 2011년 국가유산 지정 절차에 들어갔다. 2017년 보물 지정이 부결된 뒤 그 판단 과정까지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국정감사와 자체감사까지 거쳐 이제 전국 단위 재조사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 축적된 조사자료와 연구 결과도 있다. 이번 일괄공모를 통해 새로운 비교 대상이 확보되면 기존 자료와 함께 검토할 여건도 마련된다. 과학조사와 인문·서지학 조사를 함께 진행하고 조사 단계마다 다음 절차를 준비한다면 전체 기간을 줄일 여지도 있다. 국가유산청이 이번 재검증을 16년 논란을 정리하는 절차로 가져가려면 시작 일정만큼 완료 목표도 중요하다. 조사 결과 역사적 가치가 확인될 경우 국가유산위원회 심의와 보물 지정 판단까지 이어지는 절차가 다시 장기간 늘어지지 않도록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2011년 시작된 지정 절차에서 첫 결론을 내리는 데 6년이 걸렸다. 그 결론을 만드는 과정은 다시 감사 대상에 올랐다. 이제 국가유산청은 새로운 조사 방식까지 마련했다. 남은 과제는 이미 시작하기로 한 재검증을 얼마나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지정 판단까지 이어가느냐다. 국가유산청은 올해 9월 일괄공모를 시작점으로 잡고 조사 대상과 방법, 진행 절차까지 마련했다. 남은 것은 종료 시점이다. 조사 완료와 국가유산위원회 심의, 최종 판단을 언제까지 마칠지에 대한 일정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16년을 이어온 증도가자 논란에서 또다시 시작 일정만 내놓고 끝을 기약하지 않는 방식은 반복돼서는 안 된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10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10 06:00:00
-
-
-
"다채로운 꿈을 밝히고, 우정의 다리를 놓다" 국제 중국어의 날 행사, 서울랜드서 개최
[경제일보] 18일 한어교(汉语桥) 서울센터가 주최한 ‘유엔 국제 중국어의 날’ 기념 행사가 경기도 과천시 서울랜드 베네치아 무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이날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됐으며 국내외 귀빈 50여 명과 학생·학부모 약 500명, 일반 시민 3000여 명이 참여해 현장은 활발한 교류와 열기로 가득 찼다. 국제 중국어의 날은 유엔이 다언어 사용 촉진과 문화 다양성 존중을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이번 행사는 중국어 학습과 문화 체험을 결합해 중국어의 국제적 가치와 문화적 깊이, 시대적 활력을 동시에 조명했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보다 폭넓게 이해하고 한중 간 교육·문화 교류를 확대하는 개방형 플랫폼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개막식에는 다이빙(戴兵) 주한 중국대사, 대한불교 태고종 총무원장 상진(常真) 법사, 경제일보·아주일보 양규현 사장, 조직위원회 이정은 대표 등 한중 양국의 정·재계 및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정은 대표는 개막사에서 “국제 중국어의 날은 언어와 문화를 통해 상호 이해를 넓히고 교류를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더 많은 청소년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중국어와 중국 문화의 매력을 접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이빙 대사는 축사에서 “한국 내 다양한 교육기관과 학술단체가 국제 중국어의 날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며 “이번 행사는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그 의미를 더욱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자의 상형적 아름다움과 운율을 체험하고 이름을 직접 써보는 과정을 통해 언어의 재미와 삶의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며 “중국어를 매개로 이해와 우정이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중 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오랜 교류를 이어온 관계”라며 “이러한 행사가 상호 이해를 심화하고 우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양규현 사장은 “중국어의 날은 특정 언어를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 문명의 지혜를 공유하는 세계 시민의 축제”라며 “언어와 문화 체험을 통해 형성된 공감이 한중 우호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중국석유국제사업유한공사와 한국법인 대표 주뢰(朱磊)의 지원 속에 진행됐으며, 은련국제 한국법인 조진흥 부대표와 서울랜드 신상철 대표도 후원에 참여했다. 현장에서는 고쟁과 비파 연주, 사자춤과 변검 공연 등 전통 문화 공연이 펼쳐졌고, 경극 가면 만들기, 중국 매듭 공예, ‘마법 한자’ 체험, 한자 이름 쓰기, 페이스 페인팅 등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행사장은 내내 높은 호응을 보였다. 특히 이번 행사는 기존 실내 중심 운영에서 벗어나 서울랜드라는 개방형 공간에서 처음 개최돼 접근성과 대중성을 크게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한편 유엔 국제 중국어의 날은 2010년 유엔 공보국(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국)이 제정한 기념일로, 다언어 사용과 문화 다양성 증진, 유엔 6개 공식 언어의 균형 있는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같은 해 중국은 전통 절기 ‘곡우(谷雨)’를 기념일로 제안했으며 이는 한자의 창시자로 알려진 창힐(仓颉)을 기리기 위한 취지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서예와 문화 체험 등 다양한 기념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2026-04-19 17:34:24
-
텍스트 너머의 시대, 미디어의 새 판 (上)
대한민국은 은(銀)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광산에서 캐내는 은의 양은 연간 수 킬로그램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 주요 은 수출국 중 하나다. 연간 약 2,000톤의 은을 생산해 대부분을 해외로 내보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답은 고려아연이라는 기업에 있다. 이 회사는 아연과 납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은을 추출한다. 원광석을 수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로 가공해, 전혀 다른 금속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은 광산 하나 없이 은 수출국이 된 역설이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전량을 수입한다. 그러나 정제유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국가 수출 상위권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세계 최대 수준의 단일 정제 능력을 보유한 정유산업 덕분이다. 원자재를 사다가, 더 정교하게 만들어, 더 비싸게 판다. 이 패턴은 산업에만 있지 않다. 재가공, 문화가 된 생존 전략 K팝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전통 음악에서 출발한 장르가 아니다. 1990년대 미국의 R&B, 팝, 힙합이 원소스였다. 그런데 지금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K팝은 그것과 전혀 다른 무언가다.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 극도로 완성된 퍼포먼스, 독자적인 팬덤 문화가 더해지면서 원본을 뛰어넘는 새로운 상품이 탄생했다. 치킨도 같은 이야기다.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 음식이다. 그러나 양념치킨, 간장치킨, 파닭으로 변주된 한국의 치킨은 지금 전 세계에서 독자적인 음식 문화로 인정받는다. 김밥의 형태가 일본 노리마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오늘날 누가 기억하는가. 재가공의 완성도가 원본과의 관계를 지워버린 것이다. 종교는 더 흥미로운 사례다. 기독교는 서양 선교사가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메가처치, 새벽기도, 열정적 전도 문화를 만들어내며 서양의 원형과도, 다른 아시아 국가의 형태와도 다른 독자적 종교 문화로 진화했다. 불교 역시 인도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닿는 동안 한국만의 선불교 문화로 재탄생했다. 우연이 아니다 — 지정학이 만든 DNA 이 패턴들을 하나의 도식으로 묶을 수 있다. 외부의 원소스를 받아들이고, 고도의 가공을 거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보낸다. 은도, 석유도, 음악도, 음식도, 종교도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가. 재가공은 어느 나라도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의 재가공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됐는가. 답은 지정학에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근현대에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생존해왔다. 자원도 없고, 거대한 내수시장도 없으며, 독자적인 기술 원천을 개발할 여유도 부족했다. 재가공의 퀄리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절박함이 완성도를 만든 것이다. 고려아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도, 한국 정유사가 세계 최대의 단일 정제 능력을 갖추게 된 것도, K팝이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통하게 된 것도 모두 같은 논리의 반복이다. 그런데, 지금 이 능력이 막히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재가공이라는 생존 전략이 새로운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물질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콘텐츠와 문화의 영역에서는 점점 좁아지는 통로를 마주하고 있다. 저작권이다. 과거에는 미국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치킨 레시피를 변형해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데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 체계는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콘텐츠의 재가공은 이제 법적 리스크와 함께 시작된다. 수천 년을 이어온 한국의 재가공 DNA가 20세기에 설계된 법적 프레임 앞에서 멈춰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 프레임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텍스트 너머의 시대, 미디어의 새 판 (下)에서 계속
2026-04-18 17: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