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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대법관이 조희대에게 남긴 불편한 말
[경제일보] 퇴임하는 대법관이 대법원장 앞에서 법원을 질타했다. 6년 임기를 마친 이흥구 대법관은 7일 퇴임식에서 12·3 비상계엄 이후 대법원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에게 법원의 입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말해야 할 때 제대로 말하지 못하면 결국 말할 기회마저 잃게 된다는 취지의 말도 남겼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이 대법관은 정치권에도 날을 세웠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 등 이른바 ‘사법 3법’의 입법 과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동시에 불공정하거나 충실하지 못한 재판, 당사자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재판,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재판에 쌓인 국민의 불신도 거론했다. 정치권의 사법부 압박만으로 지금의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조 대법원장에게는 정치권을 향한 비판보다 법원을 향한 이 말이 더 쓰릴 수 있다. 사법부 독립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법관에게 재판받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헌법 원칙이다. 대법원장에게 주어진 권한도 결국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에서 출발한다. 12·3 비상계엄 당시 조 대법원장은 말을 아꼈다. 계엄이 해제된 다음 날 아침 계엄 선포 과정의 법적 문제에 대해 절차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고 탄핵 사유에 관한 질문에도 즉답하지 않았다. 사법부가 본연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이 뒤따랐다. 당시 대법원장에게 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미리 결론 내리라는 요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회에 군 병력이 들어가고 국민의 기본권이 위협받던 밤이었다. 헌법 질서와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사법부의 책무라는 원칙을 밝히는 데 재판 결과를 기다릴 이유는 없었다. 이흥구 대법관은 법복을 벗는 날 당시 대법원의 대응을 다시 꺼냈다.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대법원의 움직임은 빨랐다. 사건은 2025년 3월 28일 대법원에 접수됐고 4월 22일 소부에 배당된 당일 조 대법원장의 결정으로 전원합의체에 넘겨졌다. 이날 첫 합의가 열렸고 이틀 뒤 두 번째 합의를 거쳐 5월 1일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접수부터 선고까지 34일이었다. 신속한 재판은 국민의 권리다. 공직선거법 사건에는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법원의 설명도 있었다. 실제 전원합의체 내부에서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의견과 신속성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맞섰다. 문제는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유력 후보의 재판을 이 정도 속도로 끝내면서 국민의 의문까지 충분히 풀어줬느냐는 데 있다. 판결문에 법리를 적는 것과 재판 과정에 쏠린 의문을 설명하는 것은 같지 않다. 어떤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올리고 언제 심리해 언제 선고할지는 대법원이 정한다. 더구나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둔 후보자의 정치적 운명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법원의 판단이 정치적 해석에 휘말릴 가능성이 큰 만큼 과정에 대한 설명도 그만큼 중요했다. 대법관 인선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행사가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노태악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퇴임했지만 후임 제청은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은 후보추천위원회 추천 이후 반년 넘게 지나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후임으로 제청했다. 이흥구 대법관 후임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같은 날 제청했다. 제청 과정은 그동안의 방식과 달랐다.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대면 제청해 온 관행과 달리 청와대와 최종 조율을 마치지 않은 채 후보자를 서면으로 제청했다.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주지만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두고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어느 한 헌법기관이 대법관 인사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권한을 나눠놓은 것이다. 청와대는 손봉기 후보자에 대해 재제청을 요구했다. 이흥구 대법관까지 퇴임하면서 현재 대법관 두 자리가 비었다. 재판 지연 해소를 내걸고 취임한 조 대법원장 체제에서 정작 대법원의 재판을 담당할 대법관 두 명이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헌법상 제청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다는 말만으로 끝낼 수 없는 대목이다. 권한을 행사했다면 그 뒤 대법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도 사법부 수장의 책임 영역에 들어간다. 조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장이면서 전국 법원의 사법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대법관 공석이 길어진 문제에서 조 대법원장을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다. 비상계엄 당시 대법원은 말을 아꼈다. 이재명 사건에서는 34일 만에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관 인선에서는 후임 제청이 수개월 늦어졌고 기존 관행과 다른 서면 제청 이후 두 자리 공석까지 이어졌다. 서로 다른 세 사건이지만 그 중심에는 모두 조희대 대법원장의 판단이 있었다. 물론 각각의 판단에는 법원이 내놓을 설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보는 것은 개별 사건에 붙은 해명만이 아니다. 법원이 언제 침묵했고 언제 빠르게 움직였는지, 사법부 수장이 자신의 권한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고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함께 본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그런 과정이 쌓여 만들어진다. 조 대법원장은 정치권을 향해 사법독립을 강조해 왔다. 정치권이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면 사법부 수장이 막아서는 것은 당연하다.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이 재판 독립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 문제 역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사법독립을 말하는 목소리와 자신의 권한 행사를 돌아보는 무게가 같았는지는 별개의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이흥구 대법관의 퇴임사가 예사롭지 않다. 정치권에서 조 대법원장을 겨냥해 던진 말이 아니다. 6년 동안 같은 대법원에서 재판하고 전원합의체에 앉았던 대법관이 법복을 벗는 날 남긴 말이다. 정치권의 사법부 흔들기를 비판하면서도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책임까지 외면하지 않았다. 대법원장은 사법독립을 지키는 자리다. 동시에 그 이름으로 행사한 권한의 결과를 짊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조희대 대법원에서는 사법독립을 말할 때마다 권한은 앞에 섰지만 책임은 좀처럼 같은 크기로 따라오지 않았다. 떠나는 대법관이 마지막 날 그 불편한 대목을 건드렸다. 조희대에게 부족했던 것은 사법독립을 말할 권한이 아니었다. 그 권한에 걸맞은 책임이었다.
2026-09-08 09:19:09
조희대 대법원장, 이제 거취로 답할 때다
[경제일보] 노태악 대법관 후임 후보는 지난 1월 21일 이미 4명으로 압축됐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추려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넘겼다. 조 대법원장이 한 사람을 골라 제청하면 되는 단계였다. 그런데 제청은 이뤄지지 않았다. 노 대법관은 후임 없이 3월 3일 퇴임했다. 조 대법원장은 당시 기자들에게 대통령실과 협의하고 있다며 제청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뒤에도 대법관 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다. 조 대법원장은 8월 18일에야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새 대법관 후보로 제청했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후보가 압축된 지 209일 만이다. 이번에는 방식도 달랐다. 대통령실과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처럼 대통령을 직접 찾아 제청하지도 않고 서면으로 후보를 올렸다. 3월에는 대통령실과 협의하고 있어 제청이 늦어진다고 했다. 8월에는 그 협의 없이 제청했다. 협의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대법관 자리를 다섯 달 넘게 비워둔 이유부터 설명해야 한다. 헌법 제104조는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대통령과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누구를 제청할지는 대법원장의 권한이고 그 권한을 제때 행사할 책임도 대법원장에게 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헌법은 권한을 나눠놨다. 대법원장은 제청하고 대통령은 임명하며 국회는 동의 여부를 판단한다. 헌법이 권한을 나눈 것은 의견이 다를 때 책임까지 미루라는 뜻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을 내세워도 달라질 것은 없다.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제청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과 의견이 다르다면 대법원장이 자신의 판단대로 후보를 제청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된다. 그것이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독자적인 제청권을 준 취지다. 조 대법원장은 후보가 추려진 뒤에도 결정을 미뤘다. 그러다 이흥구 대법관의 9월 7일 퇴임이 다가오자 두 명을 한꺼번에 제청했다. 국회 인사청문과 임명동의 절차를 감안하면 대법관 두 자리의 동시 공석 가능성까지 만들어졌다. 재판 지연을 줄이겠다던 대법원이 정작 최고법원의 구성조차 제때 갖추지 못했다. 후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법이 막은 것도 아니다. 제청권자가 결정을 미뤘다. 그 결과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논란이 대법관 인사에서 처음 나타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재판의 속도와 전원합의체 운영을 두고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은 소부에 배당된 당일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회부 9일 만에 파기환송됐다. 대법원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속도였다. 김건희씨 사건에서는 반대의 장면이 나왔다. 소부가 두 차례 선고기일까지 잡았는데 두 번째 선고를 하루 앞두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한 사건에서는 전에 없던 속도를 냈고 다른 사건에서는 잡아놓은 선고가 멈췄다. 사건마다 적용 법리와 사실관계는 다르다. 그렇다고 최고법원의 절차와 시간까지 아무런 설명 없이 달라져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대법원이 사건마다 다른 속도와 방식을 택했다면 그 차이를 국민이 납득할 만큼 설명했어야 했다. 이번 대법관 인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대통령실과 협의 중이라며 시간을 끌다가 다섯 달이 지나자 협의 없이 제청했다. 재판에서 불거졌던 기준과 설명의 부재가 대법관 인사에서도 이어졌다. 법원은 국민에게 절차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기관이다. 제출기한을 넘기면 책임을 묻고 법이 정한 절차를 어기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법원의 최고 책임자라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때부터 더 엄격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판결문만 쓰는 자리가 아니다. 전국 법원을 이끌고 대법관을 제청하며 사법행정 전체를 책임지는 헌법기관의 장이다. 대법원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일도 대법원장의 몫이다. 그런 자리에서 대법관 한 자리를 다섯 달 넘게 비워뒀다. 제청 지연 이유로 대통령실과의 협의를 들었지만 마지막에는 그 협의 없이 후보를 올렸다. 사법부 수장에게 요구되는 일관성과 책임 있는 판단을 보여줬다고 하기 어렵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3월 한국 사법부의 신뢰도가 미국보다 높다는 국제조사 결과를 거론했다. 사법 신뢰를 숫자로 말할 때가 아니었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이 거듭되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 먼저다. 재판의 속도에서 시작된 논란은 전원합의체 운영을 거쳐 대법관 인사까지 이어졌다. 기준에 대한 의문은 쌓였고 이를 풀어줄 설명은 부족했다. 이제 개별 사건의 판단 차이로 넘길 단계는 지났다. 대법원장이 사법 신뢰를 지키기는커녕 불신의 중심에 섰다면 임기를 채우는 것이 책임은 아니다. 대법원장의 자리가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가 아니라 사법부 신뢰를 갉아먹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사법부의 권위는 대법원장이 자리를 지킨다고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이 대법원의 판단과 절차를 믿을 때 유지된다. 그 신뢰를 흔든 책임은 사법부 수장이 져야 한다. 사법부를 지키려면 조희대 대법원장이 물러나야 한다.
2026-08-19 10:27:57
조희대 대법원장, 이제 물러나야 한다
[경제일보] 대법원의 판결은 언제든 비판받을 수 있다. 법률 해석에는 견해가 갈리고 다수의견이 훗날 판례 변경으로 뒤집히기도 한다. 그러나 최고법원이 재판하는 방식 때문에 공정성을 의심받기 시작하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이 다시 그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법원은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수수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하루 앞둔 23일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대법원 2부는 당초 16일 선고를 잡았다가 24일로 한 차례 미뤘고, 두 번째 선고를 하루 남겨두고 다시 선고기일을 없앴다. 선고기일은 기록 검토와 대법관 합의가 상당 부분 진행돼 판결을 선고할 단계에서 잡는다. 그런 사건이 두 차례 선고 날짜까지 정한 뒤 두 번째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법조계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행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불과 1년여 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는 정반대 장면이 펼쳐졌다. 이 대통령의 사건이 2025년 4월 22일 대법원 2부에 배당되자 조 대법원장은 같은 날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다. 전원합의체는 바로 그날 합의에 들어갔고 5월 1일 서울고법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 회부에서 선고까지 9일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형사사건을 전에 보기 어려운 속도로 처리하면서 법원 안팎에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반대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대법관 사이의 설득과 숙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위사실공표죄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기존 판례 적용을 놓고도 적지 않은 쟁점이 있었다. 그런 사건을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은 전원합의체는 9일 만에 처리했다. 당시 논란의 핵심에는 재판 속도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최고법원이 왜 그토록 서둘렀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법원이 정치 일정에 영향을 주는 모습으로 비치면서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과 재판의 공정성까지 도마에 올랐다. 조 대법원장은 그 후폭풍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겪었다. 자신이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고 자신이 재판장을 맡았다. 그런 논란을 겪었다면 이후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는 재판 절차부터 더욱 신중하게 운영했어야 했다. 그런데 1년여 만에 또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을 소부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로 가져가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이번에는 김건희씨 사건에서 소부가 두 차례 선고기일을 정하고도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돌렸다. 한쪽에서는 재판 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렸고 다른 쪽에서는 선고 직전까지 간 사건의 방향을 마지막 순간에 바꿨다. 너무 빨랐던 재판과 너무 늦게 방향을 튼 재판이다. 두 장면 모두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서 벌어졌다. 법률가는 절차의 무게를 안다. 재판은 결과 못지않게 절차를 통해 신뢰를 얻는다. 법원은 실제로 공정해야 하고 국민의 눈에도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대법원의 권위도 여기에서 나온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당사자의 이름에 따라 재판의 속도와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최고법원의 판결을 떠받친다. 조희대 체제의 가장 무거운 책임은 그 믿음을 흔들었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는 왜 저토록 서두르느냐는 의심을 샀다. 김건희씨 상고심에서는 왜 두 차례 선고일을 잡고도 마지막 순간에 멈추느냐는 의심을 불렀다.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국민에게 남긴 결과는 같았다. 대법원의 재판이 사건과 사람에 따라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다. 최고법원에 대한 이런 의심은 판결 하나의 논란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법원이 누구에게나 같은 법과 절차를 적용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흔들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미 정치적 중립성과 사법 신뢰를 둘러싼 거센 논란을 겪었다. 그 뒤 1년여가 흘렀지만 이번에는 김건희씨 상고심의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 회부라는 또 다른 논란을 만들었다. 정치적 대형 사건에서 이례적인 절차가 거듭되고 있다. 이제 개별 재판의 문제가 아니라 대법원 운영의 문제로 봐야 한다.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장이자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사법부의 수장이다. 조 대법원장은 그동안 사법 독립을 강조해 왔다. 그 원칙이 국민을 설득하려면 법원부터 정치적 의심을 자초하지 않아야 한다. 외부의 압력을 막는 것과 함께 재판의 공정성을 국민에게 믿게 만드는 일도 사법부 수장의 몫이다. 지금 대법원에서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이 바로 그 믿음이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한 차례 사법부를 정치적 논란 한가운데 세웠고 김건희씨 상고심에서는 또 다른 이례적 절차로 같은 불신을 불러왔다. 대법원장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공정과 신뢰가 조희대 체제에서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대법원장의 임기를 보장한 취지는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을 지키라는 데 있다. 임기 보장이 대법원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책임을 미룰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대법원장의 자리가 사법부 신뢰 회복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면 책임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는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이제 물러나야 한다.
2026-07-25 06:00:00
李 때는 9일 속도전, 金은 선고 전날 전합…'예외 재판' 반복한 조희대, 이제 거취 답해야
[경제일보] 대법원이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수수 혐의 사건을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대법원 2부가 두 차례나 선고 날짜를 잡았던 사건이다. 첫 선고를 미룬 데 이어 두 번째 선고를 하루 앞두고 재판의 틀까지 바꿨다. 대법원은 23일 “전원합의체 회부를 위해 선고기일을 변경·추정했다”고 밝혔다. 새 선고 날짜는 잡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부가 선고기일을 정했다는 것은 적어도 사건 심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뜻이다. 그런 사건을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돌린 이유를 대법원은 설명하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서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을 둘러싼 이례적 재판 진행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불과 1년여 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에서는 지금과 정반대 방향으로 대법원의 시간이 흘렀다. ◆ 李 사건은 배당 당일 전합…조희대가 직접 회부 이 대통령 사건은 2025년 4월 22일 대법원 2부에 배당됐다. 조 대법원장은 같은 날 대법관들의 의견을 들은 뒤 사건을 직접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도록 지정했다. 통상 주심 대법관의 의견에 따라 전원합의체 회부가 검토되는 것과 달리 대법원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그날 오후 곧바로 첫 합의를 열었다. 이틀 뒤 다시 대법관들이 모였다. 4월 29일 선고기일을 알렸고 5월 1일 이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 회부에서 선고까지 9일이었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형사사건을 전에 보기 어려운 속도로 처리하면서 사법부가 정치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셌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속도에 대한 이견이 나왔다. 반대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충분한 설득과 숙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속한 재판도 중요하지만 속도 때문에 재판의 충실성이 훼손되면 사법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취지였다. 대법관 사이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기존 판례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정치인의 발언은 일부 표현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 맥락과 일반 선거인이 받아들이는 의미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적용 문제가 쟁점이었다. 그런 논란에도 조 대법원장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재명 사건은 조희대 대법원이 선택한 재판 방식이었다. 소부 배당 당일 대법원장이 직접 전원합의체로 가져가 당일부터 합의를 시작했고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 ‘숙고 부족’ 비판 받고도 1년 만에 또 이례적 절차 당시 논란은 판결 내용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에 최고법원이 왜 그토록 서둘렀는지, 통상적인 전원합의체 운영과 다른 속도를 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사법부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조 대법원장에게는 뼈아픈 경험이었어야 했다. 대법원이 정치적 대형 사건을 처리할 때에는 판결 결과 못지않게 절차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판결이 법리적으로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의심을 자초하면 법원의 권위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번 김건희 사건에서는 정반대 형태의 예외가 나왔다. 대법원 2부는 당초 16일 선고를 잡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 1심 판결이 나온 뒤 김건희 특검팀이 판결문 검토를 요청하자 24일로 선고를 한 차례 미뤘다. 8일을 더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선고를 불과 하루 앞두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새 선고기일도 정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시간이 없다는 듯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선고 직전까지 간 사건을 다시 돌렸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통상적인 재판 진행에서 벗어난 선택이라는 점이다. ◆ 정치적 사건마다 왜 ‘예외’인가 대법원은 법 적용의 마지막 기준을 세우는 곳이다.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리면 이를 정리하고 국민에게 어떤 법리가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곳도 대법원이다. 그런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이례적인 재판 절차를 반복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는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소부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김건희 사건에서는 소부가 두 차례 선고 날짜를 잡고도 마지막 순간에 전원합의체로 돌아갔다. 국민의 눈에는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빠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게 방향을 바꾼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에서 직접 선택한 절차는 이미 사법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대법원의 재판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최고법원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도마에 올랐다. 그런 논란을 겪은 뒤라면 적어도 같은 종류의 의심을 다시 불러올 재판 운영은 피했어야 했다. 그런데 김건희 사건에서 다시 ‘이례적’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번의 예외는 판단일 수 있다. 예외가 반복되면 운영 방식이 된다. 조희대 대법원이 지금 직면한 문제도 여기에 있다. ◆ 사법부 신뢰 흔들어 놓고 대법원장 자리만 지킬 수 있나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정치권이 재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내세웠다. 그 원칙이 힘을 가지려면 법원부터 정치적 의심을 살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특히 대법원장은 일반 재판장이 아니다. 대법원을 대표하고 사법행정을 총괄하며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는다. 이 대통령 사건은 조 대법원장이 직접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돼 있다. 김건희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에서 조 대법원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진다. 대법원 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도 조 대법원장에게 있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 초고속 재판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김건희 사건에서는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 회부라는 또 다른 예외를 만들었다면 사법부 수장은 그 반복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법부 수장의 책임은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판이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대법원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그 믿음을 흔드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지키는 것은 책임지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이 대통령 사건에서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이번에는 왜 두 차례 선고일을 잡은 사건을 하루 전에 다시 돌려세웠는지 의문이 더해졌다. 조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전에 보기 어려운 절차를 택하면서도 그 기준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대법원장직을 계속 수행할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자리는 법원의 권위를 등에 업고 버티는 자리가 아니다. 판결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판 절차를 둘러싼 의심과 불신을 반복해서 키우고 있다면 책임은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 한 번 흔들린 사법 신뢰가 김건희 사건을 거치며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두 번의 이례적인 재판 진행 한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이 있다.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도 재판 운영의 기준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제 조 대법원장이 책임질 차례다. 그 책임은 거취에서 시작해야 한다.
2026-07-24 16: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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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합법적 겸직'보다 무거운 공직의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