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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가 늘 때 재정규율을 세워야 한다
[경제일보] 한국 경제가 모처럼 성장률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3.3%, 내년을 2.9%로 전망했다. 정부도 내년 국세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개선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국가재정의 앞날을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증가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반면 정부는 반도체 호황 등에 따른 세수 증가를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올해 51.6%에서 내년 48.3%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GDP 대비 3.9%에서 0.1%로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재정건전성 지표가 개선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내년 국세수입이 정부 예상대로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거나 대외 여건이 악화하면 세수 전망부터 달라질 수 있다. 경기 호황에 기대어 개선되는 재정과 제도적으로 건전성을 확보한 재정은 구분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과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생산성 둔화는 잠재성장률을 압박하고 있다. 올해 성장률이 높아졌다고 장기 성장능력까지 회복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연금과 의료·돌봄 등 고령화 관련 지출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가채무의 부담도 단순히 채무 총액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경제 규모에 비해 얼마나 빠르게 증가하는지, 세수로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충분한지, 국채 만기가 돌아왔을 때 어떤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과거 낮은 금리로 발행한 국채를 더 높은 금리로 차환하면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국채가 당장 높은 금리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만기 구조와 시장금리, 경제성장률에 따라 부담은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재정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견딜 여력이 있느냐다. 정치권은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재정 확대를 요구한다. 경기침체기에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필요한 역할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지출도 무조건 낭비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경기 대응을 명분으로 시작한 사업이 효과 검증 없이 유지되거나, 선거를 앞두고 재원 마련 방안이 불분명한 공약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재정지출의 필요성과 효과, 지속 가능성을 따지는 절차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밀려서는 안 된다. 국가재정은 어느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금은 국민이 부담하고 국채는 미래의 재정 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지출하는 돈이 생산성을 높이고 미래의 세수 기반을 넓힌다면 다음 세대에도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효과가 불분명한 지출을 빚으로 충당한다면 미래세대의 선택지는 그만큼 좁아진다. 따라서 국가채무를 무조건 줄이는 것만이 책임 있는 재정은 아니다. 빚을 내더라도 무엇에 쓰는지, 그 지출이 어떤 경제적·사회적 편익을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에 중장기 관리 기준을 두되 경기침체와 재난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예외를 허용한다면 적용 조건과 기간, 정상적인 재정 운용으로 복귀할 계획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정부가 필요한 돈을 쓰지 못하도록 손발을 묶는 장치가 아니다. 평상시에 재정 여력을 확보해 위기가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약속이다. 지출 구조조정도 숫자를 맞추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성과가 낮은 보조금과 중복 사업, 정책 목적을 달성했는데도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예산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반면 취약계층의 생계와 기본적인 사회안전망까지 일률적으로 삭감해서는 안 된다. 지출의 성격과 효과를 구분하는 것이 재정개혁의 출발점이다. 절감한 재원은 미래 성장 기반을 넓히는 데 우선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 로봇, 우주항공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과 인재양성, 전력망과 산업 인프라에 장기간 투자해야 한다.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초연구와 공공 기반시설에 정부가 역할을 집중하고 사업화와 시장 경쟁은 기업의 창의성과 자본을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미래산업 지원에도 성과 검증은 예외일 수 없다. 첨단산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모든 사업에 예산을 배정할 이유는 없다. 지원의 필요성과 민간투자 유발 효과, 중복 여부를 따져야 한다.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과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재정개혁을 추진하기 좋은 시기다. 정부 전망대로 세수가 크게 늘고 재정수지가 개선된다면 그 성과의 일부를 중장기 재정위험을 줄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경기가 나쁠 때는 지출을 줄이기 어렵고, 경기가 좋을 때는 지출을 늘리자는 요구가 커진다. 이런 정치적 유혹을 제어하지 못하면 재정건전성은 경기의 부침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도 달라져야 한다. 국민에게 무엇을 더 지원할 것인지 설명하는 일만큼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기존의 어떤 사업을 정비할 것인지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 여야가 재정준칙과 중장기 지출 개혁을 놓고 책임 있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은 오늘의 경제를 지탱하면서 내일의 성장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어느 한쪽을 포기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관자>에는 “양입이출(量入而出)”, 들어오는 것을 헤아려 지출한다는 뜻의 말이 전해진다. 국가재정을 가계부처럼 단순하게 운영할 수는 없지만, 재원의 한계를 고려하고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경제는 지금 반도체 호황이라는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특정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세수가 늘 때 재정규율을 세우고, 성장의 과실을 미래 경쟁력과 재정 여력으로 연결해야 한다. 정치가 재정으로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다만 그 성과를 다음 선거의 득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경제적 기반으로 평가받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재정의 책임은 돈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그 지출이 무엇을 남겼느냐에서 드러난다.
2026-10-08 11: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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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700원, 이제는 인상률보다 제도 개혁을 논할 때다
[경제일보]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3.7% 오른 시간당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처음으로 1만 원대 중반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는 상징성은 있지만, 정작 결정 과정과 결과는 또다시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만 확인시켰다. 법정 시한을 넘긴 밤샘 협상과 막판 표결, 노사 양측의 극한 대립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됐다. 사용자 측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호소하고, 노동계는 "실질임금 삭감"이라며 반발한다. 누구도 결과를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은 현행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웅변한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근로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제도라도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경우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고금리와 내수 부진, 소비 위축이라는 복합 불황 속에 놓여 있다. 특히 골목상권의 편의점과 음식점, 숙박업, 미용업 등 영세 서비스업은 인건비 부담과 임대료, 원자재 가격 상승을 동시에 떠안으며 생존 자체를 걱정하는 처지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은 것은 제도의 실효성과 시장의 수용 능력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취약 업종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0%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법을 준수하고 싶어도 지급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영세 사업주를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저임금의 목적이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면, 그 제도가 오히려 일자리 축소와 폐업 증가를 초래하는 상황 또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장이 감당하지 못하는 임금은 결국 고용 감소와 근로시간 축소, 무인화 투자 확대라는 형태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피해는 결국 가장 보호받아야 할 취약계층 근로자에게 집중된다. 이제는 정치적 금기처럼 여겨졌던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현행 법률 역시 사업의 종류별로 최저임금을 달리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수도권 대기업과 지방 영세기업의 생산성은 물론 물가와 임금 수준, 지불 능력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동일한 기준을 전국 모든 업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보다 불균형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주요 선진국들도 지역이나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임금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차등 적용이 곧 노동자 차별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세 서비스업과 농림어업,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제도 설계가 오히려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획일적 평등보다 지속 가능한 공정이 더 중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 방식 역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의 결정 구조는 노·사·공익위원이 이해관계를 앞세워 줄다리기를 벌이는 정치적 협상 테이블에 가깝다. 객관적인 경제지표보다 협상력과 여론전이 결과를 좌우하는 구조에서는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제는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고용 여건, 중소기업의 지급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객관적인 산식을 마련하고,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인 심의체계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치적 흥정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결정 시스템만이 반복되는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최저임금 논쟁의 본질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근로자의 삶을 보호하면서도 기업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노동자 없는 기업도 없지만 기업 없는 일자리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은 결국 모두를 어렵게 만든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4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은 크게 달라졌지만 제도는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해마다 반복되는 인상률 논쟁을 넘어 시장 현실과 경제 여건을 반영한 제도 개혁에 나설 때다. 업종별·지역별 차등 적용, 객관적 산식에 기반한 결정 구조, 생산성과 지급 능력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삶을 지키고 자영업자의 생존을 보호하며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하는 길이다. 최저임금의 미래는 인상률이 아니라 제도의 신뢰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26-07-19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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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동산 시계,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경제일보] 서울 유권자는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5선을 허락했지만 서울시의회 권력은 더불어민주당에 넘겼다. 시장은 국민의힘이 지켰고 예산과 조례의 문은 민주당이 쥐게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서울시정 전반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건설부동산 시장에는 더 직접적인 신호로 읽힌다. 앞으로 4년 서울의 재개발·재건축과 도심 개발, 청년 주거정책은 속도보다 설득을 먼저 요구받게 됐다.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민주당은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118석 가운데 80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73석과 비례대표 7석이다. 전체 의석의 67.8%에 이른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30석과 비례대표 8석을 합쳐 38석을 얻었다. 2022년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이 주도했던 서울시의회 권력 지형이 4년 만에 뒤집혔다. 오 시장 입장에서는 복잡한 결과다. 개인적으로는 5선에 성공했다. 서울시장 선거만 놓고 보면 정치적 생명력을 다시 입증했다. 그러나 시정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예산과 조례의 관문은 야당 다수 의회가 쥐게 됐다. 시장 선거의 승리와 시정 운영의 안정성이 반드시 같은 말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선거가 보여줬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시장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울시장은 도시계획과 인허가의 큰 방향을 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사업은 예산과 조례, 도시계획 관련 의회 논의와 맞물려 간다. 정비사업 규제 완화, 역세권 개발, 공공기여, 임대주택 비율, 청년 주거 지원, 기반시설 부담 같은 사안은 어느 하나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 어렵다. 시장의 추진력과 의회의 동의가 맞물려야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한다. 오 시장은 그동안 서울의 개발 시계를 다시 빠르게 돌리겠다는 메시지를 내왔다. 재개발·재건축 정상화, 한강변 도시경쟁력 강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세운지구 정비, 청년안심주택 확대 등이 그 흐름 안에 있다. 국민의힘이 다수를 차지했던 제11대 서울시의회는 오 시장의 역점 사업 추진에 비교적 우호적인 의회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 시의회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사업의 필요성과 속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재정 부담, 공공성, 주민 수용성, 도시 경관, 공급 효과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이미 비슷한 장면은 있었다. 오 시장은 2021년 보궐선거로 서울시에 복귀한 뒤 민주당이 우위였던 시의회와 여러 차례 충돌했다. 지천르네상스 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서울의 지천을 생활권 수변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당시 시의회는 기본 구상과 시급성을 문제 삼았다. 상생주택 사업도 예산 삭감 논란을 겪었다. 민간 토지를 활용해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지만 당시 시의회는 사업 절차와 재정 투입의 적정성을 문제 삼았다. 의회 문턱을 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갈등은 앞으로의 예고편에 가깝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개발과 보존, 공급과 공공성, 속도와 절차 사이에서 움직인다. 시장은 공급 확대와 도시 경쟁력을 앞세우고 의회는 예산과 절차, 공공성을 따진다. 어느 한쪽만 옳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대형 개발사업일수록 정치적 동의 없이 오래 가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업성이 높아도 설명이 부족하면 논란이 커지고 공공성이 강조돼도 현실성이 떨어지면 현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새 시의회 출범 이후 가장 먼저 주목할 곳은 세운4구역이다. 종묘 인근 세운4구역 개발은 서울 도심 재편의 상징적 사업이다. 낡은 도심을 정비하고 업무·상업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반면 종묘 경관과 역사문화 보전 문제도 가볍게 다룰 수 없다. 이 사안은 개발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도심의 노후 공간을 어떻게 바꾸되 역사적 경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새 시의회가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고 가면 해법은 멀어진다. 서울시도 사업성만 앞세우는 방식으로는 동의를 얻기 어렵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역시 서울 부동산 시장의 핵심 변수다. 용산은 서울의 마지막 대규모 개발지로 불린다. 국제업무 기능과 주택 공급, 교통 인프라, 공공기여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공급 물량을 얼마나 늘릴 것인지, 학교와 도로 등 기반시설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개발 이익을 어디까지 공공에 환원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숫자 경쟁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서울시가 도시 경쟁력을 말한다면 시의회는 생활 기반과 공공성을 따질 것이다. 이 둘을 조정하지 못하면 용산 개발은 다시 정치적 논란의 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주택 공급의 핵심은 결국 정비사업이다. 노후 주거지를 정비하지 않고 서울의 주택난을 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비사업에는 집값 상승 기대와 세입자 보호, 임대주택 확보, 공사비 부담, 조합 갈등이 동시에 따라붙는다. 오 시장이 정비사업 활성화를 강조할수록 민주당 시의회는 공공성과 주거 안정 장치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이 생산적인 견제가 되면 정책은 정교해진다. 반대로 정치적 충돌로 흐르면 공급 일정만 늦어진다. 청년안심주택도 새 시의회의 검증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는 부정하기 어렵다. 문제는 재원과 공급 방식, 보증금 지원의 안전성이다. 주거 취약층을 위한 정책일수록 더 정밀해야 한다. 실제 수혜자가 누구인지, 임대료 부담은 얼마나 낮아지는지, 민간사업자와 공공의 부담은 어떻게 나뉘는지 따져야 한다. 청년 주거정책은 선의만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지속 가능한 재원과 집행의 투명성이 따라야 한다. 민주당 시의회의 책임도 작지 않다. 의석이 많다는 것은 제동을 걸 권한이 커졌다는 뜻만은 아니다.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도 함께 커졌다는 의미다.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은 이미 시민 생활의 압박으로 돌아오고 있다. 전세와 월세 부담, 청년 주거 불안, 노후 주거지의 안전 문제는 정당의 유불리보다 앞선다. 다수 의회가 견제라는 이름으로 모든 개발사업을 막아선다면 시민은 이를 균형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삭감과 반대만으로는 다수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오 시장도 달라져야 한다. 5선 시장의 경험은 강점이지만 동시에 부담이다. 오래 시정을 이끌었다는 것은 더 많은 성과를 요구받는다는 뜻이다. 서울 부동산 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일정과 숫자, 재원과 인허가로 평가된다. 재건축 규제 완화와 도심 개발은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성의 언어가 빠지면 의회의 벽을 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발표가 아니라 설득이고 속도전이 아니라 조율이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정치적 신호에 민감하다. 시의회 구도가 바뀌었다고 당장 사업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 인허가와 예산, 조례 논의가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만으로도 시장은 반응한다. 개발 기대가 큰 지역은 속도 조절 가능성을 따질 것이고 정비사업장은 공공기여와 임대주택 비율, 기반시설 부담 논의를 더 예민하게 볼 것이다. 정치의 변화는 결국 현장의 비용과 시간으로 이어진다. 이번 선거의 서울 민심은 한쪽에 백지위임을 한 것이 아니다. 오 시장에게는 계속 일할 기회를 줬고 민주당 시의회에는 견제의 힘을 실었다. 이 선택은 불편한 동거를 뜻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에서 불편한 동거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면 정책은 더 정교해지고 잘못 작동하면 사업은 늦어지며 시민 부담은 커진다. 서울시정의 첫 시험대는 부동산이다. 세운4구역과 용산국제업무지구, 재개발·재건축, 청년안심주택은 모두 서울의 미래와 시민의 주거비를 동시에 건드리는 사안이다. 시민이 보고 싶은 것은 승자의 목소리나 다수당의 힘자랑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주거 안정, 도시 경쟁력을 어떻게 함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다. 오 시장은 이겼지만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됐다. 민주당은 이겼지만 반대만으로는 평가받을 수 없게 됐다. 이번 선거가 남긴 메시지는 여기에 있다. 서울 부동산 시계는 이제 속도보다 설득의 시간이 왔다. 협치는 구호로 증명되지 않는다. 예산과 조례, 정비사업의 우선순위에서 증명된다. 서울의 다음 4년은 그 증명의 시간이다.
2026-06-06 13: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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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장밋빛 공약 남발…재원은 어디서
[경제일보] 6·3 지방선거가 21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판은 이제 공천의 시간에서 공약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다. 여야는 앞다퉈 지역 발전, 주거 안정, 교통 혁신, 청년 지원, 돌봄 확대를 말한다. 유권자 입장에서 공약 경쟁은 반가운 일이다. 정쟁보다 정책이 낫고 비방보다 비전이 낫다. 문제는 그 비전의 뿌리가 어디에 박혀 있느냐다. 돈이 없는 공약은 약속이 아니라 구호다. 재원 없는 복지는 지속될 수 없고 재정 검증 없는 개발은 다음 세대에게 넘기는 어음이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정당 10대 공약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5극3특’ 완성을 목표로 한 균형발전, 지방 핵심 산업 육성, AI·바이오·문화·방산 등 첨단산업 육성, RE100·기후위기 대응을 전면에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수도권 반값 전세, 월세 세액공제 확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청년 월세 지원 확대, 교통망 확충, 지역경제 부활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조국혁신당은 ‘99년 평생 안심 내 집’, 진보당은 버스 공영화, 개혁신당은 지방 규제 샌드박스 전결권 등을 앞세웠다. 방향만 놓고 보면 모두 그럴듯하다. 지역은 살아야 하고 청년은 머물러야 하며 주거비는 낮아져야 하고 교통망은 넓어져야 한다. 하지만 유권자가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얼마가 들고,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가.” 민주당의 균형발전과 지방산업 육성은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세제·재정 지원을 전제로 한다. 국민의힘의 반값 전세와 청년 월세 지원 확대 역시 공공주택 공급, 임대 재원, 세액공제 확대에 따른 세수 감소를 동반한다. 도시철도 조기 완공, 재건축 규제 완화, 청년 자산형성, 돌봄 확대, 공공임대 장기 거주, 버스 공영화 가운데 돈 들지 않는 공약은 거의 없다. 공약집에는 ‘추진’과 ‘확대’와 ‘완성’이 넘치지만 정작 재원 조달표는 빈칸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공약 경쟁은 뜨겁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반려동물 입양 지원금과 권역별 동물복지 거점 확대 등을 담은 ‘반려가족 행복수도 서울’을 제시했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 배차 간격을 2분으로 줄이고 강북횡단선·면목선 등 7개 도시철도 노선을 조기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생활 밀착형 공약과 교통 공약은 모두 시민의 체감도가 높다. 그러나 복지센터 신설도, 입양지원금도, 철도 조기 완공도 결국 예산 사업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조차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 하물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기초자치단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농어촌기본소득도 이번 지방선거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농어촌기본소득은 군 단위 인구감소지역 10곳에서 시범 추진 중이고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대상지를 5곳가량 늘릴 계획이다. 여당 소속 후보들은 확대를 주장하고 국민의힘 일부 기초단체장 후보들도 도입을 말한다. 기본소득의 취지가 농촌 소멸 대응과 지역 순환경제에 있다면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현금 지급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정책은 금세 선거용 상품권으로 변질된다. 농촌을 살릴 것인가, 표심을 살 것인가. 그 경계는 재원과 효과 검증에서 갈린다. 이미 현장에서는 현금성·무료화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창원시장 선거에서는 결혼식 비용 100만원, 산후조리원 비용 50만원, 운전면허 취득 비용 50만원 지원 공약이 나왔고, 마창대교 통행료 전면 무료화와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공약도 제시됐다. 창원시의 재정자립도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 연속 20%대에 머물렀고, 2024년 시 채무가 3656억원이다. 재워이 어디서 나올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지방재정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2026년 지방교부세 예산은 제1차 추경 기준 총 74조343억원이다. 보통교부세 66조2373억원, 특별교부세 2조485억원, 부동산교부세 4조6982억원, 소방안전교부세 1조503억원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지방정부 상당수가 자체 수입만으로 기본 행정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통교부세 자체가 지방세 등 수입으로 충당할 수 없는 부족분을 보전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2024년 결산 기준 전국 광역단체 본청 지방채무가 38조2971억원, 예산 대비 채무비율이 14.86%다. 전국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는 41.62%에 그쳤고, 17개 광역시·도 가운데 서울·세종·경기만 50%를 넘었다. 이런 재정 구조에서 수조원대 개발사업과 현금성 지원, 교통 무료화, 공공주택 확대를 동시에 약속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출 구조조정 없이 새 지출을 얹으면 채무가 늘고, 국비 확보만 외치면 중앙정부 의존이 커진다. 결국 부담은 주민 세금, 지방채, 미래 예산 삭감으로 돌아온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는 ‘무엇을 해주겠다’보다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미루고, 무엇으로 조달하겠다’를 물어야 한다. 후보도 솔직해야 한다. 국비 확보가 필요하면 어느 부처, 어느 사업, 어느 법적 근거로 확보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지방채를 발행한다면 상환 계획을 내야 한다. 민자사업이면 수익 보전 구조와 이용자 부담을 공개해야 한다. 기존 예산을 줄이겠다면 어떤 사업을 줄일 것인지 말해야 한다. 불필요한 예산을 줄이면 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불필요한 예산이 무엇인지 특정하지 못하면, 그것은 재원 대책이 아니라 수사에 불과하다. 정책 경쟁은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선거 때 후보들이 지역의 미래를 놓고 다투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공약은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납세자의 계약서여야 한다. 계약서에는 대가와 조건과 책임이 들어간다. 여야가 진정 지방을 살리고 민생을 돕겠다면, 이제 공약 발표장에 예산표를 함께 세워야 한다. 숫자 없는 약속은 공약(公約)이 아니라 공약(空約)이다. 지방선거 21일 전, 유권자가 들어야 할 말은 더 화려한 구호가 아니다. “재원은 여기서 마련하겠다”는 정직한 답이다.
2026-05-13 13: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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