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7건
-
기업이 기다리는 시간도 규제다
[경제일보] 정부가 규제와 인허가에 발이 묶인 7조9000억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앞당기기로 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전기차 생산라인 전환을 비롯해 청정수소, 이차전지, 첨단센서 등 현장에서 대기 중인 투자 프로젝트의 행정절차를 줄이는 것이 골자다.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따로 발주하던 전기·통신공사의 통합발주도 허용하기로 했다. 방향은 옳다. 정부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정책은 이미 투자할 의사가 있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을 걷어내는 일이다. 이번 대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이 현대차 울산공장이다. 현대차는 약 4조원을 들여 기존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자율주행 전기차 중심 공장으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사업계획 심의와 환경·교통·재해 영향평가, 건축·안전 관련 인허가 등을 거치면 행정절차에 3년 이상 걸릴 우려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와 울산시는 전담 프로젝트매니저(PM)를 두고 각종 영향평가와 인허가를 동시에 진행해 이를 1년 이내로 줄이겠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필요한 심사를 생략하지 않고도 1년 안에 처리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과 안전을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장을 빨리 짓겠다고 환경영향평가를 없애거나 산업안전 기준을 낮춰서는 안 된다. 주민의 재산권과 생활환경도 보호해야 한다. 이번 대책 역시 관련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절차를 동시에 진행하고 사전 컨설팅을 통해 시간을 줄이는 방식이다. 없애야 할 것은 안전장치가 아니라 행정의 군더더기다. 부처와 기관마다 비슷한 자료를 요구하고 앞 단계의 절차가 끝나야 다음 심사를 시작하는 관행이 있다면 이를 그대로 둘 이유가 없다. 행정기관끼리 협의할 일을 기업이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며 해결하도록 하는 것도 정상적인 행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규제의 비용은 행정수수료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기업에는 시간이 곧 비용이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배터리, 바이오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그렇다. 경쟁국 기업이 공장을 짓고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동안 국내 기업이 인허가를 기다리고 있다면 1~2년의 차이가 시장점유율을 바꿀 수 있다.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산업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세계 각국이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은 반도체와 AI, 배터리 등 전략산업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지원, 산업 인프라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한국은 애국심 때문에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 시장이 아니다. 인건비와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규제 그리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따져 투자처를 정한다. 한국이 경쟁해야 할 것도 결국 이런 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규제개혁의 성적표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는 출범할 때마다 규제혁신을 내걸었다. 폐지하거나 개선한 규제의 숫자를 성과로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에는 규제 몇 건을 없앴느냐보다 투자 결정에서 공장 가동까지 몇 달이 걸리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규제개혁의 성적표를 ‘폐지 건수’보다 ‘줄어든 투자 대기시간’으로 매겨보자는 것이다. 오래된 규제를 정기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장치도 필요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 공정한 시장질서를 지키는 규제는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 반면 기술과 산업구조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이해관계나 행정편의 때문에 남아 있는 규제라면 존치 이유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기업에 규제 철폐의 필요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부도 그 규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첨단산업의 기반시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기업이 지을 수 있지만 송전망과 용수망까지 기업 혼자 해결하기는 어렵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없다면 들어설 수 없다. 산업용지와 전력·용수·통신망, 연구개발 기반과 인재 공급은 개별 기업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곳에서 더 커져야 한다. 노동시장도 달라진 산업환경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제조업과 연구개발, 정보기술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른 만큼 노사 합의를 전제로 업종과 업무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 선택권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생산성과 직무의 가치를 보다 잘 반영하는 임금체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다만 노동 유연화가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기업의 인력 운용에 선택지를 넓혀준다면 실직과 전직 과정에서 노동자를 보호할 고용안전망과 재교육 체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유연성과 보호를 서로 반대편에 세워놓고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는 개혁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세제에서는 무엇보다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과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는 기업의 장기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지원 규모 못지않게 제도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도 중요하다.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생산시설을 짓는 기업이라면 몇 년 뒤 투자환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어떤 기업과 기술이 성공할지를 대신 결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장과 기업가의 몫이다. 정부는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운동장을 만들고 민간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기반시설과 기초 연구개발을 책임하는 데 집중하면 된다.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보다 ‘기업이 뛰기 좋은 정부’가 필요한 이유다. 규제완화의 목적도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기업 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높아져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이 거둔 성과가 임금과 가계소득, 소비로 이어질 때 규제개혁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기업 활력과 민생은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한비자>에는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규제개혁에도 적용할 만한 원칙이다. 힘 있는 대기업이 민원을 제기할 때마다 예외를 만들어주는 것이 규제개혁이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기준 아래 필요한 행정서비스를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7조9000억원 투자지원 대책은 그런 의미에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가 기업 현장의 애로를 찾아 규제와 행정절차를 손보기 시작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 다음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여러 행정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면 다른 공장에서는 왜 안 되는가. 반도체 팹에서 불필요한 공정 지연을 줄일 수 있다면 다른 첨단산업에도 비슷한 규제가 남아 있지는 않은가. 기업이 정부에 어려움을 호소할 때마다 하나씩 해결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행정 시스템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규제는 필요한 곳에서는 단단해야 하고 필요 없는 곳에서는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안전과 환경,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는 기준은 낮춰서는 안 된다. 대신 투자와 혁신을 가로막으면서도 정책 목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절차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남겨둘 필요가 없다. 기업에 투자하라고 주문하기 전에 기업이 투자하기 어렵게 만든 정부 자신의 절차부터 살펴야 한다. 한국 경제에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거창한 성장 구호가 아니다. 투자할 기업이 제때 공장을 짓고 기술을 개발하며 사람을 고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규제개혁의 성패는 없앤 규제의 숫자가 아니라 앞당겨진 투자와 높아진 생산성, 새로 생긴 일자리로 평가받아야 한다. 7조9000억원의 현장대기 투자를 움직이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행정으로 바꿔야 한다. 경제의 속도를 정부의 절차가 늦추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2026-10-02 11:14:28
-
이 대통령 "'플랜 멕시코' 힘 보탤 것"
멕시코를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기업인 간담회를 공동 주재하고 양국 기업의 투자·교류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멕시코 대통령궁에서 진행된 이번 간담회에는 대한상의 회장이기도 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9명의 한국 기업인을 포함해 양국 고위인사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고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이 대통령은 우선 양국이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규정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글로벌 공급망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금이 양국 경제협력을 한층 더 발전시킬 적기임을 강조했다. 특히 셰인바움 대통령이 작년에 발표한 산업경쟁력 강화 및 인프라 확충 비전인 '플랜 멕시코(Plan Mexico)'의 성공을 위해 한국도 동반자로서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기업인들은 한국 기업들이 수십 년에 걸쳐 멕시코에 대한 꾸준한 투자를 통해 고부가가치 제조업을 육성해 왔으며, 지역 공급망 강화를 통해 멕시코 내 산업생태계 육성에 이바지했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어 양국의 경제협력이 자동차, 가전 등 전통적 분야에서 벗어나 전력 및 에너지, 모빌리티, 첨단소재, 푸드, 뷰티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특히 멕시코가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닌, 북미·중남미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핵심 교두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양국의 경제협력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도록 한국과 멕시코 간 경제협정이 조속히 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기업인들은 아울러 현재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재검토로 멕시코 내 기업활동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멕시코 정부가 비즈니스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건의했다.
2026-09-25 07:09:32
-
국회 원구성 답보…법사위 싸움에 민생경제 볼모 잡혔다
[경제일보]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이 또다시 멈춰 섰다. 국회 의장단은 선출됐지만 정작 국회를 굴러가게 할 상임위원장 배분은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에서 막혀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여당으로서 국정과제와 민생입법을 뒷받침하려면 법사위원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의힘은 입법의 최종 관문인 법사위를 야당이 맡아야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고 맞선다. 여기에 정무위원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 주요 경제 상임위원장 배분까지 얽히면서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또 자리 싸움에 갇혔다. 여당은 책임정치를 말하고, 야당은 견제정치를 말한다. 말만 놓고 보면 둘 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국민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법사위원장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정치권의 권력 계산일 뿐이다. 국민에게 더 절박한 것은 대출금리, 장바구니 물가, 전기요금, 일자리, 집값, 세금이다. 국회가 상임위원장 명패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가계의 이자 부담은 줄지 않고 기업의 투자 결정은 미뤄지며 정부 정책은 국회 문턱에서 멈춰 선다. 법사위는 국회 입법의 수문장이다. 각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은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로 간다. 그래서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다. 여당은 법사위를 야당에 넘기면 국정과제 입법이 막힐 수 있다고 본다. 야당은 여당이 법사위까지 장악하면 입법 독주를 막을 장치가 사라진다고 우려한다. 양쪽 모두 나름의 논리는 있다. 그러나 법사위가 입법 품질을 높이는 관문이 아니라 정쟁의 병목으로 변질된다면 그 논리는 국민 앞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더 심각한 것은 경제 상임위 공백이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금융시장과 공정거래 질서를 다루는 핵심 상임위다. 재경위는 세제와 재정, 거시경제 정책을 좌우한다. 산자위는 반도체, 에너지, 통상, 산업경쟁력의 최전선이다. 예결위는 정부 예산의 마지막 문턱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구조개혁과 경기 대응이 동시에 필요한 시점이다. 자본시장 밸류업, 가계부채 관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정리, 금융소비자 보호, 소상공인 지원, 반도체·AI·에너지 투자, 세수 관리, 민생 예산 조정이 모두 국회 논의와 맞물려 있다. 국회가 멈추면 경제정책도 멈춘다. 그 피해는 가장 먼저 가계로 간다. 금융 취약계층 지원, 서민금융 보강, 전세사기 피해 지원, 소상공인 채무조정, 통신비·에너지비 부담 완화 같은 민생 법안은 상임위가 열려야 논의된다. 여야가 법사위 명패를 두고 기 싸움을 벌이는 동안 서민은 이자 고지서를 먼저 받는다. 국회의 하루 공전은 정치권에는 협상 전략일지 몰라도 가계에는 생활비 압박이다. 민생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가 정작 민생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 기업도 피해자다.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세법이 어떻게 바뀔지, 산업지원 예산이 유지될지, 금융규제가 풀릴지 조여질지, 노동·환경·공정거래 규정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으면 투자를 미룬다. 투자가 늦어지면 고용도 늦어진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조선, 방산, AI 데이터센터, 에너지 인프라처럼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국회와 정부의 정책 신호에 민감하다. 정치권이 상임위 배분을 놓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해외 경쟁자는 투자 속도를 높인다. 국회의 정쟁은 기업에는 비용이고 국가경제에는 기회 손실이다. 정부도 발목이 잡힌다. 정부는 예산과 법률이라는 두 바퀴로 움직인다.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도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종이 위 계획에 머문다. 경기 대응책을 내놓아도 입법과 예산 뒷받침이 없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정부가 국회를 우회하려 하면 행정 독주 논란이 생기고 국회가 정부를 무조건 막으면 국정 마비가 된다. 여당은 다수의 힘을 절제해야 하고 야당은 견제의 이름으로 국회 정상화를 볼모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대치는 어느 한쪽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양쪽 모두 국민경제 앞에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논어>에는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 있다. 국회가 지금 밝아야 할 것은 자리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이다. 상임위원장 자리가 권력 배분의 전리품처럼 취급되는 순간 국회는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당 간 점령지가 된다. 법사위가 누구 손에 들어가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법사위가 국민을 위해 작동하느냐다. 정무위가 어느 당 몫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 공정거래 질서가 제대로 논의되느냐다. 정치권은 원구성 협상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는 어렵다기보다 염치가 없어 보인다. 국회는 다수결만으로 움직여서도 안 되지만 소수의 발목잡기로 멈춰서도 안 된다. 다수당은 책임 있게 의제를 추진하되 야당의 견제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 야당은 견제하되 국회 공백을 협상 카드로 써서는 안 된다. 상임위원장 배분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일 수 있지만 국회 마비는 협상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계산해야 할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손실이다. 국회가 하루 늦어질 때 민생 법안은 얼마나 밀리는가. 금융시장 불확실성은 얼마나 커지는가. 기업 투자 결정은 얼마나 지연되는가. 정부 예산 심사는 얼마나 압박받는가. 이런 비용표를 국민 앞에 내놓는다면 여야가 지금처럼 쉽게 강대강 대치를 이어갈 수 있겠는가. 국민은 법사위원장 이름보다 자신의 대출금리를 더 걱정한다. 정무위원장 배분보다 금융사고와 불완전판매 방지를 더 원한다. 예결위원장 몫보다 내년 예산이 어디에 쓰일지를 더 궁금해한다. 기업은 어느 당이 상임위를 차지했는지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원한다. 정부는 정쟁의 승리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국정 동력을 필요로 한다. 국회는 싸우라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싸움에도 순서가 있다. 먼저 문을 열고 회의를 열고 법안을 올리고 예산을 따져야 한다. 그다음에 치열하게 다투면 된다. 문도 열지 않은 채 열쇠를 누가 쥘지만 다투는 정치는 국민에게 설명할 수 없다. 국회를 열지 않는 정치는 견제가 아니라 직무유기다. 22대 국회 하반기 원구성 협상은 단순한 자리 싸움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정치 리스크를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다. 여야가 법사위와 경제 상임위를 놓고 끝까지 힘겨루기를 벌인다면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낸다. 가계는 이자로 내고 기업은 투자 지연으로 내며 정부는 정책 실기라는 이름으로 낸다. 경제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국회가 멈춰도 시장은 움직이고 국회가 싸워도 국민의 청구서는 날아온다. 여야가 정말 민생을 말하려면 원구성부터 끝내야 한다. 권한을 나누는 협상보다 책임을 나누는 합의가 먼저다. 국회의 주인은 정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그 상식을 잊는 순간, 원구성 싸움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위험이 된다.
2026-06-29 16:08:29
-
-
휴머노이드 전쟁,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골든타임이다
[경제일보] 인공지능(AI)이 산업혁명의 두뇌라면, 휴머노이드는 그 두뇌에 손과 발을 달아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존재다. 이제 세계는 인간을 닮은 로봇을 미래 산업의 상징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생성형 AI와 로봇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산업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중국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제조 역량을 앞세워 세계 최대 휴머노이드 생산기지를 노리고 있다. 일본 역시 오랜 로봇 기술의 축적을 바탕으로 고령화 사회에 대응할 서비스형 휴머노이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 산업의 패권을 둘러싼 '휴머노이드 전쟁'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거대한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산업 하나가 등장하는 차원이 아니다. 제조업과 물류, 의료와 돌봄, 국방과 재난 대응, 농업과 건설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활동하는 거의 모든 영역을 바꾸는 거대한 산업혁명의 서막이다. 과거 자동차가 기계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스마트폰이 정보통신 생태계를 재편했다면, 앞으로는 휴머노이드가 산업과 노동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은 이 경쟁을 결코 남의 일처럼 바라볼 처지가 아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실에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현장은 이미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중소기업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생산 라인을 멈추고, 농촌과 건설 현장은 일손 부족이 일상이 되었다. 돌봄과 의료 분야 역시 인력 부족이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앞으로 인구 감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노동력 부족은 국가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실에서 휴머노이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사람을 대체한다기보다 사람이 부족한 영역을 보완하고,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맡아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결국 휴머노이드를 선점하는 국가는 생산성을 유지하고, 뒤처지는 국가는 인구 감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이중의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경쟁력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은 휴머노이드의 심장과도 같은 에너지 시스템을 책임질 수 있다. 반도체와 센서 기술은 로봇의 눈과 귀를 더욱 정밀하게 만들고, AI 소프트웨어는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는 지능을 제공한다. 여기에 정밀 모터와 감속기, 제어 기술, 세계적인 제조 현장의 자동화 경험까지 더하면 우리는 휴머노이드 산업의 핵심 요소를 상당 부분 갖추고 있다. 문제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내는 국가 전략의 부재다. 이제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휴머노이드는 어느 한 기업이 단독으로 완성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AI와 로봇, 배터리, 반도체, 정밀기계, 통신,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융합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미래 산업이다. 따라서 국가 차원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와 장기적인 로드맵이 절실하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지원 방식으로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미래를 내다보는 대형 프로젝트와 실증사업, 핵심 부품의 국산화, 전문 인재 양성을 국가가 책임 있게 추진해야 한다. 법과 제도 역시 시대 변화에 맞게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각종 안전 규제와 인증 절차, 실증 제한은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산업 현장과 의료, 돌봄, 공공서비스에 빠르게 적용될 수 있도록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하고, 실증 특구를 활성화하며, 데이터 활용과 책임 기준도 국제 수준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 규제는 안전을 위한 장치이지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산업의 주도권은 언제나 먼저 투자하고 먼저 표준을 만든 나라가 가져갔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전기차 경쟁에서 경험했듯, 기술은 잠시 앞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생태계를 먼저 구축하는 나라가 시장을 지배한다. 휴머노이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과 ICT 기술을 갖춘 나라다. 이제 필요한 것은 미래를 향한 국가적 결단과 과감한 실행이다. 휴머노이드는 먼 미래의 공상과학이 아니라 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국가 경쟁력을 지킬 현실적인 해법이다.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의 시장은 남의 것이 된다. 그러나 지금 과감하게 도전한다면, 대한민국은 AI 시대를 넘어 휴머노이드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산업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미래는 기다리는 나라의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나라의 것이다.
2026-06-26 10:38:59
-
김상욱·김두겸 초접전…박맹우 변수 흔드는 울산시장 선거
[경제일보] 6·3 울산광역시장 선거가 전국 지방선거 판세를 가늠할 대표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욱 후보와 국민의힘 김두겸 후보가 오차범위 안팎 초접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무소속 박맹우 후보의 존재감까지 커지면서 선거 막판까지 치열한 혼전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울산시장 선거는 단순한 지방권력 경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조선·자동차·석유화학으로 대표되는 산업수도 울산이 경기 둔화와 산업 재편 압박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동시에 영남 보수 지형 변화 가능성과 야권 확장성까지 시험하는 정치적 상징성도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수 텃밭 흔드는 노동벨트 표심 울산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북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노동계와 진보 진영 기반 역시 전국 최고 수준으로 강하다. 현대자동차와 조선업 노동벨트 영향력이 뚜렷한 지역 특성 때문이다. 실제 울산은 과거 진보정당이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을 배출했던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번 선거 역시 이러한 지역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현직 시장인 김두겸 후보가 재선에 도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상욱 후보를 앞세워 정권 심판론과 산업 전환론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울산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박맹우 전 시장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면서 보수 진영 내부 균열 가능성까지 현실화됐다. 정치권에서는 애초 국민의힘 우세 구도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전이 본격화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 김상욱 후보와 진보당 김종훈 후보가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에 사실상 합의했고 조국혁신당 황명필 후보도 김상욱 후보와 단일화에 합의하면서 선거 구도는 김상욱·김두겸·박맹우 후보를 중심으로 압축되는 양상이다. 조사마다 엇갈린 판세…공통점은 ‘초박빙’ 실제 여론조사 흐름은 혼전 양상을 보여준다. KBS울산방송과 울산매일신문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2026. 5. 4.~5. 울산 거주 만18세 이상 남녀 8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다자대결 기준 김두겸 후보 37.1%, 김상욱 후보 32.9%, 김종훈 후보 14.2%, 박맹우 후보 8.5%로 집계됐다. 양자대결에서는 김두겸 후보 41.8%, 김상욱 후보 40.0%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5%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반면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조사에서는 김상욱 후보 우세 결과가 나왔다. 2026. 4. 25.~26. 실시된 조사에서 다자대결 기준 김상욱 후보 40.3%, 김두겸 후보 28.9%, 김종훈 후보 15.4%, 박맹우 후보 8.9%로 나타났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포인트였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꽃 조사에서도 접전 양상은 이어졌다. 2026. 5. 21. 발표 조사에서는 다자대결 기준 김상욱 후보 36.7%, 김두겸 후보 34.7%, 김종훈 후보 15.8%, 박맹우 후보 6.1%로 집계됐다. 두 주요 후보 격차는 오차범위 안이었다는 점에서 울산 선거가 사실상 초박빙 구도로 재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두겸의 안정론 vs 김상욱의 교체론 선거 전략도 뚜렷하게 엇갈린다. 김두겸 후보는 현직 프리미엄과 안정론에 집중하고 있다. 울산시정 연속성과 중앙정부 네트워크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산업도시 특성상 행정 경험과 기업 투자 유치 역량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특히 조선업 회복 흐름과 산업단지 투자 확대, 도시 인프라 사업 등을 주요 성과로 강조하며 “하던 일을 마무리할 적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울산 선거를 ‘영남 보수 방어선’ 성격으로 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만약 울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단순한 지방선거 이상의 정치적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반면 김상욱 후보는 변화와 산업 전환을 전면에 세우고 있다. 울산 산업경쟁력이 과거 방식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래산업과 청년 일자리 확대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동시에 노동계와 중도층을 함께 겨냥하는 전략도 펼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 진영 결집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울산은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노동계 기반 역시 탄탄한 만큼 진보 진영 표 결집이 이뤄질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박맹우 완주 여부가 최대 변수 박맹우 후보 존재 역시 선거 흐름을 흔드는 변수다. 박 후보는 울산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경륜을 앞세워 보수층 일부를 흡수하고 있다. 그는 정당보다 지역 발전과 행정 경험을 강조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 지지율 자체보다 보수표 분산 효과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실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박 후보 완주 여부를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박 후보가 한 자릿수 후반 지지율만 유지해도 김두겸 후보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표심도 중요한 변수다. 남구와 울주군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하다. 반면 북구와 동구는 노동계 영향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중구는 상대적으로 중도·부동층 비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어느 후보가 자기 진영 결집을 넘어 중도층과 부동층을 끌어오느냐가 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 산업수도 울산의 미래를 묻는 선거 투표율 역시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지방선거 투표율이 낮아질 경우 조직력이 강한 정당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반면 선거 막판 이슈가 커지면서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중도층 이동 폭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울산 경제 상황 역시 민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조선업은 일부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석유화학 업황 둔화와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는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다. 산업도시 특성상 유권자들이 이념보다 일자리와 지역경제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울산시장 선거를 전국 선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영남 확장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이고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전통 지지기반 유지 여부가 걸린 상징적 승부처라는 의미가 있다. 결국 울산시장 선거의 막판 승부처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민주·진보 단일화 효과가 실제 투표장에서 얼마나 나타날 것인가. 둘째 박맹우 후보가 보수표를 어느 정도 흡수할 것인가. 셋째 중도층과 부동층이 마지막 순간 어느 후보로 이동할 것인가다. 산업수도 울산의 선택은 이제 단순한 지역 행정 수장을 뽑는 차원을 넘어 영남 정치지형 변화 가능성과 산업도시 미래 전략까지 함께 결정하는 선거로 확장되고 있다.
2026-05-23 07:00:00
-
삼성전자 '봉합'이 남긴 성과급 복마전, '시장 원칙'과 '상생'으로 틀 바꾸어야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의 극적인 잠정 합의로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충돌은 일단 피했다. 국가 기간산업인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 서는 초유의 사태를 막았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겉으로는 ‘봉합’됐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 산업계 전반에 훨씬 더 큰 후폭풍을 남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당장의 갈등을 덮기 위해 내놓은 타협이 시장 원칙과 산업 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적자를 기록한 사업부에도 일정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인정한 것은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자본주의와 경영의 기본 원칙을 흐리게 만든 결정이다. 성과급은 말 그대로 성과에 대한 사후 보상이다. 그런데 성과와 무관하게 일정 수준을 보장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인센티브가 아니라 사실상의 고정 임금으로 변질된다. 이는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과주의 체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이미 산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기아, HD현대중공업, LG유플러스, 카카오 등 주요 기업 노조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 기업의 노사 합의가 산업 전체의 새로운 기준처럼 굳어질 경우, 기업마다 처한 경영 환경과 미래 투자 여력은 무시된 채 ‘성과급 총액 경쟁’만 남게 된다. 결국 기업은 미래 연구개발(R&D) 투자와 시설투자 재원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기업 내부의 성과급 갈등이 원·하청 구조 전체의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대기업 정규직들이 수천만 원대 성과급을 요구하는 동안, 협력업체와 하청 노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다. 실제로 일부 하청업체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올릴 때 왜 우리는 제자리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임금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양극화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환경은 갈수록 냉혹해지고 있다. 중국의 메모리 업체들은 국가적 지원과 공격적 투자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엔비디아는 기술 초격차 확보를 위해 조직 전체가 미래 투자와 혁신 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내부 성과급 갈등과 노노 갈등에 매몰된다면 결국 경쟁국만 웃게 될 것이다. 기술 패권 전쟁의 시대에 내부 분열은 가장 치명적인 리스크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제도의 전면적 재설계다. 우선 성과급 체계를 글로벌 기준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획일적으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떼어주는 방식은 기업의 경기 변동성과 미래 투자 전략을 무시하는 위험한 구조다. 성과급은 기업 실적뿐 아니라 생산성 향상, 기술 혁신 기여도, 장기 성장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미국 빅테크 기업들처럼 개인별 기여도와 장기 성과를 반영한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심 보상 체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기 현금 보상보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효과가 크다. 동시에 원·하청 상생 모델 구축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대기업의 성과가 협력업체와 하청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공동성과기금이나 협력사 성과 공유제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만의 ‘성과급 잔치’로 비쳐지는 순간 사회적 정당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 역할도 중요하다. 노동 3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이 기업 경쟁력을 위협하거나 사회적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산업 현장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 전에 합리적 성과배분 원칙과 노사 협력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 경쟁력과 고용 안정, 미래 투자가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정책적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삼성전자 사태는 단순한 노사 분쟁이 아니다. 한국 산업 구조의 취약성과 노동시장 양극화, 그리고 성과 배분 체계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경고음이다. 총파업을 막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앞의 숫자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아니라, 시장 원칙과 상생의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무너진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대한민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2026-05-21 07:4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