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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를 때는 9일, 불편하면 무기한…조희대 대법원의 잣대
[경제일보] 조희대 대법원에는 사건마다 다른 시계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넘긴 지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김건희씨 사건은 선고를 하루 앞두고 전원합의체로 보내 다음 날짜조차 잡지 않았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도 법률이 정한 상고심 선고 시한을 며칠 남겨두고 같은 길로 들어섰다. 빠를 때는 무서울 만큼 빠르고 부담스러운 사건 앞에서는 끝을 알 수 없이 느려진다. 이 차이를 법리와 기록의 차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간격이 너무 크다. 대법원은 2025년 4월 22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조 대법원장은 그날 곧바로 첫 합의기일을 열었고 이틀 뒤 두 번째 합의를 진행했다. 5월 1일에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건 접수 후 34일, 전원합의체 회부 후 9일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통상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합의기일을 사흘 간격으로 잡을 만큼 서둘렀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때였다. 판결 결과에 따라 유력 대선 후보의 정치적 운명이 바뀔 수 있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할 사건이었지만 조희대 대법원은 속도를 택했다.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대법관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9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랬던 대법원이 김건희씨 사건에서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당초 7월 16일로 예정했던 선고를 24일로 한 차례 연기한 뒤 선고 하루 전인 23일 전원합의체 회부를 이유로 기일을 다시 없앴다. 선고일 전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긴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법원은 회부 사유도 밝히지 않았고 다음 선고일도 정하지 않았다. 특검법상 상고심 선고 시한인 7월 28일은 그대로 지나갔다. 한덕수·이상민 사건에서도 낯익은 장면이 반복됐다. 대법원은 8월 5일 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함께 심리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고 역사적인 사법 평가가 필요하며 두 사람이 공범 관계여서 함께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말만 들으면 그럴듯하다. 문제는 시점이다. 12·3 비상계엄이 국민적 관심 사건이라는 사실은 어제 알려지지 않았다. 전직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의 행위가 역사적인 사법 평가의 대상이라는 점도 상고심 선고를 며칠 앞두고 새로 생긴 사정이 아니다. 두 사람의 공소사실이 겹치고 언론사 단전·단수 논의 등에서 연결된다는 사실은 수사 단계부터 공개돼 있었다. 처음부터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해야 할 사건이었다면 상고기록이 접수된 직후 넘겼어야 했다. 두 사건을 각각 소부에 배당해 심리하다가 선고 시한이 코앞에 닥친 뒤에야 역사적 의미와 공범 관계를 꺼내 든 이유를 대법원은 설명하지 않았다. 더구나 전원합의체 회부는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 측이 먼저 요구했다. 두 사람은 특검법의 선고 시한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며 판결을 늦추고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해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내란 특검은 사실상의 특혜라며 반대했다. 대법원이 피고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 두 사람의 확정판결은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시한은 8월 7일, 이 전 장관 사건은 8월 12일이었다. 특검법의 이른바 ‘6·3·3 규정’은 1심 판결을 공소 제기일부터 6개월 안에, 2심과 3심 판결을 전심 선고일부터 각각 3개월 안에 내리도록 정하고 있다. 조문에는 노력해야 한다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을 때 지키라고 쓰여 있지 않다. 정해진 기간 안에 선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법원이 이 조항을 훈시규정으로 본다고 해서 없는 조문처럼 다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벌칙이 없다는 이유로 최고법원이 법률상 시한을 참고사항 정도로 취급한다면 국회가 재판 기간을 정한 의미는 사라진다. 국민은 항소장이나 상고장을 하루 늦게 내도 권리를 잃는다. 보정명령이나 제출기한을 놓치면 절차가 끝난다. 법원은 당사자에게 날짜 하나를 엄격히 따지면서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선고 시한은 사정에 따라 넘긴다. 이런 태도로 법치주의를 말하면 설득력이 생길 리 없다. 전원합의체는 민감한 판결을 늦추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 기존 판례를 바꾸거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쟁점에 관해 대법원 전체의 견해를 밝히기 위한 최고심 재판부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리면 표결로 결론을 내리고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판결문에 담으면 된다. 모두가 만족할 답을 찾을 때까지 판결을 보류하는 원로회의가 아니다. 조 대법원장은 사건 회부가 각 소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뒤로 물러설 수 없다.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은 대법원장이다. 합의기일을 열고 판결을 선고하는 전 과정을 이끄는 사람도 조 대법원장이다. 이재명 사건에서 9일 만에 결론을 낸 전원합의체와 김건희·한덕수·이상민 사건을 기약 없이 붙들고 있는 전원합의체의 책임자가 다르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 한 사람이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후 줄곧 신속한 재판을 강조했다. 재판 지연으로 국민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신속한 재판은 일선 판사들에게만 요구할 덕목이 아니다.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사건을 맡았을 때 먼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말도 이제는 궁색하다. 대선을 앞둔 이재명 사건보다 정치적 파장이 작다고 할 수 없는 사건을 9일 만에 처리한 전례를 조희대 대법원 스스로 만들었다. 그때는 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왜 불가능한지 설명해야 한다. 기록이 더 많다면 어느 쟁점에 추가 검토가 필요한지 밝히고 합의 일정과 선고 계획을 내놓으면 된다. 역사적인 사건이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일수록 법률이 정한 절차와 기한을 지켜 판단해야 한다. 판결을 오래 붙들고 있다고 권위가 높아지지 않는다. 선고를 늦춘 기간이 아니라 판결문에 담긴 증거와 법리가 평가받는다. 대법원이 결론을 미루는 동안 이익을 얻는 쪽은 따로 있다. 김건희씨는 확정판결을 피하고 있고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도 피고인 신분으로 시간을 벌게 됐다. 대법원이 지연을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결정이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설명이 필요하다. 왜 선고 직전에 전원합의체로 넘겼는지, 언제 합의기일을 열 것인지,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검토해야 할 쟁점이 무엇인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평가”라는 두루뭉술한 말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재판의 속도도 공정성의 일부다. 같은 대법원장이 이끄는 같은 전원합의체가 누구의 사건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판결 내용이 아무리 정교해도 의심은 남는다. 이재명 사건에서는 대선 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듯 달렸고 김건희씨와 전직 국무위원들의 사건에서는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멈춰 섰다. 조희대 대법원이 피해야 할 것은 빠른 판결도 늦은 판결도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속도 차이다. 지금처럼 사건에 따라 재판 시계가 달라지면 국민은 법리가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가 판결 일정을 정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빠를 때는 9일이었다. 불편한 사건 앞에서는 다음 선고일조차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두 얼굴을 그대로 둔다면 전원합의체의 권위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대법원 판결을 믿어야 할 이유다.
2026-08-06 08:01:09
조희대 대법원장, 이제 물러나야 한다
[경제일보] 대법원의 판결은 언제든 비판받을 수 있다. 법률 해석에는 견해가 갈리고 다수의견이 훗날 판례 변경으로 뒤집히기도 한다. 그러나 최고법원이 재판하는 방식 때문에 공정성을 의심받기 시작하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끄는 대법원이 다시 그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법원은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수수 사건의 상고심 선고를 하루 앞둔 23일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대법원 2부는 당초 16일 선고를 잡았다가 24일로 한 차례 미뤘고, 두 번째 선고를 하루 남겨두고 다시 선고기일을 없앴다. 선고기일은 기록 검토와 대법관 합의가 상당 부분 진행돼 판결을 선고할 단계에서 잡는다. 그런 사건이 두 차례 선고 날짜까지 정한 뒤 두 번째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다. 법조계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행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불과 1년여 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는 정반대 장면이 펼쳐졌다. 이 대통령의 사건이 2025년 4월 22일 대법원 2부에 배당되자 조 대법원장은 같은 날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다. 전원합의체는 바로 그날 합의에 들어갔고 5월 1일 서울고법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 회부에서 선고까지 9일이었다. 당시 대통령 선거까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형사사건을 전에 보기 어려운 속도로 처리하면서 법원 안팎에서 거센 논란이 일었다. 반대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대법관 사이의 설득과 숙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위사실공표죄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기존 판례 적용을 놓고도 적지 않은 쟁점이 있었다. 그런 사건을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은 전원합의체는 9일 만에 처리했다. 당시 논란의 핵심에는 재판 속도가 있었다.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최고법원이 왜 그토록 서둘렀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법원이 정치 일정에 영향을 주는 모습으로 비치면서 대법원의 정치적 중립과 재판의 공정성까지 도마에 올랐다. 조 대법원장은 그 후폭풍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겪었다. 자신이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고 자신이 재판장을 맡았다. 그런 논란을 겪었다면 이후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는 재판 절차부터 더욱 신중하게 운영했어야 했다. 그런데 1년여 만에 또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을 소부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로 가져가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이번에는 김건희씨 사건에서 소부가 두 차례 선고기일을 정하고도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돌렸다. 한쪽에서는 재판 속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렸고 다른 쪽에서는 선고 직전까지 간 사건의 방향을 마지막 순간에 바꿨다. 너무 빨랐던 재판과 너무 늦게 방향을 튼 재판이다. 두 장면 모두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서 벌어졌다. 법률가는 절차의 무게를 안다. 재판은 결과 못지않게 절차를 통해 신뢰를 얻는다. 법원은 실제로 공정해야 하고 국민의 눈에도 공정하게 보여야 한다. 대법원의 권위도 여기에서 나온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당사자의 이름에 따라 재판의 속도와 방식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최고법원의 판결을 떠받친다. 조희대 체제의 가장 무거운 책임은 그 믿음을 흔들었다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는 왜 저토록 서두르느냐는 의심을 샀다. 김건희씨 상고심에서는 왜 두 차례 선고일을 잡고도 마지막 순간에 멈추느냐는 의심을 불렀다.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국민에게 남긴 결과는 같았다. 대법원의 재판이 사건과 사람에 따라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다. 최고법원에 대한 이런 의심은 판결 하나의 논란보다 훨씬 심각하다. 대법원이 누구에게나 같은 법과 절차를 적용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흔들기 때문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미 정치적 중립성과 사법 신뢰를 둘러싼 거센 논란을 겪었다. 그 뒤 1년여가 흘렀지만 이번에는 김건희씨 상고심의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 회부라는 또 다른 논란을 만들었다. 정치적 대형 사건에서 이례적인 절차가 거듭되고 있다. 이제 개별 재판의 문제가 아니라 대법원 운영의 문제로 봐야 한다.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장이자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사법부의 수장이다. 조 대법원장은 그동안 사법 독립을 강조해 왔다. 그 원칙이 국민을 설득하려면 법원부터 정치적 의심을 자초하지 않아야 한다. 외부의 압력을 막는 것과 함께 재판의 공정성을 국민에게 믿게 만드는 일도 사법부 수장의 몫이다. 지금 대법원에서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이 바로 그 믿음이다.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상고심에서 한 차례 사법부를 정치적 논란 한가운데 세웠고 김건희씨 상고심에서는 또 다른 이례적 절차로 같은 불신을 불러왔다. 대법원장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공정과 신뢰가 조희대 체제에서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대법원장의 임기를 보장한 취지는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사법부의 독립과 공정을 지키라는 데 있다. 임기 보장이 대법원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까지 책임을 미룰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대법원장의 자리가 사법부 신뢰 회복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면 책임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는 사법부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이제 물러나야 한다.
2026-07-25 06:00:00
李 때는 9일 속도전, 金은 선고 전날 전합…'예외 재판' 반복한 조희대, 이제 거취 답해야
[경제일보] 대법원이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통일교 금품수수, 명태균 여론조사 무상수수 혐의 사건을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에 넘겼다. 대법원 2부가 두 차례나 선고 날짜를 잡았던 사건이다. 첫 선고를 미룬 데 이어 두 번째 선고를 하루 앞두고 재판의 틀까지 바꿨다. 대법원은 23일 “전원합의체 회부를 위해 선고기일을 변경·추정했다”고 밝혔다. 새 선고 날짜는 잡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소부가 선고기일을 정했다는 것은 적어도 사건 심리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는 뜻이다. 그런 사건을 선고 하루 전에 전원합의체로 돌린 이유를 대법원은 설명하지 않았다. 조희대 대법원 체제에서 정치적 파장이 큰 사건을 둘러싼 이례적 재판 진행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불과 1년여 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에서는 지금과 정반대 방향으로 대법원의 시간이 흘렀다. ◆ 李 사건은 배당 당일 전합…조희대가 직접 회부 이 대통령 사건은 2025년 4월 22일 대법원 2부에 배당됐다. 조 대법원장은 같은 날 대법관들의 의견을 들은 뒤 사건을 직접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도록 지정했다. 통상 주심 대법관의 의견에 따라 전원합의체 회부가 검토되는 것과 달리 대법원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그날 오후 곧바로 첫 합의를 열었다. 이틀 뒤 다시 대법관들이 모였다. 4월 29일 선고기일을 알렸고 5월 1일 이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법 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전원합의체 회부에서 선고까지 9일이었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대법원이 유력 대선 후보의 형사사건을 전에 보기 어려운 속도로 처리하면서 사법부가 정치 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셌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속도에 대한 이견이 나왔다. 반대의견을 낸 이흥구·오경미 대법관은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충분한 설득과 숙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속한 재판도 중요하지만 속도 때문에 재판의 충실성이 훼손되면 사법 신뢰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취지였다. 대법관 사이에서는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기존 판례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정치인의 발언은 일부 표현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 맥락과 일반 선거인이 받아들이는 의미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기존 판례의 적용 문제가 쟁점이었다. 그런 논란에도 조 대법원장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재명 사건은 조희대 대법원이 선택한 재판 방식이었다. 소부 배당 당일 대법원장이 직접 전원합의체로 가져가 당일부터 합의를 시작했고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 ‘숙고 부족’ 비판 받고도 1년 만에 또 이례적 절차 당시 논란은 판결 내용에 그치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시기에 최고법원이 왜 그토록 서둘렀는지, 통상적인 전원합의체 운영과 다른 속도를 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사법부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조 대법원장에게는 뼈아픈 경험이었어야 했다. 대법원이 정치적 대형 사건을 처리할 때에는 판결 결과 못지않게 절차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판결이 법리적으로 아무리 정교하더라도 재판 과정에서 정치적 의심을 자초하면 법원의 권위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번 김건희 사건에서는 정반대 형태의 예외가 나왔다. 대법원 2부는 당초 16일 선고를 잡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 1심 판결이 나온 뒤 김건희 특검팀이 판결문 검토를 요청하자 24일로 선고를 한 차례 미뤘다. 8일을 더 확보한 셈이다. 그런데 두 번째 선고를 불과 하루 앞두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새 선고기일도 정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시간이 없다는 듯 밀어붙였다. 이번에는 선고 직전까지 간 사건을 다시 돌렸다. 방향은 정반대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통상적인 재판 진행에서 벗어난 선택이라는 점이다. ◆ 정치적 사건마다 왜 ‘예외’인가 대법원은 법 적용의 마지막 기준을 세우는 곳이다. 하급심에서 판단이 엇갈리면 이를 정리하고 국민에게 어떤 법리가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곳도 대법원이다. 그런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이례적인 재판 절차를 반복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는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 소부 배당 당일 전원합의체로 넘겼다. 김건희 사건에서는 소부가 두 차례 선고 날짜를 잡고도 마지막 순간에 전원합의체로 돌아갔다. 국민의 눈에는 한쪽에서는 지나치게 빠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늦게 방향을 바꾼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사건에서 직접 선택한 절차는 이미 사법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대법원의 재판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논란이 벌어졌고 최고법원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도마에 올랐다. 그런 논란을 겪은 뒤라면 적어도 같은 종류의 의심을 다시 불러올 재판 운영은 피했어야 했다. 그런데 김건희 사건에서 다시 ‘이례적’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 번의 예외는 판단일 수 있다. 예외가 반복되면 운영 방식이 된다. 조희대 대법원이 지금 직면한 문제도 여기에 있다. ◆ 사법부 신뢰 흔들어 놓고 대법원장 자리만 지킬 수 있나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 독립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정치권이 재판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내세웠다. 그 원칙이 힘을 가지려면 법원부터 정치적 의심을 살 일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 특히 대법원장은 일반 재판장이 아니다. 대법원을 대표하고 사법행정을 총괄하며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는다. 이 대통령 사건은 조 대법원장이 직접 전원합의체 회부를 지정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돼 있다. 김건희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 과정에서 조 대법원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 조 대법원장이 재판장인 전원합의체에서 다뤄진다. 대법원 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도 조 대법원장에게 있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 초고속 재판으로 논란을 일으킨 뒤 김건희 사건에서는 선고 하루 전 전원합의체 회부라는 또 다른 예외를 만들었다면 사법부 수장은 그 반복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법부 수장의 책임은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재판이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 대법원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그 믿음을 흔드는 일이 반복되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지키는 것은 책임지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지난해 이 대통령 사건에서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이번에는 왜 두 차례 선고일을 잡은 사건을 하루 전에 다시 돌려세웠는지 의문이 더해졌다. 조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전에 보기 어려운 절차를 택하면서도 그 기준을 국민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대법원장직을 계속 수행할 명분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자리는 법원의 권위를 등에 업고 버티는 자리가 아니다. 판결의 권위를 지키는 자리다.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판 절차를 둘러싼 의심과 불신을 반복해서 키우고 있다면 책임은 말로 끝낼 일이 아니다. 이 대통령 사건에서 한 번 흔들린 사법 신뢰가 김건희 사건을 거치며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두 번의 이례적인 재판 진행 한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이 있다.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도 재판 운영의 기준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이제 조 대법원장이 책임질 차례다. 그 책임은 거취에서 시작해야 한다.
2026-07-24 16: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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