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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빠를 때는 9일, 불편하면 무기한…조희대 대법원의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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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빠를 때는 9일, 불편하면 무기한…조희대 대법원의 잣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한석진 기자
2026-08-06 08:01:09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조희대 대법원에는 사건마다 다른 시계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은 전원합의체에 넘긴 지 9일 만에 결론을 냈다. 김건희씨 사건은 선고를 하루 앞두고 전원합의체로 보내 다음 날짜조차 잡지 않았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도 법률이 정한 상고심 선고 시한을 며칠 남겨두고 같은 길로 들어섰다.
 

빠를 때는 무서울 만큼 빠르고 부담스러운 사건 앞에서는 끝을 알 수 없이 느려진다. 이 차이를 법리와 기록의 차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간격이 너무 크다.
 

대법원은 2025년 4월 22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조 대법원장은 그날 곧바로 첫 합의기일을 열었고 이틀 뒤 두 번째 합의를 진행했다. 5월 1일에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건 접수 후 34일, 전원합의체 회부 후 9일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통상 한 달에 한 번 열리던 합의기일을 사흘 간격으로 잡을 만큼 서둘렀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한 달여 앞둔 때였다. 판결 결과에 따라 유력 대선 후보의 정치적 운명이 바뀔 수 있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할 사건이었지만 조희대 대법원은 속도를 택했다.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대법관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9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랬던 대법원이 김건희씨 사건에서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당초 7월 16일로 예정했던 선고를 24일로 한 차례 연기한 뒤 선고 하루 전인 23일 전원합의체 회부를 이유로 기일을 다시 없앴다. 선고일 전날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긴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다. 대법원은 회부 사유도 밝히지 않았고 다음 선고일도 정하지 않았다. 특검법상 상고심 선고 시한인 7월 28일은 그대로 지나갔다.
 

한덕수·이상민 사건에서도 낯익은 장면이 반복됐다. 대법원은 8월 5일 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함께 심리한다고 발표했다. 국민적 관심이 높고 역사적인 사법 평가가 필요하며 두 사람이 공범 관계여서 함께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말만 들으면 그럴듯하다. 문제는 시점이다.
 

12·3 비상계엄이 국민적 관심 사건이라는 사실은 어제 알려지지 않았다. 전직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의 행위가 역사적인 사법 평가의 대상이라는 점도 상고심 선고를 며칠 앞두고 새로 생긴 사정이 아니다. 두 사람의 공소사실이 겹치고 언론사 단전·단수 논의 등에서 연결된다는 사실은 수사 단계부터 공개돼 있었다.
 

처음부터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해야 할 사건이었다면 상고기록이 접수된 직후 넘겼어야 했다. 두 사건을 각각 소부에 배당해 심리하다가 선고 시한이 코앞에 닥친 뒤에야 역사적 의미와 공범 관계를 꺼내 든 이유를 대법원은 설명하지 않았다.
 

더구나 전원합의체 회부는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 측이 먼저 요구했다. 두 사람은 특검법의 선고 시한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며 판결을 늦추고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해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내란 특검은 사실상의 특혜라며 반대했다. 대법원이 피고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 두 사람의 확정판결은 법정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시한은 8월 7일, 이 전 장관 사건은 8월 12일이었다.
 

특검법의 이른바 ‘6·3·3 규정’은 1심 판결을 공소 제기일부터 6개월 안에, 2심과 3심 판결을 전심 선고일부터 각각 3개월 안에 내리도록 정하고 있다. 조문에는 노력해야 한다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을 때 지키라고 쓰여 있지 않다. 정해진 기간 안에 선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법원이 이 조항을 훈시규정으로 본다고 해서 없는 조문처럼 다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벌칙이 없다는 이유로 최고법원이 법률상 시한을 참고사항 정도로 취급한다면 국회가 재판 기간을 정한 의미는 사라진다.
 

국민은 항소장이나 상고장을 하루 늦게 내도 권리를 잃는다. 보정명령이나 제출기한을 놓치면 절차가 끝난다. 법원은 당사자에게 날짜 하나를 엄격히 따지면서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선고 시한은 사정에 따라 넘긴다. 이런 태도로 법치주의를 말하면 설득력이 생길 리 없다.
 

전원합의체는 민감한 판결을 늦추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 기존 판례를 바꾸거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쟁점에 관해 대법원 전체의 견해를 밝히기 위한 최고심 재판부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리면 표결로 결론을 내리고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을 판결문에 담으면 된다. 모두가 만족할 답을 찾을 때까지 판결을 보류하는 원로회의가 아니다.
 

조 대법원장은 사건 회부가 각 소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뒤로 물러설 수 없다.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은 대법원장이다. 합의기일을 열고 판결을 선고하는 전 과정을 이끄는 사람도 조 대법원장이다. 이재명 사건에서 9일 만에 결론을 낸 전원합의체와 김건희·한덕수·이상민 사건을 기약 없이 붙들고 있는 전원합의체의 책임자가 다르지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 한 사람이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후 줄곧 신속한 재판을 강조했다. 재판 지연으로 국민의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신속한 재판은 일선 판사들에게만 요구할 덕목이 아니다. 대법원장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사건을 맡았을 때 먼저 지켜야 할 원칙이다.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는 말도 이제는 궁색하다. 대선을 앞둔 이재명 사건보다 정치적 파장이 작다고 할 수 없는 사건을 9일 만에 처리한 전례를 조희대 대법원 스스로 만들었다. 그때는 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왜 불가능한지 설명해야 한다. 기록이 더 많다면 어느 쟁점에 추가 검토가 필요한지 밝히고 합의 일정과 선고 계획을 내놓으면 된다.
 

역사적인 사건이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건일수록 법률이 정한 절차와 기한을 지켜 판단해야 한다. 판결을 오래 붙들고 있다고 권위가 높아지지 않는다. 선고를 늦춘 기간이 아니라 판결문에 담긴 증거와 법리가 평가받는다.
 

대법원이 결론을 미루는 동안 이익을 얻는 쪽은 따로 있다. 김건희씨는 확정판결을 피하고 있고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도 피고인 신분으로 시간을 벌게 됐다. 대법원이 지연을 의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결정이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욱 설명이 필요하다. 왜 선고 직전에 전원합의체로 넘겼는지, 언제 합의기일을 열 것인지,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검토해야 할 쟁점이 무엇인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평가”라는 두루뭉술한 말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재판의 속도도 공정성의 일부다. 같은 대법원장이 이끄는 같은 전원합의체가 누구의 사건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판결 내용이 아무리 정교해도 의심은 남는다. 이재명 사건에서는 대선 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듯 달렸고 김건희씨와 전직 국무위원들의 사건에서는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멈춰 섰다.
 

조희대 대법원이 피해야 할 것은 빠른 판결도 늦은 판결도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속도 차이다. 지금처럼 사건에 따라 재판 시계가 달라지면 국민은 법리가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가 판결 일정을 정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빠를 때는 9일이었다. 불편한 사건 앞에서는 다음 선고일조차 없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두 얼굴을 그대로 둔다면 전원합의체의 권위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대법원 판결을 믿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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