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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5년 세금 갈등 매듭지은 권혁…세계 해운시장에 다시 승부
[경제일보] '선박왕'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15년간 이어진 세금 갈등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고 세계 해운시장에 다시 승부를 건다. 1000억원을 현금으로 납부하고 나머지 2938억원에 대해서도 해외 선박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오랜 분쟁을 일단락했다. 권 회장은 글로벌 선주사업 확대에 경영 역량을 집중하고 세계 정상급 해운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3일 국세청에 따르면 권 회장은 지난 7월 개인 체납액 3938억원 가운데 1000억원을 납부했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도 해외 선박 5척을 담보로 제공하고 전액 납부계획을 제출했다. 2011년 종합소득세 고지 이후 15년간 이어진 세금 갈등을 마무리하기 위한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이미 국고에 들어온 1000억원에 이어 잔여 납부계획까지 이행되면 총 3938억원의 세수가 확보된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세금 논란에 가려졌던 권 회장의 경영 이력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세계 해운시장에서 대규모 선단을 일구며 '한국판 오나시스'로 불렸지만 국내에서는 고액 체납자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거론됐다. 조세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해외에서 쌓아 올린 사업과 국내 조선산업에 남긴 성과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권 회장이 국내 경제에 남긴 성과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시도그룹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국내 조선사에 발주한 선박은 130여척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신조선 121척의 건조 발주액만 약 71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선박관리와 보험, 한국선급(KR) 관련 거래 등을 합치면 약 96억4000만달러로 당시 환율 기준 13조원에 가까운 규모다. 해외에서 일군 해운사업을 한국 조선소의 수주와 관련 산업의 일감으로 연결한 것이다. 권 회장이 국내 조선사들과 거래를 이어온 배경에는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착도 있었다. 중국 등 해외 조선소들이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수주 경쟁을 벌였지만 권 회장은 한국 조선소에 꾸준히 선박을 발주했다.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해 세계 해운시장으로 무대를 넓힌 뒤에도 자신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해외에서 일군 사업을 통해 모국의 산업 발전에도 힘을 보태겠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국내 조선소의 수주를 넘어 관련 산업 전반에 일감을 안겨줬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철강과 엔진, 전기설비 등 기자재 업체는 물론 수많은 협력업체가 혜택을 봤다. 대규모 선박 발주가 국내 조선업의 수출과 생산, 고용으로 이어지면서 권 회장이 해외에서 키운 해운사업은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힘이 됐다. 이 같은 사업을 일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현대자동차에서 13년간 근무한 권 회장은 1990년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넉넉한 사업자금도 확실한 거래처도 없었다. 아내가 분식집과 빵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모은 돈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을 만큼 초기 형편은 어려웠다. 세계 해운시장에서 사업을 일으키겠다는 뜻은 컸지만 외국인 사업자가 일본에서 신용을 얻기까지 넘어야 할 문턱은 높았다. 1993년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의 사무실 한쪽에 책상 하나를 빌려 본격적인 해운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랜 거래관계와 신뢰를 중시하는 일본 금융·해운업계에서 자본과 실적이 부족한 한국인 사업자가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권 회장은 거래처를 설득하고 금융기관을 찾아다니며 사업의 기반을 다졌다. 당장의 이익보다 거래 실적을 쌓고 약속을 지키는 데 힘을 쏟았다. 일본 기업과 금융기관의 신뢰를 얻기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쌓은 신용은 사업 확대의 밑천이 됐다. 자동차 운반선에서 출발한 사업은 벌크선과 컨테이너선으로 넓어졌고 일본에서 홍콩 등 해외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선박을 확보하고 금융을 조달하며 세계 곳곳에서 선단을 운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250척 규모의 선단을 운용할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의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사업이 세계 해운시장에서 이름을 알리는 선주기업으로 발전했다. 권 회장은 해외에서 사업을 확장하면서도 한국 조선업체들과의 관계를 이어갔다. 1995년 부산에 선박관리회사 시도상선을 설립해 선박 관리와 수리, 보험 등 관련 업무를 국내 기업들과 연결했다. 당시 일본인 직원들의 반대에도 싱가포르나 일본 대신 부산을 선택했다. 한국선급이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선박에 대한 검사 업무를 맡겼다. 해외에서 선박을 소유하고 운용하면서도 국내 조선·해운산업과의 거래를 꾸준히 확대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선택도 눈길을 끈다. 세계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해운경기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선박 건조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권 회장은 당시 일본 조선소에 발주한 선박 37척의 계약을 취소하면서도 한국 조선소에 발주한 30척,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선박은 손실을 감수하고 인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기로 국내 조선업계까지 어려움에 빠졌던 시기였다. 한국 조선소와의 계약을 유지한 선택에는 오랜 거래관계에서 쌓인 신뢰와 한국 조선업에 대한 애착이 함께 작용했다. 권 회장이 선단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활용한 선박별 특수목적법인(SPC)은 훗날 역외탈세 논란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선박 한 척마다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은 국제 해운업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선박 건조자금을 조달하고 특정 선박에서 발생하는 채무와 사고 위험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선주회사들이 국제 금융기관을 통해 선박금융을 조달할 때 일반적으로 활용해 온 방식이다. 2011년 국세청은 권 회장이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해외 법인을 통해 소득을 은닉했다며 역외탈세 혐의를 제기했다. 해외 법인 운영과 국내 거주자 판정 문제를 둘러싼 법적 다툼이 이어졌다. 특히 선박별 법인 설립과 해외 거점 운영이 국제 해운업계의 관행인지, 조세포탈을 위한 부정행위인지가 형사재판의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재판 결과는 당초 제기된 혐의와 큰 차이를 보였다. 검찰은 권 회장을 2200여억원 규모의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했지만 2016년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로 인정된 포탈 세액은 소득세 2억4000여만원에 불과했다. 법인세 포탈을 비롯한 대부분의 혐의에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법원은 납세의무와 조세포탈죄의 성립을 구분하고 해외 법인 운영 과정에서 형사처벌에 필요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했다. 형사재판에서 역외탈세 관련 주요 혐의에 무죄가 확정된 이후에도 과세처분과 체납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권 회장은 해외에서 장기간 사업을 운영한 기업인에게 국내 거주자 기준을 적용한 과세 문제 등을 다투며 법적 대응을 이어왔다. 그사이 세계 해운시장에서 구축한 사업의 규모와 국내 조선업에 대한 기여보다 세금 논란이 권 회장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력이 됐다. 오랜 갈등을 정리하는 지금 권 회장의 관심은 과거보다 앞으로의 사업에 쏠려 있다. 권 회장은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마음에 쌓인 응어리도 적지 않았지만 이제는 상당 부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쌓인 아쉬움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지난 문제에 매달리기보다 다시 기업 경영에 힘을 쏟겠다는 뜻을 전했다. 권 회장은 기업과 정부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법과 제도를 존중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정부는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뒷받침하고 기업은 국제시장에서 성과를 거둬 국가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랜 갈등을 겪은 뒤에도 과거의 앙금보다 앞으로 해야 할 사업에 더 무게를 실었다. 권 회장이 다시 주목하는 무대는 세계 해운시장이다. 국제 환경규제 강화와 친환경 선박 전환, 선박금융 시장의 변화로 글로벌 선주회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권 회장은 그동안 쌓아온 선박 확보와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조선업체들과 오랫동안 이어온 거래관계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사업으로 연결될지도 관심을 끈다. 권 회장이 내세운 목표는 세계 최상위 선주회사로 성장하는 것이다. 일본의 작은 사무실에서 출발해 세계 바다에 선단을 일군 경험과 국제 금융시장에서 쌓아온 신용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사업 확장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한때 '한국판 오나시스'라는 별칭을 얻었던 권 회장은 이제 21세기 한국판 오나시스에 걸맞은 경영 성과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다. 15년간 자신을 따라다녔던 세금 갈등을 사실상 마무리한 권 회장은 다시 세계 해운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일본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해 세계적인 선단을 일구고 국내 조선·해운산업에 13조원 규모의 거래를 창출한 기업인이다. 오랜 갈등을 뒤로한 권 회장이 세계 해운시장에서 어떤 새로운 성과를 거둘지 관심이 쏠린다. [아주경제 2026년 10월 13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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