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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 청년 소상공인 100여명 상권 활성화 지원 外
[경제일보] 하나금융그룹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청년 소상공인이 주도하는 지역상권 활성화 프로젝트 '하나 On, 청년 On'을 본격 추진한다고 30일 밝혔다. 하나금융은 29일 대전 선샤인호텔에서 '청년이 켜는 상권의 변화'를 주제로 프로젝트 출범식을 개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6월 하나금융과 소진공이 체결한 '청년 소상공인 상권 활성화 지원' 업무협약에 따라 마련됐다. 이후 3개월간 공개 모집을 거쳐 전국에서 15개팀을 선정했다. 참여팀은 각 지역 상권의 특성에 맞춰 공동행사와 집객 프로그램, 환경개선, 공동 홍보 등을 직접 기획·추진한다. 하나금융과 소진공은 △전문가 컨설팅 △예산 지원 △맞춤형 금융지원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출범식에서는 참여 지역 상권을 연결하는 LED 점등 행사와 청년 소상공인 토크콘서트가 진행됐다. 참여팀별 프로젝트 사례를 공유하고 각 상권의 현안과 사업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한편 하나금융은 소진공과 동네슈퍼 착한계란 공급 프로젝트를 진행한 데 이어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와 고효율 에너지 기기, 디지털 전환 기기 지원 등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6월 청년 소상공인의 성장과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함께 힘을 보태겠다는 약속이 오늘 본격적인 실행으로 이어졌다"며 "청년 소상공인의 성장이 지역상권에 새로운 활력을 더하고 그 성과가 전국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함께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KB금융, 임팩트 기업 투자 모펀드 결성…민간자금 매칭해 50억원 조성 KB금융그룹이 사회문제 해결과 재무적 성과를 함께 추구하는 '임팩트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상생협력 모펀드를 결성했다. 향후 민간자금을 매칭해 총 50억원 규모의 자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KB금융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한국벤처투자와 함께 '상생협력 모펀드'를 결성했다고 30일 밝혔다. 상생협력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기금을 벤처투자에 활용하는 첫 사례다. KB금융이 출연한 상생협력기금 10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협력재단이 모펀드에 출자한다. 모펀드 운용은 한국벤처투자가 맡으며 향후 민간자금을 매칭해 총 50억원 규모의 자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자펀드는 재무적 성과와 사회문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면서 혁신성과 성장성을 갖춘 임팩트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성장 단계에서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 사업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의 성과가 사회적 가치 창출로 이어지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KB금융은 지난 6월 중소벤처기업부, 협력재단과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 1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출연했다. 이번 모펀드에 투입되는 30억원을 제외한 70억원은 △인공지능전환(AX) △녹색전환(GX) △안전전환(SX) 등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쟁력 강화에 활용된다. KB금융 관계자는 "이번 모펀드 조성이 기부와 투자를 연계한 상생협력의 모범 사례로 자리매김해 보다 많은 기업의 참여를 이끄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KB금융은 우수한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NH농협은행, 올원뱅크서 '모바일 자원봉사자증' 발급 NH농협은행은 NH올원뱅크에서 행정안전부 '1365자원봉사포털'과 연계한 '모바일 자원봉사자증' 발급 서비스를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최초로 선보였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서비스는 기존 자원봉사 통합 신청 서비스에 모바일 자원봉사자증 발급 기능을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이용자는 NH올원뱅크에서 1365자원봉사포털과 e청소년,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VMS)의 봉사활동을 신청하고 실적을 조회할 수 있다. 모바일 자원봉사자증 발급과 관리도 가능하다. 모바일 자원봉사자증을 이용하면 별도의 실물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자원봉사자에게 제공되는 문화·체육시설 이용료 할인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들이 봉사활동 현장에서 보다 편리하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모바일 자원봉사자증' 서비스를 도입했다"며 "앞으로도 일상과 금융이 연결되는 고객 중심의 생활금융 서비스를 지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9-30 1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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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억달러 대미투자, 밀실 협상으로 결정할 돈 아니다
[경제일보] 정부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첫 투자사업과 관련한 협상 상황을 국회에 보고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22일 오전 산업통상부로부터 관련 내용을 비공개로 보고받을 예정이다. 당초 17일로 예정됐던 보고가 한미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아 연기된 지 닷새 만이다. 재정경제기획위원회도 같은 날 보고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논의되는 사업의 규모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미가 협의 중인 3500억달러 중 1500억달러는 조선 분야에 배정되고, 나머지 2000억달러 규모의 전략투자를 놓고 세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텍사스 엔시날의 6.3GW 가스복합화력발전소, 미국 내 대형 원전 건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로이터는 텍사스 발전소 사업비만 약 223억달러 규모이며 원전도 최대 8기가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 어느 사업에 얼마를 투자할지는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대미 투자는 단순한 해외투자가 아니다. 지난해 한미 통상협상에서 미국의 대한국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합의와 함께 마련된 경제협력의 핵심 축이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지키고 조선·원전·에너지 등 한국 기업의 사업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도 작지 않다. 그렇다고 외교·통상의 필요성이 투자 판단의 기본원칙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정부 역시 상업성이 확보되는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협상 내용 가운데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어 다시 협의하고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투자 규모가 수백조원에 이르는 만큼 무엇에 투자하느냐뿐 아니라 누가 위험을 부담하고 손실이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는지도 따져야 한다. 정부가 정책금융이나 보증 등 공적 수단을 활용한다면 일반 기업의 해외투자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투자주체와 사업별 투자금액은 물론 예상 수익률, 투자기간, 회수조건, 환율 위험과 손실부담 구조를 따져야 한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정부와 금융기관, 참여 기업 가운데 누가 어느 정도까지 손실을 부담하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수익은 사업자에게 돌아가면서 위험은 국민이나 공적 금융기관이 떠안는 구조가 된다면 곤란하다. 특히 상업성은 선언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미국에 발전소와 원전을 건설하는 사업은 투자금 회수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사업비 증가와 금리, 전력가격, 인허가, 환율 등 변수도 적지 않다. 알래스카 LNG처럼 경제성을 면밀히 따져야 할 사업도 마찬가지다. 동맹이라는 이유로 투자심사표의 숫자가 달라져서는 곤란하다. 실제 한미는 상업적 합리성의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막판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번 산자위 보고가 비공개로 예정된 데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국가 간 협상에는 상대에게 공개해서는 안 될 전략과 조건이 존재한다. 모든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라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협상 과정의 비밀과 국민에 대한 설명책임은 다른 문제다. 협상이 끝난 뒤에도 핵심 조건까지 비공개로 남겨서는 안 된다. 영업비밀과 협상전략은 보호하더라도 공적자금이 얼마나 투입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사업의 상업성을 판단했는지는 국민이 알아야 한다. 정부가 어떤 위험을 부담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3500억달러라는 경제적 약속이 외교협상이라는 이유로 블랙박스가 돼서는 안 된다. 국회도 보고를 받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산자위 관계자는 협상 결과 투자액이 늘거나 한국이 손해를 부담할 부분이 있다면 내용을 따져보고 향후 국회 동의가 필요한지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측이 검토를 요구한 사업의 규모와 조건을 면밀히 따져 투자 총액과 정부 부담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규모 해외투자는 외교적 성과와 경제적 수익성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에는 양국 관계와 통상환경을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국민경제에 과도한 위험이 전가되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했는지를 설명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다. 한미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미국의 에너지·원전·조선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투자 규모가 클수록 원칙은 더 엄격해야 한다. 국익이라는 말이 경제성 검토를 대신해서도, 동맹이라는 이름이 투자 위험을 가려서도 안 된다. 3500억달러 대미투자는 한 정부의 임기 안에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사업에 따라 수십 년 동안 국민경제와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협상할 때는 국익을 지키고 투자할 때는 상업성을 따져야 한다. 이후 협상이 끝난 뒤에는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외교에는 비밀이 필요하지만 국민이 위험을 부담하는 투자에는 투명성이 필요하다. 이는 수백조원짜리 국가적 투자를 결정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2026-09-21 1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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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국가책임' 9년, 끝까지 책임진 건 가족이었다
[경제일보] 생활고와 간병 부담에 짓눌린 50대 남성이 친형을 살해하고 80대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수원지법은 살인과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기소된 이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범죄의 결과만 놓고 보면 무거운 형이 선고될 만한 사건이다. 그러나 법원이 형을 정하면서 적시한 사정은 따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남성은 부친이 숨진 뒤 치매를 앓는 어머니와 정신질환이 있는 형을 혼자 부양했다.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생계가 어려워졌고 간병 스트레스도 극심해졌다. 재판부는 이런 사정을 양형에 참작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책임을 묻는 절차다. 법원이 간병 부담과 생활고를 참작했다고 해서 살인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에 적힌 양형사유는 한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무너졌는지를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기록한 대목이다. 정부가 읽어야 할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다. 2017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치매환자를 본인과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사회가 함께 책임지겠다고 했다.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치매안심센터를 전국에 설치하고 의료비 부담을 낮추며 장기요양 지원을 확대했다. 치매를 더 이상 한 집안의 문제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름부터 무거웠다. ‘지원 확대’도 아니고 ‘관리 강화’도 아닌 ‘국가책임’이었다. 정부가 스스로 책임의 범위를 넓혀 국민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9년이 지난 지금 그 약속이 실제 가정에서 어디까지 작동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재인 정부가 물러나고 윤석열 정부를 거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다. 정권은 두 번 바뀌었고 치매 관련 조직과 사업, 예산은 계속 늘었다. 그런데 치매환자를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밤새 지켜보는 마지막 책임은 아직도 가족에게 남아 있다. 정부 조사에서도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절반 가까이가 돌봄 부담을 호소했다.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소진도 반복해서 확인됐다. 정부가 몰랐던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통계에도 잡히고 정책보고서에도 적혀 있던 문제다. 이번 용인 사건은 그 숫자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치매 노모와 정신질환 형을 한 사람이 동시에 돌봤다.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쳤다. 복지행정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신호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치매환자와 정신질환자가 한 집에 있고 보호자는 한 명뿐이다. 그 보호자가 생업까지 포기했다. 소득도 줄고 외부와의 접촉도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 상황을 국가의 돌봄망이 붙잡지 못했다면 제도가 어디에서 끊겼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치매안심센터가 몇 곳인지, 상담을 몇 건 했는지는 행정 보고서에 필요한 숫자다. 국가책임제의 성적표는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 보호자 한 사람이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까지 흔들릴 때 국가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갔는지, 하루 몇 시간이라도 돌봄을 대신했는지, 버틸 수 없는 상태에 이른 보호자를 다른 제도와 연결했는지가 성적표가 돼야 한다. 국가는 치매환자를 등록하고 검진하고 상담하는 일에는 상당한 체계를 갖췄다. 정작 가족이 무너지지 않도록 책임을 나눠 갖는 부분은 여전히 허술하다. 국가가 책임진다고 했지만 밤을 새운 사람은 가족이었고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가족이었다. 생활비와 간병비를 걱정하며 끝까지 버틴 사람 역시 가족이었다. 그래서 ‘치매 국가책임제’와 지금의 현실 사이에는 간단히 넘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국가는 환자를 관리했지만 가족은 환자의 삶을 떠안았다. 국가가 제도를 만들었지만 가족은 자신의 직업과 소득, 일상을 내놓았다. 책임의 가장 무거운 부분이 여전히 가족에게 남아 있다면 간판만 국가책임제인 셈이다. 이재명 정부도 이 문제에서 전임 정부를 바라볼 처지가 아니다. 정부가 바뀌면 장관과 정책 이름은 바뀌지만 국가의 약속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치매 국가책임제를 계승하고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확대하겠다면 문재인 정부가 내건 ‘국가책임’이라는 미완의 약속도 함께 넘겨받은 것이다. 새로운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지원 대상자가 몇 명 늘었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혼자 중증환자를 돌보는 사람, 간병 때문에 생업을 포기한 사람, 생활비가 끊긴 가정부터 찾아내야 한다. 도움을 신청하러 찾아오는 사람만 지원하는 복지로는 이미 지쳐 쓰러진 사람을 잡아낼 수 없다. 법의 시간과 복지의 시간도 다르다. 형법은 범죄가 벌어진 뒤 책임을 묻는다. 복지행정은 범죄나 극단적인 선택, 가족 붕괴가 벌어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사후에 정확하게 처벌하는 국가보다 사전에 한 가정을 붙잡는 국가가 훨씬 어렵지만 ‘국가책임’을 내걸었다면 그 어려운 일을 하겠다는 뜻이어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범행이 벌어진 뒤 국가 시스템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경찰은 피고인을 체포했고 검찰은 기소했으며 법원은 증거와 양형사유를 따져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형사사법기관은 각자의 절차에 따라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 전에 작동했어야 할 국가의 돌봄망이다. 살인사건의 판결문에 ‘치매를 앓는 모친과 정신질환이 있는 형을 홀로 부양했다’는 문장이 남았다. 간병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둔 한 사람이 가족을 죽이는 순간까지 갔다. ‘치매는 국가가 책임진다’고 선언한 지 9년이 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책은 발표할 때가 아니라 국민이 가장 어려울 때 평가받는다. 센터의 숫자도, 예산의 규모도, 지원 실적도 한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다시 따져봐야 한다. ‘국가책임제’라는 이름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국가가 책임진다던 9년 동안, 끝까지 버티고 끝내 무너진 것은 가족이었다.
2026-08-30 12: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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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급 또 속도전, 이번에는 '입주 날짜'를 보여줘야
[경제일보] 정부가 다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 준공업지역에서 추진 중인 약 2만7000가구의 사업을 앞당기고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통해 추가 물량을 확보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새 택지를 대규모로 내놓기보다 이미 확보한 부지와 진행 중인 사업의 시간을 줄이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하는 ‘공급’과 국민이 실제로 들어가 살 수 있는 집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다. 몇 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만으로는 그 집이 아직 인허가 단계인지, 공사를 시작했는지, 몇 년 뒤 입주하는지 알기 어렵다. 집을 구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계획서에 잡힌 주택 수가 아니라 언제 열쇠를 받을 수 있느냐다. 정부는 지난해 공급 실적을 인·허가가 아닌 착공 기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인·허가만 받아놓고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사업까지 공급 성과로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135만가구를 착공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공급 통계를 실제 공사에 가까운 단계로 옮긴 셈이다. 하지만 착공도 입주는 아니다. 오늘 공사를 시작한 1만가구와 내년에 사람이 들어가는 1만가구는 시장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파트는 착공한 뒤 준공과 입주까지 수년이 걸린다. 집값과 전셋값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몇 가구가 삽을 떴느냐보다 언제 새집이 시장에 들어오느냐다. 지난 1월 발표한 도심 주택 공급 대책만 봐도 공급 발표와 실제 입주 사이의 간격이 드러난다. 정부는 도심과 군부지, 공공시설 이전 부지 등을 활용해 6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일부 사업은 착공 목표 자체가 2028년 이후다. 성남 신규 공공주택지구 6300가구는 착공 목표가 2030년이다. 입주는 그보다 더 뒤다. 2030년에 공사를 시작할 주택까지 지금의 공급 물량으로 묶으면 국민이 체감하는 공급 시점은 흐려진다. 장기적으로 몇 가구를 지을 것인지와 앞으로 2~3년 안에 몇 가구가 실제 입주하는지는 따로 보여줘야 한다. 같은 1만가구라도 내년 입주 물량과 4년 뒤 착공 물량은 같은 공급이 아니다. 시장이 당장 보는 것도 2030년의 계획보다 2027년과 2028년의 입주 물량이다. 부동산R114 집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025년 3만7103가구에서 올해 2만5281가구로 줄고 2027년 1만8682가구, 2028년 1만3683가구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8년 물량은 2025년의 40%에도 못 미친다. 실제 준공 물량도 크게 줄었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주택 준공은 1만516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1% 감소했다. 앞으로 공급하겠다는 집의 숫자는 늘어날 수 있지만 지금 시장에 도착하는 새집은 오히려 줄고 있다. 부동산 대책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에게 ‘몇 만호 공급’은 더 이상 낯선 숫자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도권에 몇십만가구를 짓겠다는 발표가 나왔고 공급 부족을 해소하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국민이 기억하는 것은 발표한 숫자보다 늦어진 입주다. 택지를 발표하고도 보상이 늦어졌고 사전청약을 받은 뒤 본청약과 입주가 밀린 사례도 있었다. 시장이 정부의 공급 숫자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 정책도 국민에게 한 약속이라면 언제 이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5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만 있고 사업별 착공과 입주 일정이 없다면 약속이 지켜졌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행정은 목표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현실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그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급 발표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신규 공급 5만가구를 발표한다면 그 옆에 사업별 지구 지정 시점과 인허가, 착공, 준공, 입주 예정 시기를 함께 적으면 된다. 일정이 늦어졌다면 얼마나 밀렸고 무엇 때문에 지연됐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공급대책의 책임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장관이 발표한 날 몇 만가구를 확보했다고 성과로 잡을 것이 아니라 실제 착공이 얼마나 이뤄졌고 예정된 날짜에 몇 가구가 입주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일정이 늦어졌다면 어느 단계에서 막혔고 누가 해결하지 못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공급대책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생긴다. 이런 정보가 공개돼야 시장도 공급대책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내년에 입주할 1만가구인지, 2030년에 공사를 시작할 1만가구인지 모른 채 총공급 물량만 받아들여서는 앞으로 집이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가 발표하는 숫자가 커도 국민의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속도전의 성과도 발표한 물량이 아니라 실제 일정으로 확인해야 한다. 행정절차를 얼마나 줄였는지보다 착공이 몇 달 앞당겨졌는지, 준공은 언제인지, 입주는 몇 년 몇 월부터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편이 시장에는 훨씬 유용한 정보다. 공급대책은 발표할 때가 아니라 입주할 때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가 5만가구를 약속했다면 국민은 5만이라는 숫자와 함께 그 집에 들어갈 날짜도 알아야 한다. 일정이 늦어지면 이유와 책임도 밝혀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된 ‘몇 만호 공급’ 발표가 시장의 믿음을 얻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는 숫자를 더 크게 쓰는 대신 달력을 내놓아야 한다.
2026-08-1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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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장'을 말할 때다
[경제일보]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 중남미 3개국 순방을 마치고 3일 귀국했다. 집권 1년은 성과를 자축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데 머물 시점이 아니다. 국정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고 남은 임기 동안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 국민 앞에 분명히 밝힐 때다. 지금 정부가 제시해야 할 가장 절박한 국가 의제는 성장이다. 분배와 복지, 공정과 통합도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 없이는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지난 1년간 정부는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대외 관계를 복원하는 데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표방하며 미국·중국·일본은 물론 유럽과 신흥국으로 외교의 지평을 넓힌 점은 평가할 만하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소비 회복도 경제의 급격한 추락을 막는 버팀목이 됐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을 2.0%로 전망하면서 반도체 경기와 수출 증가를 긍정적 요인으로 꼽았다. 최근에는 수출과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강해졌다는 판단 아래 기준금리를 2.50%에서 2.75%로 올렸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지표만으로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건설투자의 회복은 더디다. 미국의 관세정책과 국제 금융시장 불안, 중국의 산업 추격도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대기업과 수출기업의 실적이 좋아져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방경제와 청년 고용으로 온기가 충분히 퍼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도 남아 있다. 성장률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지속 가능성과 확산성이다. 이번 순방은 이런 한계를 돌파할 외교적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글로벌 인공지능 기업과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인공지능(AI) 협력과 투자 확대를 논의했다. 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에서는 핵심광물과 에너지, 식량, 방산 등 경제안보 분야의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특히 한국과 브라질은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와의 무역협정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실무그룹 구성과 핵심광물 협력 확대에 뜻을 모았다. 중남미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먼 시장에 머물지 않는다. 리튬과 구리 등 첨단산업에 필요한 핵심광물의 주요 공급처이자 방산·조선·원전·바이오·식품 산업의 잠재시장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공급망의 블록화를 재촉하는 상황에서 자원과 시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이 특정 국가와 특정 시장에 편중된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면 중남미와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하지만 정상외교에서 체결한 양해각서와 공동성명은 출발점일 뿐이다. 외교적 약속이 기업의 수주와 투자, 일자리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순방은 사진과 구호만 남긴다. 정부는 국가별 후속 사업을 정리한 경제외교 이행표를 만들어 국민과 기업에 공개해야 한다. 핵심광물 확보 물량과 장기 구매계약, 현지 광산 공동개발, 방산 수출 금융, 바이오 인허가 협력, 메르코수르 무역협정 협상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금융기관이 따로 움직이는 낡은 방식도 바꿔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미래산업을 선택하고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AI·반도체·조선·방산·바이오는 한국이 이미 일정한 기술과 생산 기반을 갖췄고 세계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분야다. 이들 산업을 단순히 개별 기업의 사업으로 보지 말고 인재와 전력, 용수, 데이터, 금융, 세제, 통상외교가 결합된 국가 프로젝트로 다뤄야 한다. AI 경쟁력은 선언이나 연구개발 예산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를 가동할 전력망과 첨단 그래픽처리장치 확보, 산업 데이터 활용, 전문인력 양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반도체 산업도 공장 건설 지원에 그칠 일이 아니다. 소재·부품·장비와 시스템반도체, 첨단 패키징까지 생태계를 넓혀야 한다. 조선과 방산은 수출금융과 유지·보수 체계를 강화하고, 바이오는 임상과 인허가에 걸리는 시간을 경쟁국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규제혁신도 더 이상 부처별로 몇 건의 규제를 없앴다는 실적 경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업이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규제의 존재만이 아니라 규제의 불확실성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부처마다 해석이 다르고 정권이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기준이 흔들린다면 기업은 공장을 짓거나 신사업에 뛰어들기 어렵다. 신산업 규제에는 일정 기간 안에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처리시한제를 도입하고, 정부가 기한 내 답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제도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도 정부 지원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세제와 금융, 인프라를 제공한다면 기업은 국내 투자와 고용, 협력업체와의 성과 공유로 응답해야 한다. 해외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더라도 연구개발과 핵심 제조기반, 양질의 일자리는 국내에 남기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의 기술 축적과 청년의 기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성장정책을 소수 기업을 위한 특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의 책임도 무겁다. 여야가 모든 경제정책을 정쟁의 소재로 삼는 동안 세계 각국은 AI와 반도체, 에너지와 방산을 놓고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성장전략은 어느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회는 첨단산업 전력망과 인재 양성, 기업 투자와 규제혁신에 필요한 법안을 정파적 이해에서 떼어내 처리해야 한다. 정부 역시 야당과 기업, 노동계의 의견을 듣고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주역>에는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는 말이 나온다.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다. 한국 경제는 과거의 성공 방식만으로 더 나아가기 어려운 변곡점에 서 있다. 수출 대기업과 수도권, 추격형 제조업에 기댄 성장 모델을 혁신기업과 지역,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선도형 성장 모델로 바꾸지 못하면 저성장은 일상이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첫 1년이 위기를 수습하고 국정 기반을 세운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중남미 순방에서 확보한 외교적 공간을 공급망과 시장, 투자와 일자리로 바꾸는 일이 그 첫 시험대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시간을 끝내고 경제가 국민의 삶을 일으키는 시간을 열어야 한다. 성장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많지 않다. 정부는 이제 성장의 필요성을 주저하지 말고 말해야 한다. 다만 그 성장은 소수의 숫자를 키우는 성장이 아니라 기업의 혁신과 노동의 정당한 보상, 지역의 기회와 국민통합을 함께 이끄는 성장이어야 한다. 취임 1년 이후의 국정은 바로 그 목표에 집중돼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대전환의 골든타임은 이미 시작됐다.
2026-08-03 09: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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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빅테크의 한국행, 공짜 투자는 없다
[경제일보] 미국 빅테크의 투자를 한국으로 끌어오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등을 만난다.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기업 총수들도 함께한다. 청와대는 단순한 양해각서를 넘어 전략적 제휴, 장기계약, 실질적인 투자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출국을 앞두고 이번 방문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늘리는 자리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 한국 투자를 강화하도록 만드는 자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브로드컴과 오픈AI, 앤트로픽, 엔비디아 등을 상대로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 빅테크에 돈을 들고 찾아가는 외교에서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외교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의미다. 방향은 옳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 빠른 통신망, 높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도 반도체와 기계·장비 수출에 힘입어 전 분기 대비 0.6% 성장했다. 건설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경제를 떠받쳤다는 것은 한국 산업의 힘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반도체는 강하지만, 국내 투자와 내수의 온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센터와 연구소, 클라우드 거점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투자는 애국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엔비디아와 오픈AI가 한국을 좋아해서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과 기업인이 악수했다고 공장이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전력 가격과 공급 안정성, 인허가 속도,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데이터 규제를 계산한다. 한국이 경쟁국보다 더 나은 수익과 더 적은 불확실성을 제공하지 못하면 빅테크의 돈은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중동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내줘야 할까. 먼저 내줄 것은 속도다. 공장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까지 몇 년씩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 초대형 투자가 들어오기 어렵다. 환경과 안전 기준을 낮추라는 뜻이 아니다.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같은 서류를 반복해서 내는 행정,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규제, 허가 일정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빅테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엄격한 규제보다 예측할 수 없는 규제다. 두 번째로 내줄 것은 전력과 기반시설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막대한 전기와 냉각용수, 통신망, 변전소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외치면서도 송전망 건설과 전력 공급 결정을 미룬다면 투자 유치 구호는 공허해진다. 전력을 기업에 싸게 퍼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이 부담할 비용과 정부가 구축할 기반시설,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전력조달 방식, 지역사회에 돌아갈 이익을 사전에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시장이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에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 거점을 두면 정부와 공공기관, 금융·의료·제조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공공부문의 AI 도입을 국내 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무조건 막아도 안 되고, 반대로 해외 플랫폼에 통째로 넘겨서도 안 된다.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공동으로 제품을 만들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경쟁국들이 법인세 감면과 부지, 전력, 정책금융을 한 묶음으로 제공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시장원리를 외치며 빈손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 다만 보조금은 투자 발표가 아니라 투자 이행에 지급해야 한다. 공장 착공과 고용, 국내 조달, 공동 연구개발 등 약속이 실제 집행되는 단계마다 혜택을 나누는 방식이 옳다. 일자리도 기술도 남기지 않는 서버 건물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과 전력을 무제한 제공하는 것은 투자 유치가 아니라 임대업에 가깝다. 내주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하다. 첫째는 데이터 주권이다. 의료와 금융, 공공행정, 산업기술 데이터가 해외 기업의 폐쇄된 플랫폼 안에 갇히면 한국은 AI를 사용하는 나라는 될 수 있어도 AI를 통제하는 나라는 되기 어렵다. 민감정보의 저장 위치와 처리 방식, 제3국 이전, 정부의 감독권은 협상 가능한 부수 조건이 아니다. 둘째는 규제 면책특권이다. 빅테크의 투자가 크다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나 공정경쟁, 저작권, 소비자 보호 기준까지 면제해서는 안 된다. 국내 기업에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면서 해외 기업에는 투자 유치를 이유로 예외를 준다면 시장은 기울어진다. 규제는 단순해야 하지만 공평해야 한다. 셋째는 국내 산업의 성장 기회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 시장과 전력, 데이터를 이용하면서 국내 클라우드·소프트웨어·AI 스타트업을 하청업체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투자 협약에는 국내 기업의 공급망 참여, 대학·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 국내 인재 채용과 교육, 한국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이 포함돼야 한다. 한국이 제공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모두 본사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면 투자액이 아무리 커도 국익은 작다. 노자는 ‘도덕경’ 36장에서 “장차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固與之)”고 했다. 투자를 얻으려면 한국도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문제는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다. 한국이 줘야 할 것은 신속한 행정과 안정적인 전력, 예측 가능한 세제, 매력적인 시장이다. 내줘서는 안 될 것은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공정한 경쟁질서, 국내 산업이 성장할 몫이다. 전자는 투자의 기반이고, 후자는 국가의 주권이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빅테크 투자 유치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건물과 서버를 대신 지어주는 사업으로 전락한다.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성과를 투자금액 한 줄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역에 무엇을 짓는지, 전력과 물은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지, 국내 기업은 어떤 공급망에 참여하는지, 몇 명을 고용하고 어떤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지까지 공개해야 한다. 투자 유치의 성적표는 협약서에 적힌 달러가 아니라 한국에 남은 기술과 일자리, 세수와 수출로 작성돼야 한다. 미국 빅테크의 한국 투자는 구걸할 대상도, 두려워할 대상도 아니다. 국가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맞추는 거래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시장과 인재라는 귀한 카드를 갖고 있다. 그 카드를 헐값에 내주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들어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빅테크를 불러오는 데 공짜 점심은 없다. 그렇다고 식당과 주방까지 넘길 필요도 없다. 문은 열되 집문서는 지키는 협상, 그것이 AI 정상외교가 갖춰야 할 국익의 원칙이다.
2026-07-24 07: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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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폴더블 3종 체제로 승부…168만~345만원 '가격 사다리' 세웠다
[경제일보] 삼성전자가 폴더블 스마트폰 제품군을 3종으로 확대하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기존 책처럼 좌우로 펼치는 폴드 제품을 콘텐츠 소비형과 고성능 생산성 모델로 나누고, 플립까지 더해 이용 목적과 가격대에 따른 선택지를 넓혔다. 삼성전자는 22일 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드 빌링스게이트에서 ‘갤럭시 언팩 2026’을 열고 갤럭시 Z 폴드8과 갤럭시 Z 폴드8 울트라, 갤럭시 Z 플립8을 공개했다. 폴더블 제품에 ‘울트라’ 명칭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은 “AI가 진화할수록 모바일 기기는 사용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접점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갤럭시 Z 시리즈가 차세대 인텔리전스 시대를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 넓어진 폴드 선택지…몰입형과 생산성형으로 분리 새롭게 추가된 갤럭시 Z 폴드8은 콘텐츠 소비에 초점을 맞춘 와이드형 폴더블이다. 접었을 때는 5.5형, 펼쳤을 때는 7.6형 화면을 제공한다. 메인 화면에 4대 3 비율을 적용해 영상과 전자책, 웹 콘텐츠를 볼 때 발생하는 여백을 줄였다. 무게는 역대 갤럭시 폴드 가운데 가장 가벼운 201g이며 펼쳤을 때 두께는 4.5㎜다. 4800mAh 배터리와 5000만 화소 광각·초광각 듀얼 카메라를 탑재했다. 전·후면을 동시에 촬영하는 ‘듀얼 레코딩’과 특정 인물을 자동 추적해 영상을 편집하는 ‘마이 팬캠’도 지원한다. 갤럭시 Z 폴드8 울트라는 기존 폴드의 대화면 생산성 경험을 최상위 사양으로 끌어올린 제품이다. 8형 메인 화면과 215g 무게, 펼쳤을 때 4.1㎜ 두께를 갖췄다. 2억 화소 광각과 5000만 화소 초광각, 1000만 화소 망원 카메라를 탑재했으며 APV 코덱을 활용한 8K 영상 촬영도 지원한다. 두 폴드 모델에는 ‘갤럭시용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가 적용됐다. 울트라 모델은 5000mAh 배터리와 45W 고속 충전, 듀얼 패스 충전 구조를 채택했다. 일반 폴드8 역시 45W 유선 충전을 지원한다. 갤럭시 Z 플립8은 펼쳤을 때 6.1㎜ 두께와 180g 무게로 역대 플립 가운데 가장 얇고 가볍다. 4.1형 플렉스윈도우에서 앱과 맞춤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5000만 화소 광각 카메라와 4300mAh 배터리, 엑시노스 2600을 탑재했다. ◆ 폴드 진입가는 낮추고 울트라·플립은 올렸다 가격 정책은 제품별로 엇갈렸다. 256GB 기준 갤럭시 Z 폴드8은 227만8100원, 폴드8 울트라는 257만7300원, 플립8은 168만3000원으로 책정됐다. 폴드8 울트라 1TB 모델은 345만1800원으로 역대 갤럭시 폴더블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이다. 지난해 갤럭시 Z 폴드7 256GB 가격은 237만9300원이었다. 올해 폴드8의 진입 가격은 이보다 10만1200원 낮지만, 제품 성격이 바뀐 만큼 단순한 가격 인하로만 보기는 어렵다. 와이드형 폴드8을 새로 추가하고 기존 프리미엄 폴드 수요를 울트라로 이동시키면서 폴드 제품군의 가격대를 상하로 확장한 전략에 가깝다. 폴드8 울트라는 전작 폴드7보다 19만8000원 비싸다. 플립8의 인상 폭은 더 크다. 256GB 모델은 전작보다 19만8000원, 512GB 모델은 29만2600원 올랐다. 플립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폴더블이라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AI와 카메라, 디자인을 강화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40여개 앱 움직이는 에이전트 AI 신제품에는 구글과 협업한 ‘제미나이 인텔리전스’가 모바일 기기 최초로 탑재됐다. 화면과 대화의 맥락을 이해해 배달과 예약, 쇼핑, 일정 관리 등 40여개 앱과 서비스를 연결해 작업을 수행한다. 대화 중 약속이 정해지면 일정 등록을 제안하는 ‘나우 넛지’와 메모·이미지·녹음·문서를 한 공간에서 정리하는 ‘제미나이 노트북’도 제공한다. One UI 9에는 AI가 이용자를 대신해 수행한 작업을 확인하는 ‘AI 어시스턴트 활동 대시보드’가 추가됐다. 내구성에는 티타늄 합금 필름과 강화 티타늄 플레이트를 결합한 ‘플렉스 티타늄’ 기술이 처음 적용됐다. 폴드8과 폴드8 울트라의 메인 화면 밝기는 최대 3000니트로 높아졌으며 주름 노출과 야외 시인성을 개선했다. 국내 사전 판매는 오는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진행된다. 공식 출시는 8월 7일이다. 256GB 모델 구매자에게 512GB로 용량을 높여주는 더블 스토리지 혜택과 구글 AI 프로 6개월 무료 이용권 등이 제공된다. 삼성전자의 이번 전략은 하나의 폴드 제품으로 모든 수요를 받던 방식에서 벗어나 폴더블 시장을 콘텐츠형·생산성형·개성 표현형으로 세분화한 데 의미가 있다. 진입 모델의 문턱은 낮추면서 최상위 제품의 가격과 성능을 함께 끌어올려 시장의 외연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계산이다. 한편 폴더블 시장의 주도권은 더 얇은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용자가 일반 스마트폰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이유를 화면과 AI, 카메라 경험으로 얼마나 분명하게 증명하느냐가 관건이다. 168만원에서 345만원까지 넓어진 가격표는 삼성전자가 던진 선택지인 동시에 폴더블 대중화가 넘어야 할 새로운 시험대다.
2026-07-22 23: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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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그룹, 5300개 협력사 대금 안정성 높인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왼쪽 다섯번째)과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왼쪽 네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16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그룹 상생협약 체결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제일보] 포스코그룹이 협력사에 지급하는 납품대금을 평균 10일 이내 전액 현금성으로 지급하고, 1·2차 협력사의 하위 업체 대금 지급기간도 최대 30일 이내로 단축한다. 1차 협력사에 집중됐던 성과공유제와 금융·기술 지원도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한다. 16일 포스코그룹은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포스코그룹 상생협약 체결식’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협력사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행사에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과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 이희근 포스코 사장,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등 그룹 주요 사업회사 대표와 1·2차 협력사 관계자 등 13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포스코그룹과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사뿐 아니라 2·3차 협력사까지 안정적으로 납품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결제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협약에는 △대금 지급조건 개선 △상생결제시스템 활성화 △상생협력에 참여하는 1차 협력사 우대 △협력사 경쟁력 향상 지원 등 4대 실천사항이 담겼다. 포스코그룹은 협력사의 자금 운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납품대금을 평균 10일 이내 전액 현금성으로 지급한다. 1차 협력사는 2차 협력사에, 2차 협력사는 3차 협력사에 각각 최대 30일 이내 대금을 지급하도록 지원한다. 납품대금 지급이 늦어지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 협력사는 원자재 구매비와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반대로 대금을 조기에 회수하면 차입과 이자 부담을 줄이고 생산설비와 기술개발에 투입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안정적인 대금 흐름은 투자와 고용, 기술혁신의 출발점”이라며 “규모가 작은 협력사일수록 그 효과가 더욱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포스코그룹은 상생결제시스템의 활용도도 높인다. 상생결제는 원청기업이 지급한 납품대금이 공급망 아래 단계까지 안정적으로 전달되도록 만든 결제 방식이다. 1·2·3차 협력사는 약정된 결제일에 현금 지급을 보장받고, 결제일 전에도 원청기업의 신용도를 활용해 비교적 낮은 금융비용으로 대금을 현금화할 수 있다. 이는 포스코그룹이 1차 협력사에 대금을 일찍 지급하더라도 1차 협력사의 자금 사정에 따라 2차 이하 협력사의 대금 회수가 늦어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다. 포스코그룹은 2019년 민간기업 최초로 하도급 상생결제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위 협력사와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한 1차 협력사에는 공급사 평가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포스코그룹의 직접적인 거래·관리 범위 밖에 있는 2·3차 협력사까지 상생제도가 확산되도록 1차 협력사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협력사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과공유제도 확대한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협력사가 공동으로 기술개발이나 공정개선 과제를 수행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원가 절감과 매출 증가 등의 성과를 사전에 정한 방식으로 나누는 제도다. 포스코는 2004년 국내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성과공유제를 도입했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적용 대상을 기존 1차 협력사에서 2차 이하 협력사까지 넓힌다. 금융과 기술개발, 해외시장 진출 분야의 지원도 함께 확대할 방침이다. 이날 협약식에서는 상생제도를 활용해 실적을 개선한 협력사 사례도 공개됐다. 포스코퓨처엠의 1차 협력사인 한승케미칼은 포스코퓨처엠과 공동으로 기존 유독물질을 비유독물질로 대체하는 친환경 기술개발 과제를 수행했다. 한승케미칼은 포스코퓨처엠의 생산현장을 시험 공간으로 활용해 운전 조건과 문제점을 개선하고 새로운 표준 관리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약품의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약 19억5000만원의 매출 증가 효과를 거뒀다. 개발 제품은 3년간 수의계약을 통해 다른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됐다. 김상수 한승케미칼 대표는 “공정거래 협약을 통해 투명한 경영과 기술 보호를 지원받았다”며 “성과공유제와 기술임치, 우수공급사 지원제도 등이 동반성장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승케미칼은 공동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핵심 기술을 기술임치제도로 보호했다. 기술임치는 중소기업이 핵심 기술자료를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 보관하고, 기술 유출이나 탈취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개발 사실과 보유 시점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포스코의 2차 협력사인 주식회사 광우는 스마트공장 구축과 현장 컨설팅 지원을 통해 생산성과 비용구조를 개선했다. 광우는 철강·자동차산업에 사용되는 금속가공유와 화학소재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으로, 2016년부터 포스코 1차 협력사들과 공정거래 협약을 체결해 왔다. 광우는 포스코의 대·중소 상생형 스마트공장 사업을 통해 유사업종의 스마트공장 운영 사례를 살펴보고 전문 프로젝트관리자와 함께 생산공정을 진단했다. 이후 합성에스테르 제조공장에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그 결과 작업자의 실수를 줄이고 생산공정을 개선해 생산성을 12% 높이고 제조경비를 8% 절감했다. 안전과 정보보안, 에너지 관리 분야에서도 포스코 동반성장지원단의 현장 컨설팅을 받았다. 김창섭 광우 경영지원본부장은 “형식적인 지원이 아니라 회사에 필요한 부분을 함께 찾아 개선했다”며 “스마트공장 도입으로 자동화와 생산성 향상이라는 성과를 거뒀다”고 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번 협약으로 그룹 공급망에 포함된 5300여개 협력사가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금 지급과 기술개발, 생산성 향상, 해외시장 진출을 연결해 협력사의 자생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이주태 포스코홀딩스 사장은 “협력사 여러분이 곧 포스코그룹의 경쟁력이며 협력사의 성장이 곧 포스코그룹의 미래”라며 “오늘의 약속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포스코그룹과 협력사의 협약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상생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기업에 정책적 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주 위원장은 “오늘의 상생협약이 성실히 이행되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우수 기업에는 정책적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며 “상생협력은 협력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포스코그룹의 지속적인 혁신을 위한 기반이자 산업 생태계 전체를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포스코그룹은 이번 협약의 주요 내용을 내년 초 예정된 협력사 공정거래 협약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대금 지급과 성과공유, 공급사 평가 등 실제 거래제도에 상생 원칙을 적용해 2·3차 협력사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2026-07-17 13: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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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RWA의 본질…실물자산이 디지털 신뢰와 만날 때
[경제일보] 금융의 역사는 결국 신뢰를 어떻게 계량화하고 증명할 것인가의 역사였다. 과거에는 국가의 공권력, 중앙은행의 발권력, 금고에 쌓인 금이 신뢰의 근거였다. 자본은 보이지 않는 약속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담보와 제도 위에서 움직였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블록체인은 이 신뢰의 방식을 흔들었다. 암호화된 알고리즘과 분산원장이 새로운 금융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실체 없는 가상자산이 보여준 극심한 변동성은 시장에 분명한 교훈을 남겼다. 실물 경제의 생산성과 연결되지 않은 디지털 신뢰는 언제든 신기루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물자산 토큰화, RWA(Real World Assets)는 바로 이 지점에서 등장했다. RWA의 본질은 단순히 부동산, 원자재, 인프라 같은 자산을 디지털 조각으로 쪼개 판매하는 기술이 아니다. 실체 있는 자산이 가진 내재가치에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을 결합하는 금융 구조의 전환이다. 구리와 희토류 같은 전략 원자재, 태양광 발전소와 전력망 같은 인프라 자산은 그 자체로 물리적 실체와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문제는 이들 자산이 대체로 폐쇄적인 거래 구조와 높은 진입장벽 안에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자산은 존재하지만 유동성은 제한됐고, 미래 수익은 예상되지만 자본시장에서 실시간으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RWA는 이 경직된 자산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원자재의 비축 현황, 인프라의 가동률, 장래 수익권, 계약 조건 등을 디지털 장부 위에 기록하고 검증할 수 있다면 자산의 신뢰는 더 이상 일부 기관의 내부 문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산의 상태와 권리 관계가 투명하게 연결될수록 자본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전통 금융 시스템에서는 자산을 평가하고 유동화하기 위해 수많은 중개기관과 법적 절차,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반면 정교하게 설계된 RWA 생태계에서는 스마트 계약을 통해 배당, 정산, 권리 이전 절차를 자동화할 수 있다. 물론 법적 소유권, 회계 처리, 규제 기준,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함께 정비돼야 한다. 기술만으로 금융의 신뢰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RWA가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제 디지털 금융의 경쟁은 단순한 토큰 발행이 아니라 어떤 실물자산을 어떤 법적 구조와 어떤 데이터 체계로 연결하느냐에서 갈린다. 투기성 자본을 모으는 코인과 산업 현장의 현금흐름을 담는 토큰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가상성이 아니라 더 검증 가능한 실체다. 제조 강국 한국에도 이 흐름은 가볍지 않다. 한국 산업은 반도체, 배터리, 조선, 에너지, 인프라 분야에서 막대한 실물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산들은 대기업의 재무제표와 금융권 대출 구조 안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RWA는 이런 산업 자산을 새로운 방식으로 자본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핵심은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신뢰 설계다. 원자재라는 업스트림에서 시작된 디지털 신뢰는 발전소, 전력망, 물류, 데이터센터, 산업단지 수익권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과장된 장밋빛 전망이 아니다. 자산의 실체, 권리의 명확성, 데이터의 검증성, 규제의 수용성을 하나로 묶는 정교한 금융 설계다. RWA는 실물경제와 디지털 금융이 만나는 접점이다. 실체 없는 신뢰는 오래 버티기 어렵고, 유동성 없는 자산은 성장의 속도를 잃는다. 실물자산이 디지털 신뢰를 만나면 자본은 다시 흐를 수 있다. 산업과 금융이 융합되는 다음 경제 지도에서 RWA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선언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의 승부는 실제 자산을 얼마나 투명하게 증명하고, 얼마나 안전하게 거래 가능한 구조로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 [필자 소개] 구교성 | 클레버스(CLEBUS) 의장 2001년 ‘질문·답변을 통한 정보 제공 방법’ 및 ‘대표 키워드 검색’ 등 원천 특허를 출원하며 일찍이 인터넷을 통한 지식 공유와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 시대를 예견했다. 국경 없는 가치 공유와 결제 생태계를 목표로 2006년 클레버스를 설립했다. 이후 2019년 블록체인 기술의 도래와 함께 무형의 지식 자산을 넘어 실물 자산과 에너지 인프라를 토큰화하는 혁신으로 시야를 확장했다. 현재 클레버스를 통해 실물자산(RWA) 거래소를 포괄하는 초연결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선박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부터 공공 자산에 이르는 디지털 트윈 및 STO 인증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글로벌 실물자산 금융화 시대를 개척하고 있다. 또한 클레버스 초연결 생태계의 기축자산통화인 클레코인(CLE)은 현재 고팍스(GOPAX) 가상자산거래소에 상장되어 거래 중이다.
2026-07-06 10: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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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의 정면충돌,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
[경제일보] 정년 65세 논의가 다시 국회와 노사정의 의제로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는 현행 60세인 법정 정년을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올려 2037년 65세에 이르게 하는 방안과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함께 검토하고 있다. 아직 최종 합의안은 아니다. 그러나 정년과 연금 수급 연령의 간극을 더는 방치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에는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현행 법정 정년은 60세 이상이다. 반면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국민연금 노령연금을 받는다. 직장을 떠난 뒤 연금이 나오기까지 5년을 견뎌야 하는 세대가 생겼다는 뜻이다. 퇴직금과 개인연금으로 메우라는 식으로 넘길 수 있는 간격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과 자녀 지원, 부모 부양을 거친 뒤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세대에게 60세 이후의 소득 단절은 생활 자체를 흔드는 변수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기존 일자리의 혜택을 더 누리려는 집단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생산현장과 기술직, 영업과 관리 업무에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숙련이 있다. 인구 감소로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건강과 능력이 있는 근로자를 나이만으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도 한계에 닿고 있다. 고령층의 계속고용은 노후소득 보장과 인력 활용이라는 두 과제를 함께 안고 있다. 청년층이 바라보는 현실은 다르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금융회사 등 안정된 일자리의 채용문은 좁아졌다. 공개채용은 줄고 경력직 중심 채용은 늘었다. 학업을 마친 뒤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취업준비와 단기 일자리를 오가는 청년도 많다. 지난 5월 청년층 고용률은 43.8%로 1년 전보다 2.4%포인트 낮아졌고, 실업률은 7.2%로 0.6%포인트 높아졌다. 청년에게 정년 연장은 자신의 취업 순서가 더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소식으로 들릴 만하다. 세대 갈등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을 분석한 한국개발연구원 연구는 민간기업에서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는 고령 근로자가 1명 늘 때 청년 고용이 약 0.2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대규모 사업장과 고용보호가 강한 업종, 기존 정년이 낮았던 사업체에서 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기업이 인건비와 정원을 조정할 때 해고 대신 신규 채용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면, 정년 연장은 청년에게 채용 감소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다고 고령층의 일자리를 줄여 청년 채용을 늘리자는 결론도 현실성이 없다. 업종에 따라 고령 근로자의 경험과 청년의 기술 적응력이 결합할 때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에는 숙련 인력의 계속고용이 경영의 숨통을 틔울 수도 있다. 공공부문에서 청년 의무고용과 임금 조정을 병행한 경우에는 고령층 고용 증가가 청년 고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년 연장 자체보다 이를 어떤 조건 아래 시행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정년 65세를 추진하려면 청년 채용을 함께 보장하는 약속이 필요하다. 정년 연장의 혜택이 큰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단계별 청년 신규채용 계획을 노사 협의에 담고, 그 이행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 고령 근로자의 계속고용을 지원하는 세제와 재정 지원도 청년 채용 유지, 직무훈련 확대, 인턴의 정규직 전환과 연동할 필요가 있다. 정년은 연장됐는데 청년 채용은 줄어드는 상황을 막을 장치가 있어야 한다. 임금체계 개편도 피할 수 없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는 연공급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리면 기업은 신규 채용보다 기존 인력 유지에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일방적으로 깎는 방식은 갈등만 키운다. 맡은 일의 난도와 책임, 숙련도와 성과를 반영하는 보상체계로 옮겨 가야 한다. 고령 근로자에게는 기술 전수와 품질 관리, 현장 교육처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업무를 맡기고, 청년에게는 새 업무와 승진의 기회를 넓히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에는 대기업과 같은 처방을 들이밀 수 없다. 인력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사업장에 획일적 정년 연장을 요구하면 조기퇴직과 외주화, 비정규직 확대를 부를 우려가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임금 부담과 직무 전환 비용을 지원하되, 청년 채용과 숙련 전수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고령 근로자의 계속고용이 인력난 해소로 이어지는 곳도 있고, 경영 부담으로 작용하는 곳도 있다는 점을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과도기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2037년 65세라는 장기 목표만 내세우고 그 사이 60세 정년을 맞는 세대의 소득 공백을 외면하면 또 다른 불공정이 생긴다. 정년 상향 속도와 재고용 의무 시점,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함께 맞춰야 한다. 제도 전환기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5년의 소득 공백을 떠안고, 누군가는 그 부담을 피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청년에게 기다리라고만 할 수도 없고, 고령층에게 일터를 비우라고만 할 수도 없다. 정년 연장 논의는 한 세대의 고용을 지키기 위한 법률 개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령층의 소득 공백을 줄이고 청년의 첫 일자리 기회를 지키며,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임금과 직무 체계를 만드는 일까지 함께 풀어야 한다. 정년 65세를 둘러싼 논쟁의 기준은 퇴직 연령을 몇 살로 높였느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고령 근로자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면서도 청년의 출발선이 더 뒤로 밀리지 않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조건을 갖춘 합의라야 세대 갈등을 줄이는 제도 개편으로 남을 수 있다.
2026-06-22 09: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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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없는 선거가 남긴 상처, 음모론과 정략을 넘어 시스템 개혁이 먼저다
[경제일보] 민주주의는 투표로 시작해 투표로 완성된다. 국민이 한 표를 행사하는 순간 주권은 현실이 되고, 선거는 국민의 뜻을 국가 운영에 반영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신성한 절차가 된다. 그렇기에 선거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며, 유권자가 불편함 없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투표에 차질을 빚었고, 개표 과정에서도 혼란이 발생해 개표소가 봉쇄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선거 관리의 기본 중 기본인 투표용지 수급과 운영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 앞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선거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불편과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명백한 행정 실패이자 관리 부실이다. 국민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실수 자체보다도 반복되는 무능과 무책임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각종 채용 비리 논란과 관리 부실 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 왔다. 그럼에도 조직 혁신과 내부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이번 사태를 통해 그 허술한 관리 체계가 다시 드러났다. 선거 관리 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야가 오는 18일 본회의에서 선관위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런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정조사는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위한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사전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잘못이 확인된다면 관련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국정조사의 목적이 정치 공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전국 재선거' 주장이나 이를 둘러싼 정략적 논쟁은 사태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 선거 관리의 부실을 비판하는 것과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명확한 증거와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선택을 통째로 부정하는 주장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특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정치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쟁이 아니라 진실이며, 음모론이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출발점은 같아야 한다. 국민의 투표권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선거 관리의 허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책임성은 강화하고, 선거 운영 전반에 대한 점검과 디지털 관리 체계 개선, 위기 대응 매뉴얼 정비 등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공자는 "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역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선거는 국민과 국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흔들릴 때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를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는 것 또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음모론도, 정략적 구호도 아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사과, 그리고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6-06-17 09: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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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49조, 포춘 500 132위… 쿠팡이 만든 이커머스의 새 기준
[경제일보] 서울 어느 동네에서 밤 11시에 주문을 넣으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택배가 놓여 있다. 이제는 당연한 일처럼 여기지만 1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쿠팡이 2014년 로켓배송을 선보이기 전까지, 택배는 '1~3일 내 도착'이 통념이었다. 그 쿠팡이 지난해 49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포춘지가 매년 총매출 기준으로 발표하는 '포춘 500'에는 132위로 이름을 올렸다. 2023년 195위로 처음 진입한 뒤 4년 연속 순위를 높인 결과다. 한국 이커머스 기업이 세계 최대 기업 순위 150위권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역대 최대 실적, 3년 연속 흑자 쿠팡Inc가 올 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5년 연간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매출은 345억달러(원화 기준 49조1197억원)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고정환율 기준으로는 18% 성장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6790억원으로 전년 대비 8% 늘었다. 2023년 6170억원으로 처음 연간 흑자를 낸 이후 3년 연속 흑자 기조를 이어갔다. 당기순이익은 3030억원으로 전년의 세 배를 넘겼다. 지난해 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3억달러(약 9조원)로 전년보다 늘었다. 같은 해 패스트컴퍼니도 쿠팡을 '2025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유통 부문 2위로 선정했다. ◆AI가 먼저 움직인다, 로켓배송의 원리 로켓배송이 가능한 이유를 쿠팡은 AI에서 찾는다. 수천만 건의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상품이 언제, 어느 지역에서 팔릴지를 미리 예측하고,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해당 상품을 가까운 물류센터로 옮겨두는 방식이다. 쿠팡 관계자는 "수조 건 이상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문 예측부터 배송 완료까지 물류 전 과정에 AI 기술을 깊숙이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물류센터 내부에서도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무인운반로봇(AGV)이 선반을 작업자 앞으로 옮겨주고, 소팅 로봇이 배송지에 따라 상품을 자동 분류한다. 소팅 봇 도입 이후 상품 분류 작업의 업무량은 약 65% 줄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3조원의 투자, 지방에 생긴 일자리 이 기술 기반 위에서 쿠팡은 물류망을 전국으로 넓히고 있다. 현재 전국 260개 시군구 중 182곳(70%)에서 로켓배송이 가능하다. 쿠팡은 2026년까지 3조원 이상을 물류 인프라에 추가 투자해 2027년에는 230여 곳(88% 이상)까지 서비스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지방에 물류센터가 들어서는 동안 일자리도 함께 생겼다. 2024년 9월 기준 쿠팡과 물류 자회사(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의 합산 고용 인원은 8만 명을 넘어섰다. 국내 민간 고용 규모 2위다. 특히 지방 청년 일자리가 빠르게 늘고 있다. 비서울 지역 물류센터의 20~30대 청년 직원 수(일용직 제외)는 올해 1만7000명을 넘었다. 지난해 9월 1만5000명에서 반년 만에 2000명 더 늘어난 것이다. 광주, 대전, 경남 등 지방 물류센터의 2030 청년 비중은 50% 안팎으로 수도권 물류센터(약 40%)보다 오히려 높다. 광주첨단물류센터에서 출고팀 현장 관리자로 일하는 배희재(29) 씨는 "수도권의 높은 월세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다가 고향 인근 물류센터에 입사해 경제적으로 안정됐다"고 말했다. 쿠팡은 지역 대학 15곳과 산학협력을 맺어 인턴십과 정규직 채용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에서 검증된 '한국 공식' 2022년 10월, 쿠팡은 대만에 진출했다. 한국에서 만든 로켓배송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실험이었다. 대만 사업은 진출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5년 2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54% 성장했다. 쿠팡은 현지 물류 인프라 구축에만 5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투자했고, 최근에는 와우 멤버십 프로그램도 현지에 출시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은 "한국에서 만들어낸 플레이북이 다른 시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된 사례가 대만"이라고 밝혔다. 쿠팡을 통해 대만에 동반 진출한 국내 기업은 1만2000곳에 달하며, 현지 판매 제품의 70%가 한국 중소기업 생산품이다. '로켓그로스' 서비스를 통해 소상공인들도 쿠팡의 물류망을 빌려 해외에 나갈 수 있다. 럭셔리 커머스 플랫폼 파페치까지 더하면 쿠팡의 판매망은 190개국으로 넓어진다. 1400개 이상의 브랜드와 부티크가 파페치를 통해 전 세계 고객과 거래한다. 로버트 포터 최고글로벌책임자(CGO)는 "AI, 맞춤형 로보틱스, 물류 분야 전략적 투자를 통해 미국 상품·서비스 수출 50억달러 이상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2014년 로켓배송이 세상에 나왔을 때 '밤 11시 주문이 다음 날 아침 도착한다'는 약속을 믿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11년 뒤, 그 약속은 한국 소비자의 일상이 됐다. 같은 약속이 이번엔 대만 소비자를 향하고 있다.
2026-06-08 16:4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