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이 로봇을 가르치는 학교로 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자동차 생산기지를 휴머노이드 로봇의 훈련장으로 활용하면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피지컬 인공지능(AI)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로봇을 개발한 뒤 고객을 찾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세계 곳곳의 현대차·기아 공장을 첫 수요처이자 실증 공간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 로봇 계열사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지난 21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응용센터(RMAC)’를 열었다.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실제 자동차 생산공정에 투입하기 전 작업을 학습시키는 시설이다.
아틀라스는 이곳에서 자동차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순서에 맞춰 배열하는 작업부터 배운다.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해 움직일 수 있도록 실제 공장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내년 더 큰 시설로 훈련센터를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전략이 주목받는 이유는 ‘공장’이라는 확실한 실험장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이다. HMGMA는 연산과 데이터, 로봇을 생산 과정에 연결한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이다. 500여대의 주행 로봇이 부품을 나르고 50여대의 주차 로봇이 완성차를 이동시키는 등 자동화 설비가 실제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현대차는 이곳에 2028년부터 아틀라스를 단계적으로 투입한다. 우선 부품 분류와 물류 등 안전성과 생산성 개선 효과가 명확한 작업부터 시작하고 2030년에는 부품 조립과 같은 복잡한 공정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29년 하반기에는 기아 조지아 공장에도 투입하고 이후 글로벌 생산거점으로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양산 준비도 동시에 진행한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까지 미국에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연구실에서 몇 대의 로봇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 산업용 제품으로 대량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며 쌓은 품질관리와 공급망 운영 능력을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차가 가진 강점이다.
그룹 계열사와 자동차 부품업계도 새로운 시장을 맞게 된다. 휴머노이드에는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센서, 배터리, 카메라, 구조물 등 자동차 산업과 겹치는 부품이 적지 않다. 현대모비스는 아틀라스의 핵심 구동부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량이 줄더라도 로봇이라는 새로운 완제품 시장이 열리면 기존 부품사의 기술과 생산설비를 활용할 영역도 넓어질 수 있다.
현대차가 그리는 구조는 단순한 로봇 제조를 넘어선다. 공장에서 아틀라스를 움직이며 데이터를 모으고 이를 AI 학습에 활용해 로봇 성능을 높인 뒤 다시 생산 현장에 투입하는 선순환 방식이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는 연구실이나 가상환경에서 얻는 데이터보다 작업의 예외 상황과 복잡성을 많이 담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구글 딥마인드와 손잡은 것도 같은 이유다. 현대차가 가진 제조 현장과 로봇 하드웨어에 글로벌 AI 기업의 모델을 결합하면 로봇의 판단과 작업 능력을 빠르게 높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AI 기반시설과 관련 인재에도 5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글로벌 경쟁도 이미 시작됐다. 테슬라는 ‘옵티머스’를 자동차 공장에 투입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고 중국은 유니트리와 UB테크 등을 앞세워 휴머노이드 양산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산업·전문 서비스용 휴머노이드 판매량은 약 7000대에 불과했다. 아직 산업용 로봇 시장 전체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글로벌 금융업계에서는 2030년 휴머노이드 출하량이 100만대를 넘어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대차가 선택한 방식은 물량 경쟁보다 제조 현장에서 먼저 성능을 검증하는 쪽에 가깝다. 자동차 공장은 로봇에게 까다로운 환경이다. 사람과 설비가 동시에 움직이고 차종에 따라 부품과 작업 순서가 달라진다. 이곳에서 안전성과 작업 속도를 증명한다면 물류와 건설 등 다른 산업으로도 적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아직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며 아틀라스 역시 대규모 상업 배치가 시작되지 않았다. 휴머노이드가 기존 산업용 로봇이나 자동화 설비보다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면서 가격까지 낮출 수 있는지도 검증이 필요하다. 로봇 열풍과 실제 산업 수요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다른 로봇기업과 다른 출발점을 갖고 있다. 세계 곳곳에 자동차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수많은 부품사와 대량생산 체계를 확보했다. 직접 개발한 로봇을 자체 공장에 먼저 투입해 수요와 데이터를 동시에 만들 수도 있다.
자동차 산업은 100년 넘게 사람의 이동을 위한 기계를 만들어왔다. 현대차는 이제 그 제조 역량을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거나 돕는 기계로 확대하려 한다. HMGMA에 문을 연 로봇 훈련센터가 의미 있는 이유다. 아틀라스가 2028년 실제 생산라인에 들어서는 순간 현대차의 공장은 자동차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로봇을 학습시키고 다시 상품으로 만드는 제조 플랫폼으로 바뀐다.
한편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전략이 성공한다면 자동차 다음 성장동력은 자동차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십년간 자동차를 만들면서 확보한 공장과 데이터, 부품 공급망에서 다시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29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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