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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전'도 좋다, 대통령이 모든 길을 뚫을 순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다시 기업들의 투자 일정표를 펼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제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형 투자사업의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첫 회의를 연 지 한 달여 만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전력과 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와 규제 개선까지 대통령 앞에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산업전쟁의 시계에 한국 행정의 느린 걸음을 맞출 수 없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진단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피지컬AI에서 1~2년은 단순히 달력 몇 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기술 세대가 바뀌고 고객사가 공급망을 다시 짜고, 경쟁국이 새로운 공장을 먼저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는데 부지와 전력, 용수,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정부 부처를 몇 년씩 오가게 한다면 국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각종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을 함께 구축하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사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조기에 분산 배치해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앞당기고, 필요한 전력도 사업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에서도 수백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나서자 오래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업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대통령이 몇 번이고 회의를 열어도 좋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박수를 치고 끝내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일이 움직이는가.’ 군공항 이전 시점부터 산업단지 착공, 송전망과 용수 공급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일정표를 확인해야 비로소 부처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우리 행정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처음 길을 뚫는 것은 필요하다. 군과 지방자치단체, 여러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수십 년간 뒤엉킨 사업이라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사안에서 대통령이 “이 방향으로 가라”고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첫 문을 열었다면 두 번째 문부터는 장관들이 열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투자 일정을 책임지고, 국토·환경 행정은 부지와 교통망, 환경과 용수를 맡아야 한다. 전력 당국은 송전망의 완공 시점을 책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을 설득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는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내야 한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면 왜 늦었는지 설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행정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책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산업·국토·환경·전력·지방행정이 모두 관여한다. 하지만 각 기관은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산단 지정에는 문제가 없고, 환경 절차에도 문제가 없고, 전력 공급도 규정대로 검토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이 자기 몫을 했다는 데 정작 공장 착공은 늦어진다. 기업 눈에는 정부가 여러 개가 아니다. 하나다. 이 단순한 상식을 행정이 자주 잊는다. 기업인은 어느 부처의 어느 과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공장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답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대통령 앞까지 사안이 올라간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동안 “어렵다”고 하던 사안에 대안이 붙고, “검토 중”이던 사업에 날짜가 생긴다. 법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행정’의 효용과 위험이 함께 있다. 초기에는 빠르다. 강력한 정치적 권위가 부처의 칸막이와 오래된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화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사업은 빨리 가고, 대통령의 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한 사업은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기업 입장에서 법과 제도보다 대통령의 관심 여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그것은 좋은 투자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반도체 공장의 물길과 송전선까지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동안 외교와 안보, 복지와 교육, 저출생과 재정도 대통령을 기다린다. 메가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원조정실이 되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번 ‘전격전’의 진짜 성과는 특정 공장의 착공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먼저 대형 전략투자에는 한 사람이 전체 일정을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스톱 창구’를 설치했다고 해놓고 접수만 한 곳에서 받은 뒤 서류가 다시 여러 기관을 순회한다면 간판만 바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전략 프로젝트에는 총괄 책임자를 두고 부지·전력·용수·환경·교통 문제를 한꺼번에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 환경 검토가 끝난 뒤 전력을 논의하고, 전력 문제가 정리된 뒤 용수를 검토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세계 산업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전력·용수·교통 문제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환경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차를 없애는 것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주민의 권리와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건너뛰거나 노동·환경 기준을 일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빨라 보일지 몰라도 갈등이 쌓이면 소송과 반발로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빠른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정부다. 공무원이 결정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정치권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전례를 찾고 결재를 미룬다. 명백한 특혜나 위법이 아니라면 당시의 자료와 절차에 따라 내린 합리적인 정책 판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은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인사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맹자’에는 “도선부족이위정 도법불능이자행(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도 스스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제도가 움직인다. 지금 메가프로젝트에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굳어버린 행정을 처음 움직이려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독촉에 오래 의존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를 제도로 바꾸고, 제도를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대통령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고 처음 막힌 길을 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총리가 부처를 조정하고 장관이 일정에 책임을 지며, 지자체장이 현장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없어도 담당자가 움직이고 정해진 날짜에 답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적표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가 아니라 그 뒤 대통령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장관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자체장이 기업과 주민을 설득했는지, 담당 기관이 약속한 날짜 안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격전’은 시작할 때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언제까지나 전격전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뛰어 막힌 길을 열어야 할 때일 수 있다. 그 길이 열렸다면 이제 장관과 지자체장이 달려야 한다. 대통령은 방향을 정하고, 장관은 일정과 결과에 책임지며, 공무원은 법과 원칙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정부. 그것이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의 다음 단계다. 대통령의 속도는 임기와 함께 끝난다. 시스템의 속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다. 이번 ‘전격전’의 가장 값진 성과는 공장 몇 곳을 빨리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제시간에 움직이는 정부를 남기는 데 있다.
2026-08-11 0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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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숙 국무총리, 폭염 대응 중대본 2단계로 올렸다
[경제일보] 정부가 폭염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2단계로 격상했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8월 2일 관계부처와 지방정부에 긴급지시를 내리고 취약계층 보호와 야외작업 관리, 전력·용수 수급 점검을 주문했다. 기온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경남 양산은 이날 닷새 연속 40도를 넘겨 국내 관측 사상 처음 있는 일이 됐다. 전날 기록한 41.6도는 122년 관측 역사상 최고치다. 서울도 이날 오전 서북권에 폭염경보가 내려지면서 전역이 경보 구역이 됐다. 한 총리는 지난달 31일 주말 이후 폭염중대경보가 확대될 가능성을 언급하며 긴장해야 할 한 주라고 밝힌 바 있다. 지시의 무게는 사람에 실렸다. 보건복지부는 독거노인과 쪽방 거주민이 이용하는 경로당과 쉼터의 냉방 가동 상황을 점검하고 안부 전화와 방문을 수시로 하도록 했다. 행정안전부는 부처와 지방정부의 대책 추진 상황을 점검해 조정하고, 지방정부는 무더위쉼터와 폭염저감시설 운영에 문제가 없는지 현장을 직접 살피도록 했다.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지시가 뒤따랐다. 농림축산식품부에는 고령 농업인이 야외작업 중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다며 무리한 논밭일을 자제해 달라는 마을방송을 적극 실시하고 비닐하우스와 논밭 현장을 점검하도록 했다. 고용노동부에는 물류센터와 건설현장의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무더위 시간대에 작업 중지와 시간 변경이 이뤄지도록 지도하라고 지시했다. 5대 수칙은 물과 바람·그늘, 휴식, 보냉장구, 응급조치다. 휴식은 2시간마다 20분 이상이 기준이다. 고용노동부는 6월 15일부터 폭염 취약사업장 1000곳을 대상으로 불시 감독을 벌이며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무관용으로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산업 피해 대책도 함께 나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가축과 양식어류 폐사를 줄이기 위해 냉방장치와 고수온 대응장비 가동을 신속히 지원하도록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는 두 가지가 주어졌다. 냉방 수요가 급증해도 전력 수급이 흔들리지 않도록 예비율을 수시로 점검하는 일과, 댐과 저수지의 용수 저장 현황을 관리하는 일이다. 일부 지역에서 가뭄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가뭄 취약 지역의 생활·공업용수 공급 상황도 살피도록 했다. 폭염과 가뭄이 함께 오면 냉방 전력과 농업용수 수요가 동시에 치솟는다. 각 부처에는 공영방송과 재난문자, 전광판, 마을방송 등 가용한 매체를 모두 써서 폭염 상황과 소관별 행동 요령을 알리도록 했다. 한편 피해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질병관리청 집계로 5월 15일부터 지난달 29일까지 온열질환자는 1638명, 사망자는 12명이다. 환자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2779명보다 적지만 사망자는 지난해 16명의 75% 수준이다. 최근 나흘 사이에 사망자의 절반이 몰렸다. 환자는 줄었는데 중증으로 가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2026-08-02 14: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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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지는 한 달이면 정한다는데…반도체 공장은 언제 돌아가나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첨단산업단지 지정 요청이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후보지를 정하기로 했다. 통상 10년 이상 걸리는 산업단지 조성 기간을 기업 투자 일정에 맞춰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의 전체 조성 일정도 당초 2047년에서 2040년으로 최대 7년 앞당길 방침이다. 그러나 후보지 지정은 공장이 가동되기까지 거쳐야 할 긴 절차의 출발점일 뿐이다. 반도체 산업은 시간 싸움이다. 미국과 일본, 대만은 생산시설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앞세우고 있다. 기술이 있어도 공장 건설과 양산이 늦어지면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다. 기업의 투자를 느린 행정절차가 붙잡아서는 안 된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은 타당하다. 문제는 정부가 내세운 ‘한 달’이 전체 산단 조성기간 가운데 극히 일부라는 점이다. 후보지 선정 이후 산업단지계획 수립과 관계기관 협의, 주민 의견 수렴, 환경영향평가, 토지보상, 이주대책, 부지 조성공사가 이어진다.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까지 제때 갖춰져야 생산라인을 돌릴 수 있다. 후보지를 빨리 정해도 나머지 절차가 뒤따르지 못하면 기업이 체감하는 투자 시계는 달라지지 않는다. 산업단지 인허가를 줄이기 위한 제도도 이미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 특례법은 관계기관 협의를 동시에 진행하고 일정한 기간 안에 의견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다시 패스트트랙을 꺼내 들었다면 기존 제도가 현장에서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은 원인부터 밝혀야 한다. 법을 하나 더 만들고 전담 조직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처 간 이견과 주민 갈등을 해소하기 어렵다. 용인 국가산단은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2023년 3월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과 남사읍 일대를 국가산단 후보지로 선정했고 2024년 12월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했다. 후보지 선정에서 산단 승인까지 1년9개월이 걸렸다. 통상적인 국가산단 사업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지만 정작 사업 현장에서는 토지보상이 다음 관문으로 남아 있다. 용인 국가산단 예정지 727만4000㎡ 가운데 지난달 말까지 토지 보상 협의가 끝난 면적은 274만1000㎡로 37.7% 수준이다. 상당수 토지 소유자가 보상액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수용재결 절차도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연내 보상을 마무리한 뒤 부지 조성공사에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보상과 이주가 계획대로 끝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사업기간을 줄인다는 이유로 보상과 주민 의견 수렴을 형식적으로 처리해서도 안 된다. 보상 기준과 이주대책을 둘러싼 갈등이 길어지면 공사 지연과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주민을 설득하는 데 드는 시간을 행정 낭비로 볼 것이 아니라 전체 사업기간을 줄이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한다. 초기 단계부터 보상 기준과 생활대책을 공개하고 이견을 조정하는 편이 결과적으로 더 빠르다. 토지보상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전력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장기적으로 10GW가 넘는 전력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발전소와 변전소를 산단 안에 짓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외부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장거리 송전망도 새로 설치해야 한다. 송전선로의 노선 선정과 부지 확보, 환경 검토, 주민 협의를 감안하면 산단 승인과는 다른 차원의 난제다. 산단 부지 조성만 7년 앞당기고 송전망이 뒤따르지 못하면 공장 가동 시점은 앞당겨지지 않는다. 어느 지역에서 전기를 가져오고 송전선로가 어느 지방자치단체를 지나며 변전소를 어디에 설치할 것인지가 먼저 확정돼야 한다. 첫 번째 생산라인이 필요로 하는 전력을 언제부터 공급할 수 있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전력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용수 문제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통합용수공급 사업은 하루 107만2000t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대형 사업이다. 팔당댐에서 용인까지 46.9㎞에 이르는 전용 관로와 가압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고 사업비도 2조원을 웃돈다. 1단계 용수 공급 목표 시점은 2031년이다. 용인 국가산단과 인근 일반산단의 전체 용수 수요는 하루 약 133만t으로 예상된다. 기존 댐의 여유 물량만으로는 부족해 하수 재이용수와 발전용 댐의 물까지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을 확보하는 것과 수십㎞의 관로를 제때 설치하는 일은 별개 문제다. 관로가 지나는 지역과의 협의가 늦어지면 공장 완공 이후에도 용수 공급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용인 국가산단의 최종 완공 시점을 204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에 중요한 시점은 마지막 공장이 들어서는 2040년이 아니라 첫 번째 생산라인을 언제 착공하고 가동할 수 있느냐다. 첫 팹에 필요한 토지를 언제 넘기고 공사용 도로를 언제 개통하며 전력과 용수를 어느 시점부터 얼마나 공급할 것인지가 투자 판단을 좌우한다. 배후 교통망도 산단 공사와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이동 공공주택지구 인허가를 내년 초까지 마치고 국도 45호선 확장사업도 오는 8월 발주할 계획이다. 주택과 도로 건설이 산단보다 늦으면 출퇴근 혼잡과 주거난이 불가피하다. 공장만 먼저 지어 놓고 근로자에게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다. 호남권에 새로 조성하겠다는 반도체 국가산단은 용인보다 불확실성이 더 크다. 정부는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를 중심으로 팹 4기가 들어서는 국가산단과 연구·창업·주거 기능을 갖춘 첨단도시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기업 투자 규모로 800조원을 제시했지만 투자 주체와 투자 시기, 공장별 착공 일정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산단 부지로 거론된 광주 군공항 이전 부지는 군공항 이전과 종전부지 개발, 재원 조달 문제가 먼저 풀려야 한다. 군공항 이전이 늦어지면 산단 부지 확보도 늦어진다. 후보지 지정만 한 달 안에 마치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군공항 이전부터 토지 인도와 산단 조성, 기반시설 공급까지 하나의 일정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내세운 ‘출퇴근 30분, 수출입 물류 1시간’이라는 목표도 구체성이 부족하다. 도로와 철도의 노선, 사업비, 착공과 개통 시점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 무안국제공항의 기반시설과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어떤 물류를 얼마나 처리할 것인지가 나와야 한다. 반도체 물류에 필요한 보안과 온습도 관리, 신속한 통관 체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산업단지 조성기간을 줄이는 방법이 환경영향평가를 건너뛰거나 주민 권리를 축소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개발계획 수립과 환경조사, 기반시설 설계를 사업 초기부터 동시에 진행하고 부처 간 이견을 신속히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관계부처 회의를 여는 방식으로는 기업 시간표를 맞출 수 없다. 단계별 책임 기관과 최종 결정권자를 정해 둬야 한다. 정부가 내놓아야 할 것은 ‘한 달 안에 후보지 지정’이라는 숫자보다 공장 가동일까지 이어지는 전체 공정표다. 후보지 선정과 산단 승인, 토지보상, 부지 조성, 송전망과 용수관로, 도로와 철도 건설을 하나의 일정표에 담아야 한다. 각 단계의 완료 시점과 책임 부처를 공개하고 일정이 늦어질 경우의 대응책도 마련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산업단지 지정 고시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땅과 전기, 물, 도로가 필요한 시점에 함께 준비돼야 생산라인이 움직인다. 후보지를 한 달 안에 정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다. 정부의 속도전이 성과를 내려면 그다음 10년을 어디에서 어떻게 줄일 것인지부터 보여줘야 한다.
2026-07-13 16: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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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권 800조 반도체 벨트…'제2의 용인'인가, 산업지도 바꿀 새 축인가
[경제일보] 정부가 서남권에 최대 896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추진하면서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지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경기 남부에 집중됐던 생산기반을 서남권으로 확장해 AI 시대에 대응할 새로운 생산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공장 몇 곳을 짓는 사업이 아니라 메모리 생산과 첨단 패키징, AI 데이터센터,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인력양성까지 연결하는 전국 단위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점에서 산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전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열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앰코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정부 발표 기준 총 투자 규모는 896조원이다. 이번 구상의 의미는 투자 규모보다 산업지도의 변화에 있다. 그동안 한국 반도체 산업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성장해왔지만, AI 시대 메모리 수요가 폭증하면서 수도권 단일 생산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커지고 있다. 서남권 반도체 벨트는 용인 클러스터의 단순 복제가 아니라 수도권 생산기반을 지방으로 확장하고, 전력·용수·패키징·AI 데이터센터까지 결합한 새로운 반도체 축을 세우려는 시도다. 반도체 산업은 오랫동안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의 기흥·화성·평택 캠퍼스와 SK하이닉스 이천·청주 공장을 축으로 세계 최대 메모리 생산벨트가 형성됐다. 여기에 용인 국가산단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까지 추진되면서 수도권은 세계적인 메모리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AI 시대가 열리면서 기존 생산체계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HBM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수도권은 전력과 용수, 부지 확보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남권을 새로운 생산축으로 제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번 구상의 핵심은 단순한 공장 이전이 아니다. 정부는 서남권에 메모리 팹 4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생산거점을 조성하고, 충청권은 첨단 패키징, 동남권·대경권은 소부장과 미래 반도체 산업을 맡는 전국 분산형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수도권과 지방이 역할을 분담하는 새로운 산업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약 470조원을 투입해 메모리 팹 2기와 1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방안을 발표했고, 삼성전자는 약 425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조성하는 구상을 공개했다. 앰코는 광주에 1조원을 투자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기업들이 내세운 공통 조건은 '입지'가 아니라 '인프라'였다.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력과 용수, 인력, 정주 여건, 인센티브가 갖춰질 경우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역시 용인 클러스터만으로는 미래 메모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대규모 부지와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를 '제2의 용인'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성격은 다소 다르다. 용인이 기존 수도권 반도체 벨트의 연장선이라면, 서남권은 수도권 밖에 새로운 생산축을 만드는 첫 시도에 가깝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면서 국가 전체의 생산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성공 여부는 공장보다 인프라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팹은 24시간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공업용수가 필요한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정부는 서남권에 필요한 전력 6.3GW와 용수 65만톤을 공급하고, 송전망과 용수 인프라를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용인에도 약 15GW의 전력과 150만톤의 용수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후공정 경쟁력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앰코의 광주 투자로 서남권은 메모리 생산뿐 아니라 첨단 패키징까지 연결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AI 반도체 시대에는 HBM과 AI 가속기의 성능을 높이는 첨단 패키징이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어 생산과 후공정이 함께 구축돼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충청권을 패키징 거점으로 육성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입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광주 미래차 국가산단 △빛그린국가산단 △첨단3지구 △나주 에너지국가산단 △영암·해남 솔라시도 △광주 군공항 종전부지 △무안 국가산단 후보지 등 7곳을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기업이 선호하는 부지를 중심으로 전력과 용수, 도로 등 기반시설을 패키지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서남권 반도체 벨트의 성패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실행 속도에 달려 있다"며 "삼성과 SK, 앰코의 투자 계획이 현실화되려면 전력망 구축과 용수 공급, 인허가 단축, 기업 투자 집행이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제2의 용인'이라는 이름을 넘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이제 발표가 아니라 실행이 증명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2026-07-01 16: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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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조 원 AI 메가프로젝트, 선언보다 실행이 국가의 운명을 가른다
[경제일보] 국가의 흥망은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석유가 20세기 세계 질서를 재편했다면, 21세기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정부가 호남권 반도체 기지 조성을 포함한 1600조 원 규모의 'AI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감안할 때 결코 늦지 않은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사업을 챙기며 신속한 집행을 강조한 것도 국가적 절박함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거대한 숫자가 아니다. 160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투자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계획이 실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행력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수많은 국가 프로젝트를 화려하게 발표했지만, 정치 일정에 밀리고 예산 확보에 실패하거나 지역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용두사미로 끝난 사례를 수도 없이 경험했다.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AI와 반도체는 더 이상 특정 산업이 아니다. 제조업은 물론 금융, 의료, 국방, 교육, 물류에 이르기까지 국가 시스템 전체를 움직이는 핵심 기반이다. 미국은 국가 차원의 반도체 지원 정책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으며, 중국은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AI 자립에 사활을 걸고 있다. 유럽과 일본도 첨단 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국제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머뭇거리는 순간 미래 산업의 주도권은 영원히 다른 나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방향이 옳다 해도 현실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국가 전략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먼저 검증되어야 할 것은 재원 조달 방안이다. 1600조 원이라는 규모는 정부 재정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민간 투자와 정책금융, 연기금, 해외 투자자본을 어떻게 유치하고 결합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투자 주체와 재원 조달 방식, 사업 추진 일정이 명확하지 않다면 시장은 숫자만 거창한 계획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역시 정치적 상징성보다 경제적 실효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유치했다고 첨단 산업 생태계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기반시설을 요구하는 산업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며, 초순수 용수 확보는 생산라인의 생명줄과도 같다. 고속도로와 철도, 항만 등 물류망은 물론 연구개발 시설과 전문 인력 양성 체계도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특히 전력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 과제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송전망 확충과 발전 설비 증설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장만 지어 놓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용수 공급 또한 마찬가지다. 기후변화로 물 부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산업용수 확보 계획은 사업 초기부터 철저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프로젝트의 또 다른 성공 조건은 산업 생태계의 균형이다. 대기업 몇 곳이 공장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국가 경쟁력이 완성되지 않는다. 소재·부품·장비 기업과 설계 기업, 연구기관, 대학,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 중소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과 금융 지원, 인력 양성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지역경제도 살아나고 국가 산업의 경쟁력도 지속될 수 있다. 정치권에도 당부한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프로젝트를 정쟁의 소재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성과를 과장하기 위한 정치적 홍보도 모두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다. 여야는 사업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재원 조달과 실행 방안을 냉정하게 검증하는 생산적 경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정치에 기대하는 책임 있는 모습이다. 국가의 미래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치밀한 계획과 흔들림 없는 추진, 그리고 초당적인 협력이 있을 때 비로소 거대한 비전은 현실이 된다. AI와 반도체는 대한민국의 다음 50년을 책임질 산업이다. 이번 1600조 원 AI 메가프로젝트가 역사에 남을 국가 대도약의 출발점이 될 것인지, 또 하나의 거창한 청사진으로 끝날 것인지는 결국 실행력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2026-06-30 07: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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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될 반도체, 국가 백년대계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의 운명을 좌우할 또 하나의 중대한 선택이 시작됐다. 정부가 삼성과 SK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참여하는 이른바 '호남 반도체 공장+α'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국가 균형발전과 AI 대전환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청사진을 내놓았다.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 산업 구조를 분산하고 지역 경제에 새로운 성장축을 세우겠다는 구상 자체는 국가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 할 만하다. 더욱이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자산인 반도체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국가 산업의 회복력을 높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발표 직후 정치권은 또다시 본질보다 정쟁을 앞세우고 있다. 야당은 "직권남용", "선심성 정책"이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여당은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맞서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라는 국가 생존 전략이 정치적 유불리의 계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다.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조차 정권에 따라 찬성과 반대를 반복하는 정치 풍토에서는 어느 기업도 장기 투자를 결심하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선거 주기에 맞춰 움직이는 산업이 아니다. 공장 하나를 건설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인력 양성과 공급망 구축에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의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경쟁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각국이 국가 차원의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반도체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우리만 정치적 소모전에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장 유치라는 화려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공장만 세운다고 성공하는 산업이 결코 아니다. 초순수 용수 공급 체계와 안정적인 전력망, 대규모 변전시설, 광역 교통망, 연구개발 인프라, 전문 인력 양성 시스템이 동시에 갖춰져야 비로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은 단 1초의 정전에도 수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산업이다. 용수 공급 역시 단 하루라도 차질이 생기면 생산 라인 전체가 멈춘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공장 유치 실적만 앞세운다면 또 하나의 '반쪽짜리 국가사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무엇보다 서둘러야 할 일은 정치적 홍보가 아니라 인프라 구축이다. 전력망 확충 계획은 언제 완성되는지, 산업용 용수는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인지, 항만과 고속도로, 철도망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국민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인허가 절차 역시 획기적으로 단축해 기업들이 불확실성 없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 중요한 과제는 상생 생태계다. 정부가 대기업의 반도체 과실을 협력업체와 공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방향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경쟁력은 삼성과 SK 같은 대기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재·부품·장비를 공급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산업 생태계가 완성된다. 일본이 오랜 기간 소재 기술을 축적했고 독일이 장비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수많은 강소기업이 산업의 뿌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남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면 단순한 생산기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연구소와 대학, 스타트업, 장비기업, 소재기업이 함께 모여 혁신을 창출하는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지역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정착할 수 있는 교육과 주거, 문화 환경까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진정한 균형발전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이미 수도권 일극 체제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고 균형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 논리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국가 경쟁력과 지역 발전이라는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하려면 철저한 경제성 분석과 현실적인 실행 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성과를 위한 과장도 아니다. 국가 미래를 위한 초당적 협력이다. 반도체는 이제 특정 기업의 사업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이자 경제이며 미래 그 자체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 전략, 지역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공급망이 구축될 때 비로소 이번 호남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신화로 기록될 것이다. 정치가 그 길을 열어야지, 그 길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국가 백년대계를 정쟁의 제물로 삼는 순간, 그 피해는 결국 미래 세대 모두의 몫이 될 뿐이다.
2026-06-29 09: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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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포럼 2026, 손윤 세무법인오늘 대표 "반도체 초과이익, 성과급 갈등 넘어 국민환류 체계 고민해야"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을 단순 임금과 성과급 문제를 넘어 초과 이익 배분 구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지원과 사회적 기반 위에서 성장한 만큼 기업이 창출한 막대한 초과 이익 역시 노사 간 배분 문제를 넘어 사회적 환류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윤 세무법인오늘 대표이사는 27일 국회의사당 본관 2식당에서 열린 ‘경제일보 정책 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초과 이익과 사회적 환류’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손 대표는 삼성전자 노사 문제를 단순한 임금 협상 차원보다 한국 경제 성장 구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봤다. 반도체 산업이 개별 기업 경쟁력만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세제와 금융, 연구개발, 산업 인프라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함께 작동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했다. 손윤 대표는 “삼성전자의 초과 세수와 초과 이익은 우선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삼성전자는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성장한 국민 기업이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표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가치와 국민주권 개념도 함께 언급됐다. 손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라며 산업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성과 역시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 속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논의가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제시됐다. 반도체 산업은 개별 기업 투자와 기술력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대규모 전력과 용수 공급, 연구개발 지원, 산업단지 조성, 인재 양성 체계 등 사회 전반의 기반이 함께 작동해야 산업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표에서는 삼성전자 성장 과정도 함께 다뤄졌다.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시장 세계 1위에 오른 뒤 메모리 분야 선두 자리를 유지했고 이후 플래시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메모리 중심 구조에서 시스템반도체까지 영역을 넓히며 세계 시장 영향력을 키워왔다는 내용이다. 손 대표는 당시 투자세액공제와 연구개발 지원 정책 등이 산업 성장 기반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기업 자체 경쟁력뿐 아니라 정책 지원과 사회적 기반도 성장 과정에 함께 작용했다는 의미다. 노동의 범위를 기존 인식보다 넓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협력업체 종사자와 지역사회 기반시설, 교육 체계 등 사회 전체의 지원이 현재 성과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삼성전자의 성공 신화에는 노동자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노동의 범위 역시 더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과 이익 환류 방식으로는 이른바 ‘1대1대1 구조’를 제안했다. 초과 이익의 3분의 1은 국가 자산 확대를 위한 사회적 환류에 활용하고 3분의 1은 노동자 성과 보상, 나머지 3분의 1은 주주 배당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국가와 노동, 주주 간 균형 있는 배분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형 국부펀드 조성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발생하는 초과 세수를 단기 지원금이나 일회성 재정 지출보다 AI 인프라와 첨단 반도체 생태계, 에너지 전환 기술, 전략 광물, 미래 제조 기반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초과 세수를 우선 국채 상환에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손 대표는 2026년도 예산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 수준으로 전망되는 만큼 예상 밖 세입이 발생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국가채무 축소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10조원을 갚는 것은 쉬울 수 있어도 향후 AI 인프라나 에너지 전환, 지역 산업 재편 등에 필요한 자금을 다시 마련하는 일은 더 큰 비용이 들 수 있다”며 “초과 세수는 구조적 적자를 메우는 상시 재원이 아니라 특정 산업 호황에서 비롯된 변동성이 큰 수입”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정건전성은 단순히 부채비율 숫자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한 역량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며 “미래 수익을 만들어내는 자산을 축적하는 것 역시 재정건전성의 중요한 축”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5월 28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5-28 07: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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