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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오르고 반도체 흔들린다…'양면 충격' 대비책 서둘러야
[경제일보] 한국 경제의 약점은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곳에 있다. 하나는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폭 좁은 바닷길이고, 다른 하나는 손톱보다 작은 반도체 칩이다. 호르무즈해협이 흔들리면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가격이 뛰고, 반도체 시장이 흔들리면 수출과 증시가 휘청인다. 지난 주말 한국 경제의 두 약한 고리에 동시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다시 격화하면서 국제유가는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 17일 브렌트유는 4.59% 오른 배럴당 88.10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대이란 공격과 이란의 보복이 이어지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과 가스 운반선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결과다. 같은 날 세계 증시는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하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사흘 연속 떨어지며 최근 고점보다 20% 낮은 수준까지 밀렸다. 유가는 오르고 반도체는 내리는, 한국 경제에는 가장 불편한 조합이 현실이 된 것이다. 상황은 주말에도 진정되지 않았다. 19일(현지시간) 미국은 8일 연속 이란을 공격했고, 이란도 걸프 지역 미군 시설과 주변국을 향해 미사일·무인기 공격을 이어갔다. 산유국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였고, 시장에는 전쟁이 다시 넓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번졌다. 걸프 산유국들이 수출량을 늘리고 있지만 호르무즈해협의 선박 통행은 다시 줄었다. 최근 하루 통항 선박이 단 3척에 그쳐 5월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집계도 나왔다. 한국은 이 바닷길의 사소한 변화도 사소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나라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 LNG의 약 20%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 해협이 완전히 봉쇄되지 않더라도 통항이 느려지고 보험료와 운임이 오르면 그 비용은 정유·석유화학·항공·해운·철강을 거쳐 결국 소비자물가로 넘어온다. 원유 가격 상승에 원화 약세까지 겹치면 충격은 배가된다. 국제유가가 그대로 있어도 환율이 오르면 한국이 지불해야 할 원화 기준 에너지 가격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편에서는 반도체가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 투자 열풍을 타고 치솟았던 반도체주는 과도한 기대와 높은 가격 부담 앞에서 조정을 받고 있다. 대만 TSMC가 큰 폭의 이익 증가를 발표하고도 주가가 하락한 것은 시장이 더 이상 ‘좋은 실적’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AI 기업들의 막대한 설비투자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반도체 수요가 실제 수익으로 얼마나 연결될지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17일 세계 반도체주 하락도 이러한 불안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였다. 한국 경제에서 반도체는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다. 지난 6월 한국의 전체 수출은 1022억5000만 달러로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상반기 반도체 수출은 1924억 달러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웃돌았다. 반도체 호황은 무역수지를 지키고 기업 투자를 늘리며 세수를 떠받치는 힘이다. 하지만 그 비중이 커질수록 반도체 가격과 글로벌 AI 투자의 작은 변화가 한국 경제 전체의 진폭을 키운다. 반도체가 잘될 때는 편중이 경쟁력으로 보이지만, 흔들릴 때는 의존으로 돌아온다. 유가 상승과 반도체 하락이 동시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 경제는 에너지를 외부에서 사오고, 벌어들이는 돈은 소수 수출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원유 가격이 오르면 수입액이 늘고, 반도체가 꺾이면 수출액이 줄어든다. 무역수지의 양쪽 문이 동시에 압박받는 구조다. 여기에 유가 상승이 물가와 금리를 끌어올리고, 반도체주 하락이 증시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충격이 서로를 증폭할 수 있다. 정부가 유류세 조정이나 석유시장 단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유류세 인하는 급한 불을 끄는 수단일 뿐, 기름을 실은 배를 한국까지 가져오지는 못한다. 정부는 원유와 LNG의 국가별·항로별 도입 현황, 민간과 공공의 비축 수준, 비축유 방출 조건, 해상보험과 운임 지원 방안, 환율 급등 시 대응 원칙을 하나의 에너지 비상계획으로 공개해야 한다. 국민과 기업이 알아야 할 것은 “당장 문제없다”는 안심의 말이 아니라 어느 단계에서 어떤 조치가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시간표다. 정부는 지난 3월 중동 상황 대응본부를 가동하면서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에 대비해 대체 도입선과 운항 일정, 보험·운임 문제를 점검했다. 수급 위기가 가시화되면 국내 비축기지의 석유를 시장에 공급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미 마련된 대책이 있다면 이제는 최근의 충돌 격화와 통항 감소를 반영해 다시 공개적으로 점검할 때다. 비상계획은 서랍 속에 있을 때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내용을 알고 움직일 때 효과가 있다. 기업도 공급망을 평상시의 평균값으로만 계산해서는 안 된다. 정유·석유화학·항공사는 유가와 운임이 동시에 급등하는 상황을, 자동차·배터리·철강사는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함께 오르는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 역시 AI 투자가 둔화하고 메모리 가격이 조정받는 경우에 대비해 설비투자와 현금흐름을 점검해야 한다. 기업별 스트레스 테스트를 의무적으로 공개할 필요까지는 없더라도, 주요 업종과 금융회사가 복합 충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정부와 시장이 함께 확인해야 한다. 손자병법 ‘허실’에는 “먼저 싸움터에 이르러 적을 기다리는 자는 편안하고, 뒤늦게 싸움터에 달려가는 자는 피로하다”는 말이 나온다. 경제안보도 다르지 않다. 유조선의 통항이 끊어진 뒤 도입선을 찾고, 반도체 가격이 급락한 뒤 수출 다변화를 외쳐서는 늦다. 위기는 대책을 새로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미리 만든 대책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시험하는 시간이다. 정부가 시장의 모든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 국제유가도, 세계 반도체 가격도 서울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부 변수라는 이유로 손을 놓아서도 안 된다. 정부의 역할은 가격을 통제하는 데 있지 않다.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비축하고, 도입선을 넓히며, 위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데 있다. 반도체를 더 강하게 키우는 일과 반도체 외 수출 산업을 육성하는 일은 모순이 아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천연가스와 에너지저장장치를 조화롭게 활용해 수입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일도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 한국 경제의 선택지를 늘리는 일이다. 에너지 안보와 수출 다변화는 위기 때마다 꺼내 드는 구호가 아니라, 평상시에 비용을 지불하며 구축해야 할 보험이다. 기름값은 뛰고 반도체는 흔들리고 있다. 두 현상을 별개의 뉴스로 읽으면 대책도 조각난다. 하지만 이를 한국 경제의 이중 취약성으로 읽으면 해야 할 일이 선명해진다. 에너지 비상계획을 공개하고, 기업별 공급망을 점검하며, 수출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둥을 세워야 한다. 호르무즈해협과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도 흔들릴 것이다. 흔들림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나라 경제 전체가 함께 휘청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정책의 기본이다.
2026-07-20 09: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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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주도 AX 전략…시장 왜곡보단 인프라 확보 시급성 무게
[이코노믹데일리] 정부가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AX(AI 전환)'를 국가 핵심 전략으로 추진하면서 산업계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다. 제조, 금융, 공공 등 산업 전반에 AI를 도입하고 데이터·GPU·클라우드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는 국가 주도형 전환 모델이 본격화되고 있다. 24일 정부는 '국가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 '전 산업 AI 확산', '공공 AX 전환' 등을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AI 산업의 핵심 기반인 GPU 확보와 데이터센터 구축에 국가 차원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AI 도입을 의무화하거나 권장하는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AX는 단순한 디지털 전환을 넘어 업무 구조와 의사결정 체계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생산 계획, 품질 관리, 금융 리스크 분석, 고객 대응, 행정 서비스 등 핵심 의사결정 영역에 AI를 적용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는 이를 통해 산업 경쟁력과 국가 생산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컴퓨팅 인프라 확충과 산업 AX 지원을 위해 향후 수조 원 규모의 투자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공공기관과 주요 산업에 AI를 우선 적용하고 이를 통해 민간 기업 확산을 유도하는 '공공 선도형 AX 전략'을 채택했다. 공공이 초기 수요자가 되어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국가 주도형 AX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와 규모로 분석된다. AI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초기 비용이 필요하지만 정부가 이를 지원하면 기업들은 부담 없이 AI 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는 GPU, 데이터, 클라우드 등 인프라 확보가 가장 큰 장애물로 기능하며 이에 정부 지원은 AX 확산의 핵심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글로벌 주요 국가들도 유사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AI 연구개발과 공공 도입을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일본은 디지털청을 중심으로 행정과 산업 전반의 AI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 역시 'AI법'을 통해 규제와 산업 육성을 동시에 추진하며 공공 중심 AI 확산 전략을 실행 중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지난해 9월 발간한 '인공지능 투자 측정의 발전' 보고서에 따르면 AI는 향후 국가 생산성과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AI 도입 속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 역시 공공 부문을 AX 전환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행정 업무 자동화, 민원 대응, 데이터 분석, 정책 의사결정 등 공공 업무 전반에 AI를 도입하는 프로젝트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국내 AI 기업들이 실증 사례를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국가 주도형 AX가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우려는 시장 자율성이 위축될 가능성이다. 정부 중심 사업이 확대될 경우 기업들이 시장 경쟁보다 정책 방향에 맞추는 데 집중하게 될 수 있다. 이는 기술 경쟁보다 정책 대응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 신규 기업 진입을 제한할 수 있다. 공공 발주 중심 구조가 고착화되면 대형 IT 서비스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갖춘 일부 기업에 사업이 집중되면서 산업 생태계 다양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여러 연구에서 공공 조달 구조는 기존 공급자 중심 시장을 강화하고 신규 기업 진입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앞서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지난 2013년에 공공 SW 조달 시장에서 상호출자제한 대상 대기업집단의 참여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를 시행했고 공공 SW 시장에서 대기업의 비중은 대폭 감소해 지난 2010년 76.4%에서 지난 2018년 7.4%까지 내려간 바 있다. 다만 정부가 이러한 시장 왜곡 가능성을 감수하면서도 국가 주도형 AX를 추진하는 것은 AI가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부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I 인프라는 반도체, 전력망, 통신망과 마찬가지로 초기 투자 규모가 막대하고 단기간 내 수익 회수가 어려운 특성이 있어 민간 주도만으로는 구축 속도와 규모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GPU, 데이터센터, 산업 데이터 플랫폼 등은 선제적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M.AX 얼라이언스 정기총회'에서 "1000개가 넘는 대표 기업 등이 자발적으로 얼라이언스에 참여한 것은 기업의 생존 문제라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라며 빠른 AX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AI 경쟁은 이미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주도형 AX가 산업 혁신의 촉매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정책 중심 산업 구조로 이어질지는 향후 정책 설계와 실행에 달려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26-02-24 18: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