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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연내 로드맵…직무급제 손본다
[경제일보] 고용노동부가 고용 형태와 성별 등에 따른 불합리한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로드맵을 연내 마련한다. 같은 가치의 일을 수행했다면 고용 형태나 근속연수에 따른 차별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18일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노동부는 오는 12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 로드맵 발표를 목표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로드맵에는 관련 원칙의 법제화와 임금정보 제공 확대, 초기업 교섭 활성화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업무의 내용과 책임, 필요한 기술과 노력 등 직무의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본질적으로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는 동등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단순히 직함이나 근무 장소가 같다는 이유로 임금을 일률적으로 맞추는 개념과는 다르다. 수행하는 업무의 가치가 동등한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임금 차이가 있다면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해당 원칙은 이재명 정부의 주요 노동정책 과제 가운데 하나로, 노동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 형태에 따른 불합리한 처우 격차를 줄여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같은 사업장에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과 처우가 크게 달라지는 문제를 개선하고, 직무의 가치에 기반한 보상 체계를 확산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 근로기준법에 원칙 명시 검토…임금정보 확대해 판단 기준 마련 현재 국내 법체계에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명시돼 있다. 다만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관련 규정이 있어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 있다. 노동부는 이를 근로기준법에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 형태를 비롯한 노동시장 전반의 임금 격차 문제로 논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법제화가 추진되더라도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하는 것으로 꼽힌다. 직무의 가치가 같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 업무의 난도와 책임, 숙련도 등의 차이를 임금에 어떻게 반영할지에 따라 제도의 실효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직무명이라도 실제 담당 업무와 책임 범위가 다를 수 있고, 직무가 다르더라도 요구되는 기술과 책임 수준이 비슷할 수 있다. 임금정보 제공 확대가 로드맵의 주요 과제로 거론되는 이유로 분석된다. 노동부는 임금직업정보 시스템 등을 활용해 직무와 직위, 근속연수 등에 따른 임금분포 정보를 보다 상세하게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가통계 자료를 활용해 정보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이다. 임금정보가 충분히 공개되면 노동자와 기업이 유사한 직무의 보상 수준을 비교하고 임금 격차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직무별 임금 수준을 점검하고 보상 체계를 설계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임금 통계만으로 특정 사업장 내 임금 차별 여부를 곧바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직무 내용과 책임, 숙련도 등 실제 업무 조건을 함께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가 걸림돌… 직무급제 전환은 노사 합의가 관건 제도 정착의 핵심 과제로는 임금체계 개편이 꼽힌다. 국내 기업 상당수는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연공급적 요소를 임금체계에 반영하고 있다. 이 방식은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숙련 축적에 보상을 제공할 수 있지만, 실제 수행하는 업무의 가치와 임금 사이의 연계가 약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같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이 다르거나, 직무와 책임의 차이보다 근속연수에 따라 보상 격차가 커지는 경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현장에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임금 결정 방식과 복리후생 기준이 다르면 임금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방식은 직무급제다. 직무급제는 근속연수보다 업무의 내용과 난도, 책임, 필요한 전문성 등을 기준으로 임금을 결정하는 체계다. 직무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에 맞춰 보상 수준을 정하면 고용 형태나 근속연수만으로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문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직무급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자동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직무를 어떻게 분류하고 평가할지, 같은 직무 안에서 숙련도와 성과를 임금에 어느 정도 반영할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직무 평가 결과를 둘러싸고 노사 간 이견이 발생할 수도 있다. 기존 임금체계에서 직무급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의 임금이 정체되거나 불리해질 가능성도 있어 세부 설계가 중요하다. 노동계는 직무급제가 임금 삭감이나 성과 중심의 임금 차등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경영계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개인별 숙련도와 성과, 업무 기여도에 차이가 있는 만큼 일률적인 임금 지급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직무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마련하고, 기존 임금체계와 새로운 보상 기준을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관건이다. 이에 직무급제 도입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임금 격차의 원인을 확인하고 합리적인 임금 차등과 불합리한 차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기업별 교섭 한계 넘을까… 초기업 교섭 활성화도 추진 기업별 노조 중심의 노사관계도 제도 확산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다. 기업별로 임금과 단체협약을 정하는 구조에서는 같은 업종에서 유사한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기업의 규모와 수익성, 노사관계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 개별 기업 단위에서 임금체계를 바꾸더라도 산업 전반으로 유사한 기준을 확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노동부가 검토하는 초기업 교섭 활성화는 기업의 경계를 넘어 업종이나 산업 단위에서 노동조건을 논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유사한 산업에서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면 기업별로 분절된 임금 결정 구조를 보완하고, 노동조건의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현장에 안착시키려면 법 조항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직무 평가와 임금정보 제공, 임금체계 개편, 노사 교섭이 서로 맞물려 작동해야 한다. 노동부가 연내 마련할 로드맵에 구체적인 이행 일정과 현장 적용 방안이 얼마나 담길지도 주목된다. 일본의 제도 변화도 참고 사례다. 일본은 지난 1일부터 정년 후 재고용된 고령 근로자에 대해 기간제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낮추는 것을 제한하는 등 '동일노동 동일임금' 관련 지침을 강화했다.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처우 차이를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원칙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취지다. 다만 일본의 제도와 한국의 법체계, 임금 결정 구조에는 차이가 있는 만큼 세부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고용 형태에 따른 처우 차이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로드맵 역시 법제화와 임금정보 공개에 그치지 않고, 직무 가치 평가의 객관성과 노사 합의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실효성을 좌우할 전망이다.
2026-10-18 14:3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