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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급 또 속도전, 이번에는 '입주 날짜'를 보여줘야
[경제일보] 정부가 다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 준공업지역에서 추진 중인 약 2만7000가구의 사업을 앞당기고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통해 추가 물량을 확보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새 택지를 대규모로 내놓기보다 이미 확보한 부지와 진행 중인 사업의 시간을 줄이는 데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하는 ‘공급’과 국민이 실제로 들어가 살 수 있는 집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다. 몇 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만으로는 그 집이 아직 인허가 단계인지, 공사를 시작했는지, 몇 년 뒤 입주하는지 알기 어렵다. 집을 구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계획서에 잡힌 주택 수가 아니라 언제 열쇠를 받을 수 있느냐다. 정부는 지난해 공급 실적을 인·허가가 아닌 착공 기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인·허가만 받아놓고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사업까지 공급 성과로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2030년까지 수도권에서 135만가구를 착공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공급 통계를 실제 공사에 가까운 단계로 옮긴 셈이다. 하지만 착공도 입주는 아니다. 오늘 공사를 시작한 1만가구와 내년에 사람이 들어가는 1만가구는 시장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아파트는 착공한 뒤 준공과 입주까지 수년이 걸린다. 집값과 전셋값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몇 가구가 삽을 떴느냐보다 언제 새집이 시장에 들어오느냐다. 지난 1월 발표한 도심 주택 공급 대책만 봐도 공급 발표와 실제 입주 사이의 간격이 드러난다. 정부는 도심과 군부지, 공공시설 이전 부지 등을 활용해 6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일부 사업은 착공 목표 자체가 2028년 이후다. 성남 신규 공공주택지구 6300가구는 착공 목표가 2030년이다. 입주는 그보다 더 뒤다. 2030년에 공사를 시작할 주택까지 지금의 공급 물량으로 묶으면 국민이 체감하는 공급 시점은 흐려진다. 장기적으로 몇 가구를 지을 것인지와 앞으로 2~3년 안에 몇 가구가 실제 입주하는지는 따로 보여줘야 한다. 같은 1만가구라도 내년 입주 물량과 4년 뒤 착공 물량은 같은 공급이 아니다. 시장이 당장 보는 것도 2030년의 계획보다 2027년과 2028년의 입주 물량이다. 부동산R114 집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025년 3만7103가구에서 올해 2만5281가구로 줄고 2027년 1만8682가구, 2028년 1만3683가구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8년 물량은 2025년의 40%에도 못 미친다. 실제 준공 물량도 크게 줄었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주택 준공은 1만5160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1% 감소했다. 앞으로 공급하겠다는 집의 숫자는 늘어날 수 있지만 지금 시장에 도착하는 새집은 오히려 줄고 있다. 부동산 대책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에게 ‘몇 만호 공급’은 더 이상 낯선 숫자가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도권에 몇십만가구를 짓겠다는 발표가 나왔고 공급 부족을 해소하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국민이 기억하는 것은 발표한 숫자보다 늦어진 입주다. 택지를 발표하고도 보상이 늦어졌고 사전청약을 받은 뒤 본청약과 입주가 밀린 사례도 있었다. 시장이 정부의 공급 숫자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 정책도 국민에게 한 약속이라면 언제 이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5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발표만 있고 사업별 착공과 입주 일정이 없다면 약속이 지켜졌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행정은 목표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 현실이 되는지를 설명하고 그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급 발표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신규 공급 5만가구를 발표한다면 그 옆에 사업별 지구 지정 시점과 인허가, 착공, 준공, 입주 예정 시기를 함께 적으면 된다. 일정이 늦어졌다면 얼마나 밀렸고 무엇 때문에 지연됐는지도 공개해야 한다. 공급대책의 책임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장관이 발표한 날 몇 만가구를 확보했다고 성과로 잡을 것이 아니라 실제 착공이 얼마나 이뤄졌고 예정된 날짜에 몇 가구가 입주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일정이 늦어졌다면 어느 단계에서 막혔고 누가 해결하지 못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공급대책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생긴다. 이런 정보가 공개돼야 시장도 공급대책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내년에 입주할 1만가구인지, 2030년에 공사를 시작할 1만가구인지 모른 채 총공급 물량만 받아들여서는 앞으로 집이 얼마나 부족한지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가 발표하는 숫자가 커도 국민의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속도전의 성과도 발표한 물량이 아니라 실제 일정으로 확인해야 한다. 행정절차를 얼마나 줄였는지보다 착공이 몇 달 앞당겨졌는지, 준공은 언제인지, 입주는 몇 년 몇 월부터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편이 시장에는 훨씬 유용한 정보다. 공급대책은 발표할 때가 아니라 입주할 때 평가받아야 한다. 정부가 5만가구를 약속했다면 국민은 5만이라는 숫자와 함께 그 집에 들어갈 날짜도 알아야 한다. 일정이 늦어지면 이유와 책임도 밝혀야 한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된 ‘몇 만호 공급’ 발표가 시장의 믿음을 얻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에는 숫자를 더 크게 쓰는 대신 달력을 내놓아야 한다.
2026-08-13 1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