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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로 시작해 빅5까지…율촌, 합병 없이 키운 29년
[경제일보] 1997년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 변호사 6명이 모였다. 조세를 맡은 우창록, 공정거래와 국제조세의 윤세리, 기업금융의 강희철, 금융의 한봉희, M&A의 정영철 변호사 등이었다. 대형 로펌들이 이미 기업법무 시장의 자리를 잡아가던 때였다. 새 로펌의 이름은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뜻을 담아 율촌(律村)으로 지었다. 29년이 지난 지금 율촌의 연 매출은 4000억원을 넘어섰다. 2025년 매출은 4080억원으로 전년 3709억원보다 10% 늘었다. 태평양과 세종, 광장에 이어 국내 법무법인 가운데 네 번째 4000억원대 로펌이 됐다.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약 7억6000만원으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율촌의 성장 과정은 앞서 출발한 대형 로펌과 조금 다르다. 다른 로펌을 합쳐 단기간에 변호사 숫자를 늘리지 않았고 처음부터 모든 업무를 갖추지도 않았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이름을 알린 뒤 기업자문과 M&A, 송무, 금융으로 영역을 넓혔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대형 로펌과의 합병 없이 조직을 키워왔다. ◆ 김앤장을 나온 조세 변호사가 만든 사무실 율촌의 시작은 법무법인 설립보다 5년 앞선 1992년이다. 우창록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사법연수원 6기인 우 변호사는 김앤장과 미국 뉴욕 로펌에서 일했고 국내에서는 일찍부터 조세 분야를 파고들었다. 조세가 기업법무의 주요 전문분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1994년 사무실 이름은 율촌합동법률사무소로 바뀌었다. 이후 우 변호사는 조세만으로 로펌을 키우기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변호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와 국제조세를 다룬 윤세리 변호사, 기업금융의 강희철 변호사, 조세의 한만수 변호사, 금융과 지식재산권의 한봉희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1997년 법무법인 율촌이 공식 출범했다. 윤세리 변호사의 경력도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다. 검사 생활을 거쳐 하버드 로스쿨에서 LL.M.,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에서 J.D.를 받은 뒤 미국 베이커앤드맥켄지 뉴욕·시카고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후 한미합동법률사무소와 우방종합법무법인을 거쳐 율촌 설립에 참여했다. 처음부터 분야를 나눠 사람을 모은 것도 규모보다 전문성을 먼저 세우려는 선택이었다. 이미 시장에서는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이 앞서 있었다. 후발주자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려웠다. 율촌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갖추기보다 경쟁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먼저 만드는 길을 택했다. ◆ 첫 승부처는 조세와 공정거래 율촌이라는 이름을 법률시장에 알린 분야는 조세였다. 우창록 변호사는 현대그룹 계열사를 둘러싼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등 대기업 조세 사건을 맡았다. 조세 사건은 세법만 알아서는 다루기 어렵다. 기업의 회계와 거래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국세청의 과세 논리와 법원의 판단 기준도 함께 읽어야 한다. 율촌은 변호사와 회계사, 세무사가 함께 사건을 다루는 방식으로 조세 분야의 인력을 늘렸다. 공정거래는 윤세리 변호사가 한 축을 맡았다. 기업결합과 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기업의 영업 자체를 좌우하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공정거래법도 기업법무의 주요 분야로 올라왔다. 율촌은 설립 초기부터 공정거래를 별도 전문분야로 키웠다. 두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송이 벌어진 뒤 법정에서 다투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업이 거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세금과 규제를 검토해야 했고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단계에서도 대응해야 했다. 율촌은 이 시장에서 먼저 기업 고객을 확보했다. 2026년 체임버스앤파트너스 평가에서도 율촌은 조세와 공정거래 분야 모두 국내 Band 1에 올라 있다. 조세는 김앤장·세종과 함께 최상위 그룹에 들었고 공정거래는 김앤장·광장·세종과 같은 등급을 받았다. 창립 초기 선택한 두 분야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주력 업무로 남아 있다. ◆ 큰 로펌을 사지 않고 사람과 분야를 늘렸다 2000년대 국내 로펌 시장에는 합병 바람이 불었다. 광장은 한미와 합쳤고 세종은 열린합동을 받아들였다. 대형 로펌으로 빨리 몸집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다른 조직과의 결합이었다. 율촌은 다른 길을 택했다. 설립 이후 대형 로펌을 합병하지 않고 변호사를 직접 뽑거나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조직을 키웠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기업법무·금융, 송무, 지식재산권, 부동산·건설로 업무가 늘어났다. 대형 조직을 통째로 받아들이기보다 필요한 사람과 분야를 하나씩 붙이는 방식이었다.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1997년 6명의 파트너 변호사로 출발했지만 2010년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인력이 230여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변호사만 500명을 넘어섰다. 2021년 381명이던 변호사는 2025년 537명으로 4년 동안 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687억원에서 4080억원으로 52% 늘었다. 사람을 늘리면서도 1인당 매출을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몸집을 키우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한 것이 율촌 성장 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 ‘조세 로펌’에서 M&A까지 조세와 공정거래만으로 500명이 넘는 변호사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율촌도 기업법무와 M&A, 금융 분야를 계속 키웠다. 2026년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율촌의 기업·M&A 부문을 국내 Band 1로 평가했다. 복잡한 거래에서 조세와 공정거래 전문가를 기업자문팀과 함께 투입하는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M&A 계약만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결합 심사와 세금 문제를 같은 조직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최근 사례가 신세계그룹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합작투자다. 양측은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묶어 6조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고 율촌은 신세계 측 법률자문을 맡았다. 기업결합 승인과 지마켓 지분의 현물출자에 필요한 법원 인가 등 여러 절차가 함께 진행된 거래였다. 기업법무가 커져도 조세와 공정거래는 뒤에서 함께 움직인다. M&A 한 건에는 계약과 금융뿐 아니라 기업결합 심사와 세금, 노동 문제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율촌이 처음부터 나눠 키운 전문분야들이 대형 거래에서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 베트남에서 먼저 해외 거점 늘려 국내 조직이 커지면서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율촌은 2007년 베트남 호찌민에 사무소를 열었고 2010년 하노이, 2011년 중국 베이징에 진출했다. 이후 미얀마 양곤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거점을 두면서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업무를 늘렸다. 2007년에는 국문과 영문 사명을 모두 ‘율촌(Yulchon)’으로 통일했다. 해외에서 창업자들의 성을 조합한 이름을 쓰는 국내 로펌이 적지 않았지만 율촌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영문 브랜드로 사용했다.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창업 당시 이름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가져갔다. 해외 확장도 대형 외국 로펌과 합병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한국 기업이 많이 나가는 국가에 직접 사무소를 열거나 현지 로펌과 협업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내에서 선택했던 자체 성장 방식이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다만 국내 대형 로펌의 해외사업은 여전히 숙제가 많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대형 거래나 소송을 벌일 때 현지 영미계 로펌을 직접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쌓은 전문성을 해외 매출로 얼마나 연결하느냐는 율촌을 포함한 국내 대형 로펌들이 풀어야 할 문제다. ◆ 창업자 물러나고 조세 전문가가 대표 맡아 율촌의 세대교체는 2019년 한 차례 큰 변화를 맞았다. 창업자인 우창록 변호사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고 윤용섭·강석훈·윤희웅 변호사 등이 경영을 맡았다. 현재 대표변호사인 강석훈 변호사는 17년간 판사로 근무한 뒤 2007년 율촌에 합류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세팀장을 지낸 조세 전문가로 율촌 조세그룹 대표를 거쳐 2019년 경영대표가 됐다. 최근에는 그룹별 세대교체도 진행했다. 2025년 초 조세와 송무, 기업법무·금융 등 주요 그룹 대표를 1970년대생 변호사들로 바꿨다. 강 대표도 2027년 하반기 차기 대표에게 경영을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업세대에서 2세대, 다시 다음 세대로 경영권을 옮기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율촌의 인재 기준에는 ‘협업’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창립 20주년 사사에는 전문성과 윤리성, 협동정신을 인재 영입의 세 가지 기준으로 제시했다. 우창록 변호사도 개인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조직과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인재관을 설명한 바 있다. 대형 합병을 하지 않고 조직 안에서 사람을 계속 붙이는 방식에서는 이 문제가 더 중요하다. 새로 들어온 전문가가 개인 고객만 관리하면 덩치는 커져도 종합로펌의 장점은 줄어든다. 서로 다른 전문분야의 변호사가 사건을 나눠 맡을 수 있어야 자체 성장 방식도 유지된다. ◆ 매출은 5위, 고객 평가는 달랐다 현재 율촌의 외형은 국내 5위권이다. 2025년 매출은 태평양 4402억원, 세종 4363억원, 광장 4309억원에 이어 율촌이 4080억원을 기록했다. 2위 태평양과 율촌의 차이는 322억원이다. 김앤장을 제외하면 대형 법무법인 네 곳이 모두 4000억원대에 들어왔다. 고객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매출 순위와 조금 다르다. 한국사내변호사회의 2025년 조사에서 율촌은 종합 2위와 전문성 2위, 서비스 1위를 기록했다. 조세·관세 분야에서는 2020년 이후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TMT에서도 2025년 1위에 올랐다. 외형보다 전문성과 서비스 평가에서 강점을 보였다. 매출 2~4위 로펌보다 변호사 숫자는 적지만 1인당 매출은 높다. 율촌은 2025년 한국 변호사 1인당 약 7억6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주요 대형 로펌의 경쟁이 단순히 변호사 수를 늘리는 단계에서 생산성을 따지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율촌도 최근 방향을 외형 확대보다 생산성에 두고 있다. 강석훈 대표는 리걸테크와 고부가가치 업무가 향후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고 매출 자체를 키우기 위한 양적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규모보다 전문성과 생산성을 앞세웠던 창립기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 30년을 앞두고 다시 꺼낸 ‘전문성’ 율촌은 2027년 창립 30년을 맞는다. 1997년 여섯 명이 모였을 때 가장 먼저 나눈 것은 사무실 지분보다 업무 분야였다. 우창록은 조세, 윤세리는 공정거래와 국제조세, 강희철은 기업금융, 정영철은 M&A, 한봉희는 금융과 지식재산권을 맡았다. 큰 조직부터 만든 뒤 전문분야를 나눈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분야를 들고 모여 조직을 만들었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출발한 율촌은 기업법무와 금융, 송무, M&A로 업무를 넓혔다. 다른 대형 로펌과의 합병 없이 변호사를 뽑고 분야별 전문가를 붙이며 조직을 키웠다. 그 결과 2025년 매출 4080억원, 변호사 500명대의 로펌이 됐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같은 길을 더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율촌은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갖추는 대신 조세와 공정거래부터 파고들었다. 그 분야에서 확보한 기업 고객을 M&A와 금융, 송무로 연결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1997년 선택한 이름은 ‘법률가의 마을’이었다. 30년을 앞둔 지금 그 마을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일한다. 율촌이 커진 과정은 처음부터 큰 조직을 만든 역사가 아니라 전문분야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씩 모아온 역사다.
2026-09-17 07: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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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대신 내부 확장…태평양이 종합로펌이 된 방법
[경제일보] 1980년 12월 서울 서소문.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은 김인섭 변호사가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해외 로스쿨이나 외국 로펌 경력은 없었다. 김 변호사가 내세운 목표는 한국 법률시장에서 출발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로펌을 만드는 것이었다. 6년 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배명인 변호사와 이정훈 변호사 등이 합류하면서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가 출범했다. 영문명 ‘BKL(Bae, Kim & Lee)’은 배명인·김인섭·이정훈 세 창업자의 성에서 따왔다. 1987년 법무법인으로 전환했고 1995년 지금의 법무법인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46년이 흐른 현재 태평양은 김앤장에 이어 국내 매출 2위 로펌이다.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 특허법인과 해외법인을 합친 매출은 470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약 25% 늘었다. 국내 변호사는 지난 6월 기준 628명으로 김앤장 다음으로 많다. 김앤장이 국제금융과 외국 기업 자문에서 출발했고 광장이 서로 다른 두 로펌의 합병으로 기업자문과 송무를 결합했다면 태평양의 길은 달랐다. 국내 송무에서 시작해 기업자문과 M&A를 붙이고 국제중재와 공정거래, 조세, 노동, 기업형사로 영역을 넓혔다. 외부 로펌과의 대형 합병 없이 필요한 분야를 조직 안에서 키워온 것이 태평양 성장사의 한 축이다. ◆ 법정에서 시작한 ‘한국형 로펌’ 창업자 김인섭 변호사는 1963년 서울지방법원 판사로 법조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서울고법 판사를 거쳐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다. 1980년 법원을 떠나 변호사 개업을 할 때 김 변호사가 구상한 조직은 몇 명의 변호사가 사무실을 함께 쓰는 합동사무소와는 달랐다. 당시 한국 법률시장은 개인 변호사의 송무가 중심이었다. 대기업이 성장하면서 기업법무 시장도 열리고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대형 종합로펌은 막 걸음을 떼던 시기였다. 김 변호사는 자신의 법관 경험을 토대로 송무를 맡으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를 조직적으로 제공하는 로펌을 만들기 시작했다. 1986년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 출범은 개인사무소에서 조직형 로펌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다. 배명인·김인섭·이정훈을 비롯해 이재식·황의인 변호사 등이 초기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기업법무를 담당할 변호사들이 잇달아 합류했다. 송무에서 시작한 조직에 기업자문과 금융, 지식재산권 분야가 하나씩 붙었다. 태평양이 당시 내세운 말은 ‘한국적인 국제로펌’이었다. 외국 로펌의 운영방식을 그대로 옮겨오는 대신 국내 법률시장과 법조 실무에 뿌리를 두고 국제 업무까지 처리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김인섭 변호사는 훗날 이를 ‘한국적 국제로펌’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 외환위기, 송무 로펌이 기업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양의 업무가 크게 넓어진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기업 매각과 구조조정, 워크아웃이 한꺼번에 진행됐다. 기업의 생존 문제가 법률 문제로 이어지면서 송무뿐 아니라 금융과 M&A, 기업회생을 함께 다룰 변호사들이 필요해졌다. 태평양은 기아자동차 파산 처리와 대우그룹 계열사의 워크아웃 등에 참여했다. 법원에서 분쟁을 처리하던 변호사들이 기업의 재무상태와 채권관계, 구조조정 과정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업회생과 M&A 업무 경험도 쌓였다. 1998년에는 서소문을 떠나 강남 테헤란로로 본사를 옮겼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모이는 곳으로 로펌의 중심도 이동했다. 태평양이 송무를 중심으로 성장한 법률사무소에서 기업의 거래와 경영 문제까지 다루는 종합로펌으로 몸집을 키우던 때였다. 외환위기는 태평양에 새로운 숙제도 안겼다. 국내 기업을 둘러싼 분쟁의 상대가 외국 기업과 해외 자본으로 넓어지면서 국내 법원만 알아서는 처리하기 어려운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은 다음 승부처로 국제분쟁을 택했다. ◆ 2002년 국제중재팀 만들고 해외로 태평양은 2002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중재팀을 만들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수출이 늘면서 계약 분쟁을 해외 중재기관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었다. 국제중재가 지금처럼 대형 로펌의 주요 업무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2009년에는 현대 측을 대리해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IPIC)에 넘어갔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를 통해 되찾는 사건에 참여했다. 국제중재팀을 만든 지 7년 만이었다. 기업 간 국제분쟁을 넘어 국가를 상대로 한 투자분쟁으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대표적인 사건이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이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2012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약 6조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자 태평양은 정부 측 대리를 맡았다. 13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은 2025년 원 판정이 취소되면서 한국 정부가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는 결과로 끝났다. 해외 거점도 늘렸다. 2004년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열었고 이후 상하이와 홍콩, 하노이, 호찌민, 두바이, 싱가포르 등으로 진출했다. 국내 기업이 해외로 이동하는 곳을 따라 법률서비스의 범위도 넓혔다. ◆ 기업의 싸움이 바뀌자 ‘경영권 분쟁’을 따로 떼냈다 기업분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단순한 계약 위반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넘어 기업 지배권을 두고 주주와 경영진, 국내 기업과 해외 펀드가 맞붙는 사건이 늘었다. 태평양이 일찍부터 공을 들인 분야 가운데 하나가 경영권 분쟁이다. 2000년대 초 SK그룹과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에서 태평양은 SK 측을 대리했다. 소버린이 최태원 회장을 이사회에서 밀어내기 위해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법원에 소집 허가까지 신청하자 태평양은 SK 측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법원이 소버린의 신청을 기각하면서 경영권 분쟁은 SK 측에 유리하게 끝났다. 태평양은 2012년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별도의 경영권 분쟁팀을 만들었다. M&A 변호사와 송무 변호사를 한 조직에 모아 주주총회와 이사회, 가처분, 공개매수 등 경영권 싸움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문제를 처리하도록 했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도 참여하며 이 분야를 주요 업무로 이어가고 있다. 경영권 분쟁은 태평양의 출발점이었던 송무와 이후 키운 기업자문이 만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회사법과 자본시장법을 알아야 하고 주주총회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도 대응해야 한다. 태평양이 오랫동안 두 분야를 함께 키운 효과가 드러나는 시장이다. ◆ 로펌도 회사처럼 운영했다 업무 분야만 넓힌 것은 아니었다. 조직 운영에서도 몇 차례 변화를 먼저 시도했다. 2007년에는 국내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법무법인(유한)으로 조직을 바꿨다. 법무법인(유한)은 구성원 변호사의 책임을 일정 범위로 제한하고 규모가 커진 로펌을 조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든 형태다. 변호사 개인의 사무실을 크게 만든 수준에서 벗어나 수백 명의 전문가가 일하는 조직에 맞는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려는 선택이었다. 공익활동도 조직 안에 넣었다. 2001년 공익활동위원회를 만들었고 2009년에는 공익법률지원 활동을 전담하는 재단법인 동천을 설립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태평양이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내부 프로보노 조직을 만든 뒤 별도 공익재단까지 설립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20년에는 22년간 머물던 강남을 떠나 종로 센트로폴리스로 본사를 옮겼다. 당시 약 650명의 전문가를 포함해 1300여 명이 여러 건물에 나뉘어 근무하던 조직을 한 건물에 모았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금융기관, 법원 등과의 접근성을 고려한 이전이었다. ◆ 송무와 자문을 함께 키운 46년 태평양의 현재 업무를 보면 처음부터 키워온 송무와 이후 확대한 기업자문이 함께 남아 있다.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2026년 태평양의 기업·M&A와 송무, 조세, 공정거래 등을 국내 주요 분야로 평가하고 있다. 기업·M&A에는 2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최근 대형 사건도 한 분야에 몰리지 않는다. 론스타 ISDS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아일리아 특허 분쟁,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한전KPS 중대재해 사건 등을 맡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형사재판에도 김앤장과 함께 참여해 대법원 무죄 확정까지 변론했다. 실적도 회복됐다. 태평양의 2025년 법무법인 매출은 4402억원으로 2024년 3918억원보다 12.4% 늘었다. 김앤장을 제외한 법무법인 가운데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며 6년 만에 2위로 올라섰고 올해 상반기 성장률도 약 25%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가장 높았다. 현재 업무집행대표는 이준기 변호사가 맡고 있다. 1996년 태평양에 입사한 이 대표는 M&A와 해외투자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삼성·한화 빅딜과 금호타이어 인수 등 대형 거래를 자문했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데려오기보다 조직 안에서 성장한 변호사가 경영을 맡고 있다는 것도 태평양의 세대교체를 보여준다. ◆ 2위 탈환했지만 격차는 사라졌다 매출 2위 복귀만으로 앞으로의 경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2025년 태평양 매출은 4402억원이었지만 세종은 4363억원, 광장은 4309억원이었다. 2위부터 4위까지 불과 93억원 안에 들어와 있다. 한두 건의 대형 사건이나 인재 이동으로 순서가 달라질 수 있는 격차다. 기업 고객의 평가에서도 태평양이 모든 분야를 앞서는 것은 아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조사에서 태평양은 종합과 전문성, 서비스 평가에서 각각 4위를 기록했다. 민사·송무와 형사·수사기관 대응, 조세·관세, 금융 등 주요 분야에서도 4위권이었다. 세종은 최근 공격적인 인재 영입을 바탕으로 매출을 빠르게 늘렸고 광장과 율촌 역시 M&A와 송무, 규제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다. 대형 로펌 사이의 변호사 이동도 잦아졌다. 태평양이 2025년 되찾은 2위 자리를 지키려면 과거에 쌓은 송무 경쟁력과 최근 확대하는 기업자문을 동시에 끌고 가야 한다. 태평양도 사람을 늘리고 있다. 지난 6월 국내 변호사는 628명으로 1년 전보다 41명 증가해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증가 폭이 가장 컸다. AI와 디지털금융, 공급망, 통상, 중대재해 등 새로운 규제 분야에도 별도 조직을 두고 있다. ◆ 국내 법정에서 시작해 바다를 건넜다 태평양의 출발점에는 국제금융 계약서도, 두 대형 로펌의 합병도 없었다.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변호사가 1980년 서소문에 연 작은 법률사무소가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송무를 했다. 기업이 커지자 기업자문과 금융, M&A를 붙였고 외환위기가 터지자 구조조정 업무를 키웠다. 국내 기업의 분쟁이 해외로 넘어가자 국제중재팀을 만들었고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싸움이 늘자 경영권 분쟁팀을 따로 꾸렸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형 로펌을 합병하거나 조직을 나눠 새 로펌을 만드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필요한 분야를 내부에서 만들고 사람을 영입해 조직 안에 쌓았다. 1980년 김인섭 변호사가 말했던 ‘한국적인 국제로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태평양으로 이어졌다. 법정에서 출발한 로펌은 이제 국제중재와 M&A, 공정거래, 조세, 기업형사를 함께 다룬다. 태평양이 46년 동안 넓혀온 영역이다.
2026-09-11 09:4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