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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 그림자 옅어진 롯데건설…시장 신뢰 회복은 아직 진행형
[경제일보] 한때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우려의 중심에 섰던 롯데건설이 단기 유동성 확보와 PF 부담 축소를 통한 재무 안전성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기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조달 수단을 확대하며 시장 신뢰 회복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한때 불거졌던 유동성 위기가 다소 완화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건설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만큼 아직 완전한 신뢰 회복 단계로 보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지난달 말 단기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1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확대했다. 건설 경기 둔화 장기화에 대비해 단기 유동성 대응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롯데건설은 최근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등 단기물 조달과 함께 ABS 등 구조화 금융도 활용하고 있다. 다만 공모 회사채 시장 접근은 쉽지 않았다. 지난해 6월 1100억원 규모 공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지만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지방 미분양 확대와 PF 우발채무 부담 등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영향이 컸다. 최근 발행한 3000억원 규모 ABS는 이런 조달 다변화 흐름 속에서 나온 사례다. 준공을 앞둔 사업장의 공사대금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활용했고 하나은행 신용공여 등을 결합해 자체 신용등급(A0)보다 높은 최고등급 ‘AAA’를 받아냈다. 이번 ABS 발행은 시장에서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졌다. 준공이 임박한 사업장의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일반 회사채보다 낮은 금리 수준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이번 AAA등급 ABS 발행 성공은 시장으로부터 회사의 신용도를 인정받은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철저한 현금흐름 관리와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올해 본격적인 경영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PF 시장 불안이 확산되던 당시 롯데건설은 유동성 우려가 집중된 건설사 가운데 하나였다. 지방 미분양 확대와 PF 시장 경색이 겹치면서 단기 자금 조달 부담이 급격히 커졌고 시장 신뢰 역시 흔들렸다. 이후 롯데건설은 차입 구조 재편과 PF 우발채무 축소에 집중하며 재무 안정화 작업을 이어왔다. PF 부담은 최근 들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 규모는 2022년 말 6조8000억원 수준까지 확대됐지만 최근에는 3조1000억원대로 줄었다. PF 유동화증권 매입펀드 등을 활용해 단기 차입 구조를 장기화한 점도 부담 완화에 영향을 줬다. 재무 지표도 일부 개선됐다. 부채비율은 2022년 265% 수준에서 지난해 말 180%대로 낮아졌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각각 3500억원, 총 7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현금성 자산 역시 1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며 단기 대응 여력을 보강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아직 완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시각도 나온다. 신종자본증권은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이자 부담과 조기상환 부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향후 현금창출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무 부담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는 의미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운전자본 회수를 통한 현금창출력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재무 부담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신종자본증권 발행 이후 대형 사업의 준공 및 분양성과 개선을 통한 현금창출력 확대와 재무안정성의 지속 여부가 중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원가 부담 역시 주요 변수 중 하나로 평가된다. 국제 유가와 건설 자재 가격 상승이 장기화한다면 공사 원가 부담은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롯데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을 앞세운 정비사업과 선별 수주 전략을 강화하며 현금흐름 안정성에 집중하고 있다. 재무 안정화와 함께 조직 효율화 작업도 병행 중이다. 최근 롯데건설은 장기근속자 등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동시에 신입·경력 채용도 이어가며 조직 재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준공 사업장의 분양 성과와 현금 회수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재무 부담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건설 경기 침체와 원가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롯데건설이 수익성 중심 경영 기조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가 향후 시장 신뢰 회복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2026-05-12 09:14:05
팽창에서 내실로 방향 튼 SK…사상 최대 리밸런싱이 던진 승부수
[경제일보] 화려한 조명 뒤에는 언제나 짙은 그림자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전 세계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제패한 SK하이닉스의 경이로운 실적 뒤에서 SK그룹은 창사 이래 가장 혹독하고 치열한 사업 구조 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리밸런싱(Rebalancing)'으로 불리는 이 거대한 포트폴리오 조정 작업은 단순한 계열사 축소를 벗어나 그룹의 생존과 100년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최태원 회장의 가장 냉철한 결단이다. 최근 수년간 SK그룹은 '딥체인지'라는 기치 아래 배터리(Battery)와 바이오(Bio) 그리고 반도체(Chip)를 뜻하는 이른바 BBC 산업을 중심으로 영토를 폭발적으로 확장했다. 친환경 에너지와 첨단 소재 분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미래 준비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계열사 수는 200여 개까지 급증하며 외형은 거대해졌으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막대한 투자금 회수에 경고등이 켜졌다. 특히 전기차 수요가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캐즘 현상이 겹치면서 방대한 투자 포트폴리오는 그룹 전체의 묵직한 재무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최 회장은 반도체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현금에 취해 그룹의 근본적인 체질 약화를 방치하는 이른바 반도체 착시 현상을 가장 크게 경계했다. 팽창 일변도의 전략을 즉각 멈추고 방대해진 조직을 효율적으로 압축하는 과감한 군살 빼기에 돌입했다. 이 역사적 리밸런싱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바로 2024년 말 전격적으로 단행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초대형 합병이다. 자산 규모 100조 원에 달하는 거대 에너지 기업의 탄생은 단순한 계열사 통합이 아니다. 알짜 수익을 내는 E&S의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활용해 자금난에 빠진 배터리 자회사를 구출하겠다는 치밀한 재무적 승부수였다. 실제로 그룹의 핵심 미래 동력인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SK온(대표 이석희·이용욱)은 전기차 시장의 한파 속에서 힘겨운 보릿고개를 건너고 있다. 하지만 SK는 이를 뼈아픈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이 안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시적 성장통으로 진단한다. 합병을 통해 든든한 실탄을 확보한 SK온은 수율 개선과 조직 효율화 등 강도 높은 운영 개선(Operation Improvement)에 집중하며 다가올 전기차 반등장을 숨 죽여 준비하고 있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글로벌 생산 기지의 최적화를 통해 혹독한 캐즘을 돌파할 체력을 비축하는 중이다. 배터리가 험난한 계곡을 지나고 있다면 또 다른 성장 축인 바이오 산업은 묵묵히 괄목할 만한 결실을 맺고 있다. 신약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SK바이오팜(대표 이동훈)은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의 미국 시장 안착을 바탕으로 탄탄한 흑자 기조를 굳혔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을 담당하는 SK팜테코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단단히 다지고 있다. 신약 개발은 평균 10년 이상의 막대한 시간과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는 인내의 영역이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수십 년을 내다본 총수의 뚝심 있는 장기 투자가 비로소 글로벌 블록버스터급 신약 창출이라는 쾌거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그룹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재편 작업의 정신적 기저에는 선대 회장이 남긴 고유의 경영 철학인 SKMS(SK Management System)가 자리 잡고 있다. 최 회장은 대내외적 위기가 고조되자 임직원들에게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자"며 SKMS의 실천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호황기에 잊고 지냈던 방만한 경영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철저한 성과주의와 낭비 없는 효율적 운영을 통해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되찾으라는 준엄한 지시였다. 투자 중심의 양적 팽창에서 철저한 운영 개선을 통한 질적 성장으로 그룹의 경영 기조가 완벽하게 전환된 이유다. SK는 결코 반도체 하나에만 기대어 생존하는 외발자전거가 아니다. 그룹이 진정한 글로벌 일등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의 압도적 독주와 함께 친환경 에너지 전환과 생명과학 포트폴리오가 반드시 균형 있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현재 SK가 겪고 있는 치열한 구조조정과 뼈를 깎는 비용 절감은 전통적인 탄소 중심의 거대 기업이 지속 가능한 친환경 첨단 제국으로 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값비싼 통과 의례와 같다. 위기는 언제나 위대한 기업을 감별하는 가장 정확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과거 선경직물이 석유파동의 파고를 넘어 거대 에너지 화학 기업으로 진화했고 외환위기의 한파 속에서 정보통신 제국을 세웠듯 SK는 언제나 벼랑 끝에서 가장 폭발적인 도약을 이뤄냈다. 방대한 제국의 영토를 매섭게 정비하며 숨을 고르고 있는 최태원 회장의 과감한 리밸런싱 전략이 배터리와 바이오의 화려한 비상으로 이어져 그룹의 다음 100년을 지탱할 완벽한 삼각편대를 완성할 수 있을지 전 세계 산업계가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2026-04-21 10: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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