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10건
-
-
'카카오AI' 독립시키는 카카오…복합기업 할인·의사결정 비효율 정면돌파
[경제일보] 카카오가 AI 사업과 투자·자회사 관리 기능을 분리하는 인적분할을 단행한다.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AI 사업에 집중하는 '카카오AI'와 금융·콘텐츠·모빌리티 등 주요 자회사를 관리하고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는 '카카오X'로 회사를 나눠 사업별 전문성과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겠다는 전략이다. 21일 카카오는 '카카오 인적분할 설명회'를 온라인으로 진행해 인적분할의 세부 내용을 공개했다. 이번 설명회에 따르면 카카오는 오는 11월 23일을 주주확정일로 정한 뒤 12월 17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분할 승인을 받는다. 오는 12월 31일을 신주 배정 기준일로 하고 내년 1월 1일 분할을 완료하며 이후 내년 1월 27일 카카오X와 카카오AI의 변경상장 및 재상장이 이뤄질 예정이다. 카카오는 이번 분할의 핵심 배경으로 카카오가 그동안 받아온 '복합기업 할인' 해소를 꼽았다. 카카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외 증권사들이 평가한 카카오의 주요 자산 합산 가치는 약 34조2000억원이지만 최근 3개월 기준 카카오 시가총액은 약 16조8000억원에 그쳤다. 김도영 카카오X 대표 내정자는 이날 인적분할 설명회를 통해 "현저한 복합기업 할인을 해소하고자 한다"며 "국내외 증권사가 평가하는 카카오 개별 사업 부문들의 모든 합산은 34조2000억원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최근까지의 카카오 3개월 신규 시총은 16조8000억원으로 비교해 보면 50% 이상 절하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카카오가 제시한 또 다른 이유는 AI 사업의 독립적인 가치 평가다. 현재 카카오가 B2C IT 서비스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AI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 명확한 성장 전략과 수익 모델을 제시하면 AI 기업에 적용되는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의사결정 구조의 비효율도 분할 배경으로 제시했다. 카카오는 최근 5년간 이사회 의사결정 가운데 약 85%인 23건이 카카오 본체의 기업가치 제고보다 자회사 지원이나 경영 현안과 관련된 안건이었다고 밝혔다. 최근 1년간 내부 투자심의기구에서 다룬 32건의 안건 중에서도 약 84%가 자회사 관련 안건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 대표 내정자는 "최근 2~3년간 카카오 경영자원의 상당 부분이 자회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관리하느라 쓰였다"며 "이번 분할을 통해 복합기업 할인을 명시적으로 해소하고, 카카오가 자랑하던 성장 속도를 복원하고, 사업별 전문화된 의사결정으로 자원을 배분해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 카카오AI, 카카오톡 기반 'B2C AI'에 집중 카카오AI는 카카오톡과 AI 기술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다. 카카오가 보유한 5000만 이용자의 일상과 관계·맥락 데이터를 기반으로 에이전틱 AI 서비스를 구축하고 광고·커머스와 결합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신아 카카오AI 대표 내정자는 "카카오AI의 가장 큰 경쟁력은 5000만 이용자에게 안정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한 풀스택 AI 역량"이라며 "인프라부터 모델, 플랫폼, 서비스까지 AI 전 레이어를 최적화하면서 카카오톡 내 새로운 에이전틱 AI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동시에 광고와 커머스에서 이미 AI가 단단하게 구축되어 있는 다양한 도구로 전반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온디바이스 우선' 전략으로 풀이된다. 카카오는 이용자 요청의 절반가량을 자체 경량 AI 모델을 통해 기기에서 처리하고 복잡한 요청은 서버 AI 모델과 전문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AI 컨덕터를 통해 요청의 복잡도와 난이도를 판단하고 최적의 AI 모델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카카오는 이를 통해 서버 추론 비용을 최대 90%까지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추론 비용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를 피하고 5000만 이용자를 대상으로 AI 서비스를 확장할 수 있는 비용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카카오AI는 AI 에이전트가 이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광고·검색·상품 구매·외부 서비스 이용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목표로 기업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이용자의 의도를 분석해 상품과 서비스를 추천하고 구매까지 연결하는 '에이전틱 광고'를 선보인다. 검색 광고 시장에서는 오는 2030년까지 5%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카카오AI는 오는 2030년까지 AI 매출 1조원 이상, 전체 매출 6조원 이상,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약 20%,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2조원 이상, 영업이익률은 30% 이상,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5% 이상을 목표로 제시했다. 오는 2030년에는 하루 2000만명 이상의 이용자가 AI를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정 대표 내정자는 "현재 카카오톡에서 능동적 이용자 3000만명에서 80%를 잡더라도 2000만명"이라며 "AI가 실질적으로 적용될 경우 DAU 2000만명은 가능한 숫자"라고 설명했다. ◆ 카카오X, 금융·콘텐츠·모빌리티 중심 투자회사로 카카오X는 금융·콘텐츠·모빌리티 등 주요 자회사를 기반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투자하는 역할을 맡는다. 카카오X 산하 주요 사업은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페이증권 등 테크핀, 카카오엔터테인먼트·SM엔터테인먼트·픽코마 등 콘텐츠, 카카오모빌리티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등 3대 축으로 구성된다. 테크핀에서는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구축, 콘텐츠에서는 팬덤과 IP를 기반으로 한 글로벌 사업 확대, 모빌리티에서는 로보택시와 로봇 물류 등 피지컬 AI 영역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제시했다. 카카오X 산하 사업의 매출도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약 13% 성장해 지난해 5조6000억원 대비 2배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카카오는 인적분할 이후 두 법인은 독립적인 경영 체계를 갖추지만 카카오톡과 자회사 간 사업 협력까지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 내정자는 "양사의 사업 목적이 다른 만큼 기본적으로는 독립적인 경영이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카카오 플랫폼과 자회사 간 유기적 협업은 과거와 동일하게 진행되며 그룹 안에서 달라질 것은 없다는 점은 명확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특히 카카오X를 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김 대표 내정자는 "분할 이후 카카오X를 지주사로 전환할 계획은 전혀 없다"며 "기존 CA협의체와 같은 공동 조직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카카오 창업자의 역할과 지분율도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인적분할 특성상 분할 전후 주주의 지분율은 동일하게 유지되며 창업자와 K큐브홀딩스가 보유한 지분 역시 같은 비율로 배분된다. 카카오 본사 임직원은 대부분 카카오AI로 이동한다. 사업 단위별 인력 재배치가 이뤄지더라도 근로조건은 포괄 승계되며, 기존 스톡옵션도 분할 비율에 따라 나뉜다. 카카오는 분할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를 낮추기 위해 주주환원 정책도 함께 제시했다. 카카오X는 자회사 배당수익의 30%를 우선 주주에게 배당하고, 특별한 투자수익이 발생할 경우 해당 수익의 30%를 특별배당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나머지 70%는 재투자해 추가적인 성장과 주주환원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두나무 지분 매각과 관련해 발생하는 세후 수익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약 3000억원을 분할과 연계해 자사주 매입·소각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AI 역시 기존 주주환원 정책을 유지한다. 잉여현금흐름의 20~35%를 주주환원에 배정하고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병행한다. 오는 2027년부터는 잉여현금흐름이 전년 대비 50% 이상 성장할 경우 주주환원 규모를 30%에서 최대 40%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이나 계열사 합병·상장 계획에 대해서는 "현재 특별히 고려하고 있는 안은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향후 신규 투자나 사업 재편 과정에서는 자본시장 규제와 중복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주주가치 훼손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양사 간 거래와 비용 정산도 독립경영 원칙에 따라 시장가격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진행한다. 브랜드와 데이터, 인프라 등을 공유할 경우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분할 이후 양 법인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카카오는 이번 인적분할을 통해 AI 사업의 성장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금융·콘텐츠·모빌리티 등 기존 핵심 자산의 가치도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분할 자체가 기업가치 상승을 보장하는 것은 아닌 만큼, 카카오AI가 제시한 AI 이용자와 매출 목표를 실제 성과로 연결하고 카카오X가 자회사 가치와 투자 성과를 얼마나 끌어올리느냐가 분할 이후 기업가치를 결정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 대표 내정자는 "이번 분할은 카카오의 미래 성장 전략과 AI 시대에 적합한 사업 구조를 검토한 결과"라며 "카카오X는 미래 가치를 키우는 투자 전문 회사로, 카카오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가보지 않는 길'을 가는 도전, 즉 각 사업에 있어서 '0 to 1'을 해냈던 경험들을 사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 내정자는 "모바일 시대의 카카오는 대화와 연결로 사람들의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어왔다"며 "카카오AI는 이번 인적분할을 계기로 자회사 관리라는 비중 있는 역할을 분리하면서 핵심 사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명확한 사업구조가 갖춰졌다"고 말했다.
2026-08-21 16:07:49
-
-
-
-
-
넷마블, 1조 실탄으로 '돈 버는 구조' 다시 짠다
[경제일보] 넷마블이 재무구조와 수익모델을 동시에 손보며 턴어라운드의 다음 단계로 들어섰다. 하이브 지분과 구로 지타워 등 비핵심 자산을 현금화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한편, 핵심 개발 자회사 넷마블네오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고 자체 결제 비중을 높이며 본업의 이익 체질을 바꾸고 있다. 출발점은 실적이다. 넷마블은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6517억원, 영업이익 531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5%, 영업이익은 6.8% 늘었다. 당기순이익은 2109억원으로 163% 증가했다. 보유 자산 매각 손익이 반영된 영향이 크지만,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늘었다는 점은 기초 체력이 회복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비용 구조다. 넷마블은 오랫동안 앱마켓 수수료와 외부 지식재산권(IP) 비용 부담이 큰 게임사로 꼽혀 왔다. 매출이 커도 이익률이 따라오지 못했던 이유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지급수수료는 2009억원으로 전년 동기 2191억원보다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늘었지만 수수료는 감소했다. 자체 IP 매출 확대와 PC·자체 결제 비중 증가가 맞물리면 매출 증가분이 이익으로 남는 구조가 강화될 수 있다. 자산 매각도 같은 흐름에서 봐야 한다. 넷마블은 지난 2월 하이브 주식 88만주를 약 3208억원에 처분했다. 이어 서울 구로구 본사 사옥 지타워 토지와 건물 일체를 6976억7082만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단순 현금 확보가 아니라 스핀엑스 인수 이후 커진 재무 부담을 줄이고 신작 개발과 글로벌 마케팅 재원을 마련하는 자본 재배치다. 넷마블네오 완전자회사 편입도 주목할 대목이다. 넷마블은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넷마블네오 지분율을 78.5%에서 100%로 끌어올릴 예정이다. 넷마블네오는 ‘리니지2 레볼루션’, ‘제2의 나라’,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 등을 만든 핵심 개발 자회사다. 이 회사를 별도 상장시키는 대신 본사 안으로 묶으면 중복상장 우려를 줄이고 개발 성과를 모회사 주주가치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 주주가치 방어 장치도 함께 마련했다. 넷마블은 주식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주 발행에 따른 희석 우려를 낮추기 위해 828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연내 소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자회사 편입이 단순 지배구조 개편에 그치지 않고, 본사 주주의 이해와 연결되도록 설계한 셈이다. 글로벌 매출 구조도 넷마블의 강점이다. 넷마블의 1분기 해외 매출은 512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9%를 차지했다. 북미, 유럽, 동남아, 일본 등으로 매출이 분산돼 있어 국내 시장 의존도가 높은 일부 게임사와 다르다. 신작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자체 결제와 PC 플랫폼 전략이 결합되면 이익 개선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물론 회복을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자산 매각에 따른 순이익 증가는 일회성 성격이 있고, 신작 매출 지속성도 검증해야 한다. 자체 결제 확대가 모든 장르와 지역에서 같은 효과를 낼지도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 시장이 봐야 할 지표는 단기 순이익보다 영업이익률, 지급수수료율, 신작 매출의 잔존율이다. 한편 넷마블의 최근 행보는 축소가 아니라 재배치에 가깝다. 비핵심 자산을 팔아 몸을 가볍게 하고, 핵심 개발 자회사를 본사 안으로 묶으며, 수수료 부담을 낮춰 흥행이 이익으로 남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게임사의 성패는 결국 흥행에서 갈리지만, 흥행을 현금흐름으로 바꾸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하다. 다음 실적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신작의 첫 순위가 아니라 넷마블이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느냐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07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07 07:47:03
-
-
코스피 8000시대…이제 다음을 준비하자
[경제일보] 코스피 8000시대가 열렸다.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시장의 공기는 달라졌다. 5000선 돌파 때는 기대가 앞섰고, 6000선에서는 의심과 환호가 엇갈렸다. 7000선을 지나 8000선을 넘자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어디까지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이 상승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가 2026년 5월 26일 종가 기준 사상 처음 8000선을 돌파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55% 오른 8047.51에 마감했고, 삼성전자는 2.22%, SK하이닉스는 5.72% 상승했다. 다음 날에도 반도체 대형주는 신고가 행진을 이어갔다. 5월 27일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고, 한국 코스피가 올해 들어 세계 주요 지수 가운데 가장 강한 흐름을 보였다. 이번 랠리의 주역은 단연 반도체다. 인공지능 서버, 고대역폭메모리,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다시 한국 증시의 심장부로 밀어 올렸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수출 엔진이고, 기술 주권의 방파제이며, 자본시장의 가장 강력한 실적 근거다. 주가가 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과거 유동성 장세와 달리 이번 상승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익 전망 상향과 산업 슈퍼사이클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축포 소리 속에서 다음 위험을 키운다. 로이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고, 기술주가 향후 이익 전망의 대부분을 떠받치는 구조가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 달간 코스피 상장사의 17%만 주가가 올랐고, 반도체 ‘투톱’ 쏠림이 뚜렷하다. 지수는 8000인데, 체감 수익률은 투자자마다 크게 다르다. 이것이 8000시대의 첫 번째 역설이다. 코스피 8000은 끝이 아니라 시험대다. 시장이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주가 상승을 제도 상승으로 연결해야 한다. 주주친화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자본시장 신뢰의 기본 조건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만 쓰이고 일반주주는 의사결정의 주변부에 머문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이름만 바꿔 다시 돌아온다. 주가가 올랐다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주가 상승은 개혁을 미룰 이유가 아니라 개혁을 완성할 기회다. 그런 점에서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 개혁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이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은 시장의 기대를 키운 핵심 재료였다. 한국의 개정 상법이 새로 취득한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도록 해 자사주가 지배력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온 관행을 겨냥했다. 다만 제도는 법전에 적힌 문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실질적 주주환원으로 이어지는지, 물적분할과 중복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의 이익이 보호되는지,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가 수탁자 책임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불공정거래에 대한 처벌이 시장의 공포가 될 만큼 강한지까지 봐야 한다. 자본시장 개혁은 지수를 올리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장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수익의 다각화다. 반도체가 한국 증시의 앞문을 열었다면, 다음 방은 전력기기, 원전, 조선, 방산, 자동차, 로봇, 바이오, 금융, 콘텐츠, 인프라 기업들이 채워야 한다. AI 시대의 반도체 수요는 전력망과 냉각장치, 데이터센터, 소재·부품·장비, 보안,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어진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반도체 주가만의 축제로 끝낼 것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투자 기회로 넓혀야 한다. 금융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은행 예금과 부동산에 갇혀 있던 가계 자산을 생산적 자본으로 이동시키려면 장기투자 상품, 배당형 상품, 연금계좌, ISA, 퇴직연금의 질을 높여야 한다. 개인투자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급등주를 따라붙는 통로가 아니라 산업 성장의 열매를 장기적으로 나눠 갖는 구조다. 레버리지 ETF와 신용융자가 시장의 불쏘시개가 될 수는 있어도, 국민 자산 형성의 기둥이 될 수는 없다. 특히 빚투의 확산은 경계해야 한다. 최근 한국 증시 랠리가 개인투자자의 신용거래와 레버리지 상품으로 더 가팔라지고 있으며, 증거금 부채가 크게 늘었다. 거래대금이 늘고 계좌가 불어나는 것은 시장의 활력이다. 그러나 빚으로 산 주식은 작은 조정에도 큰 손실을 만든다. 상승장에서는 모두가 용감해 보이지만, 하락장에서는 레버리지가 먼저 무너진다. 정부도 시장의 환호에 취해선 안 된다. 세제 혜택, 배당소득 과세 정비, 장기투자 유인, 불공정거래 근절, 공시 투명성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지수 목표를 앞세워 시장을 관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시장은 방향을 제시받을 수는 있어도 끌려가서는 안 된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핵심은 정부의 손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선명해지고, 기업과 투자자가 그 규칙을 신뢰하는 데 있다.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 주주환원은 주가가 오를 때만 내놓는 시혜가 아니라 자본 조달의 대가다. 배당을 늘리고, 불필요한 자사주는 소각하며, 자본비용보다 낮은 수익률의 투자는 과감히 접어야 한다. 총수 일가의 지배권 방어보다 기업가치 제고가 우선이라는 원칙이 자리 잡아야 한다. 8000시대의 기업은 더 이상 ‘한국 시장이라서 이 정도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글로벌 자금은 한국 기업을 삼성전자·SK하이닉스만으로 보지 않는다. 이사회, 공시, 배당, 승계, 소수주주 보호까지 함께 본다. 고전은 늘 흥분한 시대에 차가운 생명수 역할을 한다. <맹자>에는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다. 번영의 순간에 위험을 생각하는 나라와 기업은 오래 간다. 반대로 좋은 시절이 계속될 것이라 믿는 순간, 시장은 가장 비싼 수업료를 요구한다. 코스피 8000시대에 필요한 태도는 도취가 아니라 절제다. 비관이 아니라 준비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저평가의 늪에 갇혀 있었다. 기업은 돈을 벌어도 주주는 소외됐고, 지배구조는 복잡했으며, 불공정거래 처벌은 약하다는 불신이 컸다. 이제 그 늪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왔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문을 열었고, 자본시장 개혁은 그 문을 닫히지 않게 만드는 경첩이다. 문이 열렸다고 집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코스피 8000은 한국 경제에 주어진 상장이 아니다. 숙제장이다. 첫 줄에는 반도체 경쟁력을 더 키우라고 적혀 있다. 둘째 줄에는 주주친화 정책을 되돌리지 말라고 적혀 있다. 셋째 줄에는 특정 업종 쏠림을 넘어 산업과 수익의 지평을 넓히라고 적혀 있다. 넷째 줄에는 개인투자자의 열기를 장기 자산 형성의 문화로 바꾸라고 적혀 있다. 지금 필요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코스피 8000을 자축하되 8000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다음 단계의 한국 자본시장은 더 높은 지수가 아니라 더 깊은 신뢰로 증명돼야 한다. 반도체가 끌어올린 시장을 제도가 떠받치고, 주주가 믿는 기업이 자금을 끌어오며, 국민의 자산이 생산적 투자로 흐를 때 비로소 코스피 8000은 일시적 기록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 출발선이 될 것이다.
2026-05-28 12:02:12
-
코스피 6900 돌파, 주가보다 제도를 끌어올릴 때다
[경제일보] 코스피가 4일 사상 처음으로 6900선을 넘어섰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38.12포인트, 5.12% 오른 6936.99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21.39포인트, 1.79% 오른 1213.74에 마감했다. ‘7천피’가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상승장은 반도체 대형주가 이끌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급등했고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수가 지수를 밀어 올렸다. 특히 SK하이닉스는 ‘140만닉스’를 넘어 시가총액 1000조원 시대를 열었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기술주 랠리와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를 타고 사상 최고치에 올라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주가의 높이가 곧 자본시장의 품격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보다 점검이다. 한국 증시가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실적 부진만이 아니었다. 소액주주 보호 미흡, 낮은 배당 성향,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대주주 중심 의사결정이 시장 신뢰를 갉아먹어 왔다. 주가는 한순간에 오를 수 있지만 신뢰는 제도로만 쌓인다. 코스피 6900 돌파를 일회성 축제로 끝내지 않으려면 상승장을 제도 개혁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상법 개정 흐름은 중요한 변화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넓히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시한 것은 한국 자본시장사에서 작지 않은 전환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선임 때 대주주 의결권 제한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도 같은 맥락이다. 자사주 제도도 바뀌었다. 개정 상법은 기업이 취득한 자기주식을 원칙적으로 1년 안에 소각하도록 하고 자기주식을 합병·분할 등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편법적으로 활용하는 길을 좁혔다. 자사주가 주주환원의 수단이 아니라 지배권 방어의 도구로 쓰였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소액주주 보호는 반기업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기업가치를 높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규율이다. 투자자는 자신의 권리가 보호된다고 믿을 때 장기 자금을 맡긴다. 합병, 분할, 공개매수, 자회사 중복상장, 자사주 처분, 배당 결정 과정에서 일반주주가 늘 뒷전으로 밀린다면 아무리 지수가 올라도 시장은 선진화될 수 없다. 금융당국이 M&A 과정에서 이사회가 전체 주주의 관점에서 매수가격의 공정성 등을 검토하고 공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법 문구가 아니라 집행이다. 기업지배구조 개편도 미룰 수 없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실적만 보지 않는다. 경영진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하는지, 이사회가 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지, 기업의 현금이 성장 투자와 주주환원에 합리적으로 배분되는지를 함께 본다. 밸류업은 구호가 아니라 숫자로 증명돼야 한다.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고,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며 경영진 보상을 주주가치 개선과 연동해야 한다. 국민기업에 대한 장기투자 기반도 넓혀야 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같은 대표 기업은 특정 대주주만의 자산이 아니다. 국민경제의 핵심 자산이자 국민 노후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이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장기 공모펀드가 국내 우량 기업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 배당소득 과세 체계와 장기투자 인센티브도 시장 선진화의 관점에서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시장 투명성과 공정성도 함께 높여야 한다. 외국인 자금 유입은 긍정적이지만 외국인 수급에 과도하게 흔들리는 시장은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국내 장기자금이 두터워지고, 기업 공시가 쉬운 언어와 충분한 정보로 제공돼야 한다. 영문공시 확대, 선진 배당절차 정착, 불공정거래 엄단, 분식회계 근절, 부실기업의 질서 있는 퇴출은 모두 같은 방향의 과제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주주를 주주라 부르면서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다면 시장경제의 이름은 바로 설 수 없다. 코스피 6900은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한국 증시가 진정한 선진 자본시장으로 가려면 주가보다 신뢰가 먼저 올라야 한다. 정부와 국회, 기업은 지금의 상승장을 제도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가를 끌어올린 힘이 실적이었다면, 다음 단계로 시장을 끌어올릴 힘은 주주보호와 지배구조 개혁이다.
2026-05-05 09: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