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42건
-
제철소를 짓던 회사는 도시를 바꾸는 기업이 됐다…포스코이앤씨 성장과 변화의 기록
[경제일보] 포항 바닷가 제철소 굴뚝은 한국 산업화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철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는 일은 단순 건설이 아니었다. 국가 산업 기반 자체를 만드는 과정에 가까웠다. 포스코이앤씨의 출발 역시 그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제철소와 산업 플랜트를 짓던 회사는 시간이 흐르며 초고층 건물과 도시정비, 친환경 인프라까지 영역을 넓혀 왔다. 포스코이앤씨의 전신은 포스코건설이다. 출발 배경부터 일반 건설사들과 조금 달랐다. 모기업 포스코의 제철소와 산업시설 건설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과 플랜트 중심 경험은 이후 회사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반이 됐다. 초기에는 제철과 에너지, 산업 플랜트 같은 영역 비중이 컸다. 대형 설비와 복잡한 공정 관리 경험이 축적됐고 해외 인프라 사업으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 갔다. 단순 건축 시공보다 산업 기반 시설에 강점을 가진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시기다. 이후 주택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기 시작했다. ‘더샵’ 브랜드가 대표 사례다. 더샵은 한동안 국내 주거 브랜드 시장에서 고급 이미지와 안정적인 품질을 동시에 강조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철강 기업 계열 건설사라는 배경과 연결되며 견고함과 기술력을 강조하는 이미지도 함께 형성됐다. 최근에는 ‘오티에르’ 브랜드를 통해 초고급 주거 시장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도시정비사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단순 브랜드 인지도만으로는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설계와 커뮤니티, 조경과 마감 수준까지 함께 경쟁하는 흐름 속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를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흐름은 초고층과 복합개발 경험이다. 국내외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기술력을 축적해 왔다. 송도국제도시 개발 역시 자주 언급되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단순 주거 단지를 넘어 국제업무지구와 복합 기능 도시를 조성하는 과정이었다. 해외 시장에서도 꾸준히 사업을 이어 왔다. 동남아시아와 중동, 남미 지역 인프라와 플랜트 사업 경험이 축적됐다. 글로벌 건설 시장 변동성이 큰 만큼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 중요성도 함께 커졌다. 최근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사명 변경이다. 기존 ‘포스코건설’에서 ‘포스코이앤씨(POSCO E&C)’로 이름을 바꿨다. 단순 영문 표기 변경에 가까운 수준이 아니라 기업 방향 자체를 다시 정리하는 흐름으로 읽힌다. E&C는 Engineering & Construction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 시공 회사보다 친환경과 미래 인프라, 기술 중심 기업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과 연결된다. 최근 건설업이 친환경과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변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 회사 움직임도 이전과 조금 달라지고 있다. 친환경 건축과 탄소 저감 기술, 수소와 에너지 인프라 같은 분야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건설업이 단순히 공간을 짓는 산업에서 에너지와 환경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정비사업 역시 핵심 무대가 됐다. 서울과 수도권 주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도시정비사업은 단순 시공 경쟁보다 브랜드와 금융, 설계 역량까지 함께 요구된다. 포스코이앤씨의 강점은 산업 기반 경험과 주거 브랜드 경쟁력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플랜트와 인프라 경험에서 축적된 기술력, 더샵 브랜드 인지도, 그룹 차원의 철강 경쟁력이 연결돼 있다. 반면 시장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프로젝트파이낸싱 부담과 공사비 상승, 금리 변화가 동시에 이어지고 있다. 해외 사업 역시 지정학 변수와 원자재 가격 영향을 크게 받는다. 건설업은 지금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과거처럼 공급 확대만으로 성장 흐름을 이어가기 어려운 환경이다. 친환경과 에너지, 도시정비와 복합개발 경험이 함께 중요해지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산업화 시대 제철소를 짓던 회사에서 친환경 도시와 미래 인프라를 이야기하는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철소 굴뚝과 초고층 주거 브랜드, 친환경 에너지 인프라가 한 회사 안에서 함께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산업화 현장을 지나 성장한 건설사는 지금 또 다른 변화를 맞고 있다. 시장은 이제 단순 시공 능력만이 아니라 변화한 산업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함께 보고 있다.
2026-05-08 07:24:17
-
-
트럼프의 "승리 후 협상"과 호르무즈의 침묵
[경제일보] 중동의 사막은 늘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언제나 전쟁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 사막은 문명의 길이었고, 때로는 세계 경제의 동맥이었다. 오늘날 세계가 다시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는 이유도 단순히 미사일과 핵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석유의 길이고, 달러의 길이며, 현대 산업문명의 숨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주일 정도면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외교적 발언 같지만, 국제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이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물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보다는 관리 가능한 타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신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충돌을 “소규모 충돌(skirmish)”이라고 표현했다. 단어 하나에도 의도가 있다. 그는 이란과의 군사 충돌을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강하게 때렸고, 상대를 굴복시켰으며, 결국 협상으로 정리했다”는 서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것은 군사 전략이면서 동시에 미국 국내정치 전략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은 언제나 “힘을 통한 거래”였다. 상대를 극단까지 몰아붙인 뒤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중국과의 관세전쟁도 그랬고, 북한과의 정상회담도 그랬다. 이번 이란 문제 역시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다르다.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5천 년 문명의 기억을 가진 페르시아의 후예이며, 세계 에너지 길목을 움켜쥔 지정학 국가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한국, 일본, 중국의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수천 척의 유조선이 이 좁은 바다를 통과한다. 만약 이곳이 봉쇄되면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는 즉시 충격에 빠진다. 인플레이션은 재폭발하고, 금리는 다시 오르며, AI 산업을 포함한 첨단산업의 전력 비용도 급등한다. 결국 호르무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현대 문명의 목줄이다. 미국과 이란이 이번 협상에서 논의하는 핵심 역시 바로 이것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이란 핵농축 중단 △고농축 우라늄 반출 △지하 핵시설 가동 중단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등을 포함한 양해각서(MOU)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핵과 석유의 교환”이다. 미국은 핵위협 제거를 원하고, 이란은 경제 제재 해제를 원한다. 서로 필요한 것을 맞바꾸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전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총성보다 먼저 기대와 공포를 가격에 반영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다소 안정되고 미국 증시와 아시아 증시가 반등한 것도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이 일단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뉴욕 금융가는 이미 두 개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계산하고 있다. 하나는 ‘휴전과 타협의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부진한 장기 대치 시나리오’다. 만약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일정 수준에서 타결되고 사실상의 휴전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상당 기간 안도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70~80달러 선에서 안정될 수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중동 리스크 때문에 움츠렸던 글로벌 투자 자금은 다시 미국 기술주와 아시아 반도체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경제에는 중요한 숨통이 열린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가 안정 자체가 곧 물가 안정으로 연결된다. 반도체·배터리·AI 데이터센터 산업 역시 전력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원·달러 환율도 안정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붕괴, 고금리, 에너지 충격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시장은 “최소한 더 큰 악재만은 피하고 싶다”는 심리가 강하다. 따라서 중동 긴장 완화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세계 위험자산 시장 전체에 긍정적 신호가 된다. 반대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미국과 이란이 ‘불안한 휴전’ 상태에서 군사적 긴장만 반복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시장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면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이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다시 급등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금리는 내려가지 못하고, 소비와 투자도 위축된다. 특히 유럽은 이미 에너지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어 경기 침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중국 역시 제조업과 수출 회복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금값은 상승하고, 미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며, 신흥국 통화는 약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질 수 있으며, 수입 물가 상승으로 서민 경제 부담도 커진다. 무엇보다 AI 시대의 세계 경제는 과거보다 에너지에 훨씬 민감하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결국 유가와 전력 비용은 곧 AI 산업 경쟁력 문제로 이어진다.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라 AI 패권 경쟁의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총성과 미사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심장 박동수를 조절하는 문제에 가깝다. 월가와 런던 금융가, 도쿄와 서울의 딜링룸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미 페르시아만의 파도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우리가 이겼다”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미국 보수층은 대체로 “강한 미국”을 원한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 사회 내부에는 “미국이 약해졌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트럼프는 이를 뒤집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이란을 압박한 뒤 협상으로 끌고 들어오는 과정을 “미국의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언제나 승자만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이란 역시 내부적으로는 “굴복이 아닌 생존”이라는 논리를 만들고 있다. 혁명수비대(IRGC)와 강경 종교 세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란 정권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이 체제 붕괴처럼 보이면 안 된다. 따라서 이란은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핵 이용을 유지한 채 긴장을 조절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측 모두 자국민을 향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해야 하는 기묘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이다.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 하나이며, 이란산 원유의 중요한 구매자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중국 역시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중동이 불안정해지면 중국 경제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동 문제가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겉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지만,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이지만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한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AI 고속도로” 전략 역시 안정적 에너지 공급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단순한 유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 전체의 문제다. 고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왕의 길(Royal Road)”을 건설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이었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은 현대판 왕의 길이다. 석유와 LNG, 달러와 원자재, AI 산업의 전력과 반도체 공급망까지 모두 이 길과 연결돼 있다. 세계는 다시 페르시아를 지나고 있다.
2026-05-07 09:53:30
-
-
-
사막 플랜트에서 베트남 신도시까지…대우건설 성장과 재도약의 역사
[경제일보] 낯선 사막 한복판의 플랜트 현장에도, 빠르게 확장하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신도시 현장에도 대우건설의 이름은 있었다. 국내 주택 시장에서 푸르지오 브랜드를 키운 회사이면서 동시에 해외 대형 프로젝트와 도시개발 사업으로 외연을 넓혀 온 기업. 대우건설은 한국 건설업이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오늘의 대우건설은 과거 해외건설 명가의 기억 위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더해야 하는 전환기에 서 있다. 출발은 산업화 시대의 국가 성장 전략과 맞닿아 있다.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던 시기 건설업은 도로와 항만, 공장, 주택을 짓는 핵심 산업이었다. 대우그룹의 성장과 함께 몸집을 키운 대우건설은 국내 기반시설 확충 과정에서 존재감을 넓혔고 이후 해외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섰다. 건설사가 단순 시공사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한 축으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대우건설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무대는 해외건설 붐이었다. 중동 지역 인프라 투자와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이어지던 시기 한국 건설사들은 앞다퉈 해외로 향했다. 대우건설은 도로와 항만, 발전소, 플랜트 공사에서 실적을 쌓으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낯선 환경과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공기를 맞추고 프로젝트를 완수한 경험은 지금까지도 회사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해외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매출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경기 변동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사업 구조를 보완하고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함께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이 오랜 기간 해외 네트워크를 유지해 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주택 브랜드 ‘푸르지오’가 성장을 이끌었다. 브랜드 아파트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소비자는 입지뿐 아니라 건설사 이름과 상품 경쟁력을 함께 보기 시작했다. 푸르지오는 친환경 이미지와 세련된 디자인, 안정적인 품질을 앞세워 시장에 안착했다. 재건축과 재개발, 대형 택지지구 사업에서도 꾸준히 경쟁력을 보여 왔다. 도시정비사업은 대우건설의 또 다른 핵심 무대다.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 재건축·재개발 시장은 브랜드와 자금력, 시공 경험이 동시에 요구된다. 대우건설은 오랜 업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주요 사업지에서 존재감을 이어 왔다. 주택 사업의 수익성과 브랜드 효과를 함께 기대할 수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대우건설의 해외 경쟁력을 말할 때 베트남은 빼놓을 수 없다. 하노이 서부에 조성 중인 스타레이크시티는 단순 시공 프로젝트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대형 사업이다. 주거와 업무, 상업 기능이 결합된 이 사업은 한국 건설사가 해외에서 자체 개발 모델을 구현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도급 공사 중심이던 해외 사업을 개발 수익형 사업으로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타레이크의 의미는 숫자 이상의 가치에 있다. 한국형 신도시 개발 경험을 해외 시장에 이식했고 장기적으로는 분양 수익과 자산 가치 상승, 후속 사업 기회까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짓는 회사’를 넘어 ‘도시를 만드는 회사’로 평가받을 수 있느냐를 보여주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토목과 플랜트 분야도 대우건설의 중요한 축이다. 도로와 철도, 교량,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사업은 국가 경제와 직결되는 분야다. 플랜트는 설계와 조달, 시공, 시운전까지 복합 역량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시장이다. 대우건설은 주택에만 기대지 않고 다양한 사업 부문을 갖춘 종합 건설사로 성장해 왔다. 물론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대우그룹 해체 이후 대우건설은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겪었다. 기업 매각과 인수, 경영 환경 변화는 조직 안정성 측면에서 부담이 됐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도 현장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최근 변화의 분기점은 중흥그룹 편입이다. 대우건설은 새 주인을 맞으며 장기 경영 안정성과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대형 건설사가 자주 겪는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줄이고 중장기 투자 여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됐다. 최근 시장이 주목하는 분야는 원전과 에너지 인프라다. 글로벌 탄소중립 기조와 전력 수요 증가 속에서 원전과 LNG, 신재생에너지 관련 투자가 다시 늘고 있다. 대우건설은 기존 플랜트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관련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국내외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성장축이 될 수 있는 분야다. 해외 시장에서도 기회는 이어진다. 중동 지역 대형 프로젝트 발주와 신흥국 인프라 투자 확대는 한국 건설사에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다. 여기에 베트남 스타레이크와 같은 개발형 사업 경험이 더해질수록 해외 경쟁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과거처럼 무조건 수주 규모를 늘리기보다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대우건설의 경쟁력은 여러 갈래에서 나온다. 해외 현장에서 쌓은 수행 경험, 푸르지오 브랜드, 스타레이크로 상징되는 개발 사업 역량, 주택·토목·플랜트를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 대형 프로젝트 관리 능력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 국내와 해외를 동시에 경험한 조직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몸집이 커질수록 시장의 요구도 높아진다. 해외 사업은 환율과 지정학 변수, 공사비 변동에 민감하다. 국내 주택 시장은 금리와 정책 변화 영향을 크게 받는다. 새 경영 체제 아래 조직 안정성과 수익성 중심 경영을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과제도 남아 있다. 대우건설은 지금 과거 해외건설 명가의 위상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 성장축을 새로 세워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주택 브랜드 경쟁력에 머무르지 않고 에너지 인프라와 도시개발, 고부가가치 해외 사업으로 외연을 넓혀야 한다. 사막 한복판 공사 현장에서 쌓아 올린 이름값은 이미 한국 건설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제 시장이 지켜보는 다음 장면은 변화한 경영 환경 속에서 대우건설이 다시 한 번 도약의 서사를 써 내려갈 수 있느냐다.
2026-04-28 07:42:48
-
현대차, 1분기 영업익 30.8% 감소…관세·원가·중동 리스크 직격탄
[경제일보] 현대자동차가 올해 1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관세와 원가 상승, 판매보증충당금 확대 등이 동시에 반영되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글로벌 수요 둔화와 중동 지역 지정학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영업이익은 1조원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45조9389억원, 영업이익 2조514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하며 1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30.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2조5849억원으로 23.6% 줄었고, 영업이익률은 5.5%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감소 폭은 절대 규모 기준으로 1조원 이상이다. 매출이 증가했음에도 수익성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비용 구조가 동시에 악화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1분기 글로벌 판매량은 97만6219대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다. 국내 판매는 15만9066대로 4.4% 줄었고, 해외 판매는 81만7153대로 2.1% 감소했다. 다만 미국 시장에서는 24만3572대를 판매하며 0.3% 증가했다. 판매 감소에도 매출이 증가한 배경에는 제품 믹스 변화가 있다. 하이브리드 중심의 고부가가치 차종 판매 비중이 확대되고 금융 부문 실적이 개선되면서 외형 성장은 유지됐다. 자동차 부문 매출은 34조5388억원, 금융 및 기타 부문은 11조4001억원으로 집계됐다. 수익성 악화는 관세·원가·충당금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미국 자동차 관세 영향으로 발생한 비용은 86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원자재 가격 상승이 더해지면서 매출원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2.7%포인트 상승한 82.5%를 기록했다. 환율 상승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1분기 평균 원·달러 환율은 1465원으로 전년 대비 0.9% 상승했다. 환율 상승은 수출 채산성에는 일부 긍정적 영향을 주지만, 동시에 판매보증충당금 증가 요인으로 작용해 수익성을 훼손하는 구조다. 이란을 포함한 중동 지역 정세 불안도 변수로 작용했다. 지정학 리스크 확대로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위축되면서 판매 감소 압력이 이어졌다. 회사 측은 관세와 환율, 원가 상승, 수요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친환경차는 실적 방어 역할을 했다. 1분기 친환경차 판매는 24만2612대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다. 전체 판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9%로 확대됐다. 이 중 전기차는 5만8788대, 하이브리드차는 17만3977대로 집계됐다. 하이브리드차는 분기 기준 역대 최대 판매를 기록했고, 판매 비중도 17.8%로 상승했다. 글로벌 수요 감소에도 시장 점유율은 상승했다. 현대차의 글로벌 점유율은 4.6%에서 4.9%로 0.3%포인트 확대됐고, 미국 시장 점유율은 5.6%에서 6.0%로 0.4%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자동차 산업 수요가 전년 대비 7.2% 감소한 상황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판매 흐름을 유지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비용 구조 악화가 이어질 경우 수익성 회복은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관세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성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에 대응해 비용 통제 강도를 높일 계획이다. 사업 계획 수립부터 예산 설정, 비용 집행까지 전 과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관세와 환율 등 외부 변수에 대응하기 위한 컨틴전시 플랜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2026-04-23 17:46:54
-
[경제일보] 오늘날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문명 전환의 심장부에는 엔비디아와 젠슨 황이 서 있다. 세상은 그의 회사를 시가총액과 점유율로 기억하지만, 경영의 깊은 본질은 숫자보다 훨씬 오래가는 데 있다. 그것은 오래 묵은 시간의 힘이고, 덜어냄의 절제이며, 홀로 버티는 고독이고, 끝내 높이 서는 품격이다. 이를 동양적 어휘로 압축하면 바로 고고고고, 곧 오래되고(古), 메마르며(枯), 외롭고(孤), 높다(高)는 네 글자다. 엔비디아의 부상은 하루아침의 주가 급등이 아니라, 이 네 글자가 한 경영자의 몸과 조직의 문화 속에서 천천히 굳어져 온 과정의 결과다. 첫째는 고(古)다. 경영은 언제나 시간의 적층 위에서만 비로소 자기 얼굴을 갖는다. 젠슨 황은 오늘의 화려한 무대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아시아 시장을 발로 뛰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은 단순한 고객 관계를 넘어선다. 국내 보도와 당시 업계 회고에 따르면, 그는 엔비디아 초창기인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서울 용산전자상가를 여러 차례 찾으며 직접 그래픽카드를 설명하고, 매장과 조립 업자들을 설득하며 시장을 일궜다. 황 자신도 한국과의 인연이 1996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고,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확산과 PC방 문화의 폭발,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엔비디아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때 세계 게임 문명의 용광로였던 용산과 PC방의 열기, 그리고 한국 소비자의 빠른 기술 수용성이 무명의 엔비디아를 길러낸 토양이었던 셈이다. 이 대목이 중요한 이유는, 대기업의 역사가 언제나 거대한 회의실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젠슨 황을 만든 것은 실리콘밸리의 조명만이 아니었다. 좁은 매장, 수많은 부품 상자, 가격에 민감하고 성능에는 더 민감한 한국 시장의 눈높이, 그 치열한 현장이 그를 단련했다. 이름 없는 시절의 젠슨 황은 용산에서 브랜드를 판 것이 아니라 신뢰를 팔았다. 제품 설명 하나, 호환성 하나, 성능의 체감 하나를 놓고 거래처를 설득해야 했다. 경영이란 결국 시장과의 대화라는 사실을 그는 한국의 골목에서 배운 것이다. 주역의 말처럼 '잠룡물용'이라 할 만하다. 물속에 잠긴 용은 아직 하늘로 오르지 못했으되, 이미 힘을 기르고 방향을 정한다. 젠슨 황에게 한국은 그런 잠행의 시간이었다. 둘째는 고(枯)다. 메마름은 빈곤이 아니라 절제다. 엔비디아의 역사는 화려한 외연 확장보다 계산 자원의 본질에 대한 집요한 집중으로 요약된다. 남들이 화면의 겉모습과 사양 경쟁에 몰두할 때, 그는 연산 구조와 병렬처리, 그리고 훗날 AI 시대의 결정적 기반이 되는 가속 컴퓨팅에 집중했다. 이것은 겉을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속의 힘을 기르는 기업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담의 미학이다.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이라는 말을 굳이 경영에 가져오자면, 눈에 보이는 형상은 늘 유혹적이지만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핵심 역량이다. 엔비디아는 이를 일찍 알아챘다. 그래서 오늘의 엔비디아는 제품의 외관보다 생태계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개발자 기반이라는 더 마른 본질 위에 서 있다. 이 절제는 젠슨 황의 인간관에도 이어진다. 그는 스탠퍼드 학생들에게 성공의 핵심은 높은 기대가 아니라 회복탄력성이라고 말하며, “고통과 고난이 있기를 바란다”고까지 했다.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이 말의 핵심은 분명하다. 위대함은 총명함만으로 생기지 않으며, 성품과 기질은 편안함 속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 벼려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 미국 기숙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고,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최저임금 노동을 경험했다고 공개적으로 회고했다. 그러니 그의 인고론은 수사가 아니라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구성원에게 복지만 말하고 단련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젠슨 황은 불편한 진실을 피해가지 않았다. 성장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마찰과 견딤을 동반한다는 점을 그는 몸으로 안다. 셋째는 고(孤)다. 고독은 혼자가 된 상태가 아니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용기다. 엔비디아는 오랫동안 모두의 박수를 받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래픽칩 기업으로 알려졌으나, 그 안에서 그는 장차 컴퓨팅의 패러다임이 범용 CPU의 시대에서 가속 컴퓨팅의 시대로 옮겨갈 것이라는 외로운 확신을 품고 있었다. 시장은 늘 당장의 수요를 요구하지만, 경영자는 때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위해 오늘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이 고독을 견딘 자만이 선점의 과실을 얻는다. 논어의 “덕불고 필유린”이라는 말은 바로 여기에서 생기를 얻는다. 덕은 처음에는 외로워 보여도, 끝내 이웃과 동지를 불러 모은다. 실제로 젠슨 황과 한국의 관계는 이제 단순한 판매 차원을 넘어 전략적 동맹의 수준으로 깊어졌다. SK하이닉스는 불확실성이 높던 HBM 초기부터 엔비디아와 협력을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단순 공급을 넘어 공동 제품 기획 단계로 관계가 진화했다고 밝혔다. 또한 엔비디아는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 등과 대규모 AI 칩 공급과 인프라 협력을 추진해 왔다. 이는 과거 용산의 외로운 영업이 오늘날 국가와 산업 생태계를 잇는 연대로 전환됐음을 상징한다. 젠슨 황이 과거 한국 시장을 두드리며 얻은 감각은 이제 한국의 메모리, 제조, 자동차, 인터넷 플랫폼과 결합해 하나의 AI 문명 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홀로 버텼던 시간이 마침내 동맹의 언어로 돌아온 것이다. 넷째는 고(高)다. 높음은 단순한 지위가 아니라 품격이다. 높은 곳은 남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더 멀리 보고 더 오래 책임지는 자리라는 뜻이다. 중용이 말하는 지성무식, 곧 지극한 정성은 쉬지 않는다는 문장은 젠슨 황의 경영을 설명하는 데 의외로 잘 들어맞는다. 그는 한순간의 반짝 유행으로 회사를 키운 인물이 아니다. 수차례의 위기, 제품 실패 가능성, 시장의 냉소, 공급망 압박, 지정학 리스크를 넘어서며 지금의 고지에 올랐다. 그 고지는 하루아침에 오른 산이 아니라, 수십 년간 한 걸음씩 밟아 올린 산이다. 여기서 한국과의 인연은 다시 한 번 중요해진다. 오늘의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제왕으로 불린다 해도, 그 왕관의 안쪽에는 한국의 회로가 적지 않게 흐르고 있다. 한국은 초기에는 PC방과 게임 시장으로 엔비디아를 키워준 소비 현장이었고, 이제는 HBM과 첨단 메모리, AI 팩토리와 디지털 전환을 함께 짜는 전략 현장이 되었다. 초창기 젠슨 황이 용산전자상가에서 상인과 조립업자들을 설득하던 모습과, 오늘날 한국의 대기업 총수 및 정부와 함께 AI 인프라를 논하는 모습 사이에는 긴 강이 흐른다. 그러나 그 강의 물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가 처음 한국에서 본 것은 단지 매출 기회가 아니라 기술을 빨리 이해하고, 산업으로 묶어내며, 현장과 제조를 함께 움직이는 사회의 힘이었을 것이다. 그 통찰이 오늘의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기업인들이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분명하다. 혁신은 화려한 수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래 버틴 시간,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절제, 외로움을 견디는 독립성, 그리고 끝내 품격으로 승화시키는 책임감에서 나온다. 젠슨 황의 경영은 ‘운 좋게 AI 바람을 탄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오래된 시간의 퇴적이 마침내 시대의 문과 맞아떨어진 경우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경영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용산의 바닥에서 시장과 씨름하던 초심이 있는가. 본질이 아닌 것을 덜어내는 메마른 용기가 있는가. 유행과 박수보다 외로운 정답을 선택할 배짱이 있는가. 경영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고, 현장을 존중하며, 시간과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데서 완성된다. 너무 빨리 크려는 나무는 속이 비고, 너무 쉽게 얻은 성공은 뿌리가 얕다.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그 반대의 길을 걸었다. 늙은 고목처럼 묵묵히 서서 바람과 가뭄을 견디고, 홀로 높은 곳을 향해 자라났다. 그래서 그의 성공은 찰나의 불꽃이 아니라 오래 남는 불빛이다. 고고고고의 미학은 바로 그 점을 일깨운다. 오래 견딘 자만이 높이 오르고, 메마름을 통과한 자만이 깊어지며, 고독을 견딘 자만이 마침내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다. 젠슨 황의 한국 인연 또한 그 서사의 중요한 한 축이다. 오늘의 영광은 어제의 골목에서 잉태된다는 사실, 세계 최강 기업의 역사도 결국 인간의 땀방울과 신뢰의 축적 위에서만 완성된다는 사실을 그는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2026-04-22 11:43:57
-
국토 개발의 현장에서 글로벌 랜드마크까지…삼성 건설의 성장사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화의 굵직한 장면마다 삼성의 건설 사업은 빠지지 않았다. 공장과 도로, 주택과 발전소, 초고층 빌딩과 첨단 산업시설까지 나라의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공간과 기반시설이 세워질 때마다 삼성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오늘날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단순 시공사를 넘어 글로벌 복합개발과 첨단 생산시설, 에너지 인프라를 수행하는 종합 건설 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성 건설의 역사는 한국 산업 발전의 또 다른 단면이다. 삼성 건설의 뿌리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사업 철학과 맞닿아 있다. 그는 제조와 무역, 금융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전반을 떠받칠 기반 사업의 중요성을 일찍이 주목했다. 산업이 커질수록 공장과 물류시설, 도시 인프라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는 판단이었다. 생산과 유통, 소비가 커지면 이를 담아낼 공간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삼성 건설 사업의 출발점이 됐다. 초기의 삼성 건설은 그룹 내부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공장과 업무시설, 물류 거점 등을 직접 짓고 운영하며 공정 관리와 원가 통제, 품질 관리 역량을 축적했다. 이는 훗날 외부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삼성 특유의 관리 체계와 실행 속도가 건설 현장에 이식된 것도 이 시기다. 국내 성장기에는 주택과 도시 개발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래미안 브랜드는 국내 아파트 시장의 고급화 흐름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집을 짓는 데서 벗어나 설계와 커뮤니티, 조경과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며 주거 상품의 기준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브랜드 경쟁이 본격화된 국내 주택 시장에서 래미안은 오랜 기간 선호도 상위권을 지켜 왔다. 삼성 건설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장면은 초고층 프로젝트였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는 대표 사례다. 세계 최고층 빌딩 시공 경험은 단순한 수주 실적을 넘어 기술력과 공정 관리 능력을 입증한 상징적 성과로 꼽힌다. 복잡한 설계와 난도 높은 시공, 글로벌 협업 체계를 완수하며 삼성 건설은 세계 시장에서 이름값을 높였다. 최근 삼성 건설의 핵심 경쟁력은 첨단 산업시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반도체 공장과 연구시설, 바이오 생산기지, 데이터센터 등 정밀성과 안정성이 요구되는 시설은 일반 건축과 다른 역량이 필요하다. 공정 오차를 최소화해야 하고 고도의 설비 이해도와 빠른 일정 대응이 뒤따라야 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그룹 내 반도체와 바이오 투자 확대 과정에서 이런 분야의 경험을 빠르게 축적해 왔다. 다른 건설사와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주택이나 일반 토목 중심 회사와 달리 삼성 건설은 첨단 제조시설이라는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AI 확산과 반도체 투자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러한 역량의 가치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건설업 특유의 부침도 피해 가지는 않았다. 국내 부동산 경기 변동, 해외 프로젝트 손익 변동성, 원자재 가격 상승, 금리 변화는 삼성 건설에도 부담 요인이다.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공기 지연과 비용 증가 위험이 크고 해외 사업은 환율과 지정학 변수에도 민감하다. 안정적 관리 역량만으로 모든 위험을 없앨 수는 없다. 최근 사업 지형은 다시 바뀌고 있다. 과거의 중심축이 주택과 일반 건축, 플랜트였다면 지금은 첨단 산업 인프라와 친환경 에너지, 복합개발 사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기지와 바이오 캠퍼스, 데이터센터, 소형모듈원전(SMR), 신재생에너지 관련 인프라가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다. 특히 반도체 시설은 삼성 건설의 대표 성장축으로 꼽힌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AI 투자 확대로 세계 각국이 반도체 생산 능력 확보에 나서면서 대형 팹 건설 수요도 이어지고 있다. 클린룸과 진동 제어, 초정밀 시공 경험은 진입 장벽이 높아 후발 주자가 단기간에 따라오기 쉽지 않다. 친환경 에너지 시장도 주목할 분야다. 탄소중립 기조 아래 태양광과 수소, 차세대 발전 인프라 투자가 늘고 있다. 건설사는 단순 시공사가 아니라 에너지 전환을 현실화하는 실행 주체가 되고 있다. 삼성 건설 역시 글로벌 네트워크와 자금 조달 역량을 활용해 관련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도시 개발 분야에서도 역할은 커지고 있다. 대형 복합개발 사업은 주거와 업무, 상업과 문화 기능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단순 시공 능력보다 금융과 운영, 설계 조정 역량까지 요구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가진 브랜드와 사업관리 경험은 이런 시장에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삼성 건설의 경쟁 우위는 여러 축에서 나온다. 삼성 브랜드가 주는 신뢰도, 우수한 재무 기반, 글로벌 프로젝트 수행 경험, 첨단 산업시설 노하우, 래미안으로 대표되는 주택 브랜드 경쟁력은 쉽게 대체되기 어렵다. 그룹 계열사와의 시너지 역시 다른 회사가 갖기 어려운 자산이다. 과제도 적지 않다. 국내 주택 시장 의존도를 어떻게 조절할지, 해외 대형 사업의 수익성을 어떻게 관리할지, 친환경과 디지털 전환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지가 향후 성과를 좌우할 전망이다. 기술 인력 확보 경쟁과 공사비 상승 부담도 계속된다. 삼성 건설은 단순 시공 회사를 넘어 미래 산업과 도시의 기반을 만드는 기업으로 체질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단순 시공 회사가 아니라 미래 산업과 도시의 기반을 설계하는 고부가가치 인프라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는 길이다. 아파트를 넘어 스마트 주거로, 공장을 넘어 첨단 생산 생태계로, 건물을 넘어 도시 전체의 가치 창출로 사업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이병철 창업주의 시대가 산업화 기반을 닦던 시기였다면 지금 삼성 건설의 과제는 기술 패권 경쟁과 에너지 전환 시대에 맞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국내 성장의 현장에서 출발한 삼성 건설이 앞으로도 세계 건설 시장에서 같은 존재감을 이어갈지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2026-04-22 10:26:51
-
산업화 현장의 삽에서 미래도시 설계까지…현대건설 79년 도전의 궤적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화의 장면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도로와 항만, 댐과 발전소, 아파트와 초고층 빌딩까지 국가 기반시설이 세워진 자리에는 늘 현대건설이 있었다. 전후 폐허 속에서 삽과 곡괭이로 출발한 회사가 이제 원전과 데이터센터, 미래 주거와 친환경 에너지 시장을 이끄는 종합 인프라 기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대건설의 발자취는 한국 경제 성장사와 맞닿아 있다. 1947년 문을 연 현대건설의 출발은 소박했다. 자본도 장비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주영 창업주의 추진력은 남달랐다. 어려운 일일수록 먼저 맡았고 길이 없으면 직접 길을 냈다. 이후 현대건설을 설명하는 실행 중심 문화도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현대건설은 국가 기간시설 건설의 맨 앞줄에 섰다. 경부고속도로와 소양강댐, 울산 공업단지와 각종 항만 공사는 단순한 토목사업이 아니었다. 산업 국가로 넘어가기 위한 토대를 놓는 작업이었다. 당시 현대건설의 공사 현장은 곧 대한민국 성장의 현장이었다.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웠다. 1970년대 중동 건설 붐 속에서 현대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등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사를 새로 썼다. 낯선 사막에서 축적한 공정 관리 능력과 공기 준수 경험은 이후 글로벌 경쟁력의 밑바탕이 됐다. 국내 시공사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건설사로 체급을 키운 전환기였다. 주택 시장에서도 이름값은 이어졌다.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한 시대의 주거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힐스테이트 브랜드로 이어진 주택사업은 품질과 브랜드 경쟁력을 앞세워 국내 주택시장의 기준을 높였다. 건설사가 단순 시공을 넘어 생활 방식을 제안하는 기업으로 변하는 흐름도 현대건설이 앞당겼다. 물론 순항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부동산 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급등, 금리 상승기마다 건설업은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업종이었다. 현대건설 역시 해외 현장 손실과 주택 경기 둔화, 대외 변수의 파고를 여러 차례 겪었다. 다만 위기 때마다 사업 구성을 손보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며 체질을 다져 왔다. 최근 현대건설의 변화는 더 크다. 과거의 중심축이 도로·주택·플랜트였다면 지금은 에너지 전환과 미래 인프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회사는 2025년 연간 수주 25조5151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25조원대를 넘어섰다. 전년 대비 39% 증가한 규모다. 외형 확대에 그치지 않고 사업 지형이 바뀌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핵심 축 가운데 하나는 원전 사업이다. 현대건설은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을 함께 넓히고 있다. 미국 홀텍과 추진 중인 팰리세이즈 SMR 프로젝트는 상용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대표 사례다. SMR은 공사 기간이 짧고 초기 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아 AI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 전력원으로 주목받는다. 건설사가 전력 해법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도 새 성장축으로 꼽힌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는 건물만 짓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안정적 전력 공급과 냉각 시스템, 보안, 운영 효율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 현대건설은 초대형 복합시설 시공 경험에 에너지 인프라 역량을 더해 이 시장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현장 혁신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대건설은 AI 기반 안전 예측, 로봇 순찰, 공정 데이터 분석, 자동화 장비 도입 등을 통해 생산성과 안전 수준을 함께 끌어올리고 있다. 전통 산업으로 여겨졌던 건설업이 기술 산업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다. 강점은 브랜드 신뢰도와 종합 수행 능력이다. 토목·건축·플랜트·원전을 아우르는 사업 경험, 현대차그룹과의 연계 가능성, 글로벌 대형 프로젝트 수행 이력은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자산이다. 로봇·모빌리티·수소·스마트시티와의 접점도 넓다. 과제도 있다. 해외 사업은 환율과 지정학 변수에 민감하다. 원전 사업은 기술 장벽이 높은 대신 정치와 규제 변수도 함께 따라온다. 국내 주택 시장은 금리와 정책 변화에 크게 흔들린다. 공사비 상승과 인력 부족 역시 업계 전반의 부담이다. 미래 사업 확대 과정에서 커지는 투자 비용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지도 중요한 숙제다. 결국 현대건설이 향하는 방향은 비교적 또렷하다. 단순 시공회사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와 에너지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기업으로 외연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주택을 넘어 생활 플랫폼으로, 플랜트를 넘어 전력 인프라로, 공사 현장을 넘어 데이터 기반 산업으로 사업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주영 창업주의 시대가 없던 길을 내던 시기였다면 지금 현대건설의 과제는 다가올 시대의 기반을 먼저 준비하는 일이다. 한국 산업화의 기초를 놓았던 기업이 이제 AI 시대의 도시와 전력망을 설계하려 한다. 과거 성장의 주역이 미래 산업의 중심에서도 같은 존재감을 이어갈지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2026-04-21 09:47:01
-
-
-
텍스트 너머의 시대, 미디어의 새 판 (上)
대한민국은 은(銀)이 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광산에서 캐내는 은의 양은 연간 수 킬로그램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 주요 은 수출국 중 하나다. 연간 약 2,000톤의 은을 생산해 대부분을 해외로 내보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답은 고려아연이라는 기업에 있다. 이 회사는 아연과 납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은을 추출한다. 원광석을 수입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로 가공해, 전혀 다른 금속을 만들어 파는 것이다. 은 광산 하나 없이 은 수출국이 된 역설이다. 석유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원유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전량을 수입한다. 그러나 정제유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에 이어 국가 수출 상위권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세계 최대 수준의 단일 정제 능력을 보유한 정유산업 덕분이다. 원자재를 사다가, 더 정교하게 만들어, 더 비싸게 판다. 이 패턴은 산업에만 있지 않다. 재가공, 문화가 된 생존 전략 K팝을 생각해보자. 한국의 전통 음악에서 출발한 장르가 아니다. 1990년대 미국의 R&B, 팝, 힙합이 원소스였다. 그런데 지금 세계 시장에서 통용되는 K팝은 그것과 전혀 다른 무언가다.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 극도로 완성된 퍼포먼스, 독자적인 팬덤 문화가 더해지면서 원본을 뛰어넘는 새로운 상품이 탄생했다. 치킨도 같은 이야기다.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 음식이다. 그러나 양념치킨, 간장치킨, 파닭으로 변주된 한국의 치킨은 지금 전 세계에서 독자적인 음식 문화로 인정받는다. 김밥의 형태가 일본 노리마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오늘날 누가 기억하는가. 재가공의 완성도가 원본과의 관계를 지워버린 것이다. 종교는 더 흥미로운 사례다. 기독교는 서양 선교사가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메가처치, 새벽기도, 열정적 전도 문화를 만들어내며 서양의 원형과도, 다른 아시아 국가의 형태와도 다른 독자적 종교 문화로 진화했다. 불교 역시 인도에서 출발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닿는 동안 한국만의 선불교 문화로 재탄생했다. 우연이 아니다 — 지정학이 만든 DNA 이 패턴들을 하나의 도식으로 묶을 수 있다. 외부의 원소스를 받아들이고, 고도의 가공을 거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보낸다. 은도, 석유도, 음악도, 음식도, 종교도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가. 재가공은 어느 나라도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의 재가공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게 됐는가. 답은 지정학에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근현대에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생존해왔다. 자원도 없고, 거대한 내수시장도 없으며, 독자적인 기술 원천을 개발할 여유도 부족했다. 재가공의 퀄리티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절박함이 완성도를 만든 것이다. 고려아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제련 기술을 보유하게 된 것도, 한국 정유사가 세계 최대의 단일 정제 능력을 갖추게 된 것도, K팝이 팝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통하게 된 것도 모두 같은 논리의 반복이다. 그런데, 지금 이 능력이 막히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재가공이라는 생존 전략이 새로운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물질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콘텐츠와 문화의 영역에서는 점점 좁아지는 통로를 마주하고 있다. 저작권이다. 과거에는 미국 음악을 듣고 영향을 받아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치킨 레시피를 변형해 새로운 음식을 만드는 데 누구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 체계는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콘텐츠의 재가공은 이제 법적 리스크와 함께 시작된다. 수천 년을 이어온 한국의 재가공 DNA가 20세기에 설계된 법적 프레임 앞에서 멈춰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 프레임 자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텍스트 너머의 시대, 미디어의 새 판 (下)에서 계속
2026-04-18 17:00:00
-
-
한은, 중동 전쟁에 환율·물가·경기 모두 불안
[경제일보] 중동발 지정학 리스크가 한국 경제의 ‘3대 축’인 환율·물가·경기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한 배경에는, 어느 한쪽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복합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다. 금통위는 10일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표면적 이유는 “중동 사태의 전개와 파급 효과를 더 지켜볼 필요”였지만, 속내는 더 복잡하다. 물가는 들썩이고, 경기는 식어가며, 금융시장은 요동치는 ‘트리플 불안’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물가 측면에서는 경고등이 다시 켜졌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로 반등했고, 특히 석유류 가격이 9.9% 급등하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기대인플레이션율 역시 2.7%로 상승했다. 중동 긴장이 촉발한 국제유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에 전이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상 물가 목표(2%)를 재차 이탈할 가능성을 공식화한 셈이다. 문제는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기엔 경기 하방 압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과 소비 개선 흐름에도 불구하고, 중동 사태 이후 경제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일부 업종에서는 생산 차질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 비용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이 2.0%를 밑돌 것으로 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환율과 금융시장 역시 변수다. 원·달러 환율은 전쟁 여파 속 달러 강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이 겹치며 한때 1500원 선을 위협했다. 이후 미국·이란 간 일시적 긴장 완화로 다소 진정됐지만, 방향성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다시 인플레이션을 밀어 올리는 ‘2차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리를 성급히 내릴 경우 원화 약세를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여력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금통위는 ‘동결’이라는 선택지를 통해 시간 벌기에 나섰다. 금리를 낮추자니 물가와 환율이 걸리고, 올리자니 경기 침체 리스크가 부담인 상황에서, 현 수준을 유지하며 불확실성 해소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동결을 단순한 ‘숨 고르기’가 아닌 정책 딜레마의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중동 변수에 따라 유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한은은 다시 긴축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글로벌 경기 둔화가 본격화되면 완화 전환 요구도 커질 전망이다. 한은의 고민은 명확하다. 물가 안정, 경기 방어, 금융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어느 하나도 확실히 잡히지 않는 국면이다. 결국 향후 통화정책의 방향은 중동 정세, 국제유가, 미 연준의 정책 경로, 그리고 환율 흐름이라는 외생 변수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한국 경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무엇을 먼저 잡을 것인가. 그 답을 찾기 전까지, 금리는 당분간 제자리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2026-04-10 14:2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