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9건
-
-
청사만 옮겨선 '수도권 공화국' 끝낼 수 없다
[경제일보] 대통령이 세종으로 간다. 국회도 뒤따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임기 안에 대통령 세종집무실 시대를 열고, 마지막 국무회의도 세종집무실에서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도 속도를 내고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법·제도적 뒷받침을 계속하라고 주문했다. 세종을 명실상부한 국정의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상당수가 세종에 내려가 있는데 대통령실과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는 지금의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장관과 공무원이 회의 하나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일이 반복되고, 행정부와 국회의 물리적 거리는 정책 결정의 비용을 높인다.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자리 잡으면 행정수도의 마지막 퍼즐 하나가 맞춰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권 집중까지 끝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랫동안 ‘서울공화국’을 넘어 ‘수도권공화국’으로 움직여 왔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50.8%, 지역내총생산의 52.5%가 집중돼 있다. 사람만 서울로 몰린 것이 아니다. 생산과 소비, 좋은 일자리와 인재, 기업과 자본이 함께 수도권으로 모였다. 행정기관을 옮기는 것만으로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 어려운 이유도 이미 확인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7일 공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분석을 보면 공공기관 이전이 집중됐던 2010년대 중반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한동안 늘었지만 2017년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2023년부터는 혁신도시 인구가 순유출로 돌아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늘어난 고용도 상당 부분 음식·숙박·의료·교육 등 지역 내부 수요에 의존하는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무엇보다 직업을 이유로 혁신도시를 떠나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점을 연구진은 주목했다. 사람은 청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 움직인다. 공무원 수천 명이 내려가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음식점과 학원이 생긴다. 그것만으로 도시 하나의 외형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나고, 배우자가 원하는 직장을 지역에서 구하지 못하며, 기업의 연구소와 본사가 수도권에 남아 있다면 도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행정기관 이전으로 사람을 옮기는 데는 성공해도 다음 세대까지 붙잡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떄문에 세종 행정수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더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 오게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먼저 기업이 와야 한다. 세종과 대전·청주·천안·오송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 AI·반도체·바이오·양자·국방산업 등 충청권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기업 본사와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오고 스타트업이 생기며, 그 기업을 지원하는 금융과 법률·회계 서비스가 따라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이 방향을 일부 제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세종의 자족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AI·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 기업혁신허브를 조성하고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 역시 11일 세종 국무회의에서 균형발전과 함께 SMR·재생에너지·양자컴퓨터·우주항공·첨단바이오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정수도와 첨단산업 거점을 연결하겠다는 방향은 맞다.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 대학을 중앙정부가 보조금으로 연명시키는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으로는 청년을 붙잡기 어렵다. 기업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이 연결되고, 학생이 지역 기업에서 인턴을 거쳐 취업하며, 교수가 창업하고 그 기업이 다시 지역 대학의 인재를 채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 독일 뮌헨 같은 혁신도시는 관공서가 많아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대학과 기업, 연구소와 자본이 서로 사람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졌다. 의료와 문화도 산업정책만큼 중요하다. 좋은 연봉을 주는 기업을 데려와 놓고 아이를 보낼 학교와 가족이 이용할 병원, 공연장과 문화시설이 부족하다면 핵심 인재는 장기간 머물지 않는다. 특히 고급 연구인력과 기업 경영진의 이동은 월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 교육, 의료와 문화까지 가족 전체의 삶을 계산한다. 균형발전이 산업부와 국토부만의 정책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이전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면 세금을 깎아주는 식의 일회성 유인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개발 인력 확보와 대학 협력, 벤처투자, 공급망까지 묶어 기업이 지방에 있을수록 오히려 사업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기업에 불이익을 줘 억지로 내려보내기보다 세종·충청에 있을 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에도 맞다. 무엇보다 세종을 또 하나의 서울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경계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목적은 수도권의 모든 것을 세종으로 옮겨 새로운 집중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세종은 행정과 정책, 대전은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청주는 반도체·바이오, 천안·아산은 첨단 제조업처럼 각 도시의 강점을 광역교통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충청 경제권이 서울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맹자’에는 “항산이 있는 자에게 항심이 있다(有恒産者有恒心)”는 말이 나온다. 안정된 삶의 기반이 있어야 마음도 안정된다는 뜻이다. 오늘의 균형발전에 적용한다면 사람에게 지역에 남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를 옮긴다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세종에서 근무한다고 대기업 본사가 따라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사당이 들어선다고 서울의 대학과 병원, 문화와 자본이 저절로 분산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은 필요하다.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공간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강한 상징이며, 행정 효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효과도 있다. 이 첫걸음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세종 행정수도의 성공 여부는 몇 개 부처와 기관이 내려왔는지가 아니라 세종과 충청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지, 지역 대학을 나온 청년이 서울행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지, 기업이 정부 권유가 없어도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판단하는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단위를 ‘기관’에서 ‘생태계’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회를 옮기는 것은 행정수도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와 병원, 문화와 자본이 함께 움직여야 경제수도가 만들어진다. 행정수도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수도권공화국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강한 경제권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세종 행정수도 완성의 진짜 목적이어야 한다.
2026-08-12 17:02:20
-
-
-
-
조상호 '행정수도 속도전' 우세냐, 최민호 '도시 안정론' 반격이냐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세종시장 선거는 행정수도 완성론과 도시 운영 안정론이 맞붙는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조상호 후보는 민주당 중앙정부와의 정책 연계성을 앞세워 “행정수도 속도를 높이겠다”는 메시지를 내세우고 있고 국민의힘 최민호 후보는 “세종은 이미 성장통이 심각한 도시가 됐다”며 생활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는 조 후보가 우세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세종 특유의 유동적 민심과 중도층 비중을 감안하면 막판까지 판세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종은 전국에서 정치 흐름 변화 속도가 가장 빠른 도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공무원과 전문직 비중이 높고 외부 유입 인구도 많다. 특정 정당 고정 지지 성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대선과 총선에서도 세종 표심은 정책 이슈와 부동산 흐름, 중앙정부 기조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특히 이번 선거는 단순 지방권력 경쟁을 넘어 행정수도 추진 속도와 도시 성장 방향을 둘러싼 선택 성격이 짙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추진 문제가 선거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는 조 후보 강세 흐름이 확인된다. TJB가 조원씨앤아이·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세종시 유권자 806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CATI) 방식으로 실시한 세종시장 적합도 조사에서 조상호 44.9%, 최민호 19.7%로 나타났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포인트였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내용을 참조하면 된다. 같은 조사에서 당선 가능성은 조상호 60.5%, 최민호 15.5%였다. ‘모름’ 17.3%로 집계됐다. '여론조사꽃'이 지난달 20일부터 21일까지 전화면접(CATI) 방식으로 진행한 가상 양자 대결 조사에서는 조상호 63%, 최민호 19.8%로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다. 또 KBS대전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전화면접(CATI)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조상호 45%, 최민호 18%로 집계됐다. 조사별 수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조 후보가 우세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다만 세종은 정책 이슈에 따라 부동층 이동 폭이 큰 도시라는 점에서 막판 변수 가능성도 거론된다. 조상호, 행정수도 기대감은 ‘강점’…부동산 피로감은 ‘부담’ 조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행정수도 프레임이다. 민주당은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 후보 역시 “세종 완성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세종은 다른 지역과 달리 중앙정부 정책과 도시 발전이 직접 연결되는 도시다. 실제로 국회 이전과 정부 기능 확대 여부에 따라 부동산과 상권 흐름까지 크게 움직인다. 민주당은 이를 기반으로 “정권과 보조를 맞춰야 도시 성장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공무원층과 신도심 거주층에서는 행정수도 완성 기대감이 여전히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세종의사당 추진이 본격화될 경우 도시 위상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도 적지 않다. 다만 부담도 있다. 세종 집값 급등과 급락 과정에서 시민 피로감이 상당히 누적됐다는 점이다. 세종은 한때 전국 집값 상승률 1위를 기록했지만 이후 조정 폭도 컸다. 실수요자 사이에서는 “정책 변화에 따라 도시 전체가 흔들린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민주당 정부 시절 반복된 부동산 정책 혼선 역시 부담 요인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겨냥해 “세종 집값 불안의 책임에서 민주당이 자유롭지 않다”는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최민호, 현직 프리미엄은 ‘무기’…도시 피로감은 ‘과제’ 최 후보의 가장 큰 강점은 현직 시장 경험이다. 세종시 행정 체계와 도시 개발 흐름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자산이다. 특히 광역교통망과 생활 인프라 확충, 도시 운영 경험은 선거 과정에서 계속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최 후보는 생활밀착형 공세에 집중하고 있다. 행정수도 담론보다 실제 시민 체감 문제를 부각하는 전략이다. 대표적으로 교통 문제가 꼽힌다. 세종은 도시 확장 속도에 비해 광역교통망 확충이 늦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출퇴근 시간 BRT 혼잡과 대전·청주 연결 문제도 시민 불만 요소다. 최 후보는 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행정도시라는 이름에 비해 시민 삶은 여전히 불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가 공실 문제 역시 주요 이슈다. 세종 신도시 곳곳에서는 공실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유동인구 대비 상권 공급이 과도했다”는 반응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를 도시계획 실패 문제와 연결하며 민주당 책임론을 함께 부각하는 분위기다. 다만 최 후보 역시 과제가 적지 않다. 세종은 기본적으로 행정수도 프레임이 강한 도시다. 국회와 대통령실 기능 이전 논의에 상대적으로 소극적 이미지를 보일 경우 중도층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공무원층과 전문직 유권자 비중이 높은 세종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 충돌 가능성을 민감하게 보는 분위기도 있다. 최 후보 입장에서는 단순 견제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회 세종의사당·교통·집값…결국 생활 문제가 흔든다 이번 세종시장 선거 핵심 의제는 행정수도 완성과 생활 인프라다. 조 후보는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추진을 중심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행정 기능 확대가 결국 기업 유치와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최 후보는 “도시 외형 성장보다 시민 생활 안정이 먼저”라고 맞서고 있다. 교통난과 상가 공실, 학군 문제, 생활 인프라 부족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분위기다. 부동산 역시 핵심 변수다. 세종은 집값 흐름에 따라 민심 변화 폭이 큰 도시다. 실거주층 비중이 높아 정책 민감도 역시 강하다. 어느 후보가 안정적인 주거 흐름과 도시 성장 균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상호 ‘행정수도 속도전’…최민호 ‘생활 안정론’ 총력전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세종 선거가 전국 지방선거 흐름과 연결될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조 후보는 행정수도 완성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전략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추진 속도를 계속 강조하며 “정권과 지방정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 후보는 생활밀착형 이슈를 끝까지 파고들 가능성이 있다. 교통과 부동산, 상권 문제를 통해 “도시 운영 능력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는 흐름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한 충청권 정치권 관계자는 “세종은 이념보다 생활 문제에 민감한 도시”라며 “부동층과 중도층이 마지막에 어디로 움직이느냐가 승부를 가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종 민심은 아직 완전히 굳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행정수도 기대감과 생활 피로감이 동시에 움직이는 가운데 선거 막판 변수에 따라 판세가 흔들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2026-05-09 13:00:00
-
-
-
'노란봉투법'이 앞당긴 무인화(無人化)의 역습
산업 현장의 비명, ‘대화’의 강요가 ‘절교’의 선택으로 개정 노동조합법,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불과 사흘 만에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는 미증유의 대혼란에 직면했다. 하청 노동조합들이 일제히 원청 기업 사장을 상대로 교섭과 면담을 요구하며 들이닥치는 진풍경은, 이제 우리 산업 현장이 생산의 공간이 아닌 소송과 대치의 전장(戰場)으로 변질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노동계는 이를 ‘실질적 지배력’에 바탕을 둔 정당한 권리 행사라 강변하지만, 경영계가 맞닥뜨린 현실은 ‘업무 마비’라는 생존의 위협이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 창출과 효율성 제고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법체계는 원청 사장으로 하여금 본연의 경영 판단 대신, 수백 개 하청 업체의 노사 갈등을 조정하고 면담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게 만들고 있다. 책임은 무한대인데 권한은 모호한 이 모순된 상황에서 자본이 선택할 길은 자명하다. 바로 ‘사람 없는 공장’, 즉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노동력의 원천적 대체다.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오히려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우는 ‘기술적 숙청’의 트리거(Trigger)가 되고 있다는 점은 실로 뼈아픈 역설이다. AI와 로봇,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자본의 피난처 경제학의 기본 원칙은 비용과 리스크의 최소화다. 과거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선택했다면, 이제는 국내 사업장 내부에서 노동력을 기계로 바꾸는 ‘인 테크노쇼어링(In-technoshoreing)’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인한 노사 관계의 불확실성은 기업가들에게 인건비 상승보다 더 무서운 ‘예측 불가능한 경영 리스크’로 다가왔다. AI는 파업하지 않는다. 로봇은 원청 사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집무실을 점거하지도, 복잡한 법적 해석을 따지지도 않는다. 고도의 연산 능력과 정밀한 물리 제어 능력을 갖춘 AI 로봇은 이제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물류, 조립, 심지어는 현장 관리 업무까지 침투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노동력 확보를 위한 채용 공고 대신,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위한 알고리즘 설계와 로봇 하드웨어 도입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달의 결과가 아니라, 경직된 노동법이 강요한 ‘생존형 탈출’에 가깝다. 공존(共存)인가, 구축(驅逐)인가: 뒤바뀐 노동의 가치 그렇다면 AI 노동력과 인간의 공존은 가능한가. 노란봉투법이 초래한 현재의 대립 구도 하에서는 공존보다는 ‘구축(Crowding out)’의 속도가 압도적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고전 『도덕경』 제29장에는 ‘천하히기 불가위야(天下神器 不可爲也)’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은 신령한 기물이라 억지로 다스리려 하면 망친다는 뜻이다. 노동 시장이라는 유기적인 생태계를 법이라는 잣대로 억지로 옭아매려 할 때, 시장은 기술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인간을 밀어내는 법이다. 상식적 수준에서 볼 때, 노동의 가치는 숙련도와 생산성에 비례해야 한다. 그러나 법적 강제에 의해 원청의 책임만 비대해진 상황에서, 숙련된 인간 노동자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롭고 위험한 비용’으로 전락했다. 반면, AI는 도입 초기에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한계 비용이 제로(0)에 수렴하며 안정성을 제공한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역설적으로 기술 자본주의의 도래를 수십 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상생(相生)의 길은 법조문이 아닌 현장의 유연성에 있다 우리는 기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의 입법 폭주는 그 가교를 끊어버리고 있다. 진정한 노동 권익 보호는 기업이 지속 가능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공장이 멈추고 사장이 사법 리스크에 매몰된 나라에서 노동자의 자리는 존재할 수 없다. 이제라도 정치권과 노동계는 냉철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대체하는 속도는 이미 가속페달을 밟았다. 노란봉투법과 같은 징벌적 규제가 지속된다면, 미래의 노동 시장에는 '보호받아야 할 노동자'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류 경전의 가르침처럼, 만물은 조화 속에서 성장한다. 기업은 기술을 도입하되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기술 인본주의'를 고민해야 하고, 노동계는 투쟁의 대상이 원청 사장이 아닌 '기술적 경쟁력' 확보여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 또한 규제를 통한 강제적 평등이 아니라, 기술 변화에 적응하는 노동 전환 교육과 유연한 노사 관계 구축에 정책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경제의 실핏줄인 제조 및 산업 현장을 무인화의 광풍 속으로 밀어 넣는 독약이 될 우려가 크다. AI 노동력과의 건강한 공존을 원한다면, 우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 부담이 아닌 축복이 되도록 법과 제도를 정상화해야 한다. 법이 시장의 순리를 거스르려 할 때, 시장은 반드시 인간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응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대한민국 경제가 노사 갈등의 늪을 넘어 기술 진보와 인간 노동이 상생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극단적 입법 질주를 멈추고 '상식과 법치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2026-03-15 06: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