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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쫓아낸 돈 3200억, 서울 아닌 오사카로 향했다
[경제일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국내 거주자가 해외 부동산 취득 목적으로 송금한 금액은 2억1030만달러, 원화로 약 3191억원이다. 최근 5년 기준 연간 최고치였던 지난해 전체 송금액(5억9050만달러)의 35%에 해당하는 수치로, 현재 속도가 유지된다면 연말 기준 지난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고강도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다주택 취득 시 적용되는 대출 규제나 중과세를 피해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금이 움직인 방향 5년치 추이를 보면 해외 부동산 취득 목적 송금액은 문재인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2021년 5억8900만달러로 고점을 형성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 임기 중인 2022년 5억4090만달러, 2023년 3억6680만달러로 줄었다. 그러다 2024년 4억1950만달러로 반등한 뒤 2025년 들어 5억9050만달러로 다시 2021년 수준까지 올라섰다. 다만 2025년 연간 수치를 이재명 정부 규제의 결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은 2025년 6월 초로, 연간 수치의 절반가량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 집계됐다. 2025년 상승은 공급 절벽 우려에 따른 시장 기대 심리가 정권 교체 이전부터 이미 형성돼 있던 영향도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의 규제 강화 효과는 2026년 올해 수치에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규제가 열어준 탈출구 해외 부동산이 국내 규제망의 사각지대가 되는 구조는 단순하다. 해외 부동산은 국내 주택 수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6·27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따라 다주택자의 국내 주택담보대출은 전면 금지됐고, 대출 한도는 최대 6억원으로 제한됐다. 갭투자 차단을 위한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봉쇄됐다. 이후 서울 전역과 과천·광명 등이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고,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도 4년 만에 재시행됐다. 이 조치들은 국내 소재 부동산에 적용된다. 해외 부동산은 이 규제 체계의 적용 범위 밖에 있다. 국내에서 추가 주택을 취득할 때 수반되는 대출 제한과 세금 중과를 해외 부동산에서는 적용받지 않는다는 점이 투자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역외 과세의 허점 해외 부동산 취득이 세금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해외 부동산 양도차익도 국내 과세 대상이며, 이중과세 방지 협정에 따라 현지 납부 세액을 공제한 뒤 나머지를 국내에서 납부하는 방식이다. 국세청도 역외 탈세 대응을 위해 해외 신탁 신고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조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병탁 신한은행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국가별 과세 체계와 환율 변동에 따른 추가 세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내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대출 규제와 양도세 중과가 즉각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데 비해, 해외 부동산에 대한 국내 과세 집행은 자진 신고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구조다. 세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집행 역량의 한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국내외 규제 부담의 비대칭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본으로의 쏠림: 두 가지 동기 올해 1~4월 국가별 송금액을 보면 미국이 1억1200만달러로 가장 많고, 일본이 3600만달러로 두 번째다. 이 중 일본 투자 증가 속도가 두드러진다. 올해 1~4월 일본 송금액은 지난해 연간 합산액(7770만달러)의 46.3%에 육박했다. 현재 속도라면 일본 단일 국가 송금액만으로도 지난해를 상회할 전망이다. 일본 투자 급증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는 자산 분산과 환 헤지 수요다. 엔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면서 원화 기준 매입 비용이 낮아진 데다 오사카 등 주요 도시의 경기 회복 기대감도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올해 초 오사카에 1억5000만엔짜리 타워맨션을 매입한 A씨는 "원화 자산에만 집중하기보다 자산을 분산하고 싶었다"며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외국인 투자 규제도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다. 또 "국내에 비해 안정적인 정치 구도"를 매입 이유로 꼽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국내 규제 회피 수요다. A씨의 발언에서도 드러나듯, 해외 부동산이 국내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 투자 결정의 명시적 배경으로 거론된다. 엔저는 환경 변화에 따라 끝날 수 있지만, 국내 규제 강도가 유지되는 한 이 두 번째 동기는 환율과 무관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빠져나간 자금과 국내 임대 시장 이 자금 흐름이 국내 임대차 시장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올해 들어 해외로 향한 3200억원 가운데 일부라도 국내 임대차 시장에 남아 있었다면 물량 부족이 심화되는 임대 공급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재 서울 임대차 시장은 전세 물량 감소와 함께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는 국면에 있다. 매매 수요를 억누를수록 임대차 수요가 늘어나는 한편,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의무 강화와 양도세 중과 재시행이 임대 매물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다주택 보유자 일부가 국내 규제를 피해 해외로 투자처를 옮기면서 국내 임대 공급 기반이 추가로 이탈한다면, 수요 억제 정책의 의도와 실제 임대 시장 여건 사이의 괴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규제의 직접적인 효과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부차적인 시장 반응을 함께 살펴야 정책 효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 유치 경쟁에 나선 해외 업계 이 같은 수요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곳은 해외 현지 부동산 업계다. 서울글로벌부동산협회 소속 중개사들은 이달 17일부터 22일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태국·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동남아 해외부동산 투어를 진행한다. 지난해 말 말레이시아 현지 업체가 쿠알라룸푸르로 국내 공인중개사들을 초청한 지 반년 만이다. 이번에는 태국 파타야와 말레이시아 경제특구 조호바루가 일정에 추가됐다. 협회 관계자는 "자산 여력이 있는 한국인들을 유치하려는 현지 업계의 움직임이 크다"며 "서울은 물론 미국·싱가포르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도 기대 요인"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국내 다주택자를 겨냥한 규제가 이어지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 수요가 당분간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하반기 부동산 세제 개편안 발표와 공급 관련 입법 처리 여부가 국내 투자 여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그 이전까지는 해외 부동산으로 향하는 자금 흐름이 현재의 속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2026-06-05 1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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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부동산 탈세 정조준…"불로소득 공화국 탈출할 것"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와 탈세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 구조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히면서 향후 세무조사와 시장 관리 기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세청 부동산 탈세 신고센터 관련 기사를 공유한 후 “부동산 불법 투기와 탈세는 이제 안 된다”며 “망국적인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은 반드시 탈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소개한 기사에는 국세청 부동산 탈세 신고센터 운영 현황과 제보 접수 통계가 담겼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지방청별 부동산 탈세 신고센터 출범 이후 올해 3월 말까지 접수된 의혹 제보는 총 780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33건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관할 지방국세청에 접수됐다. 전체의 81% 수준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지방국세청이 322건으로 가장 많았다. 중부지방국세청과 인천지방국세청은 각각 164건, 147건으로 뒤이었다. 반면 비수도권 4개 지방국세청의 접수 건수는 모두 147건에 그쳤다. 부산지방국세청 47건, 대전지방국세청 47건, 광주지방국세청 44건, 대구지방국세청 9건으로 나타났다. 제보는 올해 1월 가장 집중됐다. 한 달 동안 291건이 접수돼 전체의 37%를 차지했다. 1월 접수 건수 가운데 수도권 비중은 93%에 달했다. 서울청 125건, 인천청 102건, 중부청 43건이었으며 대구청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편법 증여와 차명 거래, 허위 계약서 작성, 다운계약서 등 각종 탈세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부동산 탈세 신고센터를 출범시켰다. 신고자가 핵심 자료를 제공해 5000만원 이상 세금이 추징될 경우 탈루 세액 규모에 따라 최대 40억원의 포상금도 지급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향후 자금 출처 조사와 편법 증여 점검, 고가 주택 거래 검증 등이 강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투기와 탈세 문제를 언급한 만큼 국세청과 관계 부처의 관련 점검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26-06-01 10: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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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번 사람과 존경받는 사람 사이
[경제일보]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이 수면 위아래를 오가고, 미국의 군사자산이 걸프만에 묶여 있는 동안,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이 좁은 해협은 국제 에너지 시장의 심장부로 떨리고 있다.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유가는 오르고 선박 운임도 함께 치솟는다. 누군가는 그것을 공포로 기억하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시장의 기회로 바꾼다. 냉정하게 말하면 해운업은 원래 그런 세계다. 세계의 불안 위에서 수익을 만든다. 그러나 같은 돈을 벌어도 세상은 어떤 기업인에게는 박수를 보내고 어떤 기업인에게는 차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부를 숫자로만 생각하지만 실제 사회는 숫자보다 태도를 기억한다. 그 돈이 어디를 향했는지,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남겼는지, 위기 속에서 어떤 얼굴을 보여줬는지를 더 오래 붙들고 산다. 요즘 해운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장금상선의 정태순 회장이다. 호르무즈 리스크와 VLCC 운임 급등 속에서 장금상선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VLCC, 즉 초대형 원유운반선은 길이 300미터를 넘는 거대한 선박으로 단 한 번의 항해로 2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실어 나른다.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원유 수송의 대동맥이자, 시황이 불안할 때는 바다 위의 원유 저장고가 된다. 장금상선은 세계 최대 수준의 VLCC 선대를 확보했고 최근에는 100척 규모의 초대형 발주까지 추진하며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냉혹한 시장 판단만 놓고 보면 대단한 승부사다. 그런데 정태순 회장에 대한 업계 안팎의 시선은 의외로 우호적이다. 해운업은 원래 국민적 호감을 얻기 어려운 산업이다. 배는 바다 위에 있고 돈은 숫자로 움직인다. 일반 국민에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태순 회장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가 번 돈을 어디에 썼느냐와 관련이 있다. 정 회장은 해양 인재 양성 지원과 공익재단 활동, 기부와 사회공헌을 꾸준히 이어왔다. 거창한 이름을 앞세운 자선이 아니었다. 산업과 사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조용하게 쌓아왔다. 시장은 결국 그것을 읽는다. "함께 가는 기업인"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기업인은 사회 안에서 존재한다. 공동체가 등을 돌리면 아무리 많은 배를 가져도 고립된다. 반대로 공동체와 호흡하면 부는 비로소 존경으로 이어진다. 완벽한 기업인이라는 말이 아니다. 어느 기업주에게나 그늘은 있다. 다만 정태순 회장의 이름 앞에 지금 붙는 수식어는 '탈세'가 아니라 '해양'이다. 그 차이는 작지 않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 인물이 떠오른다. 한때 '선박왕'으로 불렸던 시도그룹 권혁 회장이다. 권혁 회장의 사업은 VLCC와는 결이 다르다. 벌크선과 컨테이너 피더선을 중심으로 인트라아시아 항로를 누볐다. 정태순 회장과는 다른 바다에서 다른 배로 싸운 사람이다. 그러나 해운업 안에서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행로는 오늘의 주제와 함께 놓일 수밖에 없다. 권혁 회장은 한국 해운업 역사에서 빼놓기 어려운 이름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십수 년간 국내 조선소에 총 121척의 선박을 발주했다. 계약 규모는 약 9조 원, 직·간접 경제효과는 13조원을 넘는다는 추산도 있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조선 빅3와 중소 조선소까지, 일감 가뭄에 시달리던 현장에 권혁 회장의 발주서는 단비였다. 수천 명의 용접공과 설계사, 협력업체 직원들이 그 계약서 한 장에 생계를 얹었다. 공격적 투자와 승부사 기질만 놓고 보면 한국 조선·해운업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선박왕'이라는 이름도, 한국판 오나시스라는 수식어도 그 시절에 붙었다. 그러나 세상이 권혁 회장을 기억하는 방식은 안타깝게도 그 이름 쪽으로 굳어지지 않았다. 2010년 국세청이 권혁 회장에게 4101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역외탈세 혐의였다. 언론은 앞다퉈 보도했고 '선박왕'은 하루아침에 '탈세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왕 시리즈' 보도의 대표 사례가 됐다. 1심에서는 징역 4년에 벌금 2340억원이 선고됐다. 물론 법적으로 볼 부분은 냉정하게 봐야 한다. 최종 확정심에서 실제 유죄로 인정된 세액은 약 7억원 수준이었다. 핵심 쟁점이었던 법인세 포탈 혐의는 무죄로 확정됐다. 수천억 원짜리 세금 폭탄이 7억원짜리 판결로 귀결된 것이다. 국제 해운업의 특수성도 있다. 선박은 편의치적국에 등록하고 운영은 다국적 법인 네트워크를 통한다. 이 구조가 조세 회피를 위한 것인지 글로벌 해운업의 통상 관행인지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되지 않는다. 당시 국세청 역외탈세 수사가 실적 압박 속에서 과도하게 진행됐다는 비판도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됐다. 조세 정의와 산업 현실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 사건은 남겼다. 그러나 기업인의 평판은 판결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은 판결문보다 기억을 더 오래 붙들고 산다. 언론이 처음 보도한 4101억원짜리 헤드라인은 기억되고, 대법원에서 사실상 뒤집어진 결론은 기억되지 않는다. 더구나 권혁 회장은 재판 기간 내내 언론을 통해 억울함을 간간이 피력했다.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과 사회적 신뢰를 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자는 자신의 서사를 방어하는 행위이고 후자는 공동체에 무언가를 내어주는 행위다. 사회는 자신을 향한 해명보다 타인을 향한 행동을 더 오래 기억한다. 결국 권혁 회장에게 남은 것은 "수천억 원대 조세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그림자였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기업인의 운명이 갈린다. 세상에는 돈 많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존경받는 부자는 드물다. 한국 사회는 부 자체보다 "어떻게 벌었는가"와 "어디에 쓰는가"를 더 집요하게 본다. 국민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많이 번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만 가지려는 사람에게 등을 돌릴 뿐이다. 성경 누가복음에는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재산은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라는 뜻이다. 법구경은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못하나 덕의 향기는 사방으로 퍼진다"고 말한다. 돈은 항구에 묶이지만 덕은 사람 사이를 건넌다. 선박은 바다를 건너지만 사람의 이름은 결국 마음 위에 남는다. 노자의 도덕경은 더 직설적이다. "천도는 남는 곳의 것을 덜어 부족한 곳을 채운다(損有餘而補不足)" 동양 고전은 오래전부터 부의 순환을 말해왔다. 오늘날 ESG니 사회적 책임이니 하는 개념도 결국 이 오래된 상식의 현대적 표현에 불과하다. 세계의 거상들은 결국 그 지점에서 이름이 달라졌다.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는 단지 배를 많이 가졌기 때문에 전설이 된 것이 아니다. 부와 영향력을 문화와 공공 영역으로 확장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남았다. 록펠러는 독점기업의 탐욕이라는 비판 속에 살았지만 거대한 기부와 재단 활동으로 결국 이름의 방향을 바꿨다. 카네기는 "부자로 죽는 것은 수치"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표현처럼 들리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재산은 결국 사회 안에서 의미를 얻는다는 것이다. 해운업은 특히 그렇다. 바다는 세계를 연결한다. 한 척의 배에는 원유와 철광석만 실리는 것이 아니다. 국가 경제와 산업의 운명이 함께 움직인다. 부산과 울산, 거제의 조선소가 돌아가는 것도, 정유공장이 멈추지 않는 것도 결국 이 배들이 항로를 지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운 재벌은 일반 기업인보다 더 큰 사회적 상징성을 가진다. 국민은 그들에게 단순한 부자가 아니라 국가 산업의 얼굴 역할까지 기대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부자에게 두 가지 얼굴을 동시에 요구한다. 냉혹한 시장의 승부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책임자이기를 바란다. 이것이 위선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런 긴장 위에서 유지된다. 시장은 탐욕으로 움직이지만 사회는 도덕으로 균형을 잡는다. 그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결국 기업인의 이름을 가른다. 정태순 회장이 지금 박수를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정태순 회장이 돈을 벌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한국 해운기업이 이기는 모습을 반긴다. 다만 그 성공이 사회와 연결돼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 권혁 회장은 아직 그 연결고리를 복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생은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인의 마지막 평가는 법원이 아니라 시간이 내린다. 권혁 회장은 이미 산업사에 이름을 남겼다. 9조 원의 발주 실적은 조선소 현장에, 협력업체에, 수천 명의 생계에 새겨져 있다.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록이 사회적 존경으로 전환되려면 다른 종류의 기록이 필요하다. 법정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의 귀환이 그것이다. 더 늦기 전에 사회 앞으로 나와야 한다. 해양 인재를 위한 장학사업도 좋고 조선업 기술 인력 지원도 좋다. 지방 항만도시 청년들을 위한 교육재단도 가능하다. 바다에서 번 돈을 다시 사회의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한국판 오나시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마지막 장이 완성된다. 배는 항구에 머물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바다로 나가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거 논란의 그늘 속에 있는다고 이름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세상 앞으로 나와야 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사회와 나눌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보기 시작한다. 진짜 선박왕은 배의 숫자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동체와 함께 항해할 때 비로소 그 이름이 남는다.
2026-05-13 18: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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