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68건
-
-
-
-
-
네이버 노조, 계열사 통합교섭 본격화…"9월 9일 단체행동" 예고
[경제일보] 네이버 노조가 계열사별로 흩어진 임금·복지 협상을 하나로 묶는 ‘통합교섭’에 공식적으로 나섰다. 네이버제트의 연봉 동결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도화선이 됐지만, 이번 움직임은 개별 계열사의 임금 문제를 넘어 네이버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와 계열사 간 처우 격차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 양상이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는 20일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1784에서 ‘2026년 통합교섭 선포식’을 열고 전사 통합 경영 프로세스, 근무환경, 안전·보건, 복지제도 개선, 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등 5대 요구안을 제시했다. 노조는 행사 직후 네이버에 공식 교섭 요청 공문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날 행사에는 계열사 조합원 약 300명이 참석했다. 통합교섭의 직접적인 계기는 네이버제트의 임금협상 결렬이다.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는 올해 임금 인상률 0%를 제시했고, 노조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쟁의 절차에 들어갔다. 노동위원회 조정이 두 차례 모두 중지된 뒤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투표율 88.6%, 찬성률 98%가 나왔다. 노조는 사측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9월 9일을 ‘제트 행동의 날’로 정하고 파업을 포함한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네이버 본사를 직접 겨냥한 것은 계열사의 경영 의사결정에 모회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오세윤 네이버지회장은 네이버가 이달 초 크림 유상증자에 1300억원을 출자하기로 한 사례를 들며 “스노우·네이버제트·크림에 돈을 넣을지 말지는 결국 네이버가 결정한다”고 주장했다. 네이버가 투자와 사업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비용 부담은 계열사 구성원에게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문제는 네이버제트의 경영 상황이다. 제페토를 둘러싼 메타버스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네이버제트의 2025년 매출은 549억원으로 전년보다 13%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457억원에 달했다. 적자 규모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매출을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네이버 본사는 지난해 매출 12조350억원, 영업이익 2조2081억원을 기록했다. AI와 커머스 등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의 임금 동결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놓고 노사 간 시각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계열사 숫자가 많아지면서 기존의 ‘법인별 교섭’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네이버 노조는 올해 8월 기준 28개 법인에 약 6200명의 조합원을 두고 있으며 이 가운데 16개 법인에서 단체협약과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계열사별 교섭에 매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동일 그룹 안에서도 임금과 복지, 근무제도 등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배경에는 노동환경 변화도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사관계 변화에 대비해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가입했고 올해 2월 정식 회원사가 됐다. IT 기업의 복잡한 자회사 구조에서 모회사의 사용자 책임을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둘러싼 법적·제도적 논의가 본격화되는 상황이다. 네이버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카카오로도 번지고 있다. 카카오 노조 역시 이달 말 주요 계열사가 참여하는 공동교섭을 추진하고 책임경영과 공정한 보상 원칙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네이버 노조의 통합교섭은 단순한 임금협상보다 파급력이 클 수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AI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계열사 신설·분사·통폐합이 반복되는 가운데, 모회사의 경영권과 노동자의 교섭권을 어디까지 연결할 것인지가 새로운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통합교섭 요구에 어떤 입장을 내놓느냐에 따라 향후 IT업계의 계열사 노사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2026-08-20 13:40:14
-
김민석, 호남서 57.54% 압승…누적 과반 넘어 격차 14%p
[경제일보]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가 15일 호남 순회경선에서 과반을 득표하며 승리했다. 최대 승부처로 꼽히던 지역에서 정청래 후보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면서 오는 1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잡았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호남 권리당원 투표 결과 김 후보는 13만9307표(57.54%)를 얻었다. 정 후보는 7만9033표(32.65%), 송영길 후보는 2만3749표(9.81%)였다. 두 후보 간 격차는 24.89%포인트다. 지역별로도 김 후보가 모두 앞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는 권리당원 31만4184명 중 15만1756명이 투표해 김 후보가 8만6558표(57.04%), 정 후보가 4만8324표(31.84%), 송 후보가 1만6874표(11.12%)를 얻었다. 전북특별자치도에서는 19만2020명 중 9만333명이 투표해 김 후보 5만2749표(58.39%), 정 후보 3만709표(34.00%), 송 후보 6875표(7.61%)로 집계됐다. 투표율은 각각 48.3%, 47.04%다. 정 후보는 앞선 지역 경선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두 곳 모두 내줬다. 이로써 누적 득표율은 김 후보 52.21%, 정 후보 38.14%로 벌어졌다. 직전까지 3086표였던 표차는 6만3360표가 됐다. 현재 누적 득표율에는 경남·대구·경북 지역 가중치가 반영되지 않았다. 전략지역 가중치는 순회경선이 끝난 뒤 전당대회 최종 집계 때 적용된다. 여기에 수도권 순회경선과 대의원 투표, 전체의 30%가 반영되는 국민여론조사가 남아 있다. 정 후보가 남은 일정에서 큰 폭으로 앞서지 못하면 김 후보의 과반이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순위가 뒤집혔다. 이날 호남에서 박선원 후보가 8만9728표(18.03%)로 1위에 올랐고 서미화 후보가 8만1651표(16.46%)로 뒤를 이었다. 그동안 전체 1위를 지켜온 최민희 후보는 7만1595표로 3위에 머물렀다. 누적 집계에서 박 후보는 15만9462표(17.7%)로 최 후보(15만6061표·17.33%)를 3401표 차로 앞서며 수석최고위원에 다가섰다. 김용·이성윤·한민수·임미애·김영호 후보가 뒤를 이었다. 김 후보는 결과 발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감사하다. 호남의 큰 지지는 민주주의와 도약성장에 대한 열망이고, 이재명 정부에 대한 응원과 격려임을 안다"며 "겸손히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 오직 국정성공을 위해 절박하게 뛰겠다"고 적었다. 정 후보는 SNS를 통해 "호남에서 크게 졌다. 호남의 선택은 항상 옳다. 겸허하게 존중하고 수용한다"며 "저의 승패와 관계없이 민주당의 승리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026-08-15 21:37:20
-
선거의 실수보다 무서운 것은 조직적 은폐다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서울 송파·강남·서초구 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했다. 합수본은 선관위 실무자들이 투표자 수를 잘못 입력한 뒤 정식 보고와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산 통계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수사하고 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공전자기록위작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기관은 직원들이 오입력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수치를 나눠 입력하자는 취지의 내부 대화를 나눈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는 아직 수사기관이 확인 중인 혐의다. 실제로 누가 어떤 수치를 왜 수정했는지, 투표 결과나 최종 집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압수물 분석과 관계자 조사를 통해 규명돼야 한다. 성급한 부정선거 주장이나 정치적 예단은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의혹은 단순한 전산 입력 실수로 넘길 일이 아니다. 선거 현장에서 숫자를 잘못 입력할 수 있다. 그러나 오류를 발견하고도 정해진 보고·승인 절차를 피한 채 전산상 숫자를 임의로 맞췄다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실수는 고칠 수 있지만 은폐는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 선관위는 앞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지역별 분배 실패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설명했다. 송파구 전체로는 투표용지가 남았지만 일부 투표소에 충분히 배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용지 관리 부실에 이어 투표율 통계까지 임의로 수정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번 사태는 현장 직원 몇 명의 착오가 아니라 조직의 보고·통제 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사건으로 봐야 한다. 선거관리의 핵심은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 대한 신뢰다. 국민은 자신의 한 표가 정확히 발급되고 집계되며 모든 수정 과정이 기록으로 남는다고 믿어야 투표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다. 선거기관 직원이 필요에 따라 통계 수치를 바꿀 수 있고 그 과정이 사후 검증되지 않는다면 선거 결과가 정확하더라도 불신과 음모론을 막기 어렵다. 합수본은 통계 수정이 이뤄진 범위와 지시·보고 체계를 철저히 밝혀야 한다. 특정 지역이나 시간대에 한정된 일인지, 비슷한 방식이 다른 선거나 다른 통계에도 사용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최종 투표자 수와 개표 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객관적인 전산 자료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의혹을 정략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해서는 안 된다. 수사와 별개로 선거관리 시스템의 전면 개편도 필요하다. 첫째, 투표자 수와 투표율을 수정할 때 입력자와 승인자, 수정 전후 수치, 변경 사유와 시간이 자동으로 기록되도록 해야 한다. 수정 기록은 담당자가 삭제하거나 덮어쓸 수 없는 방식으로 보존해야 한다. 둘째, 통계 오류는 숨길 일이 아니라 즉시 공개할 일이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선관위는 오류 발생 지역과 원인, 수정 시각과 절차를 홈페이지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잘못된 숫자를 잠시 공개한 것보다 그 사실을 감추려 한 것이 더 큰 불신을 낳는다. 셋째, 전산 수치 수정에는 이중 승인제를 적용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변경은 중앙선관위 감사·감찰 부서에 자동 통보하도록 해야 한다. 현장 직원 한두 명이 수치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구조라면 내부통제라고 부를 수 없다. 넷째, 선관위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외부 검증을 제도화해야 한다. 정당과 정보기술·통계·보안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검증기구를 구성해 선거가 끝난 뒤 전산 로그와 수정 내역을 점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선관위의 정치적 중립성과 외부 감시가 서로 충돌하는 가치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었다. 독립은 견제를 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정치권의 부당한 압력에서 벗어나 법과 절차를 지킬 책임이다. 다섯째, 오류와 비위를 스스로 신고한 직원은 보호하되 은폐나 무단 수정에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수를 처벌할까 두려워 보고하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있다면 바꿔야 한다. 반대로 조직의 체면을 위해 오류를 감춘 행위까지 관행으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번 수사는 부정선거 논란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니라 사실과 기록으로 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수사기관은 혐의를 입증할 자료와 그렇지 않은 자료를 구분해 설명하고 선관위도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침묵해서는 안 된다. 확인된 사실과 기존 절차의 문제점, 개선 계획을 국민에게 단계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그 독립성은 선거를 권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부여된 것이다. 관리 부실과 내부 비위를 외부 검증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다. 선거 통계까지 임의로 손댄 사실이 확인된다면 몇몇 직원의 징계로 끝낼 수 없다. 지휘·감독 책임과 전산 통제 체계, 조직문화까지 모두 수술해야 한다. 선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실수를 숨기기 위해 숫자를 바꾸고 조직이 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선관위가 신뢰를 되찾는 길은 의혹을 방어하는 데 있지 않다.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제도를 만드는 데 있다.
2026-07-24 11:12:08
-
선관위 '투표자 수 통계 수정 정황' 수사…노태악 책임론 다시 부상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전산 통계 수정 정황을 포착하고 추가 강제수사에 나섰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과 서울 송파구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합수본은 수사 과정에서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관위와 경기도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자 수와 관련된 전산 통계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본은 수정 시점과 횟수, 수정 전후 수치, 전산 접속 기록과 내부 보고 자료 등을 확보해 경위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으로 수사는 투표용지 인쇄량 산정과 현장 대응을 넘어 선거 이후 전산 통계가 처리된 과정으로 확대됐다. 누가 어떤 자료를 근거로 수치를 바꿨는지, 정상적인 오류 정정 절차를 거쳤는지, 변경 사실이 상급자에게 보고됐는지가 확인 대상이다. 합수본은 지난달에도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구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해 투표용지 인쇄 계획과 투표록, 내부 결재 문서 등을 확보했다.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 10여명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입건됐고 출국금지 조치도 받았다. 투표자 수 통계가 수정됐다는 정황만으로 선거 결과에 손을 댔다고 볼 근거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합수본도 현재는 통계 수정의 목적과 절차,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의 관련성을 확인하는 단계다. 그렇다고 선관위 내부의 통상적인 업무 처리로 가볍게 넘길 사안도 아니다. 투표자 수는 투표용지 교부 수량과 잔여 수량, 투표록의 기록을 대조하는 기초 자료다. 전산 수치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면 근거 자료와 승인 절차, 변경 전후 내역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합수본은 전산 통계가 실제 투표소별 기록과 일치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 사실이 발생한 뒤 수치가 변경됐다면 변경 사유와 보고 경로도 살펴야 한다. 부족 수량이나 추가 공급량을 사후에 맞추기 위한 수정이었는지도 수사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수사가 전산 통계로 확대되면서 노 전 위원장의 재임 중 책임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노 전 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까지 중앙선관위를 이끌었고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틀 뒤인 지난달 5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합수본은 노 전 위원장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을 금지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 결정은 인쇄 기준 축소였다. 중앙선관위는 선거인 수 대비 투표용지 최소 인쇄 비율을 기존 60%에서 50%로 낮췄다. 국민의 투표권 행사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기준이었지만 중앙선관위원회의 공식 회의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사무총장과 선거정책실장의 전결로 처리됐다. 어떤 사항을 위원회 의결에 부치고 어떤 사항을 사무처 전결로 처리할지 판단하는 내부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 전체회의에서 관련 질문이 나왔지만 선거1국장은 규칙과 편람·지침을 구분하는 별도 기준이 없다고 답했다. 투표용지 인쇄 비율을 10%포인트 낮추는 결정은 비용 절감이나 행정 편의에 머물지 않는다.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이 나오거나 지역별 투표율 편차가 커지면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실제 송파구의 최종 투표율은 65.8%로 서울 평균보다 높았고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가 중단되거나 마감 시간이 연장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각 투표소의 용지 수량을 직접 계산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선거인의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주는 기준이 어떤 절차로 정해지고 있는지, 사무처의 결정이 현장에서 어떤 위험을 낳을 수 있는지는 감독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이 인쇄 기준 축소를 언제 보고받았는지, 관련 위험에 관한 검토를 지시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 상황도 투표 종료 약 40분 전에야 보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이라면 선거 현장의 중대한 문제가 중앙선관위원장에게 전달되는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이 인쇄량 축소와 전산 통계 수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정황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직접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재임 당시 수장의 지휘·감독 책임까지 없어지지는 않는다. 인쇄 기준 축소를 보고받았다면 결정의 타당성과 위험을 검토한 과정을 밝혀야 한다. 보고받지 못했다면 투표권 행사와 직결된 사안을 사무처가 자체 판단하도록 둔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 선거 당일 전국의 투표소에서 용지가 부족한데 위원장에게 보고가 늦어진 이유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전산 통계 수정 정황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관계 직원 개인이 임의로 수치를 바꾼 것인지, 지역선관위와 중앙선관위 사이에 보고가 오갔는지, 지휘부가 수정 사실을 알았는지가 밝혀져야 한다. 통계 수정이 여러 기관에서 이뤄졌다면 동일한 지침이나 지시가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은 사의를 밝히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취지로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임기 종료를 앞둔 사퇴가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사실 규명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누가 기준을 낮췄고 누가 위험을 검토했으며 사고 발생 뒤 어떤 보고와 조치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확인돼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다. 정치권이나 행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받는 대신 선거관리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투표용지조차 충분히 준비하지 못하고 사후 전산 통계까지 수정한 정황이 드러났다면 독립성만 내세울 수 없다. 합수본 수사가 통계 수정에 관여한 실무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낮춘 결정 과정과 선거 당일 보고 지연, 전산 통계 수정 경위가 서로 연결돼 있는지 살펴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을 비롯한 당시 지휘부가 각 단계에서 어떤 보고를 받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투표용지는 선거관리의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이다. 투표자 수 통계는 투표용지의 교부와 잔여 수량을 검증하는 자료다. 두 업무에서 동시에 문제가 드러난다면 현장 직원 몇 명의 착오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노태악 전 위원장 개인의 형사책임은 증거와 수사 결과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재임 중 선거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은 별개로 남는다. 이번 수사는 선관위 직원들이 전산 수치를 왜 고쳤는지만 확인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의사결정과 보고 체계, 당시 선관위 수뇌부의 관리 책임까지 규명해야 한다.
2026-07-23 10:04:39
-
-
-
-
노태악 선관위, 홍명보호보다 더 위험한 실패
[경제일보]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 32강 진출이 좌절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표팀은 결과로 평가받는 조직이고, 감독은 그 결과의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축구는 또 한 번의 실패를 기록으로 남겼다. 아프지만 대표팀에는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전술과 선수 구성을 다시 손 볼 시간이 남아 있다.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선관위 역시 결과로 평가받아야 하는 조직이다. 다만 선관위가 책임져야 할 결과는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국민이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했는지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물러났다. 그러나 사퇴가 남기는 무게까지 같을 수는 없다. 축구대표팀의 실패는 국민에게 실망을 남기지만, 다음 대회에서 만회할 기회가 있다. 반면 투표용지가 없어 발길을 돌렸거나 언제 투표할 수 있을지 모른 채 투표소 앞에서 기다려야 했던 유권자에게는 다음 경기가 없다. 그 한 표는 선거 당일, 그 투표소에서 보장됐어야 했다. 이번 사태는 몇몇 투표소의 우발적 혼선으로 정리할 수 없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1만4288개 투표소 가운데 140곳이 부족 가능성 때문에 추가 투표용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실제 추가 용지를 사용한 곳은 91곳이었고, 26곳에서는 투표가 잠시라도 중단됐다. 선관위가 처음 파악한 범위를 넘어 피해 실태가 계속 드러난 것도 국민 불안을 키웠다. 사태의 시간표는 더욱 답답하다. 송파구선관위는 선거 당일 오전 11시 40~50분께 이미 무번호 투표용지 부족 가능성을 예상해 서울시선관위에 일련번호 부여 방안을 문의했다. 그러나 서울시선관위와 중앙선관위가 함께 대응에 나선 것은 약 5시간 뒤였다. 오후 4시 46분이 되어서야 송파구선관위가 일련번호를 기재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투표소에 내보내겠다고 알렸고, 중앙선관위는 오후 5시가 넘어 민원을 계기로 서울시선관위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했다. 선거를 총괄하는 기관이 현장의 경고를 제때 받아내지 못하고, 민원과 혼란이 번진 뒤에야 대응에 나섰다면 이는 단순한 전달 실수의 문제가 아니다. 투표소별 투표율과 남은 용지를 누가 점검했는지, 어느 단계에서 위험 신호가 끊겼는지, 중앙 상황실은 왜 먼저 움직이지 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다는 말은 중앙의 책임을 덜어주는 근거가 아니라, 보고와 지휘 체계가 왜 그토록 허술했는지를 묻게 하는 출발점이다. 진상규명위원회도 결론을 흐리지 않았다.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고,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발동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논의하지 않은 채 투표시간 연장을 결정했고, 송파구선관위에서는 투표가 끝나기 전 개표가 시작되는 일도 있었다. 전국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선거일 하루 동안 같은 지휘선 아래 움직이지 못한 셈이다. 투표용지 인쇄 하한을 유권자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결정도 비켜갈 수 없다. 해당 지침은 사무총장 전결로 처리됐다. 노태악 전 위원장은 국정조사에서 이를 알고 있었다고 답했고, 사전 보고에 대해서는 짧은 보고가 있었을 수 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인쇄 비율은 서류철 안의 작은 행정 항목이 아니다. 본투표일에 유권자가 몰릴 경우를 대비하는 최소 안전장치다. 보관 공간과 관리 비용을 고려할 수는 있어도, 그 판단이 투표소의 용지 부족으로 이어졌다면 선관위는 그 우선순위를 설명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선거관리의 기준과 지휘 체계를 책임지는 자리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이 낮아졌다면 그 위험을 점검했어야 하고, 선거일 현장에서 부족 징후가 나타났다면 보고와 대응이 지체되지 않도록 조직을 움직였어야 한다. 최고 책임자의 역할은 현장의 숫자를 대신 세는 데 있지 않다. 현장이 흔들릴 때 조직 전체가 즉시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노태악 개인의 사퇴로만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노태악 전 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12명에 대한 수사의뢰를 권고했고, 관련 실무자 6명에 대한 징계도 권고했다. 이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다만 이번 사태를 일선 직원 몇 명의 과실로 돌려 봉합할 수 없다는 뜻은 분명하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는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었다. 노태악 전 위원장의 사퇴는 참정권 보장에 실패한 국가기관 수장의 책임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그 뒤에 따라야 할 절차도 달라야 한다. 누가 인쇄 기준을 낮췄는지, 현장의 경고가 어디에서 멈췄는지, 중앙은 왜 위험을 먼저 감지하지 못했는지, 그 판단과 지연에 책임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외부 권력이 선거 관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독립기관이라는 지위가 내부 실패에 대한 설명 의무까지 덜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준비와 책임이 요구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개혁 구호가 아니다. 투표소에 가면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사고가 나면 국가기관이 즉시 수습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이다. 홍명보호의 탈락은 한국 축구에 숙제를 남겼다. 노태악 선관위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다시 묻게 한다. 축구는 다음 대회를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는 다르다. 그날 투표소에서 행사되지 못한 한 표는 다음 선거가 아니라, 바로 그날 국가가 지켜냈어야 할 권리였다.
2026-06-30 07:54:09
-
-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경제일보] 대법관까지 지낸 전직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출국금지됐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수사하는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과 허철훈 전 사무총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합수본은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선관위, 송파·서초·강남·광진·동작구선관위 등 7곳을 압수수색했다. 투표용지 인쇄 계획서, 회의록, 예산서, 투표록 등 선거 준비와 당일 대응을 보여줄 자료들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출국금지는 유죄 판단이 아니다. 압수수색 역시 혐의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다. 그러나 이 사태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선관위의 공적 권위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선거관리의 최종 책임자였던 인물이 대법관 출신 노태악이라는 점은 이 사안을 더 무겁게 만든다. 국민이 묻는 것은 단순하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투표용지가 모자랐다는 말은 사소한 행정 실수가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국가가 표를 줄 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선거관리에서 가장 기초적인 물적 준비가 무너진 것이다. 선거는 추상적인 민주주의 의식이 아니다. 유권자 명부, 투표소, 기표대, 투표함, 투표용지가 있어야 작동하는 국가 절차다. 그중 투표용지는 선거의 시작점이다. 그것이 부족했다면 선거관리 기관은 가장 낮은 문턱도 넘지 못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규모다. 처음에는 일부 투표소의 돌발 상황처럼 알려졌다. 그러나 선관위 자체 조사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전국 50곳으로 늘어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투표가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유권자는 줄을 서서 기다렸고, 선거관리 직원들은 현장에서 혼란을 수습했다. 투표소 현장의 실무자만 탓할 일이 아니다. 이런 사태가 선거 당일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다면 중앙선관위의 준비, 점검, 보고, 대응 체계 전반이 허술했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은 투표용지와 투표함 작성·송부의 실무 주체를 구·시·군선관위로 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앙선관위원장이 지역 실무 뒤에 숨을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는 전국 선거관리 기준을 세우고, 위험 요인을 점검하고, 선거 당일 돌발 상황에 대응할 체계를 갖춰야 하는 기관이다. 선거관리의 독립성은 책임을 피하라는 방패가 아니다.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한 선거를 관리하라는 헌법적 신뢰다. 그 신뢰가 투표소 앞에서 무너졌다. 노 전 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법원 주요 보직을 거쳤고, 법원장을 지냈고, 대법관까지 올랐다.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법부 엘리트가 밟을 수 있는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마지막 공직의 장면으로 남긴 것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출국금지라면, 국민은 그의 공직 생활 전체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법정에서, 법원에서, 선관위에서 어떤 긴장감으로 일했는가. 물론 이번 사태만으로 과거 판결까지 싸잡아 의심할 수는 없다. 판결은 기록과 법리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그러나 최고 법관 출신에게 기대했던 공적 자세와 관리 능력이 이번 사태에서 너무 초라하게 드러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법관이라는 이력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다. 국가 의사결정의 최상층에서 법과 절차의 무게를 다뤄본 경력이다. 그런 사람이 선거관리 기관의 수장이 됐다면 적어도 선거의 기본 절차만큼은 누구보다 엄격하게 챙겼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선관위는 유권자가 투표소에 온 뒤에야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선거 전에 예상 투표율을 어떻게 계산했는지, 인쇄 매수를 어떻게 정했는지, 지역 선관위의 준비 상황을 중앙선관위가 어떻게 점검했는지, 부족 가능성을 보고받고도 묵살한 정황은 없었는지 수사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법적 책임과 별개로 행정적 책임은 이미 분명하다. 선거 당일 투표용지가 모자랐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 전 위원장에게 이번 일이 처음 맞은 위기는 아니었다. 그는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이후 중앙선관위원장에 취임했다. 사전투표 부실 관리로 선관위 신뢰가 흔들린 뒤 조직을 바로 세우라는 요구 속에서 자리에 올랐다. 그 뒤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터졌고, 선관위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사과는 반복됐고 쇄신 약속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본 것은 바뀐 선관위가 아니라 또 무너진 선관위였다. 이쯤 되면 문제는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책임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책임지지 않는 조직 문화, 독립성을 말하면서 내부 통제를 미루는 관행, 선거가 끝나면 논란도 지나간다는 안이함이 누적된 결과로 봐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이라는 지위에 기대어 외부 감시에는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그러나 독립성은 무능을 덮어주는 명분이 될 수 없다. 헌법기관일수록 책임의 기준은 더 높아야 한다. 노 전 위원장의 사퇴도 충분하지 않다. 물러나는 것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사퇴했다고 해서 선거 당일 투표권 행사에 차질을 빚은 유권자의 문제 제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선관위 내부에서 어떤 판단이 있었는지, 누가 보고했고 누가 승인했는지, 어떤 지침이 내려갔는지, 예산과 인쇄 물량 산정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책임선이 실무자 몇 명에서 끊겨서도 안 된다. 실무자는 지시와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기준을 세운 사람, 점검하지 않은 사람, 위험 신호를 놓친 사람이 함께 드러나야 한다. 대법관 출신이라는 경력은 이번 사태에서 오히려 더 무거운 질문을 부른다. 법관은 절차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직업이다. 작은 송달 하자 하나, 증거조사 절차 하나, 기일 통지 하나가 재판 전체의 적법성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다루는 사람이 법관이다. 그런 법관 출신이 선거관리 기관의 정점에 있었다면 투표 절차의 작은 허점이 얼마나 큰 불신으로 번지는지 몰랐다고 할 수 없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막지 못했다면 더 큰 책임이다. 국민은 선관위원장에게 선거 당일 투표소마다 서 있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 선거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점검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라고 요구한다. 그 자리는 명예직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 사과문을 읽는 자리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절차가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책임지는 자리다. 노 전 위원장은 그 책임을 다했는가. 이번 사태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수사는 차분하게 진행돼야 한다. 정치권도 이 사안을 정파적 공방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선거관리 실패를 이유로 근거 없는 음모론을 키우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정쟁화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책임 규명을 흐려서도 안 된다. 투표용지 부족은 실제로 발생했다. 선관위가 자체 조사로도 전국 50곳의 문제를 확인했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조직 내부 감사나 위원장 사퇴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노태악 개인의 불명예로만 볼 사안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 공직사회 엘리트 시스템의 취약한 단면을 보여준다. 높은 자리에 오른 경력과 실제 관리 능력은 같지 않다. 법복의 권위가 행정 능력을 보증하지 않는다. 요직을 두루 거쳤다는 사실이 현장의 위험을 읽는 감각까지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조직의 보고서와 의전 뒤에 숨어 현장의 균열을 놓치기 쉽다. 그 균열이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터졌다. 국민이 느끼는 허탈감은 여기에 있다. 선관위는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도로 포장도, 재난 구조도, 산업 정책도 아니다. 선거가 본업이다. 그런데 본업의 가장 기본인 투표용지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존재 이유에 해당하는 일을 실패한 것이다. 그 실패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대법관 출신 중앙선관위원장이었다. 이것이 이번 사태를 더 부끄럽게 만든다. 노 전 위원장은 사과했고 물러났다. 그러나 사과와 사퇴만으로 끝낼 수 없는 공적 실패가 있다. 이번 일이 그렇다. 합수본 수사는 누가 어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 가려야 한다. 동시에 중앙선관위는 선거관리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열어야 한다. 투표율 예측, 투표용지 인쇄 기준, 예비 물량 관리, 지역 선관위 보고 체계, 선거 당일 비상 대응, 중앙의 지휘 권한과 책임 구조를 모두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투표소 문이 열리고, 유권자가 신분을 확인받고,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투표함에 넣는 절차가 차질 없이 이어질 때 지켜진다. 그 기본 절차가 멈추면 국민은 선거 결과 이전에 선거관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선관위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특정 정당의 비판이 아니라 유권자의 신뢰 상실이다. 노태악은 그 자리에 무엇을 하러 갔나. 이 질문은 한 사람을 겨냥한 분노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기관의 독립성이 책임 공백으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사법 엘리트의 권위가 실제 행정 실패를 가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선관위가 국민 앞에 충분히 낮은 자세로 일해왔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투표용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선관위라면 국민에게 신뢰를 요구할 자격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이번 사태의 결론은 수사기관의 판단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법적 처벌 여부와 별개로 노태악이라는 이름은 선거관리 실패의 책임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관에서 중앙선관위원장으로 이어진 화려한 경력의 끝이 왜 이런 모습이어야 했는지, 그 답은 노 전 위원장과 선관위가 스스로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미 묻고 있다. 그 자리가 그렇게 가벼운 자리였느냐고.
2026-06-13 12:32:19
-
선관위의 뼈를 깎는 혁신 없이는 민주주의의 미래도 없다
[경제일보] 6·3 지방선거 당시 서울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법원의 현장검증이 전격적으로 실시되고 정치권의 날 선 공방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마저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주권자의 신성한 권리 행사를 담보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도리어 국민의 참정권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은 결코 과하지 않다. 지난 40여 년 동안 수많은 선거와 정치적 격변을 목도해 왔지만, 국가 선거 행정의 근간인 투표용지가 모자라 유권자가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이번 사태는 실로 충격적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나 돌발 악재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초석인 선거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통째로 흔들어 버린 엄중한 사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은 국가나 조직이 신뢰를 잃으면 바로 설 수 없음을 뜻한다. 선거 관리의 기본 원칙은 단 한 명의 유권자도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데 불편함이나 막힘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선관위가 과연 이 기본적인 상식을 인지하고 있었는지조차 의심케 한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발길을 돌리거나 긴 대기 행렬 속에서 참정권을 포기해야 했던 상황은, 사실상 국가가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 것과 다름없다. 선거 결과의 정당성은 한 치의 의혹도 없는 투명하고 철저한 관리에서 비롯된다. 투표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마저 도마 위에 오르고, 결국 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제 우리는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이번 사태가 과연 몇몇 실무자의 안일함이 부른 일시적 사고인가, 아니면 선관위 조직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은 구조적 무능의 발로인가. 불행히도 본질은 후자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동안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지위 뒤에 숨어 외부의 정당한 감시와 비판에 지나치게 폐쇄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비대해지고 안주하기 마련이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발맞추어 행정의 정밀도를 높이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노력 대신, 타성에 젖은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다가 이 같은 대형 참사를 자초한 것이다. 선관위가 잃어버린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헌법기관으로서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환골탈태 수준의 세 가지 혁신이 시급하다. 첫째, 선거 행정의 전문성을 근본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유권자 수 예측, 투표율 변동 추이 감안, 비상 상황 시의 즉각적인 용지 수급 체계 등은 고도의 전문 행정 영역이다. 주먹구구식 예측에서 벗어나 통계적 엄밀성과 물류 관리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전면에 배치하고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둘째, 독립기관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엄중한 책임성을 확립해야 한다. 독립성은 선거 관리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특권이지, 부실 행정의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 사후 검증 시스템을 전면 개방하고, 실패에 대해 확실하게 책임지는 엄격한 문책 제도를 도입해야 마땅하다. 셋째,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디지털 선거관리 체계를 획기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투·개표의 전 과정뿐만 아니라, 실시간 투표용지 잔여 수량 파악과 수요 예측을 자동화하는 스마트 물류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투표용지가 모자라 선거가 파행을 겪었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망신이자 수치다.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로 유지되지 않는다. 국민이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정확히 투표함에 담기고 정당하게 계수될 것이라는 아날로그적 신뢰와 상식에서 출발한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인적·구조적 쇄신 없이는 우리의 민주주의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는 마지막 경고다. 선관위는 이번 파동을 일과성 소동으로 넘기려 하지 말고, 뼈를 깎는 자성과 과감한 인적·시스템 혁신에 나서야 한다. 신뢰를 잃은 선관위에게 내일은 없다.
2026-06-10 10:1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