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70건
-
-
-
-
K바이오 수출 66억 달러 '사상 최대'…유럽으로 영토 넓혔다
[경제일보]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이 올해 3분기까지 66억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3분기 누계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전체 의약품 수출의 70% 이상을 바이오의약품이 차지한 가운데 미국 수출은 감소한 반면 스위스·헝가리 등 유럽 수출이 크게 늘면서 수출 시장이 다변화되는 모습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3분기까지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액은 66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57억 달러보다 15.8% 증가했다. 3분기 누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은 2023년 3분기 누계 3억 달러에서 2024년 48억 달러, 2025년 57억 달러로 증가한 데 이어 올해 66억 달러까지 늘었다. 연간 수출액도 2023년 49억 달러에서 2024년 65억 달러, 2025년 76억 달러로 증가했다. 올해 3분기 바이오의약품 수출액은 20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5.6% 증가했다. 7월 수출액은 7억1000만 달러로 54.3% 늘었고 8월에도 6억9000만 달러로 25.5% 증가했다. 9월에는 조업일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6억7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보다 14.1% 줄었다. 전체 의약품 수출에서 바이오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올해 3분기까지 전체 의약품 수출액은 90억 달러로 이 가운데 바이오의약품이 73.4%를 차지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10억7000만 달러로 가장 많았다. 전체 바이오의약품 수출의 16.3%다. 다만 지난해 같은 기간 14억1000만 달러에서 23.7% 감소했다. 유전자재조합의약품 수출이 4억 달러 줄어든 영향이 컸다. 반면 독소·항독소류의 미국 수출은 6000만 달러 증가했다. 미국 수출 감소와 달리 유럽 시장에서는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스위스 수출은 10억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7.3% 증가했고 헝가리는 9억2000만 달러로 28.0% 늘었다. 스위스와 헝가리는 지난해에 이어 각각 2위와 3위 수출국 자리를 유지했다. 상위 10개 수출국 가운데 미국과 튀르키예, 일본을 제외한 7개국이 유럽 국가였다. 네덜란드 수출액은 6억3000만 달러로 42.4% 증가했고 이탈리아는 3억 달러로 59.6% 늘었다. 벨기에는 2억9000만 달러로 209.7%, 프랑스는 2억 달러로 269.1% 증가했다. 유럽을 중심으로 바이오의약품 수출이 증가한 것은 현지에서 국내 기업의 위탁개발생산(CDMO) 공급이 확대되고 바이오시밀러 수요가 증가한 영향으로 식약처는 분석했다. 제제별로는 유전자재조합의약품이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을 이끌었다. 올해 3분기까지 수출액은 57억1000만 달러로 전체 바이오의약품 수출의 86.5%를 차지했다. 전년 동기보다 8억2000만 달러, 16.8% 증가했다. 유전자재조합의약품은 스위스로 9억8000만 달러가 수출돼 가장 많았고 헝가리 9억2000만 달러, 미국 8억9000만 달러가 뒤를 이었다. 독소·항독소류 수출액은 4억3000만 달러로 43.3% 증가했다. 미국 수출이 1억3000만 달러로 가장 많았으며 중국 7000만 달러, 브라질 5000만 달러 순이었다. 반면 백신 수출은 1억8000만 달러로 21.7% 감소했다. 백신은 방글라데시, 나이지리아, 태국, 콜롬비아, 콩고 등 동남아와 아프리카 국가를 중심으로 수출됐다.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이 증가하면서 규제 경쟁력 확보도 과제로 떠올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은 허가와 생산뿐 아니라 시장 진입 시점이 사업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속한 규제 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신약과 바이오시밀러의 허가·심사 과정에서 전주기 규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품목허가 과정에서는 안전성이 확보되는 범위에서 3상 임상시험과 동물실험 자료 제출 요건을 개선하는 등 규제를 합리화하고 있다. 오는 12월 시행되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 기업 등의 규제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원료물질 인증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바이오의약품 수출이 단순히 특정 기업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CDMO와 바이오시밀러를 중심으로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전체 수출에서 유전자재조합의약품 비중이 80%를 넘는 만큼 제품군 다변화는 향후 과제로 남는다. 식약처는 국내 바이오의약품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규제 개선과 제도·기술 지원을 지속하는 동시에 안전관리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2026-10-09 14:00:00
-
정치가 800조 반도체 투자에 숟가락 얹지 말라
[경제일보] 800조원. 기업 투자 규모만으로도 한국 산업사의 기록을 새로 쓸 만한 숫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이야기다. 문제는 이 천문학적인 투자계획을 놓고 정치권의 지역 논쟁까지 거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부 국정감사에서도 입지 선정 과정이 도마에 올랐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여러 후보지를 제안했고 최종 결정은 기업이 했다는 취지로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기업들에 확인한 결과 특정 지역을 먼저 제안하거나 투자계획을 확정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 먼저 호남을 거론했느냐를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상황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까지 예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기업에 특정 지역 투자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대규모 투자계획을 협의하면서 여러 후보지를 검토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논란은 800조원짜리 반도체 투자를 어떤 원칙으로 다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반도체 공장은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부지와 물류, 인재, 협력업체, 연구개발 생태계를 종합적으로 따져 수십 년 뒤까지 경쟁력을 계산해야 하는 기업 투자다. 더구나 반도체는 한번 공장을 지으면 되돌리기 어려운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투자액도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에 이른다. 그 판단의 최종 책임은 투자하는 기업이 져야 한다. 세계 반도체 경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미국과 대만, 일본, 중국, 유럽은 생산시설과 첨단기술을 자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와 보조금,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길어지거나 경제성 이외의 변수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그 비용은 기업이 떠안는다. 결국 한국 반도체의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국가균형발전을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수도권에 산업과 인구가 집중된 한국에서 지방에 첨단산업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전력과 용수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새로운 생산거점을 비수도권에서 찾는 것은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다. 문제는 순서다. 기업에 지방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것과 기업이 지방을 선택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이다. 반도체 공장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막대한 양의 공업용수다. 장비와 소재·부품을 공급할 기업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국내외 고급인력이 일하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도 필요하다. 도로와 철도, 항만 같은 물류망도 갖춰야 한다. 정치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전력망과 용수시설을 제때 구축하고 교통·물류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연결해 인재를 키우고 교육·의료·주거 등 정주환경도 개선해야 한다.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세제와 연구개발 지원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기업이 사업성만 따져도 지방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된 균형발전이다. 지역끼리 경쟁하는 것도 나쁠 이유가 없다. 오히려 필요하다. 다만 정치적 영향력으로 기업을 끌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어느 지역이 더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인재를 확보하며 빠르게 인허가를 처리할 수 있는지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앙정부도 심판과 지원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 공장을 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각 지역이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선택을 지원해야 한다. 이번 800조원 투자를 정치적 성과로 앞세우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발표된 투자계획이 곧바로 집행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경기는 변하고 기술도 바뀐다. 글로벌 수요와 메모리 가격, 금융시장과 기업의 수익성에 따라 투자 시기와 규모가 조정될 수도 있다. 기업 역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경영상황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백조원의 숫자를 먼저 정치적 치적으로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기업의 합리적인 투자 조정까지 정치적 실패나 약속 파기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기업의 투자는 기업이 책임지고 정부 지원에는 정부가 책임지면 된다. 특히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전력망과 용수, 산업단지, 세제지원에는 더 엄격한 경제성 검토와 투명성이 필요하다. 기업 자율을 강조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지원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 결정을 존중하되 국가가 부담하는 비용과 기대효과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국회가 할 일도 분명하다. 반도체 특별법과 관련 예산을 어느 지역이 얼마나 가져갈지를 놓고 경쟁하기보다 한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야 한다. 전력과 용수, 인력과 연구개발, 세제와 인허가 가운데 경쟁국보다 뒤처진 것이 무엇인지 찾아 고치는 것이 먼저다. <관자>에는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는 말이 있다. 국가의 산업정책도 경제적 토대를 무시한 채 명분만 앞세워서는 오래가기 어렵다. 균형발전이라는 목표가 아무리 옳더라도 산업이 지속될 경제적 기반이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반대로 지방이 기업하기 좋은 곳이 되면 정치가 기업에 내려가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투자는 움직인다. 800조원은 정치권의 전리품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몫으로 미리 떼어놓을 돈도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집행하는 민간의 장기 투자다. 동시에 그 투자의 성공 여부가 한국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국가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정치의 역할은 더 절제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을 정치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곳을 만드는 것. 기업의 결정을 정치적 치적으로 포장하는 대신 전력망 하나, 용수시설 하나라도 제때 완성하는 것. 그것이 800조원 앞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정치세력이 투자계획에 이름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공장을 짓고 더 좋은 반도체를 만들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정치가 800조원에 숟가락을 얹기보다 반도체가 달릴 길부터 닦아야 한다.
2026-10-07 14:30:00
-
-
-
-
-
AI데이터센터 특별법, '누구를·얼마까지' 지원하나…시행령이 성패 가른다
[경제일보] 내년 3월 시행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의 실효성을 좌우할 세부 기준 마련이 본격화한다. 법률이 인허가 기간 단축과 전력·용수 지원, 비수도권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라는 큰 틀을 열어놨다면 시행령은 어떤 데이터센터에 어느 수준까지 특례를 적용할지를 결정한다. 지원 대상과 전력용량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투자 촉진법’이 될 수도, 선언적인 지원법에 머물 수도 있다는 평가다. 7일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9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특별법 하위법령 공개토론회’를 연다. 과기정통부는 시행령 초안을 설명하고 산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입법예고안을 보완할 예정이다. 특별법은 지난 6월9일 공포됐으며 9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 3월10일 시행된다. 관건은 특별법상 AI 데이터센터의 범위다. 특별법 제2조는 AI 데이터센터를 AI기본법에 따른 데이터센터 가운데 ‘설비 및 규모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시설’로 규정했다. 구체적인 서버·연산장치 구성과 전력용량 등은 시행령에 넘긴 셈이다. 기준을 지나치게 높이면 중소·중견 사업자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고, 반대로 낮게 잡으면 일반 데이터센터가 일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치한 뒤 AI 데이터센터로 신고해 지원을 받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체 서버에서 AI 연산장치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실제 가동률, AI 서비스 제공 실적 등을 확인할 증빙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 개방형 AI DC 포함 추진…“누가 쓰나보다 어떻게 쓰나” 정부가 방향을 분명히 한 부분은 개방형 AI 데이터센터다. 개방형 AI 데이터센터는 사업자가 직접 사용하는 자가용 센터와 달리 외부 기업과 연구기관에 GPU·신경망처리장치(NPU), 공간과 전력 등을 임대하거나 공유하는 시설이다. 장기철 과기정통부 AI데이터진흥과장은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AI 시대 네트워크 고도화 방안’ 정책간담회에서 “지금은 디테일이 필요한 시기”라며 자가용뿐 아니라 개방형 AI 데이터센터도 특별법의 정의와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당시 국내 AI 데이터센터의 91.3%가 여러 기업이 이용하는 개방형 구조라며, 이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AI 활용 기회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을 누가 소유하거나 직접 쓰는지보다 국내 AI 산업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기준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개방형 센터를 포함하는 것과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특별법 자체가 AI 데이터센터 전체에 일률적인 세액공제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공제를 받으려면 해당 시설이 국가전략기술인 AI 개발과 서비스에 실제 활용된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에 따라 GPU 보유량이나 임대계약만으로 인정할지, 국내 기업의 이용 비중과 AI 연산 실적까지 요구할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해외 빅테크에 컴퓨팅 자원을 전량 제공하는 센터까지 국내 산업 지원 대상으로 볼 것인지도 시행령과 세제 운용 과정에서 정리해야 한다. 기존 AI 데이터센터의 적용 범위도 불분명하다. 법 부칙은 AI기본법 제25조에 따라 정부가 이미 진행한 처분과 절차는 특별법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법 시행 전에 민간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모든 AI 데이터센터를 자동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는 규정은 없다. 비수도권에서 운영 중인 센터를 확장하거나 일반 데이터센터를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하는 사업은 전력계통영향평가 특례 대상에 포함됐다. 반면 별도의 증설이나 전환 없이 가동 중인 센터가 금융·기반시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시행령의 정의와 신고·경과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법 시행 전 투자와 시행 후 신규 투자 사이의 형평성을 위해 기준일과 인정 서류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 계통평가 면제는 비수도권만…‘몇 MW까지’가 핵심 전력 특례의 실효성은 면제 용량에 달렸다. 특별법 제19조는 비수도권에서 AI 데이터센터를 신축·확장하거나 기존 데이터센터를 AI 데이터센터로 전환할 때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수도권 데이터센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행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시행령상 전력계통영향평가는 지정 지역에서 10메가와트(MW) 이상의 전력을 새로 사용하거나 추가하는 사업자에게 적용된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면제 가능한 전력용량을 다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면제 상한을 현행 평가 대상 기준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게 정하면 특례의 체감 효과가 크지 않다. 반대로 대규모 센터까지 폭넓게 면제하면 비수도권 전력망의 보강 비용과 계통 안정성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센터 규모뿐 아니라 지역별 전력 여유와 자체 발전·에너지저장장치(ESS) 확보 여부 등을 함께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별법 제20조는 재생에너지 전기공급사업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AI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직접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입법 과정에서 거론됐던 액화천연가스(LNG) 직접전력구매계약(PPA)은 최종 법률에서 빠졌다. 전력 조달의 선택 폭을 넓히면서도 탄소 감축 기조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과제가 시행 단계에 남았다. ◆ 인허가 ‘타임아웃제’ 법에 명시…접수 전 지연 막아야 인허가 처리기간은 법률에 이미 구체적으로 담겼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150일, 에너지사용계획 협의와 교통·경관·건축위원회 심의는 90일, 건축허가와 소방 동의 등은 40일 안에 검토 결과를 통지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있으면 한 차례에 한해 최대 30일 연장할 수 있다. 관계기관이 해당 기간 안에 거부 통지를 하지 않으면 기간이 끝난 다음 날 인허가 처리가 완료된 것으로 보는 ‘타임아웃제’도 도입됐다. 다만 사업자는 과기정통부의 사전 검토와 국가AI전략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일괄처리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결국 신청서 보완과 관계기관 협의, 국가AI전략위원회 심의에 걸리는 시간이 별도로 길어지면 법정 처리기간을 단축한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시행령에서는 신청 접수 여부를 결정하는 기한과 보완 요구 횟수, 관계부처 이견 조정 절차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지원 재원을 누가 부담할지도 남은 문제다. 특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력·용수·도로·통신시설을 우선 설치하고 GPU 등 연산장비의 구입·임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금 융자와 투자, 보조금 지급 근거도 마련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지원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이어서 예산과 비용 분담 기준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업자가 체감하기 어렵다. 장 과장은 “업계 의견을 적극 반영해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시행령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9일 공개될 초안에서는 AI 데이터센터의 설비·규모 기준과 개방형 센터의 증빙 요건, 비수도권 계통영향평가 면제 전력용량, 기존 센터에 대한 경과조치가 핵심 검증 대상이 될 전망이다.
2026-09-07 09:20:15
-
삼성에 20조 선납 제안…전력망 책임은 누구 몫인가
[경제일보] 수백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지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첨단 팹은 거대한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도체 경쟁이 기술과 자본의 싸움인 동시에 전력망 경쟁인 이유다. 하지만 그 전력망을 깔 돈이 부족해지자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을 먼저 내달라는 카드를 꺼냈다. 한전이 제안한 규모는 삼성전자 20조원, SK하이닉스 5조원이다. 지난해 두 회사가 낸 전기요금 약 4조1000억원과 9000억원을 기준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치를 계산했다. 선납금은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 등에 투입하고, 기업에는 국고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이자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참여 여부와 금리, 금액과 기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전도 ‘제안’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전기요금 선납제 자체도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지난해 선납액은 약 3900억원이었고, 대부분 공공기관이 이용했다. 기업이 미래에 낼 전기료를 먼저 내고 한전은 그 돈을 필요한 설비에 투자하며 기업은 이자를 받는 구조라면 금융거래로서 성립할 여지는 있다. 적기에 전력망이 완공되지 못해 수십조원짜리 공장이 서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이해관계가 있다. 문제는 규모와 목적이다. 3900억원 수준이던 선납제도를 단숨에 25조원짜리 전력망 조달수단으로 바꾸면 제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25조원은 한전 연간 매출의 4분의 1에 가까운 돈이다. 전기요금 납부 편의를 위한 제도가 사실상 국가 핵심 인프라를 조달하는 금융수단으로 변하는 셈이다. 한전이 이 방안을 고민하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가동과 호남 클러스터 건설 등에 따른 추가 전력수요는 20.6GW로 추산되고, AI 데이터센터까지 더하면 필요한 전력이 더 늘어난다. 한전은 당초 2038년까지 전력망에 72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투자 수요는 더 커졌다. 반면 한전의 연결 기준 부채는 지난 6월 말 2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자비용으로 2조1000억원을 썼다. 공기업의 재무제표와 국가 산업정책의 시간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삼성과 하이닉스가 쓰는 전기니 두 회사가 망을 깔면 된다”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전력망은 공장 안의 생산설비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산업단지와 도시로 실어 나르는 국가 기간시설이다. 지난 7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주요 송·변전설비를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규정하고 있다. 법의 목적부터 전기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국가 주요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망을 조기에 확충하는 데 있다. 국가가 스스로 ‘기간망’이라고 이름 붙인 인프라의 책임을 특정 기업의 현금 여력에 의존해 해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반대편 원칙도 분명하다.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대기업이 자신 때문에 추가로 발생하는 인프라 비용을 한 푼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논리 역시 설득력이 없다. 10GW, 20GW의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선과 변전소, 계통보강 비용이 따라온다. 그 비용을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전기 소비자에게 똑같이 떠넘기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제5편에서 개인이나 소수에게 맡길 수 없는 공공사업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을 국가의 책무로 봤다. 동시에 도로와 교량 같은 시설의 비용은 이용자에게 받는 통행료로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250년 전에도 공공 인프라의 책임과 이용자의 비용부담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도 ‘국가가 전부 낼 것이냐, 기업이 전부 낼 것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누가 어느 비용을 왜 부담하는지에 대한 원칙이다. 국가 전체가 이용하는 기간 송전망과 장거리 간선망은 국가와 한전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반면 특정 산업단지나 초대형 수요처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전용선로와 변전소, 접속설비에는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여러 기업과 지역이 함께 혜택을 보는 계통보강 비용이라면 수익 범위에 따라 분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선이 먼저 그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한전이 재무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현금이 많은 기업을 찾아가 몇 년 뒤 받을 전기료를 미리 달라고 하는 방식이 관행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오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지만 내일은 데이터센터, 배터리, 철강·석유화학 기업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 인프라 투자비가 전력 수요자의 현금 보유액이나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는 산업정책도, 요금정책도 아니다. 더구나 한전은 독점적인 송·배전망 사업자다. 기업 입장에서는 “싫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으로 거래의 자발성이 완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새 공장에 제때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는 기업과 그 전력을 공급할 사실상의 유일한 사업자가 20조원 규모의 선납을 협상한다면 일반적인 금융거래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와 기준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납제를 확대하려면 세 가지 안전장치가 먼저다. 선납금은 해당 전력망 건설에만 쓰도록 별도 관리해야 한다. 기업별 부담액은 전력 사용량과 추가 계통투자 비용 등에 따른 객관적 산식으로 정하고 동일한 조건의 대규모 수요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공사가 늦어지거나 전력 공급 일정이 어긋났을 때 선납기업이 부담할 위험과 보상 원칙도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 한전의 재무문제와 전력망 투자 문제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납금으로 한전채 발행을 줄이는 효과가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과거 전기요금 정책과 연료비 급등으로 쌓인 210조원대 부채를 반도체 기업의 미래 전기료로 메우는 것이 목적이 돼서는 곤란하다. 반도체 전력망에 들어갈 돈과 한전의 누적 재무부담을 한 통장에 넣는 순간 비용 부담의 원칙은 흐려진다. 정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용인과 호남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에는 수십조원,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주문하면서 정작 공장을 돌릴 전력망은 한전과 기업이 돈을 마련해 알아서 깔라는 식이어서는 산업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공장 유치는 국가전략이고 송전망은 기업 사정이라는 식의 역할 분담은 성립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의 속도는 전력망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다. 주민 수용성 문제와 송전선로 인허가를 풀고 장기 전력수요를 예측해 기간망을 미리 확보하는 일은 개별 기업이 대신할 수 없는 국가의 몫이다. 올해 시행된 국가기간전력망법이 5년마다 30년 단위의 장기 전망을 담은 전력망 기본계획을 만들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자가 되는 전력설비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조건이 합리적이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면 전기료 선납도 하나의 재원조달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먼저 국가가 어떤 전력망을 언제까지 책임질 것인지 정하고, 그 다음 특정 수요자가 추가로 발생시킨 비용의 몫을 투명하게 계산해야 한다. 한전의 재무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 순서를 거꾸로 세워서는 안 된다. 전기는 기업이 돈을 내고 사는 상품이지만, 그 전기가 흐르는 국가기간망은 대한민국 산업의 기반이다. 상품의 값을 기업에 받을 수는 있다. 더 많이 쓰는 기업에 더 많은 인프라 비용을 부담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제때 준비하지 못한 기간망의 책임까지 ‘5년치 전기료 선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청구해서는 안 된다. 25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그것이다. “한국의 전력망은 누구의 책임인가.”
2026-09-04 13:00:00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