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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2차 제재 압박, 한국 기업이 또 희생양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와 기업을 겨냥한 2차 제재 가능성을 다시 꺼내 들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24일 이란과 거래를 계속하는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이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이날 이란의 석유·해운·항공·금·가상자산·기술 분야와 관련된 개인·기업·선박 60곳을 새로 제재했지만, 당장 가장 강력한 2차 제재까지 전면 시행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앞으로다.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까지 본격적으로 제재하기 시작하면 그 파장은 중동에 그치지 않는다. 달러 결제망과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접근을 무기로 삼는 2차 제재는 사실상 전 세계 기업에 “이란과 미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한다. 한국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의 핵심축이다. 북한 핵 문제와 첨단기술, 공급망, 안보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 체제에도 책임 있게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 기업이 예상하지 못한 손실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재의 목적과 동맹국 기업 보호는 별개의 문제다. 미국의 대이란 압박은 이미 국제 에너지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교역 상대에 대한 제재를 경고한 뒤 국제유가는 크게 출렁였다. 지난 21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를 넘어섰고,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과 호르무즈해협 불안이 계속되면서 시장의 변동성도 커졌다. 한국처럼 원유 대부분을 수입하는 국가는 제재 자체보다 그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와 석유화학뿐 아니라 항공·해운·물류·제조업 전반의 비용이 올라간다. 전기·가스요금과 소비자물가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 대이란 제재가 강화될수록 한국경제가 감당해야 할 간접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운업도 위험하다. 이란은 최근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를 둘러싸고 외국 선박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24일에는 통항 규칙 위반을 이유로 45척의 선박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벌금과 억류, 화물 압류 가능성을 경고했다. 명단에는 한국 해운사와 관련된 선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2차 제재와 이란의 맞대응이 동시에 강화되면 기업은 양쪽 위험을 모두 떠안는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과 거래를 끊더라도 이미 체결한 계약과 운송 일정에서 손실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기존 계약을 이행하다 미국 금융·결제망에서 제재를 받는다면 피해는 훨씬 커진다. 정부가 지금부터 움직여야 하는 이유다. 첫째, 미국과의 사전 협상을 통해 한국 기업에 필요한 예외와 유예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과거 대이란 제재에서도 미국은 동맹국이나 특정 거래에 한시적 예외를 인정한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이미 체결된 계약이나 인도적 물품, 국제 에너지시장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거래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확보해야 한다. 기업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거래를 끊으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계약 정리와 결제 회수, 화물 운송을 마칠 시간을 줘야 한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해야 할 핵심도 바로 이런 현실적인 피해 방지 장치다. 둘째, 기업에 명확한 제재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2차 제재의 가장 큰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어떤 거래가 제재 대상인지, 어느 시점부터 적용되는지, 이란과 직접 거래하지 않고 제3국을 통해 거래하는 경우 어디까지 문제가 되는지 기업이 정확히 알기 어렵다. 특히 중소기업은 미국 제재 규정을 자체적으로 분석하기 어렵다. 정부와 금융당국, 무역기관이 공동으로 기업별 노출도를 점검하고 제재 대상 거래와 허용 거래를 신속하게 안내해야 한다. 제재를 몰라서 위반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셋째, 금융권의 과도한 위축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제재가 시작되면 금융기관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실제 제재 대상이 아닌 거래까지 결제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과잉 준수’다. 기업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거래임에도 돈을 받지 못하거나 송금이 막힐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 협의해 제재 대상과 예외 거래를 명확히 하고 국내 은행에도 일관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이 제재보다 금융기관의 지나친 위험 회피 때문에 먼저 피해를 보는 일은 방지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넷째, 에너지와 물류 공급망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유가와 해상운임 상승은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의 봉쇄와 제재 강화로 이란산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했고 중국 정유사들도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역시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전략비축유 운용 계획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호르무즈해협 통항이 불안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대체 운송 경로와 선박 보험, 해운기업 지원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한미 간 협상의 원칙이 중요하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와 외교 목표를 위해 제재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도 자국 기업과 국민의 경제적 이익을 지킬 책임이 있다. 동맹국의 정책에 협력하는 것과 우리의 경제적 손실을 아무 조건 없이 감수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미국 역시 동맹의 부담을 일방적으로 전가해서는 안 된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동맹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동맹국 기업에 충분한 설명과 준비기간 없이 제재를 확대하면 미국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만 떨어질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제재에서 미국이 이란산 원유 거래에 큰 역할을 하는 중국의 주요 금융기관에는 아직 가장 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과의 충돌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도 미국에 분명히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제재가 필요하다면 기준은 일관돼야 한다. 경제 규모나 협상력에 따라 어떤 국가는 유예하고 동맹국 기업에는 더 엄격한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라면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미국이 구체적인 제재안을 발표한 뒤에야 대책회의를 여는 사후 대응이다. 제재 대상과 시점이 확정되기 전에 산업별 노출도를 파악하고 미국 재무부와 협의해야 한다. 에너지·해운·금융·건설·수출기업의 기존 계약을 전수 점검하고 피해 가능성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 기업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제재 위험이 높은 거래는 계약 단계부터 미국 제재 발동 시 책임과 손실을 어떻게 나눌지 명확히 해야 한다. 결제통화와 거래은행, 선박과 보험사까지 제재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는 시스템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화될수록 한국에는 외교와 경제가 분리되지 않는다. 안보동맹을 지키면서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고, 미국의 제재를 준수하면서 한국 기업의 피해도 줄여야 한다. 어느 한쪽만 강조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외경제 환경이 불안할수록 외교의 실력은 선언이 아니라 손실을 얼마나 줄였는지에서 드러난다. 미국의 2차 제재가 현실화한다면 한국도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예측할 수 없는 피해를 떠안게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미국의 최종 결정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예외와 유예, 결제 안전망과 에너지 공급망 대책을 지금부터 협상해야 한다. 동맹은 국익을 포기하는 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안보 목표를 지키면서 서로의 정당한 경제적 이해를 조정하는 관계다. 대이란 제재에서도 그 원칙은 달라질 수 없다. 제재에는 협력하되 한국 기업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선제적 외교전이 지금 필요하다.
2026-08-25 10: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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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서아프리카 컨테이너 노선 첫 출항…대형선 정시 운항 높인다
[경제일보] HMM이 유럽과 서아프리카를 잇는 신규 컨테이너 노선을 열었다. 대형선이 직접 기항하기 어려운 서아프리카 항만을 중소형 선박으로 연결해 원양 노선의 정시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8일 HMM은 전날 스페인과 서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신규 컨테이너 서비스 ‘MA2(Mediterranean West Africa)’의 첫 항차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MA2는 최원혁 사장 부임 이후 컨테이너 부문 전략으로 수립한 ‘허브 앤 스포크’ 전략의 첫 번째 서비스다. 원양 항로인 FIM(극동-인도-지중해) 노선의 주요 기항지이자 HMM 자영 터미널이 있는 스페인 알헤시라스를 거점으로 서아프리카 주요 항만을 연결한다. 기항지는 알헤시라스에서 모로코 탕헤르, 세네갈 다카르, 가나 테마, 나이지리아 레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으로 이어진다. 왕복 항해 기간은 35일이다. 이번 노선에는 2800TEU급 중소형 컨테이너선 5척이 투입된다. HMM이 2척, 일본계 해운사 ONE이 3척을 맡는다. HMM 관계자는 “MA2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FIM 서비스와 연계된다”며 “서아프리카는 항만 크기나 혼잡도 등을 감안했을 때 FIM 노선에 투입되는 대형선이 직접 기항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지선망인 MA2로 분리 운영함으로써 FIM 노선의 정시성을 유지하면서 서아프리카 서비스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MA2에 투입되는 선박에 대해서는 “2800TEU급 피더선 5척 가운데 HMM이 2척, ONE이 3척을 투입한다”며 “소유선·용선 여부는 수시로 변동될 수 있어 특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허브 앤 스포크는 대형선이 원양 항로의 거점 항만까지 화물을 실어 나르고, 이후 중소형 선박이 주변 항만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대형선은 장거리 노선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중소형 선박은 항만 규모가 작거나 혼잡도가 높은 지역을 맡는다. HMM은 이번 MA2 서비스를 통해 대형선 운항 지연을 줄이고 서아프리카 지역 운송 서비스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HMM이 서아프리카 노선을 별도로 둔 것은 선대 전략이 단순한 규모 확장에서 네트워크 효율화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해운 호황기에는 선복 확보가 핵심 경쟁력이었지만, 최근에는 항만 혼잡과 환적 지연, 정시 운항이 화주 선택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대형선이 모든 항만에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거점 항만과 중소형 선박을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서비스 품질을 가른다. HMM은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총 27척의 피더선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22척은 신조 발주 물량이다. 나머지는 리세일과 중고선 매입 등을 통해 확보했다. HMM은 보유 중인 초대형선단과 새로 확보한 중소형 선박을 연계해 운항 효율과 수익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알헤시라스 자영 터미널도 이번 전략의 핵심 거점이다. 알헤시라스는 HMM의 FIM 노선 주요 기항지이자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환적 거점이다. 자영 터미널을 활용하면 대형선 입항, 하역, 환적, 중소형 선박 연결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선박만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항만과 노선을 함께 묶어 운항 효율을 높이는 구조다. HMM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항만을 중심으로 대형선과 피더선 연계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선대 및 네트워크 확장, 친환경 선박 확보 등을 통해 글로벌 선사로의 도약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번 MA2 첫 출항은 HMM이 초대형선 중심의 규모 경쟁을 넘어 정시성과 연결성을 앞세운 서비스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대형선이 닿기 어려운 항만을 중소형 선박으로 촘촘하게 연결하는 방식이 HMM의 새 성장 전략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2026-07-08 10: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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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양자 소재·전기선박 앞세워 첨단산업 판 키운다
[경제일보] 중국이 양자기술과 배터리 산업을 앞세워 차세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양자컴퓨터에 필요한 핵심 소재를 자체 생산하고, 배터리 기술은 전기차를 넘어 선박으로 넓히고 있다. 전자상거래 물류시장도 성장세를 이어가며 내수 소비 회복을 뒷받침하고 있다. 양자칩 소재 자립 나선 중국 15일 중국 연구진은 최근 순도 99.99% 이상의 실리콘-28 동위원소 양산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실리콘-28은 양자칩 제작에 필요한 핵심 소재로 꼽힌다. 양자컴퓨터는 외부 환경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잡음에도 성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실리콘-28은 이런 간섭을 줄여 연산 안정성을 높이는 데 유리한 소재로 평가된다. 이번 성과는 중국 양자기술의 자립도와 맞닿아 있다. 양자컴퓨팅은 반도체, 암호통신, 신약 개발, 금융 연산 등 여러 분야와 연결되는 차세대 기술이다. 아직 본격적인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소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은 기술 경쟁의 기본 조건이다. 핵심 소재를 외부 공급망에 의존하면 연구 속도와 생산 계획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은 양자컴퓨팅 장비와 소재, 연구 기반에서 앞서왔다. 중국이 실리콘-28 양산 성과를 부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자칩 제조에 필요한 기반 소재를 자체적으로 확보했다는 점에서, 향후 연구와 생산 단계에서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 전자상거래 물류가 떠받치는 내수 내수시장에서는 전자상거래 물류가 꾸준히 늘고 있다. 중국물류구매연합회에 따르면 5월 중국 전자상거래 물류지수는 111.0으로 전월보다 0.4포인트 올랐다. 전자상거래 물류 총업무량지수는 128.3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농촌 전자상거래 물류 수요도 회복세를 보였다. 중국 소비가 전반적으로 강하게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동산 경기 부진과 고용 불안, 소득 기대 약화가 여전히 소비심리를 누르고 있다. 다만 소비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대형 오프라인 소비보다 온라인 주문, 즉시배송, 생활필수품 배송, 지역 특산품 유통이 물류 수요를 만들고 있다. 소비 회복의 온기가 대도시 중심 상권보다 생활권 물류망을 통해 먼저 나타나는 모습이다. 농촌 물류 회복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 정부는 농촌 전자상거래와 현 단위 유통망 확충을 내수 확대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도시 소비가 둔화되더라도 중소도시와 농촌의 온라인 소비망이 넓어지면 전체 물류시장은 일정한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택배망, 콜드체인, 즉시배송 서비스가 맞물리면서 소비의 무대도 넓어지고 있다. 전기선박으로 넓어지는 배터리 시장 친환경 운송 분야에서는 선박 전동화가 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 최초의 1만톤급 순수 전기 스마트 컨테이너선이 상업 운항을 시작하면서 배터리 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동안 배터리 산업의 중심은 전기차였지만, 이제는 항만과 연안 운송, 내륙 수로, 선박용 에너지 저장장치로 수요처가 넓어지는 분위기다. 선박은 전기차보다 전동화 조건이 까다롭다. 운항 시간이 길고, 안전 기준이 엄격하며, 해상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배터리 화재 위험, 충전 인프라, 항속거리, 선박 무게 배분도 해결해야 한다. 대양을 오가는 대형 선박을 당장 전기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항만, 내륙하천, 연안 컨테이너선, 관광선, 작업선처럼 정해진 구간을 반복 운항하는 선박은 전동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이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기차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가격 인하 압박도 커졌다. 배터리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수요처가 필요하다. 닝더스다이(CATL), 비야디(BYD), 신왕다(Sunwoda) 등 주요 업체들이 선박용 배터리 기술 개발과 시장 확대에 나서는 배경이다. 국제 규제도 전기선박 시장을 키우는 요인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운업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사들도 탄소 배출을 줄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주요 항만과 선사들이 친환경 선박 도입을 확대할 경우 중국 조선·배터리 기업에는 새 기회가 될 수 있다. 첨단 소재와 내수, 배터리를 함께 키우는 전략 최근 중국의 움직임은 산업정책의 방향을 보여준다. 양자기술은 미래 기술 경쟁과 연결된다. 전자상거래 물류는 내수 회복의 기초 체력이다. 전기선박은 배터리 산업의 다음 수요처다.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기존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 기반을 확보하려는 시도와 맞닿아 있다. 과제도 남아 있다. 실리콘-28 양산이 곧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뜻하지는 않는다. 전자상거래 물류 증가만으로 중국 소비 전체가 강하게 회복됐다고 보기도 어렵다. 전기선박 역시 항만과 연안 운송을 중심으로 시장성을 검증해야 한다. 이번 사례들은 중국 산업정책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첨단 소재는 자체 생산으로 외부 의존을 줄이고, 배터리는 전기차 이후의 시장을 찾고 있으며, 내수 소비는 물류망을 통해 중소도시와 농촌으로 넓히고 있다. 부동산과 전통 제조업에 기대던 성장 방식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은 양자기술과 전기선박, 전자상거래 물류를 다음 성장 기반으로 삼고 있다.
2026-06-15 17: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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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에서 탄 것은 배 한 척이 아니다
[경제일보] 지난 4일 저녁,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한민국 선사 HMM이 운항하는 벌크선 ‘나무호’가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고, 선박은 두바이항으로 예인되며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즉각 이란의 소행이라 단정했고, 우리 외교부는 신중한 태도로 현장 감식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 긴박한 뉴스들 사이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읽어내야 할 것은 범인의 정체나 파공의 크기가 아니다. 그것은 서울에서 비행기로 아홉 시간이나 떨어진 저 머나먼 이국의 좁은 바다가 사실은 우리 경제의 심장과 실핏줄로 연결된 ‘대동맥’이라는 서늘한 자각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지도 위에서는 인색하게 그어진 한 줄기 가느다란 물길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업의 눈으로 그곳을 투시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곳은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석유화학 원료와 선박 보험료, 해상 운임과 환율, 그리고 우리네 거실의 전기요금과 시장 바구니 물가가 한데 엉켜 지나가는 거대한 에너지의 통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세계 석유 소비량의 5분의 1이 이 좁은 목구멍을 지나며, 그중 80% 이상의 목적지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제조 국가들이다. ‘호르무즈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독감을 앓는다’는 비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조 강국’이라는 자부심 아래 눈부신 성장을 일궈왔다. 세계 시장을 호령하는 반도체 공장은 평택과 용인에 위용을 자랑하고, 자동차 공장은 울산과 광주에서 쉼 없이 돌아가며, 거대한 조선소들은 거제와 영암의 바다를 메우고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기계 장치들을 돌리는 근원적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가. 반도체 라인을 움직이는 전기의 연료, 화학 공장의 젖줄인 나프타, 철강 용광로를 달구는 에너지는 모두 저 위태로운 바닷길을 타고 들어온다. 여기서 우리는 뼈아픈 역설을 마주한다. 제조 강국은 필연적으로 ‘수입 강국’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수출품은 화려하게 포장돼 항만을 떠나지만, 한국의 생산 능력은 그보다 훨씬 앞서 항만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원자재의 물결 위에 서 있다. 바닷길이 흔들리면 공장도 흔들린다. HMM 나무호의 화재를 단순히 해운사 한 곳의 불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약점을 비추는 섬뜩한 조명탄이다. 정부가 이번 사고에 대해 신중을 기하는 것은 타당하다. 안보 위기일수록 국가는 비명보다 사실을 먼저 붙들어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편승해 말을 앞세우면 선박의 화재는 외교적 난제로 번지고, 이는 곧 통상 압력과 에너지 비용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특히 호르무즈 같은 예민한 바다에서는 말 한마디가 보험료가 되고, 그 보험료는 즉시 물류비용과 물가로 전이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해상 리스크를 평소 산업 정책의 본류(Mainstream)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산업 정책을 논할 때 떠올리는 단어들은 대개 세액 공제, 보조금, 규제 완화, 인력 양성 같은 것들이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공장이 아무리 훌륭하고 기술이 초격차를 유지한다 한들, 그 공장으로 향하는 항로가 불안하면 모든 공정은 무너진다. 원료는 늦어지고, 에너지는 비싸지며, 제품의 납기는 흔들린다. 진정한 의미의 공급망은 공장 담장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해협과 항만의 안전, 보험 시장의 안정성, 해군력의 투사 범위, 그리고 세련된 외교와 비축 시스템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묶여 있을 때 비로소 안전한 공급망이라 부를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경고하듯 호르무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에너지 병목’이다. 이 숫자의 무게 앞에서 ‘중동 리스크’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 이것은 정유사나 해운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와 철강이 한배를 탄 공동체의 운명이다. 손자는 손자병법 첫머리에서 “전쟁은 나라의 큰일이며, 생사와 존망이 달린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오늘날의 산업 국가에 있어 바닷길 또한 그와 같다. 항로는 단순한 물류 통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 생산과 물가와 일자리가 흐르는 혈맥이다. 혈맥이 막히면 장기가 괴사하듯, 항로가 흔들리면 민생이 흔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에너지와 핵심 원자재의 비축 체계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 비축은 평상시에는 불필요한 비용처럼 보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국가의 생존 시간을 벌어주는 유일한 장치다. 아울러 특정 지역과 항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조달 다변화 전략을 더 치밀하게 짜야 한다. 원가가 조금 더 들더라도 ‘안전한 대안’을 확보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가장 저렴한 비용이다. 마지막으로 해운, 보험, 금융, 국방, 외교를 하나로 묶는 ‘범정부 해상 공급망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 정책의 범주에 해군력과 해상 보험 정책이 포함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권도 이 사건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정쟁의 소재로 삼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선박이 바다에서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 ‘비상시 대체 항로는 준비되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실질적인 시스템이 없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HMM 나무호의 불은 꺼졌지만, 그 불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여전히 뜨겁게 살아있다. 우리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제조 강국의 진정한 실력은 공장 안의 효율성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위기의 바다를 통과해 원료를 들여오고, 거친 파도를 뚫고 제품을 내보내며, 예기치 못한 비용 충격을 견뎌내는 맷집까지가 진짜 산업 경쟁력이다. 호르무즈에서 탄 것은 선박 한 척만이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온 ‘안전한 바닷길’이라는 안일한 환상도 함께 그을렸다.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산업 정책은 공장 부지를 닦고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물과 전기, 사람과 원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가는 바닷길을 지키는 일, 그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산업 정책의 본질이다. 한국 경제의 목줄이 바다에 걸려 있다면, 그 바다를 지키는 일 또한 엄중한 ‘산업의 이름’으로 명명돼야 마땅하다.
2026-05-07 09:1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