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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닉스' 초과이윤 논란, 색깔론 넘어 상생의 해법 찾아야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반도체 산업이 슈퍼 호황을 맞으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거둔 막대한 초과이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양사 노동조합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고, 경영계는 기업 이익은 경영 판단의 영역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가 예상되는 만큼 이번 논란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기업의 초과이윤을 둘러싼 논쟁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반도체 산업은 기술 경쟁이 곧 생존 경쟁인 분야다.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돼야 하며, 한 번 경쟁력을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 경영계가 초과이윤의 상당 부분을 미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은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초과이윤 배분 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최근 일부에서는 초과이윤의 사회적 활용이나 노동자와의 성과 공유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사회주의적 발상’ 또는 ‘공산주의 논리’로 규정하며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시대착오적 접근이다. 경제 현실은 이미 과거의 단순한 자본과 노동의 대립 구도를 넘어섰다. 첨단산업의 성장으로 특정 기업에 부와 기회가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그 성과를 어떻게 사회 전체의 발전으로 연결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필요한 과정이다. 더욱이 초과이윤은 경제학적으로도 충분히 논의 가능한 개념이다.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이익이 발생했을 때 그 과실을 기업 내부에만 머물게 할 것인지, 아니면 협력업체와 노동자,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지는 선진국에서도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다. 우리 헌법 역시 경제 주체 간의 조화와 균형 있는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시장경제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제 분배’와 ‘사회적 상생’을 구분하는 일이다. 기업의 경영권과 사유재산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마련하고, 기업은 초과이윤의 일부를 협력업체 기술 지원과 상생기금 조성, 인재 육성, 취약계층 지원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 역시 단기적 보상 확대에만 집중하기보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지금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창출되는 막대한 부가 특정 영역에 집중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갈등을 이념 논쟁으로 소모할 것인가, 아니면 상생과 미래 경쟁력 확보의 계기로 삼을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색깔론도, 진영 논리도 아니다. 기업과 노동, 정부와 시민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성장과 공정한 성과 공유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다. 초과이윤 논란이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상생 모델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6-05-31 13: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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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전직 대통령의 법정, 체통과 책임의 마지막 시험대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은 1심을 지나 항소심으로 넘어왔지만 사건의 무게는 줄지 않았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사실관계와 법리, 형량이 다시 다퉈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 재판이 묻는 것은 유무죄와 형량만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 행사로 발생한 결과를 법정에서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도 함께 놓여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의 내란 사건 항소심은 재판부 기피신청과 재항고 절차가 이어지면서 본격 심리에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김 전 장관과 일부 피고인들도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법원은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피고인 측은 이에 불복했다.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관 기피신청 역시 형사소송 절차 안에 있는 제도다. 다만 내란 사건처럼 헌정질서와 군 지휘 체계가 함께 다뤄지는 사건에서는 절차적 다툼의 방식과 시점도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일반 피고인의 법정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혐의를 다투고 증거를 반박하며 법률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고 계엄 선포권자였다. 그 권한은 개인에게 주어진 권력이 아니라 헌법이 맡긴 공적 권한이다. 그 권한 행사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군과 경찰, 행정부가 영향을 받았다면 법정에서의 태도 역시 개인 방어권의 차원을 넘어선다.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불리하게 평가돼서는 안 된다. 재판부 기피신청이나 증거 다툼도 법이 인정한 절차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처럼 국가권력의 정점 또는 그에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인물들의 절차적 대응은 그 자체로 별도의 메시지를 남긴다. 특히 그 재판이 군과 경찰, 헌법기관을 움직인 계엄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체통은 침묵을 뜻하지 않는다. 혐의를 다투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자신의 결정을 둘러싼 법적 책임을 다투더라도 그 결정이 국가기관과 하급 공직자에게 남긴 부담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하와 실무자들이 수사와 재판의 부담을 나누어 지는 상황에서 최고 결정권자가 절차적 대응만을 앞세우는 모습으로 비치면 책임의 방향은 다시 아래로 흘러갈 수 있다. 법정 태도도 공적 평가의 대상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엄이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이 아니라 경고성 조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항소심에서도 이 주장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그러나 법원이 살필 부분은 계엄을 어떻게 불렀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움직였느냐이다. 군 병력이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을 향해 이동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명령이 내려갔는지,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군·경 수뇌부가 어떤 인식을 공유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 태도는 바로 이 대목에서 중요해진다. 계엄을 경고성 조치로 설명하더라도 실제 병력 이동과 기관 장악 시도 의혹이 있었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문제다. 법정에서는 혐의를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군과 경찰, 행정부 공직자들이 그 결과로 수사와 재판에 서게 된 현실까지 외면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의 권한은 결과가 발생한 뒤에도 책임을 동반한다. 김용현 전 장관의 위치도 이와 맞물려 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전달되는 자리였다. 1심 법원은 김 전 장관의 책임을 중대하게 판단했다. 항소심에서는 김 전 장관이 단순 전달자였는지, 아니면 군사적 실행을 구체화한 인물이었는지가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책임은 서로를 지우는 관계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과 장관의 실행 관여는 각자의 지위에 따라 함께 평가돼야 한다. 충암고 출신 핵심 인맥 논란도 마지막까지 남는 대목이다. 학연 자체가 형사책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인맥에 속한 인물들이 계엄 국면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고 실제 지시와 실행 과정에 관여했다면 그 역할은 재판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 주변의 사적 신뢰 관계가 공식 절차를 대신했는지, 국방부와 군 지휘 체계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도 항소심의 주요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군에 남은 부담 이 시리즈가 반복해 짚은 대목은 군 전체를 계엄의 책임 주체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다수 군인은 계엄을 설계하지 않았다. 현장의 장병과 실무 간부 상당수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이들이 위법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는 개별 사정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을 기획하고 지시한 사람들과 같은 선상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계엄은 군에 오래 남을 부담을 남겼다. 일부 지휘관은 피고인석에 앉았고 일부는 증언대에 섰다. 수많은 장병은 자신이 수행한 명령의 의미를 뒤늦게 평가받는 위치에 놓였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 신뢰도 흔들렸다. 이 부담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다. 국가 최고 권한자의 판단과 국방부 장관, 핵심 지휘 라인의 결정이 군 조직을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 결과다. 전직 대통령의 책임 문제는 이 지점에서 다시 제기된다. 대통령은 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졌지만 그 권한이 군 전체의 신뢰를 흔드는 방식으로 행사됐다면 그 결과도 감당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체통은 법정 밖 의전의 문제가 아니다. 군과 국가기관에 남긴 부담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는지에서 드러난다. 군인들에게 남은 억울함은 감정적 표현으로 소비할 문제가 아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 상당수는 정치적 판단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명령을 받았고 조직 안에서 움직였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그림자 속에 놓였다. 이 차이를 인정해야 책임의 경계가 바로 선다. 명령받은 사람과 명령한 사람, 실행을 지시받은 사람과 실행을 설계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남은 재판의 출발점이다. 헌정질서와 형사책임의 접점 내란 재판은 일반 형사사건보다 무거운 헌정적 의미를 갖는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의 행위와 책임을 판단하는 절차다. 그러나 내란 사건에서는 그 판단이 헌법기관의 권한, 군 통수권의 한계, 비상권한 행사 요건과 맞물린다. 윤 전 대통령 재판이 단지 한 개인의 형량 문제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항소심에서 법원은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 실행 관여 정도, 국헌문란 목적 인정 여부를 다시 살피게 된다. 형량 판단에서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라는 지위, 군·경 수뇌부의 권한 행사, 계엄이 헌법기관과 군 조직에 남긴 결과가 함께 고려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자동 감경 사유가 되기 어렵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의 사용 방식도 엄격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다만 항소심이 정치적 심판의 장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법정은 여론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거와 법리에 따라 책임을 가리는 곳이다. 윤 전 대통령에게도 방어권은 보장돼야 하고 김 전 장관 등 다른 피고인들도 각자의 혐의와 증거에 따라 판단받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 범위를 넓게 흐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권한과 행위에 맞게 정확히 나누는 일이다. 그 점에서 전직 대통령의 재판 태도는 법정 안팎에서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방어권 행사는 권리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 행사로 군과 국가기관이 움직였고 그 결과 수많은 공직자가 수사와 재판의 부담을 지게 됐다면 최고 결정권자의 태도도 함께 기록된다. 전직 대통령이 법정에서 보여야 할 최소한의 체통은 절차를 포기하는 데 있지 않고 책임의 방향을 흐리지 않는 데 있다. 남은 재판이 남길 것 윤 전 대통령 재판의 마지막 판단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항소심과 이후 절차에서 유무죄와 형량은 다시 다퉈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법정 쟁점만으로도 이 사건이 남긴 숙제는 적지 않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국방부 장관과 군 지휘부는 위법한 지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명령을 받은 군인과 명령을 내린 권력의 책임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군 전체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정리돼서는 안 된다. 군은 국가의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조직이다. 그 조직이 정치적 판단의 실행 수단으로 불려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대상은 현장에 투입된 장병이 아니라 그 병력을 움직이도록 만든 의사결정 과정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핵심 지휘 라인의 책임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개인의 방어권과 공적 책임이 동시에 드러나는 자리다. 법률상 권리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그 권한이 남긴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도 요구된다. 군과 국가기관에 남은 부담을 외면하지 않고 책임의 경계를 흐리지 않는 것, 그것이 전직 대통령의 법정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남은 재판은 계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넘어 공식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군과 헌법기관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 군인에게 남은 부담과 억울함도 함께 정리돼야 한다. 명령받은 사람과 명령한 사람의 책임을 구분하는 일은 윤석열 재판의 중간 결산을 넘어 한국 헌정질서가 다시 확인해야 할 기준이다.
2026-05-30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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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형량은 어디에서 갈리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은 항소심에서 형량 판단을 다시 다투게 됐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에게도 유죄 판단과 중형이 선고됐다. 항소심은 유무죄 판단뿐 아니라 각 피고인의 지위와 관여 정도에 따른 형량의 무게를 다시 따지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특검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 등에 항소했다. 항소심 첫 국면에서는 재판부 기피신청과 재항고 절차까지 이어지면서 본격 심리가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형량 판단의 큰 틀은 이미 1심에서 상당 부분 제시됐다. 계엄을 누가 구상했는지, 누가 군 지휘 체계로 옮겼는지, 누가 실제 병력 이동과 기관 장악 시도에 관여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내란죄의 법정형은 무겁다. 형법은 내란의 우두머리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를 규정한다.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사람도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한다. 단순 가담자와 달리 우두머리와 중요임무 종사자는 국가권력 배제 또는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에서 핵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형량 판단에서도 지위와 역할, 실행 관여 정도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윤 전 대통령 사건에서 가장 먼저 따져질 부분은 우두머리 지위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고 계엄 선포권자였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그 결정 이후 군과 경찰, 행정부가 움직였다면 법원은 그 권한이 어떤 목적과 절차에 따라 행사됐는지를 살피게 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형량 판단에서 단순한 감경 요소로만 작용하기 어렵다. 국가 최고 권한을 가진 사람이 헌정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렸다면 그 지위는 책임의 무게를 키우는 사정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김 전 장관 등은 대통령과 다른 층위에서 판단된다. 김 전 장관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대통령의 판단을 군 지휘 체계로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다. 1심 법원이 김 전 장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것은 그가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중대하게 본 결과로 읽힌다. 항소심에서는 김 전 장관이 단순 전달자였는지, 아니면 군사적 실행을 구체화한 인물이었는지가 다시 다뤄질 전망이다. 법정형보다 중요한 것은 역할의 차이 내란 사건의 형량은 법정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사건 안에서도 피고인의 지위와 관여 정도, 지시의 구체성, 실행 결과, 범행 후 태도에 따라 형량은 달라진다. 우두머리인지, 중요임무 종사자인지, 단순 가담자인지에 따라 법률상 출발점부터 다르다. 같은 중요임무 종사 혐의라도 실제로 계획을 세운 사람과 명령을 전달한 사람,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인 사람의 책임은 같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대다수 군인은 형량 분석의 중심에 놓여서는 안 된다. 계엄에 동원된 장병과 실무 간부 상당수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이들이 위법한 명령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현장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필요하면 개별적으로 따질 문제다. 그러나 계엄을 기획하고 명령을 내리거나 실행 방향을 정한 사람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형량 분석의 출발점은 현장 병력이 아니라 그 병력을 움직인 의사결정권자들이다. 김 전 장관의 형량 판단에서도 이 구분은 중요하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군이 정치적 판단의 실행 수단이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자리다. 장관이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어떤 법적 검토를 했는지, 반대 의견을 냈는지, 오히려 실행 방향을 구체화했는지는 양형에서 주요 요소가 된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가 형량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등 군 정보·방첩 라인의 역할도 별도로 검토될 부분이다. 이들은 계엄 국면에서 특정 기관 장악이나 정치인 체포 의혹,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조치와 맞물려 거론돼 왔다. 항소심에서는 이들이 어떤 지시를 받았고 무엇을 실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내란의 고의와 국헌문란 목적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가 다뤄질 수 있다. 군 정보기관의 특성상 상부 지시와 독자적 판단의 경계도 쟁점이 된다.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가 형량을 가른다 항소심에서 형량을 좌우할 첫 번째 요소는 공모관계다. 내란 사건에서 공모가 인정되려면 단순한 동석이나 의견 교환을 넘어 범행의 기본적 내용에 대한 의사 결합이 있었다고 볼 수 있어야 한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군·경 수뇌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 사전에 어떤 준비가 진행됐는지, 각자가 계엄의 목적과 실행 방식을 어떻게 인식했는지가 중요하다. 두 번째 요소는 지시 경로다. 계엄 선포 이후 군과 경찰이 실제로 움직였다면 그 명령이 어느 경로로 전달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장관을 거쳐 군 지휘부에 전달됐는지, 장관이나 군 지휘관이 이를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현장 부대에는 어떤 내용으로 하달됐는지가 형량 판단의 기초가 된다. 같은 명령 체계 안에서도 상층부에서 명령을 설계한 사람과 하층부에서 이를 받은 사람의 책임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요소는 실행 관여 정도다. 계엄이 선포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피고인의 책임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회와 선관위 등 헌법기관을 대상으로 한 병력 이동,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계엄 문건 작성이나 사후 보완 과정에 누가 얼마나 관여했는지가 각각 따져져야 한다. 실행 단계에서 역할이 구체적일수록 형량은 무거워질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지시를 받았으나 실제 실행에 제한적으로 관여했거나 위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던 사정이 인정되면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네 번째 요소는 범행 후 태도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혐의를 다투는 것 자체는 불리한 사정으로 볼 수 없다.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책임 있는 지위에 있던 사람이 하급자나 기관 실무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외면하거나 재판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비칠 경우 공적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가 일반 피고인보다 더 엄격하게 주목받는 이유다. 전직 대통령 지위는 어떻게 평가될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형량 판단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핵심 변수다. 대통령은 헌법기관의 수반이고 군 통수권자다. 계엄 선포권은 국가비상권한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권한에 속한다. 그 권한을 행사한 결과 국회와 선관위, 군과 경찰, 행정부가 동시에 흔들렸다면 법원은 권한의 크기와 책임의 크기를 함께 볼 수밖에 없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정은 두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국가 최고 책임자였다는 점에서 더 높은 법적·정치적 책임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피고인이 재판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도 함께 평가될 수 있다. 법원이 중하게 볼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대통령의 권한이 개인의 정치적 판단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는지,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제한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그 과정에서 군과 경찰 조직이 어떤 부담을 떠안았는지다. 이 대목에서 군 전체의 피해는 형량 판단의 배경 사정이 될 수 있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들이 모두 피해자라는 식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다수 장병과 실무 간부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주체가 아니라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 사람이라는 점은 고려돼야 한다. 국가 최고 권한자의 판단이 군 조직 전체를 수사와 재판, 사회적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그 결과는 양형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체통 문제도 이와 맞닿아 있다. 형사재판에서 체통이라는 말은 법률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태도는 양형과 공적 평가에서 완전히 분리되기 어렵다. 혐의를 다투더라도 자신의 결정이 불러온 결과를 어떻게 대하는지, 군과 경찰의 하급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법정 밖 평가에 남는다.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던 사람에게는 방어권 행사와 별개로 그 권한의 결과를 감당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군 피해와 양형의 연결점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군 피해 문제는 감정적 호소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 형량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계엄이 군 조직에 남긴 구체적 결과다. 지휘관들은 피고인 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섰고 일선 장병들은 자신이 수행한 명령의 의미를 뒤늦게 평가받는 위치에 놓였다.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 신뢰도 흔들렸다. 이 결과가 누구의 판단에서 비롯됐는지를 따지는 일은 형량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군인은 계엄을 설계하지 않았다. 국회와 선관위로 이동한 병력 상당수는 상급자의 명령을 받은 위치에 있었다. 이들이 위법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는 개별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계엄의 목적과 실행 방향을 결정한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양형은 책임의 크기를 구분하는 절차다. 군 전체를 묶어 비난하는 방식은 그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 김 전 장관과 군 지휘부의 형량은 바로 이 구분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장관과 고위 지휘관은 하급자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고 더 큰 권한을 행사했다. 그만큼 위법성을 판단하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계엄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이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이 하급자에게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는 항소심에서도 중요한 사정이 될 수 있다. 형량 분석은 결국 책임의 방향을 정하는 작업이다. 현장에서 움직인 병력에게 모든 부담을 돌릴 것인지, 아니면 병력을 움직이도록 만든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를 추적할 것인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진다. 이번 재판에서 법원이 살필 부분은 후자에 가깝다. 계엄이라는 비상권한을 누가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그 권한 행사가 군과 헌법기관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따지는 절차다. 항소심 형량 판단의 기준 항소심에서 형량은 여러 요소가 함께 검토될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의 경우 우두머리 지위 인정 여부와 국헌문란 목적, 계엄 선포 전후 지시 내용, 군·경 수뇌부와의 공모관계,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가 핵심이다. 김 전 장관의 경우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역할, 각 부대와 지휘관에게 전달한 지시 내용, 실행 관여 정도가 주요 판단 대상이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 다른 피고인들의 형량은 각자의 위치와 실행 정도에 따라 다시 검토될 수 있다. 특히 군·경 수뇌부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는 위치였다는 사정과 동시에 자신이 지휘권을 행사하는 위치였다는 사정이 함께 있다. 어느 쪽이 더 크게 평가되는지는 각 피고인의 구체적 행위와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항소심에서도 중심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자 군 통수권자였다. 그 권한의 행사로 군 조직이 움직였고 헌법기관이 영향을 받았다면 책임의 출발점은 위에서부터 살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형량이 자동으로 낮아질 수는 없다. 오히려 권한의 크기와 헌정질서에 미친 영향은 법원이 무겁게 볼 수 있는 요소다. 계엄 재판의 형량 분석은 숫자를 예측하는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어떤 책임을 더 무겁게 보고 어떤 역할을 구분할 것인지를 살피는 일이다. 항소심은 계엄을 기획·지휘한 인물과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 사람을 나누고, 각자의 권한과 행위에 맞게 책임을 정리하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군 전체를 향한 비난보다 의사결정권자의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2026-05-3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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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충암고 라인은 우연인가, 권력의 통로였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충암고 라인’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은 사건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군 지휘 라인과 방첩 관련 인사들이 계엄 실행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재판에서 다뤄지면서 특정 인맥이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사건과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사건은 항소심 절차로 넘어갔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김 전 장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사이의 의사 교환, 군 지휘부에 전달된 명령의 성격이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특정 인맥이 공식 지휘 체계 안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도 재판부가 살펴볼 대목이다. 다만 충암고라는 학연 자체를 형사책임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출신 학교가 같다는 사정만으로 공모관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친분이나 인맥 그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 행위다. 누가 어떤 직책에 있었는지, 어떤 권한을 행사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그 지시가 실제 병력 이동이나 기관 장악 시도와 어떻게 연결됐는지가 판단의 대상이다. 이 점을 놓치면 재판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 학연 논란이 지나치게 앞서면 계엄의 법적 책임이 사적 관계 문제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학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논의를 덮어두면 국가권력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공식 인맥이 작동했는지를 살피기 어렵다. 학교가 아니라 권한을 보고, 친분이 아니라 명령의 경로를 봐야 하는 이유다. 공식 직책과 비공식 신뢰의 경계 국가비상권한은 공식 절차와 공적 책임을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계엄은 군과 경찰, 행정부, 헌법기관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권한이다. 그래서 그 판단 과정에는 법률상 요건과 국무회의 심의, 국회 통제, 군 지휘 체계의 적법성이 함께 요구된다. 특정 인맥이나 사적 신뢰가 그 판단을 대신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비상권한이 공식 제도보다 폐쇄적 관계망을 통해 움직였는지가 재판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김용현 전 장관은 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는 윤 전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계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을 군 지휘 계통으로 연결하는 자리다. 단순한 참모가 아니라 군 조직을 현실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무위원이다. 1심 재판부가 김 전 장관의 책임을 중대하게 판단한 것도 그가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무겁게 본 결과로 읽힌다. 이상민 전 장관의 위치도 별도로 살펴야 한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지방행정, 재난안전 체계와 맞닿아 있는 자리다. 계엄 국면에서 경찰과 행정 조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군 병력 투입 문제와 함께 중요한 사안이다. 이상민 전 장관이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보고나 지시를 받았는지는 관련 재판과 수사에서 계속 다뤄질 수 있다. 이 역시 충암고 출신이라는 점보다 당시 맡고 있던 직책과 권한이 핵심이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경우는 또 다른 층위에 놓인다. 방첩사는 군 내부 보안과 정보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계엄 상황에서 방첩 기능이 정치인 체포 의혹이나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수사 구상과 어떻게 맞물렸는지는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여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에 반대했다는 취지로 증언하면서도 자신의 형사재판과 관련된 핵심 대목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목은 항소심에서도 증언의 신빙성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학연 자체가 아니라 기능을 봐야 한다 충암고 라인이라는 표현은 정치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법정에서 필요한 것은 인상비평이 아니다. 형사책임은 구체적 행위와 고의, 공모관계, 실행 관여 정도에 따라 판단된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사정은 배경으로 참작될 수는 있어도 유죄 판단의 직접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사와 재판 모두에서 필요한 것은 특정 학교명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를 추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학연 문제가 완전히 주변부로 밀릴 수는 없다. 대통령과 핵심 국무위원, 군 정보기관 지휘부가 특정 인맥으로 연결돼 있었다면 국가비상권한이 공적 검증 절차를 거쳤는지 따져봐야 한다. 계엄은 고도의 법률 판단과 군사 판단이 결합된 사안이다. 여러 기관의 견제와 토론이 필요한 영역에서 사적 신뢰가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였거나 반대 의견을 줄였다면 이는 형사책임과 별개로 공적 책임의 대상이 된다. 군 조직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더 민감하다. 대다수 군인은 출신 학교나 정치적 친분과 무관하게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윗선의 특정 인맥이 계엄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 부담은 일선 장병에게 전가된다. 병사와 실무 간부는 학연 정치의 당사자가 아니지만 그 결과로 수사와 재판, 사회적 비난의 대상으로 함께 묶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책임의 경계는 더 정확히 그어져야 한다. 군 전체를 충암고 라인과 동일시하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은 동일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집단이 아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과 명령을 설계한 사람, 실행 가능성을 판단한 사람과 현장에서 움직인 사람은 구분돼야 한다. 특정 인맥의 문제를 군 전체의 문제로 확장하면 정작 계엄 판단에 관여한 핵심 인물들의 책임은 희석될 수 있다. 계엄 의사결정의 폐쇄성 이번 재판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계엄 논의가 얼마나 공식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쳤느냐다. 대통령이 비상권한을 행사하려면 법률상 절차와 헌법적 한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국무회의 심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관련 장관들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군 지휘부에 어떤 사전 설명이 있었는지, 국회 통제 가능성이 어떻게 고려됐는지는 모두 중요한 쟁점이다. 계엄과 같은 중대 사안에서는 반대 의견이 제도 안에서 충분히 제기돼야 한다. 그러나 특정 인맥 중심으로 판단이 좁혀졌다면 반대 의견은 형식적으로 처리되거나 배제될 수 있다. 여 전 사령관이 계엄에 반대했다는 취지로 증언한 대목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다만 그의 진술은 다른 증거와 함께 평가돼야 하며 자신의 재판과 관련된 부분에서 증언을 거부한 사정도 신빙성 판단에서 함께 다뤄질 수 있다. 김 전 장관의 역할은 이와 맞물려 있다.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면 그 가까움은 권한 행사에서 더 높은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 뜻이 군에 미칠 영향을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관이 대통령의 판단을 군 조직에 전달하는 데 그쳤는지, 아니면 실행 방향을 함께 설계했는지는 형량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상민 전 장관과 행정안전부 라인에 대한 판단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경찰과 행정 조직이 계엄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군 병력 투입 문제와 분리해 볼 수 없다. 계엄이 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관 전체를 움직이는 권한이었다면 행정안전부와 경찰 지휘 체계의 대응 역시 재판과 수사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이때도 핵심은 출신 학교가 아니라 실제 권한 행사와 관여 정도다. 전직 대통령과 사적 인맥의 책임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개인적 친분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을 요직에 기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인사가 국가비상권한 행사와 맞물렸을 때 책임의 기준은 달라진다. 대통령 주변의 사적 신뢰 관계가 공적 절차를 대신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에게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에게는 재판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판단이 어떤 인맥과 지휘 체계를 통해 실행됐는지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계엄에 관여한 인물들이 법정에서 서로 책임을 나누거나 기억을 다투는 상황은 그 자체로 국가권력 행사 과정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대통령의 권한은 개인의 결단만으로 설명될 수 없고 그 결단을 실행한 사람들의 권한과 책임까지 함께 평가돼야 한다. 충암고 라인 논란은 윤 전 대통령 재판의 부수적 소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 전체를 학연 문제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이 논란의 본질은 특정 학교 출신들이 많았다는 사실보다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서 공식 제도와 비공식 신뢰가 어떻게 교차했는지에 있다.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살필 부분도 그 지점이다. 인맥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인맥이 권한 행사와 지시 전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중요하다. 이 문제는 대다수 군인의 억울함과도 맞닿아 있다. 군인들은 학연 정치의 주체가 아니다. 현장의 장병과 실무 간부는 특정 인맥의 판단을 알 수 없었고 그 판단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계엄이 실행되자 그 부담은 군 전체에 남았다. 그래서 책임은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명령을 받은 사람과 명령을 가능하게 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면 군 조직은 계속 논란의 전면에 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가 쟁점 충암고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인맥에 속한 인물들이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고 실제 지시와 실행에 관여했다면 그 역할은 재판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학연은 책임의 직접 근거라기보다 의사결정 경로를 살피는 배경 사정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에서는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 각 피고인의 관여 정도가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군 정보기관 지휘부가 어떤 지시를 받았고 어떤 판단을 했는지, 행정안전부와 경찰 지휘 체계가 계엄 국면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함께 다뤄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인맥이 공식 절차를 우회하거나 보완하는 통로로 기능했는지도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계엄 재판은 군 전체를 향한 비난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 사건에서 우선 살필 대상은 현장에 투입된 다수 장병이 아니라 그 병력이 움직이도록 만든 의사결정 과정이다. 충암고 라인 논란도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학교가 아니라 권한, 친분이 아니라 지시, 인맥이 아니라 실행 관여 정도를 기준으로 책임을 가려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그 기준을 확인하는 자리다. 대통령 주변의 사적 신뢰가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방부와 군 지휘 체계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 그 결과 대다수 군인에게 어떤 부담이 남았는지를 따지는 절차다. 남은 재판은 특정 인맥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넘어 공식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의 책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가려내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2026-05-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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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김용현의 계엄, 국방부는 어디까지 움직였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핵심 피고인 가운데 한 명이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전달되는 위치에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지휘부 사이에서 결정적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자리다. 계엄처럼 국가비상권한이 군을 통해 실행되는 사건에서는 그 지위 자체가 책임 판단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사건은 1심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된 뒤 항소심 절차로 넘어갔다. 김 전 장관 측은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계엄 준비 과정과 실행 지시 여부, 각 군 지휘관에게 전달된 명령의 성격,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사이의 의사 교환 내용이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과 함께 비상계엄을 주도적으로 준비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군의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출동을 사전에 계획했고 부정선거 수사와 관련한 별도 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김 전 장관 측은 항소심에서 이 같은 판단을 다툴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은 김 전 장관이 단순히 대통령의 지시를 전달한 것인지, 아니면 계엄 실행 과정에서 독자적 역할을 수행했는지다. 김 전 장관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그가 군 조직 전체와 대통령 권력 사이에 놓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계엄 선포권자이고 국방부 장관은 그 판단을 군사적 실행 가능성의 영역으로 옮기는 위치에 있다. 대통령의 뜻이 곧바로 일선 장병에게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와 합참, 각급 사령부, 현장 지휘관을 거쳐 명령은 구체화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계엄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군의 작전 명령처럼 전달됐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군 전체를 향한 비난과 김 전 장관 책임론은 구분돼야 한다. 일선 장병과 실무 간부는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지만 김 전 장관은 그 명령 체계가 작동하는 상층부에 있었다. 하급자가 명령을 받는 자리였다면 장관은 명령이 내려가기 전에 그것이 헌법과 법률의 경계 안에 있는지 따져야 하는 자리였다. 그 판단을 하지 않았거나 위법한 실행을 가능하게 했다면 책임의 무게는 달라진다. 대통령과 군 사이의 연결 고리 김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서 계엄 국면을 맞았다. 그 가까움 자체가 곧바로 형사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을 군사적 실행 계획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장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계엄은 대통령이 선포하지만 군은 장관과 지휘 계통을 통해 움직인다. 이 사이에서 김 전 장관이 제동 장치였는지, 실행 통로였는지가 항소심에서도 다뤄질 수밖에 없다. 국방부 장관에게는 두 가지 책임이 동시에 있다. 하나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을 관리하고 지휘 체계를 운용하는 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그 명령이 헌법과 법률의 한계를 벗어날 때 군이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책임이다. 계엄은 헌정질서의 예외 상황을 전제로 한 제도다. 그래서 더 엄격한 요건과 절차가 요구된다. 장관이 그 문턱을 낮추거나 비상권한의 남용 가능성을 외면했다면 단순한 참모 역할로 설명되기 어렵다. 김 전 장관 측은 재판 과정에서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다투고 있다. 윤 전 대통령 측도 계엄이 실제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이 아니라 경고성 조치였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법원이 살필 부분은 표현보다 실행이다. 실제로 병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어떤 기관을 대상으로 했는지, 어떤 명령이 내려갔는지, 그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이 무엇을 인식했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계엄을 경고라고 설명하더라도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였다면 그 실행의 의미는 법정에서 따로 평가된다. 김 전 장관의 책임론은 이 지점에서 커진다.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이 있었다고 해도 국방부 장관은 이를 군사 명령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독자적 판단을 해야 했다. 장관은 단순 전달자가 아니다. 군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공적 권한을 가진 국무위원이다. 대통령의 결심을 이유로 장관의 책임이 사라질 수 없고 장관의 실행 관여를 이유로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의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따로 평가돼야 한다. 계엄의 명령은 어디서 구체화됐나 12·3 비상계엄 사건에서 재판부와 수사기관이 주목한 부분은 계엄 선포 자체만이 아니다. 계엄이 선포된 뒤 군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였는지, 그 이전에 어떤 준비와 논의가 있었는지도 중요하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향한 병력 투입, 주요 인사 체포·구금 의혹, 방첩사와 정보사 등 특정 부대의 역할은 모두 계엄이 추상적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다뤄졌다. 김 전 장관은 이 과정에서 군 지휘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장관의 말은 지휘관에게 단순한 의견으로 들리지 않는다. 특히 계엄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장관의 지시와 전달 사항이 작전 판단의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장관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었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지시 내용이 법률상 허용되는 범위를 넘었는지는 김 전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 판단에서 핵심 변수가 된다. 하급 지휘관들이 처한 위치도 이와 맞물려 있다. 지휘관들은 장관과 상급 부대의 지시를 받는 동시에 현장에서 부하를 움직여야 한다. 이들이 어떤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의 출발점이 현장 지휘관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명령을 설계하고 전달한 윗선의 책임이 제대로 가려지지 않으면 계엄의 부담은 군 조직 내부로만 흘러 들어간다. 그 경우 군은 정치적 결정을 수행한 조직이라는 부담을 떠안고 정작 정치적 결정을 만든 이들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다툴 수 있는 쟁점은 적지 않다. 내란의 고의가 있었는지, 국헌문란 목적을 인식했는지, 각 지시가 실제 실행 가능성을 가진 명령이었는지, 윤 전 대통령의 판단과 자신의 행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장관이라는 지위는 그 자체로 양형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가능성이 크다. 계엄 관련 결정이 군 조직을 통과해 현실의 병력 이동으로 이어졌다면 그 연결 지점에 있던 사람의 책임은 가볍게 보기 어렵다. 재판 절차와 책임 있는 태도 항소심 첫 공판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고 법관 기피신청 역시 형사소송 절차 안에 있는 제도다. 법원은 이후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항소심 심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다만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방부 장관의 법정 태도는 개인 방어권을 넘어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두 사람은 계엄 당시 국가권력과 군 지휘 체계의 정점 또는 그에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 이들이 법정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는 계엄에 동원됐던 군인들에게도 영향을 준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절차적 다툼만 앞세우는 모습으로 비칠 경우, 명령을 받아 움직였던 군인들이 느끼는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윤 전 대통령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다. 국방부 장관이 계엄 실행의 통로였다면 대통령은 그 권한의 출발점에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법정에서 혐의를 다툴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결정이 군 조직에 남긴 부담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부하와 실무자들이 법정과 수사 과정에서 감당해야 하는 압박을 생각한다면 책임의 방향을 아래로 돌리는 듯한 인상은 피해야 한다. 김 전 장관 사건은 윤 전 대통령 재판과 분리해 볼 수 없지만 윤 전 대통령 책임을 덮는 방식으로 다뤄져서도 안 된다.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이 무겁다는 말은 대통령의 책임이 줄어든다는 뜻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계엄 책임의 경로를 보여준다. 대통령의 결심이 있었고 장관이 이를 군 지휘 체계로 옮겼으며 그 아래에서 지휘관과 장병들이 움직였다면 책임은 각자의 지위와 권한에 따라 위에서부터 규명돼야 한다. 김용현 재판이 남길 기준 김 전 장관에 대한 형량 분석에서 법원이 살필 요소는 계엄 준비 관여 정도, 병력 투입과 기관 장악 시도에서의 역할, 대통령과의 공모관계, 하급 지휘관에게 전달된 지시 내용, 재판 과정에서의 태도 등이다. 국방부 장관이라는 지위도 중요한 요소다. 권한이 컸던 만큼 그 권한이 어떻게 행사됐는지에 따라 책임의 무게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항소심에서 1심 판단을 뒤집으려면 단순히 대통령의 뜻을 따랐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장관은 대통령의 참모이지만 동시에 국가기관의 책임자다. 군이 헌법기관을 향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장관이 어떤 판단을 했는지는 그의 독자적 책임과 직결된다. 계엄이 실제로 무엇을 목표로 했고 어느 수준까지 실행됐는지는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살필 부분이다. 그러나 장관이 군 조직을 정치적 위기 대응의 수단으로 연결한 통로였는지 여부는 남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군 전체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다. 계엄에 동원된 대다수 군인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지시를 받았고 조직 안에서 움직였으며 이후 수사와 재판의 부담 속에 놓였다. 반면 김 전 장관은 그 지시가 군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책임은 넓게 퍼지고 핵심은 흐려진다. 김용현 재판은 한 전직 장관의 유무죄와 형량만을 따지는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상권한이 군 지휘 체계로 이동할 때 국방부 장관이 어디까지 막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함께 책임져야 하는지를 살피는 재판이다. 대다수 군인에게 남은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도 책임의 경계는 정확히 그어져야 한다. 남은 항소심은 군을 움직인 의사결정 과정과 그 과정에 관여한 사람들의 책임 범위를 다시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2026-05-29 09: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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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명령받은 군인과 명령한 권력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은 1심을 지나 항소심 국면으로 넘어갔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사실관계와 법리 판단은 다시 다퉈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법정 공방만으로도 한 가지 기준은 정리된다. 계엄의 부담은 군 전체로 번졌지만 책임의 출발점은 군복을 입은 대다수 장병에게 있지 않다는 점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사건 항소심은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 심리로 진행 중이다. 항소심 절차는 지난달 시작됐고 이달 들어 첫 정식 공판도 열렸다. 윤 전 대통령 측은 1심 판단을 다투고 있으며 특검도 항소했다. 재판부는 항소 이유와 증거관계, 각 피고인의 관여 정도를 다시 살펴보게 된다.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은 사건을 넓게 보되 책임의 경계를 흐리지 않는 일이다. 이번 사건은 여러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내란 본류 사건이 있고 위증 사건과 사후 문서 작성 사건, 군·경 수뇌부 사건도 맞물려 있다. 관련 사건이 늘어날수록 본류 사건의 중심을 놓치기 쉽다. 이 재판에서 우선 따져야 할 것은 계엄이라는 국가비상권한이 어떤 판단과 지시를 거쳐 현실의 병력 이동으로 이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권한을 행사했는지다. 군을 하나의 덩어리로 비난하는 방식은 사건의 실체를 좁게 만든다. 군인은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인다. 특히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각급 지휘관의 지시가 한꺼번에 내려오는 상황에서 일선 장병과 실무 간부가 그 명령의 헌법적 한계까지 즉시 판단하기는 어렵다. 위법한 명령에 대한 책임 문제는 별도로 따져야 한다. 그러나 명령을 기획한 사람, 명령을 내린 사람, 명령을 전달한 사람, 현장에서 명령을 받은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는 없다. 계엄 재판을 읽는 첫 번째 기준은 여기에 있다. 명령받은 군인과 명령한 권력을 구분해야 한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을 향한 병력 이동은 중대한 사안이다. 다만 병력이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병력 전체를 계엄의 주체처럼 다룰 수는 없다. 병력이 왜 움직였는지, 누구의 지시가 있었는지, 지휘 라인은 어떤 경로로 작동했는지를 따져야 한다. 책임의 방향은 현장 말단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군복 입은 사람들에게 전가된 정치의 비용 12·3 비상계엄은 군에 오래 남을 부담을 남겼다. 일부 지휘관은 피고인석에 앉았고 일부는 증언대에 섰다. 수많은 장병은 자신이 수행한 임무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 지켜봐야 했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헌법 교과서 안에만 있는 말이 아니다. 군이 특정 정치적 판단의 실행 수단으로 불려 나오는 순간 그 부담은 장병 개개인의 경력과 명예, 군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로 번진다. 계엄 당시 병력이 국회와 선관위 등으로 이동한 사실은 이미 재판의 핵심 쟁점이 됐다. 문제는 그 병력의 상당수가 정치적 목적을 공유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명령 체계에 따라 움직였다는 데 있다. 하급 장병과 실무자에게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따져 묻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방식만으로는 사건의 중심에 닿기 어렵다. 병력이 왜 움직였는지 보려면 병사만 볼 일이 아니라 병력을 움직인 사람을 봐야 한다. 그 지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책임은 별도의 무게를 갖는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이 군 지휘 계통으로 연결되는 위치에 있었다. 국방부 장관은 군령과 군정의 중심에 서는 자리다. 대통령의 뜻을 군 조직에 전달하는 역할뿐 아니라 그 지시가 헌법과 법률의 경계 안에 있는지 살펴야 할 책임도 함께 진다. 필요하다면 제동을 걸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1심이 김 전 장관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계엄 실행 과정에서 그의 지위와 역할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충암고 출신 핵심 인맥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다뤄야 한다. 학연 자체가 형사책임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출신 학교만으로 사람을 단죄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국가비상권한이 행사되는 과정에서 특정 인맥이 주요 지휘 라인과 의사결정 통로에 자리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법원이 판단할 대상은 학교명이 아니다. 그들이 어떤 직책에 있었고 어떤 권한을 행사했으며 누구의 지시를 어떻게 실행했는지다. 계엄처럼 국가권력의 가장 강한 수단이 움직인 사건에서는 사적 관계나 인맥이 공적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쟁점이 된다. 이 대목에서 책임은 더 좁고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대다수 군인은 정치적 결정을 만든 쪽이 아니라 그 결정의 후폭풍을 감당한 쪽에 가깝다. 반면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핵심 지휘 라인에 있던 인물들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상황을 만들고 명령을 내리거나 전달했으며 실행 가능성을 판단할 위치에 있었다. 법적 책임의 층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법정에 선 전직 대통령의 자리 윤 전 대통령에게는 재판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혐의를 다툴 권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일반 피고인의 법정과 완전히 같을 수 없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였고 계엄 선포권자였다. 그 권한은 국민이 맡긴 것이지 개인의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 부여된 것이 아니다. 그 권한 행사로 군과 경찰, 행정부와 헌법기관이 흔들렸다면 책임의 방향은 아래가 아니라 위를 향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체통은 침묵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혐의를 인정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법정에서 자신을 방어하더라도 국가기관과 부하들에게 부담이 흘러가도록 방치하지 않는 태도, 자신의 결정이 불러온 결과를 무겁게 대하는 태도, 사법 절차를 정치적 동원 무대로 만들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던 사람이 법정에서 보여야 할 기준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최근 항소심 과정에서도 재판 진행 방식과 출석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피고인이 절차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의 재판 태도는 개인 방어권의 문제를 넘어 공적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가 법정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계엄에 동원됐던 군과 경찰, 당시 명령 체계 안에 있던 공직자들에게 남는 부담의 성격도 달라진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는지는 형량 판단과 별개로 기록에 남는다. 1심 판결은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책임을 중대하게 판단했다. 항소심에서는 공모관계와 실행 지시 여부, 각 피고인의 관여 정도, 헌정질서 침해 범위가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형량 판단에서도 같은 요소들이 주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 계엄 논의가 언제 시작됐는지, 군 지휘 계통에 어떤 지시가 전달됐는지, 정치적 판단이 군사적 실행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명령을 받은 군인들과 계엄을 기획·지휘한 인물들의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지도 남은 재판의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계엄 재판의 중간 결산은 군 전체를 향한 비난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면 군 조직만 논란의 전면에 남고 정작 권한을 행사한 이들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우선 따져야 할 대상은 군복을 입은 다수 장병이 아니라 군을 움직이게 한 의사결정 과정이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그 판단이 헌법과 법률의 한계 안에 있었는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심리하는 자리다. 남은 재판은 그 책임의 출발점과 범위를 가려내는 절차가 될 전망이다.
2026-05-29 09: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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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포럼 2026, 손윤 세무법인오늘 대표 "반도체 초과이익, 성과급 갈등 넘어 국민환류 체계 고민해야"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을 단순 임금과 성과급 문제를 넘어 초과 이익 배분 구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 지원과 사회적 기반 위에서 성장한 만큼 기업이 창출한 막대한 초과 이익 역시 노사 간 배분 문제를 넘어 사회적 환류 관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윤 세무법인오늘 대표이사는 27일 국회의사당 본관 2식당에서 열린 ‘경제일보 정책 간담회’에서 ‘삼성전자의 초과 이익과 사회적 환류’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손 대표는 삼성전자 노사 문제를 단순한 임금 협상 차원보다 한국 경제 성장 구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로 봤다. 반도체 산업이 개별 기업 경쟁력만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세제와 금융, 연구개발, 산업 인프라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함께 작동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했다. 손윤 대표는 “삼성전자의 초과 세수와 초과 이익은 우선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삼성전자는 국민의 세금을 바탕으로 성장한 국민 기업이라는 측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발표에서는 대한민국 헌법 가치와 국민주권 개념도 함께 언급됐다. 손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라며 산업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성과 역시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 속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논의가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도 제시됐다. 반도체 산업은 개별 기업 투자와 기술력만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대규모 전력과 용수 공급, 연구개발 지원, 산업단지 조성, 인재 양성 체계 등 사회 전반의 기반이 함께 작동해야 산업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발표에서는 삼성전자 성장 과정도 함께 다뤄졌다.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시장 세계 1위에 오른 뒤 메모리 분야 선두 자리를 유지했고 이후 플래시메모리와 비메모리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왔다. 메모리 중심 구조에서 시스템반도체까지 영역을 넓히며 세계 시장 영향력을 키워왔다는 내용이다. 손 대표는 당시 투자세액공제와 연구개발 지원 정책 등이 산업 성장 기반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기업 자체 경쟁력뿐 아니라 정책 지원과 사회적 기반도 성장 과정에 함께 작용했다는 의미다. 노동의 범위를 기존 인식보다 넓게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정규직 노동자뿐 아니라 협력업체 종사자와 지역사회 기반시설, 교육 체계 등 사회 전체의 지원이 현재 성과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손 대표는 “삼성전자의 성공 신화에는 노동자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며 “노동의 범위 역시 더 넓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과 이익 환류 방식으로는 이른바 ‘1대1대1 구조’를 제안했다. 초과 이익의 3분의 1은 국가 자산 확대를 위한 사회적 환류에 활용하고 3분의 1은 노동자 성과 보상, 나머지 3분의 1은 주주 배당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국가와 노동, 주주 간 균형 있는 배분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다. 한국형 국부펀드 조성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발생하는 초과 세수를 단기 지원금이나 일회성 재정 지출보다 AI 인프라와 첨단 반도체 생태계, 에너지 전환 기술, 전략 광물, 미래 제조 기반 등에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초과 세수를 우선 국채 상환에 활용해야 한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손 대표는 2026년도 예산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51.6% 수준으로 전망되는 만큼 예상 밖 세입이 발생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국가채무 축소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10조원을 갚는 것은 쉬울 수 있어도 향후 AI 인프라나 에너지 전환, 지역 산업 재편 등에 필요한 자금을 다시 마련하는 일은 더 큰 비용이 들 수 있다”며 “초과 세수는 구조적 적자를 메우는 상시 재원이 아니라 특정 산업 호황에서 비롯된 변동성이 큰 수입”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정건전성은 단순히 부채비율 숫자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지속 가능한 역량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며 “미래 수익을 만들어내는 자산을 축적하는 것 역시 재정건전성의 중요한 축”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5월 28일자 14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5-28 07: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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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권 위에 선 국가경제…반도체가 멈추면 정부가 움직인다
[경제일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이 총파업 직전까지 치닫자 정부는 긴급조정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파업은 잠정합의로 유보됐지만, 이번 사태는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갈등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남겼다. 긴급조정은 가벼운 제도가 아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규모와 성질이 특별해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을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긴급조정 결정이 공표되면 관계 당사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해야 하며, 공표일부터 30일이 지나지 않으면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없다.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 위기에서 긴급조정 카드를 거론한 배경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대기업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이다. 메모리, HBM, 파운드리, 모바일, 디스플레이 생태계와 맞물려 있고, 협력업체와 수출, 금융시장, 세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앞서 정부는 지난 17일 삼성전자 파업 위기와 관련해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처음 시사했다. 정부는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과 노사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면서도,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했다. 이는 삼성전자 파업이 개별 사업장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과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긴급조정은 노동권 제한이라는 반대편의 문제를 동반한다.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행정권이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 노사 자율 원칙과 노동3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만큼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전문가는 “정부가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권 제한을 쉽게 정당화돼서는 안되지만, 국가 기간산업의 파업이 공급망과 국민경제에 미칠 충격도 외면할 수 없다”며 “정부는 압박자가 아니라 중재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잠정합의는 결과적으로 긴급조정 발동 없이 이뤄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주재의 막판 교섭에서 노사가 합의점을 찾았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법적 강제보다 자율교섭이 우선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 셈이다. 하지만 ‘막판 타결’이 반복되는 구조는 위험하다. 파업 직전까지 가야 정부가 움직이고, 정부가 움직여야 노사가 접점을 찾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국가 기간산업의 노사갈등은 사전에 위험을 감지하고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삼성전자 사태가 보여준 것은 한국 경제의 이중 현실이다. 한편으로는 반도체 호황이 기업 실적과 국가 세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초과이익을 둘러싼 배분 갈등이 산업 현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추경 과정에서 초과세수 25조2000억원, 법인세 증가분 14조8000억원을 전망한 것도 반도체 경기 개선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긴급조정 논란의 본질은 ‘파업을 막을 것인가’에만 있지 않다. 반도체 호황이 만든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나누고, 어떤 원칙으로 노사갈등을 관리할 것인가에 있다. 제도가 늦으면 갈등은 거리로 나오고, 정치가 늦으면 행정권의 강제 카드가 먼저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긴급조정 카드는 꺼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노사 모두가 예측 가능한 교섭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사후 압박이 아니라 사전 조정의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본지는 오는 27일 오후 3시 국회의사당 본관 2식당(귀빈식당)에서 ‘삼성전자 노사 사태, 지금부터 시작이다’를 주제로 ‘경제일보 정책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번 간담회는 삼성전자 노사갈등을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닌 한국 경제의 구조적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또한 반도체 초과이익 배분, 성과급 제도, 주주환원, 미래 투자 문제를 포함해 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 세수를 재정준칙 복원과 국가채무 관리, 미래 성장 투자에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한다.
2026-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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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일베 폐쇄·징벌배상 검토 필요"…혐오표현 규제 공론화 예고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조롱·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일간베스트저장소와 같은 사이트의 폐쇄·과징금 부과까지 포함한 제도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이 열린 봉하마을에서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방문객들이 조롱성 행동을 했다는 주장이 나온 직후다. 이 대통령은 24일 소셜미디어에 “‘봉하마을서 일베 손가락질 사진 찍어’…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엄격한 조건 하에 조롱·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징벌배상 및 일베처럼 조롱·혐오를 방치·조장하는 사이트 폐쇄, 징벌배상, 과징금 등 필요 조치를 허용하는 것에 대한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일베처럼 조롱·모욕으로 사회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을 포함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병존한다”며 “국무회의에도 지시하겠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라고 적었다. 논란은 전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에서 불거졌다. 노무현재단 이사인 조수진 변호사는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방문객들이 현장에서 조롱성 행동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조 변호사가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며 혐오표현 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현장에는 일베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특정 손가락 모양으로 인증 사진을 찍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이들의 실제 소속이나 조직적 동원 여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된 단계는 아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민주화운동과 사회적 참사, 정치적 추모 공간을 겨냥한 조롱성 표현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앞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 당시에도 이 대통령은 역사적 아픔을 상업적 이벤트 소재로 삼은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에는 특정 기업 마케팅을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 운영자의 책임 문제로 논의가 확장됐다. 단순 게시물 작성자 처벌을 넘어, 조롱·혐오 표현을 반복적으로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사이트 자체에 과징금, 징벌배상, 폐쇄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검토하자는 취지다. 쟁점은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의 경계다. 현행법은 명예훼손, 모욕, 불법정보 유통 등 개별 조항을 통해 일부 표현을 규제하지만 혐오표현 전반을 직접 포괄하는 일반법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내 법학계에서도 혐오표현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견해가 오랫동안 맞서왔다. 일베 폐쇄 논란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201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노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게시물이 확산되며 사이트 폐쇄론이 제기됐고, 당시에도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를 놓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충돌했다. 2018년에도 일베 폐쇄 국민청원에 23만명 이상이 동의하면서 청와대가 폐쇄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사이트 폐쇄나 접속 차단은 특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불법정보에 대한 차단은 현행 제도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지만, 특정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과잉금지 원칙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도화가 추진된다면 반복성, 고의성, 피해의 중대성, 운영자의 방치·조장 여부, 사법적 통제 절차가 명확해야 한다. 그럼에도 추모 공간을 찾아가 고인을 조롱하고 이를 온라인 인증 문화로 소비하는 행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정치적 풍자와 비판은 보호돼야 하지만, 특정 개인의 죽음이나 민주화운동 희생자, 사회적 참사를 조롱하는 행위가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발언은 혐오표현 규제 논의를 다시 정치권의 전면 의제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국무회의 차원의 검토를 시작하면 법무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심위,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관련 제도와 해외 사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혐오표현과 사회적 갈등 조장에 대한 책임 강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고, 야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정부의 표현 규제 권한 확대를 우려할 수 있다. 핵심은 ‘무엇을 막을 것인가’보다 ‘어떤 기준과 절차로 제한할 것인가’다. 혐오와 조롱을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정당하더라도, 규제 기준이 모호하면 정치적 비판이나 풍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엄격한 조건”이 실제 제도 설계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가 향후 논의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2026-05-24 09: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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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 권리만큼 책임도 돌아봐야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초유의 산업전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AI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엔비디아와 TSMC,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순한 민간기업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는 과거 제조업과 전혀 다른 차원의 초자본집약 산업이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어가고 AI용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차세대 파운드리 공정, 첨단 패키징 기술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 투자가 반복적으로 요구된다. 오늘의 이익을 내일의 공장과 기술에 다시 투자하지 못하면 단숨에 도태되는 산업이 바로 반도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 논쟁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돼야 하는가. 또 국가 핵심 산업을 책임지는 노조는 어떤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번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노동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언급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통령은 노동3권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임을 인정하면서도 권리 행사에는 연대와 책임이 따라야 하며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직접 배분하라는 요구에 대해 “투자자도 하기 어려운 요구”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은 현실적인 지적이다. 기업은 단순히 올해 이익이 많이 났다고 해서 그 돈을 곧바로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특히 삼성전자 같은 AI·반도체 기업은 오늘 벌어들인 이익 대부분을 미래 투자에 다시 투입해야 생존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캐피털 익스펜디처(Capital Expenditure·설비투자)다. AI 시대에는 설비투자 경쟁 자체가 생존 경쟁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대만은 국가 차원에서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막대한 영업이익을 낸다 해도 그것은 곧바로 ‘남는 돈’이 아니다. 차세대 메모리와 AI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과 연구개발(R&D),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해 다시 투입돼야 할 미래 자금이다. 그런데 세금도 떼기 전 영업이익 자체를 일정 비율로 나누라고 요구하는 것은 산업 구조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접근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물론 노동자의 기여를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동의 가치와 정당한 보상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 역시 산업과 국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채권자는 이자를 받으며 국가는 세금을 거둔다. 그리고 모든 비용과 투자 이후 마지막 불확실한 몫을 책임지는 존재가 주주다. 주주는 이익이 날 때 잔여 이익을 가져가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그 부담을 떠안는다. 2023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주가가 폭락했을 때 가장 큰 손실을 본 것도 결국 주주와 투자자들이었다. 국민연금과 노후자금 상당 부분 역시 삼성전자 주식과 연결돼 있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 전체를 삼성전자를 통해 바라본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제 노동만이 아니라 주주와 투자자, 국민 전체의 시선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저성장과 저출산, 중국의 기술 추격, 미국의 관세 압박, 중동 에너지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겹치며 경제 전반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런 시기에 대표 기업 노조가 과도한 요구와 극단적 대립으로 산업 생태계를 흔드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 노조도 이제 변해야 한다. 과거의 투쟁 중심 노조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과 국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선진 노조로 나아가야 한다. 임금과 복지 요구를 넘어 생산성과 기술 혁신, 장기 투자 안정성까지 함께 고민하는 성숙한 노조 문화가 필요하다. 노조가 기업의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 역시 노동자를 단순 비용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서로가 산업 생태계를 함께 떠받치는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AI와 반도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삼성전자 노조 역시 과거의 투쟁 논리를 넘어 한국 경제 재도약과 미래 산업 경쟁력을 함께 책임지는 선진 노조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노동도 살고 기업도 살며 결국 한국 경제 전체가 다시 도약하는 길이다.
2026-05-20 21: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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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산 사람과 배운 세대가 같은 광장에 섰다"
[경제일보] 46년 전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금남로에 올해는 오월을 직접 겪은 세대와 2000년대생 청년들이 함께 섰다. 한쪽은 “잊히지 않는 기억”을 말했고 다른 한쪽은 ‘배워야 할 역사’를 넘어 ‘지켜야 할 현재’를 이야기했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행사는 ‘오월, 다시 광장을 품다’를 주제로 18일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과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렸다. 국가보훈부가 주관한 정부 기념식에는 5·18민주유공자와 유족, 정부 인사, 각계 대표, 학생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올해 기념식은 초청장 없이도 금남로 방면 대형 전광판을 통해 시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열린 형식으로 진행됐다. 오월의 현장은 하루 전부터 달라진 분위기를 보였다. 지난 16일 금남로에서는 5·18 46주년 민주평화대행진이 열렸다. 1980년 5월 광주역과 전남대 등지에서 시민들이 도청으로 향했던 행진을 재현한 행사에는 학생과 시민 등 약 2000명이 참여했다. 행렬이 금남로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박수로 맞았고 학생들은 손수 만든 주먹밥을 참가자들에게 건넸다. 주먹밥은 오월을 설명하는 가장 짧은 언어였다. 1980년 광주 시민들이 서로에게 나눴던 밥은 올해 청년들의 손에서 다시 건네졌다. 총성과 공포의 기억은 더 이상 교과서 속 문장으로만 남지 않았다. “가자, 도청으로”라는 구호와 “오월 정신 헌법에”라는 외침이 금남로를 메웠고 광장은 추모를 넘어 민주주의를 배우는 공간이 됐다. 오월을 겪은 세대에게 광장은 여전히 상처의 장소다.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지난 17일 46주년 추모제가 엄수됐다. 유족과 오월어머니, 5·18단체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고 참석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유족들은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이 무산된 데 깊은 유감을 표하며 오월 정신을 민주주의와 공동체 가치로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 세대에게 광장은 새롭게 해석되는 공간이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올해 슬로건 ‘오월의 꽃, 오늘의 빛’에 대해 “1980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스러져 간 영령들을 기리고 그날의 용기가 오늘의 광장 기억으로 다시 소환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위경종 상임행사위원장은 “어느새 50주년이 가까워지는 5·18이 미래 세대에게 이관되기 위한 중요한 전초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올해 행사는 청년과 청소년 참여에 무게를 실었다. 전남 지역 기념행사에서는 청춘 서포터즈를 중심으로 5·18 사적지 답사와 민주역사 교육이 추진됐고 K팝 댄스와 학교밴드 공연 등 청소년 참여 무대도 마련됐다. 원주 등 광주 밖 지역에서도 오월사진전과 주먹밥 나눔, 헌법 전문 수록 시민서명 캠페인이 열렸다. 오월은 광주 안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전국의 시민교육과 문화행사로 확장됐다. 세대 간 대화의 핵심은 “기억을 어떻게 넘길 것인가”에 있었다. 오월세대는 당시의 공포와 연대,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간을 증언한다. MZ세대는 그 증언을 듣고 묻는다. 왜 아직 발포 명령자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는지 왜 헌법 전문 수록은 매번 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지, 왜 왜곡과 폄훼는 반복되는지다. 올해 기념식이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 일원에서 열린 것도 상징적이다. 옛 전남도청은 1980년 5월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최후 항쟁지다. 기념식에서는 복원된 도청을 배경으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됐고 기념 공연과 특별공연을 통해 오월의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다시 불러냈다. 청년 세대에게 5·18은 더 이상 ‘먼 과거’만은 아니다. 지난 비상계엄 정국 이후 광장의 민주주의가 다시 호출되면서 오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형 언어로 돌아왔다. 행사위원회가 올해 슬로건에 ‘오늘의 빛’이라는 표현을 담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80년 광주의 용기가 오늘의 시민들에게 다시 확인됐다는 의미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그러나 증언은 들을 사람이 있을 때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올해 광장에 선 오월세대와 MZ세대의 만남은 그 계승의 장면이었다. 한 세대는 “잊지 말라”고 말했고 다른 세대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었다. 46년의 시간은 두 세대를 갈라놓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광장에 세웠다. 5·18은 이제 추모의 날을 넘어 시민의 질문이 됐다. 오월을 겪은 세대의 기억이 청년 세대의 언어로 바뀌고 광장의 함성이 학교와 지역, 온라인과 문화행사로 옮겨갈 때 오월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된다. 올해 광주가 보여준 달라진 추모 분위기는 그래서 더 조용하지만 선명했다. 오월은 기억의 역사를 넘어 다시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이어지고 있었다.
2026-05-18 1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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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기념이 됐지만, 진실과 배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제일보] 5·18민주화운동이 46주년을 맞았지만 오월의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가기념일로 자리 잡고 기념식은 매년 열리고 있지만 발포명령자 규명, 행방불명자 확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온전한 배상, 왜곡·폄훼 대응,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가장 큰 미완의 과제는 진상규명이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2024년 종합보고서를 내고 4년여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민간인 학살과 희생자 사망 경위, 일부 왜곡 주장의 허구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냈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문제는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활동 종료로 추가 조사는 중단됐고, 조사위는 국가 차원의 후속 조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발포명령자 규명은 5·18 진실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여러 조사와 판결을 통해 확인됐지만, 누가 최종적으로 발포를 명령했는지에 대한 법적·역사적 결론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역시 유족들에게는 ‘끝나지 않은 5월’로 남아 있다. 배상 문제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올해 1월 5·18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1990년대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국가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별도 위자료 청구 길을 연 판단이다. 이번 판결은 기존 보상 체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동안 5·18 피해 보상은 사망·부상·구금 등 물리적 피해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계엄군 폭력과 고문, 가족의 사망과 실종, 오랜 낙인과 침묵이 남긴 정신적 피해는 충분히 평가되지 못했다. 유족과 생존자들은 단순 보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의 성격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왜곡과 폄훼 대응도 여전히 난제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으로 허위사실에 근거해 5·18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도입됐지만, 실제 적용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하지만, 예술·학문·연구·보도 목적 등에 대한 면책 조항이 넓어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북한군 개입설과 희생자 모욕, 유공자 특혜 주장 같은 허위 정보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5·18기념재단 등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모니터링을 확대하고 삭제 요청에 나서고 있지만, 플랫폼 확산 속도와 익명성을 따라잡기 어렵다. 왜곡은 단순한 표현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이자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요구가 커지고 있다. 헌법 전문 수록 문제도 올해 다시 쟁점이 됐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추진해 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최근 개헌안 국회 의결이 무산된 데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5·18 46주년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 앞에서는 헌법 전문 수록 표결 불참과 무산 책임을 묻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시민사회는 5·18정신의 헌법 수록이 특정 지역의 요구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헌정사적 정당성을 확인하는 절차라고 주장했다.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단순한 상징 논쟁이 아니다. 1980년 광주의 저항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의 핵심 가치로 명문화하느냐의 문제다.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 6월항쟁과 함께 5·18을 헌법 질서 안에 분명히 새겨야 한다는 요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러나 정치권의 합의 부족과 개헌 절차의 난맥 속에 매번 문턱을 넘지 못했다. 46주년을 맞은 광주의 과제는 세 갈래로 압축된다. 첫째, 진상규명은 조사위 보고서로 끝낼 수 없다. 발포명령자와 행방불명자, 암매장 의혹 등 남은 쟁점에 대한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와 자료 공개가 필요하다. 둘째, 배상은 금전 지급을 넘어 국가폭력 피해의 실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한다. 셋째, 왜곡·폄훼 대응과 헌법 전문 수록은 5·18을 현재의 민주주의 가치로 지켜내는 제도적 장치가 돼야 한다. 5·18은 이미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는 매년 추모의 광장이 된다. 그러나 기념이 제도화됐다고 해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누가 명령했고, 누가 사라졌으며, 누가 아직도 고통 속에 있는지에 대한 답은 충분하지 않다. 오월이 광장으로 돌아왔다면 이제 국가는 그 광장 앞에서 남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2026-05-18 12: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