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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최대 120개, 이제 비핵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일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이 최대 120개에 이를 수 있다는 우리 국방당국의 추정이 나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상황에 대해 “보통 80~120개 정도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수치를 특정하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차이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핵능력이 더 이상 잠재적 위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물질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해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스스로 핵보유국 지위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근 북한을 사실상 핵을 가진 국가로 전제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올해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와 국제사회의 비핵화 원칙을 생각하면 북한의 핵보유를 법적·정치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안 장관 역시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할 수 없으며 미국의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제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식적인 인정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실제 핵무기가 사라지진 않는다. 북한이 수십 기를 넘어 최대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과 국방전략 역시 그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은 큰 틀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관계 개선 등 상응 조치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2018년과 2019년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결국 북한의 비핵화 범위와 제재 완화 수준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후 협상은 장기간 교착됐고 그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오히려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방식만 반복해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비핵화 목표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만 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선회하면 북한의 핵개발을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의 핵무장론을 자극하고 동북아 전체의 핵확산 위험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필요한 것은 목표와 현실을 구분하는 전략이다. 최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로 유지하되 그 과정은 보다 현실적인 단계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첫 단계는 북한의 핵능력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핵물질 생산과 추가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방안을 협상의 출발점으로 검토할 수 있다. 이미 상당한 핵능력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로 모든 핵무기를 한꺼번에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협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 두 번째는 핵탄두와 핵물질의 실질적인 감축이다. 국제사회의 검증 아래 일부 핵시설과 핵물질을 폐기하고 그에 상응해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신고만 믿어선 안 된다. 국제사회의 접근과 사찰이 보장돼야 한다. 최종 단계는 완전한 비핵화다. 핵동결이나 감축은 비핵화를 대신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중간 단계의 합의가 북한의 핵보유 지위를 법적·정치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중간 단계를 인정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보유를 영구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외교와 동시에 강력한 억지력도 유지해야 한다. 협상의 성공 가능성은 상대가 도발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용이 분명할수록 높아진다. 한미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고 한국형 3축체계와 미사일방어, 정보·감시·정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핵전력을 확보했다면 개별 미사일 요격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사 징후를 조기에 탐지하고 지휘부와 이동식 발사대, 핵시설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정보·감시·정찰 능력과 지휘통제체계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과 정찰위성, 무인체계 등 정부가 추진하는 첨단전력도 이런 큰 전략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한미가 어떤 절차를 통해 핵 대응을 협의할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억지력은 정권 변화 때마다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하고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주목해야 한다. 북미 대화의 문이 다시 열린다면 한국은 협상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 북핵은 미국 본토의 문제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사전에 협상 목표와 단계별 조건을 조율해야 한다. 핵동결 단계에서 무엇을 요구할지, 어떤 경우 제재 완화를 허용할지, 최종 비핵화까지 어떤 검증 장치를 둘지 우리의 안을 먼저 갖고 있어야 한다. 북미 정상 간 정치적 합의가 한국의 안보 이해와 충돌하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가장 위험한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의 핵능력을 과장해 공포를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핵화라는 원칙만 반복하며 현실의 변화를 외면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과 흔들리지 않는 원칙의 결합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57개인지, 80개인지, 120개인지 정확한 숫자는 공개 정보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안 장관도 이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적어도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핵전력을 확보했다는 현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비핵화는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더 만들지 못하게 묶어야 한다. 또 이미 가진 핵은 단계적으로 줄이고 최종적으로 폐기하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경로가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미의 강력한 억지력과 검증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북핵 최대 120개 추정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존 대북전략을 다시 점검하라는 경고다. 비핵화라는 목표는 유지하면서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 억지력은 더 강하게, 외교는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필요한 북핵 전략이다.
2026-08-21 13: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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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 사이, 한국 외교의 좌표는 국익이다
[경제일보]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서울에 왔다. 중국 외교 수장의 단독 방한은 약 5년 만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왕 부장은 19일 서울에서 마주 앉아 한중 관계와 한반도 정세, 경제협력을 논의했다. 중국은 오는 11월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 공급망 안정, 인적·문화 교류 확대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양국을 오가는 인적 교류가 올해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얼어붙었던 관계가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것은 반길 일이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옮길 수 없는 이웃이고, 한국 기업의 거대한 시장이며, 반도체·배터리·핵심광물 공급망에서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대다. 북한 문제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조 장관이 북한의 조속한 대화 복귀를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요청했고, 왕 부장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역할을 하겠다고 답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문제는 한중 관계가 움직일 때마다 되살아나는 질문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쪽에 설 것인가.” 질문부터 잘못됐다. 대한민국이 한미동맹을 외교·안보의 근간으로 삼는 것과 중국과 경제·외교 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반드시 양자택일해야 할 일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이 거세질수록 선택을 강요받는 영역이 늘어나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한국 외교가 모든 사안을 ‘친미냐 친중이냐’의 두 칸짜리 표에 넣는 순간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된다. 과거 한중 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쓰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공식도 이제는 충분하지 않다. 안보와 경제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수출상품이면서 안보자산이고, 배터리는 산업이면서 공급망 전략이다.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원자재인 동시에 외교적 지렛대가 됐다.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첨단 장비와 소프트웨어에는 수출통제와 동맹정책이 얽혀 있다. 경제와 안보를 각각 워싱턴과 베이징이라는 두 서랍에 나눠 담을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외교에도 새로운 문법이 필요하다. 우선 안보의 축은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안보의 기초였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크다. 이를 미중 사이의 단기적 거래대상처럼 다루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다고 한미동맹의 신뢰에 의문을 만들 이유도 없다. 다만 동맹이라고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모든 문제에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왕 부장이 서울에 도착한 19일 조 장관은 국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한미연합훈련 규모와 기간이 축소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뿐 아니라 미국 정부 관계자들조차 사전에 이를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은 당초 11일 일정이던 연합훈련을 5일로 줄이고, 일부 야외기동훈련도 축소하기로 했다. 동맹도 각자의 국익을 계산한다는 뜻이다.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중동 문제, 한국의 대미 투자 등 여러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한다. 한국 역시 미국의 정책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이 동맹 관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맹은 서로의 국익을 솔직하게 조정할 수 있을 때 오래간다. 중국에는 또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중국과 경제협력은 확대하되 상호주의와 공급망 안전이라는 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번 외교장관회담에서 양국이 FTA 서비스·투자 협상과 공급망 안정에 협력하기로 한 것은 실용적인 접근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덜 받고 서비스와 투자 분야의 문턱을 낮출 수 있다면 협상을 적극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다만 공급망 안정이라는 말이 중국 의존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해서는 곤란하다. 반도체 소재 하나, 배터리 원료 하나가 특정 국가의 정책 변화로 막혀 공장이 흔들리는 일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중국과 안정적인 공급선을 유지하는 것과 공급원을 중국 하나에 맡기는 것은 정반대의 전략이다. 필요한 것은 탈중국도, 재중국화도 아니다. 중국과 거래하되 중국이 멈춰도 버틸 수 있는 공급망이다. 반도체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에 중요한 시장이고 한국 기업 역시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반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을 무시한 채 정치적 구호만으로 관계를 끊을 수는 없다. 반면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가 미중 전략경쟁의 최전선에 놓인 상황에서 안보와 기술유출 문제를 무시한 사업 확대 역시 위험하다. 때문에 분야별 기준이 필요하다. 범용 메모리와 소비재에서는 시장 논리를 최대한 존중하고, 첨단 AI 반도체와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에는 보다 엄격한 안보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배터리는 중국과 거래하면서 원료 조달국을 넓히고, 핵심광물은 구매계약과 동시에 비축·재활용·대체소재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 문제에서도 중국에 ‘기대할 것’과 ‘기대하지 말 것’을 구분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중요한 우방이고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국이다. 왕 부장은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북한이 평화와 공존의 기회를 찾아가길 바란다며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대화 복귀에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의 역할을 요청하는 것과 북한 문제를 중국에 맡기는 것은 다르다. 베이징의 대북정책에는 중국 자신의 전략적 이해가 있다.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의 안정과 한국이 원하는 비핵화·평화체제가 모든 지점에서 같을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도움을 요청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왕 부장 역시 이번 방한에서 한국이 ‘근본적 이익’에 따라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키길 희망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공개된 발언이다. 이 말 역시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미국이 한국에 선택을 요구해서는 곤란하듯 중국 역시 한미동맹이나 한국의 대외정책에 사실상의 선택지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독립적인 외교’가 필요하다면 그 독립성은 워싱턴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베이징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국익에 따라 미국에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중국에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자주외교다. ‘논어’ 자로편에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려 하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과 동맹이라고 모든 정책이 같을 필요는 없다. 중국과 협력한다고 중국의 전략을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 다른 이해관계를 인정하면서 합의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것이 외교다. 모든 사안에서 같은 편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동맹에도, 협력관계에도 건강하지 않다. 오는 11월 선전 APEC은 이를 시험할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적극 검토하고 있고, 왕 부장은 조현 장관의 중국 방문도 제안했다. 관계 복원을 정상회담 사진 한 장으로 끝내지 말고 무엇을 주고 무엇을 얻을 것인지 미리 정리해야 한다. 대중 외교의 성적표는 정상회담 횟수가 아니다. 우리 기업의 시장 접근성이 나아졌는가. 핵심광물과 부품 공급이 더 안정됐는가. 중국 내 한국 기업이 부당한 차별을 덜 받게 됐는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를 복원하는 데 중국이 실제로 역할을 했는가. 문화와 관광 분야의 비정상적 장벽이 줄었는가. 이런 구체적인 결과로 평가해야 한다. 한미관계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주한미군과 확장억제는 얼마나 안정적인가. 첨단기술 협력에서 한국 기업이 어떤 몫을 얻는가. 막대한 대미 투자가 국내 산업과 일자리에 어떤 결과를 남기는가. 미국의 정책 변화가 한국 기업에 과도한 비용을 떠넘길 때 정부가 얼마나 당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가를 봐야 한다.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절묘하게 가운데 서는 기술이 아니다. 사안마다 어디에 서야 국익이 커지는지를 판단할 기준이다. 안보에서는 동맹의 신뢰를 지키고, 경제에서는 시장을 넓히며, 공급망에서는 의존을 줄이고, 기술에서는 지킬 것을 지켜야 한다. 북핵 문제에서는 미국과 공조하면서 중국의 역할도 끌어내야 한다. 하나의 문장으로 모든 외교 문제를 설명하려는 순간 현실은 그 문장보다 복잡해진다. 왕 부장의 방한을 친중 외교의 신호로 읽을 필요도, 한미동맹의 균열로 볼 이유도 없다. 중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해야 할 외교이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관리하는 것 역시 해야 할 외교다.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비로소 외교 노선이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편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원칙이 분명하다면 미국에는 동맹으로 당당할 수 있고 중국에는 이웃으로 실용적일 수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라는 오래된 질문을 버리고, ‘이 선택이 대한민국에 무엇을 남기는가’를 묻는 것. 왕 부장의 5년 만의 방한이 한국 외교에 던진 가장 중요한 숙제다.
2026-08-20 09:0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