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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망 투자 다시 불붙인다…정부·통신3사 'AI 고속도로' 차세대망 승부
[경제일보] 인공지능(AI) 확산으로 한동안 줄어들던 통신망 투자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5G 전국망 구축이 마무리되면서 감소세를 이어온 통신 3사의 설비투자(CAPEX)를 AI 시대에 맞는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로 돌리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섰다. 핵심은 AI-RAN과 6G, 5G 단독모드(SA) 등 차세대 기술에 대한 투자 유인을 만드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7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와 ‘AI 시대 통신망 투자 촉진을 위한 민·관 협의체’ 발족 회의를 열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과 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의 후속 조치다. 정부와 통신 3사는 연내 ‘차세대 통신망 투자 및 규제 개선 종합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 5G 끝나자 줄어든 투자…AI가 새로운 명분 통신 3사의 CAPEX는 2019년 9조6000억원에서 2021년 8조2000억원, 2023년 7조6000억원, 2025년 6조200억원까지 감소했다. 5G 초기 투자와 전국망 구축이 상당 부분 마무리된 데다 통신시장이 포화하면서 기존 이동통신망에 대한 투자 유인이 약해진 영향이다. 문제는 AI 시대가 되면서 네트워크의 역할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통신망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서버를 연결하는 역할에 집중했다면 AI 시대에는 데이터센터·AI 단말·로봇·자율주행차 등 수많은 기기와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한다. 정부가 통신사를 단순 통신사업자가 아닌 ‘AI 인프라·플랫폼 기업’으로 규정하고 차세대망 투자를 요구하는 이유다. 특히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데이터센터와 지역 거점, 기업·산업 현장을 연결하는 고속·저지연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커진다. 통신 3사의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이 올해 2분기 모두 두 자릿수 성장한 것도 통신업계가 네트워크 자체보다는 AI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로 투자 중심축을 옮기고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 AI-RAN·6G로 ‘통신망 2.0’ 이번 협의체에서 논의된 AI-RAN은 통신망에 AI 연산과 자동화 기술을 결합하는 차세대 네트워크다. 네트워크 운영을 AI가 최적화하고 트래픽과 자원을 실시간으로 배분해 AI 서비스에 필요한 지연시간과 품질을 맞추는 방향이다. 6G 역시 단순히 5G보다 빠른 통신망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AI와 결합된 네트워크를 국가 AI 인프라의 핵심으로 보고 관련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2026년 신규 사업으로 AI-RAN, 초고속·초저지연 네트워크, AI 데이터센터 간 연결망 등에 예산을 배정했다. 통신사 입장에서도 투자 확대의 실마리가 생겼다. 증권업계는 올해 통신 3사의 CAPEX를 6조6000억원에서 약 8조원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5G SA와 AI 데이터센터 관련 투자가 기존 통신망 투자 감소분을 일부 메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5G SA 전국 서비스는 올해 말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SA는 LTE 코어망을 함께 사용하는 기존 비단독모드(NSA)와 달리 5G 코어망을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SA의 의미는 속도보다 서비스의 다양성에 있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을 이용하면 하나의 물리적 망에서 서비스별로 별도의 네트워크 자원을 배정할 수 있다. 정부와 통신 3사는 긴급구조 통신 우선 전송, 초저지연 현장 생중계, 기업용 특화 서비스 등을 발굴하고 실증할 계획이다. 통신 품질 평가 기준도 바뀐다. 지금까지 다운로드 속도가 핵심 지표였다면 앞으로는 업로드 속도와 전송 지연시간, 네트워크 슬라이싱 품질, 이용자 체감품질(QoE)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네트워크가 ‘얼마나 빠른가’에서 ‘서비스에 얼마나 적합한가’로 평가 기준이 이동하는 셈이다. 정부는 3G 등 레거시망의 단계적 전환과 규제 합리화, 예산·세제 지원도 함께 검토한다. 통신사들이 기존 네트워크를 효율화하면서 확보한 자원을 AI-RAN과 6G 같은 미래망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제도적 불확실성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민·관 협의체의 핵심은 통신 3사에 단순히 투자를 늘리라고 요구하는 데 있지 않다. 통신사가 투자할 만한 새로운 수요와 수익모델을 AI에서 만들어내고, 정부가 규제와 제도를 뒷받침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자율주행, 로봇이 확대될수록 통신망은 단순한 연결 인프라가 아니라 AI를 실제 산업과 일상에 전달하는 기반시설이 된다. 5G 투자 이후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던 통신망 시장이 AI를 계기로 다시 투자 사이클에 들어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또한 연내 발표될 정부의 종합대책이 단순한 규제 완화책에 그치지 않고 통신사의 실제 CAPEX 확대와 차세대 서비스 매출로 연결되는지가 향후 통신산업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2026-08-27 16: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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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AN 선도망 구축 나선 SKT…로봇·자율물류 AI 시대 연다
[경제일보] AI 고속도로 구축이 국가 AI 경쟁력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SK텔레콤이 차세대 네트워크 기술인 'AI-RAN' 실증에 나선다. AI 데이터센터(AI-DC)와 네트워크, 피지컬 AI를 연결하는 인프라를 구축해 로봇과 자율물류 등 산업 현장에서 AI 활용을 본격화한다는 전략이다. 14일 SK텔레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하는 '하이퍼 AI 네트워크 기반조성' 실증사업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이번 사업을 통해 AI-RAN 선도망을 구축하고 피지컬 AI 기반 서비스 개발과 실증을 추진한다. 이번 사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AI고속도로' 구축 정책의 핵심 인프라를 검증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생성형 AI를 넘어 로봇과 자율주행 설비 등 피지컬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대용량 데이터를 초저지연으로 처리하고 AI 연산을 실시간 수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AI-RAN은 기존 이동통신 기지국이 통신 기능뿐 아니라 AI 연산 기능까지 함께 수행하는 차세대 네트워크 구조다. 로봇이나 피지컬 AI 단말이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AI 연산을 기지국이 대신 수행해 단말의 연산 부담과 전력 소모를 줄이고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SK텔레콤은 2개년에 걸쳐 AI-RAN과 5G 단독 모드(SA), 네트워크 슬라이싱, 통합 관리 시스템(SMO), AI 기반 네트워크 자율화 기술 등을 선도망에 적용해 성능을 검증할 계획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HFR, 에릭슨, 노키아 등 4개 제조사의 AI-RAN 장비를 하나의 실증사업에서 동시에 구축·운영하며 다양한 장비 환경에서 성능을 비교 검증한다. AI 연산 인프라 구성 방식도 함께 검증한다. CPU와 GPU 등 서로 다른 연산 자원을 적용하고 AI 서버와 사용자 데이터 처리 장치(UPF)의 배치 구조를 다양하게 구성해 서비스별 최적의 AI-RAN 구축 방식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실증 대상은 피지컬 AI 서비스 3종이다. 사족보행 순찰로봇은 공장 내 위험지역을 순찰하며 촬영한 영상을 AI-RAN을 통해 실시간 분석해 위험 상황을 탐지하고 통합 관제까지 수행한다. 무인 자율이송 서비스는 공장 내 라이다 데이터를 AI-RAN으로 수집해 디지털 트윈 기반 자율주행 물류 서비스를 구현한다. 휴머노이드 저전력 모드는 복잡한 AI 연산을 기지국으로 분산 처리해 로봇의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고 하드웨어 부담을 줄이는 기술이다. 이번 사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된다.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에릭슨코리아와 HFR이 네트워크 장비를 담당하고, 인텔리빅스와 서울로보틱스, 클레비가 피지컬 AI 서비스를 개발한다. 삼성전자와 노키아는 AI-RAN 장비 공급과 기술 협력에 참여하며, SK인천석유화학과 KG모빌리티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증 결과를 검증하는 수요기관 역할을 맡는다. 1차년도에는 인천과 판교에 AI-RAN 선도망을 구축한다. SK인천석유화학에서는 산업안전 관제를 위한 사족보행 순찰로봇과 이동형 CCTV 서비스를 실증하고, 판교에서는 무인 자율이송 서비스를 검증하는 피지컬 AI 리빙랩을 운영한다. 2차년도에는 실증 범위를 실제 산업 현장으로 확대해 KG모빌리티 평택공장 등에 적용하고 휴머노이드 기반 서비스까지 추가 검증할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이번 사업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글로벌 표준화에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회사는 국내 통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AI-RAN 얼라이언스 이사회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으며, O-RAN과 3GPP 등 국제 표준화 기구와 연계해 AI-RAN 기술 표준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다양한 제조사 장비와 서비스 환경에서 확보한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로벌 AI-RAN 생태계 확산에도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은 장기적으로 AI-RAN을 AI 데이터센터(AI-DC)와 연계해 'AI고속도로' 핵심 인프라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AI-DC와 AI-RAN, 피지컬 AI를 초저지연·고신뢰 네트워크로 연결해 제조와 물류, 산업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 서비스 상용화를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류탁기 SK텔레콤 네트워크기술 담당은 "국내 유일 AI-RAN 얼라이언스 이사회 회원사로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다양한 AI-RAN 선도망과 피지컬 AI 서비스를 실증할 것"이라며 "'AI고속도로'의 핵심인 AI-RAN 기술을 고도화하는 한편, 대중소 상생을 통해 국내 생태계의 자립도와 글로벌 경쟁력을 함께 높이겠다"고 말했다.
2026-07-14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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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AI 고속도로' 시동…삼성SDS 컨소시엄, 국가AI센터 구축 착수
[경제일보] 정부와 삼성SDS 컨소시엄이 총 4000억원 규모의 초기 자본을 투입해 국가 인공지능(AI) 핵심 인프라인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에 본격 착수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AI 고속도로' 전략의 핵심 인프라 구축이 본궤도에 오른 것으로 평가된다.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의 민간 참여자로 삼성SDS 컨소시엄을 최종 확정하고 실시협약과 주주간 계약 체결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업은 정부의 마중물 투자와 민간 자본을 결합한 민관 합작 방식으로 추진되며 향후 총 2조5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로 확대될 예정이다. 삼성SDS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에는 네이버클라우드와 KT, 카카오, 삼성전자, 삼성물산, 클러쉬, 전라남도, 서남해안기업도시개발 등 국내 주요 IT·건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한다. 정부와 민간이 공동 출자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이를 중심으로 AI 컴퓨팅센터를 구축·운영하는 구조다. 이번 사업은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국가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정부는 최근 글로벌 AI 경쟁이 대규모 컴퓨팅 자원 확보 경쟁으로 확대되자 기업·대학·연구기관이 공동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AI 연산 인프라 구축 필요성이 커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초거대 AI 모델 개발 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은 수만장 규모 GPU를 확보한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GPU 자원에 의존해 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데이터와 알고리즘뿐 아니라 AI 컴퓨팅 인프라 자체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라고 보고 대규모 공공 투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업은 지난해 9월 공모 시작 당시 삼성SDS 컨소시엄이 단독 입찰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기술·정책 평가와 금융 심사를 거쳐 지난 3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최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에서 SPC 출자가 승인되면서 사업 추진이 최종 확정됐다. 이번 출자를 통해 공공 부문 1160억원과 민간 부문 2840억원 등 총 4000억원 규모 초기 자본금이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S는 1200억원을 출자해 SPC 지분 30%를 확보했으며 정부 등 공공 부문은 29% 지분으로 2대 주주에 올랐다. 과기정통부와 삼성SDS 컨소시엄은 올해 2분기 내 SPC 설립을 완료하고 3분기 중 센터 착공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후 SPC를 중심으로 정책금융과 민간 자금 등을 추가 조달해 총 2조5000억원 규모 투자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전남 해남의 솔라시도 데이터센터 파크에 구축될 예정이며 오는 2028년까지 첨단 AI 반도체 1만5000장 규모의 연산 인프라 확보를 목표로 한다. 완공 이후에는 국내 기업과 스타트업, 대학, 연구기관 등이 세계적 수준의 고성능 AI 컴퓨팅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특히 정부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학계·연구계 등에 AI 연산 자원을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고 기술 컨설팅과 사업화, 글로벌 진출 지원까지 연계한다는 계획이다. AI 인프라 접근성이 낮았던 국내 중소 AI 기업과 연구기관들의 연구개발 환경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 육성도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센터 내에서는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국산 AI 반도체의 설계와 검증, 상용 서비스 적용 등을 지원하는 전주기 테스트 환경도 구축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해외 GPU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국내 AI 반도체 산업 경쟁력도 함께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는 정부가 추진하는 'AI 3대 강국 도약' 전략과 AI 고속도로 구축 정책의 핵심 시설로 평가된다. 대규모 연산 자원을 기반으로 AI 연구개발과 산업 생태계를 지원하고 국내 AI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최동원 과기정통부 인공지능인프라정책관은 "인공지능 고속도로의 핵심 기반 시설(인프라)이자 인공지능 생태계 성장의 이음터(플랫폼)인 국가 인공지능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오는 2028년 이내에 국가 인공지능 컴퓨팅센터를 구축할 수 있도록 삼성SDS, 관계 기관 등과 긴밀히 소통하여 신속한 사업 추진에 만전을 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6-05-11 17: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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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승리 후 협상"과 호르무즈의 침묵
[경제일보] 중동의 사막은 늘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언제나 전쟁만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 사막은 문명의 길이었고, 때로는 세계 경제의 동맥이었다. 오늘날 세계가 다시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주목하는 이유도 단순히 미사일과 핵시설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석유의 길이고, 달러의 길이며, 현대 산업문명의 숨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주일 정도면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외교적 발언 같지만, 국제정치의 문법으로 보면 이는 상당히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 물밑에서 상당한 수준의 조율이 이뤄지고 있으며, 미국과 이란 모두 전면전보다는 관리 가능한 타협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신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번 충돌을 “소규모 충돌(skirmish)”이라고 표현했다. 단어 하나에도 의도가 있다. 그는 이란과의 군사 충돌을 “새로운 중동전쟁”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강하게 때렸고, 상대를 굴복시켰으며, 결국 협상으로 정리했다”는 서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이것은 군사 전략이면서 동시에 미국 국내정치 전략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정치 스타일은 언제나 “힘을 통한 거래”였다. 상대를 극단까지 몰아붙인 뒤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중국과의 관세전쟁도 그랬고, 북한과의 정상회담도 그랬다. 이번 이란 문제 역시 같은 패턴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다르다.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5천 년 문명의 기억을 가진 페르시아의 후예이며, 세계 에너지 길목을 움켜쥔 지정학 국가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한국, 일본, 중국의 에너지 생명선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수천 척의 유조선이 이 좁은 바다를 통과한다. 만약 이곳이 봉쇄되면 국제유가는 단기간에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는 즉시 충격에 빠진다. 인플레이션은 재폭발하고, 금리는 다시 오르며, AI 산업을 포함한 첨단산업의 전력 비용도 급등한다. 결국 호르무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현대 문명의 목줄이다. 미국과 이란이 이번 협상에서 논의하는 핵심 역시 바로 이것이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양측은 △이란 핵농축 중단 △고농축 우라늄 반출 △지하 핵시설 가동 중단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등을 포함한 양해각서(MOU)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핵과 석유의 교환”이다. 미국은 핵위협 제거를 원하고, 이란은 경제 제재 해제를 원한다. 서로 필요한 것을 맞바꾸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전쟁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총성보다 먼저 기대와 공포를 가격에 반영한다. 최근 국제유가가 다소 안정되고 미국 증시와 아시아 증시가 반등한 것도 “호르무즈 봉쇄 가능성이 일단 낮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뉴욕 금융가는 이미 두 개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계산하고 있다. 하나는 ‘휴전과 타협의 시나리오’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부진한 장기 대치 시나리오’다. 만약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일정 수준에서 타결되고 사실상의 휴전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세계 금융시장은 상당 기간 안도 랠리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70~80달러 선에서 안정될 수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그동안 중동 리스크 때문에 움츠렸던 글로벌 투자 자금은 다시 미국 기술주와 아시아 반도체 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경제에는 중요한 숨통이 열린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유가 안정 자체가 곧 물가 안정으로 연결된다. 반도체·배터리·AI 데이터센터 산업 역시 전력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원·달러 환율도 안정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붕괴, 고금리, 에너지 충격이 연쇄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시장은 “최소한 더 큰 악재만은 피하고 싶다”는 심리가 강하다. 따라서 중동 긴장 완화는 단순한 지역 문제가 아니라 세계 위험자산 시장 전체에 긍정적 신호가 된다. 반대로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미국과 이란이 ‘불안한 휴전’ 상태에서 군사적 긴장만 반복할 경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시장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불확실성이다. 전면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이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다시 급등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세계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된다. 물가가 다시 오르면 금리는 내려가지 못하고, 소비와 투자도 위축된다. 특히 유럽은 이미 에너지 비용 부담에 시달리고 있어 경기 침체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 중국 역시 제조업과 수출 회복에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금융시장에서는 달러 강세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금값은 상승하고, 미국 국채로 자금이 몰리며, 신흥국 통화는 약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원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질 수 있으며, 수입 물가 상승으로 서민 경제 부담도 커진다. 무엇보다 AI 시대의 세계 경제는 과거보다 에너지에 훨씬 민감하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결국 유가와 전력 비용은 곧 AI 산업 경쟁력 문제로 이어진다.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가 단순한 국제 뉴스가 아니라 AI 패권 경쟁의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번 협상은 총성과 미사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경제의 심장 박동수를 조절하는 문제에 가깝다. 월가와 런던 금융가, 도쿄와 서울의 딜링룸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미 페르시아만의 파도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가 “우리가 이겼다”고 강조하는 부분이다. 미국 보수층은 대체로 “강한 미국”을 원한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 사회 내부에는 “미국이 약해졌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트럼프는 이를 뒤집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는 이란을 압박한 뒤 협상으로 끌고 들어오는 과정을 “미국의 승리”로 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는 언제나 승자만 있는 게임이 아니다. 이란 역시 내부적으로는 “굴복이 아닌 생존”이라는 논리를 만들고 있다. 혁명수비대(IRGC)와 강경 종교 세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란 정권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협상이 체제 붕괴처럼 보이면 안 된다. 따라서 이란은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평화적 핵 이용을 유지한 채 긴장을 조절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측 모두 자국민을 향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해야 하는 기묘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세계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중국이다.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 하나이며, 이란산 원유의 중요한 구매자다. 동시에 중국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질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중국 역시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받는다. 반대로 중동이 불안정해지면 중국 경제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중동 문제가 핵심 의제로 거론된다. 겉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지만, 에너지 공급망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릴 수 없다. 한국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한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이지만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한다. 특히 반도체와 AI 산업은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AI 고속도로” 전략 역시 안정적 에너지 공급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동발 에너지 충격은 단순한 유가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 전략 전체의 문제다. 고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왕의 길(Royal Road)”을 건설했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이었다. 오늘날 호르무즈 해협은 현대판 왕의 길이다. 석유와 LNG, 달러와 원자재, AI 산업의 전력과 반도체 공급망까지 모두 이 길과 연결돼 있다. 세계는 다시 페르시아를 지나고 있다.
2026-05-07 09: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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