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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90달러 유가…유류세만 만지는 물가 대책으론 부족하다
[경제일보] 국제유가가 다시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이어지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브렌트유는 한때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20일(현지시간) 국제 원유시장에서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88.63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2.61달러에 거래됐다. 이후 브렌트유는 89.22달러, WTI는 83.2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604%까지 올라섰다. 유가 상승이 에너지 가격에 머물지 않고 물가와 시장금리, 달러 가치, 주가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 충격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 금융시장의 반응은 더 예민하다. 이날 금리 파생상품 시장은 현재 연 2.25%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예금금리가 2026년 말 2.66%, 2027년 2월에는 2.73%까지 오를 가능성을 반영했다. 통상적인 0.25%포인트 인상 기준으로 사실상 두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한 셈이다. 에너지 가격이 다시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리면 금리를 낮추기는커녕 추가 인상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정학적 충돌이 유조선의 항로를 막고 오른 기름값이 채권금리를 끌어올리며 높은 금리가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을 늘리는 악순환이 재연될 조짐이다. 한국은 이런 충격에 유난히 취약하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원유를 사실상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산업 부문의 에너지 사용 비중도 주요 선진국 가운데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한국의 에너지 구조가 화석연료와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외부 공급 충격에 취약하다고 진단한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항공과 해운, 자동차, 철강, 농수산물과 택배비까지 비용 압력을 받는다. 기업은 오른 원가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의 장바구니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정부의 고유가 대책은 여전히 유류세 인하와 주유소 가격 점검이라는 익숙한 처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류세를 낮추는 것은 급격한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 데 필요하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국제유가 상승분을 빌미로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는지 점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이미 오른 가격의 일부를 세금으로 보전하고 유통 과정의 부당행위를 막는 사후 대책일 뿐이다. 원유 공급이 실제로 줄거나 해상 운송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에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세금을 얼마나 낮출 것인지보다 공급이 끊겼을 때 어떤 순서로 대응할 것인지부터 국민과 시장에 밝혀야 한다. 전략 비축유 방출의 가격·수급 기준과 규모, 민간 비축분 동원 방식, 정유사별 원유 도입 차질에 대한 대응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비축유는 보유량 자체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꺼내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원유 도입선도 더 넓혀야 한다. 중동산 원유가 가격과 정제 효율 면에서 유리하더라도 특정 지역과 해협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경제 전체를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시킨다.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 등 대체 공급처와 장기 계약을 확대하고 유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유설비의 유연성도 높여야 한다. 평상시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망을 분산하는 것은 보험료와 같다. 위기가 발생한 뒤 비싼 현물 원유를 구하러 다니는 것보다 훨씬 싸다. 해상운송과 보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높아지면 유조선 운임과 전쟁보험료가 급등한다. 원유가 확보돼도 배가 움직이지 못하면 국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정부는 국적선사와 정유사, 무역보험기관이 참여하는 비상 운송체계를 점검하고 전쟁 위험 때문에 민간 보험이 사실상 중단될 경우를 대비한 한시적 보증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유전에서 정유공장까지 이어지는 운송망 전체의 문제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유류세 인하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류세를 일괄적으로 낮추면 차량을 많이 운행하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나 난방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고유가가 장기화한다면 에너지바우처와 대중교통 지원, 영세 자영업자·화물운송 종사자에 대한 선별 지원을 강화하는 편이 재정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맞는다. 무엇보다 재정·통화·에너지 정책의 엇박자를 막아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요가 과열돼 발생한 물가와 다르다. 금리를 올린다고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거나 원유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으로 물가 기대가 확산되고 임금과 서비스 가격까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수요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을 이유로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확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광범위한 현금 지원과 정책대출을 늘린다면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꼴이 된다. 재정 지원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직접 피해를 본 계층과 업종에 집중하고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는 보편적 수요 부양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에만 물가 안정의 부담을 떠넘기지 말고 에너지 정책은 공급 충격을 줄이고 재정정책은 취약 부문을 선별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국제유가가 다시 9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 물리적 공급 부족이 전면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심할 때가 아니다. 최근 유가가 과거의 극단적인 전망보다 안정된 것은 미국의 생산 확대와 전략비축유 방출, 중국의 수요 감소, 일부 해상운송 재개 등이 충격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완충 장치가 언제까지 작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유류세율을 조정하는 임시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유 방출 기준, 비상 운송·보험 지원, 취약계층 보호, 재정·통화정책 간 조율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고유가 대응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주유소 가격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생명선을 지키는 일이다. 다시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나드는 유가는 정부에 묻고 있다. 다음 위기도 세금으로 버틸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에너지 대응의 구조 자체를 바꿀 것인가.
2026-07-21 18: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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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스 쇼크'에 흔들리는 韓 AI 보안… 글래스윙 문턱 넘기 어려워지나
[경제일보] 앤트로픽의 차세대 인공지능(AI) 모델 ‘클로드 미토스 프리뷰’가 글로벌 사이버보안 지형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AI가 대규모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빠르게 찾아내고 공격 가능성까지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각국 정부와 보안업계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한국은 미토스 접근권을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앤트로픽의 보안 협력체 ‘프로젝트 글래스윙’ 참여에서 아직 가시적인 진전을 내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앤트로픽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던 SK텔레콤이 글래스윙 참여를 검토했지만 최근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SK텔레콤은 2023년 앤트로픽에 1억달러를 투자하고 통신 특화 대형언어모델(LLM) 개발 협력을 맺은 전략적 투자자다. 당시 SK텔레콤은 글로벌 텔코 AI 얼라이언스와 연계해 앤트로픽과 AI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지분 관계가 보안 협력체 접근권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SK텔레콤의 앤트로픽 지분은 후속 투자 과정에서 희석돼 약 0.3% 수준으로 추정된다. 외신과 국내 매체들은 SK텔레콤의 앤트로픽 지분 가치가 급등했지만 실제 보유 지분은 0.3% 안팎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글래스윙이 단순 민간 연구 프로젝트를 넘어 사실상 미국 중심의 폐쇄형 사이버보안 동맹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앤트로픽은 지난달 프로젝트 글래스윙을 공개하면서 미토스 프리뷰를 일부 기업과 기관에만 제한적으로 제공한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 프로그램에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애플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미토스는 방어 목적의 사이버보안 작업에 제한적으로 활용된다고 보도했다. 앤트로픽이 공개한 설명 역시 위험성을 뒷받침한다. 회사는 미토스 프리뷰가 공개되지 않은 프론티어 모델이며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찾아내고 악용 가능성을 분석하는 능력에서 극히 숙련된 인간 전문가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파급력도 감지되고 있다. 일부 외신은 미토스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에서 1만건 이상의 고위험 또는 치명적 취약점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테크레이더는 미토스가 장기간 숨어 있던 버그까지 드러내면서 전통적인 ‘패치 윈도’ 개념이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권도 즉각 반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주요 은행들을 소집해 미토스가 드러낸 취약점에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유럽 은행들이 글래스윙 접근권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악의적 행위자가 유사한 AI 역량을 확보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미토스를 둘러싼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있다. 로이터는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 미토스가 취약점 탐색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실제 공격으로 이어지려면 검증과 악용 가능성 판단, 패치 지연 등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미토스가 당장 ‘자동 해커’처럼 모든 방어망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해석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핵심은 미토스 자체보다 취약점 정보와 대응 도구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다. 글래스윙 참여자는 미토스가 찾아낸 취약점을 먼저 검증하고 패치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참여하지 못한 국가는 같은 취약점이 공개되거나 실제 악용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1일 류제명 제2차관 주재로 앤트로픽의 마이클 셀리토 글로벌 정책 총괄 등과 만나 AI·사이버보안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외교부와 국가정보원, 금융위원회, 인공지능안전연구소,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금융보안원 등도 참석했다. 정부는 국내 기업·기관과의 협력 및 취약점 정보 공유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입장에서 더 부담스러운 부분은 미국 정부의 관여 가능성이다. 미토스는 방어와 공격에 모두 활용될 수 있는 이중용도 기술이다. 취약점 탐색 AI가 특정 국가나 기업에 제공될 경우 해당 정보가 방어 목적에만 활용된다는 보장이 필요하다. 앤트로픽이 민간 기업이라 하더라도 미국 정부와의 협의 없이 해외 기관 접근을 쉽게 확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보안업계는 이를 ‘AI 보안 주권’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미토스가 취약점 발견 속도를 바꾼다면 글래스윙은 그 취약점 정보의 접근 순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결국 누가 정보를 먼저 확보하고 선제 대응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대안 논의도 시작됐다. 국내 보안 스타트업 티오리는 미국 중심 글래스윙에 대응하는 한국형·다자형 보안 협력체 ‘프로젝트 캐노피’를 추진하고 있다. 티오리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AI 보안 협력체 출범을 준비 중이며 미국 중심의 미토스 접근 구조에 대한 우려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글래스윙 참여 기업이 없고 앤트로픽과의 협력 역시 정보 공유 요청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 정부가 준비 중인 AI 기반 사이버 위협 대응 체계는 이 같은 복합 위협을 함께 담아야 한다. 단순히 글로벌 협력체 참여를 타진하는 수준만으로는 부족하다. 미토스급 모델 접근권 확보와 국내 취약점 데이터베이스 고도화, 주요 오픈소스 및 국가 핵심 인프라 선제 점검, 금융·통신·의료·에너지 분야별 AI 보안 훈련 체계 구축, 국내 AI 보안 모델 개발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2026-05-26 10:5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