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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방해꾼" 양성자를 에너지원으로…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제일보]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차세대 배터리 후보로 꼽히는 수계 아연이온전지에서 그동안 성능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여겨졌던 양성자를 오히려 에너지 저장에 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아연 이온과 양성자가 전극에 저장되는 순서를 제어해 높은 에너지 저장량과 빠른 충·방전 속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전극 설계법이 제시됐다. KAIST는 박선아 화학과 교수 연구팀이 2차원 전도성 금속-유기 구조체(MOF)를 활용해 아연 이온과 양성자를 차례로 저장하는 새로운 전극 소재를 개발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켐(Chem)’에 지난달 7일 게재됐다. 수계 아연이온전지는 물을 기반으로 한 전해질을 사용하는 충전식 배터리다. 리튬이온전지에 비해 화재 위험이 낮고 원료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대규모 ESS에 적용할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전기를 저장하는 아연 이온은 전하가 커 전극 내부에서 이동하는 속도가 느리다. 저장 용량을 높이면서 동시에 충·방전 속도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반대로 양성자는 크기가 작아 빠르게 움직일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양성자가 너무 일찍 전극과 반응하면 부산물이 만들어지고, 이 부산물이 아연 이온의 이동을 방해해 오히려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양성자의 불필요한 반응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박선아 교수팀은 여기서 발상을 전환했다. 양성자를 없애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저장 순서만 제어하면 추가적인 에너지 저장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금속과 유기 분자를 연결해 미세한 구멍을 만든 2차원 금속-유기 구조체에 양성자를 붙잡을 수 있는 ‘아민 작용기’를 도입했다. 이 작용기가 특정 전압에서 양성자를 저장하도록 설계해 아연 이온과 양성자가 동시에 뒤섞여 반응하는 것을 막았다. 핵심은 ‘순서’다. 높은 전압 구간에서는 아연 이온이 먼저 전극에 저장되고, 전압이 낮아지면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된다. 서로 다른 이온이 서로 다른 전압 영역에서 순차적으로 에너지 저장에 참여하도록 만든 것이다. 실험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충·방전 속도를 기존보다 16배 높인 조건에서도 초기 저장 용량의 46.9%를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배터리는 충·방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양이 크게 감소하지만, 새 전극은 빠른 충·방전 환경에서도 상당한 저장 성능을 유지했다. 500회 이상의 빠른 충·방전을 반복한 뒤에도 안정적인 성능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X선 분석을 통해 아연 이온이 먼저 저장된 뒤 양성자가 추가로 저장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특히 양성자를 저장했다가 다시 내보내는 과정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번 연구의 의미는 단순히 새로운 배터리 소재를 개발했다는 데 있지 않다. 배터리 내부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던 화학 반응을 억제하는 대신, 반응의 발생 시점과 순서를 제어해 에너지 저장 과정으로 전환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다만 상용화까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전극 소재 수준의 가능성을 확인한 단계인 만큼 실제 배터리 셀과 대형 ESS 환경에서도 동일한 성능이 구현되는지, 장기간 반복 충·방전 과정에서 소재의 안정성이 유지되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특히 ESS 시장에서는 단순히 높은 에너지 밀도뿐 아니라 수천~수만 회에 이르는 충·방전 수명, 소재 가격, 제조 공정의 경제성, 대형화 가능성 등이 함께 요구된다. 따라서 이번 연구가 실제 상용 배터리로 이어지려면 소재 성능을 시스템 수준으로 확장하는 후속 연구가 중요할 전망이다. 박선아 교수는 “기존에 배터리 성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해꾼’으로 여겼던 양성자를 오히려 에너지를 더 저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번 원리를 다양한 전극 소재에 적용해 더 많은 에너지를 빠르게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26-08-19 14: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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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를 결정처럼 줄 세웠다…KAIST, AI로 다공성 소재 역설계
[경제일보] KAIST 연구진이 다공성 물질 안에서 기체 분자를 결정처럼 규칙적으로 배열하고, 원하는 배열을 만들어내는 소재를 인공지능(AI)으로 거꾸로 설계하는 기술을 내놨다. 생명화학공학과 김지한 교수 연구팀의 성과로, KAIST는 11일 이같이 밝혔다. 연구에 쓰인 금속-유기 골격체(MOF)는 금속과 유기물이 결합해 만들어진 결정성 물질로, 나노미터 크기의 구멍이 무수히 뚫려 있다.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미세 기공에 기체를 담는다. 그동안 이 분야 연구는 얼마나 많은 기체를 붙잡아 두느냐에 집중돼 있었고, 기공 안에 들어간 기체 분자는 무질서하게 흩어져 붙는다고 여겨졌다. 연구팀은 기공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하면 기체가 자리 잡는 위치까지 조절할 수 있다고 봤다. 단일 원소 기체인 제논(Xe)으로 확인 작업을 했다. 방대한 MOF 구조를 탐색한 끝에 코발트 기반 물질 Co-CAU-36에서 제논이 규칙적인 격자를 이루는 현상을 찾아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GCMC) 결과 제논 원자들은 기공 안에 흩어지는 대신 체심 입방 격자(BCC) 형태로 정렬됐다. 기공이 일종의 틀 역할을 해 원자가 앉을 자리를 유도한 것이다. 기체에 극저온이나 고압 같은 극한 조건을 걸어 결정화하는 방식과는 접근이 다르다. 제논과 크립톤(Kr)을 함께 넣었을 때는 두 기체가 공간적으로 갈라졌다. 제논이 먼저 껍질 형태의 격자를 만들고 크립톤이 그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기존 분리 기술이 소재에 더 잘 달라붙는 기체를 골라내는 방식이었다면, 배열 차이로 기체가 나뉘는 경로를 확인한 셈이다. 제논과 크립톤은 대기 중 함유량이 각각 0.1ppm 안팎에 그쳐 지금은 공기를 극저온에서 증류해 뽑아낸다. 에너지 비용이 크고 공급도 불안정하다. 반도체 식각 공정과 위성 추진, 의료용 마취에 쓰이는 산업 가스여서 분리 방식이 바뀌면 파급이 작지 않다. 연구팀은 여기서 방향을 뒤집었다. 좋은 소재를 먼저 찾고 그 안에서 기체 거동을 확인하는 대신, 원하는 기체 배열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다공성 구조를 찾아가는 역설계를 시도했다. 기계학습과 유전 알고리즘을 결합한 방식으로 체심 입방(BCC)과 면심 입방(FCC) 형태의 배열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구조를 설계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챗GPT 계열 언어모델을 활용해 MOF를 다루는 '챗MOF'와 트랜스포머 기반 다공성 소재 물성 예측 모델을 내놓는 등 AI를 소재 설계에 붙이는 연구를 이어왔다. 이번 성과는 그 흐름 위에서 예측을 넘어 구조 생성으로 넘어간 사례다. 다만 확인은 계산과 시뮬레이션 단계에서 이뤄졌다. 향후 이산화탄소와 수소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탄소 포집·분리와 수소 저장 소재 설계에 쓰일 수 있다. 분자의 위치와 배열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 촉매 분야로도 확장 가능성이 있다. 이번 연구에는 김영훈·김도훈 박사과정이 공동 제1저자로, 김승우 석사과정과 임윤성 박사가 제2저자로 참여했다. 논문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6월 23일 온라인 게재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이종소재지원사업과 탑-티어 연구기관 간 협력 플랫폼 구축·공동연구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김지한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체를 다공성 물질 안에서 결정처럼 줄 세운 첫 사례"라며 "기체를 얼마나 많이 담을지만 고민하던 데서 나아가, 원하는 배열까지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2026-08-11 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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