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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관용'과 '방종' 사이…가짜 뉴스 시대, 국가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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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칼럼] '관용'과 '방종' 사이…가짜 뉴스 시대, 국가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양규현 사장
2026-03-09 21:01:43
양규현 경제일보 사장
양규현 경제일보 사장
국가 운영에서 관용은 미덕이다. 권력을 쥔 사람이 비판을 감내하고 상대의 공격까지 받아들이는 태도는 민주주의 성숙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용이 언제나 덕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방종을 낳고 더 나아가 공적 질서를 허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김민석 국무총리가 자신을 겨냥한 허위 발언 논란과 관련해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관용의 뜻을 밝힌 장면을 보며 복잡한 생각이 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총리의 태도는 넉넉한 정치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사필귀정을 믿는다”는 말도 점잖게 들린다. 그러나 국정 책임자의 말 한마디는 개인의 인격적 선택을 넘어 공적 메시지가 된다. 그 메시지가 “허위 사실 유포에도 굳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관용이 아니라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다. 한 방송인이 유튜브 방송에서 중동 정세와 관련해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무회의나 대책회의도 열리지 않는 것처럼 말하며 국민 불안을 자극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총리실은 관련 회의가 지속적으로 열렸다는 자료를 곧바로 공개했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만 했어도 나오기 어려운 발언이었다.

문제는 이미 퍼져버린 메시지다. 오늘날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정보는 사실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된다. 정정이 뒤따르더라도 처음 던져진 의혹과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확인되지 않은 발언 하나가 정부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고 그 불신은 정치적 갈등을 키우는 연료가 된다.

언론의 기본은 사실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수백 년 동안 언론이 존재해 온 이유다. 사실 확인 없이 던지는 주장, 근거 없이 확대되는 의혹, 그리고 “아니면 말고” 식의 발언은 비판이나 의견이 아니라 선동에 가깝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과 함께 존재할 때에만 의미가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우려되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여론 형성 구조의 변화다. 과거에는 신문과 방송 같은 공적 매체가 최소한의 검증 장치 역할을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확인과 편집이라는 필터가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 방송 하나가 수백만 명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검증되지 않은 주장도 조회수와 알고리즘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된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인플루언서가 단순한 논평가를 넘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이다. 여론조사를 활용해 특정 인물을 정치적 논쟁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통해 정치적 파장을 만들어 내는 행태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는 여론 형성이라기보다 여론 조작에 가까운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취할 태도는 분명해야 한다.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허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허위 사실에 기반한 공격까지 방치하는 것은 법치의 포기가 될 수 있다. 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동시에 타인의 명예와 공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역시 더 이상 단순한 개인 공간이 아니다. 영향력이 커진 만큼 책임도 커져야 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구독자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채널이라면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와 정정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위 정보를 통해 얻는 조회수와 수익 구조 역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기준이다. 거짓과 선동이 반복될 때마다 “그럴 수도 있다”며 넘겨버린다면 결국 피해는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정치적 진영을 떠나 최소한의 사실 기준을 지키는 문화가 자리 잡지 않는다면 공적 토론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김 총리의 관용이 개인적 선택이라면 그것은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시스템은 개인의 미덕에만 의존할 수 없다. 법과 제도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허위 사실 유포가 공적 질서를 해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진실은 민주주의의 토대다. 그 토대가 흔들리면 어떤 정치적 구호도 공허해진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특정 발언 하나가 아니다. 사실보다 선동이 더 빠르게 퍼지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방치하는 무력한 대응이다.

관용은 공동체가 성숙할 때 빛난다. 그러나 거짓이 힘을 얻고 책임이 사라지는 순간 관용은 방종으로 변한다. 국가가 침묵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분명한 원칙이다. 진실이 존중받는 공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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