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공정을 획기적으로 간소화하는 파격적인 규제 혁신안을 내놨다. 그간 신약 수준으로 까다로웠던 복제약 허가 문턱을 대폭 낮춰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미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11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FDA는 지난 9일(현지 시각) 바이오시밀러 및 인터체인저블(교체 처방 가능) 바이오시밀러 개발사를 지원하기 위한 새로운 산업계 지침 초안을 공개했다. 이번 지침은 2021년 발표된 기존 가이드라인을 전면 대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바이오시밀러 개발 및 BPCI법에 대한 신규 및 보완 질의응답 산업계 지침 초안’의 핵심은 바이오시밀러 평가의 필수 관문이었던 임상 약동학(PK) 시험의 간소화다. 약동학 시험이란 약물이 인체에 투여된 후 어떻게 흡수되고 분포되며 대사·배설되는지를 측정하는 과정을 측정하는 절차로 그간 개발사들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복제약이 체내에서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이 시험에 쏟아부어 왔다.
FDA는 이번 지침을 통해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가 제시될 경우 불필요한 시험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간소화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FDA 자체 분석에 따르면 이번 조치로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업의 PK 연구 비용이 최대 50%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제품 1개당 약 2000만 달러(약 260억원)에 달하는 규모로 임상 시험에 통상 수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비용 절감 이상의 시간적 이득도 기대할 수 있다.
규제 완화의 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데이터 활용 범위에서도 두드러진다. 기존에는 미국 시장 승인을 받기 위해 반드시 미국 내에서 승인된 오리지널 제품과 직접 비교한 최소 1건 이상의 PK 연구 결과가 필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특정 조건하에 미국 외 국가에서 승인된 제품과의 유사성 데이터나 해외 임상 자료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바이오시밀러와 미국 기준 제품, 해외 비교 제품을 모두 비교해야 했던 번거로운 ‘3자 PK 시험’ 의무도 과학적 정당성이 확보되면 면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FDA가 이처럼 파격적인 ‘규제 다이어트’에 나선 배경에는 미국 의료 체계의 심각한 재정 불균형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내에서 바이오의약품은 전체 처방전의 5% 수준에 불과하지만 2024년 기준 전체 약제비 지출의 51%를 차지하고 있다. 신약 개발사가 독점권을 갖는 바이오의약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싼 탓이다. 반면 오리지널과 효능이 동일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20%를 밑도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 정부는 바이오시밀러 시장을 강제로라도 키워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제네릭(화학 합성 의약품 복제약)의 경우 미국 내에서 승인된 종류만 3만개가 넘어 오리지널 시장을 압도하고 있지만 바이오시밀러 승인 건수는 82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향후 10년 내 특허가 만료될 예정인 바이오의약품 중 단 10% 정도만이 바이오시밀러로 개발되고 있다.
업계에서 우려하는 이른바 ‘바이오시밀러 공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FDA가 규제 기관의 권위를 내려놓고 시장 친화적인 행보를 택한 셈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FDA는 시대에 뒤떨어진 과거 가이드라인을 과감히 폐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5년 제정된 바이오시밀러 최종 가이드라인은 현재의 규제 방향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철회됐다. 당시에는 FDA가 승인한 바이오시밀러가 단 1개뿐이었으나 지금은 80개가 넘는 제품을 심사하며 축적된 과학적 데이터와 심사 경험이 충분하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여기에 더해 인터체인저블 지위 부여 기준 완화도 검토 중이다. 인터체인저블 지위를 얻으면 약사가 의사의 별도 승인 없이 약국에서 오리지널 대신 바이오시밀러를 대체 조제할 수 있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최후의 보루로 통한다.
이번 규제 완화의 최대 수혜자로 삼성바이오에피스, 셀트리온 등 한국 기업들을 지목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은 이미 전 세계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임상 시험 절차 축소는 곧 개발 비용 하락과 출시 기간 단축을 의미하며 이는 후발 주자들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특히 막대한 자금력이 부족해 미국 진출을 망설였던 국내 중견·중소 바이오텍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릴 전망이다.
다만 시장의 파장이 큰 만큼 주의할 점도 적지 않다. 임상 절차가 간소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 스스로가 입증해야 할 ‘과학적 정당성’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규제 기관을 설득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 필수적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시밀러 개발 문턱이 낮아지면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 및 인도 기업들과의 혈투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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