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한때 국내 도심 번화가에는 비슷한 풍경이 있었다. 대학가와 역세권 거리마다 중저가 캐주얼 매장이 줄지어 들어섰고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이 자연스럽게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국내 패션 시장 흐름을 설명할 때 이랜드를 빼놓기 어려운 이유다. 이랜드는 단순히 옷을 판매한 회사라기보다 한국형 중저가 패션 시장을 본격적으로 키운 기업 가운데 하나에 가까웠다.
출발은 의류 사업이었다. 당시 국내 패션 시장은 고가 브랜드와 재래시장 중심 소비가 함께 존재하던 시기였다. 이랜드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과 빠른 상품 공급을 앞세워 시장 틈새를 파고들었다. 학생층과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영역을 넓혀 갔다.
브랜드 확대 속도도 빨랐다. 캐주얼과 여성복, 아동복까지 분야를 넓혔고 여러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특정 브랜드 하나를 키우기보다 소비층별로 브랜드를 세분화하는 전략이었다.
이랜드 성장 흐름에서 중요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유통 사업 진출이다. 패션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면서 판매 공간까지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NC백화점과 뉴코아아울렛은 이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제조와 유통을 동시에 가져가는 형태였다.
당시만 해도 패션 기업이 유통 공간까지 직접 운영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이랜드는 판매 채널을 확보하면 상품 기획과 운영 속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매장 반응을 빠르게 확인하고 상품 흐름을 조정하는 방식은 이후 SPA 브랜드 확대 흐름과도 맞닿게 된다.
이랜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또 다른 축은 외식 사업이다. 애슐리와 자연별곡, 피자몰 같은 브랜드는 한동안 가족 외식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특히 애슐리는 뷔페 외식 시장 대중화를 이끈 브랜드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패션 기업이 외식 사업까지 확장하는 모습은 당시에도 업계 안팎에서 관심을 모았다.
호텔과 레저 사업 확대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었다. 단순히 의류를 판매하는 데 머물지 않고 소비자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 전반으로 사업 반경을 넓히려는 움직임이었다. 소비자의 생활 동선 안으로 들어가는 방식에 가까웠다.
한동안 이랜드는 ‘빠르게 움직이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브랜드와 사업 분야를 공격적으로 넓혔고 해외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특히 중국 시장 확대는 중요한 성장 축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 주요 도시 곳곳에 이랜드 브랜드 매장이 들어섰고 현지 사업 비중도 빠르게 커졌다.
하지만 확장 속도가 빨랐던 만큼 부담도 함께 커졌다. 사업 영역이 넓어질수록 관리해야 할 부분도 많아졌다. 유통 환경 변화와 소비 흐름 전환, 재무 부담이 동시에 겹치면서 회사는 사업 전반을 다시 정리하는 과정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온라인 소비 확대는 오프라인 중심 유통 사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처럼 매장을 많이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이 유지되지 않았다. 패션 시장은 글로벌 SPA 브랜드와 온라인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소비자 취향 변화 속도도 빨라졌다.
이랜드 역시 이후 선택과 집중 흐름을 강화했다. 브랜드를 정리하고 비효율 사업은 축소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외형 확대보다 수익성과 운영 효율 쪽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스파오가 다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국내 토종 SPA 브랜드 가운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 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캐릭터 협업과 시즌 상품 기획, 실용적인 가격 전략을 앞세워 젊은 소비층을 유지하고 있다.
유통 사업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단순 오프라인 점포 확대보다 핵심 상권 중심 운영과 콘텐츠 강화에 무게가 실린다. 외식 사업도 브랜드 재정비와 수익성 중심 운영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이랜드의 특징은 특정 영역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패션과 유통, 외식, 호텔 운영 경험이 동시에 쌓여 있다. 소비자가 무엇을 사고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회사에 가깝다.
다만 시장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고 브랜드 경쟁은 글로벌 단위로 확대됐다. 소비자는 가격뿐 아니라 경험과 취향까지 함께 비교한다.
이랜드는 한동안 빠르게 사업 반경을 넓혀 온 회사였다. 패션에서 유통으로, 외식과 호텔까지 영역을 키워 갔다. 그 과정에서 시장 흐름을 읽고 먼저 움직였던 장면도 있었고 속도 조절이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최근 흐름은 과거와 조금 다르다. 무조건 외형을 키우기보다 수익성과 운영 효율 쪽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브랜드를 정리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움직임도 이어진다.
한 시대 거리 상권을 채웠던 패션 기업은 지금 다시 사업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변화한 소비 흐름 안에서 어떤 브랜드와 공간이 살아남는지 가장 오래 지켜본 회사 가운데 하나답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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