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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값 뛰자 7월 수출물가 49.1%↑…교역조건도 24.7% 개선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제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물가가 1년 전보다 50% 가까이 뛰었다. 반면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 하락 영향으로 수입물가는 전월보다 떨어졌다. 수출가격 상승폭이 수입가격을 크게 웃돌면서 교역조건도 큰 폭으로 개선됐다.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2026년 7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원화 기준 수출물가는 전월보다 1.0%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49.1% 올랐다. 같은 기간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1.0% 하락했지만 전년 동월보다는 18.7%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원화 가치가 전월보다 강세를 나타냈음에도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수출품 가격 상승세가 환율 하락 영향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7월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1497.43원으로 6월 1527.30원보다 2.0% 하락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8.9% 높은 수준이다. 수출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은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였다. 이 품목의 수출물가는 6월보다 4.8% 상승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122.3% 뛰었다. 세부 품목에서는 D램의 상승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D램 수출가격은 전월 대비 6.6%, 전년 동월 대비 270.3% 급등했다. 컴퓨터기억장치 역시 한 달 전보다 17.6% 올랐고 플래시메모리는 1년 전보다 248.1% 상승했다. 석탄 및 석유제품도 전월 대비 4.8% 올랐다. 나프타가 6.2%, 경유가 11.2% 각각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나프타는 76.2%, 경유는 71.3%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일부 품목은 가격이 내렸다. 농림수산품 수출물가는 전월보다 1.7% 하락했고, 공산품 가운데 화학제품은 3.8%, 1차금속제품은 3.9% 떨어졌다. 운송장비도 1.9%, 전기장비는 1.2% 하락했다. 화학제품 가운데 폴리프로필렌수지는 전월 대비 5.9%, 프로필렌은 13.2% 각각 떨어졌고 1차금속제품에서는 은괴 가격이 14.0% 하락했다. 계약통화 기준으로 보면 7월 수출물가는 전월보다 3.0%, 전년 동월보다 37.8% 상승했다. 수입물가는 국제유가와 환율 하락 영향으로 전월 대비 내림세를 보였다. 7월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은 배럴당 76.75달러로 6월 79.45달러보다 3.4% 하락했다. 다만 지난해 같은 달보다는 8.3% 높은 수준이다. 용도별로는 원재료 수입물가가 전월보다 0.8% 상승했다. 원유 가격은 떨어졌지만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이다. 천연가스 수입가격은 한 달 새 24.8% 올랐고 원유는 4.8% 하락했다. 중간재는 석탄 및 석유제품과 1차금속제품을 중심으로 전월보다 2.2% 하락했다. 석탄 및 석유제품 가운데 프로판가스가 25.2%, 벙커C유가 7.8% 떨어졌다. 1차금속제품에서는 알루미늄정련품이 8.4% 하락했고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가운데 시스템반도체도 9.9% 내렸다. 자본재와 소비재 수입물가는 각각 전월 대비 1.8%, 0.1% 하락했다. 계약통화 기준 수입물가는 전월보다 0.9% 상승했고 전년 동월 대비로는 10.4% 올랐다. 가격뿐 아니라 수출 물량도 증가했다. 7월 수출물량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0% 상승했다.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와 운송장비 등이 증가세를 이끌었다.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의 수출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25.2% 늘었다. 기계 및 장비는 10.5%, 운송장비는 6.9%, 전기장비는 4.9% 증가했다. 반면 석탄 및 석유제품 수출물량은 9.3%, 농림수산품은 5.4% 각각 감소했다. 가격 상승과 물량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수출금액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64.2% 급등했다.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의 수출금액지수는 154.2% 상승해 전체 수출 증가를 주도했다. 수입물량지수도 전년 동월보다 14.7% 상승했다. 광산품 수입물량이 27.8% 늘었고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는 31.4%, 기계 및 장비는 30.7% 증가했다. 전기장비도 15.5% 늘었다. 반면 석탄 및 석유제품 수입물량은 23.3%, 운송장비는 10.4% 감소했다. 수입금액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8% 상승했다. 수출가격이 수입가격보다 더 빠르게 상승하면서 교역조건도 개선됐다. 7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4.7% 상승했다. 수출가격이 36.8% 오른 반면 수입가격은 9.7% 상승한 데 따른 것이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품 한 단위의 가격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이 기준시점과 비교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다만 전월과 비교하면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6.9% 하락했다. 수출물량까지 반영한 소득교역조건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9.7% 상승했다. 순상품교역조건이 24.7% 개선된 데다 수출물량도 20.0% 늘어난 결과다. 소득교역조건지수는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대금으로 수입할 수 있는 상품의 양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2026-08-14 07: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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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민주당 전대, 선명성보다 절제가 필요한 이유
전당대회는 목소리가 커지는 자리다. 후보는 차이를 보여야 하고, 당원은 더 선명한 주장을 원한다. 평소라면 한 걸음 물러설 정치인도 경선장에서는 두 걸음 앞으로 나간다. 문제는 그 두 걸음 앞에 헌법기관이 서 있을 때다.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판으로 가면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과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취소 주장이 정치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민석 당대표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잘못된 기소라면 공소취소가 원칙이라는 취지로 말했고, 전대 과정에서는 조 대법원장 탄핵 주장도 제기됐다. 국민의힘은 12일 이를 두고 “선을 넘지 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의 표현에는 정치적 과장이 섞여 있다. 공소취소 주장을 했다고 곧바로 대통령 탄핵사유가 된다고 단정하거나, 대법원장 탄핵 논의를 곧장 헌정질서 파괴와 동일시하는 것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탄핵은 헌법이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헌법 제65조는 법관이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에도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절차가 있다. 제도 자체를 입에 올리는 것까지 금기시할 이유는 없다. 다만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방식은 다른 문제다. 대법원장도 비판받아야 한다. 사법부 독립이 사법부 무오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판결이 사회적 상식과 동떨어졌다면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비판할 수 있고, 사법제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국회가 법을 고쳐야 한다. 명백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다면 탄핵 절차도 밟을 수 있다. 하지만 탄핵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보다 훨씬 무거운 근거가 필요하다.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할 것을 요구한다. 역으로 정치도 그 독립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판결 결과에 대한 불만이나 당내 정치적 필요가 탄핵의 동력처럼 비쳐지는 순간, 사법개혁은 제도개혁이 아니라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집권당의 말은 야당의 말과 무게가 다르다. 야당 정치인이 집회 연단에서 던진 구호는 대개 정치적 주장으로 끝난다. 국회 다수 의석과 행정부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집권당의 대표 후보가 한 말은 다르다. 당선되는 순간 법안이 되고, 당론이 되고, 정부 정책을 압박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민주당 당대표 후보들이 12일 마지막 TV토론회에서 검찰·사법개혁 성과, 총선 승리, 당정 화합 등을 각각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이번 전대가 단순한 당내 행사가 아니라 향후 국정 운영과 직결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공소취소 문제는 더 조심스럽다. 법에 존재하는 제도라고 해서 특정 사건에 적용하는 것이 자동으로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사건의 당사자가 현직 대통령이라면 기준은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정치권이 먼저 “조작 기소”라고 결론을 내리고 공소취소를 요구하면, 수사와 재판의 옳고 그름을 법정이 아니라 정당이 판정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억울한 기소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정치적 수사나 표적 기소도 민주주의가 경계해야 할 폐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차가 중요하다. 누가 대통령이든, 어느 당이 집권하든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우리 편이어서 취소하고 상대편이면 끝까지 재판한다’는 의심을 받는 순간 법치의 권위는 무너진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말할 자격이 있다. 실제로 12일 마지막 전대 TV토론에서도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법,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등 지난 사법·검찰개혁 조치가 주요 성과로 거론됐다.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도를 고치는 것과 사람을 겨냥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사법제도를 바꾸겠다면 왜 바꿔야 하는지 법과 원칙으로 설명해야 한다. 특정 판결과 특정 재판을 먼저 놓고 제도를 그에 맞춰 움직이면 개혁의 정당성마저 훼손된다. 경선의 속성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원 투표가 중요한 선거일수록 후보들은 핵심 지지층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게 된다. 이번 민주당 전대에서도 후보 간 네거티브와 과거사 공방이 이어지면서 민생과 정책 비전이 뒤로 밀렸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그러나 집권당의 대표를 뽑는 선거라면 당원의 박수 못지않게 그 말을 듣고 있는 국민을 의식해야 한다. 정치는 선명해야 할 때가 있다. 잘못된 권력과 싸울 때 어정쩡한 태도는 비겁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진짜 용기는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내는 데 있지 않다. 자기편이 원하는 것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는 데 있다. ‘서경’ 홍범편에는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이라는 구절이 있다. 치우침도 없고 사사로운 편당도 없어야 바른 정치의 길이 넓어진다는 뜻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법과 제도를 자기편의 필요에 맞춰 다루기 시작하면 정치는 좁아지고 국가는 흔들린다.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사법개혁을 멈추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개혁의 원칙을 더 분명히 세우는 일이다. 법관의 책임을 묻되 판결에 대한 보복처럼 보여서는 안 되고, 잘못된 기소를 바로잡되 대통령 개인을 위한 제도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 사법부 독립을 존중하면서도 민주적 통제와 책임성을 높일 길을 찾아야 한다. 대법원장 탄핵은 당원들의 박수를 받기 위한 구호로 소비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헌법적 수단이다. 대통령 관련 공소취소 역시 경선장에서 충성심을 겨루듯 다룰 사안이 아니다. 집권당의 말은 실제 권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 절제돼야 한다. 전당대회는 17일 끝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던진 말의 파장은 그 뒤에도 남는다. 민주당 후보들이 기억해야 할 것도 그것이다. 경선에서는 표를 얻기 위해 말할 수 있다. 집권당은 그 말이 국가의 제도가 될 때까지 책임져야 한다.
2026-08-13 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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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청사만 옮겨선 '수도권 공화국' 끝낼 수 없다
대통령이 세종으로 간다. 국회도 뒤따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임기 안에 대통령 세종집무실 시대를 열고, 마지막 국무회의도 세종집무실에서 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에도 속도를 내고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법·제도적 뒷받침을 계속하라고 주문했다. 세종을 명실상부한 국정의 중심축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 상당수가 세종에 내려가 있는데 대통령실과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는 지금의 구조는 비효율적이다. 장관과 공무원이 회의 하나 때문에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일이 반복되고, 행정부와 국회의 물리적 거리는 정책 결정의 비용을 높인다. 대통령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이 자리 잡으면 행정수도의 마지막 퍼즐 하나가 맞춰지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권 집중까지 끝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랫동안 ‘서울공화국’을 넘어 ‘수도권공화국’으로 움직여 왔다. 산업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1.8%인 수도권에 전국 인구의 50.8%, 지역내총생산의 52.5%가 집중돼 있다. 사람만 서울로 몰린 것이 아니다. 생산과 소비, 좋은 일자리와 인재, 기업과 자본이 함께 수도권으로 모였다. 행정기관을 옮기는 것만으로 이 흐름을 거꾸로 돌리기 어려운 이유도 이미 확인됐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7일 공개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분석을 보면 공공기관 이전이 집중됐던 2010년대 중반 수도권에서 혁신도시로의 인구 이동은 한동안 늘었지만 2017년 이후 사실상 사라졌다. 2023년부터는 혁신도시 인구가 순유출로 돌아섰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늘어난 고용도 상당 부분 음식·숙박·의료·교육 등 지역 내부 수요에 의존하는 서비스업에 집중됐다. 무엇보다 직업을 이유로 혁신도시를 떠나는 흐름이 이어졌다는 점을 연구진은 주목했다. 사람은 청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따라 움직인다. 공무원 수천 명이 내려가면 아파트가 들어서고 음식점과 학원이 생긴다. 그것만으로 도시 하나의 외형은 갖출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취업을 위해 서울로 떠나고, 배우자가 원하는 직장을 지역에서 구하지 못하며, 기업의 연구소와 본사가 수도권에 남아 있다면 도시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행정기관 이전으로 사람을 옮기는 데는 성공해도 다음 세대까지 붙잡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떄문에 세종 행정수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을 더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스스로 오게 만들 것인가’여야 한다. 먼저 기업이 와야 한다. 세종과 대전·청주·천안·오송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고 AI·반도체·바이오·양자·국방산업 등 충청권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기업 본사와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오고 스타트업이 생기며, 그 기업을 지원하는 금융과 법률·회계 서비스가 따라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도 이 방향을 일부 제시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세종의 자족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AI·바이오 등을 중심으로 산학연 기업혁신허브를 조성하고 기업과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통령 역시 11일 세종 국무회의에서 균형발전과 함께 SMR·재생에너지·양자컴퓨터·우주항공·첨단바이오 등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행정수도와 첨단산업 거점을 연결하겠다는 방향은 맞다. 대학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 대학을 중앙정부가 보조금으로 연명시키는 대상으로만 보는 정책으로는 청년을 붙잡기 어렵다. 기업 연구소와 대학 연구실이 연결되고, 학생이 지역 기업에서 인턴을 거쳐 취업하며, 교수가 창업하고 그 기업이 다시 지역 대학의 인재를 채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 독일 뮌헨 같은 혁신도시는 관공서가 많아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다. 대학과 기업, 연구소와 자본이 서로 사람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졌다. 의료와 문화도 산업정책만큼 중요하다. 좋은 연봉을 주는 기업을 데려와 놓고 아이를 보낼 학교와 가족이 이용할 병원, 공연장과 문화시설이 부족하다면 핵심 인재는 장기간 머물지 않는다. 특히 고급 연구인력과 기업 경영진의 이동은 월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 교육, 의료와 문화까지 가족 전체의 삶을 계산한다. 균형발전이 산업부와 국토부만의 정책일 수 없는 이유다. 기업 이전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수도권 공장을 지방으로 옮기면 세금을 깎아주는 식의 일회성 유인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구개발 인력 확보와 대학 협력, 벤처투자, 공급망까지 묶어 기업이 지방에 있을수록 오히려 사업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수도권 기업에 불이익을 줘 억지로 내려보내기보다 세종·충청에 있을 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에도 맞다. 무엇보다 세종을 또 하나의 서울로 만들겠다는 욕심도 경계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목적은 수도권의 모든 것을 세종으로 옮겨 새로운 집중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세종은 행정과 정책, 대전은 연구개발과 과학기술, 청주는 반도체·바이오, 천안·아산은 첨단 제조업처럼 각 도시의 강점을 광역교통망으로 연결해야 한다. 하나의 거대한 충청 경제권이 서울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맹자’에는 “항산이 있는 자에게 항심이 있다(有恒産者有恒心)”는 말이 나온다. 안정된 삶의 기반이 있어야 마음도 안정된다는 뜻이다. 오늘의 균형발전에 적용한다면 사람에게 지역에 남으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부처를 옮긴다고 청년에게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세종에서 근무한다고 대기업 본사가 따라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국회의사당이 들어선다고 서울의 대학과 병원, 문화와 자본이 저절로 분산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은 필요하다.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 공간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강한 상징이며, 행정 효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효과도 있다. 이 첫걸음을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세종 행정수도의 성공 여부는 몇 개 부처와 기관이 내려왔는지가 아니라 세종과 충청에서 얼마나 많은 민간 일자리가 새로 생겼는지, 지역 대학을 나온 청년이 서울행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지, 기업이 정부 권유가 없어도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판단하는지를 보고 평가해야 한다. 균형발전의 단위를 ‘기관’에서 ‘생태계’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실과 국회를 옮기는 것은 행정수도를 만드는 일이다. 기업과 대학, 연구소와 병원, 문화와 자본이 함께 움직여야 경제수도가 만들어진다. 행정수도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수도권공화국은 끝나지 않는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강한 경제권을 만드는 것. 그것이 세종 행정수도 완성의 진짜 목적이어야 한다.
2026-08-12 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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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행복도 '극과 극'…SK하이닉스 상위 3%·삼성전자 60%
국내 직장인의 전반적인 행복도가 하락한 가운데 같은 산업에 속한 기업 사이에서도 재직자가 느끼는 행복 수준이 크게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전체 기업 가운데 상위 3%에 포함된 반면 삼성전자는 상위 60% 수준에 머물렀다. 12일 직장인 소셜 플랫폼 블라인드가 한국노동연구원과 공동 개발한 지표를 토대로 실시한 ‘블라인드 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복 점수 50점 이상을 기록한 기업의 비중은 전년 47%에서 올해 33%로 14%포인트 감소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국내 직장인 3만437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행복지수가 전년보다 상승한 기업은 100여곳에 그친 반면 하락한 기업은 370곳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인이 체감하는 조직생활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악화됐다는 의미다. 기업별 행복도에서는 산업 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반도체 업계의 SK하이닉스는 조사 대상 기업 가운데 상위 3%에 포함됐다. 반면 삼성전자는 상위 60% 수준으로 집계됐다.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을 중심으로 반도체 업황과 기업별 실적 차이가 확대되는 가운데 구성원이 느끼는 직장생활 만족도에서도 양사의 격차가 두드러진 것이다. 플랫폼 업계의 차이는 더욱 컸다. 네이버는 전체 조사 기업 가운데 상위 2%에 올랐다. 반면 카카오는 지난해 상위 46%에서 올해 상위 93%까지 하락했다. 기업의 사업 실적이나 성장 전망뿐 아니라 보상체계, 조직문화, 경영진에 대한 신뢰, 업무 강도 등이 직장인의 행복도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체 기업 가운데 행복도가 가장 높은 곳은 한국가스공사로 85점을 기록했다. SAP코리아와 한국남동발전이 각각 82점으로 뒤를 이었으며 구글코리아가 80점, 한국주택금융공사가 79점을 기록했다. 상위권에는 공기업과 글로벌 정보기술 기업 등이 고르게 포함됐다. 직군별 행복도에서도 격차가 나타났다. 변호사가 54점으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의료인 51점, 의사 50점 등 전문직이 상위권을 유지했다. 반도체와 회로 설계 등을 담당하는 하드웨어 엔지니어는 49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상위권에 진입했다. AI 산업 확대로 반도체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보상 수준과 전문인력 가치가 상승한 산업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직군은 기획자로 36점에 그쳤다. 직업군인은 37점, 고객서비스 직군은 40점으로 하위권을 기록했다. 업무 특성과 조직 내 역할, 고객 응대에 따른 감정노동, 업무성과 평가 방식 등이 직군별 행복도 격차와 관련된 요인으로 분석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직장인의 행복도가 전반적으로 떨어졌음에도 이직을 시도한 비율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점이다. 통상 현재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면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1년 이내 이직을 시도한 직장인의 비율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와 고용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직장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회사를 떠나기 어려운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실제 최근 제조업과 건설업을 중심으로 고용 부진이 이어지고 청년층 취업자가 감소하는 등 노동시장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보수적으로 운영할 경우 직장인 역시 이직에 따른 위험을 크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조직문화가 직장인의 행복도에 미치는 영향도 확인됐다. 블라인드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행복도 상·하위 기업 재직자들이 작성한 게시물 약 21만800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행복도가 높은 기업의 게시물에서는 조직을 당장 떠나려는 내용보다 조직 내부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의견을 제시하거나 질문하는 대화가 하위 기업보다 1.8배 많이 나타났다. 직장에 문제가 없어서 행복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해도 조직 안에서 해결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뢰가 직장 만족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구성원이 조직 개선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회사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을 경우 급여나 복지 등 개별 근무조건만으로 높은 만족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이번 조사는 직장인의 행복도가 단순히 연봉이나 복지 수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문화와 성장 가능성, 구성원이 느끼는 신뢰와 안정성 등이 함께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동일 산업에서도 기업별 행복도 격차가 크게 나타난 만큼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플랫폼 업계를 중심으로 조직문화와 구성원 만족도가 기업 경쟁력의 또 다른 지표로 부상할 전망이다.
2026-08-12 14:5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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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격전'도 좋다, 대통령이 모든 길을 뚫을 순 없다
대통령이 다시 기업들의 투자 일정표를 펼쳐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제2차 민관합동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비롯한 대형 투자사업의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 지난달 첫 회의를 연 지 한 달여 만이다. 광주 군공항 이전에서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 전력과 용수 공급, 각종 인허가와 규제 개선까지 대통령 앞에 올라왔다. 이 대통령은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세계 산업전쟁의 시계에 한국 행정의 느린 걸음을 맞출 수 없다는 주문일 것이다. 맞는 진단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피지컬AI에서 1~2년은 단순히 달력 몇 장이 넘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기술 세대가 바뀌고 고객사가 공급망을 다시 짜고, 경쟁국이 새로운 공장을 먼저 돌릴 수 있는 시간이다. 기업이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는데 부지와 전력, 용수, 환경영향평가를 놓고 정부 부처를 몇 년씩 오가게 한다면 국가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특별법’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각종 인허가 기간을 줄이고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을 함께 구축하며, 여러 부처에 흩어진 사안을 범정부 차원에서 신속하게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광주 군공항의 기능을 조기에 분산 배치해 반도체 산업단지 조성을 앞당기고, 필요한 전력도 사업 일정에 맞춰 공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청권과 영남권에서도 수백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나서자 오래 얽혀 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업으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런 일이라면 대통령이 몇 번이고 회의를 열어도 좋다는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하지만 박수를 치고 끝내기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일이 움직이는가.’ 군공항 이전 시점부터 산업단지 착공, 송전망과 용수 공급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일정표를 확인해야 비로소 부처가 움직인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우리 행정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처음 길을 뚫는 것은 필요하다. 군과 지방자치단체, 여러 정부 부처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수십 년간 뒤엉킨 사업이라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 없이는 첫 삽을 뜨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누구도 책임지고 먼저 움직이지 못하는 사안에서 대통령이 “이 방향으로 가라”고 정리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대통령이 첫 문을 열었다면 두 번째 문부터는 장관들이 열어야 한다. 산업부 장관은 투자 일정을 책임지고, 국토·환경 행정은 부지와 교통망, 환경과 용수를 맡아야 한다. 전력 당국은 송전망의 완공 시점을 책임져야 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을 설득하고 정주 여건을 갖추는 일을 자신의 이름으로 해내야 한다.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면 왜 늦었는지 설명하고, 필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책임도 져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행정이다. 한국 행정의 고질적인 문제는 책임자가 없어서라기보다 책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다는 데 있다. 대형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산업·국토·환경·전력·지방행정이 모두 관여한다. 하지만 각 기관은 자기 업무만 처리하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산단 지정에는 문제가 없고, 환경 절차에도 문제가 없고, 전력 공급도 규정대로 검토했다고 한다. 모든 기관이 자기 몫을 했다는 데 정작 공장 착공은 늦어진다. 기업 눈에는 정부가 여러 개가 아니다. 하나다. 이 단순한 상식을 행정이 자주 잊는다. 기업인은 어느 부처의 어느 과가 무엇을 맡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공장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한 가지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 답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니 결국 대통령 앞까지 사안이 올라간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열리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그동안 “어렵다”고 하던 사안에 대안이 붙고, “검토 중”이던 사업에 날짜가 생긴다. 법이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다. 책임지고 결정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 직할 행정’의 효용과 위험이 함께 있다. 초기에는 빠르다. 강력한 정치적 권위가 부처의 칸막이와 오래된 이해관계를 단숨에 넘어설 수 있다. 이런 방식이 일상화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사업은 빨리 가고, 대통령의 회의 안건에 올라가지 못한 사업은 다시 평소의 속도로 돌아간다. 기업 입장에서 법과 제도보다 대통령의 관심 여부가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그것은 좋은 투자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에게도 시간은 하루 24시간뿐이다. 반도체 공장의 물길과 송전선까지 대통령이 끝까지 챙기는 동안 외교와 안보, 복지와 교육, 저출생과 재정도 대통령을 기다린다. 메가프로젝트가 늘어날수록 대통령실이 거대한 민원조정실이 되는 구조는 오래갈 수 없다. 이번 ‘전격전’의 진짜 성과는 특정 공장의 착공 시점을 몇 년 앞당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챙기지 않아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정부를 만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먼저 대형 전략투자에는 한 사람이 전체 일정을 책임지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원스톱 창구’를 설치했다고 해놓고 접수만 한 곳에서 받은 뒤 서류가 다시 여러 기관을 순회한다면 간판만 바꾼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국가전략 프로젝트에는 총괄 책임자를 두고 부지·전력·용수·환경·교통 문제를 한꺼번에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행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 환경 검토가 끝난 뒤 전력을 논의하고, 전력 문제가 정리된 뒤 용수를 검토하는 식으로 순서대로 일을 처리해서는 세계 산업경쟁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사업 초기부터 환경·전력·용수·교통 문제를 동시에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환경 기준을 낮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절차를 없애는 것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주민의 권리와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다.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주민 의견을 건너뛰거나 노동·환경 기준을 일괄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빨라 보일지 몰라도 갈등이 쌓이면 소송과 반발로 더 많은 시간을 잃는다. 빠른 정부는 절차를 무시하는 정부가 아니라, 필요한 절차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는 정부다. 공무원이 결정을 피하지 않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성공하면 정치권의 성과가 되고 실패하면 실무자의 책임이 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전례를 찾고 결재를 미룬다. 명백한 특혜나 위법이 아니라면 당시의 자료와 절차에 따라 내린 합리적인 정책 판단은 보호할 필요가 있다. 적극행정은 구호가 아니라 감사와 인사제도에서 시작해야 한다. ‘맹자’에는 “도선부족이위정 도법불능이자행(徒善不足以爲政 徒法不能以自行)”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뜻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고, 법도 스스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제도가 움직인다. 지금 메가프로젝트에 대통령의 힘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 굳어버린 행정을 처음 움직이려면 최고 책임자의 결단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가는 뛰어난 지도자 한 사람의 독촉에 오래 의존하지 않는다. 지도자의 의지를 제도로 바꾸고, 제도를 조직의 습관으로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다. 대통령의 역할은 방향을 정하고 처음 막힌 길을 여는 데 있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총리가 부처를 조정하고 장관이 일정에 책임을 지며, 지자체장이 현장의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사업이 늦어질 때마다 대통령이 다시 등장하는 구조가 아니라, 대통령이 없어도 담당자가 움직이고 정해진 날짜에 답을 내놓는 구조가 필요하다. 메가프로젝트의 성적표도 그렇게 바꿔야 한다. 대통령이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지가 아니라 그 뒤 대통령이 회의를 열지 않아도 사업이 일정대로 진행됐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전에 장관이 문제를 풀었는지, 지자체장이 기업과 주민을 설득했는지, 담당 기관이 약속한 날짜 안에 결정을 내렸는지를 따져야 한다. ‘전격전’은 시작할 때 필요하다. 다만, 국가가 언제까지나 전격전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은 대통령이 직접 뛰어 막힌 길을 열어야 할 때일 수 있다. 그 길이 열렸다면 이제 장관과 지자체장이 달려야 한다. 대통령은 방향을 정하고, 장관은 일정과 결과에 책임지며, 공무원은 법과 원칙 안에서 결정을 내리는 정부. 그것이 메가프로젝트 속도전의 다음 단계다. 대통령의 속도는 임기와 함께 끝난다. 시스템의 속도는 정권이 바뀌어도 남는다. 이번 ‘전격전’의 가장 값진 성과는 공장 몇 곳을 빨리 세우는 데 있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제시간에 움직이는 정부를 남기는 데 있다.
2026-08-11 09: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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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규모 7.4 강진…최소 111명 사망, 서부 도시 곳곳 붕괴
남미 콜롬비아 서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섰다. 페레이라, 칼리, 마니살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건물이 무너지고 구조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인명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진은 10일(현지시간) 오전 콜롬비아 태평양 연안 초코주의 산호세델팔마르 인근에서 발생했다. 규모는 7.4, 진원 깊이는 약 107㎞로 분석됐다. 강한 흔들림은 콜롬비아 전역은 물론 인접한 에콰도르와 파나마에서도 감지됐다. AP통신, 로이터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1600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고, 이 가운데 61채가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실종자가 계속 신고되고 있으며 구조대가 붕괴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콜롬비아 대통령은 규모 7.4의 강진으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111명, 87명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은 61채로 집계됐다.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은 “현재 인명 구조작업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피해는 콜롬비아 서부의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특히 대표적인 커피 생산지역에 위치한 리사랄다주의 주도 페레이라는 진앙에서 비교적 가까워 큰 피해를 입었다. 페레이라에서는 다수의 건물이 붕괴해 주민들이 잔해에 갇힌 것으로 파악됐다. 구조대뿐 아니라 시민들도 현장에서 콘크리트와 건물 잔해를 직접 옮기며 생존자 수색을 돕고 있다. 인근 마니살레스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현지의 대표적인 네오고딕 양식 성당에서는 지진 충격으로 첨탑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내렸고, 당국은 추가 여진에 대비해 주민들에게 건물 밖에 머물 것을 권고했다. 초코주의 주도 키브도에서도 건물 피해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진앙과 가까운 산악지역은 통신망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 콜롬비아 제3의 도시 칼리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현지에서는 여러 건물이 무너지고 수백 채가 파손됐다. 주민과 구조대원들은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한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강진 당시 칼리 시내 곳곳에서는 건물이 흔들리면서 먼지구름이 치솟았고, 시민들이 거리로 긴급 대피했다. 일부 붕괴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갇힌 것으로 파악돼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태평양 연안의 항구도시 부에나벤투라를 비롯한 서부지역에서도 건물 피해가 잇따랐다. 항공시설 피해도 발생했다. 페레이라와 마니살레스, 키브도, 아르메니아, 카르타고, 부에나벤투라 등 서부지역 공항들이 시설 안전을 점검하면서 항공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에스프리에야 대통령은 지진 발생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구조와 피해 복구에 정부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콜롬비아 정부는 군과 경찰, 소방·재난대응 인력을 피해지역에 투입하고 있고, 지방정부들도 보고타 등 다른 지역에 구조대와 장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과 브라질, 멕시코 등 주변국에서도 구조와 구호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번 지진은 콜롬비아에서 수십 년 만에 발생한 가장 강력한 수준의 지진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콜롬비아 중·서부에서는 평소에도 지진이 발생하지만 규모 6.0을 넘는 강진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지난 1999년에는 아르메니아와 페레이라 일대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해 1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에도 콜롬비아의 대표적 커피 생산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 강진은 지난 6월 이웃 국가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대규모 지진 이후 약 한 달 반 만에 발생했다. 콜롬비아 당국은 여진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손상된 건물에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현재도 일부 피해지역에서 통신이 원활하지 않고 붕괴 건물 내부 수색이 진행 중인 만큼 사망·부상자 규모는 계속 변동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2026-08-11 0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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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성장 사업 육성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다진다
롯데가 바이오, 전지소재, 수소 등 신성장 사업 육성과 한일 롯데 간 협업 강화로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지고 있다. 롯데는 기존 사업의 체질 개선과 미래 산업으로의 사업 구조 전환을 병행해 왔고, 올해 들어 각 사업에서 가시적 성과가 잇따르고 있다. 바이오는 대규모 생산기지 구축을 마치고 상업 생산 준비 단계에 들어섰다. 전지소재는 AI 시대 고부가 제품으로 영역을 넓혔고, 수소는 발전소 상업운전으로 생산부터 활용까지 이어지는 사업 기반을 갖췄다. 한일 식품사는 합작법인 출범으로 '원롯데 협업'을 한 단계 높였다. 바이오, 송도 1공장 사용승인… 글로벌 CDMO 도약 본격화 31일 롯데에 따르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 바이오 캠퍼스 1공장의 주요 건설을 마치고 사용승인을 받았다. 2024년 착공 이후 약 2년 만의 성과다. 1공장은 총 12만 리터 규모의 항체의약품 생산시설로, 1만 5000리터급 스테인리스 스틸 배양기 8기를 갖춰 대규모 상업 물량에 대응한다. 설계 단계부터 자동화 제조관리시스템(MCS)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반영해 주문부터 제조, 품질 검증까지 이어지는 디지털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미국 시러큐스 바이오 캠퍼스와 연계한 '듀얼 사이트' 전략도 가능해졌다. 시러큐스가 초기 임상과 소규모 생산을, 송도가 대규모 상업 생산을 맡는 이원화 체계다. 고객사는 개발 단계와 상업화 단계 간 기술 이전 부담을 덜고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3일 송도 캠퍼스를 찾아 주요 시설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격려했다. 신 회장은 "바이오는 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 핵심 산업군"이라며 "준공 이후 예정된 일정들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하반기 시운전과 생산 시스템 검증을 거쳐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앞당긴 연내 GMP 인증 완료를 목표로 한다. 아울러 미국암연구학회(AACR)에서 ADC(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 '솔루플렉스 링크' 연구 결과를 공개하고,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전시회 '바이오 USA'에서 송도 1공장의 공정과 핵심 설비를 소개하는 등 기술 경쟁력을 알리는 활동에도 나섰다. 화학 계열사, 전지소재·수소 중심 포트폴리오 전환 가속 롯데 화학 계열사들은 전지소재 사업의 고부가가치 재편과 수소 발전소 상업운전으로 포트폴리오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AI 데이터센터 시장 확대로 수요가 급증한 고속신호 전송용 HVLP(초극저조도) 동박 대응에 나섰다. AI용 회로박과 ESS용 전지박 판매가 늘며 전사 공장 가동률은 지난해 4분기 45%에서 올해 1분기 67%로 반등했다. 국내 유일의 회로박 생산기지인 익산공장에는 약 500억원을 투자해 AI용 회로박 라인을 증설한다. 이번 증설로 익산공장 생산능력은 기존 3700톤에서 2027년까지 총 1만6000톤 규모로 늘어난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익산의 전지박 물량을 이관받아 ESS용 전지박에 집중하며 거점별 효율을 높인다. 자회사 롯데에코월 지분 90% 매각으로 확보한 재원은 ▲AI 데이터센터용 회로박 ▲반도체용 초극박 ▲ESS용 전지박 ▲EV 배터리용 전지박 등 4대 고부가 제품군에 투자할 계획이다. 수소 사업도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롯데케미칼이 SK가스, 에어리퀴드코리아와 세운 합작법인 '롯데SK에너루트'는 지난해 6월 20MW 규모의 수소 연료전지 발전소 울산하이드로젠파워 2호를 가동한 데 이어, 올해 4월 같은 규모의 1호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두 발전소는 롯데케미칼 울산공장 부지에 있으며, SK가스 자회사와 롯데 화학군 공장에서 나오는 부생수소를 공급받아 전력을 생산한다. 롯데SK에너루트는 올해 12월까지 총 80MW 규모의 종합 준공을 목표로 한다. 한일 식품사, 합작법인 출범으로 원롯데 시너지 가속 롯데는 한일 원롯데 전략을 고도화하며 글로벌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롯데웰푸드와 일본 롯데제과는 싱가포르에 합작법인을 출범했다. 신규 법인은 한일 식품사의 아시아 사업을 총괄하며, 사업별로 나뉘어 있던 경영관리와 의사결정 체계를 일원화한다.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아 양국 식품사의 시너지 창출과 해외 사업 전략을 이끈다. 이번 출범은 신동빈 롯데 회장이 강조해 온 원롯데 전략이 그룹 핵심 사업에서 이뤄낸 성과다. 신 회장은 정기적으로 '원롯데 식품사 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양사 협력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주문해 왔다. 한일 내수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해외 사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양사는 원재료 공동 구매와 마케팅 협력, 제품 교차 판매로 협업 영역을 넓혀 왔다. 그 결과 롯데웰푸드의 지난해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14.4% 늘어난 1조2205억원을 기록했다. 일본 롯데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약 9000억원의 해외 실적을 올렸다. 원롯데 1호 글로벌 메가 브랜드인 빼빼로 역시 지난해 24%에 이어 올해 1분기 33% 신장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합작법인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메가 브랜드 육성, 양사 생산·물류 인프라 연계, 잠재력이 큰 신규 시장 진출을 추진한다. 협업은 식품에 그치지 않는다. 롯데호텔앤리조트와 일본 롯데홀딩스는 지난해 9월 합작법인 '롯데호텔스 재팬'을 세워 일본 호텔 사업을 함께 키우고 있다. 한일 롯데벤처스는 '엘캠프 재팬(L-CAMP JAPAN)'을 통해 양국 스타트업의 상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2026-07-31 15: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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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립테크 승부수 띄운 코웨이, 안마‧스트레칭 더한 침대로 수면가전 확장
최근 가전‧가구 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슬립테크(Sleep Tech)’다. 단순히 편안한 매트리스를 제공하던 전통적인 침대 시장은 인공지능(AI), 센서, 헬스케어 기술과 융합되며 개인 맞춤형 수면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 변화 속에서 코웨이는 세상에 없던 혁신 신제품 2종을 연이어 선보이며 수면가전 시장 선점에 나섰다. 첨단 기술 기반의 수면 솔루션 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슬립테크 시장의 주도권 확보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코웨이는 침대가 잠을 자는 공간을 넘어 휴식과 회복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슬립 및 힐링케어 브랜드 ‘비렉스(BEREX)’를 필두로, 안마와 스트레칭 기능을 더한 ‘비렉스 M시리즈 안마 매트리스 침대’와 ‘비렉스 R시리즈 스트레칭 모션베드’를 출시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취침 전 피로 회복부터 깊은 숙면, 그리고 상쾌한 기상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원스톱 수면 솔루션을 구축해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한다는 전략이다. 비렉스 M시리즈 안마 매트리스는 침대와 안마의자의 장점을 결합한 제품이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안마의자에서 마사지를 받다가 잠을 자려면 침대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왔다. 비렉스 M시리즈는 이러한 일상의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하며 누운 자리에서 마사지를 받고 그대로 깊은 잠에 드는 끊김 없는 수면 경험을 제공한다. 별도의 안마기기가 필요하지 않아 공간 효율성도 확보했다. 침대 내부에 탑재된 안마 모듈은 히든 구조로 설계되어, 마사지를 받을 때만 표면 위로 올라와 신체에 밀착된다. 평소에는 이질감이나 등 배김 없이 매트리스 본연의 안락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안마 모듈은 취향에 따라 강력한 주무름과 두드림 기능을 갖춘 ‘MM형’과 척추 라인을 따라 부드럽게 지압해주는 ‘MS형’ 중 선택 가능하다. 척추 길이와 굴곡을 자동 감지해 체형에 최적화된 맞춤 마사지를 제공하며, 부위별로 원하는 강도를 12단계 설정할 수 있다. 코웨이가 M시리즈와 함께 슬립테크 시장의 한 축으로 내세운 제품은 비렉스 R시리즈 스트레칭 모션베드다. 모션베드 본연의 세밀한 각도 조절 기능에 강력한 스트레칭 기술을 결합하여, 수면 전후 경직된 근육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준다. 비렉스 R시리즈는 듀얼 스트레칭 셀을 통해 허리 부위를 14단계에 걸쳐 최대 약 700mm 높이까지 들어 올리며 척추와 허리 중심 근육을 시원하게 늘려준다. 15가지 자동 스트레칭 모드는 물론 부위, 횟수, 높이를 직접 조절하는 수동 모드도 지원한다. 또한 무중력, 상체올림, 하체올림 등 맞춤형 포지션 모드도 지원돼 TV 시청, 독서 등 편안한 자세로 휴식까지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코웨이가 기존 가구 브랜드들이 주도하던 침대 시장의 판도를 기술 중심의 슬립테크 및 힐링케어 가전 영역으로 완전히 리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렌탈 가전 시장에서 쌓아온 케어 서비스 노하우와 안마의자의 원천 기술력이 침대라는 플랫폼 위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웨이 관계자는 “비렉스 M시리즈와 R시리즈는 단순한 침대를 넘어 숙면과 휴식, 회복까지 관리하는 새로운 수면 솔루션 제품”이라며 “앞으로도 차별화된 기술력과 고객 중심 혁신을 바탕으로 슬립 및 힐링케어 라인업을 지속 확대하고 프리미엄 수면가전 시장을 선도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6-07-31 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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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일보] 100년 이상 버틴 생존본능…하이트진로, 글로벌 술자리 넘본다
모양과 알코올 도수는 달라졌고 광 고모델도 수없이 바뀌었지만, 진로라는 이름과 두꺼비는 한 세기를 넘어 살아 남았다. 하이트진로가 올해로 창립 102년을 맞았다. 국내 기업의 평균수명이 좀처럼 수십 년을 넘기기 어려운 현실에서 하이트진로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산업화, 외환위기와 기업 인수합병을 모두 통과했다. 하이트진로의 생존법은 오래됐다는 이유로 브랜드를 버리지 않는 데 있다. 이름과 기억은 남기되 맛과 도수, 디자인과 마케팅은 시대에 맞춰 고쳤다. 하이트진로의 100년은 새로운 술을 끊임없이 발명한 역사라기보다 오래된 술을 새로운 세대에게 다시 파는 방법을 찾아온 역사에 가깝다. 진천양조상회·조선맥주, 두 술 집안의 결합 하이트진로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다. 소주의 진로와 맥주의 하이트가 서로 다른 길을 걷다 한 회사 안에서 만났다. 진로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출발했다. 전쟁 이후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1970년 소주시장 정상에 올랐다. 이후 진로와 참이슬로 이어지는 국내 대표 소주 계보를 만들었다. 맥주의 뿌리는 1933년 설립된 조선맥주다. 크라운맥주를 생산하던 조선맥주는 1990년대 ‘하이트’를 앞세워 시장 판도를 바꿨다. 제품 브랜드의 성공에 힘입어 1998년 회사 이름도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두 회사의 결합은 위기에서 시작됐다. 진로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법정관리를 거쳤다. 하이트맥주는 2005년 진로를 인수했고, 두 회사는 2011년 통합법인 하이트진로로 출범했다. 하이트진로는 인수한 회사의 이름과 상징을 지우지 않았다. 기업명에 ‘진로’를 남겼고 참이슬과 두꺼비를 핵심 자산으로 활용했다. 공장과 설비뿐 아니라 소비자의 기억까지 인수한 셈이다. 주류시장에서 브랜드는 단순한 상표가 아니라 ‘어느 식당에서 누구와 잔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쌓인 자산이다. 하이트진로는 이 기억을 폐기하지 않고 새 포장에 담아 다시 시장에 내놨다. 맛은 바꾸고 기억은 남겼다 하이트진로의 브랜드 경영은 무조건적인 보존보다 ‘미세 조정’에 가깝다. 이름과 상징은 유지하되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제품을 계속 손본다. 1998년 출시된 참이슬은 대나무 숯 정제와 깨끗한 이미지를 앞세워 소주 시장의 기준을 바꿨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지 않았다. 하이트진로는 올해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낮췄다. 저도주와 부드러운 음용감을 선호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하이트진로에 따르면, 참이슬은 출시 이후 올해 5월까지 360㎖ 기준 약 413억병이 판매됐다. 거대한 브랜드도 시장 변화 앞에서는 0.3도의 변화를 택했다. 강한 브랜드는 변하지 않는 브랜드가 아니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계속 변하는 브랜드라는 판단이다. 2019년 부활한 ‘진로’도 같은 방식으로 생명력을 되찾았다. 과거의 두꺼비와 하늘색 병을 복고 감성으로 되살리면서 제품은 저도수·제로슈거 흐름에 맞췄다. 두꺼비는 캐릭터 상품과 팝업스토어, 협업 마케팅을 통해 젊은 소비자와 다시 만났다. 과거를 보존하되 과거의 방식으로 팔지는 않은 것이다. 다만 소주와 맥주의 처지는 다르다. 하이트진로는 소주시장에서 참이슬과 진로라는 강력한 방어선을 갖고 있지만, 맥주에서는 오비맥주와 장기간 힘겨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이트의 뒤를 이어 테라와 켈리를 내놓았지만 신제품의 화제성을 안정적인 점유율과 이익으로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과제다. 실적에도 내수 침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이트진로의 2025년 연결 매출은 2조4996억원, 영업이익은 1723억원으로 전년보다 감소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5908억원, 영업이익 55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각각 3.6%, 10.8% 줄었다. 소주보다 맥주의 매출 감소 폭이 컸다. 회식문화 축소, 외식경기 부진, 절주와 건강관리 문화가 동시에 확산되면서 과거와 같은 대량 음용 중심의 성장 공식은 흔들리고 있다. 하이트진로가 저도수와 무알코올, 프리미엄 제품을 늘리는 이유다. 하이트진로가 찾은 해법, ‘진로의 대중화’ 글로벌 비전 제시 내수시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하이트진로가 꺼내든 해법은 해외다. 회사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진로의 대중화’를 글로벌 비전으로 제시했다. 소주를 한식당이나 한국 문화 체험 때 마시는 술에서 벗어나 세계인이 일상적으로 선택하는 주류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출발점은 나쁘지 않다. 영국 주류전문매체 드링크 인터내셔널 집계에서 진로는 25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증류주 브랜드에 올랐다. 2025년 판매량은 9리터 상자 기준 9450만 상자로 집계됐고, 하이트진로는 약 91개국에 소주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 판매 1위’와 ‘글로벌 기업’은 같은 뜻이 아니다. 판매량에는 거대한 국내시장 물량이 포함된다. 올해 1분기 국내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90%를 차지했다. 세계적인 판매 기록을 갖고도 회사의 실적은 여전히 국내 소비와 경기, 음식점 영업에 크게 좌우된다. 이 간극을 좁힐 시험대가 베트남 공장이다. 하이트진로는 베트남 타이빈성에 첫 해외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있으며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산능력은 연간 최대 약 500만 상자다. 공장이 가동되면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던 구조에서 벗어나 동남아 현지 생산·공급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물류비를 낮추고 국가별로 용량과 맛, 용기를 달리한 제품을 생산할 여지도 커진다. 물론 공장을 짓는 것과 현지 소비자가 소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한류는 제품을 한 번 맛보게 할 수 있지만 반복 구매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지 음식과의 궁합, 가격, 유통망, 음주문화에 맞는 접근이 뒤따라야 한다. 공장 가동률과 해외사업의 실제 수익성도 입증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는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의 술자리가 바뀔 때마다 살아남았다. 독한 소주는 순해졌고, 회식은 가벼운 모임과 혼술로 흩어졌다. 낡은 상징으로 보였던 두꺼비는 다시 젊은 캐릭터가 됐다”며 “하이트진로의 경쟁력은 오래됐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오래된 것 가운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아는 감각에 있다”고 했다. 이어 “국내 술자리에서 증명한 브랜드 생존 본능이 해외 소비자의 일상에서도 통할 때 하이트진로는 비로소 100년 기업을 넘어 글로벌 영속기업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6-07-30 08: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