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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공원을 아파트로 채울 것인가
[경제일보] 주택 문제만큼 우리 사회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는 정책도 드물다. 집값이 오르면 공급 확대를 외치고, 공급 대책이 나오면 개발 논란이 뒤따른다. 청년 주거 안정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늘리자는 주장에도 반대가 있고, 도심의 빈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목소리에도 환경과 역사 보존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만큼 주택 문제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터전과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용산공원 부지 내 청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정부·여당이 청년층의 주거 안정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가운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규제 완화, 도심 공급 방식 등을 놓고 마찰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의 정치적 공방까지 겹치면서 정작 중요한 질문은 뒤로 밀리는 모양새다. 그 질문은 간단하다. 청년들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면서도 용산공원이 가진 역사적·환경적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을 찾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용산공원은 평범한 국유지가 아니다. 오랜 기간 외국군이 주둔했던 공간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상징성이 큰 곳이다. 서울 한복판에 남은 대규모 녹지 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도시의 허파이자 근현대사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서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주택이 절실한 청년들의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결혼과 출산, 취업과 독립, 삶의 계획을 결정하는 출발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월급만으로 서울에서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사회 전체의 미래에 대한 신뢰도 흔들린다. 청년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을 ‘집이냐 공원이냐’라는 이분법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공원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도 단순하고, 공원은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 역시 현실과 동떨어질 수 있다. 도시에는 주거와 환경, 역사와 개발, 현재와 미래가 함께 존재한다. 정책은 이 가치들의 충돌을 조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더욱이 서울의 주택 문제는 특정 부지 하나를 개발한다고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서울의 집값과 전월세 불안에는 공급 부족뿐 아니라 교통망, 직주근접, 교육, 금융, 세제, 재건축·재개발 규제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가 도심의 귀한 땅을 활용한다면 무엇보다 ‘얼마나 많이 지을 것인가’보다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위해 지을 것인가’를 먼저 따져야 한다. 특히 공공주택 정책에서 숫자 경쟁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몇 호를 공급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서울 한복판의 비싼 땅에 지은 상징적인 주택 몇 천 호가 아니라 합리적인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양질의 주택이다. 공급 지역과 교통, 생활 인프라, 임대료, 관리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용산공원 주변을 포함한 도심 공급 전략도 보다 넓은 시야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이전 부지, 유휴 국공유지, 철도·차량기지, 저이용 공공시설 부지, 역세권 복합개발 등 도심 곳곳에는 주택 공급과 도시 재생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기존 주거지의 재건축·재개발을 지나치게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개발 가능한 곳을 찾았다고 무조건 아파트를 올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도시의 녹지와 역사문화 자산은 한번 훼손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 특히 용산공원처럼 상징성이 큰 공간이라면 개발 여부뿐 아니라 장기적인 도시계획과 세대 간 형평성까지 따져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정치의 절제다. 주택 공급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반대 의견을 ‘공급을 막는 발목잡기’로 몰아서는 안 된다. 공원 보존을 주장하는 쪽 역시 주거난을 호소하는 청년들을 개발 논리에 희생되는 대상으로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 자기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합리적인 해법은 사라진다. 특히 국가의 중요한 공간을 놓고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정부는 국가 차원의 주택 공급 필요성을 설명하고, 서울시는 도시계획과 환경에 관한 전문적 판단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두 기관이 공개적인 검증과 협의를 통해 최선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독립적인 전문가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용산공원의 역사·환경적 가치와 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동시에 평가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와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토대로 판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한번 결정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정책은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공원은 한번 훼손하면 복원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반면 청년 주거 문제는 용산공원 하나에 모든 해법을 걸지 않고도 여러 지역과 수단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더욱 치밀한 비교와 검토가 필요하다. 동시에 정부는 용산공원 논란을 핑계로 청년 주택 공급을 미뤄서도 안 된다. 청년 주거 안정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도심 곳곳의 유휴부지를 찾아 공급을 확대하고, 역세권 고밀 개발과 재건축·재개발을 합리적으로 활성화하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공급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책에는 늘 비용이 따른다.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그 편익을 누가 누리는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용산공원을 지키는 것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투자다. 청년에게 안정적인 집을 제공하는 것 역시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따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갈등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갈등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용산공원이 정쟁의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청년 주거 문제가 정치적 구호에 머물러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숫자를 앞세운 밀어붙이기도, 보존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무조건적인 반대도 아니다. 청년에게는 집을, 시민에게는 공원을, 도시에는 미래를 남기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할 때 한쪽을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고 협치의 출발점이다. 용산공원을 둘러싼 논쟁이 또 하나의 소모적인 정치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서울의 주택 공급과 도시계획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시 설계해야 한다. 집값을 잡겠다는 조급함 때문에 도시의 소중한 자산을 잃어서도 안 되고, 공원을 지킨다는 명분 때문에 청년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과거를 지키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도시정책이고, 지금 우리 정치가 보여줘야 할 상식이다.
2026-08-23 1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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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판에 매물로 나온 공공기관, '정의(正義)'는 어디에 있는가
[경제일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산하가 다시금 ‘이전 공약’의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수도권 공공기관을 자기 지역으로 가져오겠다는 여야 후보들의 외침은 사자후(獅子吼)를 넘어 비이성적인 광기마저 느껴진다. 하반기 예정된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을 앞두고, 유권자의 표심을 낚기 위해 기관의 존립 근거와 효율성은 안중에도 없는 ‘묻지 마 유치’가 횡행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 비친 작금의 풍경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떼어 파는 ‘표 도둑들의 장터’와 다를 바 없다.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論語)』 「안연 편」에는 정치의 근본을 묻는 제자 자공에게 공자가 답한 유명한 구절이 있다. 바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이다. 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되,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뜻이다. 공자는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권이 보여주는 공공기관 이전 공약은 ‘민신’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심’을 기만하여 사익(표)을 취하려는 술책에 가깝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건의한 40여 개의 기관 명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광주 이전 법안 발의는 그 정점이다. 예술 교육의 특수성과 인프라, 강사진의 접근성을 완전히 무시한 채 오직 ‘지역구 챙기기’식 법안을 던져놓고 보는 행태는 전문 예술인 양성이라는 국가적 백년대계를 흔드는 처사다. 학생들과 교수진이 거리로 나와 반대 성명을 내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 본질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다. 대구의 상황은 더 점입가경이다. 기업은행 본점 유치를 넘어 이제는 국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까지 대구로 옮기겠다고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일부 의원이 발의한 대법원 이전 법안은 사법 서비스의 접근성이나 법치주의의 상징성보다는 오로지 ‘지역 민심 달래기용’ 매물로 전락했다. 『맹자(孟子)』는 “어질지 못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으면, 그 악을 대중에게 퍼뜨리게 된다(不仁者在高位 是播其惡於衆也)”고 경고했다. 국가 기구의 효율적 배치는 고도의 통치 행위이자 전문적인 행정의 영역이다. 이를 선거철의 단기 수익 모델로 삼는 것은 정치의 ‘불인(不仁)’함이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재명 대통령은 일찌감치 2차 공공기관 이전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며 효율적인 배치를 강조해 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1차 이전이 ‘뿌리기식 분산’으로 인해 지역 성장 거점을 만드는 데 한계를 보였다는 뼈저린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공기관은 지역에 떨어지는 ‘떡고물’이 아니다. 관련 산업과의 시너지를 내어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어야 한다. 서양의 고전인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통치자의 덕목으로 ‘지혜’와 ‘절제’를 꼽았다. 자신의 욕망(재선과 당선)을 절제하지 못하고 국가의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하려 드는 후보자는 이미 통치자의 자격이 없다. 특히 최근에는 공공기관을 넘어 민간 기업까지 이전시키겠다는 공약이 일상화되고 있다. 이는 자유시장 경제의 기본 원칙마저 망각한 오만한 발상이다. 기업이 어디에 둥지를 틀지는 시장의 논리와 인프라가 결정할 문제지, 정치인의 펜 끝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현재 추진 중인 행정통합특별법이 특정 지역에만 혜택이 집중되지 않도록 형평성을 기해야 한다. 전남·광주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충남·대전의 통합 논의에도 속도를 내어 균형 잡힌 국토 발전의 틀을 짜야 한다. 정치권은 당장의 표를 위해 국가의 미래를 가불(假拂)해 쓰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유권자들 역시 깨어있어야 한다. 감언이설로 무장한 공약이 우리 지역에 당장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준비 없는 이전이 가져올 행정 비용의 낭비와 비효율은 결국 우리 자녀 세대가 짊어져야 할 부채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했다. 너무 자주 뒤집고 휘저으면 생선살은 으깨지고 만다. 국가 기관의 배치는 신중하고도 일관된 원칙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유권자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공기관 이전을 ‘로또 당첨권’처럼 휘두르는 후보들을 엄격히 심판해야 한다. 정치적 포퓰리즘이라는 독배(毒杯)를 마시고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우(愚)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갈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다.
2026-04-30 16:5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