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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는 남았는데 시효는 끝났다…기술침해 시계는 누가 맞추나
[경제일보] 기술에는 흔적이 남았지만 형사책임을 물을 시간은 지났다는 판단이 나왔다. 카카오의 음성통화 서비스 ‘보이스톡’에 다른 기업의 비공개 소스코드가 사용된 사실을 확인하고도 경찰이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사건을 불송치한 것이다. 개발자의 손을 떠난 코드가 오랫동안 제품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디지털 산업에서 범죄의 종료 시점을 어디로 볼 것인지, 오래된 질문이 새로운 무게로 돌아왔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은 카카오 법인과 개발자들의 영업비밀 침해 의혹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통신 솔루션 기업 네이블이 2024년 2월 고소한 사건이다. 경찰은 지난해 5월 카카오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보이스톡 소스코드를 분석했고, 네이블이 자체 작성한 비공개 코드가 개발에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코드 사용 사실의 확인이 곧바로 범죄 성립의 확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경찰은 초기 개발자들이 담당 부서를 떠난 2013년 무렵과 2014년 5월 1일을 영업비밀 사용행위의 종료 시점으로 봤다. 이를 기준으로 10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판단이다. 이후 후임 개발자들이 해당 코드의 영업비밀 침해 가능성을 알고도 사용했다는 증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네이블의 판단은 다르다. 보이스톡이 2024년 10월까지도 해당 소스코드를 사용했으므로 침해행위가 이전에 끝났다고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9일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사건은 수원지검의 재판단을 받게 됐다. 카카오는 문제의 코드가 영업비밀이 아니며 공개된 오픈소스 등을 이용해 쉽게 작성할 수 있는 유틸리티성 코드라고 반박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카카오의 기술 탈취가 법적으로 확정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경찰의 불송치가 법원의 무죄 판결인 것도 아니다. 검찰의 검토와 향후 절차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은 특정 기업의 형사책임을 넘어 기술 보호제도의 근본적인 질문을 남긴다. "침해 여부를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술을, 법은 어떤 시간표로 보호해야 하는가." 소스코드는 공장에서 사라진 설계도와 다르다. 복제해도 원본이 그대로 남는다. 가져간 흔적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고, 코드가 어떤 경로로 다른 제품에 들어갔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수백만 줄의 프로그램 가운데 일부가 사용됐다면 원본과 대상 제품을 확보한 뒤 전문적인 분석을 거쳐야 비로소 실체에 접근할 수 있다. 그사이 서비스는 개선되고 담당 개발자는 바뀐다. 코드는 다른 모듈과 결합하고 제품은 새로운 버전을 거듭한다. 최초의 작성자와 현재의 운영자가 달라지는 일도 흔하다. 이런 산업의 특성은 공소시효와 만날 때 복잡한 법적 문제를 만든다. 형사소송법 제252조는 공소시효가 범죄행위가 종료한 때부터 진행한다고 규정한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과 네이블의 판단이 갈리는 지점도 바로 그 종료 시점이다. 초기 개발자가 프로젝트에서 떠났을 때 사용행위가 끝난 것인지, 이후에도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사용이 계속됐는지를 따져야 한다. 코드가 계속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범죄가 계속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후임자가 그 출처를 몰랐다면 고의에 관한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최초 개발자의 부서 이동만으로 이후 모든 행위가 법적으로 단절됐다고 볼 수 있는지도 구체적인 증거에 따라 검토할 문제다. 디지털 기록의 존속과 범죄행위의 존속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살펴볼 쟁점 역시 그 경계에 있다. 공소시효 제도 자체를 불필요한 장벽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증인은 사라진다. 기록의 맥락이 없어지면서 피의자 역시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워진다. 국가가 무기한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도록 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과 방어권을 위한 장치다. 기술 침해가 늦게 발견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건의 시효를 발견 시점부터 계산한다면 반대편 문제가 생긴다. 수십 년 전의 개발행위까지 끝없이 형사책임을 묻는 구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형사처벌의 증거 기준과 방어권을 약화시키는 근거가 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침해가 은밀할수록 책임을 물을 기회가 줄어드는 결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없다. 범죄가 늦게 드러나는 기술의 특성과 일정 기간이 지나면 국가의 처벌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원칙 사이에서 어떤 기준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공소시효의 길이만큼 중요한 문제가 있다. 증거를 얼마나 빨리,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느냐다.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이 경쟁사의 소스코드를 직접 열어볼 수는 없다. 내부 자료에 접근하려면 법적 절차와 기술 분석이 필요하다. 작은 기업이라면 전문인력과 소송비용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침해 의혹을 발견한 뒤 핵심 증거를 확보하기까지 시간이 흐르면 기술의 권리관계를 가릴 기회도 좁아진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2024년 고소 이후 압수수색과 코드 분석을 진행했다. 이미 오래된 의혹을 다루는 수사였다는 점은 디지털 증거 확보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기술 보호제도의 실효성을 논할 때 시효 연장과 함께 전문 수사역량, 신속한 증거보전 절차, 코드의 출처와 변경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 관리가 거론되는 이유다. 형사책임과 민사책임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와 제11조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금지·예방 청구와 손해배상책임을 별도로 규정한다. 형사사건의 불송치가 민사상 책임의 유무를 자동으로 확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민사에서도 영업비밀 해당성과 침해행위, 손해 등의 요건을 입증해야 하며 적용되는 기간 제한도 따로 검토해야 한다. 기술을 지키는 방법이 형벌 하나뿐일 수 없는 까닭이다. 침해가 확인됐다면 사용을 중지시키거나 손해를 회복할 수 있는 절차가 중요하고,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기업과 개발자가 부당한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한비자’ 유도편에는 ‘법불아귀 승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 법은 귀한 사람에게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굽은 나무에 맞춰 휘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있다. 기술 분쟁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기업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판단이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피해를 주장하는 기업이 작다는 이유로 증거 없이 상대방의 죄를 인정해서도 안 된다. 법이 해야 할 일은 어느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권리관계를 제때,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는 절차를 제공하는 것이다. 카카오와 네이블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검찰의 재판단이 남아 있고, 코드 사용 사실과 영업비밀 침해죄의 성립 여부 역시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 그 결과와 별개로 우리 산업이 마주한 과제는 선명하다. 기업의 핵심 자산이 물리적인 설비에서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으로 옮겨갈수록 침해의 발견과 증명에는 이전과 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기술에는 오랜 흔적이 남고 법에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그 두 시간의 간극에서 권리 보호와 방어권을 함께 지킬 수 있는지가 이번 사건이 남긴 질문이다. 코드가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하는 일만큼, 그것이 어떤 법적 책임으로 이어지는지 제때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가 중요하다. 기술강국의 조건은 기술을 많이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의 권리를 둘러싼 분쟁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기반에도 달려 있다.
2026-09-18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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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시행인데 아직도 '누가 어떻게'가 없다
[경제일보] 검찰청이 문을 닫는 날은 정해졌다. 10월 2일이다. 지난해 10월 정부조직법을 고쳐 1년 뒤 시행하기로 했다.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도 이날 출범한다. 그런데 같은 날부터 전국 2만여 명의 특별사법경찰이 누구의 지휘와 통제를 받으며 어떻게 수사할지는 아직 정리할 것이 남아 있다. 검찰청 폐지 날짜는 1년 전에 못 박아 놓고 현장에서 돌아갈 수사 방식은 시행 두 달 전까지 논란이다. 특사경은 일반인에게 이름부터 낯설다. 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세금과 관세, 노동, 환경, 식품, 의약품 등 생활과 맞닿은 범죄를 수사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을 가진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준 제도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인원만 2만 명이 넘는다. 지금까지 특사경 수사에는 검사의 지휘가 있었다. 10월 2일부터 이 지휘권이 사라진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특사경이 필요하면 검사에게 ‘지도·조언’을 요청할 수 있고 검사도 필요한 경우 지도·조언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수사 지휘와 지도·조언은 다르다. 전자는 따를 의무가 있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수사와 기소를 떼어놓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방침에 따라 법을 그렇게 고쳤다. 여기까지는 입법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검사 지휘가 빠진 자리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메울지도 함께 내놓았어야 한다. 법률 판단은 어디서 받고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때 누가 바로잡을지까지 준비한 뒤 제도를 바꾸는 것이 정상적인 순서다. 특사경에게 수사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를 불러 조사하고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 범죄 혐의가 성립하는지 살피고 수집한 증거가 법정에서 쓰일 수 있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행정 경험이 많다고 이런 일을 바로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특사경의 48%는 수사 경력이 1년 미만이었다. 검사가 하던 지휘를 없앤다고 법률 판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사 경험이 짧을수록 그 필요는 커진다. 압수수색의 범위를 잘못 잡으면 영장을 다시 받아야 하고 절차를 어긴 증거는 재판에서 쓰지 못할 수 있다. 공소시효를 놓치면 수사를 아무리 잘해도 처벌할 길이 막힌다. 형사절차는 나중에 틀린 곳을 찾아 고치는 행정 서류와 다르다. 새 형사소송법은 검사에게 보완수사요구권과 시정조치요구권, 재수사요구권 등을 두고 있다. 정부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면서 수사기관을 견제하기 위해 마련한 장치다. 하지만 사건이 공소청으로 넘어온 뒤 기록을 검토하는 것과 수사 과정에서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압수수색이 이미 끝났고 피의자 조사가 잘못 진행된 뒤라면 사후 보완에도 한계가 있다. 특사경의 특성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경찰은 경찰청을 중심으로 지휘 체계가 갖춰져 있지만 특사경은 다르다. 고용노동부, 관세청, 식품의약품안전처, 지방자치단체 등 곳곳에 흩어져 있다. 같은 특사경이라도 조직과 수사 경험, 인력 여건이 제각각이다. 전국의 특사경을 한 덩어리로 놓고 검사 지휘만 걷어낸다고 새 수사 방식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수사하다 자신의 관할 밖 범죄를 발견했을 때도 생각해야 한다. 특사경은 법에 정해진 범죄만 수사할 수 있다. 본래 맡은 사건을 파다가 횡령이나 뇌물 같은 다른 범죄 혐의가 나오면 어느 기관으로 넘기고 그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는 어떻게 처리할지 정교한 연결 장치가 필요하다. 검사에게 직접수사권도 없고 특사경 지휘권도 없는 새 제도에서는 기관 사이의 사건 인계가 지금보다 중요해진다.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고 수사의 주체를 사법경찰관으로 일원화하는 개정 형사소송법도 10월 2일 시행된다. 정부도 이런 논란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지난 3월 공소청법과 중수청법 정부안을 확정하면서 보완수사와 새 형사사법 체계의 쟁점을 놓고 두 달간 공개토론회와 자문위원회 등을 통해 의견을 듣겠다고 했다. 특사경 지휘권 폐지를 둘러싼 우려도 같은 달부터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시간이 없었던 셈은 아니다. 그런데 10월 2일은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일선 특사경이 어디에서 법률 지원을 받을지, 기관마다 다른 수사 역량을 어떻게 보완할지, 수사가 겹치면 어떻게 조정할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어느 단계에서 바로잡을지 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는 답이 필요하다. 검사에게 다시 모든 지휘권을 주자는 얘기로 돌릴 필요도 없다. 국회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기로 했으면 새 제도를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도 국회와 정부가 할 일이다. 기존 제도를 없애는 것과 그 자리를 대신할 제도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일일 수 없다. 형사사법 제도를 잘못 바꾸면 피해는 관청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사가 늦어지면 피해자가 기다려야 하고 압수수색을 잘못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다. 범죄 혐의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면 처벌해야 할 사람을 놓친다. 시행 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규정을 고치는 방식으로 버티기에는 국민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검찰청을 없애는 날짜는 지난해 10월 이미 정했다. 준비할 시간도 그때부터 있었다. 10월 2일 아침 2만여 명의 특사경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때 가서 묻도록 해서는 안 된다. 검찰청을 없애는 데 1년을 썼다면 새 수사체계를 준비할 시간도 1년 있었다.
2026-08-20 08: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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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수사권 공방, 검찰도 경찰도 아닌 국민을 보라
[경제일보] 수사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다. 확보하지 못한 영상 하나,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 한 명, 잘못 해석한 진술 한 줄이 사건의 결론을 바꾼다.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검사가 다시 들여다보고 부족한 부분을 확인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추진했지만 당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려면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경찰 수사를 교정할 최소한의 권한은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성폭력과 아동학대, 스토킹,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는 예외적으로 보완수사를 허용하자는 법안도 나왔다. 형사사법제도는 한번 바꾸면 수많은 사건과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의 출범 시점을 오는 10월 2일로 정해 놓고도 형사절차의 핵심인 보완수사 구조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조직을 먼저 나눈 뒤 그 조직들이 어떻게 사건을 처리할 것인지를 뒤늦게 논의하는 순서가 됐다. 보완수사권과 보완수사요구권은 구별해야 한다. 보완수사권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직접 추가 조사하는 권한이다. 보완수사요구권은 검사에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다. 전면 폐지론은 검사에게 직접 조사권을 남기면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 무너진다고 본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내세워 송치된 혐의와 관계없는 사실까지 들여다보거나 별건 수사로 확대할 위험도 지적한다. 검찰은 이런 불신을 스스로 키웠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면서 표적수사와 별건수사, 과도한 압수수색, 피의사실 유출 논란을 반복했다. 직접수사권을 축소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는 검찰권 남용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었다. 과거와 같은 포괄적 수사권을 검사에게 돌려줄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는 문제와 경찰 수사의 오류를 교정하는 기능을 없애는 문제는 같지 않다. 보완수사요구권만 남기면 충분하다는 주장은 실제 수사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처음 수사를 부실하게 한 수사관에게 같은 사건을 다시 조사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빠진 증거가 저절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수사팀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같은 조직에 보완수사를 맡기는 방식만으로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검사가 경찰 수사기록만 검토해서는 기록 밖에 있는 증거를 찾을 수도 없다. 경찰이 확보하지 않은 영상,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 누락한 압수물은 기록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나 참고인을 직접 만나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수사의 빈틈이 드러나는 사건도 있다. 전남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이런 우려를 보여줬다. 경찰은 피의자를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목적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 수사팀 내부에서 중요 증거 확보와 보고를 막고 수사 내용을 축소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개별 사건 하나로 모든 제도를 설계할 수는 없다. 다만 경찰 내부에서 수사 축소나 증거 누락이 발생했을 때 같은 경찰 조직에 다시 수사를 맡기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검찰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것처럼 경찰의 내부 감찰도 경찰 수사에 대한 외부 통제를 대신하기 어렵다. 보완수사권 문제를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사라진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피해자는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게 경제적·정서적으로 종속돼 있거나 보복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진술만 기계적으로 비교하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다. 주변 정황과 디지털 증거, 반복되는 범행의 구조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경찰 수사가 부실하면 피해자는 같은 일을 여러 번 진술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바뀔 때마다 피해 사실을 다시 설명하고, 뒤늦게 발견된 증거가 이미 사라지는 일도 생긴다. 보완수사권 폐지는 검사 한 사람의 권한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수사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잃을 수 있는 문제다. 피의자의 권리도 다르지 않다. 경찰이 혐의를 과도하게 구성하거나 불리한 진술만 골라 기록했다면 검사의 재검토 과정에서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보완수사는 유죄 증거를 추가로 찾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찰 수사가 공판에 넘길 만큼 충분하고 적법한지 다시 확인하는 절차여야 한다. 검사가 기소권을 가진 채 직접 보완수사까지 하면 유죄 판단에 치우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기소를 결정하는 검사가 증거의 신빙성과 수사 과정의 문제를 확인할 수 없다면 부실한 경찰 수사가 그대로 재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입법자는 두 위험을 함께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택지는 전면 폐지와 현행 유지뿐이 아니다. 검사의 독자적인 수사 개시는 금지하되 경찰이 송치한 사건 가운데 제한된 범위에서만 직접 보완수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성폭력과 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피의자가 구속된 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대규모 민생침해 범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누락이나 인권침해가 의심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예외 범위는 법률에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처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문구를 두면 보완수사권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우회적으로 복원하는 통로가 된다. 수사 범위도 경찰이 송치한 범죄사실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같은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에는 공소청장이나 상급자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보완수사의 사유와 범위, 조사 내용은 모두 기록에 남겨 피의자와 변호인이 다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사 기간과 횟수도 제한해야 한다. 위법한 별건 수사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하고 수사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장치도 필요하다. 전면 폐지를 선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통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까지 공소청에 보내 다시 검토받도록 하는 전건송치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공소청이 다시 심사하면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기록을 형식적으로 훑는 데 그칠 가능성이 있다. 전건송치는 중대범죄와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부터 적용하거나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한 사건을 중심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논의도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당은 보완수사권 폐지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검찰 기득권 옹호나 개혁 후퇴로 몰아서는 안 된다. 수사 실무를 경험한 법조인과 범죄피해자 지원단체가 지적하는 문제는 검찰 조직을 지키자는 요구가 아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을 때 피해자가 기댈 절차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경찰의 부실수사 사례를 검찰권 복원의 근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경찰이 잘못했다고 과거 검찰의 수사권 독점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보완수사권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려면 별건 수사와 과잉수사를 막을 구체적인 통제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검찰개혁은 검찰 조직에 대한 응징이 아니다.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일도 아니다. 잘못된 수사를 줄이고 피해자와 피의자의 권리를 지키는 형사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수사기관의 권한은 어느 기관이 더 신뢰받느냐에 따라 배분할 일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 모두 잘못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판단을 검증하고 법원과 변호인이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기관의 선의를 기대하는 대신 권한의 범위와 책임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공소청과 중수청 출범일을 정해 놓고도 보완수사 구조를 두고 합의하지 못했다. 시행일이 다가온다는 사정이 졸속 입법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입법이 늦어진 책임을 피하려고 충분한 검토 없이 전면 폐지나 현행 유지를 선택한다면 그 부담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국민이 떠안는다. 검찰개혁의 성과는 검사에게서 몇 개의 권한을 빼앗았는지로 평가할 수 없다. 경찰의 부실수사가 줄었는지, 억울하게 묻힌 사건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지, 무고한 사람이 잘못 기소되는 일을 막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보완수사권 공방에서 기준이 돼야 할 사람은 검사도 경찰도 아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일상과 명예, 때로는 삶 전체가 달라지는 피해자와 피의자다. 정치권이 그들의 권리를 외면한 채 수사기관의 권한만 나눈다면 검찰청의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둘로 나누더라도 개혁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다.
2026-07-16 1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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