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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의 무능한 조율, 국익을 위태롭게 하는 정부의 책임을 묻는다
[경제일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떠받치는 두 축은 굳건한 안보와 개방형 통상체제다. 안보가 흔들리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고, 통상 경쟁력을 잃으면 경제의 활력과 국방의 기반마저 약화된다. 그런데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한 검증 과정에서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신청도 연내 추진하지 않기로 하면서 정부의 대외 전략에 경고등이 켜졌다. 우연한 정책 차질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쟁점을 조율하고 이해관계를 설득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안보에서는 동맹과의 조율이, 통상에서는 국내 갈등을 풀어낼 정치적 결단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익을 지켜야 할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면 그 책임부터 분명히 물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은 정권의 치적을 장식하는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다. 우리 군이 연합방위체제를 주도할 역량을 확보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 한미동맹의 억제력이 전환 이후에도 유지되는지를 엄격하게 검증해야 하는 국가 안보의 핵심 과제다. 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것 자체가 자주국방의 성과는 아니다. 필요한 능력이 부족한데도 일정에 맞춰 서두른다면 자주라는 명분으로 안보 위험을 키우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은 분명하다. 전작권 전환 조건의 충족 여부를 놓고 한미 간 시각차가 있다면 원인이 무엇인지, 사전 협의와 검증은 제대로 이뤄졌는지, 우리 군의 핵심 작전 능력은 어느 수준까지 확보됐는지 설명해야 한다. 동맹 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핵심 조건을 둘러싼 견해차가 남았다면 협의 과정과 판단 근거를 점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과를 앞세워 검증을 형식화하거나 정치적 일정을 군사적 판단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는 막연한 자주 구호나 낙관론 뒤에 숨지 말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과 단계별 보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안보 정책의 실패는 사후 책임 추궁만으로 되돌릴 수 없다. CPTPP 가입 신청의 연내 보류는 통상 정책의 전략과 조정 능력을 시험하는 또 다른 고비다. 세계 경제가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의 격랑에 휩싸인 가운데 주요국들은 시장 접근성을 넓히고 자국 기업에 유리한 통상 규범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입 논의를 미루기만 한다면 역내 경제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발언권을 잃고 기업의 경쟁 기회도 제약받을 수 있다. 수출로 성장한 나라가 통상 네트워크 확장에 소극적이라면 경쟁국이 차지한 자리를 나중에 되찾는 데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다. 물론 CPTPP 가입에는 농수산업 등 민감 산업의 피해와 시장 개방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정부가 공개한 경제적 영향 분석에서도 가입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와 함께 농림수산업의 생산 감소 가능성이 제시됐다. 피해 우려를 무시한 채 가입을 서두를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반발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는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산출하고 보상과 경쟁력 강화, 산업 전환을 아우르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충돌할수록 정부가 나서 국민을 설득하고 국익과 피해 대책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가입의 편익과 비용을 충분히 설명하지도, 피해 대책을 구체화하지도 못했다면 정책 지연의 책임을 국내 반발에 떠넘길 수 없다. 결정을 미룬다고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택의 비용만 커질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안보와 통상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연결하는 정부의 조정 능력이다. 군사적 억제력과 경제적 회복력은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에너지와 핵심 소재의 공급망, 첨단산업의 해외 시장, 동맹국과의 기술 협력은 모두 경제 안보의 일부다.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면서 주요 교역국과의 경제 관계를 정교하게 관리하려면 외교·국방·산업·통상 부처가 같은 전략 목표 아래 움직여야 한다. 부처별 이해와 단기 현안에 끌려다니는 방식으로는 복합적인 국제 질서에 대응할 수 없다.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며 결정의 결과에 책임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제 정부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답해야 한다. 전작권 전환의 군사적 조건과 한미 간 협의 상황을 투명하게 설명하고, CPTPP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실질적인 통상 전략과 산업 피해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연내 가입 신청을 보류했다면 그 기간에 무엇을 검토하고 어떤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정책이 지연되거나 판단이 잘못됐다면 원인을 밝히고 시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책무다. 국회 역시 정쟁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 검증과 초당적 협력으로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외교·안보와 통상에는 정권의 임기가 있지만 국익에는 임기가 없다. 자주국방은 동맹을 흔드는 구호가 아니라 스스로 지킬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며, 통상 주권은 가입 선언이 아니라 시장을 확보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성과로 입증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대가는 국민의 안전과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국가 전략의 혼선을 불가피한 국제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상황을 예측하고, 갈등을 조정하고, 국익을 관철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2026-10-15 1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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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공항 피습에 321명 사상…미국 참전 가능성에 중동 확전 우려
[경제일보] 미국이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을 받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군사 지원을 넘어 직접 참전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사우디 방어를 둘러싼 미국의 선택이 예멘 전쟁의 확전 여부를 가를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홍해 해상 물류와 에너지 공급망, 사우디의 글로벌 투자 유치 전략에도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10일(이하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이 테러 집단인 후티 미사일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민간항공청은 사망자 가운데 사우디 국민 4명과 외국인 8명이 포함됐으며, 부상자 일부는 위중한 상태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309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공격 이후 공항 운영이 일시 중단됐고 항공편 취소와 지연이 잇따랐다. 이번 공격은 사우디의 민간 항공 인프라를 겨냥한 연쇄 공격의 일부로 분석된다. 같은 주 리야드 공항이 앞서 두 차례 공격을 받았고, 동부 담맘의 킹파드 국제공항 인근에도 발사체가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 영공을 군사작전 지역으로 규정하며 항공사들에 해당 영공을 피하라고 경고했다. 민간 공항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서 사우디의 방공 역량과 핵심 기반시설 보호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격 이후 후티 반군을 겨냥한 사우디의 군사작전에 미국이 합류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이 사우디의 공습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다"며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사우디에서 발생한 일을 용납할 수 없다며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도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미국의 직접 참전 여부나 구체적인 군사 대응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의 선택에 따라 충돌 범위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방공 지원이나 정보 공유에 그칠지, 후티 반군의 미사일 발사 시설 등을 겨냥한 직접 타격에 나설지에 따라 전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군사 행동에 나설 경우 후티 반군의 보복 공격이 사우디 내 주요 시설이나 역내 다른 목표물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전쟁의 파장은 홍해 해상 물류로도 이어질 수 있다.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주요 해상 운송로 가운데 하나다. 앞서 이 일대에서 공격 위협이 커지면 선사들이 항로를 우회하거나 운항을 조정해 왔고, 운송 기간과 보험료 등 물류 비용에도 압력이 생긴 바 있다. 특히 에너지 수송과 관련 산업의 공급망이 영향을 받을 경우 중동 지역을 넘어 국제 교역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사우디가 추진해온 국제 투자 유치 전략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사우디에서는 세계 석유업계 관계자와 정책 당국자가 모이는 세계석유회의(WPC)가 11일부터 오는 15일까지 열릴 예정이며,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는 대형 투자 행사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가 예정돼 있다. 주최 측은 두 행사 모두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우디는 관광과 국제 행사, 해외 자본 유치를 통해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경제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공항과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공격이 반복되면 투자자들이 사업 기회뿐 아니라 현지의 안전과 운영 위험까지 함께 따져볼 수밖에 없다. 당장 투자 위축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할수록 사우디가 내세운 안정적인 사업 환경과 국제 행사 개최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아랍에미레이트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주권을 명백히 침해하고 안보와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전폭적인 연대를 표명하며, 사우디의 안보와 안정 유지를 위한 모든 조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2026-10-11 14: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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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진핑에 B-2 띄우고 국빈만찬…환대 뒤엔 무역·AI 담판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방문에 B-2 전략폭격기와 F-22 전투기를 동원한 환영식을 마련한다. 최고 수준의 의전과 미국의 군사력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무역과 첨단기술, 대만 문제를 둘러싼 정상회담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시 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시 주석의 미국 국빈방문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이후 11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직접 나가 시 주석 부부를 맞을 예정이다. 미국 대통령이 외국 정상의 공항 도착을 직접 영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24일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시 주석 부부가 참석하는 공식 환영식이 열린다. 백악관에 따르면 미군 전 군종을 대표하는 장병 479명이 참가하고 군악대 연주와 의장대 사열이 이어진다. B-2 스피릿 전략폭격기 1대와 F-22 랩터 전투기 4대도 축하비행에 나선다. B-2는 장거리 침투와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전략폭격기이며 F-22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텔스 전투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맞을 때도 전투기와 전략폭격기를 의전에 활용했다. 이번 비행 역시 환영과 군사력 과시라는 두 가지 상징을 함께 담는다. 공식 환영식 뒤에는 양국 정상과 핵심 각료들이 참석하는 회담이 열린다. 관세 휴전 연장과 중국의 희토류 수출, 미국산 농산물·항공기 구매, 첨단 반도체와 AI 통제 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된다. 대만해협과 이란전쟁, 펜타닐 원료 차단 등 안보 현안도 테이블에 오를 전망이다. 멜라니아 여사와 펑 여사는 정상회담 중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을 방문한다. 저녁에는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국빈만찬이 열린다.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 순다르 피차이, 젠슨 황, 팀 쿡, 샘 올트먼 등 미국 주요 기술기업 경영진도 초청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AI와 반도체가 이번 회담의 핵심 경제 의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5일에는 양 정상 부부가 백악관에서 차담한 뒤 국립문서보관청을 찾아 미·중 관계 관련 기록을 살펴본다. 중국 외교부는 6개월 사이 이뤄진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에 “역사적이고 이정표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화려한 의전과 정상 간 친분이 곧바로 현안 합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번 방문의 성과는 11월 만료를 앞둔 관세 휴전의 연장 여부와 희토류·농산물 교역, 첨단기술 통제에서 양국이 어느 수준의 교환 조건을 마련하는지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2026-09-22 0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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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 광물외교, 악수는 끝났다…이제 광물이 와야 한다
[경제일보] 서울에서 손을 맞잡았다고 광물이 한국 공장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광산에서 원료를 캐내고, 정제시설에서 산업용 소재로 가공한 뒤 국경과 바다를 건너 수요 기업에 공급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자원외교가 공동선언보다 어려운 이유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이 16일 서울에서 첫 다자 정상회의를 열었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정상은 이재명 대통령과 ‘서울선언’을 채택하고 핵심광물·에너지 공급망 협력에 뜻을 모았다. 정상회의를 2년마다 개최하고 산업장관 협의체도 신설하기로 했다. 한국의 기술과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연결할 정상급 협의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외교적 의미는 분명하다. 자원 확보는 기업의 구매계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광업권과 투자 인허가, 수출규제와 통관, 도로와 철도 건설에는 자원 보유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정상 간 합의는 민간기업이 넘기 어려운 제도적 장벽을 낮추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번 회의와 연계한 비즈니스 서밋에서도 19건의 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카자흐스탄 국립야금광석연구소는 희소금속 분야의 단계별 공급망 협력모델을 발굴하기로 했다. 별도의 기업 상담회에서는 1400만 달러 규모의 수출계약도 성사됐다. 다만 이 계약은 소비재 등 여러 분야를 포함한다. 핵심광물의 구매량과 인도 시점을 확정한 실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협력 문서에 서명하는 것과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광물외교의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판단하려면 외교적 합의가 어느 단계까지 사업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탐사 결과가 투자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채굴한 원료를 어디에서 정제할 것인지, 한국 기업이 어느 가격에 얼마를 구매하기로 했는지, 실제 납품은 언제 시작되는지가 그 기준이다.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지하자원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광산에 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과 경제성 있는 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다르다. 품위와 매장량을 확인하고 사업성을 검증해야 한다. 채굴권을 확보한 다음에는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를 갖춰야 한다. 광석을 캤더라도 산업용으로 가공하지 못하면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생산에 곧바로 사용할 수 없다.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보여주는 교훈도 이 대목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글로벌 핵심광물 전망 2026’에 따르면 중국의 2025년 희토류 정제시장 점유율은 약 85%였다. 희토류를 제외한 주요 에너지 광물에서도 세계 최대 정제국의 평균 점유율은 2023년 70%에서 2025년 72%로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로 일부 해외 자동차업체가 생산시설 가동률을 낮추거나 일시적으로 공장을 멈춘 사례도 나타났다. 광산을 확보해도 정제를 중국에 의존한다면 공급망의 취약성은 온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원료의 생산국을 다변화하는 것과 최종 산업소재의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광물을 한국에서 정제하는 것이 유일한 답인 것도 아니다. 광물의 종류와 생산 규모, 현지 전력비와 환경규제,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따져 가공시설의 입지를 정해야 한다. 중앙아시아 현지에서 경제성 있게 정제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자원 보유국의 이해관계도 중요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원료만 수출하는 경제에서 벗어나 가공산업과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수요가 있다. 한국이 광물을 확보하고 현지에는 일자리와 기술, 설비가 남는 협력 구조라면 장기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할 여지가 커진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양측이 원료 교역을 넘어 탐사부터 최종 제품 제조까지 이어지는 협력을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중앙아시아 특유의 물류 문제가 더해진다. 내륙의 광산에서 생산한 광물을 한국으로 들여오려면 여러 나라의 철도와 도로, 통관·환적 체계를 거쳐야 할 수 있다. 광산 개발비뿐 아니라 운송비와 운송 기간, 경유국의 정책 변화까지 공급계약의 경제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광산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 반드시 안정적인 공급처까지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운송로가 막히거나 정제시설이 지연되면 장부상의 자원은 생산현장의 원료가 되지 못한다. 이런 사업을 추진할 때 정부와 기업의 역할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정상외교는 자원 보유국과의 협의 통로를 마련하고 투자·통관·물류와 같은 제도적 문제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매장량과 품위, 정제수율, 생산원가와 판매가격을 검증하는 일은 개별 사업의 경제성 판단에 속한다. 특히 자원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길다. 외교적 합의가 사업의 위험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수요기업의 장기구매 계약이 없는 광산은 생산을 시작하고도 판로를 걱정할 수 있다. 반대로 구매처가 확실해도 정제 기술과 운송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약속한 가격에 납품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협력의 진척은 MOU 체결 건수와 함께 탐사, 사업성 검증, 투자 확정, 정제시설 건설, 장기구매 계약, 실제 인도 물량을 구분해 살펴볼 때 확인할 수 있다. ‘순자’ 권학편에는 ‘불적규보 무이치천리(不積蹞步 無以致千里)’라는 구절이 있다. 작은 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자원외교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정상회의가 첫걸음이라면 광산 개발과 정제시설, 물류망과 구매계약은 그다음 걸음이다. 어느 하나를 건너뛰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 다음 한·중앙아 정상회의는 2028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마련한 정상급 협력체계의 진척을 살펴볼 자연스러운 시점이기도 하다. 그때는 협력 문서가 몇 건 더 늘었는지만으로는 사업의 진행 상황을 알기 어렵다. 어느 광산에서 탐사가 끝났고, 어떤 기업이 투자를 확정했으며, 정제시설과 물류망은 어디까지 구축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구매계약이 체결됐다면 광종과 물량, 공급기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선적이 이뤄졌다면 성과는 더욱 구체적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두고 공급망 다변화가 이미 완성됐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반대로 아직 광물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교적 합의의 의미를 부정할 수도 없다. 장기 자원사업에는 그에 걸맞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달라지는가다. 자원외교의 최종 목적은 광산에 한국 기업의 이름을 새기거나 협약서에 서명을 남기는 데 있지 않다. 한국 산업이 필요할 때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있다. 서울에서 맺은 약속은 이제 광산과 정제시설, 철도와 항만에서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차례다. 중앙아 광물외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회담장이 아니라 공급망의 마지막 현장, 한국의 공장이다.
2026-09-17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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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재건축 노리는 롯데건설…동·서에 '르엘 라운지' 띄운다
[경제일보] 롯데건설이 서울 목동신시가지 재건축 수주전을 겨냥해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 알리기에 나선다. 목동 동·서측에 브랜드 라운지 두 곳을 동시에 열고 교육과 자연, 예술, 생활서비스를 결합한 주거 전략을 선보이는 등 조합원과의 접점을 넓히는 모습이다. 롯데건설은 서울 양천구 오목교역 인근과 신정동 학원가에 각각 ‘르엘 라운지’를 개관할 예정이라고 16일 밝혔다. 목동신시가지 1~14단지가 넓게 분포한 점을 고려해 동·서측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오목교역 인근 동측 라운지는 프랑스어로 동쪽을 뜻하는 ‘est’를 활용해 ‘르에스트(L’est)’, 신정동 학원가 인근 서측 라운지는 서쪽을 뜻하는 ‘ouest’를 적용한 ‘르웨스트(L’ouest)’로 이름 붙였다. 각가의 라운지는 다음달 1일 오픈한다. 롯데건설은 라운지를 단순한 아파트 홍보 공간보다 브랜드와 주거 상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화려한 장식과 과시적인 고급스러움 대신 자연광과 식물, 현대미술 작품 등을 활용해 머무는 동안 자연스러운 품격이 보여지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대형 LED 미디어아트와 클래식 공연 등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명화와 음악을 결합한 ‘그림 읽어주는 베토벤’ 등도 선보인다. 목동에 제시할 주거 전략에는 ‘소르본 프로젝트(SORBONNE PROJECT)’라는 이름을 붙였다. 학군과 녹지가 강점인 목동의 정체성을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가 위치한 라탱지구의 교육·문화 환경과 연결한 개념이다. 소르본 대학 주변이 지성과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목동 역시 △학문 △예술 △문화가 도시의 일상 속에 축적되는 공간으로 대탄생 시키겠다는 의지다. 이러한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문구로 ‘지식의 나무가, 목동의 숲이 되다’를 제시했으며 구체적으로 네 가지 특화 방향을 마련했다. 숲과 정원, 건축을 연계하는 ‘목동 포레스트’를 비롯해 미술작품과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파리 아트’, 교육 콘텐츠를 단지 내 지식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소르본 날리지’, 호텔식 컨시어지와 웰니스 서비스를 결합한 ‘르엘 프리빌리지’ 등이다. 롯데건설은 이를 기존 하이엔드 아파트의 외관과 커뮤니티 경쟁에서 한 단계 확장한 ‘6세대 주거문화’로 정의하고 있다. 주택 공급 중심에서 대단지와 브랜드, 커뮤니티, 하이엔드로 이어져 온 아파트 경쟁이 앞으로는 입주 이후 이용하는 문화와 콘텐츠, 서비스로 옮겨갈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를 위해 롯데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호텔과 유통, 문화·예술 분야의 서비스 역량을 르엘 단지에 접목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하드웨어 중심의 고급화만으로 차별화하기보다 입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주거 상품의 한 축으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라운지 개관은 목동 재건축 수주전과도 맞닿아 있다. 롯데건설은 현재 목동신시가지 2·7·11·14단지를 포함해 향후 시공사 선정에 나설 사업지를 폭넓게 검토하고 있다. 단지별 사업 일정과 입찰 조건을 살핀 뒤 실제 참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목동에서는 14개 단지가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사전 수주 활동도 확대되고 있다. 6단지와 10단지 등 일부 단지에서는 이미 시공사 선정이 진행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높거나 규모가 큰 후속 단지를 둘러싼 경쟁이 남아 있다. 롯데건설 역시 본입찰 이전부터 별도의 브랜드 공간을 마련해 장기적인 수주 기반을 다지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목동이 지난 40년간 쌓아온 교육과 자연의 가치를 계승하고 지성과 예술, 새로운 서비스와 콘텐츠를 더하는 것이 롯데건설이 제안하는 목동 재건축의 방향성이다”라며 “르엘을 통해 교육이 지성이 되고, 지성이 문화가 되며, 문화가 일상이 되는 목동만의 새로운 주거문화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9-16 09: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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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역에 게임문화 한자리…'GXG 2026' 게임을 넘어 문화로
[경제일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것을 넘어 음악과 공연, 코스프레, 창작 체험과 전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는 축제 'GXG 2026'이 판교에서 막을 올렸다. 게임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문화 콘텐츠를 한 공간에 모으면서 게임을 단순한 놀이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돼 판교인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11일 성남시가 주최하고 성남산업진흥원과 게임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게임문화축제 'GXG 2026(게임 컬쳐 X 제너레이션 2026)'이 경기도 성남시 판교역 광장 일대에서 본행사를 시작했다. 올해 GXG는 본행사에 앞서 10일 판교 콘텐츠 거리에서 'GXG 버스킹 타임'을 열며 축제의 문을 열었다. 게임업계 직장인 밴드 5팀이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으며,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관람객과 함께 축제를 시작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본행사가 진행되는 11일에는 판교역 중앙광장과 북측광장, 테크원 타워 일대에 공연과 체험, 전시 프로그램이 동시에 운영됐다. 한곳에서 게임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에서 파생된 음악과 캐릭터, 창작물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현장에서는 관람객들이 'GXG 플레이 라운지'에서 콘솔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게임을 직접 해보는 체험형 공간과 함께 브랜드 체험존에서는 나만의 브롤러 그리기, 네컷 사진 촬영, 게임 캐릭터 성우 더빙 등 게임을 소재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됐다. AI를 활용한 게임 사운드 제작과 보드게임 체험도 진행됐다. 단순히 완성된 게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캐릭터를 만들거나 목소리를 입히고 음악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게임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코스프레와 서브컬처를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GXG 코스튬 체험존'에서는 관람객들이 다양한 코스튬을 직접 착용하고 페이스 페인팅과 타투 스티커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북측광장 B에 마련된 '일러스타 페스'에서는 코스프레 전문팀과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해 캐릭터 굿즈와 창작 콘텐츠를 선보였다. 게임 이용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서브컬처 문화를 축제 현장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게임을 소재로 한 전시도 이어졌다. 'GXG 코스튬 갤러리|스마일게이트 × RZCOS'에서는 '로스트아크' 캐릭터의 의상과 무기, 소품 등을 실제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게임 속에서만 보던 캐릭터와 아이템을 현실의 전시물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테크원 타워 2층에서는 'GXG SOUND TRACK 전시'가 진행됐다. 지난 2024년부터 올해까지 GXG SOUND TRACK 본선에 오른 창작곡과 각 음악의 모티브가 된 게임을 함께 소개해 게임과 음악의 연결고리를 보여줬다. 게임업계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만들어온 가치도 전시했다. 중앙광장에 마련된 GXG 사회공헌 전시는 교육과 문화, 환경, 지역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게임업계가 진행해온 활동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공연 프로그램도 이번 축제의 주요 볼거리다. 오후 6시부터 판교역 중앙광장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다이나믹 듀오의 개막 축하공연이 예정돼 있으며, 이후 게임음악 경연대회 'The 3rd GXG SOUND TRACK' 본선이 진행된다.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음악과 퍼포먼스를 현장에서 직접 선보이는 무대다. 행사는 하루짜리 프로그램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는 12일에는 '일러스타 페스 스테이지'에서 한국 서브컬처 공모전 코스프레 댄스 부문 결선과 인디 아이돌 쇼케이스, 꽃감이의 게임 뮤직 LIVE 등이 이어진다. 오후에는 'AI Game Sound Design Challenge(AI GSDC)' 시상식도 예정돼 있다. 축제 마지막 무대는 오후 5시부터 열리는 'GXG 갈라 콘서트'다. 네오플 장애인 첼로 연주단 '앙상블 힐'과 게임음악을 국악으로 재해석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무대에 오르며, GXG SOUND TRACK 본선 진출팀들도 경연곡과 자유곡을 선보인다. 행사장 곳곳을 돌아보도록 유도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주요 프로그램에 참여해 스탬프를 모으면 경품을 받을 수 있는 스탬프 랠리를 운영해 판교역 광장과 테크원 타워에 분산된 공연·체험·전시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이번 GXG는 게임을 하나의 콘텐츠 장르로 한정하지 않고 음악과 공연, 창작, 전시, 서브컬처 등으로 경험의 범위를 넓힌 것이 특징이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관람객뿐 아니라 게임 음악이나 코스프레, 창작 콘텐츠 등에 관심이 있는 방문객도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버스킹으로 시작해 게임음악 경연과 공연, AI를 활용한 사운드 제작, 코스튬 전시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게임이 다른 문화 콘텐츠와 결합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게임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게임을 소재로 만들고, 보고, 듣고, 체험하는 문화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2026-09-11 17: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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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베 관계, 투자 협력을 넘어 미래를 함께 만들어야
[경제일보] 한국과 베트남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2022년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된 이후, 이제 양국 협력의 성과를 교역액이나 외국인직접투자(FDI), 관광객 수만으로 평가해서는 부족하다. 숫자 뒤에는 이미 서로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두 사회가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은 35만명을 넘고,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0만명에 이른다. 다문화가정도 약 10만 가구에 달한다. 두 나라는 더 이상 정상 간 회담이나 정부 간 협정으로만 연결된 관계가 아니다. 서로의 가정과 학교, 일터와 지역사회 속에 이미 깊게 자리 잡았다. 수교 30년을 넘어선 지금, 전략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하나다. 한·베 관계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답은 양해각서(MOU)를 몇 건 더 체결하느냐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미 맺은 합의와 약속을 얼마나 현실의 성과로 만들고, 그것을 양국 국민에게 새로운 부가가치로 돌려줄 수 있느냐다. ◆‘베트남에 투자’에서 ‘베트남과 함께 성장’으로 지난 수십 년간 한·베 경제협력은 비교적 분명한 공식 위에서 움직였다. 한국 기업은 자본과 기술을 들고 베트남에 공장을 세웠고, 베트남은 토지와 노동력, 인프라를 제공했다. 이 모델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베트남에는 산업화와 성장의 동력을 제공했고, 한국 기업에는 생산기지와 시장 확대의 기회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의 베트남은 더 이상 저임금 노동력을 앞세운 생산기지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술 이전과 연구개발(R&D) 역량 확보, 청정에너지 전환, 글로벌 가치사슬의 상위 단계 진입을 원한다. 최근 양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첨단기술 인력 양성 등을 주요 협력 의제로 올리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하나의 가공공장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기술 생태계는 사람을 키우고 기업을 바꾸며 산업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 현지 인재를 길러내고, 혁신기업을 촉진하며,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이 베트남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라 “한국과 베트남이 세계시장에 내놓을 어떤 기술과 제품을 함께 만들어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와 반도체, 협력의 질을 가르는 시험대 AI와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 협력은 한·베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질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베트남은 고급 기술인력의 질을 높이고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 한국은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 속에서 기술 인력 부족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러나 협력 방식까지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국이 연구와 설계를 맡고 베트남은 조립과 패키징만 담당하는 구조라면 한계가 분명하다. 베트남 엔지니어가 설계와 연구, 소프트웨어, 데이터 분석 등 지식집약적 가치사슬에 단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협력은 ‘첨단기술 하청’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면 한국은 베트남을 단순한 생산기지가 아니라 공동 R&D 거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베트남 역시 기술을 받아들이고 함께 혁신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프라, 교육과 인재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협력의 평등성은 선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치사슬의 어느 단계까지 함께 들어가느냐에서 드러난다. ◆ODA와 지방협력도 ‘규모’보다 ‘실질’ 양국 지방정부 간 직접 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변화다. 인프라와 물류, 스마트시티, 첨단농업 등 협력 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다만 이런 확대일수록 현실적이고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 공적개발원조(ODA)나 지방정부 차원의 민관협력(PPP) 사업은 투입된 자금의 규모나 시설의 첨단성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역 주민이 실제로 접근할 수 있는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삶의 질 개선으로 연결되는지를 봐야 한다. 국제수준의 병원이나 학교도 현지 주민이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지역개발 협력은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지역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한 뒤 금융과 기술을 붙여야 한다. 순서가 바뀌면 협력은 성과보다 외형을 좇게 된다. ◆민간외교, 제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한·베 관계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사회의 실제 움직임이 공식 외교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베트남 노동자,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베트남 학생, 다문화가정의 구성원,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과 현지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이미 양국을 잇는 ‘현장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 판 아인 선 베트남우호친선단체연합(VUFO) 회장의 문제의식도 이와 맞닿아 있다. 민간교류가 단순한 문화행사와 친선방문을 넘어 경제·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들어내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외교는 길을 열고 제도를 만든다. 그러나 그 길을 실제로 움직이는 주체는 기업과 대학, 지방정부와 시민이다. 정부 간 합의가 아무리 많아도 기업이 움직이지 않고 연구자가 연결되지 않으며 지역사회가 체감하지 못하면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반대로 민간의 교류와 신뢰가 쌓이면 제도는 그것을 따라 움직인다. ◆다음 30년의 설계자는 청년 세대 앞으로 한·베 관계의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낼 주체는 양국의 젊은 세대다. 수많은 유학생과 엔지니어, 기자, 청년 기업가들이 두 나라를 오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두 언어를 구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양국의 기업문화와 사회심리, 생활방식까지 함께 이해한다. 이보다 강한 연결망은 만들기 어렵다. 한국에서 베트남어 교육을 확대하고, 베트남에서 한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것, 공동 연구 프로그램을 늘리고 청년 창업과 혁신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부수적인 교류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30년의 한·베 관계를 떠받칠 인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다. 무역협정과 투자협정은 정치·경제 환경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 그러나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쌓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의 의미를 다시 세울 때 30여 년간 이어진 ‘한국이 투자하고 베트남이 받아들이는’ 협력 모델은 이미 충분한 역할을 했다. 다음 단계는 달라야 한다. 함께 투자하고, 함께 연구하며, 함께 인재를 키우고, 함께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는 구조다. 베트남에는 한국의 산업화 경험과 자본, 기술,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한국에는 베트남의 성장하는 시장과 전략적 지리, 젊고 역동적인 인적자원이 필요하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이렇게 분명한 관계라면 한쪽은 투자자, 다른 한쪽은 수용자라는 오래된 구도에 머물 이유가 없다.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의 진짜 성적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협력했는가’에 있지 않다. “두 나라가 함께했기 때문에 비로소 만들어낼 수 있었던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가.” 앞으로 한·베 관계의 30년은 바로 그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2026-09-10 17: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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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캐나다 보복관세 하루 전 "제트기 美 판매금지" 위협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의 대미 보복관세 발효를 하루 앞두고 캐나다 항공기 제조사 봄바디어의 미국 판매를 막겠다고 위협했다. 환율과 금융시장 개방 문제에 이어 항공기 판매까지 압박 수단으로 꺼내며 양국 무역 갈등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봄바디어 제품을 미국에서 더 이상 판매하지 말라”며 “미국 시장을 원한다면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봄바디어 매출의 50% 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캐나다가 미국 기업에는 자국 시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봄바디어의 국가별 매출은 별도로 공개되지 않는다. 로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봄바디어 항공기 약 5100대 가운데 절반가량이 미국에 있지만, 운항 대수 비중과 매출 비중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이번 발언은 미국산 제트기 제조사 걸프스트림의 캐나다 인증 문제에서 촉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캐나다가 걸프스트림 G500·G600·G700·G800의 인증을 장기간 미뤘다며 캐나다산 항공기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일부 봄바디어 기종의 인증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했다. 캐나다 교통당국은 지난 2월 걸프스트림 4개 기종을 잇달아 인증했다. 그러나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관세와 봄바디어 항공기 인증 취소는 실제 시행되지 않았다. 항공기 안전 인증을 무역 보복에 사용하는 데 대한 업계의 반발도 이어졌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안전 문제가 아닌 경제적 이유로 이미 운항 중인 항공기의 인증을 취소할 권한이 있는지도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판매금지 위협 역시 아직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발언에 그친다. 백악관은 적용 대상과 시행 시기, 법적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봄바디어 항공기는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의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며 미국 연방항공청의 인증도 받은 상태다. 미국 경제에 미칠 역풍도 변수다. 봄바디어는 허니웰과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기업의 엔진과 부품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3000명 이상을 직접 고용하고 약 2800개 공급업체와 거래한다. 캔자스주에서는 방산용 항공기를 생산하고 텍사스주에서는 ‘글로벌 8000’ 날개 등을 제작한다. 판매 제한이 현실화하면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 내 일자리와 항공부품 공급망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봄바디어는 올해 2분기 매출 21억50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6% 성장했다. 수주 잔액은 218억달러에 달한다. 미국 시장에서의 영업 제한은 회사 실적과 기업가치에 직접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캐나다가 8일부터 미국산 제품 276억캐나다달러, 미화 약 200억달러 규모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가운데 나왔다. 적용 세율은 품목별로 15%, 25%, 50%이며 철강과 유제품, 가전, 농기계, 펄프·종이, 전자제품 등이 포함됐다. 미국이 지난달 22일 캐나다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에 맞선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캐나다달러 약세와 금융시장 개방 문제를 잇달아 제기하고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무역 흑자국과 교역을 중단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다만 항공기 판매금지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USMCA와 미국 행정법, 항공 안전 규정에 따른 법적 다툼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026-09-08 07: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