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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 재정 빨대'라는 망언…국민 생명을 예산 논리에 희생시킬 텐가
[경제일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 조직을 향해 ‘재정 빨대’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개탄스럽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난을 이유로 소방 예산을 삭감하거나 편성을 미루면서 소방 재정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방 재정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 부담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예산에 떠넘기고,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들을 재정 부담의 원인처럼 취급하는 것은 책임 있는 행정의 자세가 아니다. 예산은 아낄 수 있어도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까지 줄일 수는 없다. 소방 예산은 필요할 때마다 줄였다가 다시 늘리면 되는 선택적 지출이 아니다. 화재와 구조·구급 현장은 예산 사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노후 장비 교체가 늦어지고 개인 안전장비가 부족해지면 그 위험은 현장 대원에게 전가된다. 소방 인력과 장비 부족은 출동 지연과 대응력 약화로 이어지고,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순직 소방관 추모 행사 예산까지 삭감 대상으로 거론됐다는 현실은 행정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뒤틀렸는지를 보여준다. 생명을 구한 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일조차 비용으로만 따지는 사회가 과연 안전 선진국을 자처할 수 있겠는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2020년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재정 책임과 운영 구조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신분은 국가직으로 바뀌었지만 소방 재정은 여전히 지방정부의 재정 여건과 재원 배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국가가 소방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안정적인 재원 마련을 지방에 의존한다면 국가직 전환의 취지는 반쪽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지자체의 차이가 소방 장비와 대응 역량의 격차로 이어진다면 국민 안전마저 거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불공정이 발생한다. 어느 지역에 살든 국민은 일정 수준 이상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이제 책임을 지방에 미루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방 사무의 국가적 성격과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면밀히 분석하고, 국고 지원 비율과 재원 배분 기준을 현실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노후 소방차와 구조 장비 교체, 개인 안전장비 확충, 소방 시설 현대화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분야에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세워 안정적으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세수 변동에 따라 소방 예산이 출렁이지 않도록 예측 가능한 재원 확보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 역시 재정난을 이유로 삭감부터 할 것이 아니라 불요불급한 사업과 행사성 지출을 먼저 점검하고, 예산 편성 과정에서 소방 안전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국회도 소방관 처우 개선을 구호로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제도와 예산으로 책임을 입증해야 한다. 국가와 지방의 재정 분담 원칙을 법률과 중장기 재정계획에 명확히 반영하고, 소방 예산 삭감이 현장 대응력과 대원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산이 현장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으로 이어지는지 점검하고, 집행 결과와 지역별 안전 격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도 중요하다.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동시에 예산 운용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국민적 신뢰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방 재정 빨대’라는 표현으로 논점을 흐려서는 안 된다. 소방 조직의 재정 수요가 합리적인지 따지는 것과 소방 안전을 불필요한 지출로 취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재정 효율성을 따지려면 중복 사업과 낭비부터 찾아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조직을 비난하는 언어를 앞세워서는 안 된다. 공직자와 정치권의 언어에는 책임이 따른다. 현장의 위험과 희생을 외면한 채 예산 부담만 따지는 태도는 행정의 무능을 감추기는커녕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 소방 예산은 재정난이 닥칠 때마다 먼저 잘라내는 비용 항목이 아니라 재난에 대비해 지켜야 할 사회적 안전망이다. 중앙정부는 안정적인 재원 마련으로 국가직 전환의 약속을 완성하고, 지방정부는 안전 예산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 역시 소방관의 헌신을 치켜세우는 말과 실제 예산 사이의 간극부터 메워야 한다.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에게 낡은 장비와 부족한 예산을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국가는 국민에게 안전을 약속할 자격이 없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두고 돈이 아깝다고 말하는 순간, 국가가 지켜야 할 기본과 상식은 무너진다.
2026-10-19 11: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