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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보고서 통과 이틀 만에 사퇴…인사검증은 어디서 멈췄나
[경제일보] 국회가 적격이라고 보고서를 채택한 후보자가 이틀 뒤 물러났다. 대통령은 그사이 인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자의 자질을 둘러싼 공방은 끝났지만, 그를 지명하고 검증했던 과정에 대한 질문은 오히려 커졌다. 청와대와 국회가 차례로 후보자를 살폈는데도 임명 직전까지 적격성을 둘러싼 판단이 달라졌다면 어느 단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9일 자진 사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지명한 지 20일 만이다. 앞서 13일 물러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이번 개각에서 두 번째 낙마자다. 장관 후보자 6명 가운데 2명이 임명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특히 김 후보자의 사퇴에 이르는 과정은 인사검증 절차를 되짚어볼 중요한 사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5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고 이틀 뒤인 17일 적격 의견의 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퇴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청문 과정에서 상당 부분 소명됐다며 보고서 채택을 주도했다. 18일 이 대통령은 임명 여부에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서 국민의 눈높이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후보자는 사퇴했다. 적격 보고서 채택과 후보자 사퇴가 이틀 간격으로 이어졌다. 보고서 채택이 대통령의 임명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판단과 인사권자의 최종 결정이 다를 수도 있다. 다만 이번처럼 짧은 시간에 결론이 달라진 경우에는 그 사이 새롭게 확인된 정보가 있었는지, 기존 자료를 다시 평가한 것인지 구분해 살펴볼 여지가 있다. 김 후보자의 전직 보좌진이 추가 의혹을 담은 탄원서를 17일 청와대에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탄원서 전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김 후보자는 사퇴가 새로운 의혹 때문이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탄원서가 사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보의 인지 시점과 처리 경로다. 새로운 자료가 접수됐다면 언제 누구에게 전달됐고 어떤 추가 확인을 거쳤는가. 기존에 파악한 사안이었다면 최초의 적격성 판단과 최종 판단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경위를 알아야 이번 사례를 제도 개선의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용혜인 전 후보자 사례는 또 다른 문제를 보여준다. 용 전 후보자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을 겸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논란이 이어진 끝에 청문회 전에 물러났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허용된다. 쟁점은 법률상 가능 여부와 별개로, 후보자의 의원직 유지 의향과 그에 따른 정치적 논란을 지명 전에 충분히 확인했느냐는 것이었다. 앞서 청와대는 용 전 후보자의 겸직 의사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이라면 검증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 자체가 누락됐는지가 문제다. 의향을 파악하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판단의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후보자의 사퇴는 같은 결과로 이어졌지만, 드러낸 과제는 다르다. 용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지명 전에 무엇을 물었는지가 중요하다. 김 전 후보자 사례에서는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그 정보를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한 정보 누락과 정보를 확보한 뒤의 판단 차이를 모두 '검증 부실'이라는 말로 묶어버리면 정작 고쳐야 할 절차를 찾기 어려워진다. 인사검증의 핵심은 흠결을 찾아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확인한 정보를 적격성 판단으로 연결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남기는 데 있다. 대통령의 인사는 추천에서 시작한다. 후보군을 발굴하고 경력과 전문성을 살피는 과정이다. 이어 검증 단계에서는 재산과 세금, 범죄경력 등 법정 제출사항을 포함해 해당 직책과 관련된 이해충돌 가능성과 과거 행적을 확인한다. 최종 지명에서는 전문성과 정책 방향, 검증 결과를 종합해 판단한다. 인사청문회는 그 결정에 대해 국회가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별도의 절차다. 실제로 인사청문회법 제5조는 국회에 제출하는 임명동의안 등에 경력과 재산, 세금 납부 실적, 범죄경력 등에 관한 증빙서류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검증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임명권자 또는 지명권자가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각 단계의 기능은 분명하지만 실제 인선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추천 단계에서 우려가 제기됐는데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검증 조직이 사실관계를 확인했지만 적격성 판단 과정에서 중요도가 낮게 평가됐을 수도 있다. 지명 당시에는 없던 정보가 청문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 가운데 무엇이 이번 사례에 해당하는지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대통령이 18일 인사 시스템 재점검을 언급한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나름의 시스템과 노력이 있었지만 추가로 발견되는 문제도 있고, 정부의 판단과 다른 판단이 제기되기도 한다며 미처 대비하지 못한 부족함을 인정했다. 재점검의 범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달라질 것이다. 추천의 문제였다면 후보 발굴과 평판 확인 절차를 살펴봐야 한다. 검증에서 정보를 놓쳤다면 자료 수집과 교차확인 방식이 대상이다. 이미 알고도 지명했다면 당시 적용한 적격성 기준과 최종 판단 과정을 검토해야 한다. 청문회 이후 새로운 문제가 나왔다면 정보가 접수돼 인사권자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경로가 쟁점이다. 책임을 따지기 전에 판단의 경위를 복원하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인사검증 조직이 모든 의혹을 사전에 찾아낼 수는 없다. 수사기관과 같은 조사권을 갖고 있지 않은 데다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의 경계도 지켜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이유로 후보자를 무조건 배제한다면 유능한 인재의 공직 진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따라서 검증을 강화한다는 말이 모든 후보자에 대한 무제한 조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확인된 사실과 미확인 의혹, 법률상 결격 사유와 정치적·윤리적 판단을 구분하는 기준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 국회 청문 절차의 역할도 돌아볼 대목이 있다. 여당은 정부의 인사를 뒷받침하려 하고 야당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검증하려는 정치적 이해를 가질 수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의혹이 소명됐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의힘은 그렇지 않다고 맞섰다. 의견 차이 자체가 청문 절차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 다만 청문보고서에 확인된 사실과 다투는 의혹,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구분해 남기면 대통령의 최종 판단에도 더 명확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인사청문회는 정부가 선택한 후보자를 검증하는 자리이지, 청와대가 해야 할 사전 판단을 대신하는 자리는 아니다. 반대로 사전 검증을 마쳤다는 이유만으로 청문회에서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두 절차가 서로의 책임을 넘겨받는 관계가 아니라 판단을 보완하는 관계가 되려면, 무엇이 언제 확인됐고 어떤 결론을 거쳤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용'에는 '범사예즉립 불예즉폐(凡事豫則立 不豫則廢)'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미리 준비하면 이루어지고, 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뜻이다. 인사에서도 준비란 서류를 빠짐없이 모으는 행정 절차만을 뜻하지 않는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누가 판단하고 그 근거를 어디에 남길 것인지까지 정해두는 일이다. 후보자 두 명이 사퇴한 뒤 후임을 찾는 일과 이번 인선 과정을 되짚는 일은 별개의 과제다. 다음 후보자를 지명한다고 앞선 인사에서 어떤 정보가 누락됐는지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다. 검증 담당자를 바꾸더라도 적격성 판단의 기준과 기록 방식이 그대로라면 같은 질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이번 개각이 남긴 물음은 김승원과 용혜인이라는 두 이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추천자는 무엇을 보고 후보자를 올렸는가. 검증 조직은 어떤 사실을 확인했는가. 인사권자는 무엇을 근거로 지명을 결정했는가. 청문회에서 판단이 달라졌다면 새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 인사검증의 신뢰는 후보자가 물러난 뒤 누가 잘못했는지 다투는 것만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추천부터 최종 판단까지 무엇을 알고 어떻게 결정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개선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된 지 이틀 만에 후보자가 사퇴한 이번 사례는 그 기록과 설명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2026-09-21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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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미중회담,이번주 유엔총회에 세계 정상외교 '슈퍼위크'
[경제일보] 이란전쟁과 우크라이나전쟁, 고유가와 미중 패권 경쟁이 맞물린 가운데 세계 정상들이 미국에 집결한다. 뉴욕에서 열리는 제81차 유엔총회 일반토의에 이어 워싱턴DC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제81차 유엔총회 일반토의는 22일(현지시간) 시작된다. 첫날 연단에 오르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와 ‘힘에 의한 평화’를 재확인하고 이란전쟁을 비롯한 주요 현안에 대한 미국의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 트럼프, 이란전쟁 출구 제시할까 최대 관심사는 7개월째 이어지는 이란전쟁의 출구전략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원유 공급 불안과 국제 유가 상승을 불러왔다. 호르무즈해협에 이어 홍해에서도 긴장이 커지면서 세계 물가와 공급망에 부담을 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전쟁이 종결 국면으로 향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유엔총회를 계기로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 정상들과도 만나 전쟁 종식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 정부는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 등 이란 핵심 대표단의 유엔총회 참석을 허용했다. 다만 이동 범위를 유엔본부와 이란대표부, 공항 등으로 제한했다. 23일로 예정된 페제시키안 대통령 연설에서 미국의 제안에 대한 이란의 반응이 나올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대화 재개 메시지를 보낼지도 관전 포인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미 정상외교를 다시 추진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유엔총회 연설에서 구체적인 제안이 나오면 교착 상태인 북미 관계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선경 외무성 부상이 고위급 회의에 참석해 연설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부상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쿠바·베네수엘라 등 우호국 관계자들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재차 주장할지,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둘지가 관심이다. ◆ 트럼프, 공항서 시진핑 직접 영접 외교 무대는 곧바로 워싱턴으로 옮겨간다. 시 주석은 23일 미국을 방문하고 24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할 예정이다. 시 주석의 백악관 방문은 2015년 이후 11년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시 주석을 직접 맞을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정상 영접 관례를 넘어선 예우로, 무역과 기술 협상에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백악관 국빈 만찬에는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 경영진도 초청됐다. 회담의 핵심은 11월 만료되는 ‘무역 휴전’ 연장이다. 미국은 농산물과 항공기 구매 확대를, 중국에는 희토류와 핵심광물 수출 안정화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비전략 품목에 대한 관세 인하와 첨단기술 수출통제 완화를 원하고 있다. 대만 문제와 이란전쟁, 북미 대화도 의제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AI 분야에서는 기술 패권 경쟁을 이어가면서도 군사적 오판이나 통제 불능의 위험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할지가 관심이다. 이번 외교 슈퍼위크의 성과는 공동성명의 표현보다 실제 합의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이란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 틀과 미중 무역 휴전 연장, 희토류 공급 안정, AI 대화 채널 구축 가운데 어느 수준까지 결과를 내놓느냐가 향후 국제정세와 세계 경제의 방향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2026-09-20 07: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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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겸직'보다 무거운 공직의 책임
[경제일보]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례대표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거듭 분명히 밝혔다. 용 후보자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것”이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야당 현역 의원을 장관으로 지명한 데에는 연합정치의 의미가 있다는 설명도 내놨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회법 제29조는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을 겸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용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된 뒤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해서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의 질문은 법전의 마지막 조항에서 끝나지 않는다. 할 수 있느냐와 해야 하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번 논란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해 한 부처의 정책과 예산, 인사를 책임지는 행정부의 핵심 구성원이다. 국회의원은 정부를 감시하고 법과 예산을 심사한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이 두 직책의 겸직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 자체를 제도적 모순이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의원 출신 장관이 국회와 정부 사이의 소통을 돕는 장점도 있다. 다만 비례대표 의원이라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지역구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일정 기간 해당 지역의 대표가 사라지고 보궐선거가 필요할 수 있다. 비례대표 의원은 사퇴하더라도 명부의 후순위 후보자가 의석을 승계한다. 국회의 의석 자체가 비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입각할 때 의원직을 내려놓는 관행이 이어져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아예 비례대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경우 의원직에서 퇴직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까지 발의됐다. 개별 후보자를 겨냥한 입법이 돼서는 안 되겠지만, 이번 논란이 현행 겸직 제도의 원칙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용 후보자에게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그가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기본소득당은 원내 의석을 잃는다. 용 후보자 스스로도 자신이 당의 유일한 현역 의원이고, 사퇴할 경우 기본소득당이 원외정당이 되는 어려움이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2024년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명부를 통해 당선됐기 때문에 후순위 승계자가 기본소득당 소속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 고민이다. 소수정당에서 국회의원 한 명이 갖는 무게는 거대정당의 한 석과 다르다. 원내 발언권과 입법 활동, 정당의 존재감이 그 한 석에 걸릴 수 있다. 다당제와 정치적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도 작은 정당의 원내 활동을 가볍게 볼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 사정이 오히려 선택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기본소득당의 원내 지위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의원으로 남으면 된다. 성평등가족부를 이끌어 정부 정책을 책임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면 장관직을 선택하면 된다. 소수정당의 어려움은 두 선택 가운데 어느 쪽을 택할지 고민하게 하는 이유일 수는 있어도,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연합정치라는 설명 역시 마찬가지다. 야당 정치인이 정부에 참여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정치 실험이다. 서로 다른 정당이 정책 목표를 공유하고 정부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협치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다만 연합정치의 의미는 장관으로 정부에 참여하는 데서 이미 구현된다. 의원직까지 반드시 함께 보유해야 연합정치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장관으로 국무회의에 들어가 정부 정책을 함께 책임지면서 동시에 야당 의원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책임의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 정부 정책이 성공하면 장관의 성과이고, 정치적 부담이 생기면 야당 의원의 위치로 돌아가는 구조여서는 곤란하다. 공직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지가 많은 것이 아니라 책임의 위치가 분명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문제를 법률상 ‘이해충돌’이라는 단어 하나로 재단할 필요도 없다. 현행법이 허용하는 직책인 만큼 불법적인 이해충돌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더 정확한 문제는 역할의 충돌과 정치적 책임이다. 의원은 정부를 묻는 자리이고 장관은 정부의 답을 내놓는 자리다. 한 사람이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법은 허용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겸직이 바람직하다는 뜻까지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비례대표 의석은 개인의 정치적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 유권자는 후보 개인에게 직접 한 표를 준 것이 아니라 정당과 명부에 투표했다. 앞 순번 후보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 후순위 후보가 이어받도록 제도를 만든 것도 비례대표 의석의 이런 성격 때문이다. 이번 사안을 용 후보자 개인의 문제로만 끝내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구에게는 겸직을 허용하고 누구에게는 사퇴를 요구한다면 결국 논란은 반복된다. 비례대표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계속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입각할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도록 할 것인지 국회가 일반적인 원칙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제도를 고치기 전까지는 선택의 책임이 당사자에게 돌아간다. 현행법이 겸직을 허용하기 때문에 대통령도 사퇴를 강제할 수 없고 국회 역시 의원직을 빼앗을 수 없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정치적 판단이다. ‘예기’ 예운편에는 ‘대도지행야 천하위공(大道之行也 天下爲公)’이라는 말이 나온다. 큰 도가 행해지면 천하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다. 공직도 그렇다. 장관 자리도, 국회의원 자리도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모두 국민으로부터 일정 기간 맡겨진 자리다. 용 후보자가 기본소득당의 유일한 의원으로 남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책임이라고 판단한다면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대신 장관직을 맡지 않으면 된다. 반대로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서 국정을 책임지는 길을 택한다면 그 역시 존중해야 한다. 대신 비례대표 의석을 내려놓는 것이 자연스럽다. 두 선택 모두 정치적 비용이 따른다.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원래 그 비용까지 감수하는 일이다. 법이 두 자리를 허용한다는 사실이 두 자리를 모두 가져야 할 이유는 아니다. 이번 논란에서 국민이 묻는 것도 법률 조문 하나가 아니다.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무엇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장관도 하고 의원도 하겠다는 선택보다 어느 한쪽을 택하고 그 책임을 온전히 지는 정치가 더 설득력 있다. 책임정치는 자리를 얼마나 많이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리를 선택하고 그 선택의 대가를 얼마나 분명하게 감당하느냐에서 시작한다.
2026-09-11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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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검증의 출발선" 청와대 사전 검증은 무엇을 했나
[경제일보]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검증을 대신하는 절차가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마지막 문턱에 가깝다. 그 문턱에 누구를 세울 것인지를 먼저 가려내는 일은 인사권자의 몫이다. 이 둘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청문회는 검증 장치가 아니라 잘못된 인사를 뒤늦게 수습하는 무대가 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 청와대가 내놓은 설명은 그래서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인사청문 제도 자체가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검증 과정”이라며 두 후보자가 “인사위원장의 책임 아래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된 후보”인 만큼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민 눈높이에 부족함이 없도록 인사 검증체계를 갖추고 강화하겠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사청문회는 국민을 대신한 국회의 공개 검증 절차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청문회를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인사 시스템을 거쳐 지명했다면서 왜 곧바로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인가. 김 후보자에게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과 관련한 청탁 의혹과 과거 음주운전 문제가 제기됐다. 김 후보자는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반박하면서도 민원 전달 과정에는 신중했어야 했다고 밝혔고,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의 겸직 문제, 당 운영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 등이 제기되고 있다. 각각의 의혹과 적격성은 청문회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지명 전 어디까지 검토됐느냐는 것이다. 이미 알고도 장관직 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 청와대가 그 판단에 책임을 지면 된다. 반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사전 검증에 구멍이 있었다는 뜻이다. 둘 중 어느 경우든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말만으로 끝낼 문제는 아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대통령에게서 후보자를 고르는 책임을 넘겨받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 이후 국회가 공직 수행 능력과 도덕성 등을 공개적으로 다시 검증하는 견제 장치다. 사전 검증과 인사청문은 순서만 다른 같은 검증이 아니다. 책임의 주체부터 다르다. 청와대 검증은 대통령의 책임이고, 국회 청문회는 국회의 책임이다. 이 단순한 구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청와대가 후보자의 재산과 세금, 범죄·징계 이력, 이해충돌 가능성, 과거 행적과 정무적 리스크를 충분히 확인한 뒤 “이 정도 문제를 감안해도 국정을 맡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지명이다. 청문회는 그 판단에 누락이나 왜곡이 없는지 국민 앞에서 다시 따지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전 단계에서 걸러졌어야 할 문제가 지명 직후 쏟아지고, 그때마다 “청문회에서 보자”는 답이 반복되면 인사의 책임 구조가 거꾸로 선다. 대통령이 고르고 청와대가 검증했는데, 최종적으로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발견하고 판단하는 책임은 국회와 언론, 국민이 떠안게 되는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런 방식이 반복될 때 생기는 ‘지명의 관성’이다. 후보자를 발표한 뒤에는 철회 비용이 커진다. 인사 실패를 인정해야 하고 야당의 공세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이미 지명했다는 이유 자체가 후보자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되기 쉽다. 검증의 판단 기준이 ‘공직에 적합한가’에서 ‘청문회를 버틸 수 있는가’로 바뀌는 순간이다. 제대로 된 사전 검증은 흠결을 하나도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현실 정치에 거의 없다. 핵심은 어떤 흠결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기준을 미리 세우는 것이다. 음주운전이나 세금 체납, 부동산 투기, 연구윤리 위반, 갑질, 이해충돌, 수사·징계 이력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검증 항목부터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는 데 그쳐서는 부족하다. 공직의 성격에 따라 어느 정도의 흠결을 결격으로 볼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법무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기준과 산업부 장관에게 요구하는 전문성의 기준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제는 탈락 사유였던 문제가 오늘은 해명 가능한 문제가 되는 것도 곤란하다. 법적 결격과 정치적·윤리적 부적격을 구분하는 기준도 필요하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장관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장관은 형사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만 따지는 자리가 아니다. 국민에게 정책의 준수를 요구하고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다. 법률상 임명 가능성과 국민이 기대하는 공직 윤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을 그때그때 여론을 보며 판단해서는 인사 원칙이 생기지 않는다. 책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청와대 인사는 인사위원회를 중심으로 후보 추천과 검증, 정무적 판단이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인사수석실까지 신설됐지만 후보자 논란이 반복되면서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누가 후보자를 추천했는지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인사에는 보안이 필요하다. 후보군의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명 이후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다면 최소한 내부적으로는 추천 단계에서 놓쳤는지,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했는지, 알고도 정무적으로 수용했는지를 구분하고 책임을 남겨야 한다. 알고도 선택했다면 대통령과 인사위원회가 정치적 책임을 지면 된다. 몰랐다면 검증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상서’ 고요모에는 ‘지인즉철 능관인(知人則哲 能官人)’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야 사람을 제대로 벼슬에 쓸 수 있다는 의미다. 수천 년 전에도 국정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를 ‘사람을 알아보는 일’에서 찾았다. 인사가 어려운 것은 시대가 달라져도 마찬가지다. 사람에게는 과거가 있고 완벽한 후보자는 없다. 사생활과 공적 검증의 경계를 어디에 둘지도 쉽지 않다. 지나치게 가혹한 검증은 유능한 인재가 공직을 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준이 필요하다. 정권에 가까운 사람에게는 느슨하고 반대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가 아니라, 어느 정부에서든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기준 말이다. 청와대가 이번에 인사 검증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한 것은 필요한 조치다. 그러나 ‘강화하겠다’는 말만 반복해서는 같은 문제가 다음 개각에서 다시 돌아온다. 검증 항목을 표준화하고, 중대한 결격 사유와 해명 가능한 사안을 구분하며, 추천·검증·정무 판단의 책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명 뒤 예상하지 못한 중대 문제가 드러났을 때는 어떤 단계에서 놓쳤는지 복기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인사청문회는 청와대 검증의 실패를 대신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 국회가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지명하기 전에 제대로 검증하는 것은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권한이자 책임이다. 청문회에서 모든 것을 확인하겠다면 사전 검증은 형식이 된다. 반대로 청와대가 자신 있게 검증을 마쳤다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청문회에서 보자”에 앞서 왜 그 문제를 감수하고도 지명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사의 신뢰는 흠결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왜 골랐고, 무엇을 확인했으며,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지 분명할 때 생긴다. 청문회는 검증의 시작이 아니다. 대통령의 인사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국민 앞에서 확인하는 마지막 문턱이어야 한다.
2026-09-08 09: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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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최대 120개, 이제 비핵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제일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이 최대 120개에 이를 수 있다는 우리 국방당국의 추정이 나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 상황에 대해 “보통 80~120개 정도로 본다”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수치를 특정하기에는 제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차이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 핵능력이 더 이상 잠재적 위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은 핵물질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핵탄두 소형화와 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해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스스로 핵보유국 지위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근 북한을 사실상 핵을 가진 국가로 전제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올해 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가 북한을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원칙은 유지돼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와 국제사회의 비핵화 원칙을 생각하면 북한의 핵보유를 법적·정치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안 장관 역시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 인정할 수 없으며 미국의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제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식적인 인정과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실제 핵무기가 사라지진 않는다. 북한이 수십 기를 넘어 최대 100기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면 우리의 대북정책과 국방전략 역시 그 현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지금까지 비핵화 협상은 큰 틀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관계 개선 등 상응 조치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2018년과 2019년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결국 북한의 비핵화 범위와 제재 완화 수준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후 협상은 장기간 교착됐고 그 사이 북한의 핵능력은 오히려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방식만 반복해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비핵화 목표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만 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선회하면 북한의 핵개발을 사후적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의 핵무장론을 자극하고 동북아 전체의 핵확산 위험을 키울 가능성도 있다. 필요한 것은 목표와 현실을 구분하는 전략이다. 최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로 유지하되 그 과정은 보다 현실적인 단계로 나눌 필요가 있다. 첫 단계는 북한의 핵능력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핵물질 생산과 추가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방안을 협상의 출발점으로 검토할 수 있다. 이미 상당한 핵능력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로 모든 핵무기를 한꺼번에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협상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 두 번째는 핵탄두와 핵물질의 실질적인 감축이다. 국제사회의 검증 아래 일부 핵시설과 핵물질을 폐기하고 그에 상응해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북한의 신고만 믿어선 안 된다. 국제사회의 접근과 사찰이 보장돼야 한다. 최종 단계는 완전한 비핵화다. 핵동결이나 감축은 비핵화를 대신하는 목표가 아니라 그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중간 단계의 합의가 북한의 핵보유 지위를 법적·정치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도 안 된다. 중간 단계를 인정한다고 해서 북한의 핵보유를 영구적으로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외교와 동시에 강력한 억지력도 유지해야 한다. 협상의 성공 가능성은 상대가 도발했을 때 감당해야 할 비용이 분명할수록 높아진다. 한미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고 한국형 3축체계와 미사일방어, 정보·감시·정찰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핵전력을 확보했다면 개별 미사일 요격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사 징후를 조기에 탐지하고 지휘부와 이동식 발사대, 핵시설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정보·감시·정찰 능력과 지휘통제체계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과 정찰위성, 무인체계 등 정부가 추진하는 첨단전력도 이런 큰 전략 안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핵우산이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한미가 어떤 절차를 통해 핵 대응을 협의할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미국 대통령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하는 억지력은 정권 변화 때마다 불확실성이 생길 수 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하고 동시에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주목해야 한다. 북미 대화의 문이 다시 열린다면 한국은 협상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 북핵은 미국 본토의 문제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사전에 협상 목표와 단계별 조건을 조율해야 한다. 핵동결 단계에서 무엇을 요구할지, 어떤 경우 제재 완화를 허용할지, 최종 비핵화까지 어떤 검증 장치를 둘지 우리의 안을 먼저 갖고 있어야 한다. 북미 정상 간 정치적 합의가 한국의 안보 이해와 충돌하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가장 위험한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의 핵능력을 과장해 공포를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핵화라는 원칙만 반복하며 현실의 변화를 외면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현실 인식과 흔들리지 않는 원칙의 결합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57개인지, 80개인지, 120개인지 정확한 숫자는 공개 정보만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안 장관도 이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적어도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핵전력을 확보했다는 현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비핵화는 구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더 만들지 못하게 묶어야 한다. 또 이미 가진 핵은 단계적으로 줄이고 최종적으로 폐기하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경로가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미의 강력한 억지력과 검증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북핵 최대 120개 추정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기존 대북전략을 다시 점검하라는 경고다. 비핵화라는 목표는 유지하면서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현실에 맞게 바꿔야 한다. 억지력은 더 강하게, 외교는 더 현실적으로 만드는 것이 지금 필요한 북핵 전략이다.
2026-08-21 13: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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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훈련 축소 압박…동맹을 거래 대상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실드(UFS)를 대폭 축소하라고 미 국방부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과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올해 UFS는 지난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며 한국군 약 1만8000명이 참가한다.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의 드론과 사이버 공격,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변화한 위협까지 훈련에 반영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의 규모와 방식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와 북한의 군사적 위협, 한반도 정세에 따라 훈련을 확대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외교적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일정 부분 유연성을 발휘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다만 그 기준은 어디까지나 군사적 필요성과 한반도 안보여야 한다. 훈련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한국이 제3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군사행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합훈련을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맹의 핵심 수단인 군사훈련이 거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면 동맹의 예측 가능성과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 참여했는지를 한미 연합훈련 문제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한미동맹의 근간은 한반도 방위다. 한국이 중동에서 어떤 군사적 역할을 할지는 우리의 국익과 법적 절차, 군사적 능력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동맹국이라고 해서 미국이 벌이는 모든 군사행동에 자동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지역의 군사행동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반도 방위태세와 관련된 훈련을 축소한다면 동맹을 공동 안보체제가 아니라 비용과 보상의 관계로 보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더구나 지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줄어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핵·미사일 능력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고 전쟁 양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무인기와 사이버 공격, GPS 교란, 정밀타격 같은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려면 한미 양국군이 실제 상황을 가정한 지휘·통제와 연합작전 능력을 반복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올해 UFS가 이런 현대적 위협을 훈련에 포함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합훈련은 단순히 병력을 모아 움직이는 행사가 아니다. 전쟁이 발생했을 때 한국군과 미군이 같은 작전계획과 지휘체계 아래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훈련이 줄어들면 그만큼 실전 대비 능력을 검증할 기회도 줄어든다. 물론 훈련의 규모가 크다고 억지력이 자동으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 모의훈련과 지휘소훈련, 야외기동훈련을 적절히 조합하고 훈련의 질을 높이는 쪽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 AI와 무인체계, 사이버전처럼 달라진 전쟁 방식을 얼마나 정교하게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때문에 훈련을 줄일지 확대할지도 군 당국의 전문적인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첫 정상회담을 한 뒤에도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외교적 메시지가 일정 부분 담겨 있을 가능성은 있다. 북미 대화 재개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 긴장을 낮추고 북한의 비핵화와 군사적 위협 감소를 이끌 수 있다면 외교적 기회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군사적 억지력의 목적도 결국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 다만 대화를 위해 훈련을 조정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조치도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한미가 먼저 연합훈련을 축소하는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긴장 완화를 만들기 어렵다. 외교적 유연성이 실질적인 안보 성과로 이어지려면 북한의 상응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이 북미 간 협상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 안보의 직접 당사자는 대한민국이다. 미국과 북한이 관계 개선을 논의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 대북 제재 문제를 협상 카드로 다룬다면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훈련 조정의 범위와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 간 개인적 관계나 미국의 일방적 판단에 따라 한미 안보정책이 좌우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동맹은 정상 간 친분이 아니라 제도와 합의, 공동의 이해관계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의 국방 역량을 더 강화할 필요도 있다.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의 핵심축이지만 미국의 정책이 언제나 한국의 이해와 일치한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 미국 행정부가 바뀔 때마다 방위비나 주한미군, 연합훈련 문제가 반복적으로 흔들린다면 한국 스스로 대응 능력을 높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군의 미사일방어와 정밀타격, 지휘·정보·사이버 역량을 높이는 자강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동맹이 강할수록 자강도 강해야 한다.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는 국가가 동맹에만 의존하면 협상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은 오랜 기간 공동의 희생과 신뢰를 통해 동맹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 동맹을 단기적인 비용 문제나 제3국 군사행동 참여 여부와 연계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미국 역시 한국이 아시아 안보와 공급망, 경제안보에서 가진 전략적 가치를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것도, 반미 정서로 맞서는 것도 답이 아니다.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어떤 수준의 연합태세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군사적 근거와 국익을 중심으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한미훈련의 규모와 방식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판단 기준은 북한의 위협과 한반도 안보환경, 양국 군의 대비태세여야 한다. 방위비나 제3국 군사행동 참여 여부가 그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지시는 한미동맹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맹을 단기적인 비용과 보상의 거래로 볼 것인가, 장기적인 공동 안보의 약속으로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되 우리의 안보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동맹은 조정할 수 있어도 신뢰까지 거래해서는 안 된다.
2026-08-18 11: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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