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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정보 대응 본격화…국내외 플랫폼 신고체계 정비
[경제일보] 온라인 허위조작정보 유통에 대응하기 위한 개정 정보통신망법이 시행되면서 주요 플랫폼들의 콘텐츠 관리 체계가 변화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허위조작정보 신고 창구를 신설한 데 이어 유튜브도 국가별 법률 위반 콘텐츠 신고 절차를 정비하는 등 국내외 플랫폼들이 법 시행에 맞춘 대응 체계 구축에 나서는 모습이다. 7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개정 정보통신망법 시행에 맞춰 네이버와 카카오는 허위조작정보 신고 기능을 반영한 운영 체계를 마련했다. 양사는 기존 불법정보 신고 시스템을 기반으로 허위조작정보 관련 신고 항목을 추가하고 처리 절차를 정비하며 법 시행에 대응하고 있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법원 판결 등으로 불법 또는 허위조작정보로 확정된 내용을 반복적으로 유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행위 등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의 플랫폼 사업자는 관련 신고가 접수될 경우 자체 운영 정책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게시물 삭제나 노출 제한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 특히 기존 정보통신망법 제44조에 따르면 이용자는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를 정보통신망에 유통시켜서는 안되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운영ㆍ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 제1항에 따른 정보가 유통되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됐다. 또한 이번에 개정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4에 명시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단체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가 정보통신망에 유통되지 아니하도록 모니터링 등 자율규제 가이드라인을 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를 맞춰 절차를 정비한 것이다. 이에 네이버는 전날 공지사항을 통해 개정법 시행에 맞춰 허위조작정보 신고 접수 기능을 반영했다고 안내했다. 앞서 뉴스와 블로그, 카페, 댓글 등 주요 서비스에서 명예훼손과 불법정보 등에 대한 신고 및 임시조치 제도를 운영해 온 만큼, 기존 시스템에 허위조작정보 신고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카카오도 지난달 30일부터 고객센터와 신고센터에 허위조작정보 신고 항목을 마련했다. 기존 유해정보와 불법촬영물 신고 체계에 허위조작정보를 추가했으며, 서비스별 신고센터를 통해 관련 신고를 접수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비했다. 국내 플랫폼뿐 아니라 글로벌 플랫폼도 법률 위반 콘텐츠 신고 절차를 보완하고 있다. 유튜브는 고객센터를 통해 상표권과 저작권, 개인정보 침해, 명예훼손 등 각종 법적 신고를 위한 별도 웹 양식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떤 신고 유형을 선택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기타 법적인 문제' 신고 양식을 이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해당 신고 양식은 국가별 법률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테러 관련 콘텐츠와 외설물, 증오 표현 등 각국 법률에 저촉될 수 있는 사례를 포함하고 있으며, 유튜브는 신고 내용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해당 국가의 법률과 사법 절차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필요한 경우 법원 명령이나 권리 당사자, 공식 법률대리인의 요청을 요구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다만 유튜브의 신고 절차는 국내 개정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허위조작정보 전용 신고 창구라기보다 국가별 법률 위반 가능 콘텐츠를 처리하기 위한 기존 법적 신고 체계를 활용하는 성격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플랫폼들이 허위조작정보 항목을 별도로 마련한 것과는 운영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플랫폼 업계에서는 이번 제도 시행이 콘텐츠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이미 주요 서비스에서 신고와 임시조치, 운영정책 위반 게시물 제재 체계를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법 시행에 따라 기존 신고 체계에 허위조작정보 대응 기능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제도가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다만 향후 실제 신고 사례가 축적되면 플랫폼별 운영 기준도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신고와 검토가 늘어나면서 플랫폼들은 운영 정책과 심사 기준을 지속적으로 보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허위정보 확산 방지 사이의 균형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김종철 방미통위 위원장은 개정 정보통신망 국무회의 의결에 대해 "이번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허위조작정보로부터 국민의 인격권과 재산권 등 기본권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며 "하위법령 개정 시 피해자 구제와 공공의 이익을 지키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단계적이고 차등적인 규제 방식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2026-07-07 17: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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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출구조사 뒤집고 서울시장 5선…국민의힘, 민주 압승 속 '서울' 지켰다
[경제일보] 6·3 전국동시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후보를 누르고 5선에 성공했다. 개표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출구조사 우세를 등에 업은 정 후보가 앞섰지만, 4일 오전 강남권과 송파·강동 등 보수 성향 지역 개표가 본격 반영되면서 오 후보가 막판 역전했다. 민주당이 전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12곳을 차지하는 압승 흐름을 만들었지만, 국민의힘은 수도 서울을 지키며 정국 견제의 상징 거점을 확보했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선거 패배를 승복하며 “모든 것이 제 탓”이라며 “시민 선택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출구조사 뒤집은 오세훈, 강남권 개표 반영되며 역전 서울시장 선거는 투표 종료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와 실제 개표가 엇갈린 대표 사례로 남게 됐다. 방송3사 공동 출구조사에서는 정원오 후보가 51.4%, 오세훈 후보가 46.0%로 정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표 흐름은 새벽 이후 급변했다. 오 후보는 개표 13시간 만에 정 후보를 역전했고, 이와 같은 흐름을 막판까지 이어갔다. 오 후보의 승리는 지난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막판 강남권 개표로 승부가 뒤집힌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번에도 출구조사와 개표 초반 흐름은 정 후보 쪽이었지만, 실제 투표함은 마지막까지 다른 결론을 남겼다. 오 후보는 “이번 선거 결과는 시민들의 승리”라며 “마지막 4년 모든 역량을 서울을 위해 쓰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중앙정부와 서울시 사이의 긴장 관계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앞서 오 후보는 선거 막판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국무회의에 참석해 시민의 대표자로서 정부를 견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압승 속 ‘서울 패배’…승리 크기 줄인 마지막 변수 이번 지방선거 전체 판세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정리된다. 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12곳, 국민의힘은 서울·대구·경북·경남 등 4곳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경기·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2곳과 부산·울산, 충청·강원·호남·제주에서 우위를 확보했고, 특히 부산과 울산의 승리는 영남 정치 지형 변화의 신호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17곳 중 12곳을 가져갔던 흐름과 비교하면, 이번 선거는 지방권력의 대대적 교체에 가깝다. 그럼에도 서울 패배는 민주당에 뼈아프다. 서울은 전국 최대 광역단체이자 정국 해석의 상징 지역이다. 정 후보가 출구조사에서 앞섰고 개표 중반까지도 우세를 유지했던 만큼, 막판 역전패의 충격은 작지 않다. 민주당은 전체 승리에도 불구하고 “수도 서울을 넘지 못했다”는 평가를 안게 됐다. 차기 정국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을 근거지 삼아 견제론을 전면화할 수 있게 된 점도 부담이다. 국민의힘은 전국적으로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지만, 서울을 지킨 것은 정치적 방어선이 됐다. 대구·경북·경남에 더해 서울을 확보하면서 최소한의 반전 명분을 마련했다. 특히 오 후보의 5선 성공은 국민의힘 내부에서 수도권 재건론과 차기 대권 구도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 다만 부산·울산 상실과 충청·강원 열세는 당 지도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게 만들 전망이다. 오세훈 5선, 서울시정은 ‘연속성’…중앙정치엔 ‘견제 축’ 부상 오 후보의 승리는 서울시정의 연속성을 뜻한다. 재건축·재개발, 한강변 개발, 교통망 확충, 청년·약자 동행 정책 등 기존 시정 방향은 큰 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선거 기간 오 후보가 강조한 것은 정권 견제와 서울시정의 안정성이었다. 민주당 소속 대통령과 다수 광역단체장이 동시에 힘을 얻은 상황에서 오 후보는 서울시를 야권의 핵심 행정 거점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정 후보의 패배는 민주당의 서울 전략에 숙제를 남겼다. 성동구청장 3선 경력을 바탕으로 ‘생활 행정’과 ‘실용 행정’을 내세웠지만, 서울 전체 선거에서는 보수층 결집과 현직 시장 프리미엄을 넘지 못했다. 특히 출구조사 우세가 실제 개표에서 뒤집힌 만큼, 민주당은 강남권과 동남권, 중도층·고령층 표심을 다시 분석해야 한다. 서울시장 선거가 남긴 또 다른 쟁점은 선거관리 논란이다. 서울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개표 지연과 정치권 공방이 이어졌다. 선관위는 재선거 사유는 아니라는 입장을 냈지만, 선거관리 신뢰 문제는 별도 책임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장 선거가 초박빙으로 끝난 만큼 투표 과정의 혼선은 당분간 정치적 논란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정국 전망은 복합적이다. 민주당은 지방권력 대부분을 확보하며 국정 운영 동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서울을 국민의힘에 내주면서 완전한 압승의 상징성은 줄었다. 국민의힘은 전국적 패배 속에서도 서울을 지키며 대여 견제의 구심점을 확보했다. 앞으로의 정국은 민주당의 지방권력 장악과 국민의힘의 서울발 견제론이 맞부딪히는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종 성적표는 민주당의 승리”라면서도, “다만, 가장 극적인 장면은 서울에서 나왔다. 출구조사를 뒤집은 오세훈의 5선, 정원오의 승복, 그리고 서울을 둘러싼 여야의 엇갈린 표정은 이번 선거가 남긴 정치적 압축판”이라고 했다.
2026-06-04 10: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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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충암고 라인은 우연인가, 권력의 통로였나
[경제일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재판에서 ‘충암고 라인’ 문제는 피하기 어려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은 사건 초기부터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군 지휘 라인과 방첩 관련 인사들이 계엄 실행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재판에서 다뤄지면서 특정 인맥이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사건과 김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사건은 항소심 절차로 넘어갔다. 1심 법원은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김 전 장관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사이의 의사 교환, 군 지휘부에 전달된 명령의 성격이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그 과정에서 특정 인맥이 공식 지휘 체계 안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도 재판부가 살펴볼 대목이다. 다만 충암고라는 학연 자체를 형사책임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출신 학교가 같다는 사정만으로 공모관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친분이나 인맥 그 자체가 아니라 구체적 행위다. 누가 어떤 직책에 있었는지, 어떤 권한을 행사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했는지, 그 지시가 실제 병력 이동이나 기관 장악 시도와 어떻게 연결됐는지가 판단의 대상이다. 이 점을 놓치면 재판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 학연 논란이 지나치게 앞서면 계엄의 법적 책임이 사적 관계 문제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반대로 학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논의를 덮어두면 국가권력의 핵심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공식 인맥이 작동했는지를 살피기 어렵다. 학교가 아니라 권한을 보고, 친분이 아니라 명령의 경로를 봐야 하는 이유다. 공식 직책과 비공식 신뢰의 경계 국가비상권한은 공식 절차와 공적 책임을 전제로 움직여야 한다. 계엄은 군과 경찰, 행정부, 헌법기관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권한이다. 그래서 그 판단 과정에는 법률상 요건과 국무회의 심의, 국회 통제, 군 지휘 체계의 적법성이 함께 요구된다. 특정 인맥이나 사적 신뢰가 그 판단을 대신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비상권한이 공식 제도보다 폐쇄적 관계망을 통해 움직였는지가 재판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김용현 전 장관은 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는 윤 전 대통령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계엄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다.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판단을 군 지휘 계통으로 연결하는 자리다. 단순한 참모가 아니라 군 조직을 현실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국무위원이다. 1심 재판부가 김 전 장관의 책임을 중대하게 판단한 것도 그가 계엄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수행한 역할을 무겁게 본 결과로 읽힌다. 이상민 전 장관의 위치도 별도로 살펴야 한다.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지방행정, 재난안전 체계와 맞닿아 있는 자리다. 계엄 국면에서 경찰과 행정 조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군 병력 투입 문제와 함께 중요한 사안이다. 이상민 전 장관이 어떤 판단을 했고 어떤 보고나 지시를 받았는지는 관련 재판과 수사에서 계속 다뤄질 수 있다. 이 역시 충암고 출신이라는 점보다 당시 맡고 있던 직책과 권한이 핵심이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경우는 또 다른 층위에 놓인다. 방첩사는 군 내부 보안과 정보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계엄 상황에서 방첩 기능이 정치인 체포 의혹이나 선거관리위원회 관련 수사 구상과 어떻게 맞물렸는지는 재판의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여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에 반대했다는 취지로 증언하면서도 자신의 형사재판과 관련된 핵심 대목에 대해서는 증언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목은 항소심에서도 증언의 신빙성과 책임 범위를 둘러싼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학연 자체가 아니라 기능을 봐야 한다 충암고 라인이라는 표현은 정치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법정에서 필요한 것은 인상비평이 아니다. 형사책임은 구체적 행위와 고의, 공모관계, 실행 관여 정도에 따라 판단된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사정은 배경으로 참작될 수는 있어도 유죄 판단의 직접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기사와 재판 모두에서 필요한 것은 특정 학교명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를 추적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학연 문제가 완전히 주변부로 밀릴 수는 없다. 대통령과 핵심 국무위원, 군 정보기관 지휘부가 특정 인맥으로 연결돼 있었다면 국가비상권한이 공적 검증 절차를 거쳤는지 따져봐야 한다. 계엄은 고도의 법률 판단과 군사 판단이 결합된 사안이다. 여러 기관의 견제와 토론이 필요한 영역에서 사적 신뢰가 의사결정의 속도를 높였거나 반대 의견을 줄였다면 이는 형사책임과 별개로 공적 책임의 대상이 된다. 군 조직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더 민감하다. 대다수 군인은 출신 학교나 정치적 친분과 무관하게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였다. 그러나 윗선의 특정 인맥이 계엄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 부담은 일선 장병에게 전가된다. 병사와 실무 간부는 학연 정치의 당사자가 아니지만 그 결과로 수사와 재판, 사회적 비난의 대상으로 함께 묶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책임의 경계는 더 정확히 그어져야 한다. 군 전체를 충암고 라인과 동일시하는 방식도 경계해야 한다. 계엄에 동원된 군인은 동일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집단이 아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과 명령을 설계한 사람, 실행 가능성을 판단한 사람과 현장에서 움직인 사람은 구분돼야 한다. 특정 인맥의 문제를 군 전체의 문제로 확장하면 정작 계엄 판단에 관여한 핵심 인물들의 책임은 희석될 수 있다. 계엄 의사결정의 폐쇄성 이번 재판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계엄 논의가 얼마나 공식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쳤느냐다. 대통령이 비상권한을 행사하려면 법률상 절차와 헌법적 한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국무회의 심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관련 장관들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군 지휘부에 어떤 사전 설명이 있었는지, 국회 통제 가능성이 어떻게 고려됐는지는 모두 중요한 쟁점이다. 계엄과 같은 중대 사안에서는 반대 의견이 제도 안에서 충분히 제기돼야 한다. 그러나 특정 인맥 중심으로 판단이 좁혀졌다면 반대 의견은 형식적으로 처리되거나 배제될 수 있다. 여 전 사령관이 계엄에 반대했다는 취지로 증언한 대목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다만 그의 진술은 다른 증거와 함께 평가돼야 하며 자신의 재판과 관련된 부분에서 증언을 거부한 사정도 신빙성 판단에서 함께 다뤄질 수 있다. 김 전 장관의 역할은 이와 맞물려 있다.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다면 그 가까움은 권한 행사에서 더 높은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통령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그 뜻이 군에 미칠 영향을 더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관이 대통령의 판단을 군 조직에 전달하는 데 그쳤는지, 아니면 실행 방향을 함께 설계했는지는 형량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상민 전 장관과 행정안전부 라인에 대한 판단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경찰과 행정 조직이 계엄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군 병력 투입 문제와 분리해 볼 수 없다. 계엄이 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기관 전체를 움직이는 권한이었다면 행정안전부와 경찰 지휘 체계의 대응 역시 재판과 수사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이때도 핵심은 출신 학교가 아니라 실제 권한 행사와 관여 정도다. 전직 대통령과 사적 인맥의 책임 전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개인적 친분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을 요직에 기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인사가 국가비상권한 행사와 맞물렸을 때 책임의 기준은 달라진다. 대통령 주변의 사적 신뢰 관계가 공적 절차를 대신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대통령에게도 돌아갈 수밖에 없다. 윤 전 대통령에게는 재판에서 방어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다만 전직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판단이 어떤 인맥과 지휘 체계를 통해 실행됐는지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계엄에 관여한 인물들이 법정에서 서로 책임을 나누거나 기억을 다투는 상황은 그 자체로 국가권력 행사 과정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대통령의 권한은 개인의 결단만으로 설명될 수 없고 그 결단을 실행한 사람들의 권한과 책임까지 함께 평가돼야 한다. 충암고 라인 논란은 윤 전 대통령 재판의 부수적 소재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사건 전체를 학연 문제로만 설명할 수도 없다. 이 논란의 본질은 특정 학교 출신들이 많았다는 사실보다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서 공식 제도와 비공식 신뢰가 어떻게 교차했는지에 있다.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살필 부분도 그 지점이다. 인맥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인맥이 권한 행사와 지시 전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중요하다. 이 문제는 대다수 군인의 억울함과도 맞닿아 있다. 군인들은 학연 정치의 주체가 아니다. 현장의 장병과 실무 간부는 특정 인맥의 판단을 알 수 없었고 그 판단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계엄이 실행되자 그 부담은 군 전체에 남았다. 그래서 책임은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 명령을 받은 사람과 명령을 가능하게 한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면 군 조직은 계속 논란의 전면에 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은 뒤로 밀릴 수 있다. 권한 행사와 지시 경로가 쟁점 충암고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인맥에 속한 인물들이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서 핵심 직책을 맡았고 실제 지시와 실행에 관여했다면 그 역할은 재판에서 검토될 수밖에 없다. 학연은 책임의 직접 근거라기보다 의사결정 경로를 살피는 배경 사정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항소심에서는 공모관계와 지시 경로, 각 피고인의 관여 정도가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의 결심을 군 지휘 체계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군 정보기관 지휘부가 어떤 지시를 받았고 어떤 판단을 했는지, 행정안전부와 경찰 지휘 체계가 계엄 국면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함께 다뤄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인맥이 공식 절차를 우회하거나 보완하는 통로로 기능했는지도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계엄 재판은 군 전체를 향한 비난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 사건에서 우선 살필 대상은 현장에 투입된 다수 장병이 아니라 그 병력이 움직이도록 만든 의사결정 과정이다. 충암고 라인 논란도 같은 기준에서 봐야 한다. 학교가 아니라 권한, 친분이 아니라 지시, 인맥이 아니라 실행 관여 정도를 기준으로 책임을 가려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법정은 그 기준을 확인하는 자리다. 대통령 주변의 사적 신뢰가 국가비상권한 행사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방부와 군 지휘 체계가 어떤 경로로 움직였는지, 그 결과 대다수 군인에게 어떤 부담이 남았는지를 따지는 절차다. 남은 재판은 특정 인맥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넘어 공식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의 책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가려내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2026-05-29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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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물이 빠지면 돌이 드러난다. 수락석출(水落石出). 소동파의 글에서 비롯된 이 말은 세월이 지나 정치의 언어가 됐다. 격랑이 높을 때는 무엇이 바닥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빠지고 나면 감춰졌던 돌, 곧 본질이 드러난다. JTBC 드라마「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24일 막을 내렸다. 최종회에서 황동만은 신인감독상을 받는다. 실패와 열등감, 자조와 체념 사이를 오가던 인물이 끝내 자기 이름으로 불리는 장면은 요란한 승리라기보다 조용한 회복에 가까웠다. 이 드라마가 남긴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 이 물음은 개인의 마음속에서 시작되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새 정치의 언어가 되고 있다. 지금 정국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오는 6월 3일 치러진다. 여야는 일찌감치 ‘심판’과 ‘견제’, ‘개혁’과 ‘저지’의 언어를 앞세워 총력전에 들어간 상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여야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 선거는 자주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선다는 싸움으로 변질된다. 그 과정에서 국민은 유권자가 아니라 동원 대상이 되고,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진영의 숫자로 환산된다. 문제는 정치권의 말이 국민의 삶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민생은 여전히 팍팍하다. 정부도 올해 초 민생 체감 정책을 국무회의 안건으로 올려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이 체감하는 정치는 여전히 멀다. 물가, 일자리, 주거, 교육, 노후의 불안 앞에서 시민은 묻는다. “나는 이 나라에서 존중받고 있는가.” “성실하게 살아도 내 삶은 나아질 수 있는가.” “정치는 내 불안을 알고 있는가.” 드라마 속 인물들이 싸운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안의 무가치감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민이 싸우는 무가치감은 개인의 성격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정직하게 일해도 뒤처지는 느낌, 법과 원칙이 강자에게는 느슨하고 약자에게는 엄격하다는 의심, 말 잘하는 사람은 앞서가고 묵묵한 사람은 잊힌다는 체념이 쌓일 때 공동체는 병든다. 정치가 국민에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당신의 삶은 하찮지 않다”는 확신을 제도와 결과로 증명하는 일이다. 논어에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말이 있다. 정치가 의로움보다 유불리에 밝아질 때, 사회는 빠르게 냉소로 기운다. 원칙은 상대를 공격할 때만 꺼내는 칼이 되고, 상식은 내 편을 변호할 때만 적용되는 방패가 된다. 그러면 국민은 정치인을 믿지 못하고, 정치인은 국민의 불신을 다시 선동의 재료로 삼는다. 악순환이다. 오늘 한국 정치에 필요한 것은 더 센 말이 아니다. 더 정확한 책임이다. 잘못한 일에는 변명보다 사과가 먼저여야 하고, 약속한 일에는 홍보보다 이행이 먼저여야 한다. 법 앞의 평등, 기회의 공정, 약자에 대한 배려, 세금의 책임 있는 사용이라는 기본이 회복돼야 한다. 기본이 무너지면 어떤 개혁도 오래가지 못한다. 원칙 없는 개혁은 구호가 되고, 상식 없는 승리는 또 다른 패배를 낳는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결말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주인공이 세상을 정복해서가 아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공공성이다. 서로를 무가치하게 만드는 정치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하루를 가치 있게 만드는 정치가 필요하다. 선거가 다가오면 말은 거칠어지고 편은 더 선명해진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남는 것은 구호가 아니라 삶이다. 수락석출. 물이 빠지면 돌이 드러난다. 6월의 선택 이후에도 남아 있을 돌은 무엇인가. 정치권은 그 질문 앞에 서야 한다. 국민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워왔다. 이제는 정치가 그 싸움을 덜어줄 차례다.
2026-05-25 15: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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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일베 폐쇄·징벌배상 검토 필요"…혐오표현 규제 공론화 예고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조롱·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 일간베스트저장소와 같은 사이트의 폐쇄·과징금 부과까지 포함한 제도 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이 열린 봉하마을에서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방문객들이 조롱성 행동을 했다는 주장이 나온 직후다. 이 대통령은 24일 소셜미디어에 “‘봉하마을서 일베 손가락질 사진 찍어’…조수진 노무현재단 이사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공유하며 “엄격한 조건 하에 조롱·혐오 표현에 대한 처벌, 징벌배상 및 일베처럼 조롱·혐오를 방치·조장하는 사이트 폐쇄, 징벌배상, 과징금 등 필요 조치를 허용하는 것에 대한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일베처럼 조롱·모욕으로 사회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대해 표현의 자유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처벌을 포함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병존한다”며 “국무회의에도 지시하겠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라고 적었다. 논란은 전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17주기 추도식에서 불거졌다. 노무현재단 이사인 조수진 변호사는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방문객들이 현장에서 조롱성 행동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조 변호사가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하며 혐오표현 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현장에는 일베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진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특정 손가락 모양으로 인증 사진을 찍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이들의 실제 소속이나 조직적 동원 여부는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된 단계는 아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민주화운동과 사회적 참사, 정치적 추모 공간을 겨냥한 조롱성 표현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앞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 당시에도 이 대통령은 역사적 아픔을 상업적 이벤트 소재로 삼은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에는 특정 기업 마케팅을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와 플랫폼 운영자의 책임 문제로 논의가 확장됐다. 단순 게시물 작성자 처벌을 넘어, 조롱·혐오 표현을 반복적으로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사이트 자체에 과징금, 징벌배상, 폐쇄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검토하자는 취지다. 쟁점은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보호의 경계다. 현행법은 명예훼손, 모욕, 불법정보 유통 등 개별 조항을 통해 일부 표현을 규제하지만 혐오표현 전반을 직접 포괄하는 일반법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내 법학계에서도 혐오표현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견해가 오랫동안 맞서왔다. 일베 폐쇄 논란은 과거에도 반복됐다. 2013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노 전 대통령을 폄훼하는 게시물이 확산되며 사이트 폐쇄론이 제기됐고, 당시에도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를 놓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충돌했다. 2018년에도 일베 폐쇄 국민청원에 23만명 이상이 동의하면서 청와대가 폐쇄 가능성을 검토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사이트 폐쇄나 접속 차단은 특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불법정보에 대한 차단은 현행 제도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지만, 특정 사이트 전체를 폐쇄하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과잉금지 원칙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도화가 추진된다면 반복성, 고의성, 피해의 중대성, 운영자의 방치·조장 여부, 사법적 통제 절차가 명확해야 한다. 그럼에도 추모 공간을 찾아가 고인을 조롱하고 이를 온라인 인증 문화로 소비하는 행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정치적 풍자와 비판은 보호돼야 하지만, 특정 개인의 죽음이나 민주화운동 희생자, 사회적 참사를 조롱하는 행위가 공동체의 기본 질서를 훼손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발언은 혐오표현 규제 논의를 다시 정치권의 전면 의제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국무회의 차원의 검토를 시작하면 법무부,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심위,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관련 제도와 해외 사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혐오표현과 사회적 갈등 조장에 대한 책임 강화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고, 야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정부의 표현 규제 권한 확대를 우려할 수 있다. 핵심은 ‘무엇을 막을 것인가’보다 ‘어떤 기준과 절차로 제한할 것인가’다. 혐오와 조롱을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정당하더라도, 규제 기준이 모호하면 정치적 비판이나 풍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엄격한 조건”이 실제 제도 설계에서 어떻게 구체화될지가 향후 논의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2026-05-24 09: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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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노조, 권리만큼 책임도 돌아봐야
[경제일보]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초유의 산업전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AI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엔비디아와 TSMC,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순한 민간기업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는 과거 제조업과 전혀 다른 차원의 초자본집약 산업이다. 최첨단 공장 하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어가고 AI용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차세대 파운드리 공정, 첨단 패키징 기술 확보를 위해 천문학적 투자가 반복적으로 요구된다. 오늘의 이익을 내일의 공장과 기술에 다시 투자하지 못하면 단숨에 도태되는 산업이 바로 반도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 노조의 성과급 요구 논쟁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노동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돼야 하는가. 또 국가 핵심 산업을 책임지는 노조는 어떤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번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노동권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언급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통령은 노동3권이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임을 인정하면서도 권리 행사에는 연대와 책임이 따라야 하며 공동체 전체를 흔드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직접 배분하라는 요구에 대해 “투자자도 하기 어려운 요구”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은 현실적인 지적이다. 기업은 단순히 올해 이익이 많이 났다고 해서 그 돈을 곧바로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특히 삼성전자 같은 AI·반도체 기업은 오늘 벌어들인 이익 대부분을 미래 투자에 다시 투입해야 생존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캐피털 익스펜디처(Capital Expenditure·설비투자)다. AI 시대에는 설비투자 경쟁 자체가 생존 경쟁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대만은 국가 차원에서 수백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막대한 영업이익을 낸다 해도 그것은 곧바로 ‘남는 돈’이 아니다. 차세대 메모리와 AI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과 연구개발(R&D),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해 다시 투입돼야 할 미래 자금이다. 그런데 세금도 떼기 전 영업이익 자체를 일정 비율로 나누라고 요구하는 것은 산업 구조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접근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물론 노동자의 기여를 폄하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와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동의 가치와 정당한 보상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 역시 산업과 국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채권자는 이자를 받으며 국가는 세금을 거둔다. 그리고 모든 비용과 투자 이후 마지막 불확실한 몫을 책임지는 존재가 주주다. 주주는 이익이 날 때 잔여 이익을 가져가지만 손실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그 부담을 떠안는다. 2023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주가가 폭락했을 때 가장 큰 손실을 본 것도 결국 주주와 투자자들이었다. 국민연금과 노후자금 상당 부분 역시 삼성전자 주식과 연결돼 있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 전체를 삼성전자를 통해 바라본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제 노동만이 아니라 주주와 투자자, 국민 전체의 시선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저성장과 저출산, 중국의 기술 추격, 미국의 관세 압박, 중동 에너지 위기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겹치며 경제 전반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런 시기에 대표 기업 노조가 과도한 요구와 극단적 대립으로 산업 생태계를 흔드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한민국 노조도 이제 변해야 한다. 과거의 투쟁 중심 노조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과 국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선진 노조로 나아가야 한다. 임금과 복지 요구를 넘어 생산성과 기술 혁신, 장기 투자 안정성까지 함께 고민하는 성숙한 노조 문화가 필요하다. 노조가 기업의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 역시 노동자를 단순 비용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서로가 산업 생태계를 함께 떠받치는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AI와 반도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삼성전자 노조 역시 과거의 투쟁 논리를 넘어 한국 경제 재도약과 미래 산업 경쟁력을 함께 책임지는 선진 노조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노동도 살고 기업도 살며 결국 한국 경제 전체가 다시 도약하는 길이다.
2026-05-20 21:0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