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일보] 서울 집값을 잡겠다며 공급을 늘리겠다는 데 정부와 서울시의 처방은 다르다.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고 하고 정부는 규제 완화가 집값부터 밀어 올릴 수 있다고 맞선다. 공급을 늘리자는 목표는 같은데 방법은 제각각이다.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도 이런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급을 늘리더라도 집값 폭등 가능성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제동을 걸었다.
서울시는 서울 안에서 공급을 늘리려면 정비사업을 빼놓을 수 없다고 본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대규모 신규 택지를 찾기 어려운 서울에서 재건축과 재개발은 현실적으로 가장 큰 공급 수단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규제를 풀었다가 집이 지어지기도 전에 가격부터 뛸 수 있다고 걱정한다. 실제 재건축 규제 완화는 사업성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키워 해당 단지 가격을 먼저 움직일 수 있다. 공급과 가격 안정이 동시에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서울시는 공급을 말하고 정부는 가격을 걱정하는 식으로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집이 빨리 지어지지 않는다. 서울시가 규제를 풀어달라고 하고 정부가 집값을 이유로 막는 동안 정비사업 일정은 그대로 늦어진다.
정부는 지난 13일 수도권에 2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도 2031년까지 253개 정비사업장에서 약 31만호를 착공하겠다고 한다. 숫자만 놓고 보면 공급 부족이 곧 해소될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23만호와 31만호는 당장 입주할 집 숫자가 아니다. 택지를 발표했다고 곧바로 아파트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착공했다고 바로 사람이 들어가 사는 것도 아니다. 공급 효과는 결국 입주 시점에 나타난다.
서울시의 31만호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서울시 계산으로 기존 주택 멸실분을 빼면 순증 물량은 약 8만7000호다. 게다가 31만호는 입주가 아니라 착공 목표다.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려면 그 규제를 풀었을 때 사업기간을 몇 년 줄일 수 있는지, 실제 입주는 언제 가능한지까지 내놔야 한다. 31만호라는 큰 숫자만 앞세워서는 시민이 체감할 공급 시점을 알 수 없다.
정부도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서울시가 요구한 규제 가운데 투기를 자극할 가능성이 큰 조치와 사업기간만 늘리는 규제를 가려내야 한다. 모두 묶어서 막아둘 이유는 없다.
이주비 대출과 조합설립 동의율, 용적률 규제는 목적과 효과가 서로 다르다. 투기 억제에 필요한 규제는 유지하더라도 인허가와 사업 추진을 불필요하게 늦추는 규제는 손볼 수 있다. 공급 대책이라면 그 정도의 구분은 있어야 한다.
서울시는 재개발 조합설립 동의율 완화와 이주비 대출 규제 개선, 용적률 확대 등을 요구해 왔다. 자체적으로 공사비 검증 절차를 손보고 정비사업 기간을 줄이려는 조치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서울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다른 방법으로 사업기간을 줄일 방안을 내놔야 한다. 집값 불안을 이유로 기존 규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급을 크게 늘리겠다고만 하면 두 정책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도 규제 완화만으로 공급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재건축과 재개발이 한꺼번에 속도를 내면 기존 주택이 먼저 철거되고 대규모 이주가 시작된다. 새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에 전월세 시장부터 흔들릴 수 있다.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려면 이주 대책도 함께 짜야 한다. 어느 지역에서 언제 이주가 시작되는지, 주변 전월세 수요는 얼마나 늘어나는지, 입주 물량은 언제 나오는지를 한꺼번에 관리하지 않으면 공급 확대 과정에서 또 다른 주거 불안을 만들 수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맞춰야 할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어느 지역에서 몇 호를 공급하고 언제 인허가를 끝내며 언제 이주시키고 언제 착공할지를 하나의 일정표에 올려야 한다. 입주 시점까지 보여줘야 시민도 공급을 믿는다.
서울시는 정비구역 지정과 인허가를 쥐고 있다. 정부는 법과 세제, 금융 규제를 갖고 있다. 서울시가 인허가를 앞당겨도 정부 규제가 그대로면 사업기간은 줄지 않고 정부가 규제를 풀어도 서울시 행정이 늦으면 공급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처럼 서로 다른 계산을 하면 결과는 뻔하다. 정부가 대규모 공급 숫자를 발표하면 서울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하고 서울시가 규제 완화를 요구하면 정부는 집값을 걱정한다. 그 사이 사업 일정만 늦어진다.
주택 공급은 정치적 주도권을 다툴 사안이 아니다. 서울시장은 서울에 집을 더 지을 책임이 있고 국토교통부는 그 집이 실제로 지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책임이 있다. 대통령은 두 기관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조정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가 서로 다른 처방전을 내놓는 동안 부담은 시민에게 돌아간다. 재건축은 늦어지고 신규 택지는 발표 이후에도 실제 공급 시점을 알기 어렵다. 집을 기다리는 무주택자와 실수요자에게 공급 계획은 숫자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오세훈 시장이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면 정부는 풀 수 있는 규제와 지켜야 할 규제를 나눠 답해야 한다. 정부가 가격 불안을 걱정한다면 서울시는 규제 완화 뒤 시장 과열을 어떻게 관리할지 함께 내놔야 한다. 서로에게 숙제만 던져서는 공급 일정이 빨라지지 않는다.
수도권 23만호든 서울 정비사업 31만호든 사람이 들어가 살아야 공급이다. 발표한 숫자가 많다고 주택난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뒤 나올 집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는지가 성패를 가른다.
정부가 공급 숫자를 발표하고 서울시가 규제 완화를 외치는 동안 집은 지어지지 않는다. 서울시가 어느 사업을 언제 착공할지 내놓으면 정부는 그 일정에 맞춰 무엇을 풀고 무엇을 지킬지 답해야 한다. 이주와 전월세 대책도 같은 일정에 맞춰야 한다.
공급정책의 성패는 23만호나 31만호라는 숫자가 아니라 입주 날짜로 판가름 난다. 정부와 서울시는 서로 다른 처방전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 서울에 집을 언제 지을지부터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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