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24건
-
중앙아 광물외교, 악수는 끝났다…이제 광물이 와야 한다
[경제일보] 서울에서 손을 맞잡았다고 광물이 한국 공장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광산에서 원료를 캐내고, 정제시설에서 산업용 소재로 가공한 뒤 국경과 바다를 건너 수요 기업에 공급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자원외교가 공동선언보다 어려운 이유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이 16일 서울에서 첫 다자 정상회의를 열었다.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정상은 이재명 대통령과 ‘서울선언’을 채택하고 핵심광물·에너지 공급망 협력에 뜻을 모았다. 정상회의를 2년마다 개최하고 산업장관 협의체도 신설하기로 했다. 한국의 기술과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연결할 정상급 협의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외교적 의미는 분명하다. 자원 확보는 기업의 구매계약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광업권과 투자 인허가, 수출규제와 통관, 도로와 철도 건설에는 자원 보유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정상 간 합의는 민간기업이 넘기 어려운 제도적 장벽을 낮추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번 회의와 연계한 비즈니스 서밋에서도 19건의 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카자흐스탄 국립야금광석연구소는 희소금속 분야의 단계별 공급망 협력모델을 발굴하기로 했다. 별도의 기업 상담회에서는 1400만 달러 규모의 수출계약도 성사됐다. 다만 이 계약은 소비재 등 여러 분야를 포함한다. 핵심광물의 구매량과 인도 시점을 확정한 실적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협력 문서에 서명하는 것과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광물외교의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판단하려면 외교적 합의가 어느 단계까지 사업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봐야 한다. 탐사 결과가 투자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채굴한 원료를 어디에서 정제할 것인지, 한국 기업이 어느 가격에 얼마를 구매하기로 했는지, 실제 납품은 언제 시작되는지가 그 기준이다.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지하자원만으로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광산에 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과 경제성 있는 광물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부터 다르다. 품위와 매장량을 확인하고 사업성을 검증해야 한다. 채굴권을 확보한 다음에는 전력과 용수, 도로와 철도를 갖춰야 한다. 광석을 캤더라도 산업용으로 가공하지 못하면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 생산에 곧바로 사용할 수 없다.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보여주는 교훈도 이 대목에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글로벌 핵심광물 전망 2026’에 따르면 중국의 2025년 희토류 정제시장 점유율은 약 85%였다. 희토류를 제외한 주요 에너지 광물에서도 세계 최대 정제국의 평균 점유율은 2023년 70%에서 2025년 72%로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로 일부 해외 자동차업체가 생산시설 가동률을 낮추거나 일시적으로 공장을 멈춘 사례도 나타났다. 광산을 확보해도 정제를 중국에 의존한다면 공급망의 취약성은 온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원료의 생산국을 다변화하는 것과 최종 산업소재의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광물을 한국에서 정제하는 것이 유일한 답인 것도 아니다. 광물의 종류와 생산 규모, 현지 전력비와 환경규제, 한국 기업의 기술력을 따져 가공시설의 입지를 정해야 한다. 중앙아시아 현지에서 경제성 있게 정제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식도 가능하다. 자원 보유국의 이해관계도 중요하다.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원료만 수출하는 경제에서 벗어나 가공산업과 제조업을 육성하려는 수요가 있다. 한국이 광물을 확보하고 현지에는 일자리와 기술, 설비가 남는 협력 구조라면 장기적인 사업 기반을 마련할 여지가 커진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양측이 원료 교역을 넘어 탐사부터 최종 제품 제조까지 이어지는 협력을 강조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중앙아시아 특유의 물류 문제가 더해진다. 내륙의 광산에서 생산한 광물을 한국으로 들여오려면 여러 나라의 철도와 도로, 통관·환적 체계를 거쳐야 할 수 있다. 광산 개발비뿐 아니라 운송비와 운송 기간, 경유국의 정책 변화까지 공급계약의 경제성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광산 지분을 확보한 기업이 반드시 안정적인 공급처까지 확보하는 것은 아니다. 운송로가 막히거나 정제시설이 지연되면 장부상의 자원은 생산현장의 원료가 되지 못한다. 이런 사업을 추진할 때 정부와 기업의 역할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정상외교는 자원 보유국과의 협의 통로를 마련하고 투자·통관·물류와 같은 제도적 문제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매장량과 품위, 정제수율, 생산원가와 판매가격을 검증하는 일은 개별 사업의 경제성 판단에 속한다. 특히 자원사업은 초기 투자비가 크고 회수 기간이 길다. 외교적 합의가 사업의 위험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수요기업의 장기구매 계약이 없는 광산은 생산을 시작하고도 판로를 걱정할 수 있다. 반대로 구매처가 확실해도 정제 기술과 운송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약속한 가격에 납품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협력의 진척은 MOU 체결 건수와 함께 탐사, 사업성 검증, 투자 확정, 정제시설 건설, 장기구매 계약, 실제 인도 물량을 구분해 살펴볼 때 확인할 수 있다. ‘순자’ 권학편에는 ‘불적규보 무이치천리(不積蹞步 無以致千里)’라는 구절이 있다. 작은 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자원외교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정상회의가 첫걸음이라면 광산 개발과 정제시설, 물류망과 구매계약은 그다음 걸음이다. 어느 하나를 건너뛰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없다. 다음 한·중앙아 정상회의는 2028년 카자흐스탄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에 마련한 정상급 협력체계의 진척을 살펴볼 자연스러운 시점이기도 하다. 그때는 협력 문서가 몇 건 더 늘었는지만으로는 사업의 진행 상황을 알기 어렵다. 어느 광산에서 탐사가 끝났고, 어떤 기업이 투자를 확정했으며, 정제시설과 물류망은 어디까지 구축됐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구매계약이 체결됐다면 광종과 물량, 공급기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선적이 이뤄졌다면 성과는 더욱 구체적이다. 이번 정상회의를 두고 공급망 다변화가 이미 완성됐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반대로 아직 광물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교적 합의의 의미를 부정할 수도 없다. 장기 자원사업에는 그에 걸맞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달라지는가다. 자원외교의 최종 목적은 광산에 한국 기업의 이름을 새기거나 협약서에 서명을 남기는 데 있지 않다. 한국 산업이 필요할 때 필요한 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데 있다. 서울에서 맺은 약속은 이제 광산과 정제시설, 철도와 항만에서 구체적인 사업으로 이어질 차례다. 중앙아 광물외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회담장이 아니라 공급망의 마지막 현장, 한국의 공장이다.
2026-09-17 13:00:00
-
미중 정상회담 테이블에 오른 AI·희토류…한국은 어디에 설 것인가
[경제일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오는 24일 워싱턴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은 아직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 확인하지 않았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이번 주말 만나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과 희토류, 무역·에너지 등 경제안보 현안이 폭넓게 다뤄질 전망이다. 한국에는 남의 나라 정상회담이 아니다. 미중이 협상 테이블에서 다루는 현안 하나하나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연결돼 있어서다. AI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고 희토류와 핵심광물은 배터리·자동차·항공우주·방위산업에 들어간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와 충돌에 따라 한국 기업의 투자와 생산, 공급망 전략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는 특히 그렇다.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AI가 초래할 공동의 위험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중 AI 경쟁이 첨단 반도체와 기술 수출통제를 넘어 안전과 국제규칙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AI 산업에서도 안전 규칙을 누가 만들고 집행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 경쟁의 한복판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고 AI 가속기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도 한국 기업의 비중이 크다. 미중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반도체 기업의 기술과 생산시설은 단순한 기업 자산을 넘어 경제안보의 자산이 된다.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는 SK하이닉스가 인텔과 미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인텔의 오하이오 공장 일부를 활용하거나 인텔·클라우드 기업 등이 참여하는 합작법인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직 초기 협의 단계이고 결정된 것은 없다. 하지만 한국 메모리 기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생산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도체 공급망이 얼마나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이 고민해야 할 지점도 있다. 미국의 공급망 현지화와 한국의 이해가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시설을 미국에 두는 것이 시장 접근과 공급망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핵심 제조기술의 해외 이전과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가능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의 투자 판단을 존중하되 국가 차원에서는 어떤 기술과 생산기반을 국내에 반드시 남겨야 하는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희토류 문제는 더 절박하다. 중국은 미국이 자국 중심의 핵심광물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요 핵심광물의 정제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분석한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희토류 정제 비중은 2023년 90% 이상에서 2025년 약 85%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세계 공급망을 좌우할 수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희토류 원소인 이트륨은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트륨은 반도체와 항공우주, 제트엔진 코팅 등에 쓰이는 전략 물질이다. 중국은 세계 이트륨 공급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수출통제를 통해 공급량을 조절해 왔다. 미국 제조업에서도 공급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이트륨 문제 역시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한국의 취약점도 여기에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를 세계에 수출하지만 이를 만드는 핵심광물과 소재 상당 부분은 해외에서 들여온다. 미국이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속도를 높이면 한국 기업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 제조업의 거대한 생산기지이자 시장인 중국과의 공급망을 단기간에 끊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을 단순히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문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안보와 직결된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되 핵심 원료와 소재는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열린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도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 5개국은 핵심광물과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주요 의제로 다뤘고 70건이 넘는 협정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정부는 단순한 원료 수입을 넘어 탐사와 정제, 소재 가공, 완제품 생산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공급망 다변화는 양해각서 숫자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광물 탐사와 개발이 실제 정제·가공과 국내 기업의 장기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핵심광물 개발은 투자 회수 기간이 길고 가격 변동성도 큰 만큼 정부가 정책금융과 비축제도 등을 활용해 민간의 위험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은 평상시에는 비용의 문제지만 위기가 닥치면 국가안보의 문제가 된다. AI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 소프트웨어와 AI 모델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함께 키워야 한다. 미중이 AI의 기술표준과 안전 문제까지 논의하기 시작했다면 한국도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제 AI 거버넌스와 기술표준을 만드는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이제 관세 몇 퍼센트(%)를 주고받는 무역전쟁을 넘어섰다. 누가 AI의 규칙을 만들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며 핵심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를 둘러싼 경제안보 경쟁이다. 중국은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고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AI 생태계를 중심으로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운명을 워싱턴과 베이징의 협상 결과에 맡길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을 무조건 선택하는 것도, 양쪽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해법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힘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2026-09-17 10:40:45
-
-
트럼프, 호르무즈 '美 영토' 재차 주장…이란 압박하며 중간선거까지 겨냥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간주하고 있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란과의 전쟁 및 해협 봉쇄를 둘러싼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온 발언으로, 이란에 협상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미국 내 정치적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겹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에서 열린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지원 유세에서 “이란은 절실하게 합의하고 싶어 한다”면서도 “우리가 합의를 원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의 영토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곳은 미국의 영토”라고 거듭 강조했다. ◆ 호르무즈 둘러싼 ‘영토’ 발언, 협상 압박 수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단순한 수사에 그치지 않고 최근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주장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에도 이란을 “패배시킨 뒤”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 영토로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미국이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어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어떤 배도 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제법상 호르무즈 해협이 미국 영토라는 근거는 없다. 해협은 이란과 오만 사이에 위치하며, 좁은 수로 특성상 양국의 영해가 맞닿는 구조다. 국제법상 국제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는 선박의 통항을 보장하는 ‘통과통항’ 원칙이 적용된다. 미국 역시 과거부터 이 원칙을 근거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여왔다. 호르무즈 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하루 평균 약 2000만배럴의 원유 및 석유제품이 이곳을 통과했으며, 세계 해상 원유 거래량의 약 4분의 1이 이 해협을 지났다. 이란·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바레인 등 걸프 지역 주요 산유국의 수출에도 핵심적인 통로다. 현재 실제 해상 운송은 정상 수준과 거리가 멀다. 로이터에 따르면 8월 19일 호르무즈를 통과한 원자재 운반선은 6척에 그쳤다. 이란은 해협이 여전히 폐쇄돼 있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해협을 통제하고 있으며 선박 통항이 가능하다는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다. ◆ 이란 압박하면서 미국 내 정치전선 확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교착된 미·이란 협상도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월 양국이 전쟁 종식을 위한 잠정 합의를 마련했지만, 핵 문제와 미군 철수, 제재 해제, 호르무즈 재개방 등을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협상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란 측은 미국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군사적 대응을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제적 압박도 커지고 있다. 미국의 봉쇄로 이란의 원유 수출은 크게 위축됐으며, 로이터는 8월 이란의 원유 선적량이 하루 약 53만4000배럴로 2025년 평균 140만배럴에서 급감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유사들이 대체 원유를 찾으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도 연쇄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정책 메시지를 국내 정치와 직접 연결했다. 이날 유세는 오는 25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연방상원의원 공화당 후보 결선투표를 앞두고 열린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고(故) 린지 그레이엄 전 상원의원의 여동생인 달린 그레이엄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레이엄 후보는 앞선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32.8%를 얻어 24.6%를 얻은 랠프 노먼 하원의원을 앞섰지만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결선투표를 치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투표용지에 내 이름이 없더라도 내가 투표용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나와서 투표해달라”고 호소했다. 공화당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국경 보안과 감세 정책이 후퇴하고 자신에 대한 탄핵까지 추진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지지층의 결집을 촉구했다. 결국 이날 발언은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외교적 주도권뿐 아니라 미국 국내 정치까지 한데 묶은 메시지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는 ‘합의하지 않으면 더 강한 압박을 받게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자신의 대이란 강경책과 공화당 의회 장악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호르무즈의 불안정이 장기화될 경우다. IEA는 중동 전쟁 여파로 2026년 세계 원유 공급량이 전년보다 하루 430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과뿐 아니라 호르무즈의 실제 선박 통항 정상화 여부가 국제유가와 물류비,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이유다.
2026-08-22 12:34:24
-
-
-
다시 90달러 유가…유류세만 만지는 물가 대책으론 부족하다
[경제일보] 국제유가가 다시 세계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이어지고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브렌트유는 한때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20일(현지시간) 국제 원유시장에서 브렌트유는 장중 배럴당 88.63달러,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82.61달러에 거래됐다. 이후 브렌트유는 89.22달러, WTI는 83.2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604%까지 올라섰다. 유가 상승이 에너지 가격에 머물지 않고 물가와 시장금리, 달러 가치, 주가를 동시에 흔드는 복합 충격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 금융시장의 반응은 더 예민하다. 이날 금리 파생상품 시장은 현재 연 2.25%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예금금리가 2026년 말 2.66%, 2027년 2월에는 2.73%까지 오를 가능성을 반영했다. 통상적인 0.25%포인트 인상 기준으로 사실상 두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을 예상한 셈이다. 에너지 가격이 다시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리면 금리를 낮추기는커녕 추가 인상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정학적 충돌이 유조선의 항로를 막고 오른 기름값이 채권금리를 끌어올리며 높은 금리가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을 늘리는 악순환이 재연될 조짐이다. 한국은 이런 충격에 유난히 취약하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원유를 사실상 전량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데다 산업 부문의 에너지 사용 비중도 주요 선진국 가운데 높은 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한국의 에너지 구조가 화석연료와 해외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외부 공급 충격에 취약하다고 진단한다. 유가가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항공과 해운, 자동차, 철강, 농수산물과 택배비까지 비용 압력을 받는다. 기업은 오른 원가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의 장바구니로 돌아간다. 그런데도 정부의 고유가 대책은 여전히 유류세 인하와 주유소 가격 점검이라는 익숙한 처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류세를 낮추는 것은 급격한 가격 상승을 완충하는 데 필요하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국제유가 상승분을 빌미로 가격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는지 점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이미 오른 가격의 일부를 세금으로 보전하고 유통 과정의 부당행위를 막는 사후 대책일 뿐이다. 원유 공급이 실제로 줄거나 해상 운송이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에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는 유가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세금을 얼마나 낮출 것인지보다 공급이 끊겼을 때 어떤 순서로 대응할 것인지부터 국민과 시장에 밝혀야 한다. 전략 비축유 방출의 가격·수급 기준과 규모, 민간 비축분 동원 방식, 정유사별 원유 도입 차질에 대한 대응체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비축유는 보유량 자체보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신속하게 꺼내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원유 도입선도 더 넓혀야 한다. 중동산 원유가 가격과 정제 효율 면에서 유리하더라도 특정 지역과 해협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국가경제 전체를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시킨다. 북미와 남미, 아프리카 등 대체 공급처와 장기 계약을 확대하고 유종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유설비의 유연성도 높여야 한다. 평상시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망을 분산하는 것은 보험료와 같다. 위기가 발생한 뒤 비싼 현물 원유를 구하러 다니는 것보다 훨씬 싸다. 해상운송과 보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이 높아지면 유조선 운임과 전쟁보험료가 급등한다. 원유가 확보돼도 배가 움직이지 못하면 국내에는 들어올 수 없다. 정부는 국적선사와 정유사, 무역보험기관이 참여하는 비상 운송체계를 점검하고 전쟁 위험 때문에 민간 보험이 사실상 중단될 경우를 대비한 한시적 보증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유전에서 정유공장까지 이어지는 운송망 전체의 문제다.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유류세 인하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류세를 일괄적으로 낮추면 차량을 많이 운행하고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계층이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중교통 이용자나 난방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에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고유가가 장기화한다면 에너지바우처와 대중교통 지원, 영세 자영업자·화물운송 종사자에 대한 선별 지원을 강화하는 편이 재정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맞는다. 무엇보다 재정·통화·에너지 정책의 엇박자를 막아야 한다. 국제유가 상승은 수요가 과열돼 발생한 물가와 다르다. 금리를 올린다고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거나 원유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가 상승으로 물가 기대가 확산되고 임금과 서비스 가격까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수요를 억누를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을 이유로 추가 금리 인상 전망이 확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물가와 환율 안정을 위해 긴축 기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광범위한 현금 지원과 정책대출을 늘린다면 한쪽은 브레이크를 밟고 다른 쪽은 가속페달을 밟는 꼴이 된다. 재정 지원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직접 피해를 본 계층과 업종에 집중하고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는 보편적 수요 부양은 자제해야 한다. 통화정책에만 물가 안정의 부담을 떠넘기지 말고 에너지 정책은 공급 충격을 줄이고 재정정책은 취약 부문을 선별 지원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국제유가가 다시 90달러 선을 위협하고 있다. 아직 물리적 공급 부족이 전면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안심할 때가 아니다. 최근 유가가 과거의 극단적인 전망보다 안정된 것은 미국의 생산 확대와 전략비축유 방출, 중국의 수요 감소, 일부 해상운송 재개 등이 충격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완충 장치가 언제까지 작동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유류세율을 조정하는 임시 처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유 방출 기준, 비상 운송·보험 지원, 취약계층 보호, 재정·통화정책 간 조율을 아우르는 국가 차원의 고유가 대응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단순히 주유소 가격을 낮추는 일이 아니라 국가경제의 생명선을 지키는 일이다. 다시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나드는 유가는 정부에 묻고 있다. 다음 위기도 세금으로 버틸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는 에너지 대응의 구조 자체를 바꿀 것인가.
2026-07-21 18:05:52
-
정유업계, 호르무즈 불안에도 7~8월 원유 물량 확보
[경제일보] 중동 정세가 다시 흔들리면서 정부가 원유 수급 상황 긴급 점검에 나섰다. 국내 정유업계가 7~8월 원유 도입 물량을 전년 수준 이상 확보해 당장 공급 차질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와 해상운임, 보험료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지난 13일 한국석유공사, 정유업계, 해운업계 관계자들과 ‘원유 수급상황 긴급 점검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재봉쇄 선언, 통항 선박 공격, 미군의 이란 공습 등으로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된 데 따른 조치다. 산업부는 원유 수급과 유조선 통항 상황, 석유가격 동향, 업계 대응 방안을 함께 점검했다. 산업부는 국내 정유업계가 확보한 7~8월 원유 도입 물량이 전년 대비 100% 이상이라 단기 수급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중동 긴장이 길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정유·해운업계와 실시간 소통체계를 구축하고, 대체 물량 확보 방안도 병행 검토하기로 했다. 문 차관은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는 등 석유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시장의 핵심 병목 지점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석유 물량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로, 세계 석유류 소비의 약 20%에 해당한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와 콘덴세이트 상당 부분은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동산 원유 조달과 직결되는 길목인 셈이다. 국제유가도 중동 긴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재점화되면서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상승했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공급 차질 우려도 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7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6월 호르무즈 흐름 재개로 세계 석유 공급이 일부 반등했지만,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면 공급 전망이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유업계는 현재로서는 7~8월 원유 도입 물량과 선적·운송 일정에 큰 차질은 없다고 보고 있다. 에쓰오일은 기존처럼 사우디 얀부항을 통해 안정적으로 원유를 도입할 예정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이란전쟁 기간 중에도, 종전협상 이후에도 사우디산 원유를 안정적으로 도입했고 기존 조달 구조와 수입처에는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도 단기 물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SK에너지는 7~8월 원유 도입 물량에 이상이 없으며 HD현대오일뱅크 역시 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대체 원유 도입 계획을 잡아둔 만큼 7~8월 공정 운영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당장 국내 정유사들의 생산 차질이나 내수 공급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문제는 호르무즈 통항 불안이 길어질 경우다. 업계 전체로는 원유의 안정적 도입과 비용 부담이 다시 핵심 이슈가 될 수 있다. SK에너지는 유가 급변과 해협 통항 차질에 따른 원유 수급 불안정을 우려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원유 가격과 해상운임, 보험료가 모두 원유 도입 비용에 포함되는 만큼 특정 요인만 따로 떼어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원유 가격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운임과 보험료도 함께 원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운임과 보험료 상승이 정제마진이나 제품가격에 바로 반영되는 구조도 아니다. 에쓰오일은 운임·보험료 상승분이 정제마진에 일률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며, 국제 원유가격과 석유제품 수급, 시황에 따라 제품가격에 단계적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SK에너지도 운임·보험료 상승이 사우디 OSP 하락이나 중동산 원유 약세에 따른 원가 부담 완화 효과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이번 사안의 핵심은 물량 부족보다 비용과 구조다. 원유 도입 물량이 확보돼 있더라도 통항 리스크가 커지면 유조선 운임과 보험료가 오르고, 국제 원유가격과 석유제품 가격도 흔들릴 수 있다. 호르무즈가 완전히 막히지 않더라도 선박이 우회하거나 항로 안전 확보에 시간이 더 걸리면 도입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유 도입선 다변화 필요성은 더 커졌지만 단기간에 중동산 원유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정유설비는 중동산 중질유를 들여와 등·경유 등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구조에 맞춰져 있다. 미국산 원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무관세 효과가 있지만, 운송거리와 원유 성상, 정제설비 적합성, 환율, 장기계약 물량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 운송 기간도 변수다. 업계에 따르면 중동권 원유는 국내 도입까지 20일 안팎이 걸리지만, 미국산이나 아프리카산 원유는 이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대체 원유 도입은 단순히 새 공급처를 찾는 문제가 아니라, 도입 일정과 경제성, 원유 성상, 기존 정제설비와의 적합성을 모두 맞춰야 하는 문제다. 정유사들은 이미 중동 외 원유 도입 가능성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SK에너지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 도입선 검토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HD현대오일뱅크도 미국산과 아프리카산 등 대체 원유 도입을 살펴보고 있지만, 거리와 원유 성상, 경제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GS칼텍스 역시 앞서 미국산 원유 등 도입선 다변화를 지속 추진하고 있으며, 캐나다산 원유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반복될 때마다 국내 정유업계는 같은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당장 원유를 얼마나 확보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얼마나 예측 가능한 비용으로 들여올 수 있느냐다. 단기 수급 안정과 중장기 도입선 다변화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에너지 안보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2026-07-15 14:44:09
-
HD한국조선해양, FDC 기술개발 착수… AI 데이터센터 바다로 간다
[경제일보]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조선업계가 바다 위 데이터센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육상 데이터센터가 부지 확보와 냉각 비용, 전력망 접속 문제에 직면하자 조선사들이 해상 부유식 인프라를 새 성장 사업으로 주목하는 흐름이다. 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 조선 부문 중간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전날 글로벌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부유식 데이터센터(FDC) 인프라 기술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은 지난 7일 경기 성남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서 열렸으며 김형관 HD한국조선해양 대표와 권지웅 슈나이더 일렉트릭 코리아 대표가 참석했다. FDC는 바다나 강 위에 부유식 구조물을 띄우고 서버와 전력·냉각 설비를 배치하는 차세대 데이터센터다. 대규모 부지가 필요한 육상 데이터센터와 달리 입지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고, 해수를 냉각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전력 공급은 별도 과제다. 육상 전력망 연계, 해저케이블, 자체 발전, 재생에너지 연계 등 사업 모델에 맞는 전력 조달 구조가 필요하다. 이번 협약에 따라 HD한국조선해양은 조선·해양 분야에서 축적한 부유식 구조물 설계·건조 역량을 제공한다.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데이터센터 전력, 냉각, 에너지 관리 솔루션을 맡는다. 양사는 해상 환경에 맞는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술과 엔지니어링 솔루션을 공동 개발하고 관련 연구개발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형관 HD한국조선해양 대표는 “조선·해양 분야에서 축적한 부유식 구조물 설계·건조 역량을 바탕으로 해상 데이터센터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양사 협업을 통해 대규모·고밀도 컴퓨팅 인프라를 바다 위에서 안정적으로 구현할 핵심 기술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선업계가 FDC에 뛰어든 배경에는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시대에 데이터센터 확보 경쟁이 심해지면서 해상 데이터센터 수요도 늘고 있다”며 “조선사가 보유한 선박 건조 역량을 FDC 개발로 확장하는 차원”이라고 했다. 다만 악천후 속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망을 확보하고, 파도와 염분 등 해상 환경으로부터 IT 서버를 보호하는 기술 검증은 상용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IEA는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접속 대기와 송전망 건설 기간도 주요 병목으로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중공업이 먼저 FDC 사업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4월 50MW급 FDC 개념설계에 대해 미국선급과 영국 로이드선급의 기본 인증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그리스 선주사 캐피탈 클린 에너지 캐리어스, 로이드선급과 FDC 공동개발 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중공업은 설계·건조, 캐피탈은 프로젝트 발굴과 투자, 로이드선급은 인증과 규정 검토를 맡는 구조다. 다만 FDC가 실제 상용 시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해상 환경에서는 염분, 습도, 진동, 파랑, 태풍 등이 서버 안정성과 설비 수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력 공급 방식, 해저케이블 연결, 냉각수 배출, 항만·해역 인허가, 선급 기준도 상용화를 위해 검증해야 할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FDC를 당장 대규모 수주 시장으로 보기보다 조선사가 AI 인프라 시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초기 기술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선박과 해양플랜트를 짓던 조선사들이 데이터센터 인프라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면서 조선업의 경쟁 무대도 선박 건조를 넘어 해상 디지털 인프라로 확장되고 있다.
2026-07-09 10:00:00
-
-
"전력 심장 변압기서 배전반까지"…AI 혁명, 숨은 주인공은 K-전력 3사
[경제일보] AI 산업의 주인공은 GPU와 HBM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주인공을 무대 위에 세우는 것은 전기다. 글로벌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경쟁이 빨라지면서, HD현대일렉트릭, 효성중공업, LS일렉트릭 등 국내 전력기기 3사가 ‘뜻밖의 주전’으로 떠올랐다. 승부는 더 이상 초고압 변압기 하나에 머물지 않고, 변압기에서 차단기, 배전반, 마이크로그리드, ESS 연계 솔루션까지 전장이 넓어지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는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24년 415TWh에서 2030년 945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가장 중요한 증가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전력기기는 이제 낡은 인프라 교체산업이 아니라 AI 시대의 핵심 공급망이 됐다. 초고압의 HD현대, 배전으로 2막을 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초고압 변압기에서 먼저 판을 키웠다. 지난 3월 HD현대일렉트릭은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북미 생산법인 부지에서 제2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투자 규모는 약 2억 달러다. 내년 4월 완공을 목표로 하며, 공장이 가동되면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은 50퍼센트 늘어난다. 765kV급 변압기 제조와 시험 역량까지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공장 완공 이후 연간 약 2000억원의 추가 매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승부처는 배전기기로 옮겨가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전날 청주 배전캠퍼스를 공개하며 AI 데이터센터발 수요가 초고압 변압기를 넘어 중저압 차단기와 배전설비로 확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청주 배전캠퍼스는 약 1161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배전기기 생산 거점이다. 이를 통해 연간 생산능력은 기존 500만대에서 850만대 수준으로 확대됐다. 저압기기 생산라인 자동화율도 95퍼센트까지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초고압 변압기가 먼 거리의 전기를 받아들이는 송전망의 심장이라면, 배전설비는 데이터센터 안에서 전기를 실제로 쓰이게 만드는 혈관에 가깝다. 발전과 송전의 병목이 풀려도 마지막 구간의 배전설비가 부족하면 데이터센터는 제때 가동되기 어렵다. HD현대일렉트릭이 청주 배전캠퍼스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전력기기 호황의 2막이 ‘초고압’에서 ‘배전’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HD현대일렉트릭의 강점은 납기와 현지 대응력이다. 미국 앨라배마 초고압 변압기 공장, 울산 생산기지, 청주 배전캠퍼스를 연결하면 초고압과 중저압 제품을 함께 제안할 수 있다. 조선업에서 쌓아온 대형 프로젝트 관리 경험도 자산이다. 전력시장 관계자는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경쟁력은 충분하다”면서도, “배전기기 시장에는 LS일렉트릭이라는 기존 강자가 버티고 있는 만큼 배전 영역으로 보폭을 넓히려면 초고압 변압기에서 입증한 수익성과 품질 신뢰를 중저압 제품에서도 다시 증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효성, 765kV와 북미 수주잔액의 힘 효성중공업은 초고압 변압기의 전통 강자다. 154kV, 345kV, 765kV 초고압 변압기 개발과 공급 경험을 쌓아왔고,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초고압 변압기 생산거점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HVDC, ESS, 전력설비 자산관리 솔루션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올해 1분기 수주 흐름도 효성 쪽에 힘을 싣는다. 효성중공업 중공업 부문 1분기 신규 수주는 4조1745억원, 수주잔고는 15조10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특히 북미 물량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 미국 대형 송전망 운영사와 체결한 7871억원 규모 초고압 변압기 장기 공급계약은 국내 전력기기업계 단일 계약 기준 최대 규모다. 효성중공업의 강점은 ‘큰 전기’를 다루는 기술이다. 미국의 최상위 전력망인 765kV급 시장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대형 전력망 장비는 한 번 사고가 나면 고객사의 피해가 막대하다. 가격보다 품질, 납기보다 신뢰, 단품보다 장기 실적이 중요하다. 효성중공업은 이 분야에서 오랜 레퍼런스를 갖고 있다. 북미 수주잔고가 두터운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효성중공업의 과제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확장성이다. 효성중공업이 HVDC, ESS, 디지털 전력관리 솔루션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초고압 변압기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AI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 솔루션까지 한꺼번에 공급하는 역량은 확인이 필요한 단계인 만큼 향후 ‘단품 강자’에서 ‘시스템 공급자’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LS, 데이터센터 안쪽을 파고드는 배전 강자 LS일렉트릭은 앞선 두 기업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HD현대와 효성이 초고압 변압기에서 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면, LS일렉트릭은 배전·차단기·스위치기어·자동화 솔루션에서 강하다. AI 데이터센터 전쟁이 송전망에서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망으로 들어갈수록 LS의 존재감이 커지는 이유다. LS일렉트릭은 지난 4월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공급 프로젝트로 1억1497만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또 5월에는 미국 빅테크 데이터센터에 약 7000만 달러 규모 배전기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따냈고, 전날에는 미국 유타주 시더시티의 ‘LS일렉트릭 유타’ 생산기지 확장에 2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번 투자를 통해 기존 1만3223㎡ 규모 시설을 7만9338㎡로 키우고, 2027년 초 가동하겠다는 계획이다. LS일렉트릭의 1분기 실적자료에 따르면, 연결 매출은 1조3770억원, 영업이익은 1270억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4%, 45% 증가했다. 주요 데이터센터, 반도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실적을 견인한 결과다. 초고압 변압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3% 증가했고, 전체 수주잔고도 5조6430억원 수준으로 확대됐다. LS의 승부처는 데이터센터 내부다. 순간적인 전력 이상은 서버 장애와 데이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진공차단기, 배전반, 저압·중압 변압기, ESS 연계 시스템의 중요성이 커진다. LS는 이 영역에서 제품군과 자동화 솔루션을 함께 갖고 있다. 전력망의 ‘마지막 구간’을 장악할 가능성이 가장 큰 기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AI 전력망 승부처는 ‘종합 대응력’ 이들 세 기업은 전력기기 호황을 타고 공격적인 전략을 확대하고 있지만, 경쟁의 핵심은 수주액 자체보다 납기, 품질, 원가 관리, 현지 대응력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울러 AI 전력망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변압기 한 대가 아닌 데이터센터 안쪽까지 안정적으로 책임지는 종합 역량이라는 점에서 복잡해진 전력망을 감당하는 기업이 AI 인프라 시대의 또 다른 주전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AI 인프라 시대의 승자는 수주액이 가장 큰 기업이 아니라 약속한 날짜에 납품하고 데이터센터 안쪽까지 안정적으로 책임지는 기업이 될 것”이라며 “HD현대·효성·LS의 격돌은 단순한 장비 경쟁이 아니라 AI 인프라 시대 한국 제조업의 새 시험대”라고 했다. [아주경제 2026년 06월 30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6-30 09:30:00
-
중동 플랜드 시장 다시 열리나…건설업계, 종전 후 재건 특수 기대감 고개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서명하면서 중동 발주 시장을 둘러싼 건설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급감했던 중동 수주가 에너지 설비 복구와 플랜트 재건을 계기로 반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다. 다만 실제 발주 재개까지는 대이란 제재 완화와 금융거래 정상화가 맞물려야 하는 만큼 국내 건설사들은 기대와 신중론을 함께 두고 시장을 살피는 분위기다. 18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로이터통신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전쟁을 끝내기 위한 MOU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이도 양국 정상에 의해 합의 문안이 공식 서명됐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가 이번 협의에 주목한 이유는 분명하다. 중동은 국내 건설사의 해외수주에서 오랫동안 핵심 시장 역할을 해왔으나 올해 전쟁 여파로 발주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위축된 중동 수주 흐름을 감안하면 종전 협의 자체가 해외건설 시장의 중요한 변수가 된 셈이다. 실제로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액은 472억6500만달러였고 이 가운데 중동 수주액은 118억8300만달러로 25.1%를 차지했다. 유럽 42.6%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이며 2024년에는 중동 비중이 49.8%로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기준 올해 중동 지역 건설 수주는 5억6131만달러에 그쳤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56억4174만달러였다. 1년 전의 10분의 1 수준까지 내려앉은 것이다. 전체 해외건설 수주에서 중동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급격히 낮아졌다. 작년 1월부터 5월 말까지 해외건설 수주액의 48.5%가 중동에서 나왔지만 올해는 14.6%에 머물렀다. 전쟁 장기화와 발주 지연, 금융 조달 불확실성이 맞물리면서 중동 발주 시장이 사실상 관망 국면에 들어간 영향으로 풀이된다. 종전 협의가 이어지면서 가장 먼저 주목받는 분야는 에너지 인프라다. 전쟁 피해를 본 정유·가스·발전 설비 복구 수요가 선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번 이란 전쟁으로 중동 지역 에너지 설비 80곳 이상이 피해를 보았다. 단순 복구를 넘어 정유와 가스, 발전 설비 전반의 재정비 수요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장기간 제재와 투자 지연으로 노후화된 이란 내 정유·석유화학·가스 처리 설비의 개보수와 신규 생산시설 확충 기회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전후 복구 사업에서는 기존 설비를 이해하는 업체가 유리하다. 손상된 시설을 짧은 시간 안에 복구하려면 설계 구조와 시공 이력, 현장 운영 조건을 파악한 경험이 중요해서다. 국내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주요 플랜트 프로젝트를 잇달아 수행해 온 만큼 축적된 시공 경험이 재건 발주 경쟁에서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도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한화 건설부문 등은 중동에서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삼성E&A와 DL이앤씨 역시 원유·가스·발전 플랜트 분야에서 중동 사업 경험을 쌓아온 대표 업체로 꼽힌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종전 양해각서에 이란 재건 계획이 명시됨에 따라 이란 재건(정유화학, 발전소 등)뿐 아니라 유전 및 가스전 개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이란의 시장 개방은 삼성E&A, DL이앤씨, 현대건설 등 중동에서 EPC를 수행 가능한 회사에 수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종전 기대가 곧바로 수주로 연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변수는 대이란 제재 완화 여부다. 종전 MOU가 체결되더라도 금융 제재와 에너지 수출 제한, 해외 자본 유치 규제가 유지되면 이란 내 대형 프로젝트 발주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업화까지도 시간이 필요하다. 양국 간 후속 협상과 제재 완화, 금융거래 정상화, 발주처 예산 확보, 국제 입찰 절차가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로 인해 건설업계와 증권가는 기대감을 키우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류태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이란은 미국의 금융·에너지 제재로 인해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 국제 금융 거래, 해외 자본 유치 등에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며 “종전으로 인한 중동 재건 사업과 플랜트 발주 사이클에 대한 기대감 역시 유효하지만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완화 여부가 핵심 변수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2026-06-18 09:59:33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