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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강한 대책보다 흔들리지 않는 규칙이 필요하다
[경제일보] 집값이 오르면 정부는 더 강한 대책을 꺼낸다. 대출 한도를 줄이고 규제지역을 넓힌다. 세금을 올릴 가능성을 내비치고 공급 물량을 앞당기겠다고 발표한다. 시장이 잠시 주춤하면 규제를 풀고 대출 문턱을 낮춘다. 그러다 가격이 다시 뛰면 이전보다 센 대책을 내놓는다. 한국 부동산 정책은 오랫동안 이런 순환을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이 달라졌고 같은 정부 안에서도 집값과 여론에 따라 규제가 수차례 바뀌었다. 시장 참여자는 현재의 제도보다 다음 대책을 먼저 계산하게 됐다. 집을 사려는 사람도 팔려는 사람도 건설하려는 기업도 정부가 정한 규칙을 믿고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려워졌다. 지금 시장이 보내는 신호도 가볍게 넘길 상황은 아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6년 7월 둘째 주 전국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11% 올랐다. 수도권은 0.21%, 서울은 0.30% 상승했다. 지방 상승률은 0.01%에 그쳤다. 서울 아파트값은 74주째 올랐고 전셋값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전국이 함께 달아오른 시장이 아니라 서울과 수도권 선호 지역에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시장에 가깝다. 가계대출도 다시 불어났다. 지난 6월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한 달 동안 8조3000억원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4조5000억원이었다. 5월과 6월 두 달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만 17조6000억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올리면서 금융안정 위험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집값과 빚이 통화정책까지 움직이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25년 6월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 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에 6억원 한도가 도입됐다. 같은 해 9월 규제지역 주택담보인정비율인 LTV가 50%에서 40%로 낮아졌다. 10월에는 주택 가격에 따라 대출 한도를 6억원, 4억원, 2억원으로 차등화했다. 2026년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이내로 관리하고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대책은 충분히 강했다. 그런데 집값도 대출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 더 센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목이다. 정책 효과가 약한 원인을 규제의 강도에서만 찾으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대출을 더 막고 세금을 더 올리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정책의 강도와 정책의 신뢰는 다른 문제다. 아무리 센 규제라도 시장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면 수요자는 규제가 풀릴 때를 기다린다. 규제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하면 시행 전에 거래를 서두른다. 특정 지역만 묶으면 인접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고 특정 대출만 막으면 다른 금융상품을 찾는다. 정책이 시장을 이끄는 대신 시장이 다음 규제의 틈을 찾아 움직이게 된다. 한국은행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거시건전성 정책의 잦은 기조 변화는 대출 증가 억제 효과를 제한한다고 분석했다. 단기 경기 상황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규제를 활용하기보다 중장기 관점에서 운용해 정책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규제를 반복해서 강화했는데도 가계대출이 다시 늘어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진단이다. 주택은 주식처럼 오늘 사고 내일 파는 상품이 아니다. 무주택자가 집을 사기 위해서는 계약금을 마련하고 대출 가능액을 확인한 뒤 잔금 일정을 정해야 한다. 기존 주택을 처분하고 새집으로 옮기는 과정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재건축과 재개발, 민간 주택사업은 토지 확보부터 입주까지 10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계약을 맺은 뒤 대출 기준이 바뀌고 중도금을 낸 뒤 잔금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정책은 미래 행동을 안내하는 규칙이 아니라 이미 내린 결정을 뒤흔드는 위험이 된다. 법률상 소급입법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체감하는 효과는 과거 선택에 대한 불이익과 다르지 않다. 법과 제도가 신뢰를 얻으려면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어떤 조건에서 규제가 적용되는지 미리 알 수 있어야 한다. 같은 조건에는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제도가 바뀔 때는 기존 계약과 진행 중인 거래를 보호하는 경과조치를 둬야 한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정한 규칙을 지킨 사람이 뒤늦은 정책 변경으로 손해를 보고 규제의 빈틈을 예상한 사람이 이익을 얻는 구조가 반복되면 성실한 실수요자부터 제도를 믿지 않게 된다. 정책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예측 가능성을 잃은 행정은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공급정책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해 왔다. 정부는 집값이 오를 때마다 수십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허가 물량과 착공 물량, 준공 물량은 서로 다른 숫자다. 인허가를 받았다고 집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착공했다고 곧바로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국 주택 인허가는 98694호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줄었다. 착공은 94367호로 27.0% 늘었지만 준공은 88143호로 46.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안에서도 공급의 앞단과 뒷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5월 말 전국 미분양은 65239호에 달했다. 전국에 미분양이 쌓여 있으면서 서울과 수도권 선호 지역에서는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는 불균형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공급 물량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에서 언제 착공하고 언제 입주할 수 있는가다. 공급 계획은 토지 확보와 인허가, 착공, 준공으로 나눠 공개해야 한다. 일정이 늦어지면 지연 원인과 변경된 입주 시점을 밝혀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미 진행 중인 사업은 원칙대로 이어져야 한다. 대출 규제의 기본축도 다시 세워야 한다. 담보가치에 따라 빌릴 수 있는 비율을 정하는 LTV는 집값과 지역에 따라 수시로 바꾸기 쉽다. 반면 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지는 DSR은 빚을 갚을 능력을 기준으로 한다. 장기적인 가계부채 관리는 주택 가격이나 행정구역보다 차주의 상환 능력을 중심에 두는 편이 타당하다. 청년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구입자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 DSR 원칙을 무너뜨리는 예외 대출을 반복하기보다 장기 고정금리와 이자 지원, 공공주택 공급으로 돕는 편이 낫다. 정책대출을 늘렸다가 가계대출이 증가하면 다시 줄이는 방식은 지원 대상자에게도 안정적인 제도가 아니다. 규제지역 지정도 담당 부처의 판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집값 상승률과 거래량, 소득 대비 주택가격, 가계대출 증가율 같은 객관적 기준을 사전에 공개해야 한다. 일정 기준을 넘으면 규제가 강화되고 일정 기간 안정되면 완화된다는 경로를 시장이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세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보유세는 거래와 보유에 관한 국민의 장기 선택을 바꾼다. 집값이 오를 때 세금을 올리고 거래가 얼어붙으면 다시 낮추는 방식은 매물 잠김과 거래 쏠림을 반복시킨다. 적어도 3년에서 5년 동안 어떤 세목을 어떤 방향으로 조정할지 로드맵을 제시하고 충분한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 정책을 바꾸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다. 경제 여건과 인구 구조, 금리와 공급 상황이 달라지면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다만 변경 조건과 절차가 사전에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규칙 안에 변화의 기준을 넣는 것과 시장이 출렁일 때마다 규칙 자체를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르다. 강한 대책은 발표 당일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거래를 줄이고 대출 신청을 늦추는 효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이 정책의 지속성을 믿지 않으면 수요는 사라지지 않고 뒤로 밀릴 뿐이다. 공급 사업도 중단되거나 지연되고 임대차시장으로 부담이 옮겨갈 수 있다. 정부가 집값을 원하는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특정 가격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무리한 차입을 막고 충분한 주택이 꾸준히 공급되도록 제도를 관리하는 일이다. 주거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거래 과정의 불공정을 차단하는 일도 정부의 몫이다. 부동산 시장의 신뢰는 대책의 횟수나 발표문의 수위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늘 정한 기준이 내일도 적용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의 기본 틀이 유지될 때 생긴다. 국민이 자신의 소득과 자산, 가족계획에 따라 주거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지금 내놓아야 할 것은 시장을 놀라게 할 또 하나의 대책이 아니다. 대출과 세제, 공급에 관해 언제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바뀌는지 알 수 있는 규칙이다. 부동산 정책에 필요한 힘은 예고 없이 휘두르는 규제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래 지킬 원칙을 세우고 정부부터 그 원칙에 구속될 때 정책은 비로소 시장의 신뢰를 얻는다.
2026-07-23 10:4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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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1500원대 굳어지나…물가·내수 부담 커진다
[경제일보] 원·달러 환율 1500원대가 일시적 충격을 넘어 고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분기 평균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고 현재 흐름이 이어지면 연평균 환율도 1500원 안팎까지 올라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고 내수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2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4월1일부터 6월26일까지 주간거래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평균 1500.1원으로 집계됐다. 26일 환율은 외환당국 개입 경계감 속에 전날보다 10.7원 내린 1532.0원에 마감했지만 여전히 1500원대를 웃돌았다. 2분기 평균 환율이 1500원대를 기록하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분기 이후 28년여 만이다. ◆ 외국인 주식 매도, 원화 약세 압력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는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꼽힌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대규모 순매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증시가 강세를 보이면서 차익실현과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수요가 커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도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외국인 주식자금 유출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국내 주가 상승 뒤 외국인 주식자금이 빠져나가는 흐름이 반복됐고 높아진 주가 수준을 고려하면 단기적으로 리밸런싱 목적의 유출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출 호조에도 환율이 쉽게 내려오지 않는 점도 눈에 띈다.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민간의 해외 직접투자와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한 자본 유출 규모가 커지면서 원화 강세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외환보유액 증가로 이어지는 비중이 컸지만 최근에는 민간 해외자산 축적으로 흘러가는 구조가 강해졌다. 미국 달러 강세도 원화 약세를 키우고 있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하고 연방준비제도 인사들의 긴축적 발언이 이어지면서 달러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동 리스크도 부담이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 MOU 이후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충돌을 반복하면서 국제유가와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다. 통항 불안이 커지면 유가가 오르고 이는 원화와 국내 물가에 다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 가계·내수기업 물가 부담 확대 고환율은 수출기업 일부에는 환산 이익을 줄 수 있지만 내수 중심 기업과 일반 가계에는 부담이다. 원재료와 에너지, 식료품, 공산품 수입 가격이 높아지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소비자 가격에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해외여행, 유학, 해외직구, 수입차와 전자제품 가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공항 환전 환율이 1600원대를 넘어서면서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는 환율 부담은 더 크다. 시장 환율이 1500원대 초반이라고 해도 실제 환전 과정에서는 수수료와 스프레드가 붙기 때문이다. 환율이 생활물가와 소비심리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이유다. 환율 방어의 변수는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 물량과 외환당국의 개입 경계감이다. 수출기업들이 보유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환율 상승 압력을 일부 낮출 수 있다.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과 실개입 가능성도 시장의 과도한 쏠림을 제어하는 요인이다. 문제는 구조적 압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외국인 자금 흐름, 미국 금리 전망, 중동 리스크, 대미 투자 확대가 동시에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환율 1500원대가 일시적 숫자가 아니라 새로운 가격대로 굳어질 경우 정책당국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환율 안정은 외환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와 소비, 기업 비용, 금융시장 신뢰가 함께 걸린 생활경제의 핵심 변수다.
2026-06-28 1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