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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대 韓 가상자산 시장…체이널리시스, 개미들 'AI 코인' 빠르게 갈아탄다
[경제일보] 한국의 가상자산 경제 규모가 동아시아 최대 수준으로 성장한 가운데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AI 코인' 거래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I 관련 가상자산 내에서도 선호 종목이 빠르게 바뀌는 등 개인투자자 중심의 테마형 거래가 활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6일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지난 6월까지 한국의 가상자산 경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12.3% 성장한 4491억 달러(약 601조8000억원)로 집계됐다. 일본 2283억 달러(약 305조9000억원), 홍콩 1922억 달러(약 257조5000억원), 중국 1763억 달러(약 236조2000억원), 대만 1404억 달러(약 약 188조1000억원)를 웃도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규모의 성장세는 거래소를 통한 활동 증가에서도 나타났다. 국내 거래소 관련 가상자산 활동은 전년 동기 대비 16.3% 증가했으며 거래소 관련 자금 흐름은 511억 달러(약 68조5000억원) 늘었다. 다만 현재 국내 시장의 성장 중심에는 여전히 개인투자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주요 금융기관이 가상자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활발한 거래가 시장 규모 확대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AI 관련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이 다른 주요 시장과 비교해 두드러졌다. 지난 6월 기준 원화로 거래된 전체 가상자산 가운데 AI 관련 가상자산의 거래 비중은 약 18%로 집계됐다. 주요 테마형 자산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XRP와 같은 결제용 토큰의 거래 비중도 넘어섰다. 원화 거래에서 AI 관련 가상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높았다. 엔화 거래에서의 AI 관련 가상자산 비중보다 19.5배 높았으며 브라질 헤알화와 영국 파운드화, 유로화 거래에서의 비중도 크게 웃돌았다. AI 관련 가상자산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거래된 종목은 월드코인(WLD)이었다. 거래량은 74억1000만 달러(약 10조원)로 집계됐다. 이어 사하라에이아이(SAHARA) 32억 달러(약 4조3000억원), 버추얼 프로토콜(VIRTUAL) 27억 달러(약 3조6000억원), 바이오프로토콜(BIO) 20억 달러(약 2조7000억원), 니어프로토콜(NEAR) 17억 달러(약 2조3000억원) 순이었다. 이번 통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AI 관련 가상자산 안에서도 국내 투자자들의 선호 종목이 빠르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는 버추얼 프로토콜과 카이토(KAITO)가 거래를 주도했지만 올해에는 월드코인과 사하라에이아이가 주요 거래 종목으로 떠올랐다. 체이널리시스는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다른 분석 대상 시장보다 AI 관련 가상자산의 선호 종목을 빠르게 변경하면서 활발하게 거래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AI라는 동일한 테마 안에서도 시장의 관심이 특정 종목으로 이동하면 투자자들의 자금도 빠르게 따라가는 구조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전체 규모뿐 아니라 거래 성격에서도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큰 시장이라는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AI처럼 새로운 기술 테마와 연결된 가상자산은 기술 개발이나 시장 기대감 등에 따라 종목별 관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 투자자들의 자금 이동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앞으로는 법인과 기관의 시장 참여 확대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내 주요 은행과 증권사들은 이미 디지털자산 전담 조직을 마련하고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커스터디 관련 시범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투자 목적의 법인 참여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체이널리시스는 정부가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단계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시장에 유입되는 투자자 유형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개인투자자 중심의 알트코인·테마형 자산 거래와 금융기관 및 법인 중심의 디지털자산 투자가 동시에 확대될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자금 흐름이 지금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내년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소득 과세 등 제도 변화도 시장 구조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개인투자자의 투자 방식뿐 아니라 법인과 기관의 시장 참여 방식, 거래 규모와 선호 자산 등이 제도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주요 시장과 비교하면 한국의 시장 구조는 더욱 뚜렷하게 구분된다. 홍콩에서는 기관 대상 플랫폼을 통한 자금 유입이 전체 가상자산 서비스 유입액의 16%를 차지했으며 일본에서는 탈중앙화거래소(DEX)가 전체 가상자산 서비스 시장의 34.5%를 차지했다. 중국에서는 전체 가상자산 경제의 59.1%가 개인 간 자금 흐름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은 현재 개인투자자와 중앙화 거래소를 중심으로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향후 법인·기관 참여가 확대되면 홍콩 등과 같이 기관 중심의 자금 흐름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현재 국내 시장에서 두드러진 AI·알트코인 중심의 개인 거래와 기관 투자 수요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지가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권준혁 체이널리시스코리아 지사장은 "한국은 개인투자자의 참여가 활발한 시장으로, 이번 보고서에서도 AI 관련 가상자산에 대한 높은 관심과 빠른 선호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며 "향후 법인과 기관의 시장 참여가 확대되면서 국내 가상자산 시장도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체이널리시스는 신뢰할 수 있는 블록체인 데이터와 분석을 바탕으로 보다 안전하고 투명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6-10-06 17: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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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알래스카 서명 안 하면 두 배"…韓 '상업성 검토' 원칙과 충돌
[경제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를 압박하며 “곧 서명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리겠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투자 여부와 규모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힌 데 대해 추가 부담을 거론한 것이다. 사업성을 검토한 뒤 투자한다는 한국의 원칙과 조속한 참여를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이 공개적으로 부딪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알래스카 LNG 투자를 성급하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성급하게 발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 대표단이 논의에 참여했다며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괜찮다. 나는 그들에게 더 많이 청구하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아직 서명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조속히 서명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리겠다고 거듭 압박했다.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비춰 통상 압박으로 해석되지만, 무엇을 두 배로 올릴지와 적용 시점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번 발언은 지난달 30일 한국의 최대 2000억달러 대미 전략투자 계획을 발표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LNG 사업과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투자 대상으로 제시했다.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사업에 대해서는 검토에 착수한 단계라는 입장이다. 산업통상부는 “투자 여부와 투자 규모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김정관 장관도 미국 측 발표가 양국이 합의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양국 공동 발표문에도 투자에 앞서 충족해야 할 조건이 담겼다. 알래스카 LNG 사업을 검토하되,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 따른 상업적 합리성과 관련 국내법 요건이 충족되는 경우 추진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김 장관은 공식 발표에서도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사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같이 발표된 사업들도 추진 단계가 서로 다르다. 총사업비 223억달러, 설비용량 6472MW인 텍사스 발전사업은 상업성 검토와 국내 심의·국회 보고를 마친 제1호 투자 프로젝트다. 원전 8기는 협력의 큰 틀에 합의했으며, 개별 사업의 부지와 건설 일정 등을 정하고 사업성과 국내 절차를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한다. 투자 한도와 보호장치도 마련됐다. 정부는 연간 200억달러, 총 2000억달러의 투자 한도를 운영계약에 명시했다고 밝혔다. 사업성이 훼손됐다고 판단하면 정부 간 회의를 통해 사업계획과 예산, 수익 배분 등을 조정하도록 했다. 알래스카 LNG는 북부 노스슬로프의 천연가스를 약 1300㎞ 떨어진 남부 니키스키로 보내 액화·수출하는 사업이다. 연간 LNG 2000만t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개발사 글렌판이 지분 75%, 알래스카주 측이 25%를 보유한다. 경제성 검토의 핵심은 건설비와 가스 공급가격이다. 로이터는 개발사가 추산한 총사업비가 445억∼545억달러라고 보도했다. 동아시아와 가까워 운송 거리를 줄일 수 있지만, 긴 파이프라인과 가스 처리·액화시설을 함께 건설해야 한다. 공사비 상승 위험과 미국 멕시코만 연안·캐나다 LNG 사업과의 가격 경쟁도 따져야 한다. 한국이 참여할 경우 확보할 조건도 협의 대상이다. 정부 발표에는 사업 추진 시 한국산 철강 등 기자재의 관세 인하, 경제성 있는 장기 LNG 구매계약, 한국의 우선적 LNG 접근권이 담겼다. 투자금뿐 아니라 기자재 공급과 가스 구매 조건을 함께 조율해야 하는 구조다. 개발사도 투자구조를 확정하는 절차가 남았다고 밝혔다. 글렌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한미 정부와 투자구조를 마무리하고 최종투자결정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회사가 최종투자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목표로 삼은 연간 LNG 판매량은 1600만t이며, 현재 발표한 상업적 합의 물량은 1300만t이다.
2026-10-03 11: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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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전통주·133년 닥스·한글 굿즈…유통·패션업계, '오래된 가치' 재해석 나선다
[경제일보] 오래된 유산이 현재의 소비 방식과 만나 새로운 상품 경쟁력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유통·패션업계는 천년 전통주를 편의점 상품으로 되살리고, 전통 건축과 한글을 호텔 기프트로 구현하는 한편 133년 브랜드 역사를 제품·공간·문화 경험으로 확장하며 과거의 헤리티지를 오늘날 소비자가 직접 사고 입고 체험할 수 있는 가치로 바꾸는 모습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LF의 모던 브리티시 클래식 브랜드 닥스는 2026년 가을·겨울(FW) 시즌부터 133년 영국 헤리티지를 제품·공간·마케팅 전반에 반영하는 통합 브랜드 전략을 본격화한다. 핵심은 오랜 역사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고객이 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것이다. 영국의 문화·취향·라이프스타일을 제품, 인물, 공간에 함께 녹여 닥스의 브랜드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구상이다. 닥스는 그 첫 행보로 지난 20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영국 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과 '브리티시 수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클래스를 열었다. 영국식 수트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런던 수트'와 위스키 문화를 결합해 옷뿐 아니라 영국 문화까지 경험하도록 구성했다. 오는 11월에는 서울신라호텔과 부산 아난티 호텔에서 VIP 고객을 대상으로 영국 문화 요소를 접목한 미술·문화 강연과 스타일링 클래스를 진행한다. 10월에는 각 분야 인물들의 일상과 가치관을 패션과 함께 보여주는 '데이 투 나잇(Day to Night)' 캠페인도 전개할 예정이다. 제품에도 아카이브를 적극 활용한다. 닥스는 26FW 시즌부터 하우스 체크와 영국적 디자인 요소를 현대적 감도와 실루엣으로 재해석한 시그니처 라인 '디오리지널(THE ORIGINAL)'을 강화한다. 전체 컬렉션 역시 '런더너스 다이어리(The Londoner’s Diary)'를 주제로 런던의 일상과 문화를 담는다. 매장도 브랜드의 역사를 체감하는 공간으로 바꾼다. 영국식 정원에서 착안한 곡선형 구조와 하우스 체크를 형상화한 시그니처 월 등을 적용해 주요 백화점 매장을 순차적으로 리뉴얼하고 있다. LF 관계자는 "닥스가 제품에 담아온 130여년 영국 헤리티지를 문화와 서사, 취향과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브랜드 경험으로 확장하고자 한다"며 "제품, 콘텐츠, 공간, 고객 경험을 하나의 철학 아래 연결해 동시대 브리티시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오랜 브랜드 역사를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주류에서도 나타난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는 천년 신라의 역사 속 전통주를 현대적으로 복원한 프리미엄 증류주 '신라주'를 오는 26일 출시한다. 신라주는 해동역사와 지봉유설 등 역사 문헌에 등장하는 전통주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시문에도 등장할 만큼 당시 동아시아에서 풍미와 품격을 인정받았던 술로 전해진다. CU가 선보이는 신라주는 제조사 우리술컴퍼니가 신라시대 문헌 기록과 경주 지역에 전해 내려온 가양주 제조법 등을 참고해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쌀과 찹쌀을 기본으로 국화꽃과 구기자나무 열매 등을 사용했으며 전통적인 발효와 증류, 숙성 과정을 거쳤다. 고문헌과 경주 지역 전통주 제조법에 등장하는 원재료를 활용하면서도 현재 소비자가 접하기 쉬운 375㎖ 용량의 20도 증류주로 상품화했다. 가격은 1만8600원이다. 마케팅 방식도 현대 소비자와의 접점에 초점을 맞췄다. 배우 유해진을 상품 모델로 발탁해 '천만배우 유해진이 선택한 술'이라는 콘셉트로 홍보하고 다음 달에는 팝업스토어와 팬사인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편의점에서 증류주를 찾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CU의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증류식 소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8.6% 늘어 일반 소주 증가율인 7.3%를 크게 웃돌았다. 주류에서도 원재료와 제조 방식, 제품에 담긴 이야기 등을 중시하는 소비가 늘면서 전통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제품이 새로운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잊혀졌던 신라의 전통주를 문헌 속 기록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려 선보이게 됐다"며 "앞으로도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담은 차별화된 주류 상품을 통해 고객에게 새로운 주류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호텔업계에서는 한국 고유의 공간, 문자, 공예 자체를 현대적인 상품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서울신라호텔은 한국 전통 건축과 한글, 공예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K-아트 기프트 컬렉션'을 선보인다.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호텔이 보유한 문화적 자산 자체를 상품의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컬렉션은 단양 오미자와 제주 흑임자, 지리산 녹차, 안동 우엉 등 국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식재료를 활용한 프리미엄 구움과자 4종으로 구성됐다. 상품 디자인에는 서울신라호텔의 상징적 공간인 영빈관이 녹아 있다. 공예 디자인 브랜드 '칠석무늬'의 방윤정 작가는 영빈관의 처마, 문살, 단청 등 전통 건축의 조형미를 모티프로 디자인을 개발했다. '신라'와 '신라호텔'의 한글 초성도 현대적인 그래픽 패턴으로 바꿨다. 특히 '신라' 디자인은 영빈관 처마의 곡선과 돌담 형태에서 착안해 'ㅅ'과 'ㄹ'의 조형적 특징을 연결했다. 목공예 브랜드 '소목소복'의 김송이 작가와는 우드 케이스를 제작했다. 지역 식재료로 만든 식품과 전통 건축 디자인, 목공예를 하나의 상품에 담아 한국적 미감을 선물 경험으로 구현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이번 컬렉션은 서울신라호텔의 상징적 공간인 영빈관의 헤리티지와 한국적 미감을 담아 기획한 상품"이라며 "앞으로도 영빈관을 비롯한 서울신라호텔의 문화적 자산과 스토리를 담은 상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2026-08-24 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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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를 동남아 게임 허브로"…BIC, 현지 생태계와 협력 넓힌다
[경제일보] 1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인디커넥트페스티벌 2026’(BIC 2026) 현장에는 세계 각국의 인디게임을 체험하려는 관람객과 개발자들이 모였다. 출품작을 직접 플레이할 수 있는 부스 사이로 대학과 교육기관이 참여한 공간도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 통신디지털부(KOMDIGI) 관계자들은 이 현장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 인디게임 산업의 협력 확대 가능성을 확인했다. 다니 하디 사푸트로 게임 경쟁력·역량 개발 책임자와 티타 아유디티야 수르야 게임 생태계 개발 팀장은 전시장을 돌아본 뒤 이정엽 BIC 심사위원장과 공동 인터뷰를 갖고 인도네시아 게임산업의 현황과 양국 교류 계획, 현지 진출 시 유의할 제도를 설명했다. 티타 팀장은 인도네시아 게임산업의 규모를 약 200개 현지 게임 스튜디오로 소개했다. 그는 “현지 스튜디오들이 자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와 글로벌 시장으로 입지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BIC 같은 국제 행사는 개발자들이 해외 시장과 글로벌 업계 관계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지 개발사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게임 개발자 익스체인지(IGDX)’를 운영하고 있다. IGDX는 투자자와 퍼블리셔, 개발자가 만나는 인도네시아 최대 규모의 기업 간 거래(B2B) 게임 행사다. 현지 스튜디오의 투자 유치와 해외 진출을 돕는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BIC와 인도네시아의 협력은 단순한 행사 참가를 넘어 인재 양성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정엽 위원장은 “BIC에는 이전부터 인도네시아 게임이 꾸준히 출품됐고, 비누스대학교는 약 4년간 루키 부문에 게임을 제출해 왔다”며 “지난해부터 양국 협력을 확대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BIC와 순천향대학교 관계자들은 인도네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해 KOMDIGI와 현지 게임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현재 순천향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추진하는 사업을 통해 인도네시아게임협회, 비누스대학교, KOMDIGI, 현지 게임사 아가테 등이 참여하는 인디게임 개발자 양성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향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IGDX와 BIC가 공동 세션을 운영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인도네시아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주변 국가와 게임산업 교류가 활발하다”며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BIC의 동남아 교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인디게임 행사를 묶는 ‘아시아 인디게임 협의체’ 구상은 아직 확정된 계획이 아니다. 이 위원장은 “장기적으로 협의체 형태의 연대를 구상하고 있지만 현재는 BIC 내부에서 여러 가능성을 논의하는 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인도네시아 게임시장은 모바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다니 책임자는 한국 게임사가 현지에 진출할 때 모바일 이용 환경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용자 간 소통과 교류를 지원하는 소셜 기능도 주요 요소로 꼽았다. 반면 현지 인디게임 개발사들은 전체 시장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다니 책임자는 “인도네시아 게임시장 전체는 모바일 중심이지만 인디 개발사들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PC와 스팀 플랫폼을 중심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패키지 게임도 현지 인디게임 생태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게임사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려면 제도 확인도 필요하다. 티타 팀장에 따르면 게임 서비스 사업자는 우선 전자시스템 제공자(Electronic Systems Provider·PSE) 등록을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게임 등급분류 시스템인 IGRS도 주요 제도다. 현재 IGRS는 제도 평가와 개편을 위해 일시 중단된 상태지만, 재시행되면 게임의 연령 등급과 콘텐츠 성격에 따른 표기를 지켜야 한다. 캐릭터 외형과 게임 연출도 심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으며, 출시 후 대규모 콘텐츠가 변경되면 재심사가 필요할 가능성도 있다. 양국 협력의 거점으로는 인도네시아 반둥 지역이 거론된다. 반둥에는 아가테를 비롯한 게임 스타트업과 개발사가 모여 있고, 지역별 최저임금 차이로 개발사 운영 비용 측면에서도 이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 위원장은 “향후 인력 양성 사업이 추진된다면 반둥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의 최종 지역과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첫 BIC 방문에 나선 KOMDIGI 관계자들은 행사 운영 방식에도 주목했다. 티타 팀장은 “전 세계 인디게임이 한자리에 모이고 개발자들이 투자자와 퍼블리셔를 직접 만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BIC가 게임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네트워킹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다니 책임자는 대학과 교육기관의 참여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IGDX와 BIC는 개발자의 성장을 지원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며 “미래 게임산업을 이끌 인재들이 행사 현장에서 경험을 쌓는 구조가 의미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번 협력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나 양국은 행사 참가와 부스 교환을 넘어 개발자 교육, 투자·퍼블리싱 연계, 공동 세션으로 협력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BIC가 인도네시아를 동남아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삼으려면 교류를 실제 출시와 투자, 공동 개발 성과로 연결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역시 풍부한 인재와 시장을 기반으로 현지 스튜디오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BIC 2026 현장에서 시작된 한·인니 게임산업 협력이 아시아 인디게임 생태계를 잇는 실질적인 통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6-08-14 2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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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사장님'…자영업 과잉의 한국경제
[경제일보] 한국 경제의 특징 중 하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점이다. 골목마다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 미용실, 학원, 배달·운송 사업자가 몰려 있다. 외형상으로는 창업 열기가 강한 사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 조기 퇴직, 재취업 시장의 한계, 사회안전망의 빈틈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의 2025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비임금근로 및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비임금근로자는 655만4000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2.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43만5000명,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424만1000명이었다. 비임금근로자는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함께 포함하는 개념이다.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주요 선진국보다 높은 편으로 분류된다. 다만 국가별 통계는 단순 비교에 주의가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영업률은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하지만, 국가마다 법인화된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처리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세계은행의 국제노동기구(ILO) 모델 추정치도 고용주, 자기계정근로자, 생산자협동조합원, 무급가족종사자 등을 자영업 범주에 포함한다. 그럼에도 큰 흐름은 분명하다. 한국은 자영업자만 따로 봐도 20% 안팎, 무급가족종사자를 포함한 비임금근로자 기준으로는 20%대 초반 수준이다. 반면 미국은 기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 자릿수 중후반에서 10% 안팎으로 집계되고, 독일과 일본도 대체로 10% 안팎으로 한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높은 자영업 비중은 단순한 개인 선택의 결과라기보다 노동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현상에 가깝다.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영세 자영업 비중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기업과 프랜차이즈, 전문 서비스 기업이 구매력과 물류, 마케팅, 디지털 시스템을 앞세워 개인 점포를 대체하거나 흡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더 낮은 가격과 표준화된 서비스를 선택하고 근로자는 사업 위험을 직접 부담하는 자영업보다 안정적인 임금근로를 선호하게 된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에서 자영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임금근로자가 의료보험, 연금, 유급휴가, 실업보험 등 각종 제도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실직하더라도 실업급여와 재취업 지원을 통해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다. 약국, 슈퍼마켓, 식당, 자동차 정비, 요양 서비스 등 생활 서비스의 상당 부분도 대형 체인과 기업 중심으로 운영된다. 개인이 점포를 열어 생계를 해결해야 할 압력이 한국보다 낮은 셈이다. 창업과 유지 비용도 차이가 있다. 미국과 유럽은 건축·소방·위생 규정, 장애인 편의시설 기준, 노동법 준수 부담이 크다.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무리한 생계형 창업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다만 유럽도 국가별 차이는 크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는 가족 사업과 관광·소매 서비스 비중이 커 북유럽이나 독일보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한국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압축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르게 이동했지만 기업 일자리가 이를 모두 흡수하지 못했다. 제조업과 대기업은 성장했지만 직접 고용의 폭은 제한적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도 커졌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한 인력은 소규모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개인서비스업으로 흘러갔다. 조기 퇴직과 늦은 실질 은퇴도 한국 자영업 구조를 키운 요인이다. 50대 전후로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지만 경력을 살릴 재취업 시장은 충분하지 않다. 국민연금 수령 전까지 소득 공백이 발생하고 퇴직금은 생계형 창업의 초기 자금으로 쓰인다. 음식점, 카페, 편의점, 프랜차이즈, 배달·운송업 등은 비교적 진입이 쉽지만, 같은 업종에 창업자가 몰리면서 과당경쟁이 반복된다. 자영업은 한국 경제에서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다. 기업과 노동시장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인력을 받아들이고, 퇴직 이후 소득 공백을 메우는 제2의 노동시장 기능을 해온 것이다. 문제는 이 완충지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 증가보다 점포 수가 빠르게 늘면 매출은 나뉘고, 임대료와 인건비, 원재료비, 플랫폼 수수료 부담은 커진다. 결국 상당수 자영업자는 ‘사장’이라는 이름과 달리 장시간 노동과 낮은 수익성에 노출된다. 동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구조는 독특하다. 일본은 장기고용 문화와 정년 후 재고용 제도, 대형 유통망 발달로 한국보다 자영업 비중이 낮은 편이다. 중국은 농업 인구와 비공식 경제, 플랫폼 노동 비중이 커 자영업률이 높게 나타날 수 있지만, 이는 OECD 회원국 중심의 선진국 비교와는 별도로 봐야 한다. 대만은 중소기업과 소규모 제조업 생태계가 발달해 자영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으로 평가되지만, 공식 통계 기준을 따로 확인해 비교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자영업 문제를 창업 지원만으로 풀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창업 교육과 금융 지원이 필요하더라도 이미 포화된 업종에 더 많은 창업자를 밀어 넣는 방식은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핵심은 양질의 임금 일자리 확대, 중장년 재취업 시장 개선, 직업훈련 강화, 실업·연금 안전망 보완으로 꼽힌다. 한 노동시장 전문가는 “한국의 높은 자영업 비중은 창업 정신이 강해서라기보다 노동시장이 충분한 선택지를 제공하지 못한 결과에 가깝다”며 “자영업자는 경제 활력의 한 축이지만, 동시에 임금 노동시장이 흡수하지 못한 인력이 스스로 위험을 떠안는 구조의 반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영업 대책은 소상공인 지원 정책인 동시에 고용·복지·은퇴 정책이어야 한다”며 “창업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와 재취업 기회, 실업·연금 안전망을 넓히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2026-08-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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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금리 인상, 한국 경제에 던진 세 가지 경고
[경제일보] 일본은행이 움직였다. 16일 일본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0.75%에서 1.0%로 0.25%포인트 올렸다. 1995년 이후 31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결정 배경은 분명하다. 미국·이란 전쟁이 남긴 에너지 가격 충격, 호르무즈 해협 불안, 공급망 훼손, 그리고 기업 간 가격 전가가 소비자물가로 번질 가능성이다. 일본은행이 중동발 인플레이션 위험과 엔화 약세를 금리 인상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전쟁은 총성과 함께만 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유조선 항로로 오고 해상보험료로 오고 원유 선물 가격으로 오며 중앙은행 회의장 의사봉 소리로 온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완화되고 유가가 하락했다는 소식도 있지만 그것이 곧 물가 위험의 종료를 뜻하지는 않는다. 실제 브렌트유가 배럴당 78.96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공급 정상화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문제는 일본의 금리 인상이 일본만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에는 적어도 세 가지 경고가 담겨 있다. 첫째는 환율 경고다. 둘째는 물가 경고다. 셋째는 금리 경고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 금리와 달러 흐름에 주로 신경을 써왔다. 그러나 일본이 저금리 시대의 끝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동아시아 자금 흐름도 달라진다. 엔화 금리가 오르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은 약해진다.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던 돈의 일부는 되돌아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신흥시장 통화와 주식, 채권은 변동성을 맞는다. 원화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일본 금리 1.0%는 여전히 미국이나 한국보다 낮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 수준보다 방향이다. 일본은행이 “더 이상 무제한 완화의 시대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순간, 시장은 일본 자금의 귀환 가능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한국 채권시장에는 장기금리 상승 압력으로, 주식시장에는 외국인 수급 불안으로, 외환시장에는 원·엔, 원·달러 변동성 확대로 나타날 수 있다. 물가에도 경고음을 울렸다. 한국은 일본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낮다고 말하기 어렵다. 원유와 LNG,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면 기업 원가가 먼저 오른다. 이어 전기요금, 운송비, 항공료, 식품 가격, 외식 가격으로 번진다. 이미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1%로 2년여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석유류 가격과 국제항공료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국은행이 올해 물가 전망을 2.2%에서 2.7%로 올렸고 향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가가 무서운 것은 한 번 오르면 제자리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 데 있다. 원유 가격이 내려도 물류비와 인건비, 가공비를 거쳐 소비자가격에 붙은 인상분은 남는다. 일본은행이 우려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기업 간 거래에서 시작된 가격 전가가 소비자 단계의 광범위한 품목으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본은행 결정을 보면 원유 가격 상승이 기업 간 가격 전가를 빠르게 만들고 이것이 소비자물가로 파급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은행도 같은 길목에 서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2일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늦지 않게 금리를 인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주요 중앙은행의 긴축 전환은 한국은행의 하반기 금리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경고는 정책의 착시다. 유가가 하루 이틀 떨어졌다고 해서 물가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는 속도보다 공급망의 상처가 아무는 속도는 느리다. 에너지 인프라가 손상됐고 보험료와 운임, 재고 확보 비용은 이미 기업 장부에 반영됐다. 유럽중앙은행 인사들도 중동 긴장이 완화된 뒤에도 에너지 가격 압력이 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의 딜레마는 여기서 깊어진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부채와 내수에 부담이 간다. 금리를 묶어두면 물가와 환율이 흔들린다. 한국은 가계부채가 크고 자영업 경기의 회복력도 약하다. 그렇다고 물가를 방치할 수도 없다. 중앙은행이 물가 기대를 놓치면 훗날 더 큰 금리 인상으로 되갚아야 한다. 지금의 0.25%포인트는 고통스럽지만 뒤늦은 1%포인트는 더 잔인하다. 기업에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일본 금리 인상은 단순한 금융 뉴스가 아니다. 에너지 조달, 원자재 재고, 환헤지, 차입 구조, 해외 생산망을 다시 점검하라는 경고장이다. 특히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항공, 해운 등 에너지와 환율에 민감한 업종은 ‘전쟁 이후’가 아니라 ‘전쟁의 비용이 장부에 남는 시간’을 봐야 한다.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실적 격차도 커질 것이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심성 보조금 경쟁이 아니다. 에너지 취약계층과 물류·운송·중소 제조업에 대한 정밀 지원, 전략 비축, 수입선 다변화, 전력망 투자, 환율 급변 대응 장치가 필요하다. 통화정책이 물가 기대를 붙잡는다면 재정정책은 충격이 가장 약한 곳으로 몰리지 않도록 완충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브레이크를 밟고 정부는 안전벨트를 채워야 한다. 동양 고전 <춘추좌씨전>에는 ‘안거위사(安居危思)’라는 말이 있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유가가 조금 내렸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일본이 금리를 올렸다는 것은 이웃 나라 중앙은행이 위험을 먼저 본 것이다. 한국이 그 경고를 남의 일로 흘려듣는다면 다음 차례는 원화와 물가와 가계 이자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본의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묻고 있다. 우리는 전쟁이 남긴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고 있는가.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는 충분한가. 환율과 자본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지금은 낙관보다 대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전쟁이 끝났다고 믿는 착각이다.
2026-06-17 17: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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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日 NTT와 7600억 AI펀드…한일 AI동맹 판 키운다
[경제일보] SK텔레콤(대표이사 CEO 정재헌)이 일본 NTT, 대만 중화텔레콤과 손잡고 차세대 인공지능(AI) 생태계 확장에 나선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광통신, 산업용 AI 서비스 등 핵심 기술 기업에 공동 투자하는 5억 달러 규모 펀드를 조성해 국경을 넘는 기술 연대를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SK텔레콤은 10일 일본 도쿄 오테마치 NTT 본사에서 NTT, 중화텔레콤과 기자간담회를 열고 차세대 AI 기술에 투자하는 ‘아이온 AI 펀드(IOWN AI Fund)’를 공동 조성한다고 밝혔다. 펀드 규모는 5억 달러, 한화로 약 76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3사는 실리콘밸리와 동아시아를 거점으로 하는 펀드 운영회사 카탈라이트 캐피털(Catalight Capital)을 설립해 글로벌 투자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조만간 1차 투자사 모집을 마감하고 펀드를 공식 출범할 계획이다. 이번 펀드는 AI 인프라 경쟁이 개별 기업의 기술 개발을 넘어 국가·지역 단위의 산업 연합으로 확산되는 흐름 속에서 추진됐다. 생성형 AI 확산 이후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 반도체 공급망, 초고속 네트워크, 추론 비용 절감 등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ICT 기업 간 합종연횡도 빨라지고 있다. 투자 대상은 AI 전 영역에 걸쳐 있다. 구체적으로 전력 효율 최적화와 액체 냉각 등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AI 가속기·GPU·NPU 등 AI 반도체, 의료·제조·금융 분야 AI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 분산 시스템, 추론 최적화 소프트웨어, 데이터 전송 성능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광통신 기술 기업 등이 포함된다. 투자 지역도 북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3사는 북미를 비롯해 아시아와 유럽의 혁신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단순 재무적 투자에 그치지 않고 기술 검증, 서비스 고도화, 고객 발굴까지 지원해 실제 사업화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NTT 측은 소니, 도시바 등 글로벌 기업 약 20개사가 펀드 출자 참여에 관심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도 펀드 참여를 준비 중이다. SK그룹 차원에서는 SK텔레콤의 AI 서비스·네트워크 역량과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공급망 경쟁력이 맞물릴 경우 펀드의 전략적 활용 폭이 커질 수 있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이번 펀드가 단순한 해외 투자 확대를 넘어 AI 사업 전환의 외연을 넓히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회사는 AI 데이터센터, B2B·B2C AI 서비스, 글로벌 AI 스타트업 투자 등을 통해 통신사에서 AI 인프라 기업으로 체질 전환을 추진해 왔다. NTT와 중화텔레콤의 참여는 이 같은 전략을 동아시아 단위 협력 모델로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 한일 기업 협력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와 통신 인프라, 일본은 광통신·소재·장비·대형 ICT 서비스, 대만은 반도체 공급망과 통신 인프라에서 각각 강점을 갖고 있다. 이번 펀드가 실제 투자와 사업 협력으로 이어질 경우 동아시아 AI 생태계의 기술 분업과 공동 사업 모델이 구체화될 수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정재헌 SK텔레콤 CEO, 시마다 아키라 NTT CEO, 린롱츠 중화텔레콤 사장 등 3사 주요 경영진이 참석했다. 시마다 아키라 NTT CEO는 “AI 네이티브 인프라 실현을 위해서는 전 세계 첨단 기술과 파트너의 힘을 결합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유망 스타트업과의 사업 제휴를 추진하고 새로운 산업 기반을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린롱츠 중화텔레콤 사장은 “통신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경을 넘는 사업 개발을 통해 글로벌 스타트업을 지원하겠다”며 “최고의 파트너들과 함께 첨단 기술 상용화를 가속화하고 차세대 AI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헌 SK텔레콤 CEO는 “SK텔레콤은 다수의 글로벌 AI 기업에 초기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며 AI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며 “이러한 성공 경험과 SK그룹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혁신 기업들과 협력 기회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06-10 11: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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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정상회담, 패권보다 세계 안정과 평화의 지혜 모아야
[경제일보] 9년 만에 성사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남겼다. 135분 동안 이어진 이번 회담은 미·중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대신 일정 수준의 관리와 공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특히 미·이란 전쟁 이후 국제 유가 급등과 공급망 불안, 세계 경제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두 초강대국 정상이 직접 마주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는 사실 자체가 세계 시장과 국제사회에는 하나의 안도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직접 언급하며 미국과의 공존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이 충돌로 치닫는 역사의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재 국제 질서가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위기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은 경제·안보·기술 분야에서 첨예하게 경쟁하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경제와 공급망, 에너지 질서의 중심축이라는 점에서 어느 한쪽의 붕괴나 충돌은 곧 세계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전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 과거처럼 중국을 정면으로 압박하기보다는 협력과 관계 안정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드러냈다. 시 주석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미국 기업인들을 대거 동행시켜 경제 협력 의지를 강조한 것은 미국 역시 중국과의 완전한 대결보다는 관리 가능한 경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미·이란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과 미국 내 물가 상승, 에너지 가격 불안은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무한정 감당하기 어려운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마냥 낙관적인 신호만을 남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강경한 입장이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됐다. 시 주석은 대만 문제를 “중·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규정하며, 잘못 처리할 경우 양국 충돌 가능성까지 직접 언급했다. 이는 중국이 대만 문제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재확인한 것이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여전히 동아시아와 세계 안보의 가장 위험한 화약고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아쉬운 점은 세계가 주목했던 미·이란 전쟁과 관련해 구체적인 합의나 공동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이 중동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는 하지만, 휴전이나 종전을 위한 실질적 공조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세계가 가장 절실히 바라는 것은 패권 경쟁의 승패가 아니라 전쟁의 종식과 국제 질서의 안정이다. 중동의 불안은 단순히 한 지역의 분쟁에 그치지 않는다. 에너지 가격 폭등과 물류 차질,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져 전 세계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이제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양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세계 최강을 다투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평화와 경제 안정을 책임져야 할 가장 큰 책무도 지니고 있다. 자국의 국익만을 앞세운 무한 경쟁은 결국 세계 경제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패권을 향한 과도한 집착은 갈등을 키우고 국제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절제와 책임의 리더십이다. 미국은 패권 유지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협력 질서를 존중해야 하며, 중국 역시 확대된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두 나라는 중동 전쟁의 조기 종식과 에너지 시장 안정, 글로벌 공급망 회복을 위해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두 초강대국에 기대하는 역할이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분명 갈등 관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화만으로 평화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진정한 시험대는 앞으로다. 두 나라가 경쟁 속에서도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협력 원칙을 지켜낼 수 있을지, 그리고 세계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덜어줄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국제사회는 지켜보고 있다. 강대국의 진정한 위대함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에 있지 않다. 전쟁의 위험을 줄이고 세계 평화를 지켜내는 지혜에 있다. 미국과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패권 경쟁을 넘어 인류 공동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책임 있는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2026-05-14 18: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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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역사의 이란과 250년 역사의 미국, 호르무즈 해협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경제일보] 세계는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바라보고 있다. 국제 원유 수송의 심장부이자 세계 경제의 혈관인 이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5천년 역사의 페르시아 문명국 이란과 250년 역사의 초강대국 미국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이란의 종전 협상 답변에 대해 “완전히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중동 정세는 다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국면으로 들어섰다. 표면적으로는 핵 협상과 휴전 문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단순하지 않다. 이번 충돌의 핵심에는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지정학적 목줄과, 그 배후에 놓인 문명과 패권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은 자유 항행과 국제 질서를 이야기한다. 반면 이란은 국가 생존과 역사적 자존을 이야기한다. 서로 바라보는 세계관 자체가 다르다. 미국은 젊고 강한 나라다. 건국 이후 불과 250년 만에 세계 최강국이 됐다. 산업혁명 이후의 자본주의와 군사력, 달러 패권과 해양 패권을 동시에 장악했다. 미국은 문제를 압도적 힘과 속도로 해결하려는 국가적 습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은 상대를 극단까지 몰아붙인 뒤 극적인 타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단기적 압박과 충격 전략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란은 다르다. 오늘날의 이란은 단순한 중동의 한 국가가 아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기억과 실크로드의 게이트키핑 경험을 몸속 깊이 간직한 나라다. 기원전 다리우스 시대부터 이미 ‘왕의 길’을 통해 동서 교역망을 통제했던 국가다.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략과 왕조 교체, 종교 혁명과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나라다. 이란은 힘의 크기보다 시간의 길이를 믿는 국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미국은 이란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 제재를 통해 단기간에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만, 이란은 시간을 길게 끌며 상대의 피로와 내부 균열을 기다린다. 미국 항공모함이 중동 앞바다를 뒤덮을 때 이란은 정면 충돌을 피한다. 대신 대리 세력과 국지전, 비정규전, 해상 교란과 심리전을 활용한다. 약자의 전략이지만, 역설적으로 강자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방식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거나 충돌이 장기화되면 국제 유가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이곳을 지나간다. 한국·일본·중국 같은 동아시아 산업국가들은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순한 기름값 문제가 아니다. 석유화학과 철강, 반도체와 해운, 전력과 물류 비용 전체가 흔들린다. 환율 불안과 수입물가 상승은 결국 서민 경제까지 압박하게 된다. 특히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중동발 위기는 곧바로 한국 경제의 생산 원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미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쳐 있다. 여기에 호르무즈 변수까지 더해질 경우 세계 경제는 또 하나의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재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비관적 시나리오다.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군사 충돌이 확대되는 경우다. 이 경우 이란은 직접 봉쇄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조선 공격과 해상 교란을 통해 국제 유가를 급등시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군사 보복에 나설 것이고, 중동 전역은 장기 불안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 세계 금융시장은 급격한 조정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중간 시나리오다. 가장 현실적인 그림일 수 있다. 양측이 공개적으로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면서도 물밑 협상을 병행하는 형태다. 군사적 긴장은 유지되지만 전면전은 피하는 방식이다. 국제 유가는 높은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시장은 장기 불확실성 속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중동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패턴이기도 하다. 셋째는 낙관적 시나리오다. 핵 문제와 항행 보장 문제에서 일정 수준의 절충이 이뤄지는 경우다. 미국은 체면을 세우고, 이란은 공개적 굴복 이미지를 피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국제 유가는 안정을 되찾고 금융시장도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지금의 강경 기류를 볼 때 단기간에 이런 합의가 도출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다. 해양 패권과 문명 전략, 속도의 정치와 시간의 정치가 충돌하는 장면이다.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졌지만,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정학적 생존 감각을 가진 나라 가운데 하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강한 것은 부러지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살아남는다(柔弱勝剛强)”고 말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제국은 언제나 압도적 힘으로 등장했지만, 긴 시간 살아남은 것은 오히려 끈질긴 문명과 기억이었다. 호르무즈 해협의 파도는 단순한 바닷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석유와 달러, 종교와 문명, 역사와 패권이 함께 흐르고 있다. 지금 세계는 다시 묻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누가 시간의 편에 서게 될 것인가.
2026-05-11 10:4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