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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로 시작해 빅5까지…율촌, 합병 없이 키운 29년
[경제일보] 1997년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 변호사 6명이 모였다. 조세를 맡은 우창록, 공정거래와 국제조세의 윤세리, 기업금융의 강희철, 금융의 한봉희, M&A의 정영철 변호사 등이었다. 대형 로펌들이 이미 기업법무 시장의 자리를 잡아가던 때였다. 새 로펌의 이름은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뜻을 담아 율촌(律村)으로 지었다. 29년이 지난 지금 율촌의 연 매출은 4000억원을 넘어섰다. 2025년 매출은 4080억원으로 전년 3709억원보다 10% 늘었다. 태평양과 세종, 광장에 이어 국내 법무법인 가운데 네 번째 4000억원대 로펌이 됐다. 한국 변호사 1인당 매출은 약 7억6000만원으로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율촌의 성장 과정은 앞서 출발한 대형 로펌과 조금 다르다. 다른 로펌을 합쳐 단기간에 변호사 숫자를 늘리지 않았고 처음부터 모든 업무를 갖추지도 않았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이름을 알린 뒤 기업자문과 M&A, 송무, 금융으로 영역을 넓혔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대형 로펌과의 합병 없이 조직을 키워왔다. ◆ 김앤장을 나온 조세 변호사가 만든 사무실 율촌의 시작은 법무법인 설립보다 5년 앞선 1992년이다. 우창록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사법연수원 6기인 우 변호사는 김앤장과 미국 뉴욕 로펌에서 일했고 국내에서는 일찍부터 조세 분야를 파고들었다. 조세가 기업법무의 주요 전문분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 1994년 사무실 이름은 율촌합동법률사무소로 바뀌었다. 이후 우 변호사는 조세만으로 로펌을 키우기보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변호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와 국제조세를 다룬 윤세리 변호사, 기업금융의 강희철 변호사, 조세의 한만수 변호사, 금융과 지식재산권의 한봉희 변호사 등이 합류했다. 1997년 법무법인 율촌이 공식 출범했다. 윤세리 변호사의 경력도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았다. 검사 생활을 거쳐 하버드 로스쿨에서 LL.M.,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에서 J.D.를 받은 뒤 미국 베이커앤드맥켄지 뉴욕·시카고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이후 한미합동법률사무소와 우방종합법무법인을 거쳐 율촌 설립에 참여했다. 처음부터 분야를 나눠 사람을 모은 것도 규모보다 전문성을 먼저 세우려는 선택이었다. 이미 시장에서는 김앤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이 앞서 있었다. 후발주자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격차를 좁히기 어려웠다. 율촌은 처음부터 모든 분야를 갖추기보다 경쟁할 수 있는 전문분야를 먼저 만드는 길을 택했다. ◆ 첫 승부처는 조세와 공정거래 율촌이라는 이름을 법률시장에 알린 분야는 조세였다. 우창록 변호사는 현대그룹 계열사를 둘러싼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소송 등 대기업 조세 사건을 맡았다. 조세 사건은 세법만 알아서는 다루기 어렵다. 기업의 회계와 거래 구조를 이해해야 하고 국세청의 과세 논리와 법원의 판단 기준도 함께 읽어야 한다. 율촌은 변호사와 회계사, 세무사가 함께 사건을 다루는 방식으로 조세 분야의 인력을 늘렸다. 공정거래는 윤세리 변호사가 한 축을 맡았다. 기업결합과 카르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등 기업의 영업 자체를 좌우하는 사건이 늘어나면서 공정거래법도 기업법무의 주요 분야로 올라왔다. 율촌은 설립 초기부터 공정거래를 별도 전문분야로 키웠다. 두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송이 벌어진 뒤 법정에서 다투는 일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기업이 거래를 시작하기 전부터 세금과 규제를 검토해야 했고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단계에서도 대응해야 했다. 율촌은 이 시장에서 먼저 기업 고객을 확보했다. 2026년 체임버스앤파트너스 평가에서도 율촌은 조세와 공정거래 분야 모두 국내 Band 1에 올라 있다. 조세는 김앤장·세종과 함께 최상위 그룹에 들었고 공정거래는 김앤장·광장·세종과 같은 등급을 받았다. 창립 초기 선택한 두 분야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주력 업무로 남아 있다. ◆ 큰 로펌을 사지 않고 사람과 분야를 늘렸다 2000년대 국내 로펌 시장에는 합병 바람이 불었다. 광장은 한미와 합쳤고 세종은 열린합동을 받아들였다. 대형 로펌으로 빨리 몸집을 키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다른 조직과의 결합이었다. 율촌은 다른 길을 택했다. 설립 이후 대형 로펌을 합병하지 않고 변호사를 직접 뽑거나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조직을 키웠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기업법무·금융, 송무, 지식재산권, 부동산·건설로 업무가 늘어났다. 대형 조직을 통째로 받아들이기보다 필요한 사람과 분야를 하나씩 붙이는 방식이었다.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1997년 6명의 파트너 변호사로 출발했지만 2010년에는 국내외 변호사와 변리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인력이 230여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변호사만 500명을 넘어섰다. 2021년 381명이던 변호사는 2025년 537명으로 4년 동안 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2687억원에서 4080억원으로 52% 늘었다. 사람을 늘리면서도 1인당 매출을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높은 수준으로 유지했다. 몸집을 키우되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한 것이 율촌 성장 과정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다. ◆ ‘조세 로펌’에서 M&A까지 조세와 공정거래만으로 500명이 넘는 변호사를 먹여 살릴 수는 없다. 율촌도 기업법무와 M&A, 금융 분야를 계속 키웠다. 2026년 체임버스앤파트너스는 율촌의 기업·M&A 부문을 국내 Band 1로 평가했다. 복잡한 거래에서 조세와 공정거래 전문가를 기업자문팀과 함께 투입하는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M&A 계약만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결합 심사와 세금 문제를 같은 조직에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최근 사례가 신세계그룹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합작투자다. 양측은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묶어 6조원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했고 율촌은 신세계 측 법률자문을 맡았다. 기업결합 승인과 지마켓 지분의 현물출자에 필요한 법원 인가 등 여러 절차가 함께 진행된 거래였다. 기업법무가 커져도 조세와 공정거래는 뒤에서 함께 움직인다. M&A 한 건에는 계약과 금융뿐 아니라 기업결합 심사와 세금, 노동 문제가 동시에 따라붙는다. 율촌이 처음부터 나눠 키운 전문분야들이 대형 거래에서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 베트남에서 먼저 해외 거점 늘려 국내 조직이 커지면서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율촌은 2007년 베트남 호찌민에 사무소를 열었고 2010년 하노이, 2011년 중국 베이징에 진출했다. 이후 미얀마 양곤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도 거점을 두면서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업무를 늘렸다. 2007년에는 국문과 영문 사명을 모두 ‘율촌(Yulchon)’으로 통일했다. 해외에서 창업자들의 성을 조합한 이름을 쓰는 국내 로펌이 적지 않았지만 율촌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영문 브랜드로 사용했다. ‘법률가의 마을’이라는 창업 당시 이름을 해외에서도 그대로 가져갔다. 해외 확장도 대형 외국 로펌과 합병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한국 기업이 많이 나가는 국가에 직접 사무소를 열거나 현지 로펌과 협업하는 방법을 택했다. 국내에서 선택했던 자체 성장 방식이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다만 국내 대형 로펌의 해외사업은 여전히 숙제가 많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대형 거래나 소송을 벌일 때 현지 영미계 로펌을 직접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쌓은 전문성을 해외 매출로 얼마나 연결하느냐는 율촌을 포함한 국내 대형 로펌들이 풀어야 할 문제다. ◆ 창업자 물러나고 조세 전문가가 대표 맡아 율촌의 세대교체는 2019년 한 차례 큰 변화를 맞았다. 창업자인 우창록 변호사가 일선 경영에서 물러났고 윤용섭·강석훈·윤희웅 변호사 등이 경영을 맡았다. 현재 대표변호사인 강석훈 변호사는 17년간 판사로 근무한 뒤 2007년 율촌에 합류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조세팀장을 지낸 조세 전문가로 율촌 조세그룹 대표를 거쳐 2019년 경영대표가 됐다. 최근에는 그룹별 세대교체도 진행했다. 2025년 초 조세와 송무, 기업법무·금융 등 주요 그룹 대표를 1970년대생 변호사들로 바꿨다. 강 대표도 2027년 하반기 차기 대표에게 경영을 넘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업세대에서 2세대, 다시 다음 세대로 경영권을 옮기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율촌의 인재 기준에는 ‘협업’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창립 20주년 사사에는 전문성과 윤리성, 협동정신을 인재 영입의 세 가지 기준으로 제시했다. 우창록 변호사도 개인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조직과 함께 일하기 어려운 사람은 맞지 않는다는 취지로 인재관을 설명한 바 있다. 대형 합병을 하지 않고 조직 안에서 사람을 계속 붙이는 방식에서는 이 문제가 더 중요하다. 새로 들어온 전문가가 개인 고객만 관리하면 덩치는 커져도 종합로펌의 장점은 줄어든다. 서로 다른 전문분야의 변호사가 사건을 나눠 맡을 수 있어야 자체 성장 방식도 유지된다. ◆ 매출은 5위, 고객 평가는 달랐다 현재 율촌의 외형은 국내 5위권이다. 2025년 매출은 태평양 4402억원, 세종 4363억원, 광장 4309억원에 이어 율촌이 4080억원을 기록했다. 2위 태평양과 율촌의 차이는 322억원이다. 김앤장을 제외하면 대형 법무법인 네 곳이 모두 4000억원대에 들어왔다. 고객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매출 순위와 조금 다르다. 한국사내변호사회의 2025년 조사에서 율촌은 종합 2위와 전문성 2위, 서비스 1위를 기록했다. 조세·관세 분야에서는 2020년 이후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TMT에서도 2025년 1위에 올랐다. 외형보다 전문성과 서비스 평가에서 강점을 보였다. 매출 2~4위 로펌보다 변호사 숫자는 적지만 1인당 매출은 높다. 율촌은 2025년 한국 변호사 1인당 약 7억6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주요 대형 로펌의 경쟁이 단순히 변호사 수를 늘리는 단계에서 생산성을 따지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율촌도 최근 방향을 외형 확대보다 생산성에 두고 있다. 강석훈 대표는 리걸테크와 고부가가치 업무가 향후 실적을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고 매출 자체를 키우기 위한 양적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규모보다 전문성과 생산성을 앞세웠던 창립기의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 30년을 앞두고 다시 꺼낸 ‘전문성’ 율촌은 2027년 창립 30년을 맞는다. 1997년 여섯 명이 모였을 때 가장 먼저 나눈 것은 사무실 지분보다 업무 분야였다. 우창록은 조세, 윤세리는 공정거래와 국제조세, 강희철은 기업금융, 정영철은 M&A, 한봉희는 금융과 지식재산권을 맡았다. 큰 조직부터 만든 뒤 전문분야를 나눈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전문분야를 들고 모여 조직을 만들었다. 조세와 공정거래에서 출발한 율촌은 기업법무와 금융, 송무, M&A로 업무를 넓혔다. 다른 대형 로펌과의 합병 없이 변호사를 뽑고 분야별 전문가를 붙이며 조직을 키웠다. 그 결과 2025년 매출 4080억원, 변호사 500명대의 로펌이 됐다. 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으려면 같은 길을 더 빨리 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율촌은 모든 분야를 한꺼번에 갖추는 대신 조세와 공정거래부터 파고들었다. 그 분야에서 확보한 기업 고객을 M&A와 금융, 송무로 연결하면서 몸집을 키웠다. 1997년 선택한 이름은 ‘법률가의 마을’이었다. 30년을 앞둔 지금 그 마을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가 일한다. 율촌이 커진 과정은 처음부터 큰 조직을 만든 역사가 아니라 전문분야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씩 모아온 역사다.
2026-09-17 07:5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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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넘칠 때가 재정의 진짜 시험대다
[경제일보]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기업의 장부를 넘어 나라 곳간까지 바꾸고 있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 올해 본예산보다 크게 늘어난다. 법인세와 소득세가 동시에 증가하는 배경에는 AI 반도체 호황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최근 10년의 내국세 추세를 웃도는 추가 세수 162조3000억원을 떼어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겠다고 했다. 숫자가 워낙 크다 보니 먼저 하나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162조3000억원 전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직접 낸 세금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부가 추세선을 웃도는 전체 내국세 증가분을 계산한 금액이고, 반도체 호황은 그 세수 급증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반도체가 번 세금’이라는 표현이 던지는 질문은 유효하다. 호황기에 갑자기 늘어난 세수는 누구의 돈인가. 지금 살아 있는 국민이 당장 써도 되는 돈인가. 아니면 경기가 꺾인 뒤를 위해 남겨둬야 할 돈인가. 더 멀리 보면 아직 세금을 낼 나이조차 되지 않은 미래세대에게도 일정한 몫이 있는 돈인가. 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에서 짚은 것도 같은 문제다. 그는 대외 불확실성과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려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동시에 국가채무와 의무지출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재정 여력을 떨어뜨리고 잠재성장률과 미래세대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말은 모순되지 않는다. 경기가 무너질 때 재정은 과감하게 써야 한다. 민간이 움츠러들고 기업이 투자를 미룰 때 정부까지 지갑을 닫으면 불황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세수가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호황기에는 일부를 남겨야 한다. 불황에 쓸 수 있는 정부가 되려면 호황기에 다 쓰지 않는 정부여야 한다. 이것이 재정의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대응기금이라는 발상 자체는 평가할 대목이 있다. 정부는 162조3000억원 가운데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분야에 쓰고, 12조5000억원으로 신규 국채 발행을 줄일 계획이다. 가장 큰 몫인 104조4000억원은 당장 쓰지 않고 여유자금으로 적립한다. 전체 기금의 64%가량이다. 세수가 더 들어왔다고 한 해에 모두 지출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더구나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AI 붐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고 투자 사이클이 꺾이면 기업이익과 법인세는 빠르게 줄어든다. 세수는 내려가는데 한 번 시작한 복지와 보조금, 기관과 사업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재정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일시적인 돈으로 영구적인 지출을 만드는 일이다. 올해만 들어오는 10조원을 근거로 매년 10조원이 필요한 사업을 시작하면 호황이 끝나는 순간 그 차이는 빚이 된다. 세금을 올리거나 다른 지출을 줄이지 않는 한 결국 국채가 빈자리를 메운다. 때문에 미래대응기금의 성패도 ‘얼마를 담았느냐’보다 어떤 돈을 어디까지 쓸 수 있게 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45조4000억원의 사업지출 가운데 AI와 전략기술, 인재 양성처럼 미래의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 오늘의 반도체 호황에서 나온 세금으로 다음 산업을 만드는 것은 세대 간 이전이라기보다 세대 간 투자에 가깝다. 반면 한번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경상적 복지와 반복성 지원사업을 초과세수에 기대어 늘리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반도체 가격은 내려가도 법으로 정해진 의무지출은 내려가지 않는다. 반도체 사이클은 꺾여도 정부 사업에는 사이클이 없다. 바로 이 점에서 104조4000억원의 여유자금이 중요하다. 정부 설명대로라면 이 돈은 향후 세수 결손이나 예상하지 못한 재정 수요가 발생할 때 재정을 보강하는 일종의 ‘저수지’ 역할을 하게 된다. 방향은 합리적이지만 정부는 일정한 범위에서 추가경정예산을 거치지 않고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고 있다. 신속성은 커지지만, 100조원이 넘는 자금에 행정부의 재량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돈을 쌓아두는 것만으로 미래세대의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 꺼낼 수 있는지, 무엇에 쓸 수 있는지, 누가 결정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세수 결손이 어느 정도일 때 사용할 것인지, 경기침체의 기준은 무엇인지, 미래투자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업까지 허용할 것인지 법과 제도로 선을 그어야 한다. 특히 기금의 여유자금이 그때그때 정부가 원하는 사업을 담는 별도 예산처럼 운용돼서는 안 된다. 노르웨이의 경험은 참고할 만하다. 노르웨이는 석유와 가스에서 들어오는 정부 순수입을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에 넣고 해외에 투자한다. 재정에는 기금의 원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는 대신 장기적으로 예상 실질수익률에 해당하는 수준을 기준으로 활용한다. 현재 그 기준은 약 3%다. 핵심은 석유로 갑자기 부자가 된 한 세대가 자원을 모두 소비하지 않고 금융자산으로 바꿔 후대와 나누겠다는 데 있다. 물론 한국의 반도체 세수와 노르웨이의 석유 수입을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다. 석유는 땅에서 한 번 꺼내 쓰면 사라지는 국민 자산이고,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세금은 혁신과 생산 활동에서 생긴다. 정부가 기업이 낸 세금을 영구적으로 묶어둘 이유도 없다. 하지만 배울 원칙은 있다. 일시적으로 크게 들어온 돈을 평상시의 소득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노르웨이는 석유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한국 재정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예기’ 왕제편에는 ‘국무구년지축왈부족(國無九年之蓄曰不足)’이라는 구절이 있다. ‘나라에 아홉 해를 버틸 비축이 없으면 부족한 것’이라는 의미다. 이어 3년을 농사지으면 1년치 식량을 남기고, 9년이면 3년치를 비축해야 한다고 했다. 풍년에 남겨 흉년을 견딘다는 오래된 국가운영의 원칙이다. 2500년 전 곡식창고가 오늘의 재정기금으로 바뀌었을 뿐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2027년 예산안은 총지출이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8% 늘어난다. 동시에 정부는 미래대응기금과 국채 발행 축소를 통해 내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48.3%로 낮추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지출과 재정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원칙이 필요하다. 우선 경기순환으로 생긴 초과세수와 경제의 기초체력에서 생긴 구조적 세수를 구분해야 한다. 일시적 초과세수는 상시 지출의 재원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 또한 초과세수의 사용 순서를 정해야 한다. 미래 성장투자, 재정안정 적립, 국가채무 축소 사이의 기준을 사전에 만들어 정권과 경기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기금에서 돈을 꺼내는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 불황이나 세수 급감 때는 과감하게 쓰되 단순히 예산을 더 쓰기 위한 우회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오늘의 호황을 내일의 고정비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반도체 기업이 잘 벌어 세금이 많이 들어온 것은 축하할 일이다. 그 돈으로 AI와 첨단산업을 키우고 청년에게 기회를 만들며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라 살림은 기업의 분기 실적과 달라야 한다. 기업은 좋은 해에 성과급을 더 줄 수 있다. 국가는 좋은 해의 세수를 보고 수십 년 동안 지급해야 할 약속을 쉽게 늘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의료, 돌봄 지출은 계속 커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 늘어난 돈을 모두 현재의 소비에 써버리면 다음 세대는 호황의 혜택은 누리지 못한 채 그때 만들어진 지출 의무만 넘겨받을 수 있다. 반도체가 벌어준 추가 세수는 현 정부의 돈도, 현 세대만의 돈도 아니다. 호황을 만든 기업과 노동자의 성과에서 나왔지만 국가의 세금이 된 순간 현재와 미래의 국민 모두를 위해 써야 할 자원이 된다. 재정이 돈이 들어올 때보다 그 돈이 사라진 뒤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언젠가 끝난다. 그때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은 새로 만든 지출의 청구서가 아니라, 다음 위기를 견딜 재정 여력과 다음 산업을 만들어낼 자산이다. 돈이 많이 들어왔을 때 많이 쓰는 정부보다, 돈이 사라질 때를 준비하는 정부가 더 유능하다. 162조3000억원 미래대응기금의 진짜 이름값도 거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2026-09-1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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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9조 '슈퍼예산' 국회로…성장 투자냐, 재정 재량 확대냐
[경제일보] 정부가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회 심사의 막이 오른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수입이 200조원 넘게 늘어나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산업, 청년, 지방, 민생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성장 투자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의 타당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의 파장, 2030년 총지출 1000조원 시대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내년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 30.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날 것으로 봤다.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입 개선이 수입 확대의 핵심 배경이다. 수입 증가 폭이 지출 증가 폭을 웃돌면서 재정지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첫 쟁점은 162조 미래대응기금 가장 큰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적립해 경기 변동과 세수 급감에 대비하는 ‘재정 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 추가세수 162조3000억원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한다. 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비축한다. 정부는 세수가 급격히 줄거나 경기 대응이 필요할 때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금 변경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 심사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 통제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호황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선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AI·반도체에 21조원…미래산업 투자 확대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분야에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10조8000억원보다 97.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해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한다. 용인·평택 반도체 생산기지 조기 가동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1000억원을 배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착공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을 위한 지중 송전망과 고압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에도 881억원을 투입한다.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과 수자원시설 확충에는 1277억원이 배정됐다. AI 분야에는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해 독자 AI 모델 고도화에 나선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의 AI’를 개발해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 예산은 올해 51조2000억원에서 내년 62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우주항공, 바이오, 모빌리티, 원자력, 방산 등 10대 전략기술 분야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미래선도기술 분야 연구 기반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청년·지방 예산 급증…양극화 대응 전면에 청년 지원 예산은 올해 28조2000억원에서 내년 43조3000억원으로 53.5% 확대된다. 교육, 일자리, 자산, 주거, 혼인·출산·양육, 생활·문화 등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두 배로 늘리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졸업 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인턴학기제를 추진한다. K-뉴딜아카데미 등 첨단 분야 직업훈련도 확대한다. 창업안심보험을 신설해 취업 초기 청년에게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산 형성 지원도 강화된다. 출생부터 18세까지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를 신설하고,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없애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공공임대주택 10만6000호를 공급하고, 비아파트 구매 시 월세 수준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도입한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을 묶은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도 신설한다. 지역균형발전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 대전환과 지방주도 성장 예산은 올해 16조1000억원에서 내년 33조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설비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지역 필수의료 지원 예산은 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민생 안정 예산은 10조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 특별조정에는 7000억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107조…교부금 개편 충돌 가능성 정부는 대규모 확장 재정과 함께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소규모·관행적 사업과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유사·중복 사업을 줄여 38조6000억원을 절감하고, 의무지출 조정으로 69조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32조5000억원을 줄이고,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으로 30조5000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재정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교육재정의 핵심 재원이고, 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운영과 직결된다. 정부가 지방 투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기존 지방·교육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서는 재원 배분의 형평성과 지역별 영향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 심사 본격화…12월 2일 법정 시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도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통해 V자형 경제 회복을 보다 공고히 견인하고, 성장주도형 재정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에서는 ‘슈퍼예산’의 방향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820조9000억원이라는 지출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느냐다. AI·반도체·청년·지방 투자처럼 미래 성장과 사회 구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의 행정부 재량 확대와 지방교육재정·교부세 개편은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 심사는 정부가 내세운 ‘성장 투자’ 논리가 국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일시적 세수 여력을 미래 성장의 마중물로 쓸 것인지, 재정 건전성과 국회 통제를 우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기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09-01 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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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노조, 인적분할·성과보상에 반발…공동교섭으로 '책임' 묻는다
[경제일보] 카카오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인공지능(AI) 사업을 중심으로 한 인적분할과 경영진 보상 문제로 동시에 번지고 있다. 카카오 노동조합은 회사가 카카오AI와 카카오X로 나뉘더라도 고용과 근로조건에 대한 책임까지 분리할 수 없다며 공동교섭을 요구했다. 카카오뱅크에서는 임금·성과보상 협상이 장기화하면서 오는 31일부터 9월 4일까지 닷새간 전면파업을 예고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는 26일 경기 성남 판교역 광장에서 ‘카카오뱅크 파업투쟁 결의대회 및 카카오 분할 반대 공동교섭 선포식’을 열었다. 서승욱 카카오지회장은 “회사를 쪼갤 순 있어도 권리까지 나눌 수 없다”며 인적분할 저지와 공동교섭을 선언했다. 노조는 오는 12월 임시주주총회 전까지 주주와 시민을 상대로 분할안의 문제점을 알리고 안건 부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분할 철회’만이 아니다 카카오 노조의 요구를 뜯어보면 핵심은 회사의 법적 분할 자체보다 분할 이후 노동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사전 통제권과 공동체 차원의 책임이다. 노조는 책임경영과 고용안정, 공정한 성과배분을 공동요구안의 기본 축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조직 개편·매각·분사·합병·사업이관이 발생할 경우 사전협의, 계열사 간 전환배치, 공동체 차원의 고용·복지 안전망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고용승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분할된 뒤 사업 매각이나 구조조정, 조직 통합이 진행되면 고용 형태와 근로조건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의사결정 단계에서 노조가 정보를 받고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카오가 분할 이후에도 투자와 사업재편, 인사, 자본배분을 공동체 차원에서 결정한다면 노동자 역시 법인별 교섭이 아닌 공동체 단위에서 협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노조가 문제 삼는 또 다른 대목은 분할 과정의 정보 공개다. 노조는 구성원과 충분한 사전 논의 없이 분할이 추진됐다고 주장하며, 카카오에 임시주총 이전까지 인적분할이 각 계열사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미칠 영향을 공개하고 노조와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 즉 현재의 반대 투쟁과 함께 분할 이후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회사가 먼저 설명하라는 요구가 깔려 있다. 카카오뱅크 노조의 요구는 보다 직접적이다. 노조는 올해 1월부터 임금·성과보상 교섭을 진행했지만 사측 제안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고 주장하며 닷새간 전면파업을 예고했다.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임금 인상률뿐 아니라 회사 성장에 걸맞은 성과보상과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의 상반기 보수 81억7500만원이 있다. 다만 이 가운데 72억9000만원은 2019년 부여된 주식매수선택권의 행사이익이다. 카카오뱅크 측은 당시 고객 1300만명과 법인세 차감 전 이익 1300억원이라는 성과 조건이 설정됐고 이를 충족한 데 따른 장기성과 보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직원의 올해 임금 인상률과 대표의 스톡옵션 행사이익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보상체계의 차이를 놓칠 수 있다. 반대로 노조가 문제 삼는 핵심은 금액 자체보다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누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그 기준이 공정하고 투명하냐는 데 있다. 경영진에게 큰 보상을 지급한다면 그만큼의 성과와 책임을 구성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더 받는 것’ 자체보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지가 관건 카카오의 입장에서는 인적분할이 AI 사업의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기 위한 전략이다. 회사는 카카오AI에 카카오톡·AI·광고·커머스를 집중하고 카카오X는 계열사 투자와 자본배분을 맡겨 사업별 성격을 명확히 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장에서도 사업별 가치를 합산하면 현재 카카오 시가총액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결국 양측이 충돌하는 지점은 ‘변화의 필요성’ 자체보다 그 변화의 비용과 성과를 누가 어떻게 부담하고 나눌 것인가에 가깝다. 회사는 경영진의 성과보상이 주주가치와 장기 성과를 반영한다고 주장할 수 있고, 노조는 조직 변화와 성과의 과실이 구성원에게도 공정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요구한다. 대표가 직원보다 훨씬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곧바로 부당하다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기업 전체의 의사결정과 성과에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자리인 만큼 성과가 클 경우 더 큰 보상을 받는 구조 자체는 기업 경영에서 흔한 방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받느냐’보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느냐, 그리고 그 보상에 걸맞은 책임을 실제로 졌느냐다. 한편 카카오가 AI 중심으로 회사를 재편한다면 노조의 요구에도 답해야 한다. 분할 이후 고용이 어떻게 보호되는지, 사업 매각이나 조직개편 때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성과보상 기준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첫 단추다. 노조 역시 회사의 모든 변화 자체를 거부하기보다 고용·보상·협의권을 어떤 제도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오는 12월 임시주총까지 양측이 이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가 카카오의 인적분할 향방을 가를 변수로 떠올랐다.
2026-08-26 1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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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미래대응기금, 미래투자 명분이 '정부 쌈짓돈' 돼선 안 된다
[경제일보]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미래 산업과 청년 등에 장기 투자하는 '미래대응기금'을 추진한다. 기획예산처가 지난 21일 밝힌 구상에 따르면 내국세가 최근 10년 안팎의 평균 증가율을 웃돌 경우 초과분을 기금에 적립한다. 세수가 부진할 때는 기금을 재정 안전판으로 활용해 변동성을 완화한다는 구상이다. 초과세수와 세계잉여금, 여유자금 운용수익 등도 재원으로 활용한다. 구체적인 규모는 다음 달 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확정되지만 첫해부터 100조원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일리가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가 크게 늘었을 때 이를 단기 소비성 지출에 모두 써버리기보다 인공지능(AI), 첨단산업, 청년, 지방, 인재 등 미래 성장에 투자하자는 방향은 평가할 만하다. 경기 호황기에 세입이 늘었다고 지출을 급격히 확대했다가 불황기에 세수가 줄면서 다시 긴축에 나서는 재정 운용의 반복도 줄어들 수 있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을 일종의 '재정 저수지'로 설명하는 이유다. 문제는 규모가 커질수록 통제장치도 강해져야 한다는 점이다. 100조원 안팎의 자금을 정부가 장기간 운용한다면 사실상 또 하나의 거대한 재정계정이 생기는 셈이다. 미래투자라는 명분만 앞세우고 사용처와 의사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면 정부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쌈짓돈'이나 '슈퍼 예비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정부 설명대로 연간 기금운용계획 자체는 국회의 심사를 받는다. 다만 국가재정법 제70조는 일정 요건 아래 기금운용계획의 주요항목 지출금액을 국회에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비금융성 기금은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20%, 금융성 기금은 30% 범위다. 미래대응기금처럼 대규모 기금이 신설될 경우 이 운용상 재량이 국회의 사전 통제를 약화시키지 않도록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미래대응기금에는 일반 기금보다 강화된 재정통제 장치를 두는 편이 맞다.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 변경이나 신규 사업 편성에는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고 국회 심의 없이 조정할 수 있는 범위도 일반 기금보다 엄격하게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분야별 투자 한도와 사용 목적도 법률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미래라는 이름만 붙이면 무엇이든 투자할 수 있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사업 평가도 엄격해야 한다. 정부는 청년과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에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범위가 넓을수록 각 부처가 기존 사업을 미래투자라는 이름으로 기금에 얹을 가능성도 커진다. 기존 예산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업이나 단순 현금성 지원까지 미래대응기금으로 돌린다면 기금 신설의 의미가 없다. 특히 AI와 첨단산업 투자는 성과를 냉정하게 측정하는 일이 관건이다. 투입된 정부 재원이 얼마나 많은 민간투자를 끌어냈는지, 기술 수준과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일자리와 수출에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성과가 없는 사업은 과감하게 지원을 끊는 일몰제도 함께 검토할 만하다. 청년 지원 역시 마찬가지다. 청년 주거와 교육, 자산형성은 장기적으로 필요한 정책이지만 일회성 세수 호황을 영구적인 복지 지출의 재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한번 시작한 지원은 중단하기 어렵다. 반도체 경기가 꺾여 기금 적립이 줄었을 때도 계속 지급해야 하는 사업이라면 결국 일반재정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재원의 지속 가능성은 미래대응기금의 가장 큰 숙제다. 정부 구상은 최근 10년 안팎의 내국세 증가 추세보다 세수가 더 늘었을 때 초과분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현재처럼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좋고 법인세가 크게 늘어날 때는 기금이 빠르게 쌓일 수 있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기순환 산업이다. 3~5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될 수 있고, 세계 경기나 기술 경쟁에 따라 세수 전망이 급변할 수도 있다. 정부는 호황 때 적립하고 불황 때 꺼내 쓰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때문에 어느 수준까지 적립하고 어느 상황에서 얼마를 사용할 것인지 명확한 규칙이 필요하다. 세입이 줄었다는 이유만으로 기금을 일반회계 적자 보전에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면 미래투자기금이라는 성격도 흐려질 수 있다. 국가채무와의 관계도 따져볼 대목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왔을 때 그 돈을 모두 투자에 돌리는 것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국가채무가 빠르게 늘어난 상황이라면 일부는 빚을 갚아 미래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미래투자와 재정건전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금에 들어오는 추가세수 가운데 일정 비율을 국가채무 상환에 우선 배분하거나, 국가채무비율과 재정수지에 따라 적립과 상환 비율이 자동으로 조정되는 준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그때그때 판단하는 방식보다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 재정 신뢰를 높인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도 중요하다. 투자 대상과 수익률, 손실, 사업별 집행 내역을 정기적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순리다.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평가기구를 두고 국회와 감사원이 상시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수십조원의 돈이 움직이는데 의사결정 과정이 정부 내부에만 머문다면 정치적 사업이나 지역 나눠주기 예산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원칙이 유지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미래대응기금은 본질적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재정장치다. 특정 정부의 국정과제나 공약사업을 지원하는 계정이 돼서는 곤란하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술과 시장성, 국가 경쟁력이라는 동일한 기준이 흔들리지 않아야 기금이 신뢰를 유지한다. 반도체 호황으로 벌어들인 세수를 미래에 재투자한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저출생과 생산성 하락, 잠재성장률 둔화에 직면한 한국경제에는 이런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재정도 단기 경기 대응을 넘어 성장의 토대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좋은 목적이 좋은 제도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100조원 규모의 기금을 만들면서 통제장치가 약하다면 미래투자보다 재정 낭비의 통로가 될 위험이 더 크다. 반대로 국회 통제와 성과 평가, 재정준칙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설계하면 정부가 강조하는 신속한 미래투자의 장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유연성과 통제의 균형이다. 정부가 신속하게 미래 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은 열어주되 큰 돈이 움직일 때는 국회의 감시와 국민의 검증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한다. 미래대응기금은 이름 그대로 미래를 위한 돈이어야 한다. 정부가 쓰기 편한 돈이 돼선 안 된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세수를 청년과 AI, 지역과 인재에 투자하겠다면 그만큼 더 엄격한 회계와 평가, 국회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미래를 위한 100조원이 정부의 쌈짓돈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기금 조성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2026-08-24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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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게임협회, 세제개편안 보완 요구…게임 제작비 공제·e스포츠 연장 촉구
[경제일보] 국내 게임산업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게임업계가 제작비 세액공제 도입과 e스포츠대회 운영비 세액공제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게임이 K-콘텐츠 수출을 이끄는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영화·방송·웹툰 등 일부 콘텐츠와 달리 제작비에 대한 별도 세제 지원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14일 한국게임개발자협회,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모바일게임협회, 한국인공지능게임협회, 한국e스포츠협회 등 5개 협회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정부와 국회에 2026년 세제 개편안 보완을 요구했다. 핵심 요구는 게임 제작비 세액공제 도입과 e스포츠대회 운영비 세액공제의 연장·확대다. 해당 협회들이 세제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국내 게임산업의 성장 둔화가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게임산업 성장률은 지난 2020년 21.3%에서 2025년 1.1%까지 낮아졌다. 게임 이용률 역시 지난 2022년 74.4%에서 지난해 50.2%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산업은 국내 콘텐츠 수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개발 환경은 갈수록 부담이 커지고 있다. 대규모 게임은 기획부터 개발, 그래픽, 서버, 테스트 등에 장기간 투자가 필요하고 출시 이후에도 콘텐츠 업데이트와 현지화 작업이 이어진다. 반면 게임의 흥행 여부를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제작비 상당 부분이 회수되지 않을 위험도 존재한다.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게임 엔진 등 개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게임 제작 방식도 변화하고 있지만, 고품질 그래픽과 대규모 콘텐츠를 요구하는 대작 게임의 개발비 부담은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 협회들은 국내 게임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산업 성장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영화·방송·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영상콘텐츠와 웹툰 등의 제작비에 세액공제가 적용된다. 반면 게임은 별도의 제작비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임기업도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나 통합투자세액공제 등을 활용할 수 있지만 적용 목적과 대상이 달라 게임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포괄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 기획과 시나리오, 그래픽, 음향, 현지화 등 콘텐츠 제작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기존 제도의 적용 범위에서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게임 제작비 세액공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로 향후 5년간 2조2550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만5513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전망한 바 있다. 비용편익비율은 1.26으로 분석했다. 해외 주요국과의 경쟁 환경도 변수다.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은 게임산업을 대상으로 제작비 세액공제나 환급 형태의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가별로 지원 대상과 산정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게임을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보고 제작 단계부터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국내 게임업계가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게임산업의 세제지원 논의는 제작 단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게임 콘텐츠를 활용하는 e스포츠 산업에서도 세액공제 제도의 연장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서는 수도권 외 지역에서 e스포츠대회를 개최하는 내국법인에 대해 운영비용의 10%를 법인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지난해부터 시행됐으며 올해 말 적용이 종료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안에서 해당 세액공제를 종료하고 재정지출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5개 게임 협회는 제도가 시행된 지 오래되지 않은 만큼 정책 효과를 충분히 검증하기 전에 세액공제를 종료하는 것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e스포츠 대회는 게임단과 선수의 활동뿐 아니라 경기장 대관, 장비, 중계, 방송 제작 등 다양한 산업과 연결된다. 대형 국제 대회가 열릴 경우 외부 방문객의 숙박과 교통, 외식 등 지역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주요 도시들이 e스포츠 대회 유치에 나서면서 지역 콘텐츠와 관광을 결합하고 있다. 이에 게임 협회는 현행 제도를 오는 2030년까지 연장하는 동시에 공제 대상을 비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하고 공제율도 10%에서 20%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대회 유치와 민간 대회 개최를 활성화하려면 지역 제한을 완화하고 기업의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이번 세제 논쟁은 게임을 단순한 산업 지원 대상이 아니라 영화·웹툰 등과 함께 하나의 문화 콘텐츠 산업으로 볼 것인지, 또 게임 제작부터 e스포츠 대회와 콘텐츠 소비까지 이어지는 생태계 전반에 어느 수준의 세제 혜택을 제공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성장 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이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실제로 늘릴 수 있는지 검증하는 동시에 조세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 부담도 고려해야 할 전망이다. 특히 게임 제작비 세액공제의 경우 지원 대상과 비용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 기존 R&D 및 투자 세액공제와 중복되는 부분은 없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된다. 5개 게임 협회는 공동 입장문을 통해 "게임과 e스포츠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산업이자 미래 문화 산업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판단을 요청드린다"며 "협회들도 필요한 산업자료와 현장의 의견을 성실히 제공하며 제도 개선 논의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2026-08-14 17:3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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