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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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없는 부지는 자산이 아니다…KT, '수요 따라 짓는' AIDC
[경제일보] KT의 1GW AIDC 계획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데이터센터를 한 곳에 몰아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KT클라우드는 2031년까지 전국 20여개 부지에 인프라를 분산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에 서로 다른 공급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수도권은 기존 데이터센터를 거점으로 권역별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서울 여의도는 금융권 고객을 위한 초저지연 시설로 활용하고 안산·용인 등 경기 남부에는 AI용 GPU를 수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다. 전력과 통신망, 고객이 밀집한 수도권에서는 부지를 먼저 확보해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비수도권은 순서가 반대다. 글로벌 빅테크나 AI 연산에 특화된 네오클라우드 등 고객을 먼저 확보한 뒤 부지를 개발한다. 초기에는 수십메가와트(MW) 규모로 시작해 수요가 확인되면 수백MW로 확대한다. 대규모 시설을 먼저 지어놓고 가동률을 걱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공급 일정도 제시됐다. 2027년 부천을 시작으로 2028년 대구·군산·용인, 2029년 안산 데이터센터를 순차적으로 공급한다.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려면 전력계통 접속, 인허가, 토지 개발, GPU 조달이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한 단계라도 지연되면 목표 용량과 투자 시점이 함께 늦어질 수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밀도가 높다. GPU 서버가 늘어날수록 기존 공조 방식만으로는 열을 처리하기 어려워 액체 냉각과 고밀도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 KT클라우드는 25년 이상 데이터센터를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액체 냉각과 자동화, AI 기반 운영 기술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KT의 차별화 전략은 데이터센터를 통신망으로 묶는 데 있다. 지역별 AIDC를 초저지연 네트워크로 연결해 하나의 인프라처럼 운영하고 전국 3500여개 국사를 AI 엣지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해저케이블에 1조원을 투입해 국내 AI 데이터센터와 해외 클라우드·빅테크를 잇는 연결 용량도 확충할 계획이다. 다만 네트워크 강점이 전력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센터 부지를 확보해도 전력계통영향평가와 변전소 건설이 늦어지면 서버를 들여놓을 수 없다. 글로벌 고객이 요구하는 2년 안팎의 구축 기간을 맞추려면 변압기와 냉각장치, GPU 서버 조달까지 미리 계약해야 한다. KT클라우드가 공개한 로드맵은 구축 순서와 지역을 보여주지만 각 부지의 확보 전력, 고객 규모, 투자금액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향후 사업의 실체를 확인하려면 부지별 착공 시점과 수전 용량, 테넌트 계약, 실제 GPU 가동률을 따져봐야 한다. 1GW는 총량의 목표이고 사업 성패는 각각의 센터가 얼마나 빨리 채워지는지에 달려 있다.
2026-09-21 09: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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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 넘어 글로벌 AI 고객으로…SKT, AIDC로 성장판 넓힌다
[경제일보] SK텔레콤이 AI 데이터센터(AIDC)를 통해 성장의 무대를 넓히고 있다. 국내 가입자에게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던 사업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AI 기업에 연산 인프라를 공급하는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내에 구축한 데이터센터로 세계 AI 수요를 끌어들이는 것이 출발점이다. SKT는 2029년부터 5GW(기가와트) 규모를 단계적으로 가동하고, 시장 수요와 전력·부지 확보 여건에 맞춰 2035년 최대 15GW까지 확대하는 장기 계획을 제시했다. 한꺼번에 대규모 시설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울산을 시작으로 수요가 확인되는 지역에 전력과 부지를 확보하고 거점을 순차적으로 확대하도록 짜인 로드맵이다.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은 이 계획을 사업으로 옮기는 기반이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SK그룹과 15년 전략협력을 바탕으로 울산에 AI 존(AI 연산용 클라우드 인프라)을 구축한다. 2027년 첫 가동이 목표다. SK가 건설을 주도하고 AWS가 AI 존을 독립 운영한다. 엔비디아와는 국내에 최대 2GW 규모 AI 팩토리 구축을 위한 차세대 GPU(그래픽처리장치) 도입과 투자 협력을 추진한다. 앤트로픽과는 국내 GW급 AIDC 구축 협력, 오픈AI와는 서남권 전용 데이터센터 공동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 대규모 시설을 장기간 이용할 고객을 확보하면 향후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투자자를 모집하고 자금을 조달하기가 수월해진다. SKT도 자체 투자와 전략적 파트너 투자, 고객 장기계약, 프로젝트금융을 함께 활용할 계획이다. 프로젝트금융은 사업의 미래 수입을 토대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실행 조직은 기존 시설 운영과 신규 개발로 나눴다. SK브로드밴드에서 분할할 SK호라이즌은 내년 1분기 설립이 목표다. 운영 중인 데이터센터 8개와 울산·구로 등 건설 중 시설을 포함한 318MW(메가와트) 규모 인프라 확장을 맡는다. SKT는 SK호라이즌에 대해 KKR·IMM인베스트먼트-스톤브릿지 컨소시엄과 3조800억원 규모 투자 본계약을 체결했다. 단계적 투자 완료 후에도 51% 지분으로 경영권을 갖는다. 별도 사업개발회사 SK하이퍼에는 2030년까지 7500억원을 출자해 부지·변전소 확보와 고객 유치, 사업화를 맡긴다. 이렇게 확보한 시설을 글로벌 고객의 장기 수요로 채울 수 있다면 SKT의 성장 기반도 달라진다. 통신 매출은 국내 가입자 수와 요금제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AIDC는 세계 AI 기업의 연산 수요를 국내 사업으로 가져올 수 있다. 고객이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서비스를 확대할 때 필요한 컴퓨팅 용량을 공급하면서 반복 매출을 쌓는 방식이다. 그룹 안에서는 SK하이닉스의 HBM(고대역폭메모리)이 비교 대상이다. 하이닉스가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성장했듯 SKT는 전력과 데이터센터, GPU·통신망을 묶은 인프라로 글로벌 사업 기반을 넓히려 한다. 반도체에 연산 인프라가 더해지면 SK그룹이 세계 AI 시장에서 얻는 수익원도 다양해질 수 있다. 앞으로 확인할 성과는 해외 고객과 계약한 용량, 실제 가동률, 투자금을 회수하며 남기는 이익이다. 울산에서 시작한 협력이 다른 거점의 장기계약으로 이어질수록 AIDC의 사업성도 선명해진다. 국내 통신 1위의 운영 경험을 글로벌 AI 기업의 반복 수요로 연결하는 것, SKT가 데이터센터를 통해 만들려는 다음세대의 성장의 모습이다. [아주경제 2026년 09월 10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9-10 07: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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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20조 선납 제안…전력망 책임은 누구 몫인가
[경제일보] 수백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지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첨단 팹은 거대한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반도체 경쟁이 기술과 자본의 싸움인 동시에 전력망 경쟁인 이유다. 하지만 그 전력망을 깔 돈이 부족해지자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치 전기요금을 먼저 내달라는 카드를 꺼냈다. 한전이 제안한 규모는 삼성전자 20조원, SK하이닉스 5조원이다. 지난해 두 회사가 낸 전기요금 약 4조1000억원과 9000억원을 기준으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치를 계산했다. 선납금은 용인·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건설 등에 투입하고, 기업에는 국고채 금리보다 높은 수준의 이자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다만 참여 여부와 금리, 금액과 기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한전도 ‘제안’ 단계임을 분명히 했다. 전기요금 선납제 자체도 새로운 제도는 아니다. 지난해 선납액은 약 3900억원이었고, 대부분 공공기관이 이용했다. 기업이 미래에 낼 전기료를 먼저 내고 한전은 그 돈을 필요한 설비에 투자하며 기업은 이자를 받는 구조라면 금융거래로서 성립할 여지는 있다. 적기에 전력망이 완공되지 못해 수십조원짜리 공장이 서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이해관계가 있다. 문제는 규모와 목적이다. 3900억원 수준이던 선납제도를 단숨에 25조원짜리 전력망 조달수단으로 바꾸면 제도의 성격 자체가 달라진다. 25조원은 한전 연간 매출의 4분의 1에 가까운 돈이다. 전기요금 납부 편의를 위한 제도가 사실상 국가 핵심 인프라를 조달하는 금융수단으로 변하는 셈이다. 한전이 이 방안을 고민하는 사정은 이해할 만하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기 가동과 호남 클러스터 건설 등에 따른 추가 전력수요는 20.6GW로 추산되고, AI 데이터센터까지 더하면 필요한 전력이 더 늘어난다. 한전은 당초 2038년까지 전력망에 72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투자 수요는 더 커졌다. 반면 한전의 연결 기준 부채는 지난 6월 말 2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자비용으로 2조1000억원을 썼다. 공기업의 재무제표와 국가 산업정책의 시간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삼성과 하이닉스가 쓰는 전기니 두 회사가 망을 깔면 된다”는 결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전력망은 공장 안의 생산설비가 아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산업단지와 도시로 실어 나르는 국가 기간시설이다. 지난 7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주요 송·변전설비를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규정하고 있다. 법의 목적부터 전기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국가 주요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력망을 조기에 확충하는 데 있다. 국가가 스스로 ‘기간망’이라고 이름 붙인 인프라의 책임을 특정 기업의 현금 여력에 의존해 해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반대편 원칙도 분명하다.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는 대기업이 자신 때문에 추가로 발생하는 인프라 비용을 한 푼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논리 역시 설득력이 없다. 10GW, 20GW의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 발전설비뿐 아니라 송전선과 변전소, 계통보강 비용이 따라온다. 그 비용을 일반 가정과 중소기업을 포함한 모든 전기 소비자에게 똑같이 떠넘기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 제5편에서 개인이나 소수에게 맡길 수 없는 공공사업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을 국가의 책무로 봤다. 동시에 도로와 교량 같은 시설의 비용은 이용자에게 받는 통행료로 충당할 수 있다고 했다. 250년 전에도 공공 인프라의 책임과 이용자의 비용부담은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었던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도 ‘국가가 전부 낼 것이냐, 기업이 전부 낼 것이냐’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누가 어느 비용을 왜 부담하는지에 대한 원칙이다. 국가 전체가 이용하는 기간 송전망과 장거리 간선망은 국가와 한전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 반면 특정 산업단지나 초대형 수요처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전용선로와 변전소, 접속설비에는 원인자·수익자 부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여러 기업과 지역이 함께 혜택을 보는 계통보강 비용이라면 수익 범위에 따라 분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 선이 먼저 그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한전이 재무적으로 어려워졌을 때 현금이 많은 기업을 찾아가 몇 년 뒤 받을 전기료를 미리 달라고 하는 방식이 관행이 되면 문제가 생긴다. 오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지만 내일은 데이터센터, 배터리, 철강·석유화학 기업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국가 인프라 투자비가 전력 수요자의 현금 보유액이나 협상력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는 산업정책도, 요금정책도 아니다. 더구나 한전은 독점적인 송·배전망 사업자다. 기업 입장에서는 “싫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으로 거래의 자발성이 완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새 공장에 제때 전기를 공급받아야 하는 기업과 그 전력을 공급할 사실상의 유일한 사업자가 20조원 규모의 선납을 협상한다면 일반적인 금융거래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와 기준이 필요하다. 따라서 선납제를 확대하려면 세 가지 안전장치가 먼저다. 선납금은 해당 전력망 건설에만 쓰도록 별도 관리해야 한다. 기업별 부담액은 전력 사용량과 추가 계통투자 비용 등에 따른 객관적 산식으로 정하고 동일한 조건의 대규모 수요자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공사가 늦어지거나 전력 공급 일정이 어긋났을 때 선납기업이 부담할 위험과 보상 원칙도 계약 단계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 한전의 재무문제와 전력망 투자 문제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선납금으로 한전채 발행을 줄이는 효과가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과거 전기요금 정책과 연료비 급등으로 쌓인 210조원대 부채를 반도체 기업의 미래 전기료로 메우는 것이 목적이 돼서는 곤란하다. 반도체 전력망에 들어갈 돈과 한전의 누적 재무부담을 한 통장에 넣는 순간 비용 부담의 원칙은 흐려진다. 정부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용인과 호남에 대규모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에는 수십조원,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주문하면서 정작 공장을 돌릴 전력망은 한전과 기업이 돈을 마련해 알아서 깔라는 식이어서는 산업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공장 유치는 국가전략이고 송전망은 기업 사정이라는 식의 역할 분담은 성립하지 않는다. 반도체 산업의 속도는 전력망의 속도를 넘어설 수 없다. 주민 수용성 문제와 송전선로 인허가를 풀고 장기 전력수요를 예측해 기간망을 미리 확보하는 일은 개별 기업이 대신할 수 없는 국가의 몫이다. 올해 시행된 국가기간전력망법이 5년마다 30년 단위의 장기 전망을 담은 전력망 기본계획을 만들도록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혜자가 되는 전력설비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하는 방안은 검토할 수 있다. 조건이 합리적이고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면 전기료 선납도 하나의 재원조달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순서는 분명해야 한다. 먼저 국가가 어떤 전력망을 언제까지 책임질 것인지 정하고, 그 다음 특정 수요자가 추가로 발생시킨 비용의 몫을 투명하게 계산해야 한다. 한전의 재무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 순서를 거꾸로 세워서는 안 된다. 전기는 기업이 돈을 내고 사는 상품이지만, 그 전기가 흐르는 국가기간망은 대한민국 산업의 기반이다. 상품의 값을 기업에 받을 수는 있다. 더 많이 쓰는 기업에 더 많은 인프라 비용을 부담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제때 준비하지 못한 기간망의 책임까지 ‘5년치 전기료 선납’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청구해서는 안 된다. 25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그것이다. “한국의 전력망은 누구의 책임인가.”
2026-09-04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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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의 국회, '국가의 시간' 아껴야
[경제일보] 국회의 시간과 산업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국회에서 법안 한 건이 한 회기 미뤄지는 것은 단지 다음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면 될 일처럼 치부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변전소 하나, 산업용수 관로 하나, 공장 인허가 하나가 늦어지는 사이 경쟁국에서는 생산라인이 돌아가고 고객사의 공급망이 굳어진다. 정치에는 다음 회기가 있지만 산업에는 놓치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있다. 22대 국회 후반기 첫 정기국회가 지난 1일 막을 올렸다. 12월 9일까지 꼭 100일이다. 8·30 개각에 따른 장관 인사청문회, 부동산 정책과 사법개혁 법안, 세제 개편에 역대 최대 규모인 821조원짜리 2027년도 예산안까지 한꺼번에 국회 문턱을 넘는다. 여당은 국정과제 입법과 확장재정을 뒷받침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입법 독주’와 ‘포퓰리즘 예산’을 막겠다며 벼르고 있다. 충돌할 사안이 적지 않다. 다툴 것은 다퉈야 한다. 세금과 부동산, 형사사법 체계를 바꾸는 법에는 서로 다른 철학과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821조원의 나랏돈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도 야당이 매섭게 따져야 한다. 다수당이 숫자로 밀어붙이는 것도,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시간을 끄는 것도 모두 경계할 일이다. 하지만 모든 법안을 같은 정치의 시계 위에 올려놓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개회사에서 ‘1년을 미룬 법이 10년의 격차를 만든다’며 반도체·AI·첨단바이오 같은 국가전략기술 관련 입법을 서둘러 달라고 했다. 통상과 대외경제 입법에서는 여야가 ‘원팀’으로 움직이자는 주문도 내놨다. 표현이 다소 과장돼 보일 수 있지만 문제의식은 정확하다. 세계의 기술경쟁은 국회의 의사일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는 내년 예산부터 산업의 속도를 크게 높이겠다고 돈을 걸었다. 2027년도 정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12.8% 늘어난 821조원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피지컬AI·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와 관련 인프라·기술개발에 21조30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안도 39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1.2% 늘렸다. 돈만 놓고 보면 한국이 AI와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문제는 예산의 속도와 법의 속도가 다르면 돈도 기다린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만 해도 전력과 용수, 산업단지와 건축 문제를 풀기 위해 전기사업법·수도법·물관리기본법·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건축법 등의 손질이 주요 과제로 거론되고 있다. 반도체 공장에 수십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있어도 전력과 물을 공급할 제도와 시설이 제때 따라오지 못하면 장부 위 투자는 공장이 되지 못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GPU를 사놓는다고 만들어지는 산업이 아니다. 전력망과 부지, 냉각설비와 인허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 한국 정치의 오래된 습관이 끼어든다. 여야가 크게 충돌하는 법안 하나가 상임위를 붙잡으면 그와 직접 관계없는 법안까지 함께 기다린다. 원내 협상이 틀어지면 본회의 일정 전체가 흔들리고, 서로 상대 당 법안에 조건을 붙이기 시작하면 민생·산업법안도 협상카드가 된다. 정치에는 모든 것을 한 묶음으로 흥정하려는 유혹이 있다. 그 비용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과 기업이 낸다. 공장 착공이 늦어지고, 신규 채용이 밀리고, 기업의 투자금은 해외로 옮겨갈 수 있다. 스타트업은 규제가 정리될 때까지 사업모델을 바꾸고,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지정만 기다리다 토지가 묶인다. 법안이 국회 서랍에서 보낸 시간은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국가의 대기시간’도 비용이다. 이번 정기국회가 해야 할 일은 법안을 많이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법은 충분히 싸우고, 어떤 법은 싸움과 분리해 빨리 처리할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여야가 국가전략산업과 민생 인프라에 대해서는 별도의 ‘초당적 신속처리 트랙’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법상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을 남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여야 원내지도부가 정기국회 초기에 합의 가능한 법안을 추려 상임위 심사와 공청회, 법사위 검토, 본회의 처리 시한을 미리 정하자는 것이다. 기준도 까다롭게 세우면 된다. 첫째, 특정 기업이나 계층에 특혜를 주기보다 국가 전체의 산업 기반과 직결되는 법이어야 한다. 둘째, 여야가 정책목표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고 방법론만 조정하면 되는 법이어야 한다. 셋째, 처리 지연에 따른 경제적 비용과 해외 경쟁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안전·환경·노동권을 속도라는 이름으로 우회하지 않아야 한다. 신속한 입법은 졸속 입법과 같은 말이 아니다. 전력망 건설을 서두른다고 주민의 재산권과 환경 검토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반도체 경쟁력을 이유로 노동기준을 백지수표처럼 풀어주는 것도 곤란하다. 필요한 것은 심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심사의 끝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업과 국민에게 가장 큰 부담은 엄격한 규제 자체보다 결론이 언제 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일 때가 많다. 여당의 책임이 먼저 무겁다. 다수 의석을 갖고 있는 만큼 ‘속도’를 ‘독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내놓은 법이라고 원안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국가의 시간을 줄이는 방법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1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안이 언제나 옳거나 완벽할 수 없다’며 국회의 지적과 대안을 검토해 필요하면 입법과 예산에 반영하라고 주문했다. 여당이 새겨들을 말이다. 야당도 달라야 한다. 정부 정책을 검증하는 것과 정책을 멈춰 세우는 것은 다르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송전망이나 AI 데이터센터의 기반시설까지 정권의 성패와 연결해 지연시키면 정권이 아니라 한국 기업이 경쟁국에 뒤처진다. 잘못된 조항을 고치되 필요한 법은 통과시키고, 그 결과를 다음 선거에서 평가받는 것이 책임 있는 야당의 모습이다. 국회는 벌써 대비되는 두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기국회 첫날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지방자치법·소방기본법 등 여러 법안이 여야 논의를 거쳐 처리된 반면, 중대범죄수사청 관련 법안에서는 여야가 충돌했다. 정치적 이해가 첨예한 법과 합의 가능한 법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비자’ 심도편에는 ‘법여시전즉치 치여세의즉유공(法與時轉則治 治與世宜則有功)’이라는 구절이 있다. ‘법이 시대와 함께 변하면 다스려지고, 제도가 세상 형편에 맞으면 성과가 난다’는 뜻이다. 2000년도 더 된 문장이지만 기술이 몇 달 단위로 바뀌는 지금의 국회에 오히려 더 절실하다. 법은 산업보다 앞서기 어렵다. 적어도 산업의 발목을 붙잡을 만큼 뒤처져서는 안 된다. 이번 정기국회에는 821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예산보다 더 귀한 자원이 하나 있다. 100일이라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정쟁의 밀도를 높이는 데 쓸 것인지,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쓸 것인지가 국회의 성적표가 될 것이다. 여야가 모두 합의하는 법만 처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민주주의에는 갈등이 필요하고, 때로는 오래 토론해야 할 문제도 있다. 다만 반도체와 AI가 세계시장에서 하루를 다투고 있는데 국회가 정치적으로 결론 내지 못한 다른 문제 때문에 전력망과 산업용수 법안까지 세워두는 것은 민주적 숙의가 아니라 행정적 낭비에 가깝다. 법안 처리 건수 몇 백 건을 자랑하는 국회보다 대한민국이 기다리는 시간을 몇 달 줄인 국회가 더 유능하다. 12월 9일 정기국회가 문을 닫을 때 국민이 보고 싶은 것도 그것이다. 여야가 몇 번 이겼는지가 아니라 공장과 기업, 청년과 지역이 얼마나 덜 기다리게 됐는가. 정기국회 100일의 진짜 경쟁은 법안 숫자가 아니다. 국가의 시간을 누가 더 아껴줬느냐의 경쟁이어야 한다.
2026-09-02 12: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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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9조 '슈퍼예산' 국회로…성장 투자냐, 재정 재량 확대냐
[경제일보] 정부가 820조9000억원 규모의 2027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국회 심사의 막이 오른다. 올해 본예산보다 93조원, 12.8%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총지출이 8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총수입이 200조원 넘게 늘어나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미래산업, 청년, 지방, 민생 분야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관전 포인트는 분명하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잠재성장률 반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성장 투자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회 심사 과정에서는 162조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의 운용 방식, 100조원대 지출 구조조정의 타당성,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의 파장, 2030년 총지출 1000조원 시대의 재정 지속 가능성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는 1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2027년 예산안’과 ‘2026~203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심의·의결했다. 내년도 총수입은 880조8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05조6000억원, 30.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은 584조4000억원으로 49.8% 늘어날 것으로 봤다. 법인세와 소득세 증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입 개선이 수입 확대의 핵심 배경이다. 수입 증가 폭이 지출 증가 폭을 웃돌면서 재정지표는 일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올해 본예산 기준 3.9%에서 내년 0.1%로 낮아지고, 국가채무비율도 51.6%에서 48.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이어지면서 2030년 총지출은 1005조2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첫 쟁점은 162조 미래대응기금 가장 큰 쟁점은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최근 10년 내국세 증가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세수를 기금에 적립해 경기 변동과 세수 급감에 대비하는 ‘재정 댐’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 추가세수 162조3000억원을 기금에 적립하고, 이 가운데 45조4000억원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한다. 또 12조5000억원은 국채 신규 발행 물량을 줄이는 데 활용하고,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비축한다. 정부는 세수가 급격히 줄거나 경기 대응이 필요할 때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기금 변경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회 심사에서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국회 통제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금은 일반 예산보다 행정부 재량이 크다. 정부가 미래대응기금의 주요 항목 지출 금액을 일정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는 점도 논란거리다. 야당과 재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수 호황기에 여윳돈이 생기면 우선 국가채무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AI·반도체에 21조원…미래산업 투자 확대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분야에 21조3000억원을 배정했다. 올해 10조8000억원보다 97.2% 늘어난 규모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집중 지원해 한국 경제의 차세대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2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회계’를 신설한다. 용인·평택 반도체 생산기지 조기 가동을 위한 기반시설 투자에 1000억원을 배정하고,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의 신속한 착공을 위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한다. 반도체 산업단지 전력 공급을 위한 지중 송전망과 고압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에도 881억원을 투입한다. 서남권·충청권 산업단지 용수 공급과 수자원시설 확충에는 1277억원이 배정됐다. AI 분야에는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정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 장과 데이터, 인재를 집중 지원해 독자 AI 모델 고도화에 나선다. 이를 기반으로 ‘모두의 AI’를 개발해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성장엔진 확충 예산은 올해 51조2000억원에서 내년 62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우주항공, 바이오, 모빌리티, 원자력, 방산 등 10대 전략기술 분야에 15조원을 투입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 핵융합, 양자, 우주항공, 첨단바이오 등 미래선도기술 분야 연구 기반도 강화한다. 재생에너지 보급 예산은 9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으로 두 배 늘어난다. ◆청년·지방 예산 급증…양극화 대응 전면에 청년 지원 예산은 올해 28조2000억원에서 내년 43조3000억원으로 53.5% 확대된다. 교육, 일자리, 자산, 주거, 혼인·출산·양육, 생활·문화 등 성장단계별 종합 지원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두 배로 늘리고, 대학생 6만 명에게 졸업 전 현장 경험을 제공하는 인턴학기제를 추진한다. K-뉴딜아카데미 등 첨단 분야 직업훈련도 확대한다. 창업안심보험을 신설해 취업 초기 청년에게 보험료의 최대 80%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자산 형성 지원도 강화된다. 출생부터 18세까지 연 최대 120만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자립펀드’를 신설하고, 청년미래적금은 소득요건을 없애 모든 청년이 가입할 수 있도록 개편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공공임대주택 10만6000호를 공급하고, 비아파트 구매 시 월세 수준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도입한다. 혼인지원금, 출산지원금, 아동기본수당을 묶은 저출생 대응 3종 패키지도 신설한다. 지역균형발전 예산도 대폭 늘어난다. 국토 대전환과 지방주도 성장 예산은 올해 16조1000억원에서 내년 33조원으로 확대된다. 정부는 5극3특 성장엔진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설비투자액의 최대 50%를 지원할 계획이다. 지방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지역 필수의료 지원 예산은 8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늘어난다. 2027년 신입생부터 지방 국립대에 전액 장학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민생 안정 예산은 10조원에서 15조4000억원으로 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장기연체 채무 특별조정에는 7000억원이 투입된다. ◆지출 구조조정 107조…교부금 개편 충돌 가능성 정부는 대규모 확장 재정과 함께 107조6000억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도 병행한다. 소규모·관행적 사업과 불요불급한 경상비, 저성과·유사·중복 사업을 줄여 38조6000억원을 절감하고, 의무지출 조정으로 69조원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국회 심사에서 특히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교부세 개편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내국세 연동제 폐지로 32조5000억원을 줄이고, 교부세 산정 방식 개편으로 30조5000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침이다. 저출생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만큼 교육재정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는 게 정부 논리다. 그러나 교육계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교육재정의 핵심 재원이고, 교부세는 지방정부의 재정 운영과 직결된다. 정부가 지방 투자 예산을 대폭 늘리면서도 기존 지방·교육 재정 배분 방식을 바꾸겠다고 한 만큼, 국회에서는 재원 배분의 형평성과 지역별 영향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회 심사 본격화…12월 2일 법정 시한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인 9월 3일까지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 본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예산안을 확정한다. 국회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는 법정 시한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 2일이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특수한 세수 여건을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는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내년도 적극적인 재정 투자를 통해 V자형 경제 회복을 보다 공고히 견인하고, 성장주도형 재정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반면 국회에서는 ‘슈퍼예산’의 방향과 재정 운용 방식에 대한 검증이 불가피하다. 820조9000억원이라는 지출 규모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이느냐다. AI·반도체·청년·지방 투자처럼 미래 성장과 사회 구조 개선에 필요한 예산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미래대응기금의 행정부 재량 확대와 지방교육재정·교부세 개편은 치열한 공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2027년도 예산안 심사는 정부가 내세운 ‘성장 투자’ 논리가 국회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느냐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반도체 호황이 만들어낸 일시적 세수 여력을 미래 성장의 마중물로 쓸 것인지, 재정 건전성과 국회 통제를 우선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기국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6-09-01 14: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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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부동산을 선점하라"…SK·GS·네이버, 550조 데이터센터 대전
[경제일보]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부동산은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연산하는 AI 데이터센터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는 서버 보관시설을 넘어 전력과 데이터를 지능으로 바꾸는 ‘AI 공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부가 공개한 1단계 구상은 SK 5기가와트(GW), GS 2.4GW, 네이버 1GW 등 총 8.4GW다. 투자 유치를 포함한 사업 규모는 약 550조원이다. 다만 이는 확정 투자액이라기보다 자체 자금과 외부 투자, 금융조달, 장비 구입비를 합친 장기 사업 규모에 가깝다. 실제 사업화에는 전력과 GPU, 장기 고객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세 기업의 출발점은 뚜렷하게 갈린다. SK는 반도체·통신·에너지를 연결하고, GS는 발전·건설 역량과 산업부지를 활용한다. 네이버는 자체 AI와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앞세운다. 결국 승부는 누가 전력과 반도체, 고객, 소프트웨어를 하나의 수익모델로 묶어내느냐에 달렸다. SK, 전담법인 세우고 ‘AI 수직계열’ SK의 강점은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요소를 그룹 안에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고, SK텔레콤은 통신망과 기업 고객,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보유했다. 여기에 에너지 계열사의 발전·재생에너지 역량까지 더하면 반도체와 전력, 네트워크, 운영을 아우르는 수직계열 구성이 가능하다. SK텔레콤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사업개발 전문회사 ‘SK하이퍼’를 100% 자회사로 설립했다. SK하이퍼는 부지 확보와 변전소 구축·운영, 고객 유치, 사업화를 전담한다. SK텔레콤은 2030년까지 7500억원을 분할 출자해 사업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울산에서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 함께 2027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1GW 이상 규모로 확대한다는 구상이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규모는 수요와 투자 여건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2029년부터 5GW를 단계적으로 열고 2035년 15GW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며 “울산을 시작으로 영남권 2GW 이상, 충청권과 서남권에 각각 1GW 구축을 목표로 하되 세부 부지와 용량은 전력 수급과 앵커 테넌트 확보 여부를 따져 확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시설은 고객 수요에 맞춰 용량을 높이는 램프업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확보 가능한 전력을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와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액화천연가스(LNG),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으로 공급 기반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했다. AI 서비스가 확산될수록 추론 수요가 커지는 만큼 GPU와 NPU를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이기종 구성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SK텔레콤은 리벨리온의 신경망처리장치(NPU) ‘아톰’을 자체 서비스에 시험 적용했고, Arm·리벨리온과 NPU·중앙처리장치(CPU) 결합 인프라도 추진 중이다. 그룹 안의 반도체·통신·에너지 자산을 묶어 글로벌 AI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GS, 동해 보유 부지로 2.4GW 개발 GS는 발전과 건설, 산업부지 개발 역량을 앞세운다. 강원 동해시 북평제2일반산업단지 내 GS동해전력 보유 자산을 활용해 2028년 1.2GW, 2029년 추가 1.2GW를 구축하는 단계적 개발 계획을 세웠다. 그룹 안에는 발전사업을 운영하는 GS EPS와 GS E&R, LNG·재생에너지 사업을 맡는 GS에너지, 대형 인프라 시공 경험을 가진 GS건설이 있다. GS칼텍스도 액침냉각유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미 확보한 산업단지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신규 부지를 처음부터 개발하는 사업자보다 초기 준비 기간을 줄일 수 있는 강점으로 꼽힌다. GS 관계자는 “강원 동해시 북평제2일반산업단지 내 GS동해전력 보유 자산을 활용해 2028년 1.2GW, 2029년 추가 1.2GW를 구축할 예정”이며 “현재 사업 추진을 위한 검토와 준비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GS의 강점이 보유 자산과 인프라 역량이라면, 과제는 고객과 전력 구조의 구체화다. 발전소와 부지가 가깝다고 해서 데이터센터에 전력이 자동으로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송전망 접속과 전력거래 구조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자체 AI 모델이나 클라우드 고객 기반이 상대적으로 약한 만큼, 2.4GW를 장기간 사용할 핵심 고객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네이버, ‘각 세종’서 연산을 매출로 네이버는 세 기업 가운데 계획 규모는 가장 작지만, 데이터센터에서 생산한 연산을 직접 활용할 서비스와 이를 외부로 판매할 플랫폼을 함께 갖췄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다. 검색과 광고, 쇼핑, 클라우드, 하이퍼클로바X 등 자체 서비스가 모두 대규모 컴퓨팅 자원을 필요로 한다. 네이버는 2027년 상반기 55메가와트(MW) 규모의 글로벌 AI 팩토리를 가동하고, 2028년에는 200MW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후 ‘각 세종’을 거점으로 1GW급으로 확장하는 구상을 세웠다. 엔비디아는 네이버에 10억 달러를 투자해 지분 4.5%를 취득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90억 달러 규모 GPU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확보를 위해 브룩필드를 독점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다만 브룩필드 자금은 사전계약 단계여서 최종 조건은 더 지켜봐야 한다. 네이버클라우드 관계자는 “‘각 세종’을 거점으로 1GW급까지 빠르게 확장하고, 확보한 컴퓨팅 자원은 네이버 서비스뿐 아니라 외부 고객사에도 활용할 것”이라며 “AI 팩토리는 GPU 임대와 클라우드, 기업용 AI, 자체 서비스 고도화까지 포괄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이라고 했다. 소버린 AI의 핵심은 AI 모델과 데이터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이다, 고객이 인프라와 데이터를 독립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이유다. 네이버는 전국 20여곳에 GPU 상면을 확보하고 약 10만장 수준의 GPU를 운영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오픈 모델 기술을 공유하면서도 하이퍼클로바X는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로 학습해 직접 소유·통제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다만 핵심 연산장비에 대한 엔비디아 의존과 국산 AI 반도체 도입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전력·고객 없으면 ‘AI 공장’도 멈춘다 세 기업의 공통 병목은 전력이다. 데이터센터와 GPU를 확보해도 변전소와 송전망에 연결하지 못하면 가동할 수 없다. 대형 전력기기의 긴 납기, 송전선 건설에 필요한 인허가와 주민 동의 역시 사업 속도를 좌우하는 변수다. 550조원 투자가 국내 산업 성장으로 이어질지도 따져봐야 한다. HBM과 변압기, 냉각설비,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커질 수 있지만, 투자금이 해외 GPU와 서버·소프트웨어 구매에 집중되면 국내에 남는 부가가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산 NPU와 전력·냉각장비가 실제 발주에 얼마나 반영되는지가 중요한 이유다. 세 기업의 전략은 분명히 갈린다. SK는 반도체와 통신, 에너지를 묶고 전담 개발법인까지 세웠다. GS는 동해의 기존 산업부지를 활용해 단계적 개발에 나섰다. 네이버는 GPU와 클라우드, AI 모델을 연결해 연산을 매출로 바꾸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결국 경쟁력은 시설 크기 자체가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과 GPU, 장기 고객, 운영 소프트웨어, 금융비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AI 공장’이 아니라 값비싼 서버 창고에 머물 수 있다.
2026-07-28 16: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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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넘어 AI 연산 허브로…네이버·SK AI 패권전 뛰어들다
[경제일보] 한국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가 인공지능(AI) 반도체부터 데이터센터, 모델·서비스를 잇는 초대형 협력에 나섰다. 네이버는 AI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소버린 AI 팩토리 운영자'를, SK그룹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과 데이터센터 구축을 함께 맡는 'AI 인프라 공급자'를 지향한다. 정부는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국내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가 총 95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급·생산 협력과 약 5GW 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 현대자동차그룹, 네이버를 비롯해 엔비디아, 브로드컴,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앤트로픽 등이 참여했다. 한국을 메모리 반도체 수출국에서 AI 연산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글로벌 거점으로 확장하겠다는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의 실행 구상이다. ◆ 네이버, '각 세종' AI 연산 수출기지로 네이버는 엔비디아, 글로벌 대체자산운용사 브룩필드와 100억달러 규모의 AI 팩토리 확대를 추진한다. 세종시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각 세종'에 엔비디아 DSX 플랫폼을 적용하고 초기 구축 규모를 55MW에서 200MW로 확대한다. 네이버는 이를 엔비디아 GPU 약 10만개 규모라고 설명했다. 브룩필드가 독점 자본 파트너로 최대 90억달러를 조달하고 엔비디아가 10억달러를 투자하는 구조다. 실제 브룩필드 조달 규모가 계획에 미치지 못하면 네이버가 부족분을 부담한다. 시설에는 블랙웰과 차세대 베라 루빈 플랫폼이 적용될 예정이다. 네이버는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하이퍼클로바X와 네이버클라우드, 검색·쇼핑·지도 서비스,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을 함께 보유하고 있다. 도시 거리뷰와 공간 데이터를 활용한 '서울 월드 모델', 네모트론 기반 오픈모델, AI 에이전트 플랫폼 개발도 추진 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GPU 임대를 넘어 모델 개발과 학습, 기업용 AI 서비스 운영까지 제공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은 물론 자체 AI 역량 확보를 추진하는 해외 국가와 기업까지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소버린 AI가 국산 기술만으로 구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핵심 GPU와 컴퓨팅 플랫폼은 엔비디아 기술에 의존한다. 네이버가 강조하는 주권은 데이터와 AI 모델의 통제권, 국내 운영 환경을 확보하는 데 있다. 향후 국산 NPU와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수용하고 국내 AI 스타트업과 기업에 컴퓨팅 자원을 개방하느냐가 생태계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 SK, HBM부터 데이터센터까지 수직계열화 SK그룹은 메모리와 AI 데이터센터를 동시에 묶는 전략을 내세웠다. 정부는 SK와 글로벌 빅테크의 협력 규모를 7500억달러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SK가 공식 발표한 엔비디아 협력은 5000억달러 이상 규모의 LOI로 AI 메모리 공급과 최대 2GW AI 팩토리 구축을 포함한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 DSX를 기반으로 2027년부터 AI 팩토리를 단계적으로 가동하고 SK하이닉스 HBM4가 탑재된 베라 루빈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소버린 AI와 에이전틱 AI, 피지컬 AI, 기업용 서비스를 위한 컴퓨팅 자원을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차세대 HBM 공동 최적화를 추진하고 MS 데이터센터에 서버용 AI 메모리를 장기 공급한다. SK텔레콤은 앤트로픽과 국내 GW급 데이터센터 협력 MOU를 체결했고 AWS와는 울산 AI 데이터센터를 기반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SK의 경쟁력은 수직계열화다. SK하이닉스가 HBM을 공급하고 SK텔레콤과 SK하이퍼가 부지와 전력 확보, 데이터센터 개발을 맡으며 SK브로드밴드가 네트워크와 기존 데이터센터 운영을 담당하는 구조다. 메모리 판매를 넘어 AI 연산 자원을 서비스하는 반복 수익 모델을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관건은 전력 인프라다. 정부 계획대로 2029년까지 5GW, 장기적으로 15GW까지 AI 데이터센터를 확대하려면 대형 발전소 여러 기에 맞먹는 전력이 상시 필요하다. 송전망과 변전소, 용수·냉각 설비, 인허가가 지연되면 GPU를 확보해도 시설을 제때 가동하기 어렵다. SK하이퍼의 자체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글로벌 고객의 장기 사용 계약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외부 투자 유치도 병행돼야 한다. 이번 협력은 AI 경쟁의 중심이 모델 성능에서 전력과 메모리, 냉각, 네트워크, 운영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빅테크는 안정적인 HBM 공급과 아시아 컴퓨팅 거점을 확보하고 한국 기업은 GPU와 글로벌 자본,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번 발표에는 확정 투자뿐 아니라 장기 공급계약과 양해각서(MOU), 투자의향서(LOI)도 포함돼 있어 실제 투자 규모와 일정은 계약 이행 과정에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번 발표의 성패는 데이터센터 가동률과 고객 확보에 달려 있다. 네이버와 SK가 구축하는 AI 팩토리에 제조·금융·로봇·공공 분야의 수요와 해외 고객이 꾸준히 유입되고 전력망 확충과 국산 AI 반도체 참여, 중소기업의 컴퓨팅 접근성 확보까지 이어질 경우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을 넘어 아시아 AI 컴퓨팅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28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28 07: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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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에서 지능산업으로…샌프란시스코 선언이 연 한국 AI의 미래
[경제일보] 10년 뒤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은 무엇으로 평가받을까. 젠슨 황과 샘 알트만, 다리오 아모데이, 혹 탄이 한국 기업인들과 한자리에 섰던 장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날 발표된 투자액도 시간이 지나면 낡은 숫자가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AI 기업과 제품, 일자리와 수출이 남아야 비로소 역사적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행사의 의미는 참석자의 면면보다 산업 질서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엔비디아와 오픈AI, 앤트로픽, 브로드컴은 서로 다른 시장에서 경쟁하지만 모두 같은 제약에 맞닥뜨렸다. AI의 성장 속도를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날 때마다 더 많은 칩을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고 전한 것은 이 변화를 상징한다. 과거에는 반도체 기업이 수요처를 찾아다녔다. 지금은 AI 기업이 생산되지도 않은 칩과 아직 지어지지 않은 데이터센터의 연산 자원까지 먼저 확보하려 한다. AI 산업은 소프트웨어의 얼굴로 출발했지만 규모가 커질수록 중공업의 속성을 띤다. 모델을 고도화하려면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필요하다. 서비스를 확장하려면 발전설비와 변전소, 냉각장치, 통신망이 따라붙는다. 최첨단 알고리즘도 전기와 반도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AI 기술 패권이 제조 역량과 자본조달 능력의 경쟁으로 넓어진 것이다. 이 변화는 한국에 드문 기회다. 한국은 HBM과 메모리,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자동차·조선·배터리·로봇·바이오 등 AI가 적용될 산업 현장도 폭넓다. 통신망과 클라우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기업까지 보유했다. 반도체 생산과 산업 실증을 한 국가 안에서 연결할 수 있는 조건이다.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이 자산을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겠다는 약속에 가깝다. 한국이 반도체를 납품하는 공급국에서 벗어나 컴퓨팅 인프라를 운영하고, 산업용 AI를 개발하며, 세계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풀스택 AI 국가로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상을 가장 구체적인 사업으로 옮긴 기업 중 하나가 네이버다. 엔비디아는 10억달러를 투자해 네이버 지분 약 4.5%를 확보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글로벌 투자사 브룩필드와도 최대 90억달러 규모의 GPU·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조달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100억달러가 모두 네이버 계좌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의 10억달러는 지분 투자이고, 브룩필드의 최대 90억달러는 프로젝트금융 등을 활용한 인프라 조달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이 네이버의 주주가 되고, 글로벌 대체투자사가 데이터센터 금융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의미가 작지 않다. 네이버는 2027년 상반기 55MW 규모 AI 팩토리를 가동하고 2028년 200MW, 장기적으로 1GW급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0MW 시설에는 블랙웰과 베라 루빈 등 약 10만개의 엔비디아 GPU가 투입될 전망이다. 데이터센터 ‘각 세종’,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클로바X, 검색과 지도·커머스 서비스를 연결해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중동의 소버린 AI 수요를 흡수한다는 구상이다. 네이버의 도전은 한국 AI 산업이 가야 할 방향을 압축해 보여준다. 반도체를 구매해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는 데서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GPU 임대와 모델 학습, 추론, AI 에이전트 개발, 산업별 서비스까지 하나의 체계로 제공해야 한다. 포털 기업이 AI 시대의 컴퓨팅·서비스 사업자로 체질을 바꾸는 실험이다. 소버린 AI의 의미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모든 장비와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이 주권은 아니다. 엔비디아 GPU와 글로벌 자본을 활용하더라도 데이터와 모델, 운영 권한을 국내 기업과 고객이 통제하고 그 위에서 독자적인 서비스를 만든다면 산업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외국 기술을 쓰지 않는 나라보다 외국 기술을 자국의 가치로 전환하는 나라가 강하다. 네이버의 AI 팩토리가 성공하려면 시설 규모만큼 고객 구성이 중요하다. 해외 빅테크의 연산 수요만 채우는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국내 스타트업과 제조기업, 대학과 공공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컴퓨팅 기반이 돼야 한다. 그곳에서 한국의 산업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과 에이전트가 나오고, 다시 세계 시장으로 수출돼야 투자 의미가 완성된다. 이 지점에서 최태원 회장이 제시한 세 가지 방향과 네이버의 투자가 만난다. 최 회장은 국민 1인당 하나 이상의 AI 에이전트를 사용하는 ‘AI 네이티브 국가’, 메모리 생산과 데이터센터 확충을 통한 토큰 비용 절감, 일자리와 환경을 포괄하는 AI 거버넌스를 제안했다. SK가 HBM과 데이터센터로 공급 기반을 만들고 네이버가 클라우드와 모델, 서비스로 활용 경로를 넓힌다면 한국형 풀스택 AI의 윤곽도 선명해질 수 있다. 정부의 ‘모두의 AI’는 이 구상을 대규모 수요로 연결할 수 있는 정책이다. 5000만 국민이 일상과 업무에서 AI를 활용하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AI 테스트베드가 된다. 국내 모델과 스타트업에는 초기 시장이 생기고 공공·교육·의료·제조 현장에서는 다양한 사용 사례가 축적될 수 있다. 정책의 목표는 무료 이용자 수가 아니다. 국민이 자신에게 필요한 에이전트와 서비스를 만들고, 기업이 생산공정과 업무 방식을 재설계하도록 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그 결과를 제품으로 만들어 해외에 팔아야 한다. 사용 경험이 창업과 수출로 이어질 때 모두의 AI는 보급 정책을 넘어 성장 정책이 된다. 이를 뒷받침할 자원이 데이터다. 한국은 제조와 의료, 금융, 교육, 행정 분야에 높은 품질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이 기관과 기업 내부에 흩어져 있다. 개인정보와 산업기밀을 보호하면서도 AI 학습과 검증에 활용할 수 있는 규칙과 기술 기반을 갖춰야 한다. 데이터 개방을 무조건 확대하자는 뜻은 아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했고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보안형 데이터 공간과 비식별 처리, 접근권한 관리, 사용 이력 기록을 결합하면 보호와 활용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데이터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산업 현장의 경험도 수출 가능한 AI 제품으로 전환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확인된 것은 한국의 가능성이다. 세계 AI 기업들은 한국을 반도체 공급처로만 보지 않기 시작했다. 제조 역량과 인프라, 산업 수요를 갖춘 전략적 파트너로 평가하고 있다. 네이버의 AI 팩토리는 그 가능성을 실제 사업과 매출로 증명해야 하는 첫 시험대 가운데 하나다. AI 시대의 선진국은 칩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칩 위에서 새로운 지능을 만들고 산업을 바꾸며, 완성된 제품과 서비스를 세계에 판매하는 나라다.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은 한국이 그 길로 들어섰음을 알린 신호다. 다음 10년의 목표는 분명하다. 세계에 반도체를 공급해 온 나라에서 세계가 사용하는 지능과 서비스를 수출하는 나라로 나아가는 것이다.
2026-07-27 14: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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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네이버 주주로 올라선다…14조원 AI 팩토리 승부수
[경제일보] 네이버가 엔비디아를 전략적 주주로 맞아들이고 글로벌 투자사 브룩필드와 손잡으며 초대형 인공지능(AI) 팩토리 사업을 실행 단계로 옮긴다. 검색·광고·커머스 중심의 사업 구조를 GPU와 데이터센터, AI 플랫폼을 공급하는 글로벌 AI 인프라 영역으로 확장하는 승부수다. 네이버는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10억달러, 약 1조4809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27일 밝혔다. 엔비디아는 신주 724만1564주를 받아 네이버 지분 약 4.5%를 확보한다. 납입 예정일은 10월30일이며 신주는 1년간 보호예수된다. 네이버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나서는 것은 22년 만이다. 이번 투자는 단순한 자금 조달보다 엔비디아를 AI 팩토리 사업의 공동 이해관계자로 끌어들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엔비디아는 GPU 공급사를 넘어 네이버의 전략적 주주가 된다. 네이버클라우드는 기술과 수요, 자본을 결합한 ‘AI 컴퓨트 파트너십’ 체결도 엔비디아와 논의하고 있다. 브룩필드와는 최대 90억달러 규모의 GPU·데이터센터 인프라 확보를 위한 협상을 진행한다. 다만 90억달러가 네이버에 직접 투입되는 현금은 아니다. 브룩필드를 독점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방식으로 인프라를 조달하는 구조가 유력하다. 앞서 공개된 합의도 최대 90억달러를 대상으로 한 비구속적 조건합의다. 엔비디아의 투자금 납입 역시 네이버가 AI 팩토리 확장에 필요한 90억달러 이상의 자금조달 약정을 증명한 뒤 진행되는 조건부 구조로 알려졌다. 이번 사업의 전체 규모는 100억달러에 달하지만, 엔비디아의 10억달러 지분 투자와 브룩필드가 주선할 최대 90억달러의 인프라 금융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네이버는 2027년 상반기 55MW 규모의 글로벌 AI 팩토리 가동을 시작하고 2028년까지 200MW로 확대할 계획이다. 200MW 시설에는 엔비디아 블랙웰과 차세대 베라 루빈 플랫폼을 포함해 약 10만개의 GPU가 투입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이를 1GW급 소버린 AI 인프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경쟁력의 바탕은 데이터센터 ‘각 세종’과 네이버클라우드, 하이퍼클로바X, 기업용 AI 서비스를 연결한 풀스택 운영 경험이다. GPU 임대에 그치지 않고 모델 개발과 학습, 추론, AI 에이전트 구축까지 통합 제공해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중동의 소버린 AI 수요를 흡수한다는 전략이다. 주주가치 제고책도 병행한다. 네이버는 약 1조원 규모의 자사주 490만1094주를 8월3일 소각한다. 전체 발행주식 수를 줄여 엔비디아 대상 신주 발행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려는 조치다. 다만 자사주는 기존에도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었던 만큼 신규 주식 발행에 따른 경제적 희석을 완전히 상쇄하는 것은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과 냉각, 변전소, GPU 교체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네이버가 제시한 2027년 매출 창출 목표도 장기 고객계약과 전력망 확보, 인허가, 브룩필드와의 최종 계약이 예정대로 진행돼야 현실화할 수 있다. 엔비디아 의존도와 빠른 GPU 세대교체에 따른 투자 부담도 관리해야 한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엔비디아와 브룩필드의 투자는 네이버 미래 성장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며 “AI 팩토리 고객사 유치도 속도감 있게 마무리해 네이버가 글로벌 AI 인프라 분야의 주요 기업으로 도약하는 분기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도 “그간 축적해 온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과 노하우를 글로벌 무대로 확장할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며 “국가와 집단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AI 생태계를 구현하기 위해 전 세계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글로벌 자본과 엔비디아의 컴퓨팅 생태계에 자체 데이터센터·클라우드·AI 모델을 결합해 2027년부터 AI 팩토리 매출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고객 확보와 인프라 구축이 계획대로 이어진다면 이번 협력은 네이버가 국내 포털을 넘어 글로벌 소버린 AI 인프라 사업자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2026-07-27 10: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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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헌 SKT 대표 "AI 데이터센터 지금이 골든타임"…SK하이퍼로 15GW 도전
[경제일보] 정재헌 SK텔레콤 대표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 DC) 사업개발 전문회사 ‘SK하이퍼’를 앞세워 AI 인프라 확보 경쟁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부지와 전력을 먼저 확보하고 글로벌 고객을 유치해 한국을 아시아 AI 인프라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24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정 대표는 전날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AI 인프라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지금이 실행의 골든타임”이라며 “회사의 핵심 성장 사업인 AI DC의 빠른 실행과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SK하이퍼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어 AI DC 사업개발 전문 자회사 SK하이퍼 설립을 의결했다. SK하이퍼는 SK텔레콤이 지분 100%를 보유하며, SK텔레콤은 2030년까지 총 7500억원 한도에서 사업 진척에 맞춰 자금을 나눠 출자한다. SK하이퍼는 신규 AI 데이터센터의 부지 확보와 변전소 구축·운영, 고객 유치, 사업 구조 설계, 대규모 건설을 담당한다. 기존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조직과 분리해 장기간 걸리는 인허가와 전력 협의, 부지 개발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려는 선택이다. 정 대표는 “SK하이퍼는 모든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며 “부지와 전력 등 핵심 병목 요인을 선점하고 글로벌 고객 유치와 사업화를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대규모로 운영할 데이터센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건설 과정에서는 전력 공급과 송전망, 부지, 냉각 설비, 인허가가 속도를 좌우한다. 사업개발 법인을 별도로 만든 배경도 컴퓨팅 장비를 도입하기 전에 이러한 기반 시설부터 확보하기 위해서다. SK그룹의 AI 인프라 사업은 세 회사가 역할을 나눠 추진한다. SK하이퍼는 신규 AI DC 개발과 대규모 구축을 맡고, SK텔레콤은 AI 팩토리를 비롯한 사업 모델과 소프트웨어·서비스 역량을 확보한다. SK브로드밴드는 기존 데이터센터의 운영과 네트워크 경쟁력을 강화한다. 정 대표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SK하이퍼가 하나의 목표로 나아갈 실행 체계를 갖추게 됐다”며 “AI 인프라 가치사슬의 핵심 영역으로 사업을 넓혀 아시아 AI 인프라 허브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SK텔레콤은 SK하이퍼를 중심으로 2029년까지 5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가동하고, 시장 수요를 고려해 2035년에는 총 15GW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울산을 시작으로 충청권과 서남권 등에 대규모 AI DC 거점을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15GW는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의 현재 규모를 크게 뛰어넘는 장기 목표다. SK텔레콤이 출자하는 7500억원만으로 전체 시설을 건설하기는 어려운 만큼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외부 투자, 글로벌 빅테크의 장기 사용계약을 결합하는 방식이 예상된다. SK하이퍼의 초기 자금은 직접 건설비 전체보다 부지와 전력 등 사업 기반을 먼저 확보하는 데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데이터센터 용량을 실제 매출로 연결하려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장기간 시설을 사용할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 GPU와 냉각 기술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시설을 적기에 완공하고 투자비를 회수할 사업 구조를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 정 대표는 “이제부터 과감하게 움직이고 역량을 단단하게 키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SK하이퍼 출범은 통신 중심의 SK텔레콤이 AI 인프라 개발·운영 사업자로 영역을 넓히기 위한 첫 조직 개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026-07-24 12: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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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빅테크의 한국행, 공짜 투자는 없다
[경제일보] 미국 빅테크의 투자를 한국으로 끌어오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 등을 만난다.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기업 총수들도 함께한다. 청와대는 단순한 양해각서를 넘어 전략적 제휴, 장기계약, 실질적인 투자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출국을 앞두고 이번 방문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늘리는 자리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 한국 투자를 강화하도록 만드는 자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브로드컴과 오픈AI, 앤트로픽, 엔비디아 등을 상대로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분야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미국 빅테크에 돈을 들고 찾아가는 외교에서 미국의 자본과 기술을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외교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의미다. 방향은 옳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업 기반, 빠른 통신망, 높은 교육 수준을 갖고 있다.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도 반도체와 기계·장비 수출에 힘입어 전 분기 대비 0.6% 성장했다. 건설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이 경제를 떠받쳤다는 것은 한국 산업의 힘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반도체는 강하지만, 국내 투자와 내수의 온기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미국 빅테크의 데이터센터와 연구소, 클라우드 거점을 유치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투자는 애국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엔비디아와 오픈AI가 한국을 좋아해서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정상과 기업인이 악수했다고 공장이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전력 가격과 공급 안정성, 인허가 속도, 세금, 인재, 시장 접근성, 데이터 규제를 계산한다. 한국이 경쟁국보다 더 나은 수익과 더 적은 불확실성을 제공하지 못하면 빅테크의 돈은 미국이나 일본, 싱가포르, 중동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내줘야 할까. 먼저 내줄 것은 속도다. 공장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기까지 몇 년씩 허가를 기다려야 하는 나라에 초대형 투자가 들어오기 어렵다. 환경과 안전 기준을 낮추라는 뜻이 아니다.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같은 서류를 반복해서 내는 행정,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규제, 허가 일정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한다. 빅테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엄격한 규제보다 예측할 수 없는 규제다. 두 번째로 내줄 것은 전력과 기반시설이다. AI 데이터센터는 반도체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막대한 전기와 냉각용수, 통신망, 변전소가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외치면서도 송전망 건설과 전력 공급 결정을 미룬다면 투자 유치 구호는 공허해진다. 전력을 기업에 싸게 퍼주자는 얘기가 아니다. 기업이 부담할 비용과 정부가 구축할 기반시설, 재생에너지와 원전 등 전력조달 방식, 지역사회에 돌아갈 이익을 사전에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시장이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에 데이터센터와 연구개발 거점을 두면 정부와 공공기관, 금융·의료·제조기업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공공부문의 AI 도입을 국내 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무조건 막아도 안 되고, 반대로 해외 플랫폼에 통째로 넘겨서도 안 된다.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공동으로 제품을 만들고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경쟁국들이 법인세 감면과 부지, 전력, 정책금융을 한 묶음으로 제공하는 상황에서 한국만 시장원리를 외치며 빈손으로 기다릴 수는 없다. 다만 보조금은 투자 발표가 아니라 투자 이행에 지급해야 한다. 공장 착공과 고용, 국내 조달, 공동 연구개발 등 약속이 실제 집행되는 단계마다 혜택을 나누는 방식이 옳다. 일자리도 기술도 남기지 않는 서버 건물 하나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과 전력을 무제한 제공하는 것은 투자 유치가 아니라 임대업에 가깝다. 내주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하다. 첫째는 데이터 주권이다. 의료와 금융, 공공행정, 산업기술 데이터가 해외 기업의 폐쇄된 플랫폼 안에 갇히면 한국은 AI를 사용하는 나라는 될 수 있어도 AI를 통제하는 나라는 되기 어렵다. 민감정보의 저장 위치와 처리 방식, 제3국 이전, 정부의 감독권은 협상 가능한 부수 조건이 아니다. 둘째는 규제 면책특권이다. 빅테크의 투자가 크다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나 공정경쟁, 저작권, 소비자 보호 기준까지 면제해서는 안 된다. 국내 기업에는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면서 해외 기업에는 투자 유치를 이유로 예외를 준다면 시장은 기울어진다. 규제는 단순해야 하지만 공평해야 한다. 셋째는 국내 산업의 성장 기회다. 미국 빅테크가 한국 시장과 전력, 데이터를 이용하면서 국내 클라우드·소프트웨어·AI 스타트업을 하청업체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투자 협약에는 국내 기업의 공급망 참여, 대학·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 국내 인재 채용과 교육, 한국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이 포함돼야 한다. 한국이 제공한 기반 위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모두 본사로 빠져나가는 구조라면 투자액이 아무리 커도 국익은 작다. 노자는 ‘도덕경’ 36장에서 “장차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將欲取之 必固與之)”고 했다. 투자를 얻으려면 한국도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 문제는 많이 주느냐 적게 주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다. 한국이 줘야 할 것은 신속한 행정과 안정적인 전력, 예측 가능한 세제, 매력적인 시장이다. 내줘서는 안 될 것은 데이터에 대한 통제권과 공정한 경쟁질서, 국내 산업이 성장할 몫이다. 전자는 투자의 기반이고, 후자는 국가의 주권이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빅테크 투자 유치는 막대한 보조금으로 외국 기업의 건물과 서버를 대신 지어주는 사업으로 전락한다. 정부는 이번 정상외교의 성과를 투자금액 한 줄로 발표해서는 안 된다. 어느 지역에 무엇을 짓는지, 전력과 물은 누가 얼마를 부담하는지, 국내 기업은 어떤 공급망에 참여하는지, 몇 명을 고용하고 어떤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지까지 공개해야 한다. 투자 유치의 성적표는 협약서에 적힌 달러가 아니라 한국에 남은 기술과 일자리, 세수와 수출로 작성돼야 한다. 미국 빅테크의 한국 투자는 구걸할 대상도, 두려워할 대상도 아니다. 국가와 기업의 이해관계를 맞추는 거래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시장과 인재라는 귀한 카드를 갖고 있다. 그 카드를 헐값에 내주지 않으면서도 상대가 들어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빅테크를 불러오는 데 공짜 점심은 없다. 그렇다고 식당과 주방까지 넘길 필요도 없다. 문은 열되 집문서는 지키는 협상, 그것이 AI 정상외교가 갖춰야 할 국익의 원칙이다.
2026-07-24 07:4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