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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감찰관 10년 공백, 방치한 정치권부터 책임져야
[경제일보] 권력은 스스로를 감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선의가 아니라 법과 제도로 권력을 통제한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고위 공직자의 비위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 제도는 권력형 비리를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이 제도가 10년 가까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감시받아야 할 권력은 감시 장치 없이 국정을 운영했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권은 제도의 정상화보다 정파적 이해득실을 앞세웠다. 이제 특별감찰관을 다시 가동하겠다는 말만으로 책임을 덮을 수는 없다. 누가 공백을 초래했고, 누가 방치했으며, 누가 정상화를 지연시켰는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특별감찰관 공백의 직접적인 원인은 임명 절차를 책임 있게 마무리하지 못한 정치권에 있다. 특별감찰관은 법률에 따라 국회가 후보자를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따라서 국회는 정파적 유불리를 떠나 추천 절차를 진행할 책임이 있고, 대통령은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임명권을 행사할 책임이 있다. 어느 한쪽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상대방의 결정을 기다리며 시간을 끌면 제도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여야가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있어도, 그 결과까지 국민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특히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와 친족 등 권력 핵심부를 감찰하는 제도다. 감찰 대상과 가까운 권력이 제도의 가동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면 이해충돌에 대한 의심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감시하는 장치가 불편하더라도 이를 보장해야 할 헌법적·정치적 책임이 있다. 집권 여당 역시 대통령실을 무조건 방어하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국회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 권력 감시를 외부의 압박으로만 받아들이는 태도는 공정과 상식의 원칙에 어긋난다. 야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회 추천 절차를 정쟁의 지렛대로 활용하거나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후보자 추천을 지연한다면 제도 공백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감찰관을 권력형 비리 예방을 위한 독립적 기구가 아니라 상대 진영을 압박할 수단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여당은 대통령실의 방패가 되고 야당은 감찰관 인선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국민이 기대하는 권력 감시는 시작도 하기 어렵다. 양쪽 모두 감시 제도를 정쟁에 종속시킨 책임을 돌아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장기 공백을 막을 제도적 안전장치가 허술했다는 점이다. 추천과 임명 절차에 기한이 명확하지 않거나 지연에 대한 설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장치가 부족하면, 정치권은 합의를 미루는 것만으로도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 특별감찰관 공백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회 추천 절차의 진행 기한과 지연 사유 공개, 후보자 추천 협의의 의무를 법률에 구체화해야 한다. 대통령의 임명 절차 역시 법률상 기한과 처리 원칙을 명확히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절차가 지연될 경우 그 사유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임명권과 국회 추천권의 헌법적 범위를 존중하면서 실효적인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특별감찰관의 임명 여부만으로 제도의 성공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독립적인 예산과 인력, 법률에 근거한 조사 권한, 감찰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 정기적인 활동 실적 공개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 공백을 메우는 데 그치지 말고 감찰이 실제로 작동하도록 제도를 완성해야 한다. 국회는 공백의 원인과 경과를 점검하고, 정부는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추천·임명 지연의 경위와 제도 개선 방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진리와 정의는 책임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권력 감시의 공백을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대통령은 임명과 독립성 보장에 책임을 다하고, 여당은 권력 방어보다 제도 정상화를 우선해야 한다. 야당도 추천 절차를 지연시키거나 감찰을 정쟁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국회는 제도 공백을 초래한 과정과 개선 과제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특별감찰관 10년 공백은 단순한 인사 지연이 아니라 권력 감시의 책임을 정치권이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다. 책임 주체를 흐린 채 제도만 복원하면 같은 실패는 반복될 수 있다. 누가 지연시켰는지 밝히고, 왜 막지 못했는지 따지며, 다시는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법과 절차를 고쳐야 한다. 권력은 감시를 피할 권리가 없고, 정치권은 감시 장치를 멈춰 세울 면책특권이 없다. 그것이 진리와 정의, 기본과 상식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2026-10-23 09: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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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장 없이 시작한 송무 로펌…바른 28년, 이제 동인과 합병
[경제일보] 1998년 3월 서울 서초동. 판사 출신 강훈·홍지욱·김재호 변호사가 바른법률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당시 형사·민사 사건 수임에는 이른바 ‘사무장’이나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세 사람은 사건을 소개해주는 브로커를 쓰지 않고 변호사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바른’이라는 이름에도 그런 생각을 담았다. 19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으로 법원과 변호사 업계에 대한 불신이 커지던 시기였다. 평판사 출신들이 만든 작은 사무실은 전관의 이름을 앞세우기보다 직접 사건을 맡아 승부하겠다고 나섰다. 검사와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지낸 김찬진 변호사도 초기부터 힘을 보탰다. 28년이 지난 지금 바른에는 외국변호사를 포함해 3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한다. 2025년 매출은 1076억원으로 2023년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선 뒤 3년 연속 1000억원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같은 해 YK가 1694억원, 지평이 1327억원을 기록하면서 중대형 로펌 사이의 외형 경쟁에서는 다시 뒤를 쫓는 처지가 됐다. 바른은 결국 다시 큰 선택을 했다. 지난 9월 14일 법무법인 동인과 합병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합병이 성사되면 지난해 기준 합산 매출 1877억원, 변호사 553명 규모로 커진다. 평판사들이 만든 송무 사무실에서 출발한 바른이 28년 만에 국내 로펌 사상 최대 규모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 법조비리 뒤 문 연 평판사들의 사무실 바른이 문을 열던 1990년대 말 법률시장은 지금과 달랐다. 개인 변호사 사무실의 비중이 컸고 법원이나 검찰을 갓 나온 전관들이 사건을 소개받아 처리하는 방식도 널리 퍼져 있었다. 브로커와 사무장을 통한 사건 수임이 법조비리로 번지면서 변호사 업계 전체가 비판을 받던 때였다. 강훈·홍지욱·김재호 변호사는 모두 법원에서 10년 안팎 근무한 평판사 출신이었다. 고위 법관 출신도 아니었고 대형 기업자문 조직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잡은 시장은 송무였다. 법정에서 재판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민·형사 사건을 직접 맡았다. 사무장이 사건을 가져오면 변호사가 이름을 빌려주는 관행도 피했다. 파트너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 뒤 저연차 변호사에게 전부 넘기는 방식도 지양했다. ‘변호사가 직접 의뢰인을 만나고 직접 책임진다’는 방식은 신생 사무실이 고객을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송무 중심의 출발은 이후 바른의 성격을 오랫동안 규정했다. 기업과 금융회사에 계약을 자문하는 대신 이미 벌어진 분쟁을 법정에서 해결하는 사건이 먼저 쌓였다. 지금도 바른을 설명할 때 송무와 기업형사가 먼저 거론되는 배경이다. ◆ 대법관·고법부장들이 신생 로펌으로 설립 이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원을 떠난 조중한 변호사가 2대 대표로 합류했다. 같은 해 정귀호 전 대법관도 바른으로 왔다. 2000년에는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박인호 변호사가 가세했다. 평판사 세 명이 시작한 사무실에 고위 법관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송무 인력의 폭이 넓어졌다. 이후 검사장급 인사와 고법부장, 법원장 출신 변호사들도 잇달아 합류했다. 명로승 전 법무부 차관과 정동기·문성우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 정인진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동건 전 서울고법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성과도 따라왔다.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 탱크공사 관련 5500억원대 가처분 사건과 두산중공업 희망퇴직자들의 600억원대 퇴직금 소송 등을 맡았다. 동서식품의 공정거래위원회 과징금 사건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냈다. 2010년에는 대법원 수임 사건 수가 국내 로펌 가운데 가장 많다는 보도도 나왔다. 바른 홈페이지 연혁에도 이 기록이 남아 있다. 송무에서 확보한 사건과 인력이 바른을 100명대 로펌으로 끌어올렸다. ◆ 송무만으로는 종합로펌이 될 수 없었다 바른이 계속 법정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기업 고객을 상대하다 보면 소송이 터지기 전 계약과 금융, 공정거래 문제부터 자문해달라는 요구가 따라왔다. 송무에서 기업을 만났지만 기업의 일은 법정 밖에서 더 많이 벌어졌다. 2005년 바른은 김·신·유에서 기업자문을 이끌던 박기태 변호사와 자문팀을 영입했다. 같은 해 법인 이름도 지금의 ‘법무법인 바른’으로 바꿨다. 김장리와의 합병을 추진했고 2007년에는 세종과의 합병도 검토했지만 두 건 모두 성사되지는 않았다. 2010년대 들어서는 조세와 부동산금융, 공정거래를 잇달아 보강했다. 2015년 조현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영입했고 이듬해 법무법인 양헌에서 부동산금융팀을 받아들였다. 2017년에는 법무법인 KCL의 공정거래팀이 합류했다. 바른의 확장은 다른 대형 로펌과 달리 한 번의 대형 합병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송무라는 기존 기반을 두고 필요한 자문팀을 하나씩 붙였다. 법원과 검찰 출신 인력 중심의 조직에 세무와 금융, 공정거래 전문가가 들어오면서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 론스타에서 통상임금까지 법정에서 이름 알려 기업형사 사건에서도 바른의 송무 경험이 이어졌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과정에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대리해 1심부터 대법원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신한은행이 45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신상훈 전 사장 사건에서도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이끌어냈다. 노동과 공정거래 사건에서도 굵직한 판결이 나왔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2016년 액화천연가스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담합 사건에서는 SK건설을 대리해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승소했다. 최근 매출을 끌어올린 사건에도 송무가 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퀄컴 사이의 1조원대 과징금 분쟁에서 공정위를 대리했고 HD현대중공업의 6300억원대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근로자 측을 대리했다. 2023년 바른의 매출이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서는 데 이런 대형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설립 당시의 주력이었던 송무가 20년 넘게 바른의 매출과 브랜드를 떠받쳐온 것이다. 다만 대형 로펌 시장이 기업자문과 M&A, 금융, 국제중재 중심으로 커지면서 송무에 강하다는 것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어려워졌다. ◆ 남들이 덜 보던 상속·도산도 파고들었다 바른은 대형 로펌이 상대적으로 덜 주목하던 분야에도 사람을 붙였다. 대표적인 분야가 상속과 자산승계다. 2013년 상속신탁연구회를 만들었고 2022년에는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자산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EP센터를 출범시켰다. 기업 오너와 고액 자산가의 상속은 유언장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세금과 기업 지분, 경영권, 신탁, 가족 간 분쟁이 한꺼번에 얽힌다. 바른은 조세와 가사, 기업법무 변호사를 묶어 이 시장을 따로 키웠다. 도산에서도 새로운 사건을 맡았다. 2018년 레이크힐스순천 회생에서 서울회생법원의 첫 ‘한국형 프리패키지 제도’ 적용을 이끌고 이후 골프존으로의 매각까지 관여했다. 회생 절차와 인수·합병을 한 조직에서 이어간 사건이었다. 최근에는 국제중재와 지식재산권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의 해외 진출과 기술 분쟁이 늘면서 외국변호사를 영입하고 특허 분야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AI와 디지털자산, 재생에너지 같은 신산업 규제 분야에도 별도 인력을 붙이고 있다. ◆ 1000억원 넘었지만 경쟁자는 더 빨리 컸다 바른은 2023년 매출 1058억원을 기록하며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섰다. 2024년 1064억원, 2025년 1076억원으로 3년 연속 1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적어도 외형에서는 중대형 로펌의 문턱을 넘었다. 문제는 경쟁사들이 더 빨리 컸다는 데 있다. 2025년 YK는 1694억원, 지평은 1327억원을 기록했다. 대륙아주도 1027억원으로 바른을 바짝 따라붙었다. 1000억원대 로펌 사이에서도 변호사 영입과 합병 경쟁이 시작됐다. 기업 고객 평가에서도 아직 상위권과 거리가 있다. 한국경제와 한국사내변호사회가 실시한 2025년 평가에서 바른은 종합·전문성·서비스 모두 9위를 기록했다. 송무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쌓았지만 기업 고객을 상대로 한 종합 서비스에서는 빅6와 차이가 남아 있다. 2025년 이동훈 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바른은 기업자문과 국제중재, 지식재산권을 다음 성장 분야로 잡았다. 같은 해 기업전략연구소도 세웠다. 법률문제가 생긴 뒤 대응하는 송무에서 기업의 사업과 규제를 미리 들여다보는 쪽으로 업무를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 28년 만에 다시 꺼낸 합병 카드 바른은 지난 9월 14일 법무법인 동인과 합병 추진 MOU를 체결했다. 양측은 합병추진위원회를 만들고 12개월 안에 본계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통합 법인의 가칭은 ‘바른동인’이다. 아직 합병이 완료된 것은 아니다. 두 로펌의 2025년 매출을 합하면 1877억원이다. 외국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사는 바른 303명, 동인 250명으로 모두 553명이다. 계획대로 합병이 끝나면 매출 기준 국내 7위권으로 올라설 수 있는 규모다. 바른과 동인은 모두 송무와 형사 분야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로펌이다. 양측은 여기에 기업과 금융, 공정거래 등 자문 역량을 합치겠다는 구상이다. 2005년 김장리, 2007년 세종과의 합병을 추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했던 바른이 약 20년 만에 다시 대형 합병 카드를 꺼냈다. 합병의 규모가 큰 만큼 풀어야 할 일도 많다. 500명이 넘는 변호사의 보수와 사건 배분, 고객 충돌, 파트너 지분과 경영구조를 하나로 맞춰야 한다. 송무 중심 조직 두 곳이 단순히 사람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자문까지 함께 키울 수 있는지가 합병 이후의 문제다. ◆ ‘바르게 하자’에서 500명 로펌으로 바른의 출발에는 거창한 기업법무 전략이 없었다.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 뒤 법원을 나온 젊은 판사들이 사무장과 브로커 없이 사건을 맡아보겠다고 만든 사무실이었다. 그 조직에 대법관과 고법부장, 검사장 출신들이 들어오면서 송무가 커졌고 뒤이어 조세와 금융, 공정거래, 기업자문을 붙였다. 2011년에는 주요 대형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자체 사옥인 바른빌딩도 마련했다. 2023년에는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변호사 6명 규모로 출발했던 조직은 이제 3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일하는 중대형 로펌이 됐다. 그동안 바른은 송무의 힘으로 몸집을 키웠다. 그러나 지금 법률시장에서 더 큰 로펌이 되려면 기업자문과 금융, 국제분쟁까지 함께 가져가야 한다. 바른이 동인과 합병을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1998년에는 사무장 없이 사건을 맡는 일이 도전이었다. 2026년에는 500명이 넘는 변호사를 한 조직으로 묶는 일이 새로운 도전이 됐다. 바른의 다음 10년은 이번 합병이 실제로 어떤 조직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2026-09-28 09: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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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CIA 국장 극비 방러…우크라·이란 '두 전쟁' 놓고 푸틴에 경고했나
[경제일보]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극비리에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정부 모두 방문 사실과 회동 상대를 공식 확인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이 동시에 교착 국면에 들어간 만큼 양국 현안을 비공개로 조율하기 위한 방문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CBS와 월스트리트저널(WSJ), 워싱턴포스트(WP) 등은 25일(현지시간) 랫클리프 국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미군 수송기 C-17A가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출발해 라트비아 리가를 거쳐 모스크바 브누코보 공항에 착륙한 사실도 항공기 추적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CIA와 크렘린궁, 미 국방부는 방문 목적과 회동 대상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이번 방문은 랫클리프 국장의 취임 이후 첫 러시아 방문이며, 공개적으로 확인된 CIA 국장의 모스크바 방문으로는 2021년 11월 윌리엄 번스 전 국장 이후 처음이다. 당시 번스 전 국장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를 경고했고, 석 달 뒤 러시아는 전면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반대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WSJ는 미국 정보당국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동원 능력을 점검하고 나토의 대응 의지를 시험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스 새너 전 국가정보국(DNI) 부국장은 랫클리프의 방러가 러시아에 행동을 경고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미국은 랫클리프를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고위급 대표단의 방러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북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번 방문이 단순한 정보 교류를 넘어 일정 수준의 민감한 협의를 동반했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 이란전까지 얽힌 미·러 협상 가능성 이란 문제도 변수다. 미국은 최근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에 대한 제재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란과 군사·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전용 드론을 공급해왔고, 미국은 러시아가 이란에 군사·정보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러시아는 관련 지원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미국·이란 분쟁 해결에 관여할 의사를 내비쳐왔다. 우크라이나 평화협상도 사실상 교착 상태다. 러시아는 최근 협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현재 전선과 영토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미국이 양국 간 대화를 중재하는 상황에서 CIA 수장이 직접 모스크바를 찾았다는 점은 공식 외교 채널과 별도로 정보·안보 라인을 통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랫클리프의 방러 목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우크라이나전의 추가 확전 억제, 러시아의 대나토 도발 가능성 경고, 이란전 관련 러시아의 역할 조율이라는 세 가지 현안이 동시에 걸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의 전략적 무게는 작지 않다. 미·러 관계가 공식 외교 채널만으로 풀기 어려운 국면에서 정보기관 간 비공개 접촉이 새로운 협상 통로가 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반대로 별다른 합의 없이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그쳤다면 우크라이나와 이란을 둘러싼 미국의 압박이 더욱 강해질 가능성도 있다.
2026-08-26 07: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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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형소법, 사법 정상화 단초"…거부권 행사 안 할 듯
이재명 대통령은 4일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된 것과 관련해 "많은 논란이 있으나 이 법률안이 위헌이라거나 행정부의 고유한 권한을 침해하는 등 해당 법으로 인한 부작용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의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사실상 거부권을 쓰지 않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라는 것은 의견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협이 되거나 헌정 질서에 위반이 될 때 하는 것"이라며 지금 법안은 그 단계에 이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번 법안에 대해 "사법 체계 정상화의 실마리"라며 오히려 시행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이 대통령은 "수십 년 동안 검찰은 수사부터 기소, 영장 청구 등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 걸쳐 매우 과대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며 "비정상적 시스템 아래 검찰은 무소불위로 권한을 악용하며, 있는 사건을 덮거나 누군가를 정해놓고 처벌하기 위한 별건 수사, 먼지떨이 표적 수사를 관행처럼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무고한 국민이 감내하기 어려운 피해를 보았고, 심지어 스스로 삶을 저버리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 또 묵묵히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대다수 검사까지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했다"고 돌아봤다. 이어 "수사와 기소 분리는 이런 비정상적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 출발이자, 모든 권력 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또 한편으로 보면 경찰의 수사권 독점과 비대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정비 등의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새로운 수사 시스템의 정착 과정에서 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수사 공정성, 수사 역량 제고에 작은 빈틈도 없어야겠다"고 당부했다. 검찰을 향해서도 "국민과 법치를 수호하는 검찰의 책무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며 "검찰은 대표적인 공익의 대표자인 만큼, 인권 수호자의 책임을 보다 충실히 수행해 국민 모두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찰에도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 역시 뼈를 깎는 자세로 내부 비리 근절과 피해자의 실질적 보호, 민주적 통제 강화에 매진함으로써 믿음직한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개혁은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다. 한 번의 제도 변경으로 쉽게 종결되는 개혁은 없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원래 취지대로 변경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세심하게 점검하고,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신속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철저히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2026-08-04 1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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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수사권 공방, 검찰도 경찰도 아닌 국민을 보라
[경제일보] 수사는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다. 확보하지 못한 영상 하나,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 한 명, 잘못 해석한 진술 한 줄이 사건의 결론을 바꾼다. 경찰이 송치한 기록을 검사가 다시 들여다보고 부족한 부분을 확인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추진했지만 당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수사와 기소를 완전히 분리하려면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과 경찰 수사를 교정할 최소한의 권한은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성폭력과 아동학대, 스토킹,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는 예외적으로 보완수사를 허용하자는 법안도 나왔다. 형사사법제도는 한번 바꾸면 수많은 사건과 국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의 출범 시점을 오는 10월 2일로 정해 놓고도 형사절차의 핵심인 보완수사 구조를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조직을 먼저 나눈 뒤 그 조직들이 어떻게 사건을 처리할 것인지를 뒤늦게 논의하는 순서가 됐다. 보완수사권과 보완수사요구권은 구별해야 한다. 보완수사권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직접 추가 조사하는 권한이다. 보완수사요구권은 검사에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권한이다. 전면 폐지론은 검사에게 직접 조사권을 남기면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 무너진다고 본다. 검사가 보완수사를 내세워 송치된 혐의와 관계없는 사실까지 들여다보거나 별건 수사로 확대할 위험도 지적한다. 검찰은 이런 불신을 스스로 키웠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행사하면서 표적수사와 별건수사, 과도한 압수수색, 피의사실 유출 논란을 반복했다. 직접수사권을 축소하고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는 검찰권 남용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이었다. 과거와 같은 포괄적 수사권을 검사에게 돌려줄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는 문제와 경찰 수사의 오류를 교정하는 기능을 없애는 문제는 같지 않다. 보완수사요구권만 남기면 충분하다는 주장은 실제 수사 과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처음 수사를 부실하게 한 수사관에게 같은 사건을 다시 조사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빠진 증거가 저절로 발견되지는 않는다. 수사팀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면 같은 조직에 보완수사를 맡기는 방식만으로 잘못을 바로잡기 어렵다. 검사가 경찰 수사기록만 검토해서는 기록 밖에 있는 증거를 찾을 수도 없다. 경찰이 확보하지 않은 영상, 조사하지 않은 참고인, 누락한 압수물은 기록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나 참고인을 직접 만나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수사의 빈틈이 드러나는 사건도 있다. 전남광주 여고생 살인사건은 이런 우려를 보여줬다. 경찰은 피의자를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성범죄 목적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후 경찰 수사팀 내부에서 중요 증거 확보와 보고를 막고 수사 내용을 축소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개별 사건 하나로 모든 제도를 설계할 수는 없다. 다만 경찰 내부에서 수사 축소나 증거 누락이 발생했을 때 같은 경찰 조직에 다시 수사를 맡기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검찰 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던 것처럼 경찰의 내부 감찰도 경찰 수사에 대한 외부 통제를 대신하기 어렵다. 보완수사권 문제를 검찰과 경찰 사이의 권한 다툼으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당사자가 사라진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장애인 대상 범죄 피해자는 처음부터 모든 사실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게 경제적·정서적으로 종속돼 있거나 보복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진술만 기계적으로 비교하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다. 주변 정황과 디지털 증거, 반복되는 범행의 구조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경찰 수사가 부실하면 피해자는 같은 일을 여러 번 진술해야 한다. 수사기관이 바뀔 때마다 피해 사실을 다시 설명하고, 뒤늦게 발견된 증거가 이미 사라지는 일도 생긴다. 보완수사권 폐지는 검사 한 사람의 권한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가 수사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잃을 수 있는 문제다. 피의자의 권리도 다르지 않다. 경찰이 혐의를 과도하게 구성하거나 불리한 진술만 골라 기록했다면 검사의 재검토 과정에서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보완수사는 유죄 증거를 추가로 찾는 절차에 그쳐서는 안 된다. 경찰 수사가 공판에 넘길 만큼 충분하고 적법한지 다시 확인하는 절차여야 한다. 검사가 기소권을 가진 채 직접 보완수사까지 하면 유죄 판단에 치우칠 위험이 있다. 반대로 기소를 결정하는 검사가 증거의 신빙성과 수사 과정의 문제를 확인할 수 없다면 부실한 경찰 수사가 그대로 재판으로 넘어갈 수 있다. 입법자는 두 위험을 함께 줄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택지는 전면 폐지와 현행 유지뿐이 아니다. 검사의 독자적인 수사 개시는 금지하되 경찰이 송치한 사건 가운데 제한된 범위에서만 직접 보완수사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성폭력과 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 피의자가 구속된 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대규모 민생침해 범죄, 경찰 수사 과정에서 증거 누락이나 인권침해가 의심되는 사건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예외 범위는 법률에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 ‘필요한 경우’처럼 폭넓게 해석될 수 있는 문구를 두면 보완수사권이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우회적으로 복원하는 통로가 된다. 수사 범위도 경찰이 송치한 범죄사실과 기본적 사실관계가 같은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압수수색과 같은 강제수사에는 공소청장이나 상급자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보완수사의 사유와 범위, 조사 내용은 모두 기록에 남겨 피의자와 변호인이 다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사 기간과 횟수도 제한해야 한다. 위법한 별건 수사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하고 수사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장치도 필요하다. 전면 폐지를 선택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통제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까지 공소청에 보내 다시 검토받도록 하는 전건송치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모든 사건을 공소청이 다시 심사하면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기록을 형식적으로 훑는 데 그칠 가능성이 있다. 전건송치는 중대범죄와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부터 적용하거나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한 사건을 중심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의 논의도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당은 보완수사권 폐지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검찰 기득권 옹호나 개혁 후퇴로 몰아서는 안 된다. 수사 실무를 경험한 법조인과 범죄피해자 지원단체가 지적하는 문제는 검찰 조직을 지키자는 요구가 아니다. 경찰 수사가 잘못됐을 때 피해자가 기댈 절차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경찰의 부실수사 사례를 검찰권 복원의 근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경찰이 잘못했다고 과거 검찰의 수사권 독점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보완수사권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려면 별건 수사와 과잉수사를 막을 구체적인 통제 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검찰개혁은 검찰 조직에 대한 응징이 아니다. 경찰에 더 많은 권한을 주는 일도 아니다. 잘못된 수사를 줄이고 피해자와 피의자의 권리를 지키는 형사절차를 만드는 일이다. 수사기관의 권한은 어느 기관이 더 신뢰받느냐에 따라 배분할 일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 모두 잘못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서로의 판단을 검증하고 법원과 변호인이 그 과정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 기관의 선의를 기대하는 대신 권한의 범위와 책임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 정치권은 공소청과 중수청 출범일을 정해 놓고도 보완수사 구조를 두고 합의하지 못했다. 시행일이 다가온다는 사정이 졸속 입법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입법이 늦어진 책임을 피하려고 충분한 검토 없이 전면 폐지나 현행 유지를 선택한다면 그 부담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국민이 떠안는다. 검찰개혁의 성과는 검사에게서 몇 개의 권한을 빼앗았는지로 평가할 수 없다. 경찰의 부실수사가 줄었는지, 억울하게 묻힌 사건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지, 무고한 사람이 잘못 기소되는 일을 막았는지로 평가해야 한다. 보완수사권 공방에서 기준이 돼야 할 사람은 검사도 경찰도 아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일상과 명예, 때로는 삶 전체가 달라지는 피해자와 피의자다. 정치권이 그들의 권리를 외면한 채 수사기관의 권한만 나눈다면 검찰청의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둘로 나누더라도 개혁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다.
2026-07-16 1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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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독일도 축구협회 수사…월드컵 뒤 불거진 '운영 비리 의혹'
[경제일보] 월드컵이 한창인 시기에 한국과 독일 축구협회가 나란히 수사 문제로 뉴스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고발 사건이 서울경찰청으로 넘어갔다. 독일에서는 유로2024 개최도시 공무원들에게 티켓과 숙박 혜택이 제공됐다는 의혹으로 수사당국이 독일축구협회(DFB) 본부와 지방 행정기관을 압수수색했다. 두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과 홍명보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협회 내부 절차와 권한 배분이 제대로 지켜졌는지가 쟁점이다. 독일은 국제대회 운영 과정에서 개최도시 관계자들이 직무와 관련해 부당한 혜택을 받았는지를 들여다보는 수사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대표팀 운영과 국제대회 개최를 맡는 공적 조직이라는 점에서, 두 사건 모두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 문제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 한국은 감독 선임 과정이 수사 대상 서울 종로경찰서는 1일 대한축구협회 관련 고발 사건 8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이송했다. 종로서는 2024년 7월부터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이임생 전 기술총괄이사 등을 상대로 제기된 고발 사건을 맡아 왔다. 고발인들은 클린스만 감독과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협회 고위 관계자들이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업무방해와 업무상 배임, 강요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홍 감독은 고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수사보다 먼저 행정 절차에서 논란이 커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특정감사에서 감독 선임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도 지난 4월 축구협회가 문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협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홍 감독 선임 과정에서 후보 선별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고 봤다. 축구협회는 항소했다. 다만 행정법원의 판단이 형사책임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가 실제로 정해진 권한에 따라 운영됐는지, 특정 인사가 내부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는지, 감독 계약과 예산 집행 과정에서 협회에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따로 살펴야 한다. 서울청은 종로서가 확보한 관계자 진술과 협회 회의 자료, 문체부 감사 기록, 행정소송 자료를 검토한 뒤 추가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 독일은 유로2024 티켓·숙박 혜택 수사 독일에서는 유로2024 대회 운영이 수사 대상에 올랐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범죄수사국과 보훔 검찰청은 1일 프랑크푸르트의 DFB 본부와 겔젠키르헨 등 유로2024 개최도시 행정기관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당국은 유로2024 대회운영사인 ‘유로2024 GmbH’ 관계자가 개최도시 공무원들에게 국가대표 경기 티켓과 호텔 숙박 혜택을 제공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개최도시 공무원이 대회 운영과 관련한 업무를 맡은 상태에서 이런 혜택을 받았다면 직무 관련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베를린·뮌헨·함부르크·슈투트가르트·도르트문트·뒤셀도르프 등 유로2024 경기가 열린 도시의 행정기관도 포함됐다. 수사당국은 혜택이 누구에게 어떤 절차로 제공됐는지, 대회운영사 내부에서 이를 승인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DFB 본부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지만, DFB 자체나 소속 임직원이 직접 피의자로 지목된 것은 아니다. DFB는 대회운영사 관련 자료 확보를 위해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 대표팀은 월드컵 32강에서 탈락한 직후여서 수사 소식이 더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대표팀 경기력과 유로2024 운영 의혹은 별개의 사안이다. 하나는 감독·선수·전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대회 운영과 공무원 윤리의 문제다. ◆ 성적과 수사는 별개지만, 신뢰는 함께 흔들린다 한국과 독일 모두 대표팀 성적 논란이 협회 운영 문제와 겹쳤다. 한국에서는 감독 선임 과정이 오랫동안 논란이 됐고, 독일에서는 월드컵 조기 탈락 뒤 유로2024 수사가 시작됐다. 경기 결과가 수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감독 선임 절차가 문제가 됐다고 해서 경기 성적이 자동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니고, 월드컵에서 졌다고 해서 대회 운영 비리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팬들은 대표팀과 협회를 따로 보지 않는다. 대표팀이 부진한데 협회 운영을 둘러싼 의혹까지 나오면, 경기력에 대한 불만은 조직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기 쉽다. 한국 수사는 감독 후보를 누가 어떤 절차로 추천했는지, 전력강화위원회와 이사회가 실제로 권한을 행사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독일 수사는 개최도시 관계자들이 받은 티켓과 숙박 혜택이 공식 업무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는지, 대회운영사와 행정기관 사이에 부당한 거래가 있었는지를 가리는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독일의 수사는 출발점도, 적용 법리도 다르다. 그러나 축구협회가 공적 책임을 가진 조직이라는 점은 같다. 대표팀 감독을 뽑는 절차와 국제대회를 운영하는 기준이 불투명하면, 경기장 밖의 문제가 경기장 안의 성과만큼 오래 남는다.
2026-07-02 10: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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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없는 선거가 남긴 상처, 음모론과 정략을 넘어 시스템 개혁이 먼저다
[경제일보] 민주주의는 투표로 시작해 투표로 완성된다. 국민이 한 표를 행사하는 순간 주권은 현실이 되고, 선거는 국민의 뜻을 국가 운영에 반영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신성한 절차가 된다. 그렇기에 선거는 무엇보다 공정해야 하며, 유권자가 불편함 없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이른바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다.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장시간 대기하거나 투표에 차질을 빚었고, 개표 과정에서도 혼란이 발생해 개표소가 봉쇄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선거 관리의 기본 중 기본인 투표용지 수급과 운영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국민 앞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선거의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불편과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명백한 행정 실패이자 관리 부실이다. 국민이 가장 분노하는 것은 실수 자체보다도 반복되는 무능과 무책임이다. 선관위는 그동안 각종 채용 비리 논란과 관리 부실 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 왔다. 그럼에도 조직 혁신과 내부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이번 사태를 통해 그 허술한 관리 체계가 다시 드러났다. 선거 관리 기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야가 오는 18일 본회의에서 선관위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은 그런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정조사는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위한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국민의 의혹을 해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헌법적 장치여야 한다. 이번 기회에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사전 대응 체계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잘못이 확인된다면 관련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국정조사의 목적이 정치 공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전국 재선거' 주장이나 이를 둘러싼 정략적 논쟁은 사태의 본질을 흐릴 우려가 있다. 선거 관리의 부실을 비판하는 것과 선거 결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명확한 증거와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선택을 통째로 부정하는 주장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수 있다. 특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정치적 선동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쟁이 아니라 진실이며, 음모론이 아니라 제도 개선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출발점은 같아야 한다. 국민의 투표권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선거 관리의 허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보장하되 책임성은 강화하고, 선거 운영 전반에 대한 점검과 디지털 관리 체계 개선, 위기 대응 매뉴얼 정비 등 근본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 공자는 "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역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선거는 국민과 국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다. 그 약속이 흔들릴 때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를 정치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하는 것 또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음모론도, 정략적 구호도 아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 있는 사과, 그리고 국민이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는 선거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사태가 남긴 교훈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2026-06-17 09: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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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한 선거, 정신 나간 선관위
민주주의는 선거로 시작해 선거로 완성된다. 주권을 가진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평화적으로 표출하고, 국가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엄숙하게 확인하는 성스러운 과정이 바로 선거다. 그렇기에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나 행정 절차가 아니다. 국가의 정당성을 담보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떠받치는 가장 견고한 기둥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도저히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있어서는 안 될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서울 송파구와 광진구를 비롯한 일부 수도권 핵심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나 투표가 중단되거나 무한정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행정 시스템과 정보통신 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선거 역사에서 이처럼 황당하고 부끄러운 오점이 언제 있었던가. 소식을 접한 많은 국민은 처음엔 제 귀를 의심했다. 선거 당일 흉흉하게 떠도는 가짜뉴스가 아닐까 생각했을 정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신성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일터와 가정에서 시간을 쪼개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투표용지가 없다는 황당한 안내를 받으며 수십 분, 길게는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다. 참다못한 일부 유권자들은 결국 소중한 한 표를 포기한 채 분통을 터뜨리며 발길을 돌렸다. 국가가 국민의 참정권을 폭력이나 강압이 아닌, ‘준비 부족’이라는 한심한 행정 무능으로 박탈한 셈이다.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사태가 커지자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내놓은 해명은 더욱 가관이다. 선관위 측은 “예상보다 투표율이 너무 높게 나와 현장에서 수요를 맞추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해명은 법치국가의 기본 상식은 물론이고 보통의 일반 국민이 가진 보편적 이성으로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은 선거 행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변수다. 더욱이 선거관리라는 고유의 목적을 지닌 헌법기관의 핵심 업무는 바로 그러한 모든 예외적 상황과 최악의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이다. 비가 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상식이듯, 투표율이 100%에 육박하더라도 모든 유권자가 표를 던질 수 있도록 충분한 투표용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선거 행정의 초보적인 의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미 확정된 유권자 명부가 존재한다. 어느 동네, 어느 투표소에 몇 명의 유권자가 적을 두고 있는지 선관위는 시스템을 통해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특정 지역 투표소에 유권자 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투표용지만 공급했다는 사실은 어떤 핑계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명백한 직무유기다. 일각에서 나오는 “남아서 폐기되는 투표용지의 예산을 아끼려다 벌어진 일”이라는 식의 변명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단언컨대, 투표지 몇 장을 폐기하는 비용보다 단 한 명의 국민이 가진 참정권의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무겁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현장 공무원 몇 명의 행정 착오나 실수가 아니다. 국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헌법상 참정권이 국가기관에 의해 침해당한 중대한 민주주의 훼손 사건이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투표권은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통제하고 참여하는 유일무이한 열쇠다. 한 표의 가치는 곧 국민주권의 크기와 같다. 그런데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감시해야 할 선관위가 오히려 부실한 준비로 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가로막고 방해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웃어넘길 해프닝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반복되는 부실 관리가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는 결과의 공정함보다 과정의 투명성과 절차적 신뢰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리 완벽하고 공정한 개표 결과가 도출된다 한들, 국민이 그 과정을 믿지 못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기초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선관위가 보여준 행보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지난 선거에서의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부터 시작해 투표지가 외부로 반출되는 인재가 발생했고, 조직 내부적으로는 고위직 자녀들의 특혜 채용 비리 의혹까지 터져 나오며 국민적 신뢰를 이미 바닥까지 잃은 상태였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서 또다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대형 사고가 터지니, 사회 일각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물론 필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제기되는 맹목적인 부정선거 음모론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건강한 민주주의는 차가운 사실과 객관적인 증거 위에서만 올바르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점은, 선관위가 보여준 연속적인 실책과 안일함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의혹의 가짜뉴스들이 자라날 비옥한 토양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거 없는 의혹을 양산하는 세력도 문제지만, 그 의혹에 땔감을 던져주며 빌미를 제공한 국가기관의 책임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고 역설했다. 거대한 댐이 무너지는 것은 정밀한 균열이 아니라 사소한 틈새 하나를 방치했을 때다. 투표용지를 인쇄하고 수량을 맞춰 현장에 배부하는 일은 거창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나 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다. 선거 행정의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 가장 기초적인 기본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논어』에서도 공자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그 직분에 있지 않은 것과 같다”고 꾸짖었다. 막강한 권한과 독립성에는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 헌법이 엄격하게 독립성을 보장해 준 초연적 기관이다. 권한이 강한 만큼 그들이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은 일반 행정 부처보다 몇 배는 더 무겁고 철저해야 마땅하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가 관례대로 사과문 한 장 발표하고 적당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뭉개고 끝낼 사안이 결코 아니다.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도대체 어느 선에서 어떤 기준으로 투표용지 발행 수량을 제한했는지, 현장에서 용지가 부족하다는 비명이 터져 나왔을 때 왜 제때 보고와 추가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비상 대응 매뉴얼은 작동했는지 전 과정을 국민 앞에 한 치의 의혹도 없이 낱낱이 밝혀야 한다. 아울러 이번 기회에 선관위의 운영 시스템 전반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구조적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견고한 방패 뒤에 숨어, 감사원의 감사를 거부하거나 외부의 정당한 비판을 무력화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지금의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구조를 전면 점검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독립기관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진짜 적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그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반성하지 않고, 결국 같은 실수를 부끄러움 없이 반복하는 나태함이다. 신뢰라는 탑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눈물겹게 쌓아 올려야 하지만, 무너져 내리는 것은 단 하루, 한순간의 방심으로 족하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울린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순진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이 썩어가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선관위는 이번 참사를 계기 삼아 조직의 명운을 걸고 뼈를 깎는 자기 혁신과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유권자의 소중한 참정권을 지키고 부서진 선거의 신뢰를 간신히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거창한 구호나 헌법 조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줄을 서서 내 표를 기다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참정권을 단 하나도 흘리지 않고 빈틈없이 받아내 지켜내는 현장의 땀방울에서 시작된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의 치욕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대한민국 유권자들 역시 선관위의 향후 행보를 두 눈 부릅뜨고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2026-06-04 07:5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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