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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7000만 유로 딜' 마침표…보령, 항암제 글로벌 사업 본격화
[경제일보] 보령이 글로벌 빅파마 사노피로부터 인수한 항암제 ‘탁소텔’의 글로벌 판매를 본격 개시하며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 유통을 넘어 생산과 허가, 공급망까지 책임지는 ‘글로벌 필수의약품 사업자’로의 도약을 선언한 것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보령은 사노피와 체결한 탁소텔 글로벌 비즈니스 인수 계약을 최종 종결하고 이달부터 해당 제품의 매출을 자사 실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번 계약으로 보령은 한국과 중국, 독일, 스페인, 중동 및 남미 등 19개 국가·지역에서 탁소텔의 판권과 유통권, 허가권, 생산권, 상표권을 포함한 사업 전반을 확보했다. 최종 계약 규모는 약 1억7000만 유로(약 2700억원)다. 당초 최대 1억7500만 유로로 합의됐지만 국가별 재고자산과 이전 시점의 공급 상황 등을 반영해 약 500만 유로가 감액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업계에서는 이 같은 가격 조정이 글로벌 의약품 사업 인수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클로징 조정 메커니즘’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거래는 지난해 보령과 사노피 간 전략적 협의를 통해 시작됐다. 사노피는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면역·표적치료제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기존 세포독성 항암제 사업 일부를 정리했고 보령은 안정적 수요 기반을 갖춘 필수의약품을 확보하는 기회로 판단해 인수에 나섰다. 특히 도세탁셀 성분은 특허 만료 이후에도 전 세계적으로 표준 치료에 포함돼 있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품목으로 평가된다. 탁소텔은 1995년 유럽에서 처음 허가를 받은 뒤 1996년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한 오리지널 항암제로 유방암과 비소세포폐암, 전립선암, 위암, 두경부암 등 다양한 암종 치료에 활용된다. 수술 전후 보조요법뿐 아니라 전이성·진행성 암의 1차 치료에도 사용되며 면역항암제 및 표적치료제와의 병용요법에서도 핵심 약제로 자리 잡고 있다. 도세탁셀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의약품 목록에도 포함돼 있다. 보령은 이번 인수를 통해 단순 제네릭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공급망 기반 사업자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게 됐다. 앞서 2020년에는 일라이 릴리의 항암제 ‘젬자’, 2022년에는 ‘알림타’의 국내 사업을 각각 인수하며 항암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왔다. 다만 이들 거래는 특정 지역 중심의 사업 인수였던 반면 탁소텔은 다수 국가를 포함한 글로벌 사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국내 제약사의 ‘역할 변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에는 글로벌 제약사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글로벌 자산을 직접 인수해 운영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이다. 특히 생산과 품질 관리까지 직접 책임지는 구조는 규제 대응 역량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보령 관계자는 “이번 인수는 단일 제품 확보가 아니라 글로벌 필수 항암제 공급 체계에 편입됐다는 의미”라며 “향후 주요 국가에서의 공급 안정성과 시장 점유율 확대를 동시에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보령의 과제로 ‘공급망 관리’와 ‘가격 경쟁력 확보’를 꼽는다. 세포독성 항암제는 이미 제네릭 경쟁이 치열한 영역인 만큼 안정적 생산과 유통 효율성이 수익성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시에 각국 규제기관의 품질 기준을 충족하는 것도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2026-06-02 10: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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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의 집념에서 글로벌 혁신 무대로…한미약품 성장과 도전의 역사
[경제일보] 늦은 밤까지 연구소 불이 꺼지지 않는 회사. 한미약품을 두고 업계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국내 제약사 다수가 복제약 판매와 영업 경쟁에 힘을 쏟던 시절, 한미약품은 연구개발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다시 투입하는 길을 택했다. 당장 숫자만 보면 부담이 큰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한미약품을 한국 제약 산업에서 연구개발 중심 기업의 상징으로 올려놓았다. 한미약품의 역사는 ‘잘 팔리는 약’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약’을 만들겠다는 고집의 기록이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임성기 회장이 있다. 그는 제약 산업이 단순 제조업에 머물러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고 봤다. 남이 만든 약을 따라 생산하는 방식만으로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기술을 직접 만들고 특허를 확보해야 기업의 미래가 열린다는 생각은 당시 업계 분위기와는 결이 달랐다. 초기의 한미약품은 생산과 영업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연구 조직을 꾸준히 키웠다. 연구개발 투자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사는 자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후 한미약품은 개량신약과 복합제, 자체 기술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혔다. 단순히 기존 의약품을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자의 복용 편의성과 처방 효율성을 높이는 제품을 내놓으며 존재감을 키웠다. 국내 처방 시장에서 한미약품을 대표하는 제품군도 적지 않다. 고혈압 치료제 ‘아모잘탄 패밀리’,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로수젯’ 등은 오랜 기간 안정적인 매출 기반 역할을 해 왔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기보다 여러 전문의약품이 고르게 실적을 떠받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은 한미약품의 체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에도 주력 처방 제품군이 실적을 지탱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한미약품이 업계 안팎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대형 기술수출 계약이었다. 글로벌 제약사와의 협업 계약은 국내 제약사도 세계 시장에서 기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 일부 계약은 조정과 반환 과정을 겪었지만, 한국 제약 산업 전체에 남긴 메시지는 분명했다. 국내 연구소에서 나온 기술이 글로벌 빅파마의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한미약품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는 플랫폼 기술이다. 약효 지속 시간을 늘리거나 투약 편의성을 높이는 기술은 신약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한미약품은 장기 지속형 기술 등 자체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양한 치료 영역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 왔다. 하나의 후보물질에만 기대지 않고 기술 기반 회사로 체질을 키워 온 셈이다. 최근 시장의 관심은 비만치료제와 대사질환 파이프라인으로 향한다. 글로벌 제약 시장은 GLP-1 계열 치료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비만 치료가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당뇨·지방간 등 대사질환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미약품 역시 이 흐름에 맞춰 관련 후보물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국내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확보했고, 출시 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미약품이 국산 비만치료제 상용화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에피노페그듀타이드 역시 글로벌 임상이 진행 중이며 향후 데이터 공개가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힌다. 차세대 후보물질도 이어지고 있다. 삼중작용 기전을 활용한 후속 파이프라인은 기존 치료제 대비 효능과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한미약품이 단기 유행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만·대사질환 시장을 장기 성장 축으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항암 분야도 중요한 축이다. 제약 산업에서 항암제 시장은 기술 장벽이 높지만 성공 시 파급력이 크다. 한미약품은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 영역에서도 연구를 이어 왔다. 파이프라인을 다변화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특정 분야 실패 위험을 줄이고 중장기 성장 동력을 여러 갈래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한미약품의 특징이다. 모든 기술을 내부에서 해결하기보다 바이오벤처와 대학, 연구기관,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며 속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외부와 손잡는 능력 역시 경쟁력이 된다. 실적 측면에서도 최근 흐름은 나쁘지 않다. 북경한미 회복세와 기술이전 수익, 주력 전문의약품 판매가 맞물리며 수익성 개선 기대가 나오고 있다. 연구개발비 지출이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본업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시장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한미약품의 경쟁력은 여러 층위에서 나온다. 연구개발 중심 문화, 축적된 임상 경험, 플랫폼 기술, 빠른 의사결정 구조, 안정적인 전문의약품 매출 기반이 맞물려 있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기술로 평가받는 회사’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업주 시절부터 이어진 색채가 지금까지 기업 전반에 남아 있다는 평가다. 과제도 만만치 않다. 신약 개발은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사업이다. 임상 실패 가능성은 늘 존재하고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자본력과 네트워크 격차도 있다. 기술수출 계약이 실제 상업화 성과로 이어지는지, 후속 파이프라인이 꾸준히 이어지는지도 냉정한 검증 대상이 된다. 한미약품은 지금 전통 제약사의 안정적 수익 모델 위에 혁신 기업의 성장성을 더하려는 전환기에 서 있다. 기존 전문의약품 사업에서 현금을 창출하고 이를 미래 파이프라인에 다시 투자하는 선순환을 강화하는 과정이다. 국내 시장 중심 회사에서 글로벌 연구개발 기업으로 보폭을 넓히는 길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임성기 회장의 시대가 한국 제약업계에 연구개발의 필요성을 각인시킨 시기였다면, 지금 한미약품의 과제는 축적된 기술력을 세계 시장의 성과로 연결하는 일이다. 늦은 밤 연구소의 불빛이 글로벌 혁신 신약이라는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업계의 눈길이 모이고 있다.
2026-04-23 07: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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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기업의 꿈에서 글로벌 신약 무대로…유한양행 성장과 도전의 역사
[경제일보] 대한민국 제약 산업을 말할 때 유한양행은 늘 첫머리에 놓인다. 단순히 오래된 회사여서가 아니다. 기업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제약사가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지, 이익과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함께 추구할 수 있는지를 오랜 시간 보여준 기업이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의 역사는 한국 제약 산업의 성장사이자 기업 윤리의 한 장면으로 읽힌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기업의 역할을 남다르게 바라봤다. 산업을 일으켜 나라를 키우고, 번 이익은 사회와 다시 나눠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유한양행은 이런 철학 위에서 세워졌다. 단순히 약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국민 건강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출발부터 결이 달랐다. 초기의 유한양행은 국내 의약품 생산 기반이 취약하던 시절 국민에게 필요한 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수입 의존도가 높고 생산 기술이 부족하던 환경에서 품질 기준을 세우고 제조 역량을 키우는 일은 산업적 의미가 컸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 체계가 확대되면서 제약 산업이 본격 성장하자 유한양행도 생산 기업을 넘어 연구개발 기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한양행을 상징하는 가장 큰 자산은 창업주의 철학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일한 박사는 보유 지분 상당 부분을 사회에 환원했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뿌리내렸다. 국내 대기업 다수가 오너 중심 경영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다른 길이었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라는 인식은 유한양행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국내 시장에서 유한양행은 오랜 기간 안정적인 사업 기반을 다져 왔다.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생활건강 제품까지 고른 포트폴리오를 갖췄고 전국 단위 영업망과 브랜드 신뢰도도 확보했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기보다 여러 사업 축을 통해 안정성을 높여 온 전략이 돋보인다. 대중에게 친숙한 브랜드도 적지 않다. 가정상비약과 건강 관련 제품, 생활밀착형 브랜드를 통해 유한양행은 병원 밖 소비자와도 꾸준히 접점을 넓혀 왔다. 제약사가 처방 시장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민 생활 가까이에서 신뢰를 쌓아 온 사례다. 최근 유한양행의 변화를 이끄는 중심축은 연구개발이다. 과거 국내 제약사의 경쟁력이 생산 능력과 영업력에 있었다면 이제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기준은 신약 파이프라인과 기술력으로 옮겨갔다. 유한양행도 이 흐름에 맞춰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혁신 신약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 사례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다. 국산 항암 신약 가운데 상징성이 큰 성과로 평가받는다. 렉라자는 기술수출과 글로벌 임상,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통해 국내 제약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례로 꼽힌다.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유한양행은 자체 연구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외부 바이오벤처와 대학, 연구기관과 협력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연구 분야가 세분화될수록 모든 역량을 내부에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기술은 함께 개발하고 유망 후보물질은 과감히 도입하는 방식이 글로벌 제약업계의 흐름이기도 하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중요한 과제다. 국내 제약 시장은 인구 구조 변화와 건강보험 재정 통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규모가 크고 성공 신약의 파급력도 훨씬 크다. 유한양행이 기술수출과 해외 파트너십 확대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한양행의 경쟁력은 여러 층위에서 나온다. 오랜 업력에서 비롯된 신뢰도, 전문경영인 체제의 안정성, 탄탄한 기존 사업 기반, 연구개발 투자 여력,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는 쉽게 따라 만들기 어렵다. 창업주의 정신이 기업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경영 체계에 녹아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과제도 있다. 신약 개발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시장에서는 자본력과 임상 경험의 격차도 존재한다. 국내 시장 성장세 둔화, 우수 연구 인력 확보 경쟁, 규제 환경 변화 역시 꾸준히 관리해야 할 변수다. 유한양행은 전통 제약사의 안정성과 연구개발 기업의 성장성을 함께 갖추려는 길을 걷고 있다. 기존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이를 혁신 신약과 미래 파이프라인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국내 시장 중심 회사에서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유일한 박사의 시대가 의약품 보급과 기업 윤리의 기초를 세운 시기였다면 지금 유한양행의 과제는 한국 제약 기술의 경쟁력을 세계 시장에서 증명하는 일이다. 민족기업의 꿈에서 출발한 이 회사가 글로벌 신약 무대에서 어떤 다음 장면을 만들어낼지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2026-04-22 16:4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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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불빛에서 글로벌 신약 무대로…종근당 성장과 도전의 역사
[경제일보] 대한민국 제약 산업의 흐름을 짚어보면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전쟁의 상흔이 짙던 시절 필수 의약품을 공급하던 기업에서 출발해 오늘날 연구개발형 제약사로 자리 잡은 종근당이다. 치료제가 부족하던 시대에는 공급 책임을 맡았고 산업이 성장하던 시기에는 국산 기술 축적에 힘을 보탰으며 경쟁 무대가 세계로 넓어진 지금은 신약 개발과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종근당의 발자취는 한국 제약 산업의 성장 과정과 함께 이어져 왔다. 출발점에는 창업주 이종근 회장이 있다. 그는 해방 직후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려면 안정적인 의약품 생산 기반부터 갖춰야 한다고 봤다. 수입 의존도가 높고 생산 시설도 부족하던 시절 국내에서 직접 약을 만들고 기술을 쌓아야 한다는 판단은 단순한 사업 계획을 넘어 시대적 요구에 가까웠다. 종근당이라는 이름에도 사람의 건강을 받든다는 뜻이 담겼다. 초기의 종근당은 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곧 경쟁력이던 시절을 지나야 했다. 원료와 설비, 기술이 모두 부족했지만 공장을 세우고 품질 기준을 높이며 국산 제약 산업의 토대를 다졌다. 국민 소득이 늘고 의료 서비스가 확장되면서 제약 산업도 단순 제조업에서 기술 산업으로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고 종근당 역시 그 변화에 맞춰 방향을 바꿨다. 전환점은 연구개발 투자 확대였다. 복제약 중심 시장에 안주해서는 지속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연구소 기능을 키우고 전문 인력을 확보했다. 단기 실적만 놓고 보면 부담이 큰 결정이었지만 장기 경쟁력은 기술에서 나온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이후 종근당은 개량신약과 퍼스트제네릭, 전문의약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입지를 넓혀 갔다. 국내 시장에서 종근당의 강점은 고른 제품군에 있다. 순환기와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치료제를 비롯해 항생제와 소화기, 면역 분야까지 폭넓은 처방 시장을 확보했다. 특정 품목 하나에 기대지 않고 여러 치료 영역에서 매출 기반을 갖춘 점은 제약 산업 특유의 정책 변수와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힘이 됐다. 의약분업 이후 전문의약품 시장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종근당은 영업력과 제품 경쟁력을 앞세워 외형을 키웠다. 대중에게 익숙한 기업 이미지 역시 종근당의 자산이다. 오랜 기간 이어진 광고와 브랜드 마케팅은 제약사가 병원 안에서만 존재하는 기업이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 있는 산업이라는 인식을 넓혔다. 전문성과 친숙함을 함께 가져간 전략이었다. 물론 제약 산업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약가 인하 정책과 리베이트 규제 강화, 특허 분쟁, 글로벌 경쟁 심화는 업계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성공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임상 실패 한 번이 수년간의 투자를 흔들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종근당 역시 수익성과 연구개발 투자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종근당의 행보는 한층 적극적이다. 단순한 국내 매출 경쟁을 넘어 연구개발 중심 제약사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합성신약과 바이오의약품, 항체 기술, 희귀질환 치료제 등 성장성이 큰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기존 전문의약품 사업에서 확보한 수익을 미래 파이프라인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핵심은 신약 개발이다.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기준은 생산 규모보다 독자 기술과 파이프라인이다. 종근당은 항암·면역·대사질환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후보물질을 확보하고 기술수출과 공동개발 기회를 넓히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성장 폭에 한계가 있는 만큼 세계 시장을 겨냥한 연구개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바이오 분야도 중요한 축이다. 합성의약품 중심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커지면서 생산 기술과 임상 역량, 글로벌 파트너십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 종근당은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신약 등 중장기 과제를 통해 사업 외연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전통 제약사의 경험에 새로운 기술 역량을 더하는 과정이다. 해외 시장 확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제약 시장은 인구 구조와 건강보험 재정 통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규모가 크고 성장 기회도 넓다. 종근당은 완제의약품 수출과 기술 이전, 현지 파트너십 확대를 통해 해외 매출 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다. 연구개발 성과가 해외 시장에서 평가받을수록 기업 가치 역시 달라질 수 있다. 종근당의 강점은 오랜 업력에서 비롯된 신뢰도와 안정적인 전문의약품 매출 기반, 축적된 연구개발 경험, 전국 단위 영업망에 있다. 꾸준한 현금 창출력은 장기 투자가 필요한 제약 산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자산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품질 관리 체계와 브랜드 인지도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으로 꼽힌다. 과제도 적지 않다. 글로벌 빅파마와 경쟁해야 하는 신약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고 연구개발 비용은 계속 커지고 있다. 국내 약가 규제와 시장 포화, 연구 인력 확보 경쟁도 부담이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과거의 성공 공식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종근당이 향하는 방향은 기존 사업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혁신 성과를 더해 글로벌 연구개발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맞춰져 있다. 단순 제조를 넘어 기술 기업으로, 국내 중심 사업에서 세계 시장형 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이다. 이종근 창업주의 시대가 의약품 국산화의 문을 연 시기였다면 지금 종근당의 과제는 한국 제약 기술의 수준을 세계 시장에서 입증하는 일이다. 실험실의 작은 불빛에서 시작된 도전이 글로벌 신약 무대에서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26-04-21 09: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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