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3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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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휴전을 말하지만, 아무도 끝내지 못하는 이유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는 일이 더 어렵다. 포성이 울릴 때는 결심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멈출 때는 계산이 필요하다. 무엇을 얻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여기서 물러서면 누가 약해 보이는지, 끝낸 뒤 질서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까지 따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전쟁은 이기지 못해서 길어지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방법을 찾지 못해 길어진다. 지금의 이란 전쟁이 그렇다. 미국과 이란은 휴전 협상에 실패했고, 그 직후 미국은 이란 항만을 겨냥한 해상 봉쇄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겉으로 보면 대화가 깨지고 다시 힘이 나선 모양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 보면, 이것은 승리를 향한 돌진이라기보다 출구를 찾지 못한 강대국 정치의 답답한 우회에 가깝다. 총알보다 계산이 앞서고, 전장보다 시장이 먼저 흔들리는 전쟁에서 모두가 휴전을 말하면서도 누구 하나 먼저 끝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래 휴전은 평화를 위한 문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휴전은 대개 체면의 문제와 맞물린다.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은 양보한 것처럼 보이고, 먼저 한발 물러서는 쪽은 밀린 것처럼 비친다. 더구나 이번 충돌은 영토 몇 곳의 문제가 아니다. 핵 문제, 제재, 해상 통제권, 동맹의 신뢰, 중동 질서의 주도권이 한데 얽혀 있다. 하나를 접으면 다른 하나가 흔들린다. 이러니 휴전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진퇴양난이다. 손자는 말한다. “군대는 국지대사요, 사생지지요, 존망지도라.” 전쟁은 나라의 중대한 일이며, 살고 죽는 길목이고, 흥하고 망하는 갈림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쟁의 진짜 무게는 공격의 순간보다 종료의 순간에 더 무겁게 실린다. 시작할 때는 명분이 사람을 밀어붙이지만, 끝낼 때는 책임이 사람을 붙잡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오늘의 전쟁이 더 이상 전선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이 봉쇄를 예고하자 유가가 뛰고, 선박은 항로를 다시 계산하고, 시장은 위험을 가격에 반영했다. 미사일 한 발의 충격은 화면을 흔들지만, 해협의 불안은 세계 경제 전체를 흔든다. 호르무즈 해협은 단지 지도가 표시한 좁은 바닷길이 아니다. 세계의 기름값과 물가, 금리와 심리를 흔드는 동맥이다. 그런 곳에서 누구도 쉽게 결전을 택할 수 없다. 이긴 쪽도 상처를 입고, 버틴 쪽도 대가를 치른다. 양패구상의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휴전은 필요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휴전을 위한 정치적 결단은 더 어려워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베트남의 보응우옌잡(武元甲) 장군이 남긴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적이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 적이 생각하지 않는 장소에서, 적이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이라 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전장의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정면 충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방식을 뒤틀어 전쟁의 판 자체를 바꿨다. 오늘의 호르무즈 해협이 바로 그런 전장이다. 군함과 전투기가 맞서는 공간이지만, 실제 승부는 해상 봉쇄라는 방식, 에너지라는 대상, 그리고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장에서 갈린다. 총을 쏘지 않아도 세계 물류를 흔들 수 있고, 전투를 하지 않아도 상대의 비용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의미의 전투가 아니라, 흐름을 겨냥한 전쟁이다. 보응우옌잡 장군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전쟁은 이미 “적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중동의 주요 국가들이 신중한 것도 같은 이유다. 지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총성 자체만이 아니다. 전쟁이 길어졌을 때 닥칠 유가 급등, 물류 차질, 금융 불안, 그리고 자국 발전 전략의 후퇴다. 싸우지 않는 것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싸우는 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전쟁은 적을 제압하는 문제이기 전에, 자기 손실을 통제하는 문제다. 노자는 “지지자불태(知止者不殆)”라 했다. 멈출 줄 아는 자는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국제정치가 보여주는 장면은 정반대다. 모두가 멈춰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는 합의하지 못한다. 원칙 없는 강경론은 사태를 키우고, 계산 없는 유화론은 더 큰 불안을 부른다. 결국 필요한 것은 허세가 아니라 질서이며, 감정이 아니라 원칙이다. 전쟁을 끝내는 힘은 더 센 폭격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더 늦기 전에 손실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나온다. 전쟁을 오래 끌수록 강해지는 국가는 드물다. 대개는 시장이 먼저 지치고, 국민이 먼저 흔들리며, 외교가 먼저 빚을 진다. 그런 점에서 지금 중동의 위기는 군사 충돌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정치의 부재가 부른 위기다. 휴전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체면을 세우면서도 물러설 수 있는 최소한의 질서를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하다. 모두가 휴전을 말하지만 아무도 끝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그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포성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끝은 언제나 상식과 원칙이 결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전쟁은, 누가 더 강한가가 아니라 누가 더 다른 방식으로 싸우는가에 의해 이미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
2026-04-14 08:5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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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60% 시대'의 경고, 얄팍한 '예산 만능주의'를 경계한다
[경제일보] 대한민국 국가채무의 시계가 가파르게 돌고 있다. 최근 발표된 2025 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국가채무(D1)는 1천304조 5천억 원을 기록했다. 1년 새 무려 129조 원이 늘어난 수치로, 이는 건국 이래 최대 폭의 증가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30년 우리나라의 일반정부부채(D2)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64.3%에 달할 것이라 경고했다. 불과 반년 전 전망치를 5%포인트 이상 끌어올린 수치다. 일본이나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부채 비율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과 대조를 이루며, 우리 재정의 ‘나 홀로 악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언론인으로서 40여년 우리 경제의 영욕을 지켜본 필자는 현재의 상황을 단순히 ‘숫자의 위기’로만 보지 않는다. 진짜 위기는 국가 채무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당국의 ‘심리적 안이함’에 있다. 중동 전쟁 등 대외적 악재로 인해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모든 난관을 ‘추가경정예산(추경)’이라는 마약 같은 처방으로 해결하려는 ‘예산 만능주의’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혜를 담은 서경(書經)》에는 ‘인불상(忍弗祥)’이라는 말이 나온다. 상서롭지 못한 일을 억지로 참지 말고 경계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뒤에 올 재앙을 참고 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지금 정치권이 쏟아내는 선심성 예산과 추경론은 당장의 고통을 잊게 하는 진통제일 뿐, 미래 세대의 곳간을 헐어 쓰는 ‘세대 간 도둑질’에 다름 아니다. 재정 건전성은 국가 안보의 마지막 보루다. 국가 부채비율이 60%를 넘어서면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체급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신용등급 강등은 외자 유출과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민생 경제를 더욱 도탄에 빠뜨리는 악순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채무의 늪’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가. 첫째, ‘재정준칙’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곳간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고 밥을 짓는 이의 선의(善意)에만 의존하는 정치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재정준칙을 법으로 명시하여,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나라 살림의 원칙을 지켜내야 한다. 둘째, 지출 구조의 전면적인 ‘제로 베이스(Zero-Base)’ 재검토가 필요하다.관행적으로 집행되던 보조금,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복지 포퓰리즘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지나친 예산 투입은 오히려 시장의 자생력을 해치고 관료주의만 비대하게 만든다. 셋째, 경제난 해결의 해법을 ‘정부 지출’이 아닌 ‘규제 혁파와 민간 활력’에서 찾아야 한다.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예산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발상은 낡은 패러다임이다. 정부가 돈을 쓰기보다 민간 기업이 돈을 쓸 수 있도록 규제의 모래주머니를 제거해 주는 것이 진정한 상책(上策)이다. 기업의 설비투자와 R&D 투자가 활성화되면 GDP라는 ‘모수(母數)’가 커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채무 비율은 안정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공짜 점심은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추경의 단맛’은 훗날 우리 자식들이 갚아야 할 ‘부채의 쓴맛’으로 돌아올 것이다. 유방의 책사 장량이 말했듯, ‘충언역이(忠言逆耳)’바른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다. 재정 파탄의 경고음을 ‘비관론자의 기우’로 치부하지 말라. 40년 전 우리가 겪었던 뼈저린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가 재정이 무너진 나라에는 미래도, 자존심도 없다. 이제는 빚으로 연명하는 ‘채무 국가’의 길을 멈추고, 뼈를 깎는 자강(自强)의 길로 들어서야 할 때다. 정부와 정치권은 ‘쉬운 길’인 추경의 유혹을 뿌리치고, ‘옳은 길’인 재정 정상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가채무의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26-04-12 19: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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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채무 1300조, 재정의 기초 다시 세우자
[경제일보] 국가 재정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2년 연속 100조 원대 적자, 1300조 원에 달하는 국가 채무. 여기에 중동발 전쟁 여파로 26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다. 벌써부터 하반기 추가 추경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나라 살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제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지금의 재정 운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한 적자 규모가 아니다. ‘습관화된 적자’와 ‘명분 없는 지출’이 결합돼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추경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출이 철저히 전쟁 대응과 민생 안정에 집중되지 않고, 과거처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누수된다면 이는 재정이 아니라 ‘분배 정치’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을 더 쓰는 기술이 아니라, 돈을 제대로 쓰는 원칙이다. 무엇보다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모든 부처와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효과가 불분명한 보조금, 선심성 지역 사업, 중복된 정책은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작은 구멍이 큰 배를 가라앉힌다”는 말처럼, 사소해 보이는 비효율이 누적될수록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성역 없는 구조조정 없이는 어떤 재정 건전화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동시에 재정 규율을 제도화해야 한다. 법으로 정해진 지출 한도와 국가채무 관리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이를 어길 경우 자동으로 지출을 조정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정은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기반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출이 느슨해지고, 위기가 닥치면 빚으로 메우는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미래 세대는 그 대가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과거 다른 나라들은 위기 앞에서 훨씬 더 냉정했다. 1990년대 재정 위기에 직면했던 캐나다는 대대적인 지출 삭감과 공공부문 개혁을 단행했다. 부처별 예산을 최대 20%까지 줄이고, 불필요한 기능은 과감히 폐지했다. 그 결과 만성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독일 역시 ‘부채 브레이크’ 제도를 도입해 국가 채무 증가를 헌법적으로 제한했다. 그 원칙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지켜졌고, 재정 신뢰도를 높이는 기반이 됐다. 반면 재정 규율을 놓친 나라들의 말로는 뼈아프다. 남유럽 국가들은 경기 부양을 명분으로 지출을 늘리다 결국 국가 신용 위기를 맞았고, 혹독한 긴축과 사회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그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안심할 수 없다. 위기는 언제나 ‘아직은 괜찮다’는 안일함에서 시작된다. 결국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전쟁 추경은 철저히 목적 예산으로 한정하고 단 한 푼의 정치적 유입도 차단해야 한다. 둘째, 모든 재정 사업에 대한 전면 재평가를 통해 구조적 지출을 줄여야 한다. 셋째, 법과 제도로 재정 규율을 고정시켜 정치의 개입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성장 기반 확충을 통해 세입을 늘리는 중장기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성장 없는 긴축은 또 다른 침체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노자는 “다스림이 어지러운 것은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民之難治 以其上之有為)”라고 했다. 재정이 흔들리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쓰고 싶은 욕망이 원칙을 앞설 때 국가는 균형을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더 단단한 절제다. 재정은 국가의 마지막 보루다. 이 보루가 무너지면 어떤 정책도, 어떤 성장 전략도 의미를 잃는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인기 없는 길일지라도 지속 가능한 길이다. 더 늦기 전에, 재정의 기초를 다시 세워야 한다.
2026-04-07 1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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