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총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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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주차비·출장비도 이자"…고금리 차량담보대출 주의보
[경제일보] 금융감독원이 고금리 변종 차량담보대출에 대한 소비자 주의를 당부했다. 대부업자가 주차비와 출장비, 수수료 등 명목으로 요구하는 비용은 모두 이자에 포함되는 만큼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채무자의 차량을 담보로 확보한 뒤 법정이자를 초과하는 고금리를 받는 변종 불법사금융 신고가 총 12건 접수됐다. 월별로는 지난 1월 1건, 3월 2건, 4월 1건, 5월 4건, 6월 4건이다. 금감원은 불법사금융 범죄가 금융소비자를 기망하는 형태로 진화하면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 소비자경보를 통해 유의사항과 대응요령을 안내했다. 불법 차량담보대출은 외형상 일반 차량담보대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금리 불법사금융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업자 등이 오토바이나 자가용 등을 인도받아 직접 점유하는 방식으로 담보를 확보한 뒤 각종 명목의 부대비용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일부 업자는 할부·리스차량으로도 담보대출이 가능하다고 소비자를 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할부차량은 피해자 소유인 경우에도 저당권자인 할부금융회사 동의 없이 담보로 제공하거나 인도하면 저당목적물 은닉에 해당할 수 있다. 리스차량은 리스회사 소유이기 때문에 담보 제공 자체가 불가능하다. 고금리 수취 방식도 다양했다. 대부업자는 약정이자와 별도로 주차비와 출장비, 수수료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부업법상 명칭과 관계없이 대부와 관련해 대부업자가 청구한 비용은 모두 이자에 포함된다. 등록대부업자도 연 이자율 20%를 초과해 이자를 받을 수 없다. 연 이자율이 60%를 초과하면 원금과 이자가 모두 무효가 된다. 불법 추심 사례도 확인됐다. 할부 또는 리스차량인 경우 대부업자가 이를 빌미로 "할부금융·리스회사에 알려 고소당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피해자를 협박하는 경우가 있었다. 채무자에 대한 협박이나 공포심·불안감 유발, 무효인 채권에 대한 추심은 불법 채권추심에 해당한다. 담보물을 무단으로 이용한 피해도 발생했다. 대부업자가 채무자 동의 없이 차량을 운행하면서 차량 가치가 하락하고 주정차 위반 과태료와 통행료가 채무자에게 부과되는 사례가 있었다. 피해 대출 규모는 250만원에서 3000만원 수준이었다. 선공제 금액과 출장비·주차비 등 각종 부대비용을 이자로 간주해 산출한 이자율은 27%에서 229%에 달했다. 기간 등이 특정되지 않아 이자율을 산정할 수 없는 1건은 제외됐다. 피해자는 30대가 가장 많았다. 전체 12명 중 30대가 6명으로 절반을 차지했고 60대 2명, 20대·40대·50대가 각각 1명으로 나타났다. 거주지는 경기 5명, 서울 3명, 인천 1명 등 수도권이 대부분이었으며 대구·경남·광주에서도 각 1명씩 피해가 확인됐다. 금감원은 주차비, 출장비, 수수료 등 명칭이 무엇이든 대부업자가 요구하는 비용은 이자에 포함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출 과정에서 부대비용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 법정 최고금리 위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리스·할부차량을 담보로 제공할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채무자가 적법한 권한 없이 리스·할부차량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인도하는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대부업자도 리스·할부차량을 담보로 받으면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 금감원은 관련 판례도 제시했다. 승용차를 담보로 250만원을 대부하면서 선이자 4만원, 담보차량 주차요금 35만원, 출장비 및 이동비 8만원 등 총 47만원을 제외한 사례에서 법원은 출장비와 주차비를 모두 이자로 산정했다. 리스차량을 대부업자에게 담보 제공 명목으로 인도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례도 있다. 할부차량을 담보로 넘겨 자동차 저당권 행사를 방해한 경우에는 권리행사방해죄가 인정될 수 있다. 금감원은 불법 차량담보대출이 의심되면 추가 피해 방지와 피해 구제를 위해 금감원이나 수사기관에 적극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원스톱 종합·전담 지원 시스템을 통해 피해내역 정리, 증빙자료 준비, 신고서 작성, 채무조정, 고용·복지 연계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금감원은 고금리 불법 차량담보대출 신고 건 중 증빙자료가 확보된 건에 대해서는 채무자대리인 선임, 무효확인서 발급 등 조치를 진행하고 있다. 불법사금융 피해에 노출된 경우 금융감독원 1332번으로 신고하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과다채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는 서민금융진흥원이나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상담이 가능하다.
2026-06-25 08: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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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포용금융 15조+α 확대…'농업금융 DNA'로 이재명 정부 금융기조 화답
[경제일보] 농협이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생산적금융 확대 기조에 발맞춰 대규모 금융지원에 나선다. 올해 총 8876억원 규모의 장기연체채권을 소각·감면하고, 향후 5년간 15조원 이상을 서민·농업인·취약계층에 공급하기로 했다. 단순한 일회성 채무조정이 아니라 은행,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 전국 농축협, 농협자산관리까지 참여하는 ‘범농협 포용금융’ 체제로 확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농협중앙회가 이번에 내놓은 방안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오랜 기간 채무 부담에 묶여 있던 취약계층의 재기를 돕는 장기연체채권 소각·감면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5년간 서민금융과 농업인 금융지원을 대폭 늘리는 포용금융 공급 확대다. 농협은 이를 통해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동시에, 농협금융의 다음 성장동력으로 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15일 “장기연체채권 소각과 감면을 통해 오랜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취약계층에게 재기의 희망을 전하는 포용금융을 실천하겠다”며 “앞으로도 범농협 차원의 포용금융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농협의 공익적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8876억 연체채권 정리…취약계층 9만명 재기 지원 이날 업계에 따르면 농협은 올해 총 8876억원 규모의 장기연체채권을 소각하거나 감면한다. 이를 통해 약 9만명의 취약계층이 추심 부담을 덜고 정상적인 금융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장기연체채권 6870억원을 소각한다. 대상자는 약 6만4000명이다. 채권 소각은 단순한 회계상 정리가 아니다. 장기간 상환 능력을 잃은 차주에게 계속 추심이 이어질 경우 경제적 재기는 더 어려워진다. 농협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장기연체채권을 정리해 취약계층의 추심 부담을 면제하고 신용회복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계열별 소각 규모도 구체화했다. NH농협은행이 2870억원, 농축협 상호금융이 1500억원, 농협자산관리가 2500억원 규모의 연체채권을 소각한다. 중앙회와 금융지주 계열사, 지역 농축협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농협 특유의 조직망을 활용한 포용금융 모델로 볼 수 있다. 이와 별도로 고령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보유한 3년 경과 연체채권에 대해서는 2006억원 규모의 원금과 이자를 감면한다. 원금은 최대 90%까지 감면하고, 미수이자는 전액 면제한다. 감면 프로그램은 오는 7월부터 1년간 운영된다. 농협은 약 2만6000명의 취약계층이 금융 부담을 덜 것으로 보고 있다. ◆5년간 15조3000억 공급…서민·농업인 금융지원 확대 이와 함께 농협은 향후 5년간 15조3000억원 규모의 포용금융 지원계획도 추진한다. 은행, 캐피탈, 저축은행 등 농협금융 계열사를 중심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8조5000억원, 서민금융·취약계층 대출 6조8000억원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이 대목은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포용금융 기조와 맞닿아 있다. 고금리와 내수 부진, 자영업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서민과 취약차주의 금융 부담은 커졌다. 특히 제2금융권과 대부업권으로 밀려난 차주, 코로나19 이후 매출 회복이 더딘 자영업자, 고령층과 저신용자에게 금융 안전망은 생계의 문제다. 금융회사가 건전성만 앞세워 문턱을 높이면 취약차주는 더 비싼 금리의 사금융으로 밀려날 수 있다. 농협의 포용금융 확대는 이런 악순환을 끊는 데 목적이 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필요한 운영자금과 재기자금을 공급하고, 저신용·취약계층에는 정책서민금융과 연계한 금융 접근성을 넓히는 방식이다. 농업인과 농촌 지역 차주에게는 농협이 가진 현장 정보와 지역 네트워크가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농협금융 입장에서도 포용금융은 단순한 비용이 아니다. 농협의 뿌리인 농업금융과 지역금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전략이다. 과거 농협이 영농자금과 생활자금을 통해 농촌 경제를 지탱했다면, 앞으로는 서민·자영업자·농업인·지역기업의 재기를 돕는 금융 플랫폼으로 역할을 넓히겠다는 의미다. ◆포용금융 넘어 생산적금융으로…농협금융 새 성장판 주목할 부분은 농협의 전략이 포용금융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협금융은 최근 금융권 전반의 생산적금융 확대 흐름 속에서 농업·농식품 산업, 지역 중소기업, 신성장 산업, 청년 창업, 지역 인프라 투자를 새로운 성장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생산적금융은 단순히 대출을 많이 늘리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담보와 가계대출에 쏠렸던 금융 자금을 산업, 기술, 지역, 일자리로 돌리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금융권에 요구하는 방향도 여기에 있다. 금융이 이자 장사에 머물지 말고 기업의 투자와 산업 전환, 서민의 재기와 지역경제 회복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금융은 이 분야에서 다른 금융그룹과 다른 위치에 있다. 전국 농축협과 농협은행 점포망, 농협경제지주와 연결된 농식품 밸류체인, 농업인과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현장 접근성은 농협만의 자산이다. 스마트팜, 푸드테크, 농식품 수출, 농촌 관광, 로컬 브랜드, 지역 에너지 전환 등은 농협금융이 생산적금융을 접목할 수 있는 대표 영역이다. NH투자증권과 NH-Amundi자산운용, NH벤처투자 등 비은행 계열사의 역할도 커질 수 있다. 은행이 대출과 보증, 정책자금 연계를 맡는다면 증권과 운용사는 펀드, 채권, 프로젝트금융, 벤처투자를 통해 자본시장 방식의 생산적금융을 설계할 수 있다. 캐피탈과 저축은행은 은행권 문턱을 넘기 어려운 소상공인과 중소사업자 금융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공익성과 수익성의 균형이 관건 다만 포용금융과 생산적금융 확대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균형이 필요하다. 먼저 공익성과 건전성의 균형이다. 취약계층 지원은 필요하지만, 무분별한 대출 확대는 금융회사 건전성을 훼손할 수 있다. 장기연체채권 소각·감면 역시 도덕적 해이 논란을 피하려면 대상 선정, 상환 능력 평가, 성실상환 유도 장치가 정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또 하나는 정책 호응과 독자 전략의 균형이다. 이재명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에 발맞추는 것은 필요하지만, 농협금융의 포용·생산금융은 정부 방침에 대한 단순한 ‘화답’에 그쳐서는 안 된다. 농협이 가장 잘 아는 농업, 농촌, 지역경제, 서민금융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포용금융이 비용이 아니라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농협금융은 이미 2012년 금융지주 출범 이후 은행·증권·보험·캐피탈·자산운용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이제 다음 과제는 외형 확장이 아니라 금융의 방향 전환이다. 고령화와 지방소멸, 자영업 위기, 농업의 산업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농협금융이 어디에 자금을 공급할 것인지가 중요해졌다. 농협의 이번 포용금융 확대는 그래서 단순한 취약계층 지원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장기연체채권 8876억원 소각·감면은 과거의 부실을 정리하는 일이다. 5년간 15조3000억원 규모의 포용금융 공급은 현재의 금융 안전망을 넓히는 일이다. 여기에 생산적금융을 결합하는 것은 미래의 성장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농협금융의 역사는 농업과 지역에서 시작됐다. 앞으로의 경쟁력도 그곳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생산적금융 기조는 농협금융에 부담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금융의 공공성을 요구받는 압박이지만, 농협의 정체성을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의 채무조정은 재기로 이어져야 하고 서민금융은 자립으로 연결돼야 하며, 생산적금융은 산업과 일자리로 증명돼야 한다”며 “농협이 농업금융의 DNA를 바탕으로 포용과 생산의 두 축을 제대로 세운다면 농협금융은 단순한 5대 금융그룹의 한 축을 넘어 지역경제와 미래 산업을 잇는 독자적 금융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2026-06-15 13: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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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감소를 정상화라 부르기 전에
[경제일보]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 감소를 두고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전세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특이한 사금융이고, 사라져 가는 추세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주택자가 집을 팔고 무주택자가 그 집을 사서 들어가면 전세 물량은 줄지만 전세 수요도 함께 줄어든다는 논리였다. 일면 맞는 말이다. 전세는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한 제도다. 집주인은 보증금을 무이자로 조달하고, 세입자는 매달 월세를 내지 않는 대신 거액의 보증금을 맡긴다. 저금리 시절에는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에게 일정한 효용이 있었다. 그러나 금리가 오르고, 전세사기가 터지고, 보증금 반환 리스크가 커지면서 전세는 더 이상 예전 같은 안전한 주거 방식으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전세 제도가 영원히 지금 형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전세가 장기적으로 줄어드는 흐름을 인정하는 것과, 지금 세입자들이 겪는 전세난을 정상화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제도의 조용한 전환이 아니다. 전세 매물이 줄고, 월세 매물도 줄고, 전셋값은 오르고, 월세 부담은 커지고 있다. 전세가 사라지면 세입자가 자연스럽게 월세로 옮겨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에는 현장의 충격이 작지 않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이미 장기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군, 역세권, 대단지 중심으로 전세 호가가 빠르게 뛰고 있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는 기존 계약을 연장하려 하고,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은 더 외곽으로 밀리거나 월세 부담을 떠안는다. 이것을 정상화라고 하면 정책 당국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세입자에게는 주거 선택지가 줄어드는 일이다. 전세가 줄어드는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전세사기 이후 보증금 반환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집주인은 월세를 선호한다. 고금리와 대출 규제는 세입자의 전세자금 조달을 어렵게 했다. 실거주 의무와 세제 변화도 전세 공급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서울 입주 물량 부족이 겹쳤다. 새 아파트 입주가 충분해야 전세 물량도 숨통이 트이는데, 서울의 공급 사정은 넉넉하지 않다. 공급이 부족한 곳에서 전세만 줄어들면 그 충격은 곧바로 임차인에게 간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도 시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세 부담을 통해 다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금이 무거워진다고 해서 반드시 매물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집주인은 팔고, 어떤 집주인은 버틴다. 팔린 집에 실수요자가 들어가면 전세 물량은 줄어든다. 매물이 잠기면 매매시장도 전세시장도 함께 불안해진다. 정책이 의도한 길과 시장이 실제로 움직이는 길은 자주 다르다. 전세 감소가 곧 집값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세입자 중 일부는 월세로 가지 않는다. 빚을 내 집을 산다. 매달 월세를 내느니 원리금을 갚겠다는 판단을 한다. 전세난이 매수 대기 수요를 자극하면 집값 불안으로 번질 수 있다. 전세의 축소가 주거시장 안정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매매시장 과열의 또 다른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책 언어는 시장에서 신호로 읽힌다. 대통령의 발언은 특히 그렇다. 전세 감소를 정상화라고 표현하는 순간 세입자는 정부가 전세난을 고통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집주인은 전세 축소가 정책 방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말 한마디에도 움직인다. 부동산 시장에서 정책은 법령과 세율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표현, 장관의 설명, 정부의 분위기 자체가 가격과 심리에 영향을 준다. 전세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다. 전세대출이 집값을 밀어 올린 측면도 있었다. 보증금이 사금융처럼 주택시장에 흘러 들어가면서 갭투자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전세가 세입자를 보호하는 제도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집값 상승기에는 집주인의 레버리지 수단으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전세가 무조건 선이고 월세가 무조건 악이라는 식의 접근은 낡았다. 그러나 전세의 문제를 말하려면 대안도 함께 말해야 한다. 전세가 줄어들면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인가. 장기 공공임대인가, 안정적인 민간 장기임대인가, 월세 세액공제 확대인가, 주거급여 보완인가, 도심 공급 확대인가. 이런 장치 없이 전세 감소만 정상화라고 하면 세입자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의 전환은 준비된 제도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전환은 정상화가 아니라 부담의 이전이다. 월세화가 불가피하다면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소득·세제·금융 지원 체계가 있어야 한다. 공공임대를 늘리겠다면 입지와 품질을 함께 따져야 한다. 민간임대를 활성화하겠다면 임대료 급등을 막을 장치와 사업자가 장기간 임대주택을 공급할 유인을 같이 설계해야 한다. 공급을 늘리겠다면 인허가 숫자가 아니라 실제 입주 시점으로 말해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살 집이다. 지금 서울 주택시장의 불안은 단순한 심리 문제가 아니다. 전세 물량 감소, 월세 부담 확대, 입주 물량 부족, 세제 변화, 대출 규제가 한꺼번에 얽혀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의 메시지는 정교해야 한다. 투기 수요를 잡겠다는 말은 필요하다. 그러나 실수요자와 세입자까지 같은 그물에 묶이면 시장의 불만은 커진다. 현금이 많은 사람은 버티고, 자금 여력이 부족한 사람은 밀려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부동산 정책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집값을 잡겠다고 대출을 조이면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도 어려워진다. 다주택자에게 세금을 높이면 일부 매물은 나오지만 일부 전세 물량은 사라진다. 전세대출을 줄이면 갭투자는 눌릴 수 있지만 세입자의 보증금 마련도 어려워진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은 선명한 구호보다 정밀한 조합이 중요하다. 전세가 사라져 가는 것은 긴 흐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세입자의 주거비가 급격히 늘고, 서울 외곽과 수도권으로 밀려나고, 무리한 대출 매수로 내몰린다면 그것을 정상화라고만 부를 수 없다. 정상화라면 시장 참여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여야 한다. 정상화라면 대체 제도가 있어야 한다. 정상화라면 불안이 줄어야지 커져서는 안 된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전세의 퇴장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전세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세입자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답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세 제도에 대한 이론적 평가가 아니라 주거 불안을 낮추는 실제 대책이다. 공급은 언제 얼마나 들어오는지, 월세 부담은 어떻게 낮출 것인지, 장기 임대시장은 어떻게 키울 것인지, 실수요자의 대출 통로는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전세는 분명 완전한 제도가 아니다. 그러나 전세가 사라지는 자리에 아무것도 준비돼 있지 않다면 그 공백은 고스란히 서민 주거비로 돌아간다. 전세 감소를 정상화라고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려운 일은 그 정상화의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는지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은 말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정부가 시장의 불안을 정상화라는 말로 가볍게 넘긴다면, 그 대가는 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주거비 고지서에 먼저 찍힐 것이다.
2026-06-12 07: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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