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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사, 임금표 너머 '미래 일자리'를 봐야
[경제일보] 현대자동차 노사가 길었던 줄다리기를 일단 멈췄다. 지난 5월 상견례 이후 111일 만이다. 지난 24일부터 이어진 밤샘 교섭 끝에 마련된 잠정합의안에는 월 기본급 10만원 인상, 성과금 400%와 1270만원, 주식 15주, 복지포인트 50만원 등이 담겼다. 내년 하반기 200명, 2028년 300명 등 기술직 500명을 새로 뽑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오는 31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하면 올해 임금협상은 마무리된다. 숫자만 놓고 보면 적지 않은 보상이다. 노조는 올해 조합원 1인당 임금 인상 효과를 4084만원 정도로 추산한다. 좋은 성과를 낸 기업이 그 과실을 노동자와 나누는 것은 시장경제에서도 자연스럽다. 숙련된 노동력과 안정적인 노사관계 역시 기업 경쟁력을 만드는 자산이다. 기업의 성과가 주주와 경영진에게만 돌아가고 현장을 지킨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지속 가능한 협력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번 합의를 ‘얼마를 더 받았느냐’의 문제로만 읽어서는 곤란하다. 현대차 노사가 마주한 진짜 협상은 오히려 이제부터다. 자동차 산업의 판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교섭 과정에서 노조는 60시간 파업했고, 생산라인 기준 가동 중단 시간은 120시간에 달했다. 지난 21일에는 2016년 이후 10년 만에 하루 8시간 전면파업까지 벌어졌다. 업계는 약 5만5200대가 생산 차질을 빚었고, 이를 판매단가로 환산한 매출 차질 규모가 2조3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한다. 이 수치를 실제 영업손실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갈등의 비용이 회사와 조합원만이 아니라 협력업체·고객·지역경제로 번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노동자가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것은 권리다. 회사가 비용과 경쟁력을 따지는 것도 경영의 책무다. 문제는 두 요구가 해마다 파업을 거친 뒤에야 절충되는 구조다. 임금협상의 승자가 누구인지 가리는 동안 생산이 멈추고 협력업체가 일감을 걱정한다면 노사 모두가 얻은 것보다 잃는 것이 커질 수 있다. 이번 잠정합의에서 그래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성과금 400%보다 다른 곳에 있다. 현대차 노사는 피지컬 인공지능(AI)과 로보틱스 같은 미래 기술의 도입이 기업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데 공감하고, 신사업과 신기술 추진 경과를 투명하게 공유하며 산업 전환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제조 경쟁력 강화와 제도 개선에도 함께 나서기로 했다. 임금표 밖으로 노사협상의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이 합의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올해 임협에서 가장 값진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자동차 회사를 넘어 로봇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제조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현대차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메타플랜트에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투입할 계획이다. 초기에는 부품 서열작업부터 시작해 검증을 거쳐 조립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노조 역시 이번 교섭 과정에서 AI·자동화 확산에 따른 고용안정을 주요 문제로 제기했다. 이 변화 앞에서는 ‘자동화를 막을 것이냐, 받아들일 것이냐’는 식의 논쟁부터 낡았다. 자동화를 막으면 일자리가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경쟁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한국 공장의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면 생산물량 자체가 해외로 이동할 수 있다. 반대로 로봇을 많이 넣으면 기업이 자동으로 경쟁력을 얻는 것도 아니다. 공정을 이해하고 로봇을 운용하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품질을 관리할 숙련된 사람이 없다면 첨단설비도 비싼 쇳덩이에 불과하다. 결국 미래의 노사협상은 ‘사람이냐 로봇이냐’가 아니라 ‘사람이 로봇과 함께 어떤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냐’를 다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생산직 500명 신규채용 합의는 반갑다. 청년들에게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를 열고 세대교체의 숨통을 틔운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숫자를 채우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새로 들어올 인력의 직무가 앞으로 10년 뒤에도 필요한 일인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미래 공장에 필요한 생산직의 모습은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생산공정을 이해하면서 로봇과 자동화설비를 다루고, 설비 데이터를 읽어 고장을 예측하며 품질 문제를 현장에서 해결하는 노동자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기존 직원에게도 같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기술이 바뀔 때마다 일자리 감소부터 걱정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재교육과 직무전환을 통해 새로운 공정으로 이동할 사다리를 마련해야 한다. 고용안정의 가장 좋은 방법은 없어지는 일을 억지로 붙들어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일을 기존 노동자가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임금 문제 역시 이제 생산성과 떼어놓고 논의하기 어렵다. ‘임금이 오르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단순 공식은 맞지 않는다. 높은 임금을 받는 숙련인력이 높은 생산성과 품질을 만들어낸다면 기업에는 오히려 이익이다. 노동자가 회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그 성과를 공정하게 배분받는 구조는 장기적인 신뢰를 만든다. 반면 생산성과 무관하게 고정비만 계속 높아지고, 파업에 따른 생산중단이 반복되며, 해외 공장보다 국내 생산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글로벌 기업은 결국 어디에서 생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계산한다. 국내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선의만으로 국내 생산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현대차 역시 녹록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기차에서는 중국 업체와 가격·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미국에서는 현지 생산 확대가 요구된다. 원자재와 공급망, 관세, 환율까지 경영환경을 흔드는 변수도 적지 않다. 회사와 노조가 임금협상에서 생산성을 함께 말해야 하는 까닭이다. 성과급을 생산성과 기계적으로 연동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자동차 품질과 기술개발, 브랜드 가치처럼 단순한 시간당 생산대수로 계산하기 어려운 성과도 많다. 하지만 노사가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협상한다면 동시에 ‘다음 성과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도 협상해야 한다. 생산성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품질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지, 신기술 도입으로 줄어드는 직무와 늘어나는 직무가 무엇인지, 직원 재교육에는 얼마를 투자할 것인지, 국내 공장의 역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까지 노사 테이블 위에 올라와야 한다. 협력업체도 빠져서는 안 된다. 현대차 공장이 파업하면 부품업체 생산라인도 영향을 받는다. 완성차 노동자는 성과금을 받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는 원청의 생산중단으로 일감을 잃는 구조라면 산업 전체의 노사 상생이라 부르기 어렵다. 노사협상의 비용이 공급망의 가장 약한 곳으로 전가되지 않게 하는 책임도 대기업 노사에게 있다. ‘주역’ 계사전에는 ‘이인동심 기리단금(二人同心 其利斷金)’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도 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해관계가 다른 노사가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좋은 일자리를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겠다는 목표만큼은 함께할 수 있다. 올해 임협은 아직 잠정합의다. 조합원 투표라는 마지막 절차도 남아 있다. 가결된다면 노사는 길었던 갈등을 수습하고 다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간다고 협상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전기차와 로봇, AI가 공장을 바꾸는 속도는 임금협상 주기보다 빠르다. 앞으로의 노사관계는 매년 기본급 몇 만원과 성과금 몇 퍼센트를 놓고 싸우는 데 머물 수 없다. 청년을 어떤 일자리로 뽑고, 기존 숙련인력을 어떤 기술자로 바꾸며, 자동화로 높아진 생산성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더 큰 의제가 돼야 한다. 좋은 성과를 나누는 것은 필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눌 성과가 계속 만들어지는 회사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현대차 노사의 다음 협상 테이블에는 임금표와 함께 생산성, 직무전환, 청년고용, 로봇과 AI의 시간표가 나란히 놓여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의 몫도 지키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도 지키는 길이다.
2026-08-26 08: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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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신화' 현대차 DNA, 피지컬AI 기업으로…'로봇 사관학교' 도약
[경제일보] 현대자동차그룹의 역사는 자동차 만드는 법을 익혀온 과정이었다.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 이후 포니의 독자 개발과 수출,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를 거치며 한국을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으로 끌어올렸다. 정몽구 명예회장 시기에는 품질경영과 부품 수직계열화를 통해 값싼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벗었다. 이와 같은 제조 DNA는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공장 밖으로 뻗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이어 휴머노이드 로봇, AI 데이터센터, 수소에너지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동차를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움직이는 지능형 기계와 이를 훈련하는 산업 시스템을 만드는 회사로 변신하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잔여 지분을 인수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이다. 연구실에서 고난도 동작을 보여주던 로봇을 실제 공장에 투입하고, 대량생산과 유지관리까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 DNA의 본질은 자동차라는 제품보다 복잡한 기계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세계 곳곳에서 동일한 품질로 운영하는 능력에 가깝다. 이 경험이 이제 피지컬 AI로 옮겨가고 있다. 자동차 공장이 ‘로봇 학교’로 현대차그룹이 로봇 경쟁에서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실제 제조현장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걷고 물건을 드는 시연만으로 상품이 되지 않는다. 작업자와 같은 공간에서 안전하게 움직이고, 반복 작업을 정해진 시간 안에 수행하며, 고장 없이 장기간 가동해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 로봇 메타플랜트 응용센터를 구축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훈련하고 있다. 실제 공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부품을 집고 옮기며 작업자의 동작을 학습한 뒤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아틀라스는 2028년부터 조지아 공장에서 부품을 순서에 맞게 분류하는 작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2030년에는 부품 조립 등 더 복잡한 공정으로 역할을 넓힌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아틀라스뿐 아니라 물류로봇 스트레치와 4족 보행로봇 스팟도 제조와 물류, 시설관리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핵심은 데이터의 선순환이다. 로봇은 훈련센터에서 작업을 학습하고 공장에 투입된다. 현장에서 축적한 성공과 실패 데이터는 다시 훈련센터로 보내져 로봇의 판단과 동작을 개선한다. 세계 각지의 현대차·기아 공장이 거대한 로봇 학습장으로 바뀌는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생산을 통해 공정 설계와 부품 조달, 품질관리, 작업자 안전, 설비 유지보수 능력을 축적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로봇의 두뇌와 움직임을 제공한다면 현대차그룹은 로봇이 실제 산업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양산·운영 체계를 제공한다. 현대모비스는 아틀라스의 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 공급에 참여하고, 현대글로비스는 물류현장을 제공할 수 있다. 현대오토에버는 공장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운영을, 현대제철은 로봇용 소재를 맡을 수 있다. 로봇 한 대가 그룹 계열사의 기술과 공급망을 연결하는 새로운 완성품이 되는 구조다. 보스턴다이내믹스, 기술기업서 제조기업으로 현대차그룹은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뛰어난 로봇 기술로 유명했지만, 사업화와 수익성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난도 동작을 구현하는 기술과 수만대를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기술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잔여 지분까지 확보하는 것은 장기 투자와 사업전략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기술 개발과 공장 적용, 부품 조달, 생산시설 투자, 기업공개 가능성까지 그룹이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북미에 연간 수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아틀라스를 그룹 공장에서 먼저 사용한 뒤 외부 제조·물류기업으로 판매처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기아가 첫 고객이 돼 초기 수요를 보장하고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이는 과거 자동차 성장 방식과 닮았다. 현대차는 국내 시장과 계열사 공급망을 기반으로 생산경험을 쌓은 뒤 해외로 진출했다. 로봇 역시 그룹 공장에서 기술과 경제성을 검증하고 세계시장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벽도 높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가격이 비싸고 배터리 가동시간, 작업속도, 안전성 측면에서 인간 노동자를 완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공장마다 작업환경이 달라 범용 로봇을 투입하더라도 추가 학습과 설비 변경이 필요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적자와 연구개발비도 부담이다. 로봇이 실제 생산성을 높이고 인건비와 산업재해를 줄인다는 점을 수치로 증명하지 못하면 대규모 투자는 그룹 재무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완전 자회사화 과정에서 기업가치와 인수비용을 둘러싼 시장의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다. 공장 밖으로 이어지는 피지컬 AI 생태계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전략은 로봇 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자율주행차와 스마트팩토리, AI 데이터센터, 수소에너지를 하나의 산업체계로 연결하려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5만개의 최신 GPU를 기반으로 AI 팩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자동차와 로봇, 공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학습해 자율주행과 로봇 제어, 생산 최적화에 활용한다. 가상공간에서 공장과 로봇을 미리 시험하는 디지털트윈 기술도 적용한다. 새만금에는 약 9조원을 투자해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 클러스터, 수소 생산시설, 태양광 발전, AI 수소도시를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에서 로봇의 두뇌를 학습시키고, 제조단지에서 로봇을 생산하며, 재생에너지와 수소로 전력을 공급하는 구조다. 자동차가 이동수단이라면 로봇은 사람의 노동능력을 확장하는 기계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에서 축적한 센서와 배터리, 모터, 제어, 소프트웨어 기술이 로봇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동 문제는 가장 민감한 변수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대신하면 산업재해와 노동강도를 줄일 수 있다. 반면 생산직 일자리를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현대차 노조가 로봇 도입과 고용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협업하고, 유지보수와 훈련 등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만 로봇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과 고용 변화, 전환교육 계획을 투명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DNA는 시대가 요구하는 제품을 대량생산 체제로 바꾸는 데 있다”며 “포니를 수출상품으로 만들었고, 품질경영을 통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 올라섰으며,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공장을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같은 방식을 로봇에 적용하려 하고 있고, 이는 기술기업이 만든 로봇을 자동차산업의 공급망과 공장, 품질관리 체계에 올려 실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세계 최초의 로봇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넘어 로봇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가장 잘 사용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을지가 다음 승부처”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2026년 07월 28일자 13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6-07-28 08:4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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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착시와 '그들만의 잔치'… 도덕경에서 찾는 경제 정의
[경제일보] 대한민국 경제가 거대한 착시(錯視)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반도체 ‘수퍼 사이클’ 덕에 올해 1분기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초과 세수가 70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진다. 외견상으로는 유례없는 풍요다. 그러나 이 화려한 지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경제의 허리는 무섭게 휘어지고 있다. 전체 수출 증가액의 80% 이상을 상위 5대 기업이 독식하는 ‘K자형 수출 양극화’가 심화하는 와중에,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의 공세에 밀려 활력을 잃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일시적 호황이 야기한 사회적 박탈감과 갈등이다. 최근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의 특별성과급 합의는 불평등에 신음하던 국민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영업이익의 10% 안팎을 고정해 개인 성과와 무관하게 ‘일괄 지급’하는 방식은 글로벌 기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인 남녀의 78%가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분노하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이 고액 성과급 잔치는, 담장 밖 대다수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소외감을 안겨주고 있다. 바야흐로 반도체가 가린 착시 속에서, 대한민국은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균열하고 있다. 『도덕경(道德經)』 제77장에는 천지도(天之道)와 인지도(人之도)를 대비하는 명언이 나온다. "하늘의 길은 남는 데서 덜어내어 부족한 데를 보태주지만, 사람의 길은 그렇지 아니하여 부족한 데서 취하여 남는 데를 더해준다(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지금 대한민국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과급 논란은 정확히 '인지도', 즉 있는 자에게 더 얹어주고 없는 자의 기회를 빼앗는 탐욕의 질서와 닮아있다. 삼성전자의 천문학적인 반도체 이익은 소속 근로자들의 땀방울만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의 단가 희생, 국가적 차원의 인프라 지원, 그리고 온 국민이 감내한 세제 혜택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초과 이익을 특정 대기업 노사가 독점적 배타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사회적 상식과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당장 기업 내부에서부터 모순이 폭발하고 있다. 비반도체 부문의 흑자 사업부는 성과급에서 배제된 반면, 정작 적자를 낸 반도체 사업부는 거액을 챙기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노노(勞勞) 갈등'이 법적 소송으로 비화하며 기업의 결속력을 해치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경영계의 대응이다. 노란봉투법 등 노사 리스크가 커지고 임금 압박 이 거세지자, 기업들은 단순 생산직부터 석·박사 연구직까지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경영계획을 서두르고 있다. 대기업의 성과급 잔치가 청년 세대의 일자리 씨를 말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홀로 독주하는 구조는 고용 시장의 이중구조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고착화할 것이다. 성경 구절에도 "지혜 있는 자는 들으라, 공의를 굽게 하는 자는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가 있다. 주주의 권익을 침해하고, 협력업체의 헌신을 외면한 채, 오직 힘을 가진 거대 노조의 요구에 밀려 퍼주기식 합의를 감행한 경영진 역시 '주주 충실 의무' 위반이라는 법적·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주는 기업이 어려울 때 자본 손실의 위험을 고스란히 짊어진다. 위험은 주주와 사회가 나누고, 이익은 대기업 노동자만 선취하는 비대칭적 이익 배분 구조는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을 왜곡하는 행위다. 반도체 특수라는 환각에 취해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규제 개혁, 기존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 타이밀을 놓친다면 그 대가는 가혹할 것이다.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착시 현상과 이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은 이제 막 시작된 대한민국 전체의 숙제다. 이번 수요일 국회에서 열리는 본지(경제일보)의 긴급간담회 ‘삼성반도체 문제, 이제 시작이다’ 역시 이러한 시대적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특정 집단의 이익 독점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악을 집중 해부해야 한다. 정부 역시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당장 내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올해 발생할 초과 세수를 철저히 추계하고, 이를 대기업 중심의 생태계를 넘어 양극화 완화와 신성장동력 확충, 그리고 무너지는 민생을 돌보는 데 어떻게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는 "승자가 되기 위해 타인을 패자로 만들지 말라"고 가르친다. 대기업 노사는 자신들의 풍요가 타인의 허탈감과 청년들의 기회 박탈 위에 서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글로벌 기준과 국민적 상식에 부합하는 합리적 보상 원칙을 재정립하고, 독소적인 노동관계법을 손질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착시에서 깨어나 공존의 길을 모색할 때다.
2026-05-25 13:44:48